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59 또 다른 최고위 이형종. =========================================================================
알케마의 알의 상태를 체크해놓고 이번에는 알케마의 상태를 체크하러 가기 위해 정원으로 나왔다.
저번에 인큐베이터를 살 때 함께 세그웨이라는 걸 알게 돼서 충동구매를 해버렸는데, 승용감이 어떤지 궁금하다.
푸른색 공간의 벽을 아주 얇고 길게 펼친 뒤 그 위에 올라타서 세그웨이를 꺼냈다. 세워뒀을 땐 앞으로 쓰러지려 하더니 올라타니까 균형이 딱 맞군.
위이이이이이잉….
시동을 걸고 푸른색 공간의 벽으로 만든 도로 위를 움직여보니 생각외로 빠르고 가만히 서 있어도 이동할 수 있다는 게 편하긴 한데…….
뭔가 좀 부족한걸.
살 때는 되게 신기해 보여서 샀는데 막상 타보니까 별거 없다. 시판되는 일반인용이 아니라 능력자용이라서 일반 세그웨이의 5배 속도에 이형종의 부산물로 만든 동체에 배터리도 위상 에너지 패널을 사용해서 거의 반영구적이긴 한데 5천만 원이라는 가격에 비교하면 그다지 쓸만한 거 같진 않다.
뭣보다 푸른색 공간의 벽으로 세그웨이가 달릴 길을 만드는데 드는 TP도 적은 숫자가 아니고.
이렇게 깔끔한 푸른색 공간의 벽 도로가 아닌 일반 도로의 승용감은 어떨까 싶어 정원 내 도로에 내려서서 다시 타봤는데, 이번에는 노면의 굴곡에 덜컹거려 느낌이 엉망이다.
친환경을 위해 돌로 포장했지만, 노면을 최대한 매끄럽게 다듬어놨다. 하지만 속도가 속도다 보니 자그마한 요철에도 덜컹거리며 뛰어오르기 일쑤다.
결국, 조금 큰 요철에 걸려 1m 가까이 튕겨 올라갔다가 착지한 뒤에 세그웨이는 아공간에 집어넣고 달려서 연못으로 향했다.
중간에 허니콤을 지나가는데 커다란 환호성이 들리길래 소리가 들려온 쪽을 보니 회복 능력자들이 푸른색 공간의 벽으로 만들어둔 대련장 안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스케일러들을 보며 환호를 하고 있었다.
방금 환호성은 스케일러 10호인 날개 달린 표범 무늬 뱀, 윙 바이퍼(그랑 블루 소속 회복 능력자들이 지어줬다.)가 3호인 수컷 이구아나에게 조이기 공격을 들어가자 나온 함성이었다.
조이기 공격이나 꼬리치기, 스프링처럼 몸을 웅크렸다가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는 모습과 하늘을 날아다니며 온몸을 채찍처럼 휘둘러 치며 공격하는 화려한 쇼맨십에 능력자들은 저 녀석을 특히나 좋아했다.
미호도 암흑이와 히아리드, 에리와 카라와 함께 이형종 들의 격투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좀처럼 대련장에서 떨어지지 않는 걸 보니 저런 격투가 꽤 마음에 든 거 같다.
흠. 모레 입장할 때 프랑은 못 데려갈 테니 이번에는 미호랑 암흑이를 데려갈까?
암흑이도 백청의 저주도 완전히 벗어났으니 이제 괜찮겠지?
몸에 칭칭 감긴 윙 바이퍼의 조르기 공격에 수컷 이구아나는 결국 못 버티고 앞발로 바닥을 탁탁 내려쳐서 항복을 표시하자 윙 바이퍼는 기세가 한껏 올라 코브라처럼 상체를 일으키고 두 날개를 쫙 펼쳐 으스대는 퍼포먼스를 보인다.
우와아아아아!!
이형종과 인간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함성을 들으며 알케마가 쉬고 있는 연못가 1층 주택에 들어섰다.
=…주인님.=
침대에 엎어진 채 늘어져 있던 알케마는 내가 들어서는 걸 보고 비틀거리며 일어서려 하지만 영 매가리가 없어 보여 어깨를 밀어 눕혀버렸다.
“됐어. 일어나지 마.”
=죄송합니다….=
알케마는 어제 세 번째 블루 스톤을 섭취했는데, 외형은 이제 눈에 띄게 인간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다만 급격한 변화 현상의 부작용인지 컨디션이 매우 나빠 보인다.
“몸은 어때?”
=몸에 열이 많이 납니다. 머리도 울렁거리고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알케마의 중얼거림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으며 공간 지각으로 녀석의 몸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펴봤다.
내 TP가 이형종의 체내에서 응축된 블루 스톤을 세 개째 섭취한 알케마의 변화는 몸통과 허벅지 중간, 팔뚝 중간까지만 일어나고 있었다.
눈에 두드러지는 변화는 역시 피부 비늘이 사라지고 있는 거다. 공간 지각으로 살펴본 알케마의 몸은 비늘이 잔뜩 나 있던 피부가 점점 사람의 그것처럼 보드라워지며 비늘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는데, 머리도 지금은 하관이 약간 길 뿐, 전체적으로는 인간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눈과 코, 입을 제외하면 말이지.
다리도 큰 변화를 겪고 있었는데, 발목 관절이 하나 더 있어 인간과는 다르게 세 번 크게 꺾여있던 다리가 평범한 역관절처럼 변화하고 있었다.
그나마 변화가 없는 부분은 꼬리 정도가 되겠다.
“힘내. 위상력이 적은 현실에 몸이 적응하느라 그런가 본데 조금만 더 참으면 익숙해질 거야.”
=예….=
힐링 터치를 일으켜서 이마를 쓸어주며 조용히 다독여주자 침대에 기절하듯이 풀썩 쓰러진다.
알케마는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중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다. 뭐, 알아도 어쩔 수 없겠지만.
녀석의 몸을 내 마음대로 변화시킨다는 걸 누가 알게 되면 "저런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새끼!" 하면서 욕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할 말은 있다.
녀석은 자신의 종족을 구출해달라는 조건으로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나에게 바쳤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알케마는 노예보다도 한 단계 낮은, 내 소유의 물건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하는 거다!
…물론 조금 미안한 감정은 나도 있다. 완전히 변해버린다면 동족들에게 배척받고 버림받을게 틀림없을 테니까.
그러니 녀석의 몸이 정말로 미호나 히아리드처럼 반인반수로 변한다면 지금처럼 내버려 둬놓는 게 아닌 확실하게 책임질 생각이다.
침대에 엎어진 채 골골거리는 녀석을 두고 한쪽 벽에 업소용 대형 숙성고 세 대를 설치했다. 높이도 높고 크기도 크지만, 집 자체가 알케마의 키(2.8m)에 맞춘 단층집이라 무리 없이 설치할 수 있었다.
아공간에서 숙성고를 꺼내니 알케마는 내가 뭘 하는 것인지 궁금해하는 얼굴로 이쪽을 빤히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완벽하게 설치해둔 숙성고를 열어 안쪽에 싱싱한 고기를 잔뜩 채워 넣고 덤으로 바닷가재 한 마리도 넣은 뒤 문을 닫자 알케마는 힘없는 몸짓으로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숙성고를 살펴본다.
“이건 숙성고라는 거야. 여기에 고기를 넣어두면 썩지 않고 부드럽고 쫄깃쫄깃하게 변하거나 갓 잡은 그 상태를 장시간 유지할 수 있어. 제일 왼쪽에 이건 드라이 에이징이 가능하니까 입맛대로 꺼내먹어.”
=이런 신기한 물건이… 감사합니다. 서하 님.=
이렇게 숙성고를 설치해주는 이유가, 어제 알케마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찾아왔을 때 상해서 구더기가 끓기 직전인 고기를 먹는 걸 보고 깜짝 놀랐었다.
물론 녀석은 이형종이고 반쯤 상한 고기를 먹는다고 탈이 날 일은 없겠지만 스케빈저 입맛이 있는가 싶어 싱싱한 고기가 싫냐고, 그래서 반쯤 썩게 해서 먹는 거냐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하더라.
단지 소식을 하고 식사와 식사 사이의 간격이 긴 편인데 배식받은 고기를 먹고 남겨두다 보니 변해버린다는 말에 업소용 숙성고를 설치해준 거다.
그런데 숙성고를 신기하다는 얼굴로 바라보는 녀석은 자기 몸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는 관심이 없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자신의 몸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아니, 로브를 입고 있어서 손발, 꼬리는 여전히 비늘에 뒤덮여있는 데다 얼굴은 볼 방법이 없으니 모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연못의 수면에 얼굴을 비춰보면 알게 될 테지만 지금은 밖으로 나갈 기운도 없어 보인다.
과연 변화가 어디까지 이어질까 궁금하다. 모레 위상 세계에 입장하기 전에 블루 스톤을 한 번 더 먹여놔야지.
알케마의 등을 두드려주고 쉬라고 해주니 알케마는 냉장고에 넣어둔 최고급 횡성 한우 안심살을 꺼내서 비틀거리며 침대로 걸어간다.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안심살을 뜯어 먹으며 삐죽삐죽한 비늘에 뒤덮인 꼬리 끄트머리를 파닥거리는 걸 보니 식욕은 그대로인 거 같아 보여 다행이다.
생고기를 뜯어 먹는 알케마를 잠시 지켜보다가 집을 나오니 허니콤 방향에서 또다시 함성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누가 이긴 걸까나.
대련장이 훤히 보이는 곳까지 높이 뛰어올라 호박색 공간을 펴놓고 그 위에 앉았다. 대련장에는 미호가 들어가 있었는데 가볍게 몸을 푸는 미호의 맞은편에는 암컷 이구아나가 미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미호가 나서서 저런 함성이 터져 나온 거였나?
-안 봐줄 거야! 각오해!-
프랑과 대련하면서 쌓인 게 많은지 귀여운 얼굴이 조금 사나워 보인다. 그리고 이어진 격투.
미호도 신체 강화 꼬리의 능력만 발현시켜 암컷 이구아나와 육박전을 벌인다. 150cm 정도의 미호와 머리에서 꼬리까지 1,000cm도 넘는 암컷 도마뱀의 격투는 현란함이 보여 눈이 꽤 즐겁다.
잠시 미호와 암컷 이구아나 스케일러의 대련을 지켜보다가 프랑과 화연이가 뭘 하는지 공간 지각으로 찾아보는 순간 처음 듣는 비프음이 귓가를 울린다.
삐 비 빗. 삐 비 빗.
“응?”
어디서 소리가 들린 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인증기가 붙어있는 손목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뭐지.”
팔을 들어 손목을 살펴보니 인증기가 오색으로 알록달록하게 빛나며 아주 미량의 전기적인 자극을 주고 있었다. 전기 자극을 줘서 근육을 움직이는 거였군.
이거 때문에 진동이라고 느낀 거였군.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대련장을 둘러싼 회복 능력자들도 제각기 움직임이 부산스러워지는 게, 자신의 인증기를 살펴보는 거 같다. 그 직후 회복 능력자들이 동시에 허둥거리기 시작하는데 몇 명은 당황을 빠르게 수습하고 허니콤 인근 임시 주차장으로 달려간다.
그 몇 명의 움직임에 허둥거리던 회복 능력자들도 우르르 주차장으로 달려가자 대련장에서 투닥투닥 거리던 미호와 암컷 이구아나도 이상한 분위기에 대련을 멈추고 갑자기 분주해진 대련장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이 느껴져서 나도 인증기를 켜보니 긴급 상황 발생이라는 메시지창이….
띠리리리릿!
메시지를 채 읽기도 전에 영은이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조금 놀라면서 통화를 연결하니 홀로그램 창이 떠오르며 영은이의 굳은 표정을 보여준다.
[그랑 블루 회장. 까치 둘이 발령됐어요. 군에도 진돗개 하나가 발령된 상황이에요. 그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 어? 까치 경보?”
까치 경보라면 그, 자연재해 급의 이형종이 나타났을 때만 발령된다는 그거 아냐? 영은이의 낮고 위압적인 목소리와 표정에 어버버하고 있으니 영은이는 신중한 표정으로 빠르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현재 쓰시마 본섬에서 수상형 이형종이 나타나 파괴 행동을 벌이는 중이에요. 등장한 이형종의 등급은 최고위로 추정. 위성 사진의 판독 결과 수생 공룡 종인 것으로 확인했어요.]
영은이가 존대를 하는 것과 화면에 보이는 영은이의 뒷 배경이 국무회의실인걸 봤을 때 어딘가와 화상통화 중에 나한테 전화한 거 같다.
“이형종이요? 쓰시마 섬이라면 대마도?”
[맞아요.]
공룡 타입은 특히 포악하고 사납다고 알고 있는 데 거기에 최고위가 나타났다고?
“갑자기 그런 놈이 어디서 나타난 거에요? 아니, 나타난 건 둘째치고 일본 섬에서 나타났는 데 왜 제 도움이 필요한 거에요?”
혹시 일본을 도와주러 가라고? 어째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인상을 찡그리고 있으니 홀로그램 창에 보이는 영은이의 표정에 쓴웃음이 드러난다.
[일본 외무성에서 다급하게 외교 채널로 대화를 시도하더군요. 그래서 우리 쪽 외교부 장관이 응대해주며 상황을 알아보니 이형종이 등장한 것을 알아낸 거에요.]
엥? 총리도 아니고 외교부에서 연락해? 일본은 대마도에서 나타난 최고위 이형종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나 보네.
[일단은 이형종이 우리 쪽으로 향할 경우를 대비해 비상 소집령으로 능력자들을 경남 남해안 지방에 모으는 중이에요. 그 이형종의 대응에 그랑 블루 회장도 손을 거들어주었으면 하는 게 회장에게 전화한 이유에요.]
“아, 그런 거라면 문제없죠. 도와드릴게요.”
[고마워요. 회장의 도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이동용 헬기를 준비할 테니 회장의 준비가 끝나는 대로 출발을….]
영은이가 이동해야 할 수단을 설명해주는 도중 한 가지 계책이 떠올라 영은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 잠깐만요. 헬기 말고 대형 수송기를 준비해줄 수 있으세요?”
[수송기 말인가요? 수송기가 왜 필요한 거지요?]
영은이의 반문에 조금 분위기가 어수선한 스케일러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번 기회에 스케일러를 활용해보려고요. 수상형 공룡종 최고위급이라면 상대로 딱 적당하네요. 이쪽도 파충류들이니 물속으로 도망간다 해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고요.”
계속 도망을 시도한다면 공간의 벽으로 가둬놓고 본격 데스매치를 벌여야지.
[아!! 그거 참 좋은 생각이군요. 즉시 준비하겠어요.]
“그럼 저도 준비할게요.”
스케일러를 활용하자는 내 의견에 확연히 기뻐한 영은이는 바로 수송기를 수배해주겠다고하고 통화를 끊었다.
영은이와의 화상 통화를 끝내고 대련장을 돌아보니 회복 포트가 갑자기 도망가버려 스케일러들은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회복 능력자들이 없을 때와 대련장이 없을 때는 대련 금지라고 했었는 데 말을 잘 들어서 다행이군.
회복 능력자들이 없어지자 오늘 대련은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했는지 미호와 암컷 이구아나는 대련장 밖으로 빠져나오더니 치고받느라 엉망이 된 몸을 핥거나 씻기 시작했고 스케일러들도 어슬렁거리면서 허니콤으로 돌아가려 한다.
“잠깐 기다려봐.”
녀석들이 돌아가기 전에 앞에 뛰어내려 멈춰 세웠…는 데 날 본 녀석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알아서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엥? 뭐지?
시키지도 않았는 데 알아서 4열 횡대를 갖추는 녀석들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미호가 엉망이 된 꼴로 팔랑팔랑 뛰어오더니 에헤헤 웃으면서 두 팔을 벌리며 입을 연다.
- 주인님~ 치료해줘~.
…밖에서 친구하고 싸우고 집에 들어온 딸래미를 보면 이런 기분이려나.
하얗고 깨끗한 얼굴은 이곳저곳에 생채기나 멍이 들어있고 하얀 명주실 같은 머리카락은 엉망으로 엉켜있는 데다 꼬리도 몇 개가 꺾여있었다. 옷은 온통 찢어지거나 해어져서는….
조금 속이 상했지만 대련하느라 그런 거니 혼내지도 못하겠다. 에휴.
투덕거렸던 스케일러들도 완벽하게 회복된 모습이 아니라 여기저기 자잘한 상처들이 남아있어서 2단계 힐링 웨이브를 발사해주니 크륵, 그르렁하고 목 울음을 내며 좋아한다.
힐링 웨이브에 완벽하게 회복된 미호가 귀를 파닥거리며 엉키고 성킨 꼬리를 다듬기 시작하자 히아리드는 미호의 뒤로 다가와 빗으로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빗겨주기 시작했다.
그 모녀 같은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완전히 대열을 갖추고 날 빤히 바라보는 스케일러들에게 말했다.
“좀 있다 최고위 이형종을 잡으러 갈 거야. 가고 싶은 녀석은 앞으로 나와…봐.”
앞으로 나오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18마리가 전부 우르르 앞으로 튀어나오는 모습에 입을 다물어버렸다.
최고위 이형종인데도 머뭇거림 없이 나서다니, 미호도 손을 반짝 들며 가고 싶다는 의사 표현을 하고 있었고 암흑이도 미호의 머리통 위에 서서 두 손을 바짝 들고 있었다.
“…수송기가 얼마나 큰 걸 보내줄지 모르는 데.”
서로 가고 싶어 하는 녀석들을 보며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데 때마침 누나한테서 전화가 오길래 정부에서 보내준다는 수송기가 얼마나 큰지 물어봤다.
[언니한테 들었어. 괜히 정부에 도움을 받았다는 모양새를 만들 필요가 없어서 수송기는 거절하고 대신 우리 쪽에서 수배한 초대형 수직 이착륙 수송기를 저택으로 보냈으니까 그곳에 그 아이들을 태울 수 있을 만큼 태워 보내도록 해.]
“알았어.”
[지금 직원들은 출발 준비를 모두 마쳤는데 넌 어쩔꺼니?]
“그래? 스케일러들만 보낼 수 없으니까 난 녀석들이랑 수송기를 타고 갈게.”
[알았어. 그럼 스케일러들하구 같이 이동하도록 해. 화연이랑 프랑은 지금 바로 출발하니 현장에 도착하면 만날 수 있을거야.]
둘 다 간다고? 당분간 서로 떨어져 있자고 한 게 어제였는 데 말짱 도루묵이겠구만.
그래도 프랑하고 화연이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살짝 기분이 좋아진다.
“응. 누나는 안가?”
[난 일단은 회장 대행이란 명목으로 빌딩을 지키고 만약을 대비한 수도권 방위를 맡기로 했어.]
아, 확률은 낮지만, 서울 인근에서 이형종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예비대는 남겨두는구나. 그럼 스케일러도 모두 데려갈 순 없겠네.
가만히 서서 맑은 눈으로 날 바라보는 히아리드를 보며 대충 남아있을 녀석들을 추려냈다. 개구리랑 이구아나, 도마뱀들은 남겨두고 나머지를 데려가야지.
그런데 윙 바이퍼 저놈은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맞나? 잠시간 체공하는건 봤지만 확실히 날아다니는 건 한 번도 못봤는 데.
“야. 너 하늘 날 수 있어?”
쉬아악!
내 물음에 윙 바이퍼는 힘차게 쇳소리를 내더니 표범 무늬가 멋지게 수 놓인 박쥐 날개를 퍼덕퍼덕거리더니 하늘로 날아오른다. 주변으로 온갖 먼지와 풀 조각들이 사납게 휘날리는 걸 보니 기류를 타고 날아다니는 방식이 아니라 힘으로 몸을 띄우는 거 같다.
미호가 인상을 쓰면서 바람을 일으켜 흙먼지를 날려버리니 공중에 좀 떠오른 녀석은 육중한 몸체를 가누며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호명한 녀석들만 출동할 거야. 남은 녀석들은 이곳에 남아서 대기하도록 해.”
내 이야기에 녀석들은 술렁거리며 자기가 빠지면 어떡하나 고민 어린 표정이 됐다.
“일단… 2호 4호 5호 6호 10호 13호 16호 17호. 그리고 미호랑 암흑이, 에리하고 카라. 이렇게 열둘만 데려갈 거야.”
꾸르릉. 꺄우웅. 크오오우….
선택된 녀석들은 꼬리를 붕붕 휘두르거나 우렁차게 울면서 기쁨을 표시하는 데 반대로 선택되지 못한 것들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꼬리를 휘둘러 땅을 퉁퉁 내려치거나 끄웅 거리며 대가리를 숙인 채 애원하는 눈초리로 날 바라본다.
“물속에서 싸워야 할 일이 있을지 모르니 물이랑 친하거나 하늘을 날 수 있는 녀석들 위주로 선발한 거야. 불만 갖지 마.”
내가 덧붙인 설명에 남은 녀석들은 잔뜩 실망한 모습으로 땅에 몸을 뉘어버렸다.
내가 고른 놈들은 혼종인 2호 10호 17호 세 마리 전부와 뱀 타입인 5호와 16호, 개구리 타입인 6호 한 마리랑 악어 타입인 4호와 13호 이렇게 8마리다.
악어인 독악이는 자신의 역할은 집 지키기라는 걸잘 이해하고 있는지 불만없는 표정으로 큰 눈을 끔뻑거린다.
“스케일러들은 수송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히아리드는 수도권에 또 이형종이 나올지 모르니 여기서 기다리도록 해.”
=알겠습니다.=
“미호도 저택으로 가서 소피아나 수한한테 옷가지 챙겨달라고 해.”
- 응!
또 여행간다고 생각하는지 미호는 신나하며 쌩하니 저택으로 날아간다. 그 뒷모습을 보다가 히아리드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니, 아무것도 아냐.”
아, 히아리드하고 미호를 어떻게 해야 하지. 미호의 울음 섞인 호소에 히아리드가 한 말, 거기에 아빠랑 엄마가 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겹쳐지니 진짜 처첩 파벌 구도가 완성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예감이 든다.
…이놈의 예감.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데… 진짜 어쩌지.
말을 꺼내다 말았더니 히아리드의 부드럽고 가냘픈 눈썹이 살짝 위로 솟아오르며 궁금해하길래 별거 아니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 작품 후기 ============================
본능 "덮쳐!"
이성 "안돼!"
본능 "시간 문제잖아! 덮쳐!"
이성 "덮쳤다간 내가 연인들한테 죽을 거야. 안돼!"
- 누군가의 머릿속.t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