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42화 (442/517)

00442  눈 밭 속의 던전  =========================================================================

입구에서 보물 창고에 가기 위해서는 18개의 방을 지나쳐야 하는데, 3시간 동안 12개밖에 넘어가지 못하자 생활보조 능력자들이 살짝 지쳐가는 게 보였다.

까드드드득!

13번째 방에 들어서니 110평 정도는 되어 보이는 공간에 톡 건드리면 부서질 만큼 낡은 긴 의자와 테이블이 여러 개가 놓여있었다. 한쪽 벽에는 화덕처럼 보이는 아궁이도 여러 개가 있는 걸 봐서는 식당인가 싶다.

그리고 바닥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뼈 무더기가 이리저리 어지러이 널려있었는데, 선두의 박윤호 팀장과 화연이가 방 안에 들어서니 뼈들이 뼈 특유의 경쾌한 타음을 울리며 스켈레톤의 형상으로 하나둘 일어서기 시작한다.

“전열 대기!”

그 모습에 빠르게 대기 명령을 내린 화연이가 가장 먼저 이스펙트를 움켜쥐며 뛰어들자 박윤호 팀장은 얼른 탐색 도구를 챙기고 뒤로 물러섰다.

- 겁쟁이!

뒷걸음치는 박윤호 팀장의 모습에 미호가 톡 쏘아주고는 신체 강화 꼬리와 화염 꼬리의 힘을 일으켜 방 안에 난입해 스켈레톤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겁쟁이 아닙니다. 싸우면 탐색 도구가 망가진다고요….”

억울한 목소리로 어깨를 떨어트리며 중얼거리는 박윤호 팀장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방 안의 모습을 살펴봤다.

스켈레톤은 전부 해서 스물넷. 대부분이 중위에서 중상위급의 스켈레톤 나이트 급이다. 무기도 방패도 없어 무력적인 면에서는 별 볼 일 없어 보여 도와줄 필요는 없는 거 같다.

종횡무진 스켈레톤들을 휩쓰는 화연이와 미호의 활약에 그렇지않아도 부스러지기 직전이던 목제 테이블과 의자는 금방 제 형태를 잃고 먼지를 피워올리며 무너져내린다.

화연이가 짧고 절제된 동작으로 이스펙트를 휘두를 때마다 스켈레톤의 두개골이 깔끔하게 박살 나는데 반해 미호는 조막만 한 주먹과 발을 연신 내지르며 스켈레톤의 몸통뼈를 사정없이 박살 내버리지만 그렇게 박살 난 스켈레톤들은 얼마 가지 않아 금방 복구되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미호. 이것들의 약점은 머리다. 머리만 부셔.”

- 우잉? 이익! 치사해!

…뭐가 치사한지 모르겠다. 화연이의 조언에 입을 앙다문 미호는 자기 앞에서 다시 일어나려는 스켈레톤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수도를 내려쳐 정체 모르게 생긴 두개골을 박살 내버렸다. 머리가 박살 난 스켈레톤은 다시 뼈다귀로 변해 바닥에 와르르 떨어져 내린다.

둘이 상대 중인 스켈레톤은 인간의 뼈 형태로는 안 보인다. 두개골은 부리가 달린 듯 주둥이가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고 두개골의 곳곳에 혹처럼 불룩불룩 솟아있는 모습인데 몸의 뼈도 사람과 많이 달라 보였다.

특히 갈비뼈는 죄다 이어져 판금 갑옷처럼 보일 판이고 다리가 짧고 팔이 긴 데다 꼬리뼈가 있는 곳도 뭔가가 달렸던 듯한 흔적이 남아있다.

뼈와 뼈가 부딪치는 소리. 박살 나는 소리와 미호의 귀여운 기합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한 마리의 스켈레톤이 어떤 놈의 허벅지 뼈를 양손에 하나씩 움켜쥐고 뼈를 덜그럭거리며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게 보였다.

“흠.”

어쩔까 하다가 아공간에서 대해의 창을 꺼내 TP를 창대에 밀어 넣어 물화살 하나를 날렸다.

푸화화홯!!

아차. TP를 너무 많이 집어넣었…!

- 으꺄앙?!

다량의 TP에 번개 같은 속도로 날아간 물회오리는 달려오던 스켈레톤을 잘게 분쇄해버린 뒤에 직선거리에서 날뛰던 미호를 사정없이 두들기고 사라졌다.

미호는 신체 강화를 돌리고 있어서 크게 다친 거 같진 않은데… 난데없는 물벼락에 얻어맞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더니 정신없다는 듯이 헤롱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마지막 스켈레톤마저 창대의 끄트머리로 박살 내버린 화연이는 창을 한차례 휘둘러 창대에 묻어있던 뼛가루를 털어내더니 바닥에 떨어진 뼈다귀를 들더니 이리저리 강도를 시험해보다가 생활 보조 능력자들에게 손짓해 뼈다귀들을 주워 담으라고 지시를 내렸다.

“생활 2조 3조는 들어와서 성한 뼈만 챙깁니다.”

“““예!!”””

나는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된 미호에게 다가가 녀석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집어넣어 일으켜주었다. 어질어질한 표정으로 머리를 잡고 헤롱거리던 미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더니 화난 얼굴로 자길 때린 게 뭐였는지 확인하려 주변을 살펴본다.

- 방금 머야? 물회오리 뭐야?

“미안. 내가 쏜 건데 약하게 쏘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실수했어.”

- ……우우~!

내 실수라는 말에 홀딱 젖어있던 미호는 온몸에 묻어있던 물을 증발시켜버리고는 양 허리에 손을 올리고 뾰로통한 얼굴로 날 올려다보며 불만을 표시했다.

“많이 아팠어?”

말없이 표정으로만 항의하는 미호에게 씩 웃어주면서 머릴 쓰다듬어주자 미호는 뿔난 표정으로 화낼까 말까 여우 귀를 파닥거리면서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좌우로 젓는데, 어느샌가 다가온 프랑이 웃으면서 화난 얼굴로 미호의 뺨을 잡아 한껏 늘이기 시작한다.

- 후꺄?!

“미~호~야~? 언니가 싸울 땐 사방 경계를 어떻게 하라구 그랬지~?”

- 후히잉!! 아냥! 하구 이썼눈뎅 주힝니미힝!

뺨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미호는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필사적으로 프랑의 팔뚝을 탁탁 때리면서 변명하지만, 프랑의 매서운 손매는 풀어질 기미가 없다. 그래서 그녀의 손을 잡아 힘을 빼게 하면서 말했다.

“미호 잘못이 아니라 내가 쏜 물화 살이 너무 빨라 미호가 미처 못 피한 거야. 피하지는 못했지만 물회오리라는 건 확실하게 캐치했잖아?”

“그…랬나요? 제가 봤을 땐 서하의 마나 탄보다 느려 보였는데.”

확실히 마나 탄보다는 느렸지만 거의 번개처럼 쏘아져 나갔는데 그걸 봤단말야?

“글쎄, 초위급도 어지간해서는 잘 피하지 못한 속도의 마나 탄 속도인데 그보다 조금 느린걸 미호가 본 것만으로도 칭찬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프랑은 내 말에 조금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뺨을 꼬집고 있는 손을 떼고는 붉게 물든 미호의 뺨 살살 어루만져주며 사과했다.

“…그렇네요. 미호야? 이번은 언니가 잘못했네. 미안해.”

- 우으~!

프랑이 사과하니 반사적으로 기세등등해진 미호는 볼을 한가득 부풀리며 프랑을 째려보더니 이때다 하는 것처럼 한껏 으스대는 투로 말했다.

- 프랑은 잘 알지두 못하면서 그래! 내 뺨은 떡이 아니란 말야! 프랑 바보!

프랑은 미호 녀석이 으스대는 모습을 잠깐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더니 곧 분노가 느껴지는 미소를 한껏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응 맞아. 언니가 잘못했어. 하지만 그 정도도 못 피하다니, 언니는 훈련이 이 정도면 충분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많이 부족했나 봐.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서 미안해. 그러니까 돌아가면 그것도 쉽게 피할 수 있을 만큼 훈련 강도를 높이자?”

- 힉? 아, 아냥! 아니야! 피할 수 있었는데 내가 귀찮아서 안 피했던 거야!

……큭큭. 그 패턴은 사망 플래그다, 미호야.

훈련 강도를 높인다는 이야기에 화들짝 놀란 미호가 두 손을 붕붕 휘두르며 말을 고치자 프랑은 이때다 하고 짐짓 싸늘한 눈빛으로 미호의 어깨를 움켜잡고 째려보기 시작한다.

“…그럼 언니 생각대로 사방 경계를 게을리 했다는 거지? 마음이 해이해질 만큼 훈련 강도가 약했던 거 같으니 돌아가면 굉~장히 많이 높여야겠네!”

- 앗?! 아니, 그게! 그러니까아…!

일부러 맞아줬다고 하면 괘씸죄로 훈련 강도 대폭 상승. 알지만 못 피했다면 훈련 강도 소폭 상승. 어느 쪽을 선택해도 미호의 입장에서는 배드 엔딩이다.

미호도 그걸 깨달았는지 눈에 띄게 암담한 얼굴로 한참을 끙끙 앓았지만, 녀석이 선택할 선택지는 하나뿐이지. 녀석은 결국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 시, 실은 날아오는 거 알았지만… 못 피해쪄… 히잉.

큭! 우, 웃으면 안 돼…!

미호는 현실로 돌아가면 훈련 강도가 늘어난다는 생각에 엄청나게 좌절 중이라 눈치 못 챈 거 같지만, 내 눈에는 웃음을 억지로 참느라 프랑의 어깨가 잘게 떨리는 게 보인다!

아, 안돼. 계속 보고 있다간 웃음을 터트릴 거 같아…!

고개를 팩하고 돌려 심호흡하며 웃음기를 다스리는데, 우연히 돌아본 곳에 화연이가 정태령 조장과 함께 한쪽 벽에 붙어있는 화덕 같은 것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정태령 조장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린다.

“이것들 모두 영상으로 남겨 복귀한 뒤에 영상분석팀에 넘기도록 하지요.”

“예.”

인증기를 켜서 자료화면을 수집하는 정태령 조장을 뒤로하고 나에게 다가온 화연이는 세상만사 포기한 모습으로 주저앉아있는 미호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날 보며 말했다.

“가는 길에 이런 뼈 무더기가 더 있나?”

“있긴 하지만 이만큼 대규모는 아니야. 남은 방 4개를 다 합쳐도 두개골은 10개가 채 안 돼.”

“흠. 공간 지각으로 봐서는 이 방의 뼈도 그냥 평범한 뼈였다는 거지.”

“응.”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화연이는 허여멀건 뼈다귀들을 모두 챙겼다는 대원의 보고에 다시 출발한다며 대열을 갖추라고 지시를 내렸다.

애초에 대원들 전부가 달려들어 몇 안 되는 사람의 가방에 뼈다귀를 채워 넣었기에 금방 작업이 끝난 그들은 화연이의 명령에 다시금 2열 횡대로 섰고 정태령 조장도 영상 기록을 마치고 대열로 복귀하자 박윤호 팀장도 선두에 서서 들어왔던 통로의 반대쪽에 붙어있는 길로 걸음을 옮겼다.

보물 창고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길은 복잡해져서 통로와 방을 가릴 것 없이 수많은 갈림길이 나타났다. 하지만 내 공간 지각 덕분에 헤메지 않고 내가 가리키는 길로만 나가던 박윤호 팀장은 16번째 방에서 이형종이 아닌 평범한 뼈다귀를 발로 밟아 가루로 만들면서 감탄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이 아니셨다면 이 인원으로 탐색하기에는 어림도 없는 넓이군요.”

오던 길마다 특수한 빛을 비춰야만 보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발광 도료를 칠해서 길을 표시하던 박윤호 팀장이다. 그의 이야기에 화연이는 덤덤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시당초 회장님이 아니었다면 발견도 못 했을 던전이고, 천운으로 발견했다손 쳐도 이런 구성으로 탐색한다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집니다. 특히 던전의 입구 근처인데도 유령과 스켈레톤이 출몰하는 걸 생각해본다면… 레이드 기간이 한 달이 아닌 두 달로 늘어났을 겁니다.”

“하하. 무튼 편하긴 편합니다만 뭔가… 회장님과 같이 다니면 너무 편해서 자기 계발이 전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히에에엑! 하면서 나타난 유령을 호박색 공간의 벽을 쳐서 분해시키는 나를 본 박윤호 팀장의 감상이다.

“고위 클래스의 능력자들로 이루어진 버스를 탄다면 이런 느낌이겠지요.”

버스라, 버스라는 게임 용어가 현실에도 적용될줄은 몰랐네. 물론 버스라기보단 택시나… 리무진 쪽이 더 어울리겠지만.

하급의 능력자가 고위 능력자의 팀에 끼어서 편하게 위상력을 늘리는 건 레이드 팀을 소유한 그룹의 로열패밀리들 뿐이겠지.

그 인간들이 언제 시내버스나 고속버스 같은 걸 타봤겠어?

“하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곳입니다.”

“석연치 않다니, 뭐가요?”

뜬금없는 박윤호 팀장의 말에 의아해서 물어보니 그의 간단한 설명이 이어진다.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지하에 사는 것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지상의 폐허의 규모는 그야말로 방대한 크기인데 어째서 지하에 이만한 사이즈의 던전을, 그것도 생활형으로 만들어놨을까요. 회장님께서는 크고 작은 방이 600개가 넘게 존재한다고 하셨죠? 하지만 제가 살펴본 바로는 방의 구조나 기물들은 도무지 지하에서 사는 것들의 생활 양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무슨 말씀이신지?”

“성터의 주민들이 살던 곳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요.”

“……? 노예들이 살던 곳이라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내 대답을 심사숙고하던 박윤호 팀장은 곧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는데, 간단히 고개를 끄덕여주니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뭐, 가정일 뿐이니까요. 여긴 대체로 비슷한 형태의 두개골뿐이지만 좀 더 깊이 내려가면 형태가 다른 것들도 있는 걸 보고 떠올린 걸 말해본 것뿐이에요.”

“……그렇다고 해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군요. 노예 제도라니.”

평범한 능력자라면 저런 반응이 보통이겠지. 하지만 난 몇 번의 환영과 누호디의 인생을 지켜본 적이 있다. 환영에서는 여성형의 여러 종족이 성노예로 취급받는 걸 봤고 누호디의 마지막 인생은 검투사와 비슷한 노예였으니까. 경험에서 우러러나온 판단인 셈이다.

하지만 이것도 정답이라고 하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노예들이 사는 곳에 저렇게 보물이 모여있을 리가 없으니까 말이지.

박윤호 팀장이 믿든 믿기 어려워하든 간에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아 그를 재촉해서 이동을 개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구형의 거대한 공간이 눈앞에 드러났고 보물 창고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철문? 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문장처럼 문의 좌우에 버티고 서있는 악마 형태의 석상 두 개도.

============================ 작품 후기 ============================

다음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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