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52화 (452/517)

00452  i will find... you?  =========================================================================

작은 운동장만 한 크기의 순백의 공간 중앙에 몰파진의 던전에서 획득한 금괴와 은괴를 몽땅 쏟아붓고 보석 주머니도 꺼내놓으니 같이 내려온 10명의 신체 강화 타입의 직원이 번개 같은 몸놀림으로 금괴를 쌓아나간다.

그 뒤에는 보석 주머니도 벽에 촘촘히 설치되어있는 내장형 금고에 종류별로 분류해놓는데, 그때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5분도 되지 않았다.

직원들은 정리가 끝나자마자 말없이 허리를 꾸벅 숙이더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먼저 올라가 버렸다.

철컹. 촤라라라라라…. 딸칵. 지이잉. 푸시이익.

4미터짜리 특수 합금으로 이루어진 동그란 금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히자 1차로 누나 몸통만 한 철관이 금고문에서 튀어나와 같은 재질의 벽에 관통되며 고정되더니 다섯 개의 수제 다이얼이 촤르르 돌아간다.

이어서 방범 프로그램이 발동하고 허가받지 못한 사람이 손을 댈 경우 감전으로 인한 쇼크사를 당할 만큼 강력한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내부의 산소를 모두 배출해 만약의 경우, 구멍을 뚫는 순간 무시무시한 역류 현상을 일으켜 침입자를 분쇄해버리는 5중 트랩이 설치된 초대형 금고를 바라봤다.

“이런 걸 잘도 만들어놨네.”

“니가 현실이랑 위상 세계를 오갈 동안 만든 거야. 황금과 보석을 보관하기에는 이런 곳이 최적이거든?”

“그건 그래.”

그랑 블루 빌딩 지하 5층에 위치한 이 거대한 금고는 내부 또한 무척이나 높고 넓어서 던전에서 획득한 금괴와 은괴를 모두 넣어도 넉넉한 공간이 남을 정도였는데, 이만한 크기의 공간이라면 지반의 압력에 무너지거나 탈이 나진 않을까 살짝 걱정이 들 정도였다.

말 그대로 작은 운동장만 한 크기라 그렇지만 누나가 그렇게 생각 없이 만들리는 없을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위상 세계가 통합되면 다른 능력자들도 볼굴에게 노출될 거란 이야기를 들은 누나와 화연이는 할 말을 잃은 채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 화연이는 미루어졌던 일이 있다며 자기 집무실로 사라졌지만, 금고까지 동행한 누나는 말수가 적어진 모습으로 내 옆에 묵묵히 서서 엘리베이터가 다시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말없이 누나와 함께 날 비롯한 몇 명의 수뇌부만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오길 기다렸다가 올라타니 버튼이라곤 하나도 없는 엘리베이터가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약간 묵직한 중력을 느끼고 있으니 누나가 내 옆모습을 힐끔 훔쳐보고서는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발표할 거니?”

“아니.”

“피해가 얼마나 생길지 모르는데도?”

“또 나 같은 사람이 생겨날지도 모르지.”

“그런데도 가만히 있겠다는 거야?”

누난 내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지만 나도 할 말은 있다.

“통합된 세계에는 지성체를 포로로 잡아다가 성노예로 쓰는 악마들이 있으니 위상 세계 진입을 자제하라고 말해봤자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지만 대비는 할 수 있지 않겠니.”

“그놈들은 최하가 고위급 이형종이야. 한 두 마리씩 돌아다니는 것들도 아니고 만나면 죽었다고 봐야지. 그렇다고 본 적도 없는, 만날지 못 만날지도 알 수 없는 이형종이 무서워서 진입하지 않으려는 능력자가 있을까? 일하지 않으면 살인적인 세금을 감당도 못 하는 능력자들이?”

“…….”

“아까도 말했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볼굴에게 납치당해서 희생당한다고 해도 난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나한테 중요한 사람은 내 가족들뿐이니까.”

내 이기적인 이야기에 누나는 시무룩한 얼굴로 입을 다물어버렸지만, 나는 말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아직 정확한 건 아무것도 없어. 내 위상 세계가 근원으로 다른 위상 세계들이 통합되고 있다는 증거도 없고 이런 상황에 괜히 설래발치면 오히려 괜한 의심만 받을 거 같은데, 내 말이 틀려?”

“틀리지 않아….”

“…발표를 하더라도 우리가 직접 하는 쪽이 아니라, 관련 자료를 가진 영국의 등을 떠밀어서 이러이러한 이형종의 관측에 성공했으니 조심하라는 정도만 말해줘도 충분할 거야.”

누나가 시무룩해진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대강 우회적인 방법을 들먹이니 누나는 시무룩한 표정이 조금 펴지더니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능력자들 성질머리에 하지 말란다고 안 할 사람들도 아니구 지진해일은 겪어봐야 무서운 줄 아는 게 인간이니까.”

그러면서 내 앞으로 돌아온 누나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손을 들어내 뺨이며 콧날, 입술을 만지작거리면서 중얼거렸다.

“그랑 블루의 회장이자 세계 최고의 능력자가 되어서 그런지 겨우 1년도 안 됐는데 정말 많이 변했구나.”

“…누나도 영은이가 말하던 왕의 자질 어쩌구라는걸 믿는 거야?”

“조금은? 알고보면 왕의 자질이란 것도 별거 아냐. 권력, 금력, 그리고 무력을 가지고 높은 곳에서 아래를 아울러보며 사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면 다 왕의 자질을 가진 거나 마찬가지니까.”

누나의 표정을 봐서는 그런 게 아닌 거 같은데… 이대로 가만히 놔둔다면 누나 성격에 스스로 움직이면서 이상한 짓을 할지도 몰라. 그러니 이 기회에 확실히 말해둬야지.

영은이의 이상한 소리에 누나마저 감염된 건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누구는 사회적인 위치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마찬가지로 힘과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고 아랫사람을 부린다고 해서 왕의 자질을 가진다는 것도 이해 못해.”

내 입술을 만지작거리면서 뺨을 살짝 붉히고 있던 누나는 내 진지한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 눈을 바라본다.

“만약 그 이야기대로라면 지금 국회의원이나 사회의 각종 인사는 그 위치나 자리에 맞는 성격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잖아? 근데 사회를 보면 어때. 국회의원들은 영은이의 혹독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부정을 저지르고 부패가 끊이지 않아. 재벌들은 자기 배 속을 채우기에 급급하고 보육원의 원장이라는 인간들이 원생들을 성추행, 성폭행하는 시대야.”

“그건….”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건 알아. 하지만 난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어. 나는 영은이가 바라는 것처럼 왕의 재목이 절대 아니야. 지금도 혼자 있을 때면 생각해. 만약 화연이와 영은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난 지금쯤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누나는 계속되는 내 이야기에 살짝 당황하고 경악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능력은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거야. 사냥으로 돈도 많이 벌고 있을 것이고, 그 돈으로 내 가족들만 챙기면서 거대한 땅을 사고 커다란 집을 짓고 사고 싶은 거 막사고 하고 싶은 일도 내 맘대로 하고 다니고 있겠지. 물론 부모님하고 누나가 있으니까 내가 돈의 노예가 되어서 방탕하게 사는 건 가만두고 보지 않을 테니 적당히 사회에 어느 정도 환원도 하고 거지에게 적선하는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못사는 사람들도 도와주고 그렇게 지내고 있을 거야.”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확고한 눈빛으로 누나에게 보이며 말했다.

“그게 끝이야. 난 무척 이기적인 놈이라서 내 가족들을 제외한 연고도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배려해주는 짓 같은 건 못해. ”

“…….”

“그저께 던전 탐사 중에 전투 3팀의 박윤호 팀장하고 화연이 사이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어. 박윤호 팀장이 내 능력을 보고 나라면 지구도 살 수 있겠다고. 그 말에 화연이는 이렇게 대꾸했었어. 나는 귀찮아서 그런 일은 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화연이가 정확하게 본 거야. 남들이라면 그만한 힘과 돈과 권력을 가졌으면 남들 위에 서서 군림해보기도 하고 그래야지 능력이 아깝다.'라고 하겠지만.”

콧바람을 내뿜으면서 말을 이었다.

“휴식을 집 밖에서 활동적으로 하면서 쉬는 사람이 있다면 집 안에서 조용하게 지내야 휴식이 되는 사람도 있잖아?”

내 긴 이야기를 들은 누나는 그래도 포기를 못 했는지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나는 얼굴로 내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왕이라는 건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고 챙겨주는 그런 대단한 게 아니야. 인간은 종족적으로 왕이라는 개체가 존재하지 않는 종이잖아. 단지 왕은 일정한 분야나 범위 안에서 최고인 사람, 으뜸인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일 뿐인데.”

내 손을 잡고 손등을 쓰다듬어주는 누나의 이마를 보고 있으니 차분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하 니 말대로 내향적인 사람이 있으면 외향적인 사람도 있듯이 왕이 체질적으로 맞는 사람이 있겠지만 맞지 않는 사람도 있어. 그렇다고 흑백논리로만 모든 걸 따질 수는 없는 것처럼 겉보기에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왕이라는 지위가 어울리지 않고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라도 막상 해보면 다를 수 있잖아?”

“그건 맞아.”

“누나가 보라고 권해줬던 삼국지 생각나? 100사람이 있으면 100가지의 생각이 있고 100가지의 삶이 있잖아. 세상에 유비나 조조, 손권 같은 사람이 있으면 여포나 하후돈, 제갈량 같은 사람이 있는 법이야. 삼국 시대의 뛰어난 장수들을 수없이 거느린 촉의 유비를 봐. 누구나가 삼국을 통일할 기반이라고 생각했았지만 결국은 위나라가 삼국을 통일했잖아. 일이라는 건 직접 해보기 전엔 어떨지 모르니까 한 번쯤은 해보는 게 어떨까?”

“무슨 왕이 해보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그런 거야? 지금은 23세기라고.”

“알게 뭐니? 돈이랑 힘이랑 권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왕이 될 수 있는 세상인데. 아니, 오히려 지금이라서 더욱 왕이 될 기회가 크단 말이야.”

“아~ 몰라 몰라. 안 해. 그런 건 나랑 안 어울려.”

“얘는!”

계속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싫어서 어깃장을 부리며 대화를 맥없이 끊어버리니 누나가 발끈하면서 뾰로통한 얼굴로 내 옷깃을 잡아채 온다.

“언제까지 하고 싶은 것 만 하고 살 거야? 이러다가 나나 화연이한테 문제가 생겨서 더이상 회사 일을 못하게 되면 어쩌려구 그래? 너두 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하는 법을 배워야지!”

“일은 무슨 일! 문제 같은 게 생길 거 같으면 내가 모조리 박살 내버릴 거야!”

“아이참!”

말이 통하지 않는다 여기는지 가슴을 콩콩 두드리며 답답해하는 누나의 어깨를 낚아채니 움찔하고 놀라면서 주춤거린다.

“힘을 가지고 있으면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건 누나도 아빠한테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아왔지? 그 생각에는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어. 그래서 난 이제부터 최대한 빨리 볼굴과의 결착을 맺을 생각이야. 그래야 볼굴에 의해 막대한 피해가 생기기 전에 정리할 가능성이 커지니까.

현실에서 레이드 팀을 이끌고 연구소를 만들어 이형종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산진순도를 통해 백청의 부산물로 무구를 만드는 건 전부 누나한테 맡길 테니까 뒤를 잘 부탁해.”

“어? 야!”

이대로 있으면 누나는 끈질기게 설득을 해올 거다. 내가 중2병에 걸렸을 때처럼 밤낮 가리지 않고 찰싹 붙어서 그러면 안 된다. 착한 아이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행동에 조바심을 내지 말고 웃어른을 공경하고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설득하던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거든.

내가 도망칠 거란 사실을 눈치챘는지 누나가 눈을 크게 뜨면서 손을 뻗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내 집무실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바로 공간 도약을 펼쳐 아래층의 유채린이 있는 사무실로 이동해버렸다.

나중에 집에서 조금 쪼일 테지만…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

눈치도 좋은지 단정하게 꾸며진 7평 남짓한 사무실에 나타나자마자 서류가 가득 쌓인 책상에서 일하고 있던 유채린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본다.

“복귀하셨습니까. 회장님.”

“네. 그런데… 누나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시는 거 같네요.”

온갖 서류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책상과 보송보송한 카펫이 깔린 바닥에 두툼하게 쌓여있는 서류 상자들을 보면서 말하니 유채린은 피곤함에 찌들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통합관리부장님의 업무 처리 능력은 평범한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분이십니다. 가끔… 의외의 일을 밀어붙이려는 경향이 있으시지만, 저 같은 사람 셋이 해야 할 일 정도는 단숨에 처리하시지요. 그분은 할 일을 다 처리하신 상황이시고 이것은 제가 해야 할 일일 뿐입니다.”

누나의 업무량을 쫓아가느라 그런 꼴이 됐다고? 저 이야기를 들으니 지금은 졸업했을 의한 고등학교 전 전대 학생회장이 생각난다. 누나가 한껏 확장해놓은 학생회 업무를 따라가느라 산송장이 됐었지?

힐링 터치로 회복시켜주는 게 효율은 더 높겠지만 멀쩡한 처자한테 터치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힐링 웨이브를 한발 쏘아내 준 다음 말했다.

“부탁할 게 있어서 찾아왔어요. 혹시 기체 비스름한 것들에 뒤집어씌우거나 입힐 수 있는 옷감이 있을까요?”

힐링 웨이브가 주는 치유 효과에 눈을 감고 회복을 느끼던 유채린은 내 이야기에 눈을 반짝 뜬다. 평소에는 하지 않는 내 부탁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잠시 생각하더니 서랍을 이리저리 뒤지기 시작했다.

누나나 혜령이 이모라면 질문한 즉시 답을 내줄 텐데 저렇게 서랍을 뒤지는 걸 보니 확실히 업무 능력이 좀….

…누나랑 혜령이 이모가 서류 업무의 먼치킨이랬던가? 영은이도 유채린의 업무 능력을 인정했으니 능력이 나쁜 건 아닐 텐데.

이런 식으로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수 분간 서랍을 뒤지고 벽면 서류 수납함을 찾더니 한 장의 종이를 꺼내 보여준다.

“원하시는 게 이런 겁니까?”

그녀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천인데 미약한 손바람에도 공중을 떠다닐 만큼 가볍고 질기고 튼튼한 소재라고 되어있었다. 마치 깃털처럼 가벼운 옷감인데 거미 이형종의 거미줄과 특수 소재를 섞어 만든 거라고 적힌걸 보고 이거라고 생각했다.

“오. 이거에요. 이걸 옷처럼 만들어서 구해주실래요? 키는 대충 5m 정도에 쇼핑몰 마네킹 같은 몸매에 맞게 펑퍼짐한 로브 같은 형태로 만들어주면 돼요.”

“…? 네에….”

“다 만들어지면 저택으로 배달되게 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유채린은 난데없이 찾아와서 이런 부탁을 하고 가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혜령이 이모는 지금 미국에 있는 걸? 누나한테는 지금 가까이 갈 수가 없어서 부탁할 상황도 아니고 내 비서들은 직위해제되서 누나나 화연이, 혜령이 이모한테 모두 배속됐단말야.

대화 중에 도망친 나 때문에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자기 집무실로 돌아가는 누날 보니 저 화를 풀어주는 것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해야 저 화가 풀리려나….

공간 도약으로 집에 돌아오니 프랑은 벌써부터 미호와 강도 높은 대련을 하고 있었다.

“들어오는 공격을 똑바로 봐! 궤적을 읽으라고 했잖니! 도망치지 마!”

- 이, 이런 건 무리야아아! 히갹!

작년 여름 때 화연이랑 영은이랑 프랑이랑 넷이서 수련할 때가 생각난다. 프랑도 그렇고 화연이도 대련에는 한치의 자비도 없이 몰아붙이는 스타일이었지.

미호는 하얀 꼬리를 휘날리며 필사적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도망치지만, 프랑도 마찬가지로 허공을 박차며 미호를 쫓아 공격한다. 몰아치는 프랑이 정말로 무서운지 하얀 여우 귀를 접은 채 필사적으로 공격을 피하는 미호가 불쌍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괜히 옆에 있다가 불똥 튈라. 옆에서 구경하다가 미호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나랑도 수련하자고 달려들지도 모른다.

그러면 큰일이지.

퇴로마저 막힌 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주먹과 다리를 휘두르며 공격하는 프랑에게 샌드백처럼 얻어맞고 있는 미호를 뒤로하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씻기 위해 5층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가는데… 공간지각에 메이드 누나들이랑… 저 형아들을 뭐라고 불러야 하지? 시설관리인? 하인? 집사?

…아무튼, 메이드 누나, 형들이 저택 내부에 있는 샛길과 작은 계단을 이용해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아무도 안 보이잖아? 얼마 전만 해도 일하기 위해 본채의 중앙계단이나 복도를 청소도구를 가지고 돌아다니는 메이드 누날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 궁금증은 얼마 안 가 해결할 수 있었다.

=며칠 전 소피아 씨의 대대적인 정신교육이 있었습니다.=

“정신교육?”

=상주 가사도우미들은 어디까지나 저택의 유지 보수가 본업일 뿐, 회장님 일가분들께서 생활하시는 공간에는 있는 듯 없는 듯 모습을 숨기며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골자의 교육이었습니다.=

욕실에서 씻고 나왔더니 어느샌가 히아리드가 하늘하늘한 원피스인지 드레스인지 토가toga인지 모를 옷을 입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잘지냈냐고 물어봐 주고 히아리드의 가을 하늘 구름처럼 하얀 날개를 쓸어 내려주니 예쁜 미소를 지었다.

내 머리카락이 젖어있는 걸 본 히아리드는 잘 마른 뽀송뽀송한 수건을 가져와 날 의자에 앉히더니 내 머리를 말려주며 내 의문을 해결해주었는데, 의자에 등을 기대며 별 생각 없이 중얼거렸다.

“그게 정상인건지 모르겠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의 행동 바탕은 서하 님에 대한 애정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지요.=

……크아~. 애정이란 단어를 들어버리니까 미호 녀석이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치던 게 생각 나버렸다. 그걸 의식해버렸더니, 히아리드의 손길에서도 야릇함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 그러냐?”

귓등으로 느껴지는 히아리드의 얇고 가느다란 손가락에 촉각이 집중된다. 머리를 쓸어넘겨 주는 척, 내 뒷목을 사르르 미끄러져 내려가는 감각에 온 신경이 그쪽으로 몰리는 거 같다.

곤란해. 이거 진짜 곤란해!

손가락 끝이 주는 야릇한 느낌에 속으로만 전전긍긍하는데 히아리드는 흘러가는 구름 같은 미소를 짓고서 내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서하 님은 정말 나쁜 남자이십니다.=

엉?! 가, 갑자기 무슨 말이야?

난데없는 히아리드의 말에 속으로는 깜짝 놀랐지만, 겉으로는 평온한 척, 뒤를 돌아봤다.

“뭐가?”

=길에서 꺾은 아름다운 꽃은, 꽃병에 아무리 잘 보관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시들어버리고 말지요.=

“어….”

=그뿐입니다.=

돌아앉은 내 어깨를 조심스레 잡아 원래대로 앉힌 히아리드는 빗과 드라이기를 가져와 천천히 내 머리를 말리며 빗겨주는데, 방금 이야기는 뭘 뜻하는지… 부족한 머리를 굴려봐도 알 수가 없다.

꽃이 왜? 꽃을 보관하려면 뿌리째 파내서 화분에 옮겨심어 보관해야 하는 거 아냐?

그 뒤로 히아리드는 별다른 말 없이 부드러운 동작으로 내 머리를 말려주고 깔끔하게 빗겨주고는 여섯 장의 날개를 살랑거리며 어디론가 가버렸다.

……아, 모르겠다. 그냥 엄마나 보러 가야지.

============================ 작품 후기 ============================

다음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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