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45 눈 밭 속의 던전 =========================================================================
대원들은 입구를 통해 수많은 유령이 적개심을 가지고 몰려드는걸 중2병스러운 미호가 혼자 막아내는 지금 상황이 불안한지 긴장한 상태로 보였지만, 나라는 존재가 있어 공황 상태까지 가지는 않았다.
주먹을 꼭 쥐고 긴장하고 있는 그들에 비하면 박윤호 팀장은 설렁설렁한 모습으로 주머니에서 고칼로리 초콜릿 바를 꺼내 씹으며 미호의 슈팅을 구경하는데, 초콜릿 냄새를 맡았는지 미호가 고개를 홱 돌리며 박윤호 팀장을 뚫어버릴 듯이 노려본다.
“…드, 드시겠습니까?”
- 줘.
“여기 있습니다.”
박윤호 팀장이 주머니에서 두 개의 초콜릿 바를 꺼내 조공을 바치는 모습으로 건네주니 미호는 잘난 체를 하며 몸을 돌려 두 손에 초콜릿 바를 하나씩 받아든다.
“헉! 유, 유령이…! 아.”
미호의 뒤에서 대기하던 능력자들은 미호가 딴짓을 하려는 모습에 기겁하려다가 붉은빛을 뿜어내는 꼬리에서 화염 탄이 쏟아지는 걸 보고 뻘쭘한 얼굴로 물러선다.
“미호야. 선물 받으면 뭐라고 하랬지?”
- 웅? 아… 고마워! 잘 먹을게!
“아닙니다.”
박윤호 팀장에게 고마워하는 건 조금 내키지 않았는지 인상을 살짝 찌푸렸지만, 프랑도 아니고 내가 말한 거라 냉큼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초코바를 꺼내 야금야금 베어먹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뒤에서 구경하다가 프랑과 화연이에게 말했다.
“공간의 벽은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거 같으니 이대로 유령의 수를 줄여버리자. 정 안 된다 싶으면 공간의 벽으로 다 막아버려도 되고 만에 하나 공간 도약으로 탈출해도 되니까.”
“그럴까요?”
“전에 화연이가 그랬잖아. 대원들이 할 수 있는 일에 내가 일부러 나서서 그들이 할 일을 뺏지 말라고.”
“…내가 아니다.”
“응?”
“북한산에서 입장했던 늪 지역의 능력 검증 때 말하는 거 아닌가. 내가 한 말이 아니고 여사님이 한 말이다.”
“앗. 미안.”
에잇. 생각 없이 내뱉었더니 화연이랑 영은이랑 헷갈렸네. 영은이를 어머니가 아닌 라이벌로 살짝 의식하는 화연이한테 이런 실수를 했더니 조금 삐친 듯이 보인다. 표정을 보니 아까 귀에 사랑한다 속삭여주면서 기껏 딴 점수가 조금 깎인 거 같다.
전투 중이기도 하고 화연이가 살짝 삐진 상태라 더는 잡담을 나누는 건 멈추고 밀려들어 오는 유령 떼를 공간지각으로 찬찬히 살피는 중에 미약한 진동을 캐치했다.
드드드….
“응?”
주변 사람들의 안색을 살펴보니… 진동을 느낀 건 화연이와 프랑 뿐인 거 같다.
“…프랑, 느꼈습니까?”
“살짝 땅이 흔들린 거 같은데 화연도 느꼈나요?”
거기까지 대화한 그녀들은 곧장 고개를 돌려날 바라본다. 우리 근처에 있어 프랑과 화연의 대화를 들은 박윤호 팀장도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하며 이쪽을 되돌아보자 대원들이 하나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불안한 시선으로 날 바라본다.
……뭔가 심상치 않다. 그냥 빠져나가는 게 좋겠다는 예감이 든다.
“화연. 귀환 진형으로 모이라고 해.”
“음! 귀환 포지션 A형! 회장님을 중심으로 모입니다!”
- 우잉?
열심히 화염 탄을 쏘아내며 유령을 녹이던 미호는 화연이의 외침을 듣고서는 어벙한 얼굴을 하며 유령 떼와 날 번갈아 보며 어찌 해야 하나 고민한다.
그 고민을 통로에 호박색 공간의 벽을 펼쳐 막아버리는 것으로 해결해주니 곧장 꼬리를 나부끼며 내 옆으로 날아왔다.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내려놨던 가방을 챙겨 들고 번개같이 모여 회오리 형태로 진형을 잡은 대원들과 함께 공간 도약을 펼….
쿠구구구구구구!!
“으어!?”
“꺄아아!”
“지, 지진?! 던전이 무너지는 거야?!”
푸른색 공간의 벽을 뒤흔들 정도라니, 부서지지야 않겠지만… 역시 탈출하는 게 낫겠다!
대원들의 손이 모두 나와 연결된 걸 확인하고 공간 도약을 다시 쓰려는 순간 공간 지각에 피지皮紙 같은 게 잔뜩 쌓여있는 자료실로 시선이 간다.
……미련 갖지 말자. 어차피 오랜 세월이 지나서 손을 댔다간 가루가 되어 읽지도 못할 거다.
미련을 버리고 공간 도약을 펼쳐 지상으로 빠져나왔더니 어느샌가 눈보라가 멈춰있었다. 눈보라 차단용 호박색 공간의 벽 너머로 새빨간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이 시야에 들어온다.
눈 깜짝할 사이에 던전 밖으로 빠져나오자 대원들이 웅성거리며 서로 손을 풀려 하는 게 보인다.
“[손 떼지 마!]”
“““?!”””
마나 보이스가 깃든 외침으로 버럭 소리쳐 서로서로 마주 잡은 손을 푸는 걸 막은 뒤 순간 한 번 더 공간 도약을 펼쳐 개미굴 던전이 펼쳐져 있는 구역에서 완전히 떨어졌다.
던전의 입구가 훤히 보이는 약간 지대가 높은 언덕 위에 나타난 대원들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더니 서로 맞잡은 손을 슬그머니 놓는다.
불안함이 섞인 표정으로 굉장한 것을 본 놀람이 가득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그러다가 호박색 공간의 벽이 돔처럼 펼쳐져 있는 던전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60명가량과 함께 고작 4km 거리를 공간 도약으로 이동했을 뿐인데 3천만에 가까운 TP가 사라져버렸다. 내 총 TP의 절반이나 되는 양이다.
공간 도약은 무게보다 부피가 늘어날수록 TP를 더 많이 소비하는 거 같다. 가능한 여러 사람을 데리고 도약하는 건 자제해야겠….
꾸과과과과과구구구구…!!
“우와아아?!”
“엄마야!”
“지진이다아~!”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어마어마한 충격이 발아래를 치고 지나가더니 흡사 리히터 규모 8 정도 될 법한 흔들림이 상하로 일어난다. 다들 능력자다 보니 이런 상황에 균형을 잃고 땅을 구르는 대원은 없지만….
무시무시한 진동과 함께 던전 입구 주변 수백 미터 범위의 지반이 갑자기 움푹 꺼지더니 잘게 부서져 지하로 침몰해간다.
……개미굴 던전 입구에 그대로 있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공간 지각으로 던전을 살펴보니 통로고 방이고 죄다 붕괴하며 지반이 통째로 무너지고 있었다. 그 혼돈 속에 보물 창고 입구와 보물 창고에 펼쳐놨던 푸른색 공간의 벽만 멀쩡히 존재한다.
유령들은 갑자기 무너져내리는 지반에 휩쓸려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흩어져버렸는데, 저거 소멸한 것인지 그냥 숨은 것인지 모르겠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푸른색 공간의 벽과 호박색 공간의 벽을 회수하고 한숨을 쉬며 거대한 먼지 구름을 피워올리면서 붕괴해가는 던전을 바라봤다.
“…주둔지로 이동하겠습니다. 박윤호 팀장, 정태령 조장. 준비하세요.”
“예!” “네!”
아직까지 미약한 진동이 땅을 타고 흐르고 있었지만 걷기에는 문제가 없다.
모두 주둔지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미호 혼자 멀거니 서 있길래 바라보니, 이만한 붕괴 현장을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라 그런지 꼬리털이 폭발한 듯 바짝 선 상태로 얼어있었다.
녀석의 뺨을 콕 찌르니 깜짝 놀라면서 내 품에 뛰어들어 오들오들 떨기 시작한다.
- 저, 저거 모야? 뭐야?
“뭘 거 같냐.”
- …던전이 무너진 거야? 왜?
“아마도 보물 창고 입구를 지키던 골 렘 두 마리한테 뭔가 장치가 있었겠지.”
- 비술이 걸려있었던 거야?
음. 인원 체크 후 바로 이동을 시작한 대원들의 뒤를 따르며 미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팔에 매미처럼 달라 붙어있던 미호는 내 쓰다듬에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는지 곤두선 꼬리털이 예쁜 붓 모양으로 변해간다.
“보물을 모아놓은 곳이니까 골렘을 물리치고 보물 창고에 침입한 자들을 죽이려고 준비해놨던게 아닐까.”
침입을 막기 위해 던전을 무너트린다니, 보물창고에 무기와 방어 구가 함께 있던 걸 봐서는 그것들도 하나같이 그 시대에 뛰어난 아이템들이었을까? 침입자의 손에 들어가기보단 매몰시켜버린다는 선택을 할 정도였으니 말야.
약간의 행군 끝에 주둔지로 돌아오자 대기하고 있던 생활보조 4조의 스무 명이 반갑게 맞이한다. 그들을 본 탐사 대원들은 한시름 놨다는 표정으로 짐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주둔지 내부는 푸른색 공간의 벽 위로 가득 쌓인 눈 때문에 한밤처럼 어두컴컴해서 호박색 공간의 벽으로 눈을 몽땅 분해해버렸더니 노을빛이 푸른색 공간의 벽을 통과하며 푸른빛과 붉은빛이 혼합된 기묘한 색감으로 주둔지 내부를 물들였다.
“노을빛이 수면에 비쳐 산란하는 바닷속 같군.”
화연이의 가벼운 감상을 듣고 시간을 확인해보니 곧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
박윤호 팀장과 정태령 조장의 지시에 전 대원들은 빠르게 던전 탐사의 뒷정리를 위해 이번에 획득한 금화와 금 부스러기의 양을 정확히 재기 위한 도구를 꺼내오고 스켈레톤의 뼈를 종류별로 구분하기 위해 바닥에 비닐을 넓게 깐 뒤에 그 위에 뼈다귀를 쏟아붓기 시작한다.
다른 쪽에서는 골렘의 파편을 내려놓고 또 다른 곳은 언제 챙겼는지 보석의 원석을 분류해서 쌓기 시작한다.
나도 수제 금괴와 은괴를 몽땅 꺼내서 한쪽에 세워놓으니 주둔지에서 대기했던 대원들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면서 초대형 금은괴 큐브로 향한다.
프랑도 한껏 힘을 쓴 미호가 배고프다고 칭얼거려서 저녁 식사 전에 먹을 애피타이저를 만들기 위해 취사장으로 향했는데 화연이만은 다른 곳에도 안 가고 내 옆에서 가만히 날 지켜보고 있었다.
“…왜?”
그 모습이 조금 이상해서 물었더니 화연이는 조금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내 손을 잡더니 화연이의 업무용 천막으로 이끌었다.
“괜찮나?”
“괜찮은데? 안괜찮을게 있어?”
“메오 아지토스의 추적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던전이 완전히 붕괴해버렸지 않나. 단서가 있는 장소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는데….”
아아! 그걸 신경 쓰고 있었던 건가? 내 안색을 살피며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보여주지 않은 마음이 담긴 걱정을 보인 게 기꺼워 나도 모르게 그녀의 입술을 훔쳐버렸다.
깊은 키스를 나눈 뒤에 살짝 달아오른 한숨을 내뱉는 화연이의 뺨을 잡고 눈을 마주하며 빙긋 웃어주었다.
“정말 괜찮아. 어차피 단서라고 할 것도 없었어. 양피지같이 생긴 것들이 쌓여있던 곳이 있었지만, 지반이 붕괴하면서 산산이 부스러지더라고. 그 외에는 눈에 띄는 것도 없었고.”
“그, 그래.”
홍조가 서린 얼굴로 내 시선을 받던 화연이는 부끄러운지 살짝 눈을 피하면서 내 품에 안겨 왔다.
“그럼… 다행이고.”
화연이가 앉는 자리에 앉아 그녀를 내 허벅지 위에 앉게 했더니 의외로 시선이 비슷하다. 이건 내 다리가 짧고 그녀의 다리는 길다는 반증이겠지! 이제는 내가 키가 더 큰데….
역시 신체 강화 능력자들의 외모랑 기럭지는 사기라고 생각하고 그 사기적인 육체의 소유자가 내 연인이라는 사실이 행복하다.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손에 깍지를 끼고 그동안 얼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 식사 전의 짧은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지하 던전에서 얻은 스켈레톤의 뼈다귀와 골렘의 조각은 부산물처럼 처리해서 금방 포장이 끝났지만, 문제는 금은보화들이다.
보물창고에서 꺼내온 금괴와 은괴는 녹여서 다시 굳힌 게 아니라 힘으로 압축시킨 거다 보니 툭툭 힘을 주면 쪼개지거나 해서 정확한 무게와 크기를 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불 속성이랑 대지 속성 능력자들한테 틀을 만들고 불로 금을 녹여서 굳히면 안 되나요?”
하고 물으니 정태령 조장은 금 하나하나에 무게와 순도를 새기면서 대답했다.
“안됍니다. 그랬다간 불순물이 너무 많이 들어가요. 그걸 막고 기포까지 제거하려면 TP 소비가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안된다니 뭐… 내 할 일은 끝났으니까 난 좀 쉴까?
저녁은 김치볶음밥으로 간단하게 해치우고 그 뒤로 계속해서 무게를 측정하던 대원들은 자정쯤이 되어서야 모든 금괴와 은괴의 수량 및 사이즈를 측정을 완료할 수 있었다.
근 8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쉼 없이 작업을 하던 대원들은 집채만큼 쌓인 금괴와 은괴를 보며 징글맞다는 얼굴로 진저리를 치고 있을 때, 경비 임무를 배정하겠다는 화연이의 이야기에 탄식을 터트린다.
“허리 아프다.”
“뜨거운 물에 목욕하고 싶어~.”
“이번 경비 로테이션은 몇 번째지?”
오늘 경비에는 자정부터 시간당 7명씩 7시까지 47명이 투입되는데, 임무에 당첨된 대원들은 KO 당한 모습으로 널 부러 져버리고 경비 임무에 빠진 26명의 대원은 급 밝아진 얼굴로 삼삼오오 텐트로 돌아간다.
“서하. 쉘터 좀 꺼내주시겠어요?”
“어. 씻게?”
“네. 미호도 그렇고 화연도 던전에서 싸우느라 먼지 범벅이니까요.”
프랑이 원하는 대로 하늘에 푸른색 공간의 벽을 펼쳐놓고 쉘터를 꺼낸 뒤에 그녀들을 공간 도약으로 데려다주니 셋이서 사이좋게 씻으러 들어간다. 그러다 뒤따라오지 않는 날 발견한 미호가 후다닥 달려와서 내 손을 잡아끌었다.
- 주인님도 같이 씻자.
“…아니. 난 나중에 혼자 씻을 테니 너희들 먼저 씻어.”
- 우웅. 같이 씻으면 좋을 텐데.
같이 씻으면 여러 가지 의미로 좋을 텐데 네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겁나거든?
그녀들이 씻을 동안 나는 주둔지로 되돌아와서 화연이가 있었어야 할 지휘용 텐트에 홀로 앉아 무너지던 던전을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 골렘은 정말 비술로 움직이던거였나? 귀금속이나 보석, 거무튀튀한 돌덩어리들을 제외하면 온전히 남아있는 게 없던 상황이었는데 어째서 골렘만 풍화의 흔적도 없이 멀쩡하게 존재하고 있었던 걸까.
생김새 또한 내게 충격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었기에 그녀들이 걱정할까 봐 표시 내진 않았지만, 골렘이라고 해도 막상 메오 아지토스의 실체를 직접 접하니 마음이 심란하다.
……잡생각이 많아져 봤자 좋을 건 없으니 상념은 여기까지만 해야지.
상념의 여파로 기분이 꽤 어두워져서 기분전환을 할 생각”로 목욕 중인 연인들과 미호의 알몸을 훔쳐봤다. 프랑과 화연이는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고 수명이 늘어날 거 같은 보물 같은 가슴을 지니고 있어서 그녀들이 움직일 때마다 출렁출렁 흔들흔들… 우헤헤….
흠흠. 하지만 미호는 볼 때마다 안쓰러움이 쓰나미가 몰아치듯이 밀려온다.
미호는 프랑이 머리를 감겨주고 몸을 씻겨줄 동안 얌전히 있더니, 프랑이 스스로 머리를 감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두 손에 비누칠을 잔뜩 하더니 프랑의 유방을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앗, 이 녀석! 목욕할 때는 얌전히 있으랬잖니!-
-그치만 눈앞에 살덩어리가 날 놀리잖아!-
…갖고 노는 게 아니라 심술부리는 거였나 보다.
프랑이 머리를 감느라 어쩔 수 없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있는 동안 미호의 심술은 점점 수위가 높아져 프랑의 가슴을 동그랗게 어루만지던 손동작이 살굿빛 유두를 꼬집거나 아랫가슴을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때리는 등, 보다 본격적으로 진화해간다.
꿍!
-으갹!-
도가 지나친 장난은 폭력을 부르는 법이지. 프랑의 가슴을 가지고 노느라 정신이 팔린 미호는 자신의 이마와 프랑의 이마 사이의 거리와 각도와 위치, 기울기가 완벽한 아치를 그린다는 걸 모르고 있엇나보다.
꿍! 하는 소리가 들린 것만 같은 깨끗한 박치기가 미호의 이마에 정확히 들어가자 이마를 움켜잡고 펄쩍 뛰어오른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목욕탕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우갸아앙! 눈에 비눗물이!
미호가 2차 데미지에 발광하는 사이 혼자 얌전히 몸을 씻은 화연이는 머리를 경단처럼 틀어 올려 묶더니 엎어진 채 엉덩이만 치켜든 모습으로 이마와 얼굴을 감싸 쥐고 있는 미호를 짐짝처럼 들어 욕조로 들어갔다.
-서하의 기분이 별로인 것처럼 보이던데, 석상이라곤 해도 메오 아지토스의 형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게 충격이었나 봅니다.-
-아… 화연도 느꼈었나 보네요.-
-예.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숙적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의 흔적을 처음 봤으니 마음이 안정적일 리가 없겠지요.-
-그래도 정신력이 강하셔서 이형종의 시체라거나 이형종에게 습격당한 사람의 잔해를 본 수습기사들처럼 패닉에 빠지지 않으셔서 다행이었어요.-
-후유증 중에는 뒤늦게 찾아오는 경우도 있으니 오늘 밤은 서하와 꼭 붙어서 자야겠습니다.-
-후후. 좋은 생각이에요.-
으…으음. 완벽하게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한 그녀들의 시선을 속이기에는 부족했나 보다.
내 흑심으로 그녀들의 목욕 장면을 훔쳐보며 기분전환을 하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게 힐링을 받은 기분이다. 역시 내가 여자친구는 참 잘 뒀단말야.
프랑도 마저 머리를 헹구고 욕조 속으로 들어가서는 화연이와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좋지만…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마가… 눈이….- 하며 욕탕 속을 둥둥 떠다니는 미호의 모습이 아련하다.
============================ 작품 후기 ============================
수면 위의 복숭아 두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