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60화 (460/517)

00460  또 다른 최고위 이형종.  =========================================================================

선택받지 못한 스케일러들이 어슬렁거리며 허니콤으로 돌아가는 동안 깨끗하게 씻겨진 독악이의 머리통 위에 앉아 인증기에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수송기가 올 때까지 이거나 봐야지.

인증기에는 [국가 비상사태 발생으로 인한 긴급 소집 명령서]라는 제목으로 안부와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글로 시작된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해있었는데, A4용지 한 장을 빼곡하게 채울 수 있을 내용의 소집 알림이었다.

끝줄에는 레이드 팀 소속 능력자는 즉시 레이드 팀에 합류한 뒤에 이동할 것. 이라고 적혀있고 무소속 능력자는 지역별 거주지에 따라 통영시, 거제시, 부산시의 소집 장소로 4시간 안에 도착하라고 나와 있었다.

한마디로 이 메시지를 받는 즉시 지정 장소에 모이라는 말이다.

등급 고하를 가리지 않고 모이라는 내용에 바로 이동하라는 말을 봐서는 쓰시마… 대마도? 대마도를 박살 내고 있는 녀석이 언제 한국으로 넘어올지 모르니 최대한 빨리 능력자들을 모아 방위선을 완성할 생각인듯했다.

메시지를 확인 중에 혜령이 이모한테서도 전화가 왔는데, 대마도에 이형종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했다며 부디 몸조심하라는 걱정이 물씬 담긴 말을 건네길래 혜령이 이모도 타국에서 몸 상하지 말고 건강하게 돌아오라고 안부를 전했다.

전화를 끊고 힐끔 아래를 내려다보니 히아리드는 곱게 서서 마치 해바라기처럼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조금만 멍청했으면 "이 세상 여자는 다 내 꺼!" 하면서 무한의 정력킹이 되어서 하렘을 만들었을 텐데 말야. 생각이 많으면 여러모로 손해 보는 거 같아. 그렇지?”

크릉.

독악이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중얼거리니 녀석은 콧김을 킁 내뿜으며 고개를 살살 끄덕였다.

기다린 지 30분 정도 흘렀을까, 어디선가 고오오오오…. 하는 대기가 묵직하게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점점 커지는 소리에 주변을 살피니 인천 쪽 하늘에서 새카만 비행기 하나가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저게 수송기인가? 소리만 들어서는 엄청 클 거 같다.

크샥?!

그런데 아까부터 보란 듯이 박쥐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을 날아다니던 윙 바이퍼가 이곳을 향해 날아오는 비행체를 발견하더니 적대감을 보이기 시작하길래 혹시나 녀석이 비행기를 공격할까 봐 미리 한 마디 해주었다.

“적 아니니까 공격하지 마라.”

샤앗.

알겠다는 듯이 짧게 소리 지른 녀석은 제자리에서 활공하며 수송기가 다가오길 기다렸고 스케일러들도 생전 처음 들어봤을 중저음의 비행기 소리에 흥미를 보이며 서쪽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호하고 히아리드는 왜 안 와? 보낸 지가 한참 전인데… 공간 지각으로 뭘 하고 있나 살펴보니 미호의 키만 한 캐리어에 소피아의 도움을 받아 나들이옷이며 속옷에 수건 같은 생활용품에 미호가 좋아하는 과자 같은 간식거리를 바리바리 싸고 있었다.

“놀러 가는 거 아닌데 뭐 저리 많이 챙기냐….”

그나저나 수한과 소피아는 비상소집에 안 걸렸나? 누나처럼 수도 방위 임무인가.

-이거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주인님은 며칠 입을 옷만 챙기랬는데.-

-어머~ 미호 양? 긴급 소집은 운이 좋으면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수 있지만, 재수 된통 걸리면 한 달, 두 달 동안 죽치고 있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니 준비할 때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기는 게 좋아요.-

음. 재수 없으면 기약 없이 대기해야 한다고? 그건 마음에 안 드는 소식인데. 뭐 오래 기다려야 한다 싶으면 그냥 날아가서 작살내버려도 되는 일이니까.

-그런 거야?-

-그런 거에요. 대형 비행기 엔진음이 어렴풋이 들리는 걸 보니 수송기가 오고 있나 보네요.-

수송기가 가까워지니 저택 안에서도 수송기의 엔진 소리를 들었는지 소피아가 캐리어의 지퍼를 올리고 미호에게 손잡이를 넘겨주며 말했다

-자! 준비 끝났으니 들고 얼른 주인님께 달려가세요.-

-웅. 고마워.-

-후훗. 별말씀을.-

미호가 자기 키만 한 캐리어를 가지고 돌아올 무렵에는 수송기의 시커먼 모습이 확실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이윽고 수송기는 정원에 도착해서 허니콤 주변을 돌다가 천천히 하강하는데, 수직이착륙기라더니 헬기를 베이스로 비행기의 특징도 붙여놓은 모습이다.

몸체는 헬기와 비행기를 반반씩 섞어놓은 형태다. 동체의 좌우에 붙은 날개에는 여섯 개의 대형 엔진을 달고 있었고 동체의 윗부분에는 거대한 프로펠러 두 개가 붙어 있었다. 저게 동축반전 로터라고 그랬지?

어마어마한 바람을 일으키며 정원에 착륙을 시도하는 수송기는 저택 본체와 비슷할 정도로 엄청나게 컸다.

군용 작전기로만 쓰일 거 같은 비주얼인데 어디서 수배한 것인지, 참 누나의 능력은 대단한 거 같다.

스케일러들은 무지막지한 크기와 소음, 광풍을 일으키며 천천히 하강하는 수송기를 고개를 들거나 상체를 일으키고 구경하다가 수송기가 인근에 내려앉으니 슬금슬금 다가가기 시작한다.

프로펠러가 회전을 완전히 멈췄을 땐 스케일러들은 수송기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구경 중이었는데 동체의 후미의 육중한 해치가 천천히 열리니 날카로운 기계 소리에 반응한 스케일러들이 그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미호는 구경하러 안 가냐?”

- 시끄럽기만 하구 싫어.

휘날리던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다듬던 미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하는데, 수송기에는 정말 흥미가 없어 보인다.

난 얼토당토않게 크고 새카만 기계를 보니까 난 살짝 마음이 들뜨는데 이 녀석은 자기도 여자라고 저런 기계 같은 건 관심이 없는 거 같다.

옆에서 함께 보고 있는 히아리드도 호기심 같은 건 없어 보이고 암흑이는 아예 관심 밖인지 시끄럽다는 표정으로 히아리드의 가슴골 사이에 파묻혀서 졸고 있었다.

얼마 뒤 집채만 한 후면 해치가 완전히 열리고 그곳에서 시커먼 파일럿 비행 슈츠를 입은 단정한 머리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파일럿 슈트를 입은 남자는 해치 앞에 적당히 간격을 두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스케일러들을 발견하곤 흠칫 놀라더니 머뭇거리면서 좀처럼 밖으로 발걸음을 떼지 못하길래 내 쪽에서 먼저 다가갔다.

“어, 아아! 여깁니다! 여기요!”

스케일러들이 좌우로 물러나며 길을 만들어주는 사이로 지나가고 있으니 뒤늦게 날 발견한 남자는 무인도에서 지나가는 배를 본 조난자만큼이나 필사적인 모습으로 손을 흔든다. 뭔가 행동이 좀 가벼운 사람이네.

“누나가 보내서 온 사람이에요?”

“엇? 아, 아닙니다. 이번 방위선 구성 작전 본부에서 나온 윤호민 차관이라고 합니다. 정서하 회장님을 작전지까지 모시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회장님.”

파일럿 슈트를 입은 남자, 윤호민 차관은 내가 가까이 붙으니 그제서야 안도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그와 함께 수송기의 1층 격납고 내부로 발걸음을 올리니 현재 돌아가는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대마도에 출현한 최고위 이형종의 존재에 한국 정부는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또다시 고위급 이형종이 출현할 것을 대비해 이번 일을 모범 사례로 삼겠다는 정부는 능력자 연합 한국 지부와 손을 잡고 빠른 대책을 수립 중에 있습니다.”

수립한다고 해도 최고위 이형종이 또 등장했을 때 나 없이는 상대를 못 할거잖아. 그냥 피하는 수밖에 없을 텐데 대책을 세운다고 뭐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그건 윤호민 차관도 이해하고 있는지 멋쩍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었다.

“물론 최고위 이상이 등장하면 그것도 소용없는 일이지요. 때문에 정부에서는 이번 작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로 정서하 회장님을 꼽았습니다. 회장님께서 계시다면 위험은 최대한 줄인 채 모범적인 실용 샘플 현안을 수집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어떤 대책인데요?”

“일차적으로 고위급 이상의 이형종 출현 시 근방 100km 일대에 사는 시민들을 모두 소개하는 것입니다. 현장에는 이미 주민들의 소개작전이 시행되고 있을 겁니다.”

난 또 군인들이랑 능력자만 전방으로 내몰아놓고 끝이라고 하는 건 아닐까 했는데 해당 지역 주민들도 모두 피난시키고 있다니, 그건 다행이군.

“현명하네요. 최고위 이형종의 전투 범위는 좁지 않으니까요. 거기다 위상력 감지 범위도 15km니까 그만하면 충분하겠네요.”

“으, 으음. 최, 최고위 이형종의 감지 범위가 15km나 된다는 겁니까….”

“네. 어쨌든 바로 이동해야 하죠? 저 녀석들을 이대로 태우면 되나요?”

“어, 옙. 물론입니다.”

위상력 감지 범위가 15km라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것도 잠시, 내 이야기에 차관은 뒤에 서 있던 보좌관들에게 이형 몸을 고정시키기 위한 로프등을 준비하라길래 필요 없다고 했다. 저 녀석들이 몸을 묶이는걸 좋아할 거 같지 않고 스스로도 몸을 지탱할 수 있을 테니까.

“바닥에 돌기가 많으니 그걸 잡고 충분히 버틸 거에요. 히아리드, 미호. 애들한테 차례대로 올라타라고 해.”

=예, 서하님.=

- 응!

뒤따라 들어오며 수송기의 내부가 신기한 듯 둘러보는 둘에게 명령을 내리자 히아리드가 되돌아 나가서 스케일러를 한 마리씩 차례차례 불러 수송기 내부에 자리 잡게 했다.

윤호민 차관은 미호와 히아리드의 명령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수송기 내부에 올라서는 스케일러들을 무서운 듯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들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통화를 한다.

“예, 예. 최고위 이형종의 인식 반경이 15km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그랑 블루 회장께서 직접 언급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흠. 그러고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이형종 관련 지식은 고위나 최고위에 편중되어있다. 고위급 이형종이야 최상위 클래스의 레이드 팀에서는 어느 정도 자료를 확보하고 있겠지만, 최고위급에 대한 정보는 이무기나 죽음의 기사처럼 몇몇 희귀한 개체의 극히 미약한 정보를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없을 거다.

언제고 모아서 정부에 알려주는 게 좋으려나?

차례대로 수송기에 올라탄 스케일러들이 제각기 편한 모습으로 앉자 윤호민 차관은 조종실로 가서 조종사에게 출발을 명령했다.

꾸웍. 크어엉. 크르륵. 샤아악.

후면 해치가 덜컹하더니 점점 올라오기 시작한다.

“어, 문 닫힌다. 히아리드는 얼른 나가 봐. 나중에 전화할게.”

=네. 몸 조심히 다녀오시길.=

“그래그래.”

자기 가슴골에 파묻혀있던 암흑이를 들어 나에게 건네준 히아리드는 사뿐히 날아올라 천천히 닫히고 있는 해치 밖으로 날아가 버렸고 수송기는 얼마 안 있어 쿠르릉 하는 진동과 함께 천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넓진 않지만 그렇다고 좁은 곳도 아닌데 빛이 차단되고 수송기의 프로펠러가 돌기 시작하면서 엔진 소리가 웅웅거리며 기체 안으로 밀려드니 여덞 마리의 스케일러들은 심기가 사나워지는지 날카로운 울음을 내기 시작한다.

갸르릉. 크쉬이이…. 푸르륵. 개골개골 골.

“불편하겠지만 도착할 때까지 말썽 피우지 말고 좀 참아. 날뛰었다간 수송기가 폭발해서 너희들만 수 킬로미터 아래로 추락할 테니까. 알겠지?”

좁다는 듯이. 불편하고 숨 막힌다는 듯이 울어대는 녀석들을 다독이니 내 말을 철썩같이 잘 듣는 녀석들은 금방 얌전히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특히 윙 바이퍼는는 가장 앞에 자리 잡고 똬리를 튼 채 보좌관들을 뱀 특유의 찢어진 눈동자로 빤히 바라보는데, 보좌관들은 뱀 앞에 선 개구리처럼 굳어서는 도망도 못 가고 벌벌 떨고 있었다.

“괜찮아요. 물지 않아요.”

“…….”

남녀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는 보좌관들은 내 말도 들리지 않을 만큼 무서운가 보다. 하긴 일반인들인데 이형종의 기세를 감당하긴 힘들겠지.

기장에게 출발을 명령하고 돌아 나온 차관도 스케일러들의 심기 사나운 울음 듣더니 안색이 살짝 창백해져 있었다. 하지만 차관이라는 직위는 주사위 던져서 얻은 게 아닌지 굳어버린 보좌관들과는 다르게 애써 두려움을 떨쳐내려는 듯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입을 연다.

“정말… 이형종을 길들인 뒤 부대를 만들어 활용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저 미국조차 성공하지 못하고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을 내린 일인데 이렇게 현실화시키신 것은 그야말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법한 일입니다. 이렇게 이형종을 이형종으로 제압하는 것은 이이제이의 모범적인 사례로써 이형종의 위협에 노출된 많은 나라가 크나큰 관심을 보일 것입니다.”

주절주절 말을 하는 게 이제 보니 차관도 반쯤 정신 나간 거 같다. 이대로 계속 뒀다간 미쳐버릴지 모르니 딴 데 가 있으라고 해야겠다.

마침 수송기는 2층 구조로 되어있어서 1층은 격납고로 쓰고 있었고 2층은 군인들을 수송하는 데 쓰이는지 비행기처럼 좌석이 늘어져 있으니 2층으로 올려보내면 되겠다.

“됐어요. 옆에 있어 줄 필요 없으니 위에 올라가서 쉬세요.”

“예? 아, 아니 그럴 필요는….”

“얘들 모두 고위급이라 녀석들이 풍겨대는 기세를 정면으로 계속 받다간 미쳐버릴지 몰라요. 지금도 안색이 새파란데 얘들 앞에서 소집지에 갈 때까지 버틸 수 있겠어요?”

“…….”

내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차관을 억지로 등을 떠밀자 "이, 이러면 안 되…는 데." 하면서 주춤주춤 걸음을 옮긴다. 그게 내 귀에는 좀 더 밀어달라는 걸로 들렸다.

“저도 좀 있다 올라갈 거니 먼저 올라가 있으세요.”

보좌관들은 버티지 말고 얼른 올라가자고 눈빛으로 호소하고 있었고 차관도 내 말을 듣고 그럼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아… 짜증 난다.

“이미 SNS상에서 굉장한 이슈가 되고있는 만큼 저도 관심이 있었습니다만, 직접 본 감상은 위압감이 넘치다 못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정도의 강력한 소대였습니다. 어떻게 이형종을 길들일 생각을 하셨는지, 저로서는 상상도 못 할 파격적인 행보에는 정말 감탄밖에 나오질 않는군요! 현실상 최고위 이형종을 홀로 쓰러트릴 수 있는 위대한 레이더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못내 자랑스럽습니다. 게다가 최고위 이형종을 상대할 수 있는 이형종 들이라니! 그것도 열여덟 마리나!!”

수송기가 이동을 시작할 때 눈치 챘어야 했는데… 20분째 내 앞에서 촉새처럼 떠벌이고 있는 인간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윤호민 이 인간은 눈치도 없는지 짜증 난다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도 내 맞은편에 앉아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아부도 좀 눈치껏 해야지 듣기 싫어하는 사람한테 하는 아부는 욕밖에 안된다는 걸 이 사람은 모르는 건가?

영은이가 보낸 사람이라서 가능한 한 좋게 대해주려고 했는데…

차관의 좌우 좌석에 앉아있는 보좌관들은 내 심기가 불편해졌다는 걸 눈치챘는지 아까보다 더 새파래진 안색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런 보좌관들에게 잠깐 잠깐씩 매서운 눈빛을 보내면서 저 인간 주둥이 좀 닥치게 하라고 신호를 보내줬지만, 그들은 급수가 낮아서 그런지 차관에게 어떻게 말도 걸지 못하는 답답한 모습만 보였다.

참다 못하고 좀 그만하라고 입을 열려는 찰나, 옆에서 듣다 못한 미호가 짜증을 부리며 암흑이를 집어서 윤호민 차관의 얼굴에다 집어 던져버린다.

- 이 촉새야! 시끄러워!

철퍽! “크풉!” =그아앙?!=

내 무릎 위에서 엎어진 채 고롱거리며 잘 자던 암흑이에게는 난데없는 봉변이었을 거다. 차관의 얼굴과 정통으로 부딪친 암흑이가 튕겨 나오며 비명을 지르고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길래 잽싸게 손을 뻗어 녀석을 받았다.

- 인간! 말이 너무 많아! 조용히 해!

“으, 윽. 죄, 죄송…!”

안전띠를 매고 투박한 좌석에 앉아있던 미호는 여우 귀를 뾰족이 세우고 성질이 잔뜩 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뾰족한 목소리로 인간이 왜 그렇게 가볍고 무게감이 없냐고 미호에게 구박당하는 윤호민 차관은 무척이나 억울한 표정을 지었는데, 자신의 얼굴에 부딪혔다고 몸이 더럽혀졌다면서 징징거리는 암흑이의 말에 한 번 더 구겨져 버렸다.

그제서야 머리 아프게 하는 수다가 멈춰서 한숨을 쉬고 징징거리는 암흑이를 쓰다듬어주며 파리한 안색의 여자 보조관에게 물었다.

“앞으로 계획 같은 건 있나요? 있다면 어떤지 좀 듣고 싶은데.”

“아, 그건 제가 설명을….”

미호에게 구박받던 윤 차관은 내가 보좌관에게 말을 거니 바로 날 돌아보며 입을 열려고 하는데, 나와 미호가 동시에 사납게 노려보자 찔끔하고 입을 다물어버린다.

“…이름이 어떻게 돼요?”

“천, 천소인 재해대책본부 과장입니다.”

“이후의 일정을 알고 있나요?”

“알…고 있습니다.”

대답하면서 옆자리에 앉은 차관의 표정을 힐끔 살핀다.

“알고 있는 걸 요약해서 좀 알려주세요.”

“예. 그, 그럼 알려드리겠습니다. 현재 수송기는 경상남도 창원시의 대책 본부로 향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거제시, 통영시, 창원시, 김해시, 부산광역시의 주민 대피 작업은 민관군의 협조하에 진행 중에 있습니다. 정부는 자정을 기해 데프콘 2를 발령키로 하였습니다. 현재 지역 방위 임무를 맡은 소규모의 능력자를 제외한 전원이 경상남도의 거제시와 부산시, 통영시에 집결 중에 있으며 그랑 블루 회장님께서는 창원에 도착 직후 현장 책임자와의 간단한 대면식을 치른 뒤 수생 공룡 종, 코드 네임 공하蚣瑕의 움직임에 대비해 창원 시내에 머무르시게 됩니다.”

파리한 안색이지만 허리를 쭉 펴고 꼭 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똘망똘망하게 설명해준 여성 보좌관은 더 궁금한 게 있냐는 듯이 날 똑바로 바라봤다.

능력자들을 통영과 거제와 부산에 분산 배치하고 대책 본부가 있는 창원에는 나 혼자 보낸다는 건… 이래서 영은이가 나한테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 건가 보다.

거제와 부산, 창원 세 곳의 침투 예상 지점을 산출해놓고 기동성이 높은 내가 중심을, 능력자들이 좌우를 맡는 형식으로 말야.

…그러고 보니 아래층에서 불편한 표정으로 웅크리고 있는 스케일러들이 생각났다. 녀석들은 어디서 지내는 거지?

“저야 아무 데서나 지낼 수 있지만 스케일러들은 어디서 지내요?”

“창원에는 넓은 공원이 많이 있습니다. 스케일러 여덟이 불편함 없이 머무를 장소는 많고 식사 지원도 예정되어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려니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차관도 뭔가 말을 하고 싶은지 입이 근질근질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대로 입을 열게 놔두면 또 떠벌떠벌거릴거 같아서 다시 째려봐 입을 다물게 만들고 생각에 잠겼다.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하다. 작년 말에 있었던 최고위 이형종, 블레이드 플라이어의 등장은 납득할 수 있다. 바다라는 드넓은 공간에 오랜 기간 살아오며 위상력을 농축시켜왔을 테니까.

하지만 이번에 등장한 공하라고 부르게 된 놈은 난데없이 대마도 본섬의 내륙에서 등장했다고 영은이는 말했었지.

갑작스럽게 최고위 이형종으로 진화했을 리는 없을 테니 지금까지 섬에 숨어있었나? …섬에 숨어있다가 나타났다고 보기엔 뭔가 석연찮은 기분인데.

나중에 좀 알아봐야겠다.

============================ 작품 후기 ============================

다음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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