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34화 (434/517)

00434  앞으로 한걸음.  =========================================================================

1층 홀에 내려가니 프랑이 미호를 붙잡고 위상 세계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가르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신기하다고 해서 막 혼자 뛰어놀러 가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어디 갈 땐 나 아니면 서하한테 꼭 허락 받아야 해.”

- 응!

똘망똘망한 눈으로 프랑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미호가 사랑스러운지 프랑은 두 팔을 벌려 껴안더니 뺨을 부비부비한다.

“아휴. 귀여워~!”

- 프랑 간지러워~.

미녀와 미소녀의 스킨십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입가에 미소를 띠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렇지않고서야 일하느라 오가던 메이드들이 헤벌쭉 웃으면서 프랑이랑 미호를 훔쳐볼 리가 없지.

프랑이 해주는 포옹이 기분 좋은지 꼬리를 동그라미 그리듯이 빙글빙글 돌리는 미호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프랑에게 물었다.

“준비는 다 끝났어?”

- 다 끝났어!

“네, 이제 출발만 하면 돼요. 그런데 약속 시각까진 아직 2시간 정도 남았는데 벌써 가시게요?”

빙빙 돌던 풍성한 일곱 개의 꼬리가 사람의 손처럼 내 몸을 더듬길래 그중 하나를 잡아서 만지작거려보니 감촉이 더 부드러워진 거 같다. 예전에는 조금 뻣뻣한 감이 없진 않았는데 지금은 솜털을 만지는 것처럼 보드랍기 짝이 없다.

“응. 그냥 기다리려니 심심해서.”

내가 꼬리를 만지작거리니 엉덩이를 나한테 들이밀기 시작하는 녀석에게 꼬리의 끄트머리로 여우 귀를 간지럽히니 - 꺄하하! 하고 웃으면서 두 손으로 귀를 가리고 멀리 도망가버린다.

“그럼 화연에게 연락할게요.”

공간 도약으로 바로 갈…까 하다 급할 게 뭐 있나 싶어 미호의 능력으로 천천히 날아갈 셈으로 휴대폰을 꺼내 드는 프랑을 말렸다.

“아냐. 그냥 천천히 가지 뭐. 미호 이리와.”

저만치 떨어져서 꼬리를 손질하는 미호를 부르자 잽싸게 뛰어온다. 가까이 다가온 녀석을 덥석 붙잡으니 새하얀 삼각꼴 모양의 여우 귀가 만져달라는 듯이 불규칙적으로 까닥거리기 시작했다.

“회사로 가자. 바람으로 띄워줘.”

- 날아서 갈 거야?

“그래. 빨리 갈 필요는 없어.”

- 알았어!

꼬리 하나가 녹색 빛을 발하자 나와 프랑의 몸 주변으로 위상력이 스며든 바람이 불어와 나와 프랑의 몸을 들어 올린다. 그 상태로 저택을 빠져나와 천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날아가는 도중에 이유 없이 몸을 배배 꼬며 수줍어하던 미호는 한순간 눈동자를 빛내더니 내 등에 답싹 업혀 왔다.

- 후히히.

뭐가 좋은지 등에 업혀서는 히죽히죽 웃는 미호를 힐끔 돌아봤다가 옆에서 날고 있는 프랑의 옷차림을 보며 물었다.

“프랑하고 미호는 갑옷 같은 거 필요 없어?”

- 난 갑옷 싫어… 입으면 답답해!

…뭐, 미호는 고위 아종인 데다 신체 강화를 돌리면 거의 최고위 수준이 되니 딱히 안 입어도 되긴 하지. 그건 프랑도 마찬가지지만 맨살을 드러내고 다니는 건 뭐랄까, 좀….

“필요 없다기 보다는 제 몸보다 단단한 방어구가 있으면 입겠지만 그런 건 거의 없으니까 못 입는 거지요.”

“하긴. 프랑은 맨몸으로도 엄청 단단하지? 그렇게 단단하면 감각 같은게 죽어버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다른 잡색이 섞이지 않은 눈부시게 하얀 스패츠와 흰색 바탕에 파란색 선이 아름답게 수 놓인 미니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프랑은 드레스의 끝단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

“네. 인간이랑 똑같지만 똑같지 않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모습은 흡사하지만 생물 분류에서부터 동물계가 아니라 이형종계… 라는 느낌?”

“그래도 상태 이상 같은 건 주의하는 게 좋지 않아?”

“맞아요. 그 때문인지 저번에 서하가 구해온 실버 뱅의 가죽 있잖아요. 얼마 전에 시하님이 그것을 가공해서 상·하의를 만들어준다고 하셨거든요? 그게 만들어지면 그걸 입고 다닐 생각이에요.”

“아, 그게 있었지.”

더럽혀지지도 않을 테니 예쁜 프랑이 입고 다니기엔 딱이겠군.

“흠. 히아리드는 그래도 갑옷을 만들어줘야 할 텐데.”

“시하님이 히아리드에게 방어구를 만들어줄 테니 원하는 형태를 말해보랬었는데 거절했어요.”

“으잉? 왜?”

“날개가 자신에게 가장 강한 방어구라면서 방어구를 만들 돈으로 아름다운 옷을 사달라던걸요?”

“맞다. 그랬지 참.”

개량하기 전의 마나 탄과 마나포에도 버티던 날개였으니까 최고위 아종이 된 지금은 더 단단하겠네.

“C 클래스 능력자의 속 성탄 정도에는 직격당해도 그을림도 없고 B 클래스의 속성 탄은 날갯짓으로 날려버린다 하더라구요. 공격 능력도 최고위로 진화한 덕분에 빛 속성이 아니라 광염光炎 속성 수준이 되어서 급이 낮은 이형종은 광탄光彈에 그냥 녹아내린다며 같이 들어갔다 나온 박지웅 보스가 이야기하는걸 들었어요.”

“그거 대단한데? 그 정도면 저번에 그랜드 터틀 정도는 히아리드 혼자 잡을 수 있을 거라는 말로 들려.”

“그렇죠? 박지웅 보스나 화연도 그리 생각한대요.”

대해의 창도 연인들에게 직접 써보게 해서 맞는 사람한테 줘야 할 텐데 깜빡했네. 그때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미호가 내 귀를 만지작거리면서 조금 뾰로통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 주인님 나도 강해지고 싶어. 진화시켜줘.

“미호는 지금도 세잖아.”

- 약해! 나도 히아리드만큼 세지고 싶단 말야~! 진화시켜줘어어!

거절의 뜻을 보이니 등에 업힌 채로 다리를 바동거리고 손날로 내 머리를 톡톡 때리며 떼를 쓰기 시작한다.

“아아. 안 해준다는 게 아냐. 미호는 좀 더 자기 힘에 익숙해진 뒤에 진화해야 한다는 뜻이었지.”

- 싫어! 지금 안 해주면 싫어!

이거 참… 그런데 대책 없이 떼를 쓰는 미호를 지켜보던 프랑은 눈초리가 점점 가늘어진다. 뭐지?

“미호야? 저번에 언니가 뭐라구 그랬었지?”

묘하게 낮고 날카롭게 울리는 목소리다. 프랑의 가슴 부근에 뭉쳐져 있던 위상력이 은근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주변으로 초위급 이형종의 압박감이 살살 퍼져 나오기 시작한다.

- 어흐끅! 주, 주인님한테… 떼, 떼쓰지 말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은 뭘 하는 거지? 서하의 머리를 때리면서까지?”

- 자, 잘못했어요오.

서슬 퍼런 프랑의 기세에 자라목이 되며 움츠러든 미호는 울상을 지은 채 내 머리를 가림막 삼아 프랑의 시선을 피한다. 그러면서 조금 속도를 높여 그랑 블루 빌딩으로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회사에 도착해서 공간 지각으로 누나와 화연이가 어디 있나 찾아보니 화연이는 지하 3층에서 입장한 뒤에 사용할 소모품과 장비 체크가 한창이었고 누나는 자기 집무실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본적이 없는 남자인 걸 봐서는 손님인가? 누나가 직접 상대해야 할 손님이라면 꽤나 지위나 직책이 있는 사람일 텐데.

- 나, 난 화연한테 가볼게?

우리를 사무동 옥상의 헬기 포트에 내려준 미호는 프랑에게 본격적으로 혼날 것을 두려워했는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더니 뭐라 할 새도 없이 쏜살같이 1층으로 날아가 버렸다.

“아! …어휴. 서하는 미호를 너무 오냐오냐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네! 아까 등에 업히는 건 그렇다 쳐도 머리를 때리는데 그냥 귀엽다고 받아주면 어떻게 해요?”

“에이, 때린 것도 아니고 그냥 애정표현인데 너무….”

“그렇게 떼쓰는 걸 받아주면 미호 버릇이 나빠지잖아요! 그렇지않아도 1살이 채 안 되는 아이인데다 이형종인데 앞으로도 사람들과 함께 살려면 사람으로서 살아야 할 기본 소양을 꾸준히 배워나가야 한다구요!”

어어. 이건 내가 혼나는 패턴이야?

“그런데 그렇게 버릇없이 등에 올라타구 손날로 머리를 때리는데 혼내지는 못할망정 웃으면서 받아주면 앞으로도…!”

“미안! 혼낼 일이 생기면 앞으로 제대로 혼낼게!”

이대로라면 본격적으로 혼날 거 같다! 말하다 제풀에 화내기 전에 도망가야 해!

“누나한테 먼저 가 있을게!”

“앗, 서하!”

프랑이 눈을 크게 뜨며 손을 뻗어오는 게 보였지만 모르는 척 누나의 집무실로 혼자 공간도약을 써버렸다.

뒤쫓아오더라도 누나랑 다른 사람하고 같이 있으면 화를 내지 못할 거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화난 것도 알아서 풀릴 테니 1석2조다.

프랑은 다 좋은데 살짝 화가 난 상태에서 야단을 치고 있으면 제풀에 화가 돋궈져서는 진짜로 화내는 게 문제다.

“…재를 제공해주신 것에 저희 사장님께서는 무척이나 기뻐하셨습니다. 그렇, 흐억?!”

누나와 접대 소파에 마주 앉아있던 사내는 이야기를 하다말고 갑자기 집무실 중앙에 나타난 날 보더니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서더니 뒤로 넘어지려 했다.

그걸 보고 푸른색 공간의 벽을 만들어 등 뒤를 받쳐주니 뒤돌아본 누나가 날 발견하고는 손님을 놀래키면 어쩌냐고 작게 성난 표정을 짓고 째려본다.

오늘 운수가 좀 꼬이는 날인가….

슬쩍 누나의 시선을 피하고 자기 등을 받쳐준 푸른색 공간의 벽을 신기하다는 듯이 만져보는 남자를 살펴봤다.

나이는 대충 40 넘은 중년 아저씨 같은데 손바닥에 굳은살이 가득하고 자잘한 상처도 보인다. 정장을 입었지만 좀 어색해 보이는 게 양복을 자주 입는 직업은 아닌듯하다.

누나는 내가 계속 시선을 피하고 있으니 남자가 눈치 못 채게 작게 한숨을 쉬고는 날 소개시켜준다.

“조평석 전무님. 이쪽은 저희 그랑 블루의 정서하 회장님이십니다.”

“헉, 헛. 처음 뵙겠습니다. 산진순도의 상무를 맡은 조평석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누나의 이야기에 황급히 되돌아서서 날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산진순도… 최윤창이라는 순박하게 생긴 아가씨가 사장으로 있는 데잖아? 무슨 일로 온 거지?

“본의 아니게 놀라게 했네요. 미안해요.”

“아, 아닙니다.”

당치도 않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는 아저씨 옆에서 누나가 날 보며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 갑작스럽게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약속 시간까진 2시간이 남아있는데.”

목소리는 포근한 봄바람처럼 따스하고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지만, 눈빛은 버릇 나쁜 고양이를 바라보는 집사의 눈을 하고 있다. 위험해.

“…입장 준비가 잘 되어가는지 궁금해서 와봤어.”

“예정대로 진행 중이니 회장님께서 신경 쓰실 일은 없어요. 정히 신경 쓰이신다면 유화연 보스를 찾아가 보시면 어떠세요?”

손님이 있는 자리라서 웃으면서 저리 사근사근 이야기하지만 단둘이 남으면 "손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능력으로 뛰어들다니, 이게 무슨 예의 없는 짓이야?!" 하면서 당장 잔소리가 튀어나올 분위기다. 거기다 프랑도 뾰로통한 얼굴로 여기로 오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으으. 화연이가 있는 데로 도망갈까?

내심 고민에 쌓여있는 날 살짝 째려본 누나는 조 전무를 보며 입을 열었다.

“마침 회장님께서도 오셨으니 조 전무님이 가져오신 장비를 확인해볼까요?”

“그러시겠습니까?”

“장비?”

누나와 조 전무의 대화에 의아함을 내비치니 조 전무가 크리스탈 테이블 한쪽에 올려져 있는 은색 케이스를 가져와 열더니 입구를 내 쪽으로 돌려 보여준다.

가로세로 높이가 100cm * 80cm * 30cm인 은색 케이스 안에는 검은색 빌로드가 깔려있었고 그 위에 곱게 접힌 은색의 옷 한 벌이 들어있었다.

“어제 완성된 은자갑銀玆甲 입니다. 실버 뱅의 가죽을 가공 마감한 뒤에 인체에 무해한 특수약품처리를 통해 실버 뱅의 가죽이 가진 특성을 극대화 시켰으며 신축성과….”

옷에 대한 조 전무의 설명을 들으며 은자갑을 집어 들어 펼쳐보니 철인 경기를 할 때 입는 경기용 슈트 비슷하게 생긴 위아래가 붙은 한 벌 옷이 펼쳐졌다.

한 벌 옷이면서 두께는 얇은 천 옷 수준이라 마치… 최고급 실크같이 유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갑옷甲이라기 보단 예쁜 옷처럼 보일 판이다.

전체적으로 은색에 검은색 선이 기하학적으로 수 놓여있었는데, 주로 허리둘레와 가슴 그리고 골반 쪽을 아름답게 수놓은 것과 가슴 부위가 입체적으로 튀어나와 있는 걸 보니 여성용 슈트로 보였다.

음… 치수가 프랑의 몸매에 맞는 거 같은데. 근데 이렇게 얇으면 잘 찢어지지 않으려나?

불안한 마음에 조심조심 잡아당기면서 신축성이랑 장력을 확인하는데 조 전무가 씨익 웃더니 슈트를 잡아서 좌우로 힘껏 잡아 당겨 보인다.

“흐읍! 보십시오! 실버 뱅은 기본이 중위 이형종 수준이라지만 가죽의 질기기는 상위 이형종의 가죽 수준입니다! 후우. 거기다 제공받은 실버뱅의 부산물은 고위 이형종급이기에 탄력과 복원율이 장난이 아니죠. 평소 과묵하신 저희 사장님께서도 이 은자갑을 제작하시며 이렇게 뛰어난 실버 뱅 모피는 처음 본다며 연신 감탄하셨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게 프랑 거야?”

아까 오면서 프랑이 말한 방어구가 이거 같은데? 누날 돌아보며 물었더니 작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띵~

그때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울리며 문이 열리고 프랑이 걸어들어왔다.

그녀의 표정은 한없이 부드러웠지만 들어오는 순간 나랑 눈이 마주쳤을 때 살짝 화난 눈빛으로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가는 걸 봐서는 아직 화가 완전히 나진 않은 거 같다.

그래도 저 정도면 슬쩍 틈을 봐서 허리를 끌어안고 귓가에 사랑한다고 속삭여주면 풀릴 정도인 거 같아 다행이다.

“…제가 방해한 건 아닌가요?”

“아니야. 마침 잘 왔어. 저번에 말한 방어구가 완성됐으니까 한번 입어볼래?”

어? 프랑의 표정이 살짝 밝아진다? 마치 선물을 받은 조숙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게….

“벌써 완성되었나요?”

아하. 프랑도 방어구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구나. 마침, 내 손에 들려있어서 (혼나지 않기 위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프랑에게 다가가 은자갑이라고 이름 붙여진 실버 뱅의 가죽 갑옷을 프랑의 몸에 대봤다.

“오~ 생각보다 더 잘 어울리는데? 은색과 프랑의 백금발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데다… 검은색의 기하학적인 무늬가 강조 색으로 들어간 덕분에 진짜 아름다워.”

“서하도 참. 아직 입지도 않았는데….”

진심이라는 듯이 눈을 빛내면서 감상을 말하니 프랑은 얼굴을 살포시 붉히며 방긋방긋 웃음을 짓는다. 앗싸, 화가 풀렸다!

“잠깐 다녀올게.”

바로 프랑의 허리를 껴안고 누나한테 말한 뒤에 지금은 빈집이 된 생활동의 40층 펜트하우스로 공간 도약했다. 텅 빈 집의 거실에서 프랑에게 은자갑을 들이밀며 얼른 입어보라고 재촉했다.

“얼른 입어봐. 프랑이 이걸 입은 예쁜 모습을 빨리 보고 싶어.”

“흥. 아직 화가 풀린 건 아니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샐쭉한 표정을 짓지만, 그냥 헤헤 웃으니 프랑은 쓴웃음을 지으며 "진짜 못 말릴 사람." 하고 중얼거리더니 우리가 침실로 쓰던 방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니 왜 따라오냐는 눈빛을 보낸다.

“왜?”

“…아니에요.”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는 벗는 옷을 옆에서 받아주며 그녀가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은자갑을 입으려다 말고 새하얀 란제리 차림으로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왜?”

“이거… 속옷도 모두 벗고 입어야 하나 봐요.”

프랑의 말을 듣고 은자 갑의 안쪽을 펼쳐서 가슴이 닿는 부분을 봤는데, 유두가 위치하는 부분에 쓸림 방지용 덧댐 천이 붙어있었다. 조금 더 펼쳐 안쪽 깊숙한 곳을 보니 음부가 닿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벗으면 되지.”

뭐가 문제냐는 듯이 프랑을 바라보니 멍청하게 날 바라보다가 얼굴을 붉히면서 한숨을 폭 쉰다. 그러고는 말없이 브래지어 훅을 풀어서 넘기고 골반 쪽에 묶여있던 끈도 풀어서 팬티를 벗더니 머뭇거리다가 나한테 내밀었다.

킁킁.

“아아! 냄새 맡지 말아요!”

“왜? 사과 향기가 나서 좋기만 한데.”

“아이참!!”

속옷을 뺏으려는 프랑과 주지 않으려는 나 사이에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이런 실랑이에서 이기는 건 결국 나지!

“홀랑 벗고 알몸으로 그렇게 움직이니까 가슴이 막막 출렁거리는 게 무진장 보기 좋아. 응응.”

옷가지를 아공간에 쏙 집어넣고 프랑의 가슴이며 엉덩이를 어루만지고 희롱하니 결국 프랑은 귀까지 빨개진 채 허둥지둥 은자갑의 등 뒤 지퍼를 열어 빠르게 입는다.

“으읏… 서하, 이것 좀 채워주세요.”

등을 보이며 지퍼를 올려달라고 부탁하길래 목덜미 끝까지 지퍼를 올려주며 물었다.

“착용감이 어때?”

“탄력이 굉장히 뛰어나네요. 움직이는데 걸리는 부분도 없구요. 보정 속옷 같은걸 입은 느낌이에요.”

“보정 속옷을 입어본 적도 있어?”

“평기사 시절에는 갑주를 입기 전에 꼭 교정 압박 속옷을 입어요. 그렇지 않으면 달리거나 움직일 때 갑주가 주는 흔들림과 무게가 고스란히 내장을 타고 전해지는데 그게 심해지면 내장이 파열될 수도 있거든요.”

못생긴 몸매의 교정 속옷이 아니라 말 그대로 보정 속옷이구나.

프랑은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만져보더니 두 팔을 벌리고 내게 보여주듯이 한 바퀴 빙글 돌아보는데, 압도적인 풍만함과 잘록한 허리, 동양에서는 보기 힘든 잘 발달된 골반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또 강조되는 모양새라 눈이 매우 즐겁다.

“하지만 이렇게 은자갑만 입고 다니는 거, 난 반댈세.”

“네?”

아공간에서 옷가지를 꺼내주니 프랑은 푸훗하고 웃으면서 옷을 받아 입는다. 저 몸매는 나만 봐야 하는 거라고. 딴 놈들이 보게 냅둘까봐?

그걸 보며 속옷은 도로 아공간에 집어넣어버리자 프랑이 발끈하면서 내 손을 잡아왔다.

“그걸 왜 거기에 챙기는 거예요?! 얼른 주세요!”

“어, 뭐야. 속옷을 손에 들고 다니게?”

“…나중에 주세요! 꼭이요!”

크크크. 글쎄, 어떻게 할까?

============================ 작품 후기 ============================

다음 이 시간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