소설리스트

클로저스-463화 (463/517)

00463  또 다른 최고위 이형종.  =========================================================================

녀석들은 생태 자체가 물과 친숙했는지 연못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길래 나도 연못가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따뜻한 겨울 햇살을 쬐며 스케일러들이 노는 모습을 구경했다.

몇 분 간격으로 손목에 붙어있는 인증기를 들여다보지만 새로운 메시지나 채팅 알림은 오지 않는다.

영은이를 통해 내 의사를 전달하게 한 지 2시간도 채 안 지났으니 상황이 극적으로 변화할 리는 없지만… 그래도 하릴없이 기다리려니 뭔가 좀 늘어지는 기분이다.

“여기서 십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이형종 떼랑 열심히 싸우고 있을 텐데 이렇게 쉬고 있으니까 뭔가 기분이 이상해.”

=심심하신 거에여?=

“심심한 거랑은 좀 달라. 위상 세계에서 해야 할 일이 밀려있는데 현실에 붙잡혀있으니까 그래.”

연못의 수상 정자의 지붕에 서서 에리와 카라에게 사회 교육을 하느라 바쁜 미호를 보며 말하니 암흑이는 내 머리 위에서 얼굴을 타고 내려오며 말했다.

=그럼 붙잡고 있는 일을 후딱 해치우면 되잖아여.=

내 입술에 발을 걸치고 얼굴을 감싸듯이 껴안은 암흑이를 어떻게 혼내줄까 하다가 그냥 내버려 두고 입을 열었다.

“…그게 그러케 간단하지 아나.”

말을 하면서 나오는 입김이 발을 간지럽히는지 암흑이는 몸을 비틀며 킥킥거리다가 가슴팍으로 주르륵 미끄러져 버렸다. 녀석을 손으로 받아서 말랑말랑한 푸딩 같은 몸을 만져본다.

초봄이라지만 바람이 찬데 액체로 이루어진 몸은 묘하게 따뜻하다. 내 체온으로 데워져서 그런가?

“본진 수비는 기본이잖냐. 본진에 신경 안 쓰다가 본진 터지면 타격이 어마어마하거든.”

=꺄륵.=

기껏 녀석이 의문을 보인 부분에 대해 설명해주는데 녀석의 머릿속에는 이미 질문을 했다는 생각이 사라졌는지 자기 몸을 주무르는 내 손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스케일러들은 연못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그냥 내버려 뒀더니 해가 질 때까지 나오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연못에서 나오라고 명령을 내려야만 했다.

연못을 기어 나오면서 또다시 난간과 산책로를 부순다. 아니, 들어갈 때 부순 곳으로 나오지… 저, 저거!

루뱅 한 놈은 나오다가 분수 쇼를 하는데 쓰이는 거 같은 구조물을 밟아 부수기까지 한다!

“에휴.”

저녁을 먹을 무렵에 도청 앞 잔디 공원으로 돌아오니 차소영은 이미 대량의 식용육을 준비해서 8등분으로 나눠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푸크르르륵. 쉬아악.

먹음직스러운 고기가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스케일러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자 차소영은 슬쩍 내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내 옆에 서서 스케일러들을 신기하다는 옅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8곳에 나누어진 식용육 앞에 나란히 앉아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내 허락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스케일러들에게 먹어도 좋다고 허락을 내리자마자 각자 자기 앞에 놓인 수 톤은 되는 생고기에 주둥이를 파묻고 허겁지겁 뜯어먹기 바쁘다.

녀석들을 지켜보고 있으니 차소영이 내 기분이 어떤지 가늠해보며 말을 꺼낼 타이밍을 재는 게 보였다.

“뭔가 할 말이라도 있어요?”

“……대책 본부의 간부들이 회장님과 회식을 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저하고요? 왜요?”

“저녁 식사를 핑계로 인연을 한번 만들어보겠다는 심산이겠지요.”

기가 찬다. 전방에서는 목숨 걸고 이형종과 싸우는 능력자들과 군인이 있는데 후방에서는 회식이나 한다고?

“지금은 비상경보 상태라면서요. 그런데 회식 같은걸 해도 돼요?”

차소영도 이런 내 생각과 동일한지 드물게 한심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보신과 출세 앞에 그런 것은 염두에 둘 사항도 아니라는 거겠지요. 전방에서는 전투가 일어나는 중이지만 이곳은 한산하니까요.”

“진짜 한심하긴… 거기 지충연 중장도 참석하나요?”

한다면 완전히 실망할 거 같은데 차소영은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지충연 중장은 간부들의 회식 요청 의견에 제정신이냐며 화를 내셨지만, 중대사를 앞두고 회식으로 회장님과 친목을 도모하고 유연한 관계 개선을 위한다는 핑계를 거절할 명분이 없으신 듯 했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내 눈을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서하 님도 아시다시피… 대책위원들이 몇 번이나 대화를 청했었지 않습니까. 하지만 모두 거절하셨지요. 그런 부분도 있었기에 지충연 중장도 설득에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합니다.”

“진짜 어이없네요. 만나봤자 쓸데없는 소리만 할게 뻔해보여서 안 만나준 건데 그걸 핑계로 회식 자리를 만들다니.”

만나주지 않은 이유가, 그 인간들은 윤호민 차관과 비슷한 부류로 보였었다. 적당한 능력에 아첨과 아부로 자기 출셋길을 확보하고 권력을 탐하는 인간들. 그러니까 서로 얼굴을 맞대봤자 나만 짜증 날게 뻔해서 못 들은 척 했던 거였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나 싶어서 면상이라도 보자는 생각에 그 사람들을 찾아서 도청 내부를 공간 지각으로 주욱 훑다보니 전문 요리사 다섯 명이 최고급 재료로 열심히 요리를 만드는 게 보였고 이벤트 업자인지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 여럿이 도청 신관의 다목적 홀을 아주 호화롭게 꾸미고 있었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임원 전용 휴식실에서 어제 내가 도착했을 때 마중을 나와 있던 인간들과 윤호민 차관이 있는 걸 발견했다.

……회식을 요청했다는 간부 일곱은 비싼 돈을 들여서 만든듯한 휴식실에 모여서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배가 나오고 기름기 가득 낀 능글맞은 얼굴로 음담패설을 나누는 인간들을 보니 기분이 굉장히 나빠졌다.

그나마 도청 신관 홀에서 하는 걸 보면 비싼 요릿집에서 여자를 끼고 할 정도로 아주 정신이 나가진 않은 거 같지만 이런 상황에 회식이라니, 진짜 제정신이 아니다.

-준비는 잘 되고 있는 거겠지요?-

-물론입니다. 이런 자리가 혹여나 있지 않을까 싶어 서울에서 유명한 요리사를 데려왔지요.-

-분위기를 띄워줄 인원도 준비 중이니 회장만 오면 됩니다.-

-이번은 절대 실수를 해서는 안 됩니다. 아시겠지요들?-

-으허허. 회장은 아직 스무 살의 어린 나이이지 않소. 아까도 보니 성격이 직선적인 거 같더외다. 이번 기회를 자알 살려 그의 후원을 약속받으면 우리의 미래는 탄탄대로나 다름없을 거요. 허허허.-

역겹지만 저 인간들이 무슨 대화를 하나 독순술로 읽어보니 날 아주 호구로 여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정보가 알려져 봤자 귀찮아질 일이 많을 거 같아서 영은이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지 않도록 부탁했던 거였는데, 영은이의 일 처리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고위 공직자들 사이에 내 성격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다 보니 이런 헤프닝이 벌어진 거다.

이렇게 생각하니 이건 또 무슨 아이러니인지.

짜증이 울컥 나버려서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하다가 도청 신관의 한 곳에서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저 간부들, 아니 개돼지들은 아주 정신이 나가다 못해 뇌가 썩어 문드러졌다고 정정해야겠다.

1층의 탈의실로 보이는 곳에 대책본부의 직원인 여성과 여군들이 모여있길래 업무 시간이 끝나서 사복으로 갈아입는 건가 싶었는데, 그녀들의 손에 들린 옷과 표정을 보니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감이 온다.

잠시 지켜보니 역시나 싫다는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노출이 심한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얼굴도 일반인 중에서는 꽤 예쁜 축에 들고 속옷도 야한 망사 종류로 입고 있는 걸 보니 뭘 위한 것인지는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와나. 돌았네 진짜.”

차소영은 내가 갑작스레 분노를 보이면서 인증기를 켜자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뭔가 깨달은 듯이 작게 탄성을 지른다.

“아. 공간 지각으로 상황을 보신 겁니까?”

“네. 서울에서 요리사랑 최고급 요리재료를 가져와서 소형 홀을 뷔페처럼 만드는 건 뭐, 회식이니까 이해하겠는데요. 여직원을 불러 접대부처럼 차려입게 하고 시중들게 하려는 거 같아요. 진짜 어이가 없어서 기가 막힐 지경이네요.”

이빨을 부드득 갈면서 다짜고짜 영은이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게 말이 돼? 후방이라면 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전방의 서포트를 해야지 요리사를 불러서 음식을 만들고 술을 준비하고, 여직원들한테 야한 옷을 입혀서 술을 따르게 시키려 하다니, 이건 제정신이라면 절대 하지 못할 일 아냐? 저 인간들은 대체 어떤 인간들이야? 영은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야?”

영은이는 실망했다는 내 표정과 여직원들에게 접대부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이야기에 안색이 확 굳더니 나보다 더 화난 표정으로 지금 당장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바로 공직감찰본부에 사건을 넘길 테니 그들이 도망가지 않는지 지켜봐 주렴. 그렇지않아도 요즘 부정을 저지르는 인간들이 많이 보였는데… 아주 시기 좋게 걸려주는구나. 호호호…!]

나보다 더 무섭게 조용히 화내는 영은이를 보고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통화를 종료했다.

공직 감찰본부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감찰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데다 나한테 예쁘게만 보이고 싶어 하는 영은이가 내게서 안 좋은 이야기까지 들었으니 잘은 몰라도 저 인간들은 곱게 죽긴 틀렸을 거다.

어디 한번 엿 먹어보라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나 직원 복을 입고 예쁘게 화장한 아가씨가 공원에서 쉬고 있는 날 찾아와 날 위한 환영회를 준비했다며 모쪼록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시길 바란다는 말로 회식에 초대를 해왔다.

하지만 스케일러들하고 노느라 무척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쉘터에 짱박혀버리니 여직원은 잠시 당황해하다가 개돼지 간부들에게 돌아가 버렸다.

실제로도 내가 스케일러들을 데리고 낮에 나가 밤에 돌아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개돼지 놈들은 무척이나 아쉽다는 얼굴로 자기들끼리 놀고먹으려고 하더라. 물론 떫은 감을 입에 문 거 같은 여직원들을 옆에 끼고 말이지.

“내가 공하보다 도청을 먼저 뒤집어버리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저 인간들 행동을 멈추게 하세요.”

속이 뒤집힐 거처럼 기분이 나빠져서 차소영에게 지충연 중장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전화를 걸어 반협박을 곁들인 경고를 하자 지충연 중장은 으득하고 이빨 부러지는 소리를 내더니 바로 처리하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직후 무장한 군인 열 명을 데리고 추잡스런 연회가 마악 시작되려는 홀에 들이닥친 지충연 부장은 놀라서 얼어붙은 개돼지 간부들을 씹어먹을 듯이 무시무시하게 노려보며 포효했다.

-이, 이런…! 당신들, 지금 제정신이오?! 미친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소!! 단지 회식이라고, 회장과 화목을 도모하기 위해서라기에 어쩔 수 없이 허가를 내려주었더니!!-

접대부처럼 차려입은 여직원과 여군들을 보며 부들부들 떨던 지충연 중장은 미친 거 아니냐는 말로 화난 호랑이처럼 포효하더니 군인들에게 간부 일곱을 당장 포박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지 중장! 이게 무슨 짓입니까!-

-무슨 짓인지 정말 몰라서 묻는 거요?! 지금은 엄연한 전시 상황이거늘, 대체 이게 무슨 작태란 말이요! 지금 하는 행동 자체가 전시법 위반이라는걸 모르는 거요?!-

-전시법이라니! 지금이 무슨 전시 상황이라는 겝니까! 노망이라도 드셨소?!-

-노망이 아니라 당신들 머리통에 든 우동 사리가 상해버린 거겠지! 현재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고 까치 둘에서 까치 하나로 조정된 이 시기에 여직원과 여군들을 들여 희롱하는 회식이라니!! 내가 당신들이라면 당장 접싯물에 코 박고 죽었을 거요!!-

일곱 개돼지 간부는 자신들을 포박하려는 군인들에게 격렬하게 저항하며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감히 나에게 이런 짓을 해서 무사 할 거 같으냐는 악을 써댔지만, 군인 아저씨는 어디서 개가 짖느냐는 표정으로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쓰러트리고 팔을 뒤로 돌려 수갑이 아닌 포승줄로 꽁꽁 묶기 시작했다.

-그랑 블루 회장이 회식을 거부했다면 포기하고 그만두어야지!! 비상 대책 본부의 이름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이 꼴을 보고 먼 곳에서 조력을 주기 위해 온 그랑 블루 회장이 얼마나 실망을 할지나 알고 있으시오?!-

무섭게 분노하는 지충연 중장의 모습에 회식에 동원된 아가씨들은 자신도 처벌을 받는 게 아닌가하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는데, 지충연 중장과 동행했던 차소영이 그녀들을 다독이며 개돼지들이 악을 써대는 곳을 벗어났다.

그렇게 포박된 채 작은 사무실에 따로따로 감금된 개돼지들은 나한테 이럴 수는 없다며 당장 이거 풀지 못하겠냐고 사무실 문밖에 서서 경계 중인 군인 아저씨들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지만, 군인 아저씨들은 어디서 돼지가 우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내 분노어린 전화를 받았던 영은이 말대로 개돼지 간부 일곱은 밤새 헬기를 타고 서울에서 내려온 감찰정보단의 감찰관들에게 연행되었다.

사무실에서 끌려 나와 도청 한편에 마련된 헬기 포트에 감찰정보단 마크가 선명히 새겨져 있는 수송용 헬기를 보고서야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눈치챈 개돼지 일곱은 사색이 되어서는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는 내게 오해라며 제발 용서해달라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정, 정 회장!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그건 단지 실수였어요!”

“그저 정 회장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간단한 회식 자리를 마련했을 뿐이에요! 이 사람, 억울합니다!”

“억울하다는 사람이 딸자식 뻘 되는 여직원분들에게 야한 옷을 입혀서 성희롱도 하고 그랬어요?”

“그, 그건 오해입니다! 성희롱 같은 건 하지 않았어요!”

“현장범으로 잡혔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억울하면 감찰관분들께 항의하시지 왜 저한테 그러세요? 내가 무슨 권한이 있다고. 전 그냥 평범한 레이드 팀의 사장일 뿐이에요.”

“회, 회장의 장모 되실 분이 VIP 아니십니까! 저희는 정말 회장을 위한 조촐한 연회를 준비한 것뿐입니다! 오해이니 제발!”

“아 몰라요. 잘못했으면 처벌받아야지. 얼른 데려가세요. 얼른.”

개돼지도 아니고 사람이면서 잘도 꿀꿀거린다고 생각하며 내 앞에 잠시 멈춰 섰던 감찰관에게 손짓하자 감찰관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개돼지 간부 일곱을 헬기에 강제로 태우고 떠나갔다.

떠나갈 때까지 꽥꽥거리던 간부들의 추태를 지켜본 지충연 중장은 하룻밤 사이에 10일은 늙어버린 모습으로 한숨을 쉬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미안합니다. 정 회장. 그저 회식만 하겠다는 이야기에 무심코 허락한 제 잘못입니다.”

“그걸 저한테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전 공하를 상대하기 위해 내려온 레이더일 뿐이니까요. 잘못한 게 있다면 위에서 처벌이 내려오겠죠.”

“으음….”

지충연 중장에게도 좀 실망한 마음이 없진 않아 칼같이 사과를 걷어내자 안색이 약간 흐려진다.

“그런 것보다 지난 밤사이에 상황이 변한 건 없나요?”

“예. 상황의 변화는 없었습니다. 공하는 대마도에 존재하는 쓰시마 시의 능력자와 중심가를 섬멸한 뒤 휴식기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휴식기라니, 그럼 상황이 해결될 시간은 점점 밀려난다는 이야기잖아. 점점 기다리기 지루해지고 기분 나쁜 일도 벌어지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까.

쉘터의 창가에 앉아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한둘이 아닌데….

그 시선의 주인이 스케일러라는걸 눈치채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아서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쉘터의 밑에 모여 이쪽을 올려다보는 녀석들이 보였다.

나와 시선을 마주친 스케일러들은 끄웅, 끼잉거리며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거 같다.

“왜? 또 산책가고 싶어?”

크옹!

여덞 마리 중 대표 격인 수컷 이구아나 3호가 사지를 쭉 뻗으며 몸을 흔들흔들 거리는 모양새를 보여주는데, 뭘 표현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트럭만 한 이구아나가 저런 행동을 하는 게 웃기기도 하고 재밌어서 인증기로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으니 미호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옆으로 다가와서 행동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 연못에 데려가 달래.

“연못? 어제 거기?”

크웡! 캬오! 샤샥!!

맞다는듯이 소란스럽게 울어대는 녀석들을 나른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제도 별로 노는 거 같지도 않더니 또 가자고?”

그렇지만 나도 딱히 할 일이 없어 연못에 데려다 달라며 짧게 우는 녀석들을 이끌고 어제 놀았던 연못에 데려가 주니 녀석들은 신난다는 것처럼 꼬리를 붕붕 휘두르며 연못으로 차례차례 뛰어들었다.

딱히 노는 것도 아니고 그저 물에 잠겨있을 뿐이지만, 수심도 크게 깊지 않아 녀석들의 몸통 절반 이상이 수면 위에 솟아 나와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지 푸킁, 크힝거리며 느긋하게 반신욕을 즐기는 모습이다.

몇몇은 넓적한 꼬리로 연못 바닥의 진흙을 퍼 올려 물 위에 드러난 몸에 바르기 시작한다.

“저렇게나 좋아할 줄 몰랐는데. 집에 돌아가면 좀 큰 연못을 만들어줘야겠네.”

갸르르르르르.

만족스럽다는 듯이 간혹 목 울음을 내는 녀석을 구경하다가 미호를 돌아봤다.

미호는 오늘도 에리와 카라에게 휴대폰으로 이것저것을 보여주며 뭔가를 가르치고 있었다. 둘을 만난 뒤로 부쩍 나와 놀아달라며 보채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조금 쓸쓸한 기분이다. 딸이 다 커서 친구들이랑만 노느라 아빠한테 관심을 안 보여주는 느낌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동생 같다던데여?=

“동생?”

=넹. 본능적으로 돌봐줘야 할 동생 같은 걸로 느끼나 봐여.=

동생이라… 동생에게 사회성을 가르쳐주다 보면 자신도 사회성이 늘어날 테니 딱히 나쁜 일은 아니겠군.

내 몸을 정글짐 삼아 오르락내리락하며 노는 암흑이의 발을 잡고 거꾸로 매달아버리니 꺄르륵거리며 바동거리기 시작한다.

그 순간 인증기에 전화가 온 것을 확인하고 연인들인가 싶어 얼른 인증기를 켰다.

“…누구지?”

헬머 에지스? 통화요청 화면에는 처음 보는 사람과 처음 보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아니, 완전히 처음은 아니고 이름이랑 얼굴이 언제 한번 본 거 같은데…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는 걸 봐서는 능력자가 되기 전에 봤었나?

그런데 내가 능력자가 되기 전에 외국인을 만날 일 같은 게 있었을 리 없는데?

누군지 몰라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통화 연결을 눌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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