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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829,589건의 공격 행동 중 본 개체의 자의적 해석으로 생명체를 말살한 건 수 0. 수동 지령으로 생명체를 말살 한 건수 829,589 건.]
…워, 언어로 소통이 가능한 종족을 공격한 게 18만 건이라더니, 지능이 떨어지는 것들도 모두 포함하면 거의 100만 건이군. 생명체를 개체로 분류하면 억 단위가 넘어가는 거 아냐?
그 뒤로 화연이가 말을 걸면 다음은 프랑이 말을 걸고, 프랑이 질문을 던졌다면 다음은 화연이가 하는 식으로 번갈아가면서 질문을 던지는데, 프랑이 윤리적인 의미의 질문을 던지면 화연이는 명령과 행동 법칙에 관한 질문을 하는 식이었다.
[생명체를 죽이는 것은 오로지 명령을 통해서만….]
[명령은 대분류로 세 가지가 있으며 하위분류로 72가지의….]
[괴로움이라는 감정은 입력되어있지 않습니다.]
[주 명령권자는 라귀아 베. 제 1 명령권자였으며….]
[생명체를 말소해야 할 때 떠올린 생각은 명령에 의한 개체 수의 파악….]
[방어하는 종족을 공격할 시, 주변 식수환경을 우선 파괴, 그 후 식량이 될 수 있을 식물 1,872종의 소거. 도주하는 생명체는 포획 후 방어를 펼치는 종족의 앞에서 처형.]
[가슴이 막히는 느낌은… 모르겠습니다.]
[제 1 명령권자는 볼굴 이외의 종족은 무기물과 마찬가지인 종족이라고 입력되어있었습니다.]
[기쁘지 않았습니다.]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보물 창고를 지키고 있을 때, 말입니까.]
[편했습니다.]
…신기하다. 분명 처음 프랑과 화연이가 질문을 던졌을 땐 내가 억지로 부팅시켰을 때부터 무기질적인 목소리와 단답형으로 기계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망설임이 말수에서 느껴지더니 지금은 목소리에 약간이지만 감정마저 느껴진다.
“왜 편했나요? 생명체를 죽이는 것에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않았고 괴로움도 못 느꼈다면서요?”
“무기질이라는 것은 생명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적합하지 않은 단어다. 너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했기에 그 입력을 받아들인 거지?”
“지금 그대의 행동에는 하나의 법칙이 있지만 지금 그대의 대답은 그 법칙에서 벗어나고 있어요. 그것은 당신의 의사인가요, 그렇지 않으면 명령에 따른 반사 행동인가요?”
프랑과 화연이의 질문 공세는 당사자가 아닌 나마저도 심장이 떨릴 만큼 매서움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미호는 내 등에 매달려 프랑과 화연의 질문 공세를 미미하게 떨며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미호가 발작적으로 크게 소리쳤다.
- 그만해! 그만해! 프랑 그만해! 화연이도 하지 마! 둘 다 하지 마~!
어? 눈물? 미호는 눈가에 눈물을 매달고 화연이와 프랑에게 달려가더니 주먹을 엉성하게 휘두르며 그녀들의 질문 공세를 멈추게 하려 한다.
“미호?”
“미호야, 방해하면 안 돼. 지금….”
- 미워! 둘 다 울고 있단 말야! 프랑 미워! 화연이도 미워!!
둘 다 울고 있다니… 안개 골렘들이? 미호의 이야기에 에리식과 카라직을 돌아봤지만 두 녀석은 묵묵히 서 있을 뿐, 슬퍼하거나 비통해하는 낌새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미호는 지금도 눈물을 글썽이며 프랑과 화연이에게 그만하라고 투닥거리고 있었다. 막다 못한 프랑이 미호를 부둥켜안자 결국 프랑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목을 놓아 울기 시작한다.
- 우아아아앙!! 으아아아으아앙!!
프랑과 화연이는 갑작스러운 미호의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미호가 한 말의 뜻을 헤아리느라 입을 다문 사이에 내가 에리식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지금 울고 있냐?”
[…운다는 행동은 입력되어있지 않습니다.]
……대답은 저렇게 하지만, 말을 하기 전에 뜸을 들인 걸 눈치챘다.
차마 말 못할 기분에 에리식과 카라직에게서 시선을 돌렸지만 이미 기분은 모래를 한 움큼 입에 넣고 씹은 거처럼 입안이 까끌까끌하다. 그보다 미호가 어떻게 저 두 녀석의 감정을 눈치챈 것인지 알아내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해 잉잉 우는 미호에게 다가가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미호야.”
- 히잉… 주인님도 에리랑 카라 괴롭힐 거야?
“괴롭히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지금 프랑과 화연이가 저 둘에게 하는 질문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해.”
- 그치만 에리랑 카라는 프랑 하구 화연이가 물을 때마다 죽을 듯이 괴로워하는걸? 다 느껴지는걸?
멍하니 미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화연이는 그제야 작게 탄성을 지르며 미호를 바라본다.
“소울 링커! 대상과 동기화해서 대상의 감정을 느끼는 그 능력을 깨달은 건가!”
화연이의 말에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게 나도 생각이 났다. 그렇다면 역시 미호가 저 둘을 보고 착한 애들 운운할 때 이미 에리식과 카라직의 심성을 파악했다는 건가. 그러다가 화연이와 프랑의 공격적인 질문에 두 녀석의 자아가 괴로워하는 걸 알고서 대신 나선 거고?
그러고보니 전부터 묘하게 눈치가 빠른 미호였었지?
“…소울 링커는 굉장히 희귀하면서도 위험한 능력인데 그걸 미호가 얻다니….”
그녀들은 미호의 새 능력에 기뻐하면서도 소울 링커라는 능력이 가지는 리스크에 못내 불안한 표정으로 훌쩍이는 미호를 내려다본다.
“일단은 미호가 저렇게 말한 걸 보면 저 녀석들은 그저 도구로써 볼 굴에게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거겠지?”
“그렇겠지요. 미호가 저 둘의 심성이 착한 아이라고 했으니 오랜 시간… 후우….”
“소울 링커의 감정 공유를 속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질문에 죽을 듯이 괴로워했다면 ……못할 짓을 했군.”
기분이 잔뜩 가라앉은 미호와 프랑, 화연이보다 지금 이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 할듯하다. 에리식과 카라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방향을 가닥 잡고 화연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못할 짓을 했다면 사과해야지.”
“…음.”
사과해야 한다는 내 말에 미호도 눈물이 범벅된 눈으로 프랑과 화연이를 바라본다. 미호의 시선에도 그녀들은 꺼림칙해 하지 않고 진심이 담긴 모습으로 자신들의 공격적인 질문을 한 행동을 에리식과 카라직에게 사과했다.
그녀들의 사과에 에리식과 카라직은 이런 상황에 대한 행동 코드가 입력되어있지 않은 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지만, 미호가 - 에리랑 카라가 울음을 멈췄어. 라고 이야기해주며 코를 훌쩍거렸다.
녀석들의 자아가 나쁘지 않은, 아니 소울 링커의 능력을 얻은 미호의 말에 따르면 착한 녀석들이니 착하다고 쳐도 저 둘이 수많은 학살을 저질렀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에서 나와는 상관없는 종족과 생명체들을 죽인 거라 사실 내 알바는 아니지만 미호도 그렇고 프랑과 화연이도 에리식과 카라직을 의식하기 시작한 거 같아 어떻게… 그녀들이 납득할만한 처우를 생각해내야 할 거 같다.
“일단은 너희 둘의 처우는 나중에 결정하기로 하자. 지금 당장 해결을 보기에는 몇 가지 윤리적인 문제가 있는 거 같으니까 말이야.”
[명령… 접수.]
[…….]
에리식은 그나마 띄엄띄엄 대답을 했지만 카라직은 멍한 모습 그대로 미동도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 주인님… 이 아이들 나중에 혼낼 거야?
너무 격하게 울었는지 눈 밑이 발개진 미호가 프랑의 품에 안긴 채로 날 돌아보며 흔들리는 눈동자로 물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법률로 따지면 혼내는 게 맞아.”
- 히잉….
내 목소리가 차갑게 느껴졌는지 미호는 다시 울상을 지으며 울 준비를 한다.
“아직 말 안 끝났으니 다 듣고 울어. 혼내는 게 맞지만, 이 녀석들은 위상 세계에 속해있는 녀석들이야. 그런 녀석들에게 현실의 법의 기준을 들이미는 것도 맞지 않지.”
웅웅웅…우우웅!
내 말이 끝나자 화연이의 등에 매여져 있던 이스펙트가 웅웅하고 운다. 저건 부정하지만… 긍정한다는 뜻이려나?
“그래서 일단은 미루는 거야. 어떻게 보면 볼굴이라는 악마들에게 단순한 도구로써 이용당한 불쌍한 녀석들이지만 수천, 수억에 달하는 생명체가 이 둘에게 죽은 것도 사실이니까.”
- 나, 난 주인님이 쟤들 혼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미호는 간절한 눈빛으로 날 올려다보며 애원하듯이 말했다.
“혼내지 않으면 어쩌려고? 미리 말해두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좋은 거랑 나쁜 거랑 가르칠게! 그 뒤에 에리하구 카라가 스스로 결정하게 하면 되자나!
눈물을 머금은 얼굴에서 튀어나온 의외의 말에 나는 물론이고 프랑과 화연이도 동그래진 눈으로 미호를 바라봤다.
에리식과 카라직을 취조 아닌 취조를 한 그 날부터 미호는 에리식과 카라직을 에리, 카라라고 부르며 자신을 따라다니라고 명령 아닌 명령을 했다. 그리고 안개 골렘 두 녀석은 명령권이 없는 미호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그 뒤로는 셋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는 거 같은데,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미호가 말하고 두 녀석은 듣기만 하는 거 같은데… 저런 급격한 친화현상도 소울 링커가 가지는 효과랬지?
“어쩌면 저게 해결방법이 될지도 모르겠군.”
“친화 현상으로 에리와 카라가 미호의 색으로 물든다는 거야?”
“그래.”
지금도 근 5m짜리 안개 골렘을 뒤에 달고 야영지 인근을 뽈뽈뽈 싸돌아다니는 미호를 보며 생각해보니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5m짜리 거인이 미호처럼 앙증맞은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건 좀… 심대한 시각 폭력이 될 거 같지만 익숙해지면 상관없을 테지.
사실 우리가 저 두 녀석을 처벌할 권한 따윈 없다. 있다면 화연의 등에 매여진 이스펙트에 혼이 봉인 당한 누호디에게나 있을까. 그렇다고 해도 별다른 제약 없이 저 둘을 현실에 풀어놓는 것도 맞지 않고….
미호와 두 안개 골렘, 에리와 카라를 바라보는 그녀들을 뒤에서 쳐다보며 이래저래 고민해봤지만 역시 이 방법이 가장 도리에 맞을듯하다. 이거라면 누호디도 수긍할 거 같다.
“흠. 그럼 죗값은 볼굴을 처리할 때 저 두 녀석의 손을 빌리는 걸로 할까?”
우웅!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더니 그거 좋다는 듯이 이스펙트가 크게 한번 운다. 그녀들도 그 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듯 그런 일이라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얼굴에 드러나고 있었다.
“좋은 처분이군. 스스로 맺은 매듭은 스스로가 푸는 게 가장 좋은 법이지.”
“자업자득이네요.”
“…그건 이런 상황에 쓰일 법한 단어가 아닌듯합니다만.”
“네? 자신이 저지른 일의 결과를 자기가 받는다는 뜻을 봤을 때 올바른 단어가 아닌가요?”
“설명만 봐서는 같지만, 말의 뉘앙스가 다르지요. 자업자득은 주로 악한 행동을 저지른 자가… 으음?”
자업자득과 개과천선의 차이를 설명해주려던 화연이는 자기가 말하다가도 뭔가 이상했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가끔 밖에 볼 수 없는 허당같은 화연이의 모습을 킥킥 웃으면서 구경하고 있으려니 왜 웃냐는 새침한 표정으로 째려보길래 얼른 시선을 돌렸다.
아침도 메머드 고기를 볶아서 불고기를 해먹고 나자 다시 소담하니 내리는 눈발에 야영지를 정리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본격적으로 흐린 하늘 아래 구름과 함께 날아가고 있으니 프랑과 화연이는 아까 나누던 이야기(어떤 사자성어가 지금의 에리와 카라의 상황에 적합한가.)를 이어가기 시작했고 미호는 에리와 카라 사이에서 함께 날며 쉴 새 없이 재잘거리다가 프랑과 화연이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니 우리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미호가 듣기에 쉬운 이야기는 아닌지 그녀들의 대화에 귀를 잠깐 기울이던 녀석은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등에 사뿐히 업혀 왔다.
“미호야. 에리하고 카라가 그렇게 좋아?”
뒤에서 쫓아오는 에리식과 카라직을 힐끗 돌아본 뒤에 물었더니 미호는 내 머리에 턱을 올리고 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대답했다.
- 으~응. 좋아. 집 남쪽에 사는 맨들맨들한 걔들처럼 뺀질거리지 않구 착해. 내 말 잘 들어!
남쪽에 사는 것들이라면 스케일러들 말인가? 언제 소울 링커의 특성을 얻었는지 궁금해져서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예상외로 좀 된 거 같다. 그러고 보니 꼬리가 더 늘어나지도 않았는데 새 능력을 얻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해서 언제쯤 능력을 얻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래? 그럼 미호는 언제부터 저 두 녀석이 착한 줄 알았어?”
- 우웅? 주인님이 걔들 데려왔을 때부터?
“내가 데려왔을 때부터? 그럼 예전에는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적은 없어?”
- 없는데?
없다고? 스케일러들에게서는 뺀질거린다고 느낀 건 그냥 그 녀석들의 행동에서 받은 느낌이란 건가.
“그런데 넌 꼬리로 능력 쓰는 거지? 꼬리 숫자도 그대로인데 어떻게 에리하고 카라의 감정을 느낀 거냐?”
- 우~웅… 몰랑. 주인님이 비술 가르쳐주는 거 연습하다 보니까 그냥 알게 됐어!
비술을 연습하다 보니 알게 됐다고? 그럼 그 능력이 비술과 관련된 거란 말 아닌가? 아까 화연이 이야기나 내가 본 소울 링커 스킬이랑은 다르잖아?
의아해져서 화연이를 돌아보니 어느새 이쪽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화연이와 프랑도 의외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화연이는 미호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 누호디에게 뭔가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 초점이 멀리 잡힌 눈으로 혼잣말을 한다.
“음? 아… 그렇습니까. 네. 그랬었지요. 흐음.”
대화가 끝났는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인 화연이는 우리를, 정확히는 미호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방금 누호디가 이야기를 해주길, 미호의 종족과 관련된 종족적 특성이 발현된 것일 수 있다는군. 비술을 연습하면서 정신적인 면이 닦여졌으니 그 영향으로 종특이 개화했다는 이야기야.”
“종족 특성? 그… 알케마가 말했던 짐승의 주인을 섬기는 호족狐族?”
- 호족이 머야?
호족은 여우 호狐에 같은 혈통의 족族을 써서 호족이라고 설명해주는 프랑을 바라보던 화연이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런 이야기를 들었었냐고 되묻는다.
“벨티칼 산에서 돌아온 첫날에 미호하고 알케마를 인사시키는데 알케마가 미호를 보면서 놀라더라고. 순혈의 호족이 어째서 여기 있느냐면서.”
“그런 일이 있었던가….”
“처음 들어?”
“그래. 그 리저드맨은 우리를 상대하기 지난한지 스케일러의 집에서 나오려 들지 않으니 대화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뭐야. 그런 이유에서 집을 나간 거였어? 나한테는 집이 불편하다고 그러더니.”
종족이 전혀 다른 자들 사이에서 지내기가 고역스러워서 변명을 줏어삼은건가? 살짝 눈썹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리니 화연이가 알케마를 변호해주듯이 대꾸했다.
“그의 키가 크다 해도 저택 역시 충분히 크다. 대大 라는 수식어가 붙을 저택이니까. 하지만 외형이 전혀 다른 종족들 사이에서 지내는 거라면 나 역시도 마음이 불편했을 거다.”
“그 녀석은 암컷인데… 어쨌든 그런 거라면 서로 더 가깝게 지내도록 말을…. 뭐야?”
알케마가 암컷이란 말에 프랑과 화연이가 눈에 띄게 움찔했다. 내가 놀랄 정도로.
“암컷? 여자라는 건가요?”
“어? 어. 뭐야 설마 몰랐어? 로브 자락 너머로 굴곡이 있잖아.”
갑자기 말수가 적어진 그녀들을 보며 되물으니 복잡다단한 표정으로 “뭐어… 그렇군.”, “그, 그랬네요….” 하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해주곤 날 빼놓고 둘이서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뭐야, 대체?
- 주인님아. 나 호족이야?
미호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성급한 목소리로 내 목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며 묻는다. 확정 난 것도 아닌데 말해줘도 되나? 의문과는 반대로 입은 멋대로 움직였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70% 정도는 그럴 거라고 생각해.”
- 후웅.
뭔가 더 물어올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미호는 조금 복잡한(점심으로 뭘 먹을까 하는 수준의)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린 그녀들이나 미호도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아 조용해진 상황에 뭐 때문에 이러나 싶었지만…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을 거 같은 그녀들의 모습에 나도 그냥 입을 닫아버렸다.
내가 알지 못할 어떤 대화를 눈짓으로 나누고 한참을 조용히 있던 그녀들은 미호에게 시선을 돌리며 감정을 느낀다는 건 어떤 감각이었는지 설명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 막막 우히히하고 뿅뿅하고 꾸우욱하는 느낌이야!
…그게 뭐냐? 웬 괴상한 효과음으로 감각을 표현하는 미호를 어이없이 바라보는데 연인들도 나랑 비슷한 기분인지 황당한 표정으로 미호를 바라본다.
미호의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던 화연이는 그런 부사가 아닌 문법으로 표현해달라고 말하지만 그런 요청에 미호는 오히려 '이게 이해 안 돼?'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비술이나 종특이라면 내가 익힐 수 있는 건 아닐 테니 난 일찌감치 신경을 끄기로 했는데, 화연이는 멈추지 않고 미호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많은 경험이 A 클래스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는 더욱 능력과 기술에 매달리는 거 같다.
정확한 문단을 만들기 위해 미호를 구슬리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하는 화연이와 미호의 입씨름을 들으면서 눈이 송송 내리는 하늘을 날아가다 보니 저 멀리 하늘과 땅이 맞닿는 부분에 수평선이 펼쳐지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 작품 후기 ============================
고대 그리스 시대의 석상은 육체미의 표현이 그야말로 끝내준다던데... 고대의 피규어라니, 실제로 한번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