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44화 (444/517)

00444  눈 밭 속의 던전  =========================================================================

“이…거! 엄청 단단합니다!”

“TP를 덧씌워서 때려봐도 흠집밖에 안 나요!”

대원들이 흉부가 흉측하게 파헤쳐진 골렘에 달라붙어 곡괭이질을 하는데, 골렘의 재질이 너무 단단해서 부술 수가 없다며 난감해한다.

골렘의 사지를 분해하기 위해 각설탕에 달라붙은 개미처럼 대원들이 여기저기 붙어있었지만 캉캉거리는 소리만 계속해서 날 뿐 골렘이 조각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tp를 주입한 무기에도 흠집밖에 안나다니, 어지간히 단단하다고 생각하며 호박색 공간의 벽으로 대원들이 들고 가기 쉽게끔 토막 내주자 다들 혀를 내두르며 큼직하게 잘린 골렘의 파편을 짊어진다.

“큭… 더럽게 무거워…!”

몸이 각이 진 훌륭한 덩치의 생활 보조 대원이 남성형 골렘의 허벅지 부분을 짊어지고 일어서는데 헉하며 앓는 소리를 낸다. H 클래스의 신체 강화 능력자인데도 낑낑거릴 정도라니, 얼마나 무거운 거지?

“이, 이거 소재가 뭐냐? 밀도나 무게가 장난 아니야!”

“우워. 500kg은 넘어갈 거 같다야.”

골렘의 팔뚝과 정강이를 짊어진 대원들이 당혹스러워하는 걸 지켜보다가 보물창고의 거대한 문에 달라 붙어있는 박윤호 팀장을 돌아봤다.

한동안 재질을 알 수 없는 검은색의 거대한 문 앞에서 끙끙거리며 조사에 조사를 거듭하던 박윤호 팀장이 더는 위험 요소는 없다는 판단을 내리자마자 프랑이 문에 다가선다. 그리고 두부에 주먹을 찌르듯이 가볍게 문에 손을 박아넣더니 "영차." 하고 귀여운 호흡을 내자 우지끈! 하면서 두께만 수 미터는 되는 거대한 문이 벽에서 통째로 뜯겨 나왔다.

다른 한쪽 문도 마찬가지로 뜯어내자 잔돌 부스러기가 후드득 떨어지는 가운데 눈앞에 드러난 것은…

황금색의 보물 창고.

대충 1,000평쯤 되려나? 천장의 높이도 20m 가량 되는 어마어마하게 큰 방에 금은보화가 천장에 닿을 만큼 쌓여있어서 보물 창고라고 불렀었는데 딱히 틀릴 게 없는 말 그대로의 보물寶物 창고다.

방의 2/3를 금덩어리와 은 덩어리의 산이 메우고 있었는데, 대원들이 들고 있는 랜턴의 빛을 반사하며 휘황찬란한 오오라를 뿜어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장관이었다. 그리고 바닥 곳곳에는 보석들이 가공되지 않은 원석 그 자체로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이 보물창고를 만든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진짜 어마어마한 양이다.

골렘의 조각이 주는 무게에 휘청이던 대원들도 싯누런 금광金光을 뽐내는 금의 산에 입을 헤 벌리고 감탄을 거듭했다.

연인들과 함께 보물창고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보물창고 안을 둘러보니 왼쪽의 얼마 안 되는 공간의 벽에는 촘촘한 돌 선반이 벽에 붙어있었는데 각종 보석이 멋지게 세공되어서는 종류별로 가죽 주머니에 든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현실에서는 거의 구경하지 못할 만큼 알이 굵은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 토파즈 사파이어 지르콘 아메지스트 등등을 합친다면 최고위 이형종을 사냥해서 위상석을 획득한 것만큼의 가치가 있으리라.

“흐에~? 저게 다 얼마야?”

“여태까지 발견된 던전 보물 창고 중에 손에 꼽을 만큼 대박이지 않니?”

“금 좀 봐~ 너겟 형태인데 크기가 막… 머리만 하고 그래!”

“우와, 와와! 레드 다이아몬드당! 꺅! 블루 다이아도 있어!! 크기 좀 봐~♡”

여자들이 금과 보석에 현혹되어 인증기로 인증 사진을 찍으며 꺅꺅거리고 있었다면 남자들은 무기가 진열되어있던 오른쪽 벽을 보며 한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오른쪽 벽에는 무기나 방어구 거치대가 어마어마하게 나열되어있었지만… 멀쩡한 무기나 방어구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처음에 내가 입구를 만들 때부터 아주 희미한 진동에 몇몇 무구가 잘게 부스러져 내렸는데 보물창고 앞에서 골렘과 툭닥거렸더니 그 충격에 절반 이상이 말 그대로 가루로 변해버렸고 나머지는 프랑이 문짝을 뜯어낼 때 재로 변해버렸다. 상태가 심한 것은 거치대까지 망가져 있었다.

그나마 간신히 형태를 잡고 있는 것들도 훅하고 바람만 불어도 먼지처럼 사라져버릴 위태로운 모습이고 그랬다.

“진짜 안타깝다.”

“그러게…. 칵! 또 부스러졌어!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저절로 부스러져가는 무기와 방어구에 전투 3팀의 대원 한 명이 절망 어린 표정으로 두 손을 부들부들 떤다. 그러다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지 반쯤 울상으로 다가가지만, 몸을 움직이면서 일어나는 미약한 바람에도 못 버티고 무기와 방어구들이 연달아 퍽퍽 소리를 내며 떨어져 쓰레기로 변해버렸다.

“얌마! 다 부서지잖아!! 뭐하냐!”

“뭐 새꺄! 그냥 있어도 부스러지는데 어쩌라고! 으아~!”

“…남자들이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한 대원을 본 정태령 조장의 감상이다. 그런데 옆에 있는 화연이가 왜 움찔거리는 걸까.

초상집에 가까운 분위기를 내는 남자들을 잠시 바라보던 미호는 자기 머리통 크기의 금덩어리를 들어 보이더니 '이게 뭐야?' 하는 표정으로 살펴본다. 그러다 자신의 힘에 찰흙처럼 뭉개지는 금덩이가 신기한지 찰흙을 처음 만져보는 아이처럼 이리저리 주물럭거려보지만 금방 흥이 식었는지 뒤로 휙 집어 던져버리고는 여자들이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는 보석 상자로 관심을 돌렸다.

꽤 큰 석제 상자 속을 들여다보더니 아기 주먹만 한 다이아몬드를 손에 쥐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 오? 오!

그러다 랜턴의 빛을 다이아몬드에 투과시켰을 때 스펙트럼 현상이 일어나자 잔뜩 호기심을 보이며 대원 한 명의 랜턴을 빼앗고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다이아몬드를 비춰 스펙트럼을 쬐기 시작한다.

“아앗! 저, 저걸 저렇게에…!”

“히익. 저러다 떨어트리면 흠집이! 기스가!”

경악하고 기겁한 몇몇의 여자들이 "아아!", "그, 그러면 안 돼요. 미호양!" 하면서 미호의 뒤를 쫓아다니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넓이와 부피를 구하며 대략적인 금괴의 양을 계산하는 프랑과 화연이, 박윤호 팀장에게 다가갔다.

“……금과 은을 다 합쳐서 대강 3,000톤은 되는군.”

“어마어마하네요. 전 세계 연간 채굴량에 맞먹는 양이에요.”

“순도도 굉장히 높습니다. 과학 기술력도 없는 세계에서 순도 96%를 맞추다니, 상당한 수준인데요?”

박윤호 팀장은 검은색 막대기로 금 덩어리의 이곳저곳을 찔러보며 금과 은의 순도를 재보다가 앞으로 휙 던져놓고 다시 입을 열었다.

“금과 은의 비율이 7:3이고 금 1kg당 5천만 원이니… 2,100톤의 금이라면 105조 원인가요? 진귀하고 말도 안 되게 큰 보석도 있으니 저것들을 경매로 팔았을 때의 수익을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수익이네요. 대박 났습니다. 흐흐흐.”

뒤에서 가만히 서 있으니 내가 가까이 다가온 걸 눈치채지 못한 이들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나저나 이런 지하 던전을 찾으신 것도 모자라 보물 창고 위치까지 알아내시다니, 진짜 회장님의 공간 지각은 사기 아닙니까? 회장님께서 마음먹으신다면 지구도 살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미호가 들고 뛰어다니는 아기 주먹만 한 다이아몬드를 본 박윤호 팀장의 감상이다. 그 말에 부정적인 의사를 보인 건 역시나 화연이.

“회장님은 그런 건 귀찮다고 안 하실 분입니다.”

“…아하하. 못한다고는 안 하시는군요.”

힘없이 중얼거리는 박윤호 팀장의 말은 못 들은 척, 프랑이 화연이에게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보다 화연? 이 보물은 배분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서하가 마음먹었다면 혼자서도 다 정리했을 양인 거 같은데.”

“그랑 블루 사내 법률대로라면 던전의 발견도 회장님 하셨고 입구를 여는 것도, 이형종을 처리한 것도, 전부 회장님이 하셨지요. 박윤호 팀장이 내부 선행탐사를 했고 대원들이 운반을 맡는다고는 해도… 이 보물들 역시 회장님께서 아공간으로 모두 옮길 수 있다는 점을 보면 몇 가지 소요 경비와 인건비, 위상 세계 소유자의 인센티브를 제외한 다음 발견자 우대 원칙과 및 기여자 우선 분배 법칙의 퍼센트를 구해보면…. 회장님께 80%의 소유권이 돌아가겠군요.”

“…기여자 분배라고 해도 회장님의 능력을 바로 눈앞에서 봤더니 제 탐색은 그냥 삽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분받기가 부끄러울 지경이에요. 회장님이 마음만 먹으셨다면 현실로 돌아나간 뒤에 던전 탐사 보호복 두어 벌 챙기고 다시 들어와서는 공간 도약으로 보물만 쏙 챙겨가면 되잖습니까.”

“그런 건 아니에요.”

뒤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으려니 좀 창피하고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서 안 되겠다. 박윤호 팀장의 말이 끝날 때까지 듣기만 하다가 끼어드니 세 명은 그제야 내가 뒤에 서 있다는걸 깨닫고 돌아선다.

“회, 회장님.”

“박윤호 팀장님이 말씀하신 것도 맞지만, 레이드 팀은 저 혼자서 해나가는 게 아니잖아요. 여러분들이 이런 경험도 해보고 저런 경험도 해봐야 능숙해지는 거지 저 혼자 날고 뛰어봤자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지 않겠어요?”

저 정도야 며칠 위상석 가진 이형종을 감지해서 잡기만 해도 여기에 있는 보물들의 가치 정도는 모을 수 있다.

거짓말이 아니다. 저번 9회차 때 인어 마을을 나온 다음 2일간 이형종을 잡아서 번 위상석과 사체의 가치가 여기 보물 창고 정도 될걸? 그렇다 보니 귀금속에 대해서는 별로 욕심은 안 나지만 저런 알이 굵은 보석은 좀 탐나긴 한다.

물론 이런 속내를 모르는 대원들은 정태령 조장의 지시에 따라 주변에서 보물을 분류하고 있었는데, 금과 은을 따로 모아 쌓고 원석을 분류하다가 내 이야기를 듣고 감격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던 화연이는 그럴 수 없다면서 고개를 젓는다.

“이득의 분배는 법률에 따라 분배할 겁니다. 이건 레이드 팀의 바탕을 이루는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법칙이니까요.”

“뭐 그건 화연이 알아서 해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대지 속성 능력자가 흙으로 직사각형의 틀을 만들더니 신체 강화 타입의 대원 세 명이 달라붙어 너겟 형태의 금덩어리를 쑤셔 넣고 힘으로 다지며 금괴 金塊로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우와~ 무식한걸. 힘으로 형태를 잡아버리다니.

“덩어리 형태로 쌓여있다 보니 빈 공간이 많이 생겼었나 봅니다.”

분류된 금과 은의 너겟들을 정태령 조장의 지시에 따라 대원들이 금덩어리를 모두 괴로 만들어버리자 어지간한 이층집 사이즈의 금으로 된 직사각형 큐브가 생겨났다. 그 옆에는 그보다 적은 양의 은괴가 대형버스 2대 크기 정도로 쌓여있었다.

“장관이다… 내 생전에 이만한 양의 금을 다시 볼 수 있을 날이 올까?”

“남은 평생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무리일걸?”

“3천 톤이면 현찰로… 얼마냐?”

“100조 원이 좀 넘을 거야.”

“내가 1년 총수입이 150억 정도니까… 히익. 7천년도 넘게 걸리겠다.”

휘황찬란한 금괴의 거대 큐브를 보며 중얼거리는 대원의 소유 위상력 양을 체크해보니 21,900으로 E 클래스 최상급 수준이다. 저 정도라면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 않을 실력인데 1년 총수입이 150억이 많은 것인지 적은 것인지 모르겠다.

뒤에서 수군거리며 누런빛의 황금 큐브를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대원들을 두고 아공간을 열어 금과 은의 큐브를 전부 집어 넣어버리자 헉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이런 운반에 낭비할 시간이 어딨어? 일단 원석은 다 버리는 셈 치고… 얼래? 이건 금화 아냐?

……문명이 있었으니 화폐도 있었겠지. 그런데 시대를 알 수 없을 만큼의 과거에도 화폐로 금화를 썼다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저저저, 저거 3천 톤이 넘을 텐데 그게 아공간에 들어가는 거야?”

“아공간은 무게는 영향이 없고 부피만 문제 된다더라.”

“…우왕. 나도 아공간 능력이 있었으면!”

“아서라. 회장님이니까 활용하시는 거지, 우리 같은 범인들은 아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죄야. 인도의 아공간 능력자 일 몰라?”

“윽, 그랬었지.”

…라와르 씨 일은 역시 일이 안 좋게 끝난 건가? 그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하나 생각했지만… 이미 내 손에서 벗어난 일이다. 그냥 잊어버리자.

그나저나 바닥에 자잘한 금화는 하나하나 주워서 아공간에 집어넣기 귀찮은데… 바닥에 융단처럼 깔린 금화를 보고 머뭇거리고 있으니 정태령 조장은 눈치 빠르게 대지와 바람을 다루는 대원들을 불러 바닥에 떨어져 있는 금화를 모두 회수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그러고는 서성거리는 대원들을 불러 운반용 백팩에 금화 은화를 잔뜩 쓸어 넣기 시작한다.

나는 선반을 돌며 보석 주머니를 아공간에 집어넣고 있으니 화연이가 뒤따라오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사람 머리만 한 루비 원석을 발끝으로 툭 차면서 물었다.

“원석은 버리고 갈 건가?”

“위상력이 깃든 것도 아니고 값어치도 안 나가는 원석이잖아. 짐만 되고 다른 사람들은 이미 스켈레톤의 뼈다귀하고 골렘의 파편으로 짐이 많이 찬 상태고 나머지 공간에 금화들을 채우면… 복귀할 때 나머지 부산물을 챙겨갈 수 있겠어?”

“그쪽은 걱정하지 마라. 그보다 이후에 네가 할 일 말인데, 역시 이곳의 좌표를 확인할 생각이지?”

“응. 석상을 못 봤다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본 이상 내버려 두지 못하겠어.”

금 부스러기도 모두 한곳에 모으는 미호와 그 옆에서 미호가 빼먹은 부스러기들을 알려 주는 프랑에게 눈길을 주면서 말했다.

“프랑하고 미호는 날 따라올 텐데 화연이는 어찌할 거야?”

“……대원들과 함께 돌아가야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얼굴에는 같이 못 한다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녀라고 나와 함께 여행하고 싶지않을리가 없다. 하지만 직책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외면할 그녀가 아니기에 저러는 것이리라.

선반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화연의 허리에 팔을 감아 살짝 끌어안았다.

“화연이가 많은 일을 맡아준 덕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 점은 언제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후후. 신경 쓰지 마라. 회사는 나와 시하가 맡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해.”

“응. 사랑해.”

“읏. 다, 다다다당연히 내가 할 일을 하, 할 뿐인데.”

귓가에 대고 사랑한다 속삭여주니 화연이는 기습 공격을 받은 사람처럼 움찔하면서 붉어진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이런 갭모에가 참을 수 없다니까!

“그러니까 사랑한다고.”

“으읏.”

사람들의 눈이 있기에 입술 대신 뺨에 뽀뽀를 해주자 얼굴이 살짝 풀어진다. 화연이는 얼굴 근육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지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요상한 표정인 채로 내게서 얼굴을 돌리며 부끄러워했다.

부끄러움에 나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화연이가 너무 귀여워 웃으면서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큭큭. 화연인 언제봐도 마음씨가 소녀 같다니까.”

“흣. 놀리지 마라….”

“놀리는 거 아냐. 진짜 귀여워. 엄근진한 표정이랑 모습에서 소녀처럼 부끄러워하는 게 얼마나 날 흥분시키는 줄 알아?”

“으….”

귓불까지 붉어진 얼굴로 귓가에 들리는 내 목소리에 목을 움츠리는 화연이를 보니 저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쾌락에 허덕이게 하고 싶어진다.

“지금 여기서 바로 덮쳐버리고 싶을 정도야.”

“…머, 먼저 가 있겠다!”

앗. 도망간다.

부끄러움을 참지 못했는지 토마토가 "언니!" 할 정도로 붉어진 얼굴을 방한복에 달린 후드로 가린 채 정태령 조장과 박윤호 팀장이 기다리는 곳으로 달려가 버렸다.

대원들은 저 무거운 금괴를 몇 번이나 짊어지고 날라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는지 상대적으로 가벼운 금화와 금 부스러기들을 대형 운반용 백팩에 쓸어담으며 한결 부담을 던 얼굴로 소곤소곤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사이를 걸어가니 박윤호 팀장이 내게 다가와서는 살짝 질투가 난다는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만화나 소설에서나 보던 먼치킨의 실제 능력을 보니 정말… 신은 존재한다는 걸 알겠습니다.”

누구더러 먼치킨이래? …먼치킨 맞나?

“당연히 신은 존재하죠.”

“…네?”

“천국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의롭고 착한 사람들만 쏙쏙 빼내서 빨리 데려가 버리잖아요? 그걸 보면 신은 진짜 악당인 거 같단 말이죠. 그런 착한 사람들만 모두 살아있었어도 세상에 범죄가 많이 줄어들 텐데.”

“…아.”

퍼펑! 파짓. 파싯!

“…서하! 유령이 많이 몰려오는 거 같아요!”

저 멀리서 미호가 여우 불로 입구 통로에서 두 셋씩 몰려오는 유령과 스펙터 페어를 지져버리는 중에 프랑이 손을 흔들며 내게 외쳤다.

“어? 지금 바로 갈게!”

내 엉뚱한 대꾸에 웃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박윤호 팀장을 두고 입구에서 유령과 스펙터를 상대로 슈팅 게임을 하고 있는 미호에게 달려가며 주변을 쓱 훑어보니 위상력은 없지만, 뭔가가 희끗희끗한 게 보물창고의 입구로 몰리고 있었다.

화연이랑 꽁냥거리느라 공간 지각이 옅어져 눈치를 못 챘군.

그나저나 저 숫자는 두 골렘이 죽으면서 터트린 비명에 유령들이 이끌린 건가? 아무리 유령이라지만 내 푸른색 공간의 벽은 뚫고 들어오지는 못하는지 유령들은 출퇴근길 지하철 인파처럼 한 덩어리로 뭉쳐진 채 꾸물거리며 유일한 통로로 밀려들어 오고 있었는데, 그게 강제적으로 1열을 만들어버려서 공격하기 좋은 상태였다.

천연 과녁판에 미호는 신이 난 채 유령 덩어리들에게 화살을 날리듯 시퍼런 화염을 연발 탄으로 날려대며 말 그대로 녹이고 있었다.

짊어지고 갈 짐을 챙겨둔 일곱의 속성 능력자들은 미호의 뒤에서 일렬로 서서 긴장한 모습으로 대기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미호가 공격을 멈추면 뒤이어 공격할 셈인 거 같다.

미호의 화염에 녹아내리는 유령의 숫자에 화연이는 눈썹을 찌푸리며 옆에 서 있는 프랑에게 말했다.

“숫자가 꽤 많군요. 골렘 두 마리의 비명에 이끌린 거 같지 않습니까?”

“저도 그리 생각해요. 대부분 중위급이고 중상위급이 간간히 보여 그다지 위험하진 않지만, 숫자가 너무 많은 거 같네요.”

중위급이 위험하지 않다는 프랑의 말에 일렬로 서있는 속성 능력자들의 표정에 황당함이 물든다.

- 이렇게 계속 잡으면 돼?

“그래. 숫자가 줄어들 때까지 계속해라. 그리고 TP가 1/3까지 줄어들면 말해. 3팀의 대원들과 자리를 바꿔줄 테니.”

- 괜찮아~. 이 정도라면 2시간도 문제없어!

당당하게 소리친 미호는 곧 화염 탄을 쏘아내는 기세는 그대로 유지 한 체 온갖… 중2병스러운 자세를 취하며 오글거리는 대사를 쏟아낸다.

- 이제 망설임은 없어! 꺼져라, 너희는 나에게 있어 시련의 축에도 들지 못한다!

저런 단어는 또 어디서 배운 거야. 어째 중2병의 끼가 살짝 보이는데… 괜찮을까?

============================ 작품 후기 ============================

다음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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