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41 눈 밭 속의 던전 =========================================================================
고위 아종인 미호가 신체 강화로 저항하려는걸 감안해보면 프랑이 체벌을 주는게 효과적이긴 하지만, 두터운 방한복 위로도 눈에 띌만큼 부은 엉덩이를 보니 조금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엉덩이가 팅팅부어서는 의자에 앉아있는 내 무릎 위에 엎어진채 징징 우는 미호를 달래주다보니 어느덧 진입 시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화연이는 살짝 긴장감이 감도는 대원들의 분위기를 확인한 뒤에 이번 탐색의 목표를 선언했다.
“이번 탐색의 목표는 지하 120m 지점에 있는 보물 창고입니다. 최단거리로 보물 창고를 향해 이동, 보물을 모두 확보한 뒤 주둔지에 복귀 후 부산물을 챙기고 귀환하는것이 일차적 목표가 됩니다.”
보물 창고라는 이야기에 대원들 사이의 분위기가 살짝 바뀐것을 확인한 화연이는 다시 입을 열였다.
“이번 이동에 대원들은 전투에는 참여하지않으며, 전투는 오직 회장님과 플랑드르 에반스, 미호에게 일임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해야할 일은 보물 창고의 보물을 확보 후 운반하는것으로 복귀시에는 많은 양의 짐을 들게 될 예정이니 소지품을 최대한 비운채 몸을 가볍게 한 다음 출발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소지품 정리를 시작합니다.”
“““예!!”””
화연이의 담담하면서도 위압감이 배어나오는 목소리에 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짐중에서 빈 백팩을 꺼내 준비하기 시작한다.
대원들의 움직임으로 대기 장소가 부산스러워지니 미호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날 올려다본다.
- 주인니이임… 엉덩이가 너무 아파….
말 안해도 엉덩이가 2배 가까이 커져서 엄청 아파보여.
프랑은 회복시켜주면 벌의 의미가 퇴색되니 치유해주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이대로는 탐색에 지장이 생길판이다.
훌쩍거리는 미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힐링 터치를 일으켜 녀석의 영덩이를 쓰담쓰담해주니 일곱개의 꼬리가 간헐적으로 움찔거리며 사방으로 펄럭거린다. 그 모습을 화연과 함께 멀리서 지켜본 프랑이 살짝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몇번 쓰다듬기도 전에 붓기가 완전히 가라앉자 미호는 엉거주춤하니 일어서서 손으로 엉덩이를 문지른다. 환각통이라도 느끼는지 미간이 잔뜩 올라간게 귀엽기 짝이없는 표정이다.
녀석을 냅두고 다른 대원들처럼 똑같은 빈 백팩을 짊어지는 화연이한테 걸어가니 마침 잘왔다며 내가 해야할 일을 알려준다.
“대형의 선두에는 박윤호 팀장이 설거다. 그때 미호와 함께 그의 곁에서 유령을 보이는족족 잡아주면 된다. 스켈레톤 타입은 내가 해치운 다음 뼈를 챙길 생각이니 공간의 벽으로 분해는 하지 말아주면 좋겠군.”
“알았어. 그런데 어차피 내가 아공간에 챙겨들고 나올텐데 이럴 필요가 있을까?”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해서 잉여 인력을 만드는것은 좋지 않으니 뭐라도 시켜야하지 않겠나.”
그런가? 화연이가 저리 말하니 그런가보다 해야겠다.
화연이의 선언에 있고 얼마 지나지않아 준비가 끝난 대원들은 질서 정연하게 2열 횡대로 서서 진입 준비를 마쳤다. 가장 선두에는 박윤호 팀장이 서고 그 뒤에는 화연이가 백업 및 지시를 내리게 된다.
나와 미호는 세번째 줄에서 진형 전체를 받쳐주기로 했고 프랑은 후미에서 혹시모를 긴급 상황에 대응하기로 했다. 생활 보조 2조와 3조의 조원들은 무력이 없기에 진형의 가장 중심에 진형의 중심에, 전투 3팀은 후열에 선 형태다.
“사실 서하는 밖에서 공간 지각으로 이형종만 처리해줘도 충분하긴 한데.”
“그럼 빠질까?”
던전으로 입장 중에 화연이가 뒤에서 따라가는 날 보며 중얼거리길래 장난스럽게 웃으며 이야기하니 화연이도 살짝 미소를 띄면서 대꾸했다.
“후후. 네가 옆에 있어주니 모두 안심하는게 보이지 않나?”
그게 보이나? 슬쩍 뒤를 돌아보니 잔뜩 긴장한 정태령 조장과 생활보조 조원 밖에 안보인다.
“다들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어딜 봐서 안심하고 있다는거야.”
“아닙니다. 회장님이 아니셨다면 저희는 던전에 진입한다는 생각도 못했을겁니다.”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 내 뒤에 선 정태령 조장이 직접 대답해왔다. 이러는 사이에 박윤호 팀장이 던전에 진입하자 곧장 화연이의 커다란 목소리가 짧게 터져나왔다.
“인사이드 A!”
그러고는 던전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inside A가 뭐더라? 그랑 블루 지형적응진형으로 앞열과 적당히 간격을 벌리고 완보 속도로 걸으며 간격 유지였었나?
던전안으로 들어서니 예상외로 습기는 전혀 느껴지지않고 바짝마른 돌냄새만 은은하게 풍겨온다. 통로는 벽돌같은걸로 촘촘히 짜놓은 직사각형 형태로, 폭이 7m 가량이며 높이는 그보다 낮은 4m 정도였는데 완만하게 비탈이 나있어 꾸준히 아래로 내려간다는 느낌이다.
바닥에는 살짝 나무 부스러기같은게 어지러이 널려있어 아까 대류 현상의 여파라는 생각이 들었다.
찰칵. 딸칵. 달각달각.
대열의 중간중간 랜턴이 머리위로 들어올려지며 주변을 환히 밝히기 시작한다. 환해진 사방의 벽을 살펴보니 죄다 시커먼 색이다.
문득 던전안에서 이렇게 빛을 뿜어내도 괜찮은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살아있는 이형종들도 아니고 죄다 언데드 타입인데 뭐 상관있겠나 싶다. 쫓아와도 사람의 인기척이나 살아있는 자의 온기에 이끌리겠지.
“벽돌이 검은색이네. 이런 색의 던전은 던전 일람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뭔가 꺼림칙하지 않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의 몸 속에 들어와있는 기분이야.”
뒤에서 수근거리는 대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70평은 되어보이는 방에 진입했는데, 주변을 쓱 둘러보니 눈에 띄는것도 없고 그냥 이런저런 먼지나 나무 가루, 톱밥 부스러기같은것들이 깔려있는 빈 방일뿐이다.
빛이라고는 랜턴뿐인 방 안에 대원들의 그림자가 벽에 반사되며 일렁이고, 대원들의 몸에는 빛이 비쳐 기묘한 음양이 져있어 묘하게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6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인데도 발소리도 거의 없고 일체의 잡담도 없어 침묵이 진하게 깔려 더 그런거같다.
꼴깍.
누군가가 침을 넘기는 소릴 들으며 첫번째 방을 지나쳐 간다.
흐으으으으.
“히익.”
바람이 흐느끼는듯한 소리가 들려오자 함께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새된 비명이 자그마하게 흘러나왔다. 귀곡성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방금 들은 소리도 귀곡성의 일종이 아닐까.
공간 지각을 좀 더 예민하게 돌려봤지만 이형종은 감지되지 않고 미호도 가만히 있는걸 봐서는 유령이나 스펙터가 나타난건 아닌거 같다.
저벅저벅.
바닥에 깔린 가구의 부스러기? 먼지? 같은게 사라질수록 대원들의 발걸음 소리가 조금씩 크기 울리기 시작한다.
아까의 옅은 귀곡성에 안색이 창백해졌던 생활 보조들의 표정이 무수한 인원의 발자국 소리에 조금씩 편하게 변하는걸 보니 생각 외로 심적인 부담감을 많이 받고 있는거 같다.
그렇게 방을 4개 정도 통과한 다음 5번째 방을 나와 복도로 들어가는 순간 박윤호 팀장이 짤막하게 입을 열었다.
“보스.”
“모두 정지.”
그의 뜻을 눈치챘는지 화연이 역시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자 내 뒤로 대원들이 조용조용하게 말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여기부터는 검출기로 조심스럽게 앞서겠습니다.”
“완보로 이동.”
“대원들한테 좌우 벽에서 좀 떨어지고 중간에서 밀착한채로 움직이라고도 해주세요.”
화연이의 명령에 한가지 요구 조건을 덧붙이니 이야기를 전하려다말고 정태령 조장이 의아한 얼굴로 날 바라본다. 화연이도 날 돌아보며 왜 그러냐고 물었다.
“왜 그러지? 뭔가 감지한게 있나?”
아까부터 미호가 내 소매를 콕콕 잡아당기며 벽 속에 뭔가가 있는거 같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나도 알고 있었지만 위상력이 잘 느껴지지 않아 이형종은 아니지 않나 짐작하고 있었지만… 역시 대비는 해놓는게 좋겠다 싶어 말했다.
“별건 아니고, 몇몇 유령이 땅을 뚫고 오는거 같아서. 공중에 떠서 가자고는 할 수 없으니 공간의 벽을 칠 공간은 확보하는게 좋으니까.”
“히이익.”
“아오. 야, 신민주. 닥치지 못해?!”
내 이야기에 대열의 중간에 있는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신음을 흘리자 옆에있던 대원이 흠칫 놀라더니 짜증난다는 목소리로 자그마하게 소리 죽여 윽박지른다.
“죄, 죄송해요오오.”
“씨블… 좀 입 다물어. 비명 나올거 같아도 입 틀어막고 버텨. 니가 그 지랄할때마다 다들 움찔거리는거 안보이냐, 응?”
“죄송합니다아!”
신참과 고참인가? 고참의 짜증이 한트럭 섞인 갈굼에 신참으로 보이는 여자는 사색이 된 얼굴로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사실 나도 귀곡성보다 저 신음이 좀 오싹하긴 했다. 작은 목소리로 오가는 갈굼은 주변을 의식해서인지 금방 끝이났지만 정태령 조장은 자신의 조를 돌아보고 한숨을 쉬더니 나와 화연이에게 죄송하다는듯이 머리를 꾸벅 숙였다.
2열 횡대로 움직이던 대원들은 내 이야기에 서로 어깨가 딱 붙을정도로 밀착해서 좌우에 넓은 공간을 만들고 거의 일렬처럼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잠깐 헤프닝이 일어났지만 박윤호 팀장은 뒤돌아보지 않고 오직 복도에 있을지 모르는 함정과 유독 가스의 존재에 온 신경을 쏟으며 천천히 진행해나갔다.
“그런데 함정이면 기관機關같은게 있지않아?”
“함정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네가 말한 기관, 벽이나 바닥 속에 기관장치를 매립해 지나가는 존재에게 물리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 다른 하나는 특수한 주문진으로 특정 조….”
끼아아… 아아아악…!!
그 순간 대열의 중간쯤에서 귀곡성을 지르며 벽을 뚫고 튀어나온 스펙터를 공간의 벽으로 간단하게 지워버렸다. 벽에서 튀어나온 스펙터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서 움츠러들던 생활 보조 대원들이 호박색 공간의 벽에 녹아내리는 유령을 보더니 가슴을 쓸어내린다.
“……조건을 만족할 경우 각종 속성력으로 데미지를 주는 함정이지. 방금 스펙터는 몇등급이었지?”
“중상위급. 대충 위상력 2300정도였어.”
“…정말 지하 깊은 곳에는 소울 리퍼가 나타날 수도 있겠군.”
자그맣게 중얼거리는 화연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에게만 보이는 푸른 안개가 허공에서 흘러나오는것을 지켜봤다.
잠시 허공을 유영하던 위상력은 조금씩 생활 보조들의 몸에 흘러들어간다. 위상력이 조금씩 몸에 흘러들어오는걸 느꼈는지 생활 보조 능력자들의 안색이 조금 펴지기 시작했다.
침묵을 유지하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위상력이 증가하는것이 꽤나 기꺼운 모습이다.
그렇게 총량의 20% 가량이 생활 보조 능력자들의 몸에 흘러들어가고 나머지 80%는 역시나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방금 함정에 대해서 물어본건 왜지?”
“어? 아, 별건 아니고 공간 지각으로 개미굴 전체를 살펴봤을땐 함정으로 보이는 기관장치는 하나도 안보여서. 여기에는 함정같은건 없는게 아닐까해서 물어본거야.”
내 목소리가 앞서 나가던 박윤호 팀장에게도 들렸는지 잠시 멈칫한 그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까보단 약간 빨라진게, 함정의 유무가 이동 속도에 많은 영향을 줬나보다.
“그랬나? 특수 함정은 안보였고?”
“특수 함정은 어떤 종류가 있는지 모르니까 뭐라고 못하겠네.”
“그렇군.”
꺄아아…아악!
파지짓!
이번에는 허공에 갑자기 나타나려던 유령이 미호의 여우 불에 홀라당 타버렸다. 나타나자마자 시퍼런 여우불에 녹아내리는 유령의 모습이 좀 섬뜩하긴 한데, 생활 보조 능력자들은 유령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녹아내리는게 안심이 되는지 아까보다 안색이 더욱 펴진다.
…솔직히 나도 유원지의 귀신의 집이나 호러영화처럼 사람 깜짝깜짝 놀래키는건 진짜 질색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도 많고 유령이라고 해도 조질수 있는데다가 사람 심장 두근거리게 만드는 인위적인 파랗고 빨간색의 번쩍임 효과나 지랄같은 무서운 배경음악도 없어서 별로 무섭지가 않다.
그건 대원들도 마찬가지인지 몇몇은 오히려 위상력이 늘어난다는 사실에 주먹을 꼭 쥐고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왓. 클래스 한 단계 올랐다!”
“크크. 좋냐?”
“헤헤. 이제 H 클래스지만 클래스가 올랐으니 힘이 조금 더 늘어날거아님까? 일도 더 쉬워질테고 연봉도… 히히.”
나랑 나이가 비슷해보이는 생활 보조 능력자가 헤실헤실 웃으며 대답하자 옆사람들도 피식 웃는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이군.
……이제 슬슬 능력자들에게 비밀엄수 서약을 받고 TP를 포인트당 돈받고 주입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어도 될거 같은데. 나가면 연인들이 모인 장소에서 이야기해볼까?
그 뒤로 한 두 마리씩 유령과 스펙터가 나타날때마다 나오는 족족 잡으니 생활 보조 능력자들이 너도나도 클래스가 오른다며 즐거워했다.
비록 한마리당 한명이 8 점에서 12점정도 밖에 못먹지만 그게 몇번 쌓이니까 클래스가 낮아 위상력 총량이 적은 생활 보조 능력자들의 클래스가 빠르게 오르는거였다.
“엇?!”
“왜 소리 지르고 그래. 조용히 해.”
“아, 그렇지. 미안.”
“…소리는 왜 지른건데?”
“그게 말이지. 나 F 클래스로 올랐어.”
“뭐?” “엥?” “뭐야. 너 G 클래스가 한계 아니었어?”
대열의 중간에 약간의 소란이 일어나길래 귀를 기울여봤더니, 생활 보조 능력자 중 한명이 F 클래스에 오른듯하다. 전투 3팀의 능력자들도 살짝 놀란 얼굴로 F 클래스가 됐다는 사람을 보며 소근소근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주변 사람들도 부럽다는듯이 한마디씩 하니 좁은 통로가 금방 웅성거림에 가득 찬다.
점점 시끄러워지는 상황에 화연이가 나서서 간단히 조용히 시킨 뒤에 입을 열었다.
“지금 이야기 꺼낸 사람은 누굽니까.”
“생활 보조 3조의 한철규입니다!”
“주둔지에 복귀하면 면담을 실시하겠습니다. 업무가 끝나는 시간에 찾아오세요.”
“예!”
“모두 클래스가 한 단계씩 오르는것에 기쁜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 서 있는 장소가 던전이라는걸 잊지마시길.”
화연이의 말에 사람들이 침을 꼴깍 삼키며 다시금 풀어진 긴장감을 바로잡기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으아... 비축분이 바닥났네요;
요 몇일 분량이 적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가족중에 누군가가 아프면 다른 가족들의 생활 밸런스도 무너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일주일동안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살았더니 그 말 뜻이 뼈에 사무칩니다.
그래도 나쁜 소식은 없어서 다행이에요.
여러분들도 곧 가을 오는데 환절기 조심하시고 건강 챙기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