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58화 (458/517)

00458  i will find... you?  =========================================================================

내가 식사를 끝내자 이어서 화연이도 식사를 마치고 영은이도, 프랑도, 누나도 차례대로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모두 식사가 끝난 것을 확인한 메이드 누나는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서빙 카트에 접시를 회수하더니 후식을 차려주기 시작했다.

후식으로 나온 각종 망고 디저트를 보니 정말 망고 하나로 많은 요리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앞에 놓인 망고 슬라이스를 포크로 찍어서 입가로 가져가는데 영은이가 치즈 망고 케이크의 한 귀퉁이를 디저트용 스푼으로 자르며 물어왔다.

“그건 그렇고 서하야? 알케마의 알은 어떻게 할 생각이니?”

영은이의 질문에 다른 연인들도 호기심을 보이며 날 바라본다. 며칠간 알을 부화시키기 위한 도구를 준비한다는 건 연인들도 알고 있었는데, 별로 물어보지 않길래 관심이 없나 싶었더니 궁금하긴 궁금했나 보다.

영은이의 표정에서 공적公的인 호기심이 가득 묻어나는 걸 보니 알을 가지고 이런저런 국가적인 실험을 하고 싶은 걸로 보인다.

“요리해서 드실 거에요? 암흑이가 굉장히 맛있을 거라고 하던데.”

프랑은 암흑이에게 귀띔을 받았는지 알의 맛에 대한 호기심을 보였다. 큰 대접 같은 곳에 가득 담겨 나온 생크림 & 망고 믹스에서 헤엄치던 암흑이도 알케마의 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식탐을 보이며 욕망이 담긴 눈으로 날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인큐베이터를 준비하던데 혹시 부화시킬 생각이야?”

누나는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게 알케마의 알을 부화시켜 팔면 돈 좀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은데… 얼마전에도 그렇고 이상하게 돈을 많이 밝히는거 같다. 그러고보니 누나와 단 둘이서 위상 세계를 다녀온 뒤부터 그게 부쩍 심해진 느낌인데.

“누난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이상하게 돈을 밝히는 거 같아.”

“그, 그야 난 레이드 팀의 전체를 관리하는 통합관리부장이잖아. 수입과 지출에 신경 쓰는 건 당연한거라구!”

“…그것도 정도껏 해야지. 내가 돈을 적게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닌데 계속 돈돈돈거리니까 너무 돈만 밝히는 거 같아서 좀 실망스러울 정도야.”

“으, 응?”

한숨을 쉬면서 조금 실망했다는듯이 이야기 하니 누나가 눈에띄게 당황해한다.

돈을 밝히는 게 누나 원래 성격이라고는 생각 안 한다. 아마도 회사 일에 너무 신경을 쏟다 보니 사고가 돈에 좀 물든 게 아닐까? 그거 있잖아, 스톡홀름 증후군. 그런 거랑 비슷한 게 아닐까.

내 이야기에 누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는지 멍한 표정으로 자기 행동을 되짚어보기 시작한 거 같다.

그에 비하면 화연이는… 뭔가 장난삼아 꺼낸 이야기가 현실로 변해 돌아온 사람이 지을법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심란한 표정으로 망고 아이스크림을 휘적거리던 화연이는 뭔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 나는 부화에 반대다.”

“어째서니? 대화도 가능할 정도의 고위 지능체의 이형종 알이니까 이형종의 생태에 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할 좋은 기회 아니니?”

영은이는 화연이의 반대가 의외라는 듯이 망고 케이크를 조금씩 떠먹으며 물었다.

“아니… 저는 별로. 정보 샘플이라면 스케일러들로도 충분하지 않나 싶습니다. 고위 지능체라 하더라도 갓 태어난 이형종의 새끼는 일반 동물과 별 다를 바 없다는 위상 세계 관찰 결과가 있지 않습니까.”

화연이의 께름칙하다는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연인들은 디저트를 먹다 말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프랑은 뭔가를 깨달았는지 핫! 하는 표정을 짓더니 화연이의 의견에 한 손을 보탠다.

“마, 맞아요! 이번에는 알케마의 말도 있었으니 무슨 맛인지 보도록 하죠? 진미 중에 하나라고 했으니 틀림없이 뛰어난 맛을 볼 수 있을거에요. 저도 노력해서 뛰어난 맛을 낼 수 있도록 솜씨를 발휘할 테니까요!”

연구 1표 부화 반대 2표 부화시켜서 팔아먹자 1표인가. 팔아먹자 표는 기권표가 된 거 같으니 결과적으로 부화 1표 부화 반대 2표가 됐다.

이렇게 의견이 갈렸을 때는 역시 공정함을 위해서 다른 선택지를 골라야지.

“알은 알케마가 나한테 준거니까 내 맘대로 할 거야. 연구 거리로 주지도 않을 거고 먹지도 않을 거야.”

내 이야기에 프랑과 화연이는 안색이 눈에 띄게 변하며 안절부절못한다. 그러더니 "이후에 이런 기회가 없을 텐데 먹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래. 먹거나 연구 거리로 제공하는 게 낫지 않겠나? 이 이상 이형종을 늘리는 것도 곤란하고." 하며 어떻게든 부화를 못 시키게끔 날 설득하려 들었다.

“아냐. 기왕 알이 생긴 거, 내 TP에 긴가민가한 효능이 하나 있어서 그걸 확인해보는 수단으로 쓸 생각이야.”

“…그, 그게 뭐지?”

올게 왔다는 모습으로 내 TP의 효능이 뭐냐고 묻는 화연이의 표정에는 불안함이 가득하고 프랑도 '안 되는데…!' 하는 긴장된 얼굴로 내 말을 기다렸다.

“TP에 이형종을 반인半人화 시키는 효능이 있는 거 같아서 그걸 확인해볼 생각이야.”

그리고 나온 말에 화연이와 프랑의 얼굴에는 '망했다.'라는 감정이 드러나더니 체념한 표정으로 눈을 감아버렸다.

식사가 끝나고 4층의 거실로 올라와서 낮에 설치하다 중단했던 부화기 조립을 마저 했다.

수한을 통해 구입한 부화기는 겉으로는 냉장고형 고급 와인 셀러처럼 보인다. 내부에는 선반 같은 구조물이 여러 단으로 구획을 나누고 각각의 선반에 부화시킬 알을 올려두는 형태로 되어있었지만 부화시킬 건 평범한 달걀 같은 것이 아니니까 제일 아래쪽 선반만 남겨두고 모두 치워버렸다.

쓸데없는 선반을 모두 치우니 알케마의 알이 들어가고도 공간이 여유롭게 남는다.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게 홈에 고정해두고 부화기를 살살 흔들어보니 꼼짝도 안 하는 게, 만에 하나 충격을 받더라도 알이 굴러떨어져 깨지거나 하지 않아 보였다.

부화기는 싼값을 주고 산 물건이 아닌 만큼 5층에서 집어던져도 멀쩡할 만큼 튼튼했고 기본적인 기능도 충실하다 못해 완벽해서 온도 조절 기능에 습도 조절 기능이 소수점 두 자릿수 단위까지 조절이 가능한 물건이다.

겉에는 작은 컴퓨터도 달려있어 주변의 습도와 온도, 기후와 내부 환경을 계산해서 부화에 필요한 온도와 습도를 최적화시켜 제공한다고 하니 이 부화기라면 알케마의 알을 부화시키는데 문제가 없을 거다.

이제 알에 TP를 주입해야 할 시간인데… 어느 정도로 주입해야 하지?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중위급으로 분류되는 500 ~ 1,999 사이로 집어넣기로 했다. 과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잖아?

정확하게 1,000 TP만 주입한 뒤에 알의 내부로 푸르스름한 기운이 퍼지다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걸 확인하고 손을 뗐다.

내가 부화기를 만지작거리면서 조립하고 온도와 습도를 세팅하는 동안 프랑과 화연이는 소파에 얌전히 앉아 계속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이상한지 프랑과 화연이를 보고서는 영은이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는 게 귀에 들려왔다.

“…먼저 자리를 옮기지요.”

내가 있는 곳에서는 할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 화연이는 연인들을 데리고 테라스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내게 들릴세라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질문에 대답해준다.

그 내용은 저번 몰파진의 던전을 탐색할 때 프랑과 화연이가 우스갯소리로 내뱉은 이야기였다. 내가 이것저것 오만 것들을 다 주워오다 보니 이러다 용의 알을 구해서 부화시키지 않겠냐 했던 이야기.

거기서 알에 내 TP를 먹이고 부화시켰는데 알고 보니 암컷이었고 인간형이 되어서 나한테 달라붙는 거 아니냐는 내용이었는데 지금 상황이 딱 그러하다는 것.

공간 지각으로 그녀들의 이야기를 훔쳐보고 있으려니 나도 그제서야 그 이야기가 생각났다. 화연이의 말에 부정하지 않던 프랑에게 억울함에 가까운 기분을 느꼈었지.

그런데 화연이의 이야기를 들은 영은이의 표정은 '이런 한심한 것들.' 하는 얼굴이다. 자신의 분신이 이렇게나 멍청했을 줄이야, 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영은이는 소리 없는 한숨을 쉬고 화연이를 보며 물었다.

“그거 의부증 초기 증상이란 거 알고 있니?”

“…예?”

음. 조립이 끝났군. 어디 보자, 사비 종족의 알이 부화하는 데는 온도가 31도가 필요하고 습도는 40% 정도라고 했었지? 부화기, 인큐베이터의 조작 패널에 내가 원하는 온도와 습도를 입력하자 수분 공급기에 수분을 보충하라는 알림창이 떴다.

아공간에서 꺼낸 1등급 식수를 수분 공급기의 구멍에 붓고 있으니 영은이가 프랑과 화연이를 타박하는 모습이 공간 지각에 감지됐다.

“서하가 좀 밝히는 면이 강하긴 해도 다른 아이들에게 눈길을 준 적은 없지 않니? 바로 옆을 봐도 그렇잖아. 소피아와 수한도 밖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미녀의 축에 드는데 그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이 어떠니. 히아리드도 천사 같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만 데려온 지 1년이 지나도록 개인적인 감정을 안 비추는데 너희들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서하를 의심하고 걱정을 하는 거니?”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영은이의 목소리는 작지 않아서 테라스와 거실을 나누는 3중창을 넘어 드넓은 거실의 구석에서 인큐베이터를 손보는 내 귀에까지 쏙쏙 들어온다.

문제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내 양심이 콕콕 찔린다는 사실이다. 설마 모두 알고 저러는건 아니겠지?

…그럴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인큐베이터의 가동 버튼을 누르니 미약한 흔들림이 인큐베이터를 잠시간 감싸더니 이윽고 작동 중인지 아닌지 모를 만큼 고요한 모습으로 인큐베이터로서의 할 일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조작 패널에 [가동 중]이라는 글씨와 내부의 벽면에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아니라면 멈춰있는 걸로 보일 만큼 조용하다.

“그, 그렇다고 해도 남자는 늘상 새로운 것을 찾는 법이지 않습니까. 또한 서하의 주변에 아름다운 여자가 계속 몰리는 걸 보면 불안하지 않습니까? 서하에게 여자가 많이 생겨서 우리에게 관심이 줄어들면….”

“한심하구나. 정말로 한심해. 너희는 그렇게 자신감이 없는 거니?”

한심하다며 혀를 차는 영은이의 모습에 화연이는 눈썹을 찌푸렸고 프랑은 내 뒷모습을 힐끔거리며 조금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영은이는 엄한 표정으로 프랑과 화연이에게 날카로운 일침을 날렸다.

“이런 모습을 보니 너희가 서하의 미래를 망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슨 말입니까!”

“내, 내가? 그렇지 않아!”

영은이의 과격한 발언에 프랑도, 화연이도 발끈하면서 영은이의 말을 부정한다. 하지만 영은이는 한 치도 물러섬 없이 팔짱을 낀 채 도도한 모습으로 말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니. 처음은 남편의 외도를 의심할 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이 악화되면 나중에는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의심하고 구속하려들며 못살게 구는 병적인 증세가 의부증이야. 지금은 단지 서하의 행동에 불안감을 느낄 뿐이지만 그 마음이 심해지면 어떤 행동을 할지 너희는 짐작이 안가니?”

그 말에 할 수 있는 대답이 없는지 프랑과 화연이는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누나는 발코니의 난간에 엉덩이를 기댄채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세 사람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신기한 건 누나도 무언가를 깨달은듯한 얼굴이라는 거다.

누나는 돈을 너무 밝히는 게 이상하다는 내 지적에 한참을 생각하는가 싶더니 거실로 돌아온 뒤로 말없이 가만히 있었는데 지금은 영은이의 말을 듣고 무언가 깨달은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하는 모르는 사람에게는 위선적으로 보일 만큼 비정한 모습과 판단을 보여줄 때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정을 주거나 자신의 사람이라고 여긴 이가 하는 말은 귀담아듣는 게 서하야. 그런데 보통 아는 사이도 아니고 사랑하는 너희들이 구속하려 들면 서하가 어떨 것 같으니?”

프랑과 화연이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머리가 점점 숙여진다. 풀이 죽은 두 사람의 모습에 영은이가 쐐기를 박듯이 입을 열었다.

“너흰 당분간 서하와 조금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게 좋겠어.”

“…….”

“의부증도 배우자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생겨날 수 있는 마음의 병이야. 너희들의 경우에는 너무나도 사랑하는 그이가 다른 여자에게 가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 원인이지. 그러니 단 며칠만이라도 서하와 떨어져서 마음을 다스리고 너희 자신이 얼마나 예쁘고 멋진 여자인지 재확인해보렴. 세상에 너희만 한 여자들이 몇 없다는 자신감을 되찾게 되면 지금 같은 걱정이 얼마나 쓸데없고 하찮은 거였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응….” “…알겠습니다.”

어? 그럼 프랑하고 화연이랑은 각방 쓰게 되는 거야?

이런 내 생각은 너무 얕았는지, 프랑과 화연이는 테라스에서 거실에 있는 내 뒷모습을 한 번 바라보더니 가볍게 뛰어올라 그랑 블루 빌딩을 향해 날듯이 달려가 버렸다.

뭐야?! 각방이 아니라 아예 집을 나가는 거야?! 놀라서 테라스 쪽을 돌아보니 영은이가 누나에게 말을 걸며 들어오는 게 보인다.

“넌 아까부터 조용하구나? 무슨 생각을 하는 거니?

“별거 아니에요. 지금은 해결됐죠. 그보다 언니의 발언에는 약간의 사심이 담겨있었는데 프랑하고 화연이는 의심도 못한 거 같네요.”

“내용이 내용인 만큼 그 아이들로서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항이었으니까. 후후후. 이로써 며칠간은 서하를 독점할 수 있겠는걸~.”

“우와~. 언니 악당 같아요.”

“호호호. 아, 그래도 걱정한 건 거짓이 아니었단다?”

“알아요.”

누나와 영은이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이 다가왔을 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프랑하고 화연이는 갑자기 어디로 간 건데?”

“그 아이들이 약간 의부증 증세가 있길래 치료 처방을 내려줬단다.”

“영은이 목소리가 커서 그건 들었어. 그런데 의부증이라니, 난 전혀 몰랐는데?”

사실이다. 난 그냥 그녀들이 좀 질투하는구나 해서 귀엽게만 보았으니까.

“의부증이 막 남편 휴대폰을 조사하거나 사람을 고용해서 일거투 일수족을 감시하는 그런 거라고 생각한 거니? 그만한 경우는 정말 심각한 의부증이구, 프랑은 자신의 신체적인 점 때문에 자존감이 좀 떨어진 상태에 연이는 프랑의 능력에 약간 자신감을 잃은 상태여서 그걸 회복시켜줄 겸 며칠간 따로 지내보라고 한 거란다.”

“으잉? 난 그런 거 신경도 안 쓰는데 왜….”

“서하 너도 얼굴에 콤플렉스가 있어서 앞머리를 가리고 다니잖아. 이해 안 돼?”

아. 그렇군. 누나가 들어준 예시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그러니 서하도 당분간 그 둘에게 가까이 가지 마렴.”

“알았어. 근데 진짜 욕심 때문에 둘을 속인 거 아니지?”

“호호호.”

어째 너무 좋아하는 기색을 보이는 거 같아서 의심스럽다는 시선을 보내며 물으니 영은이는 까르르 웃으며 대답을 해주지 않고 내 옆에 앉아 내 팔을 끌어안는다. 그러자 영은이의 반대편에는 누나가 앉아 내 팔을 끌어안으며 영은이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언니. 저도 있다는 거 잊지 마세요.”

“어머? 밤은 찐~한 연인들의 시간이란다? 시하는 아직 곤란하지 않겠니?”

“저는 그냥 옆에서 퓨어한 마음으로 함께 코~ 잘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천재들의 대화는 일반인이 듣기에 선문답 같다고 하던데 이 둘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거 같다.

날 사이에 두고 호랑이와 사자가 기 싸움을 하는 것처럼 흉흉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에 오한을 느끼며 공간 지각으로 프랑과 화연이를 찾아봤다.

그녀들은 그랑 블루 빌딩 40층의 펜트하우스에 돌아가 있었는데, 조금 풀이 죽고 우울한 기색으로 텅 빈 거실 한켠의 벽에 등을 기대고 쪼그려 앉아 궁상을 떨고 있는 걸 보니 정말 의부증 증상이었나 싶다.

멀리 가진 않아 다행이지만 저렇게 풀죽은 모습을 보니 조금 마음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도 약간의 결심을 하고 날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두 여자의 허리를 콱 끌어안고 일으켜 세우니 둘은 깜짝 놀라며 내 가슴에 달라 붙어왔다.

“좋아. 프랑하고 화연이가 돌아올 때까진 나도 3층의 내 방에서 혼자 잘 거야. 그러니까 신경전은 그만 벌여. 꼭 살모사랑 몽구스가 싸우는 거 같잖아.”

“앗, 그런 게 어딨니! 간만에 둘이서 오붓한…!”

“둘이 아니라 셋이잖아요! 은근슬쩍 나 빼지 말아요!”

“아휴, 참! 이럴 때가 아니잖니! 서하가 없는 데서 우리 둘이서 뭐하게!”

천재도 스위치가 있어서 스위치를 넣으면 천재 모드가 되고 아닐 때면 푼수가 되는 건 아닐까? 내 선언에 또다시 티격태격하는 누나와 영은이를 보니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라잖아.

다음 날, 4층 거실에서 알의 상태를 공간 지각으로 확인하는 중에 소피아가 보고할 게 있다며 찾아왔다.

“뭔데?”

“우선~ 어제 회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3대 방송국과 3대 언론사에게 초대장을 보냈어요.”

“그래? 언제 오라고 했는데?”

“모레는 위상 세계에 입장하실 거죠? 그래서 내일 오전 10시쯤에 오라고 했어요. 괜찮죠?”

“그래. 잘했어.”

“우훗훗. 그리구 트럼펫 미국 전 대통령의 재산을 모~두 공중 분해하는 데 성공했답니다!”

“응? 아, 벌써 작업이 끝난 거야?”

그러고 보니 그 인간의 일도 있었지? 화연이를 납치하려다가 미국을 말아 드실 뻔 한 트럼펫의 무지막지한 재산을 산산이 조각내라고 시켜놓고 까먹고 있었네.

“유사시를 대비한 유언장도 작성해놓지 않았는지 트럼펫이 식물인간이 되자 모자간에 재산 상속 문제가 크게 터진 덕분에 처리하기가 쉬웠어요. 거기에 실물 자산들이 많아 작업하기가 더 쉬웠구요!”

말하면서 내 옆에 무릎을 세우고 쪼그려 앉는 소피아를 보고 인큐베이터로 다시 시선을 돌렸…는 데 인큐베이터의 전면 유리에 비친 소피아의 치마 속 모습이 자못 충격적이다.

무릎 위까지만 가리는 메이드복을 입어놓고는 무릎을 세운 채 앉은 덕분에 소피아의 다리 사이가 고스란히 유리에 비치는데, 무려 노팬티다.

그곳의 털도 정리했는지 털 한 올 없는 매끈하고 꽉 다문 그곳이 눈에 고스란히 들어온다. 이 아가씨, 그렇게 안 봤는데 엄청난 변태구만….

“보통 그런 인간들 보면 자식이 태어나면 자식 이름 앞으로 이런저런 재산 돌려놓고 그러잖아. 그것들은 어떻게 했는데?”

시선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며 확인한 덕분에 소피아는 내가 자신의 사타구니 사이를 봤다는 걸 눈치 못 챈듯하다. 나도 못 본 척 평이한 어조로 질문을 던지니 무릎을 살짝살짝 움직이며 종달새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보통의 재벌들은 상속세나 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치증가를 이전하는데 그런 교범적인 행동을 그대로 답습한 덕분에 처리가 오히려 쉬웠어요! 부동산이나 건물 같은 건 간단히 주변 시장을 조작하고 그럴듯한 루머를 퍼트려 가치를 대폭락시켰어요.”

“헤에. 루머로 건물이나 부동산 가격을 떨어트리는 건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했어?”

“별거 아니었어요~. 트럼펫이 회장님께 한 짓에 회장님이 이를 갈고 있다는 거랑, 부동산과 건물의 실소유주가 누구인지 알려줬을 뿐인걸요?”

……그걸로 가치가 폭락했단 거야? 대체 내 평판이 어떻길래….

소피아는 자신의 발언이 내 유리 가슴에 격렬한 스크래치를 남긴 걸 눈치 못 챘는지 재잘거리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예술품, 귀중품 같은 것들의 입수 루트를 확인해보니 꽤 불법적인 행위가 많았더라구요. 그것도 싹 모아서 둘로 나눠 불공정 거래 및 불법 거래 품을 빌미로 미국 국세청에 신고를 빙자한 로비를 넣었지요.”

둘로 묶었다고? 왜 하나로 안 하고? 일 처리에 궁금함이 들었지만, 이야기가 끝나면 묻기로 하고 가만히 경청했다.

“처리 과정에 약간 손을 써둔 덕분에 트럼펫 가문의 귀중품과 예술품들은 고스란히 압수당하고 엄~청난 세금 폭탄을 맞았는데, 그 세금을 막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현찰은 모두 써버리게 되었어요. 그 뒤에 두 번째 신고를 해서 가중처벌에 세금 폭탄과 벌금 크리를 맞게 만들었답니다! 현금은 없지, 팔아치울 보물은 빼앗겼고 그나마 남은 부동산은 휴지 조각이고… 결국 빚더미에 앉아 완전히 도산해버렸지요!”

…와. 콤보 넣기 위해서 한 번에 다 신고한 게 아니라 두 번으로 나눈 거였어? 진짜 대단하다.

미국의 재벌 가문 하나를 파멸시켰다는 내용의 이야기지만 자못 담담한 기색이다. 더불어 복숭아뼈를 살짝 덮는 하얀 양말에 검은색 에나멜 단화 사이로 보이는 꽉 조여진 핑크색 살덩이의 모습이 참 눈에 자극적이다.

“그렇게 처리하는데 위상석은 몇 개나 팔았어?”

“다섯 개만 팔았어요. 인건비와 고용비를 제외하고 트럼펫 가문을 도산시키는데 든 자금은 200% 회수했구요. 나머지 이윤은 모두 미국 해당 지역의 자선 단체에 기부했어요.”

“오. 수고했어. 뒷일도 마음에 들게 처리했는걸.”

잘했다며 칭찬해주고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 소피아의 금발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니 얼굴을 발그레하게 물들이며 기뻐한다.

그 뒤에 내가 건네줬던 007가방을 도로 가져와서 나한테 돌려주는데, 열어보니 정말로 다섯 개만 비어있었다. 물론 그 위상석들이 가장 큰 거긴 했지만.

회수한 작업비용은 수한과 소피아가 관리하는 저택 관리 자금에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길래 가방에서 위상석 두 개를 꺼내 소피아의 손바닥 위에 올려줬다.

“이건 잘했다고 주는 성과급. 앞으로도 소피아의 능력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부탁할게.”

“아… 네! 맡겨만 주세요!”

활짝 웃는 금발 처녀의 미소가 오늘따라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TV로 사랑과 전쟁을 보면서 한 생각은 의부증 혹은 의처증은 정말 무서운 거구나 였습니다.

그걸 생각대로 심각하게 그려보려 했더니, 주인공 인성이 완전히 붕괴할 거 같더군요. 중간에 결국 쓰던 거 지우고 주인공의 인성이 유지되는 방향으로 가볍게 써봤는데 생각한 대로 잘 안 나오네요.

역시 이놈의 곰손... ㅠㅠ 아니 곰 머리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