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32화 (432/517)

00432  앞으로 한걸음.  =========================================================================

인간과 이형종.

누나는, 그리고 화연이와 영은이는 확실한 인간 [능력자]다. 그렇다면 나와 프랑은 어떨까.

프랑은 수십년전, 위상 세계에 강제 소환된 후 데드 포레스트에서 언데드 타입의 변종에게 감염되어 육체가 변이해 이형종이 되었다. 그리고 1년 전에는 그 육신마저 죽어 영체 상태로 나와 함께 다니게 됐었지.

그 이후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그녀의 육신과 영혼이 결합되어 되살아나는 기적을 겪었지만 이형종, 그것도 변종이라는 근원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의 육체 그 자체만 봐서는 인간과 다른 점이 극히 드물다.

인간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뼈와 근육의 밀도. 인간과는 아주 약간 다른 뼈의 갯수나 형태. 그것을 제외하면 인간 여자와 다를바 없는 신체를 지니고 있다.

물론 원래 거인이라 소인화의 비술을 통해 신체가 적은 비율로 압축되어있고 근력과 순발력 역시 다르지만 이 부분은 패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육체는 평범한 인간 남자와 다를바 없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심장에는 인간이라면 가질 수 없는 위상석이 존재한다.

그럼 나는 인간일까 이형종일까.

…….

이형종이 최고위급에서 초위급으로 진화할때 어떤 조건이 필요하며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려진바는 없다.

영혼으로 존재하던 프랑이 최고위급의 언데드 이형종으로 존재하던 육체와 만나 상승작용을 일으켜 초위급이 되었지만,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프랑은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두렵다.

앞으로 2천만 가량 남은 위상력. 2천만을 더 모으면 위상석의 위상력 한도가 가득차며 진화의 조건이 충족된다. 그렇게 진화한 뒤에 남는것은 나일까 아니면… 메오 아지토스의 변종일까.

연인들과의 즐거운 삶에 빠져 그동안 일부러 생각하지않고 외면하고 회피하고 있었지만 이제 더이상 피하지 못할 시간이 다가온다.

…적어도.

……진화해서 육체가 변화한다면 적어도 인간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남았으면….

상념을 끝내고 연회장으로 돌아오니 분위기가 늘어지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연회를 끝낼때가 된거 같다.

목을 조이는 넥타이를 풀려고 하니 프랑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넥타이를 손봐준다. 그러면서 내 표정을 살피더니 눈썹 끝을 늘어트리며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으세요?”

“괜찮아.”

프랑의 보드라운 뺨을 손바닥으로 한번 쓸어주고 웃으면서 연회장을 둘러보니 약간 피로한 기색의 손님들이 보인다. 연회가 시작한지 3시간이 다되어가니 능력자가 아닌 사람들은 피로할만하지.

분위기도 약간 산만해져있어 연회장의 중심, 모든 손님들이 날 볼 수 있는곳으로 이동해서 공간의 벽을 낮은 단상 형태로 만들어 그위에 서서 두어번 박수를 쳐 시선을 모았다.

짝짝.

“평소 격무에 시달려서 그런지 3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피곤해하는 분들이 보이는거 같습니다. 격무를 제공한 원인이 이런 말 하니 얄밉죠?”

하하하하.

“주변을 돌아보면 평소 자주 볼 수 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쉽게 볼 수 없는 이들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모여있는 분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이 있지요.”

과연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지 대번에 "같은 그랑 블루 소속아닙니까!" 라는 외침이 나왔다.

“아, 김표충 부장님. 제가 할 말을 뺏으면 어떡합니까? 아까 놀린 복수에요?”

“흐흐흐!”

입술을 삐죽거리며 장난기 어린 모습으로 투정을 부리자 손님들은 입을 가리고 킥킥거리며 웃는다. 살짝 분위기가 환기되는 손님들을 보며 미소를 띄우고 다시 입을 열었다.

“몇몇 인물들에게 무당벌레 부장님이라고 불리우는 분의 말씀대로입니다. 여기에 모인 분들은 모두 그랑 블루와 밀접하다 못해 가장 중요한 위치에 속해있는 분들이죠. 이렇게 집들이를 핑계로 간단하게 모일 기회를 만든 이유도 이곳에 모인 분들이 서로 얼굴을 익히고 보다 친하게 지낼 기회를 가지길 바래서입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살짝 놀란 눈을 하고 있는 누나와 연인들을 시선을 마주하며 살짝 웃어주고 마저 이야기를 이었다.

“시간이 9시를 지나 10시에 다다르는 지금, 슬슬 따뜻한 이불 속이 그리워지는 분들도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짧은 만남이라 아쉬움도 느껴지시겠지만 앞으로 이런 자리를 종종 가질 수 있도록 제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습니다. 그러니 오늘의 연회는 이만하도록 하지요.”

그러면서 살짝 고개를 숙여 모인 이들에게 인사를 보냈다.

“갑작스런 초대였지만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거 아닌 이야기였지만 사람들은 열렬한 박수로 호응을 해주었다. 그런 사람들을 두루 살펴보며 내일 출근해서 일을 해야할 입장인 이들을 생각해 힐링 웨이브 1단계를 쏘아내 연회장 안에 있는 사람들의 피로와 미약한 질병을 날려주었다.

푸른 아우라가 연회장을 가득 채우며 손님으로 모인 이들의 육체를 휘감고 사라질때쯤 수한에게 살짝 손짓하며 말했다.

“별거 아니지만, 손님들을 빈 손으로 돌려보낼 수 없어 약소한 선물을 준비했으니 돌아가실때 꼭 받아가세요. 모자라서 못받으 신 분이 계시다면 절 찾아오셔서라도 받아가세요. 못받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지도 모르는 선물이니까요.”

“별거 아니고 약소하다고 하셨으면서 땅을 치고 후회할거라니,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네, 김부장님은 안받으시겠다는 말씀이시죠?”

“앗, 그런건 아니고요!”

푸하하하.

나와 김표충 부장의 농지거리에 좌중에서 폭소가 터져나온다. 누나와 연인들은 이런 내 모습은 처음 본다는 얼굴로 약간 넋을 놓고 내 얼굴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손님들이 돌아가며 나와 누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이, 프랑이 수한과 소피아와 함께 반지 케이스 사이즈의 고급 보관함을 준비한다.

내가 선물로 준비한건 별거 아니고 위상력 51짜리의 하급 블루 스톤이다. 며칠전 연인들과 모두 모였을때 가급적 블루 스톤을 숨기는게 좋겠다는 이야기가 오갔었는데 이렇게 지인들에게 푸는 이유는, 화연이와 영은이에게 이번에 방문할 손님들에게 줄 선물로 뭘 준비하면 좋겠냐는 질문을 한 결과였다.

“이렇게 나눠주면 위상석을 대체할 물질이 나타났다는걸 능력자 연합과 다른 국가들도 틀림없이 감지해낼거다.”

“노골적으로 푸는것보단 이렇게 가볍게 지인들에게 돌리는 쪽으로 하면 적당한 위장도 되고 다들 똑똑하니까 서하의 말에 뭔가 낌새를 느끼고 보존에 주력할테니 적당히 기밀 유지도 될거야.”

“거기에 이제 널 공격할 간 큰 작자들은 없을테니 기존의 위상석을 대체할 물질이라는걸 아는 순간 그에 대한 대비를 하겠지.”

“우리가 대비해서 조심스레 풀 이유 없이 그들이 대비하게 하잔말이지?”

“바로 그거야.” “그 말대로다.”

화연이와 영은이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하나하나 선물을 나눠주는 프랑을 돌아봤다.

손님들은 손바닥보다 작은 고급스런 케이스를 보며 이 안에 든게 무엇인지 궁금해했지만 열어보지는 않았….

“헉. 이건 블루 스톤?”

…아, 드와이트 이 아저씨 진짜 그렇게 안봤는데 실망이야. 이런데서 받은 선물을 그 자리에서 열어보는게 어딨어.

반지 케이스 안에 반지 대신 손톱보다 조금 더 큰 블루 스톤이 자리잡고 있는걸 본 드와이트 박사는 이걸 선물로 받을거라 생각은 못했는지 놀란 얼굴로 나와 블루 스톤을 번갈아보며 횡설수설한다.

“이렇게 귀중한, 아니 중요한… 아아니, 으음. 이런…것을 선물로 주셔도 괜찮으신겁니까?”

옆에서 지켜본 오소은 박사도 차분한 이미지 답지 않게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자신이 받은 반지 케이스를 열어보고서는 입을 딱 벌린다.

두 박사의 모습에 손님으로 온 사람들도 자신들이 받은게 블루 스톤인걸 확인하고는 이게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옆사람과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알티나는 당장에 연구소로 달려갈듯한 모습으로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짝짝.

소란이 늘어날무렵 손님들의 웅성거리는 모습에 영은이가 얼굴을 차갑게 굳히더니 가볍지만 귓속을 파고드는 박수 소리로 좌중의 시선을 모았다.

“이 자리에 참석한 분들은 한 분 한 분이 예법에 익숙한 분들이실텐데 연회의 주최자가 나누어드린 선물을 그의 앞에서 펼쳐보다니, 거기에 회장님의 의중을 누구 하나 파악하지못하고 웅성거리며 못볼 꼴을 보이는것이 참으로 한심하군요.”

“…….”

“…….”

영은이의 송곳같은 일침과 서릿발같은 눈빛에 손님들은 얼굴을 슬쩍 붉히더니 선물로 받은 반지 케이스를 조용히 품에 갈무리한다.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저도 모르게 그만.”

“괜찮아요. 드와이트 박사님이라면 그 물질의 가치를 가장 잘 아실테니 그럴수도 있죠.”

자신때문에 이 소란이 일어났다는걸 인식하고 있는지 드와이트 박사는 붉어진 얼굴로 용서를 빌었다. 이정도 일로 화낼 생각은 없다. 거기다 박사들의 반응덕에 내가 나누어준 선물의 정체는 모르지만 정말 중요한거라고 손님들의 머릿 속에 확실하게 박혔을거다.

약간의 소란은 연회가 주는 즐거움으로 여겨달라는 말과 함께 저택을 나서는 손님들 한명 한명과 악수를 하며 배웅해주었다.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자리를 마련하신다고 하셨으니 저도 꼭 초대해주셔야합니다?”

드와이트 박사의 장남인 에단은 언제 한국어를 배웠는지 영국 악센트의 한국어를 구사하며 훈남의 친근한 미소를 보여주며 가족들과 함께 저택을 떠나갔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담소를 나누며 메이드들의 안내를 받아 주차빌딩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4층 거실의 테라스에서 구경하고 있으니 아나콘다보다 더 큰 날개달린 뱀, 스케일러 11호가 정원을 야간 순찰하다가 손님들을 발견하더니 그들의 옆을 스르륵 지나간다.

여자 손님들이 크고 굵고 길다란 11호의 실루엣에 자지러질듯 비명을 질렀다가 민망한듯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모습에 비죽하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의 비명에 힐끔 손님들을 곁눈질한 11호는 혀를 낼름낼름거리며 허니콤으로 향했고 손님들은 휴대폰을 꺼내 그 모습을 촬영하며 즐거워했다.

“리디아 공주랑 면담한 목적은 이뤘어?”

등 뒤에서 들려온 누나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누나와 영은이가 드레스차림으로 날 보고 있었다.

하얀 레이디라이크 드레스와 검은색 리틀 블랙 드레스의 흑백 구도가 꽃과 버드나무를 옥판선지玉板宣紙에 그린 수묵화처럼 아름답다. 거기다 가슴에서 묘한 입체감이 느껴지는게 신체 치수에 딱 맞춘 수제 드레스인걸 알 수 있었다. 저 드레스들의 가격은 결코 싸지 않으리라.

슬쩍 인증기를 켜서 둘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왕은 정보료로 준 고위급 위상석 두개가 꽤나 흡족했나보더라.”

“서하의 능력을 확인하게 된 계기도 됐고 친목도 다지고 부수입도 얻고, 여왕의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였을테니 좀 좋았을까.”

“뭐래? B 클래스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혼합 능력이 필수래?”

하늘섬을 위상력 80만의 C클래스로 나온 누나는 저번에 나와 함께 위상 세계에 들어갔을때 벨티칼 산에서 죽은 사비들의 위상력을 쏠쏠하게 흡수했는지 이제 150만을 넘기고 있었다.

“누난 이제 C 클래스면서 뭘 그렇게 호기심을 드러내고 그래?”

“이게… C 클래스는 능력자도 아니야? 궁금해하지도 못해?!”

내 핀잔에 발끈한 누나는 다가와서 내 팔을 가슴에 꼭 끌어안…으면서 뺨을 살짝 부풀린다.

누나는 본바탕의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엷은 화장을 하고 있었고 긴 생머리를 반머리묶음으로 올린뒤 뭔가 반짝이는게 수없이 박힌 작고 귀여운 헤어밴드를 하고 있었는데, 달빛에 비친 그 모습이 심장이 내려앉을만큼 아름다워 나도모르게 시선을 돌려버렸다.

얇은 드레스 너머로 느껴지는 누나의 보드랍고 풍만한 가슴의 압박 때문에 목이 타는거 같아 넥타이를 풀며 일부러 심술궂게 입을 열었다.

“우리들 사이에서 C 클래스는 빈민이지.”

“뭐어?”

“쿡쿡. 물과 빛과 어둠 속성의 트리플리스트가 찬밥 취급이라니, 다른곳에서 이 이야기하면 정신나간 소리라고 할거야.”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 웃는 영은이는 자신의 몸이 어떻게 해야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알고있는거 같다.

테라스의 난간에 팔을 기댄 영은이는 앞으로 살짝 숙여진 상체와 꼬은 다리덕에 목덜미에서 등을 타고 내려오는 곡선과 탄력이 넘치는 엉덩이선이 고스란히 부각된다. 살짝 숙인 상체 덕에 가슴이 메론 모양의 형태로 살짝살짝 출렁거려 만지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

목에는 달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 목걸이가 걸려 있어 살구빛 목덜미와 함께 내 시선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리틀 블랙 드레스의 특징상 몸의 굴곡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다보니 청초한 분위기의 누나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색기가 묻어난다.

“으~ 얼른 말해!”

“알았어. 말할테니 꼬집지마.”

매혹적인 미소를 머금은 영은이의 모습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더니 누나의 눈썹이 작게 치켜올라가며 내 옆구리를 사정없이 매섭게 꼬집는다.

나와 누나의 모습을 엄마 미소로 바라보는 영은이와 누나의 개미허리에 손을 뻗어 힘껏 끌어안으며 입을 열었다.

“아론 템페스트는 빡센 레이드 일정을 소화하면서 어느순간 깨달음과 함께 신체 강화 능력을 얻었대.”

내 말에 영은이의 표정이 심각해지고 누나는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아올 줄은 몰랐는지 몸이 뻣뻣하게 굳어져서는 눈만 도록도록 굴리고 있었다.

그런데 영은이를 품에 안으니까 좀… 이상한 냄새가 난다. 영은이의 체취는 체리향기인데 이건 무슨 냄새지? 인조 향수인가?

체취랑 향수 두 가지가 섞이니까 코를 불쾌하게 찌르는 감각이 영 별로다.

“아, 영은이 향수는 체취랑 안어울리는거 같아.”

“…으응?”

영은이는 당혹스럽고 놀란 눈으로 팔을 들어 냄새를 맡고 누나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영은이에게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아본다.

“아, 이건 랄프 로렌의 노토리어스 no.7이네요. 좋다~.”

“그치? 이번에 새로 나온 신상이라, no.5도 좋지만 이쪽이 더 오늘 이미지에 맞는거 같아서 쓴건데… 서하는 맘에 안드니?”

이미지라니, 귀여운… 아니, 섹시한 악녀 이미지? 근데 영은이의 체취가 섞이니까 영 아닌데.

이런 내 생각이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났는지 영은이는 '대실패!'라는 표정으로 내 품에서 슬금슬금 떨어지려한다.

“…맘에 안들어?”

“영은이 체취랑 섞이니까… 라플레시아 꽃 향기 같아.”

“헉.”

냄새를 송장화에 비유했더니 영은이는 경악한 얼굴로 황급히 내게서 떨어져나간다.

“으응? 언니 체취라니, 몇가지 꽃과 열매의 향기를 섞어 조제한 향수밖에 안맡아지는데…. 그보다 라플레시아 꽃 향기가 어떤지 알어? 너 그거 맡아본적도 없잖아?”

“어렸을때 식물원 갔었잖아. 동남아시아 꽃 특별전.”

“앗. 맞다. 난 입구에서 나는 시체 썩는 냄새에 기겁하고 안들어갔….”

“씨, 씻고 올게!”

더는 못듣겠는지 울상을 지은 영은이는 두 팔로 몸을 감싸고 웅크린채 황급히 거실로 뛰어들어가더니 3층의 자기 방에 딸린 욕실로 달려가버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누나는 조금 못마땅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넌 왜 언니 괴롭히고 그래? 라플레시아 향기같은건 나지도 않고 그냥 코를 톡 쏘는 기분좋은 향기만 나던데.”

“영은이 체취랑 섞여서 그렇다니까?”

“체리 향기라는거? 난 안맡아지던걸?”

누난 못맡았다고? 그러고보니 연인들도 자기 향기가 사과랑 자두, 체리 향기라는데 의아한 모습을 보인적이 있었지.

…나만 맡을 수 있는건가? 프랑한테서는 사과 향기가 나고 화연이는 자두 향기가 난다고 하니 누나는 어이없어한다.

“무슨 사람이 과일이니? 그럼 나한테는 무슨 냄새가 나는데?”

“누난 별로…. 으어?”

어렸을때부터 같이 지낸 누나 냄새는 뭐 사람 냄새지…라고 생각하는데 누나가 바짝 다가오더니 내 머리를 잡고 가슴 골로 끌어당긴다. 작지않은 풍만한 앙가슴에 코가 고스란히 파묻히니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과 함께 독특한 향기가 코를 간지럽힌다.

숨을 들이마시니 확실하게 느껴진다. 이건 누나가 종종 쓰던 상큼한 향기의 향수에 바닐라 향이 아주 약간 섞인거 같다.

“오늘 뿌린거, 누나가 자주 쓰던 향수지?”

“응.”

“거기에 바닐라 향기가 조금 섞였어.”

“…바닐라?”

“내가 기억하는 냄새 중 가장 비슷한게 그거야.”

내 말에 누나는 황당해하며 팔과 겨드랑이 밑으로 냄새를 맡아보더니 못맡겠는지 고개를 갸웃하고는 날 돌아본다.

“너 능력자로 각성하면서 코가 많이 좋아졌나보다. 내 냄새는 별로야?”

“아니, 좋아. 상큼한데다 달콤하고 부드러운게 잘 어울리는거 같아.”

“그래?”

향기가 좋다는 이야기에 누나는 눈에 띄게 기분이 좋아진 표정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거실로 들어가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언니가 씻으러 갔으니까 좀있다 모이면 다시 얘기해.”

“어.”

그나저나 누난 영은이를 이제 언니라고 부르는건가?

잠시…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연인들에게 내 몸에서 나는 냄새가 똥같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건 트라우마가 될거다. 그런데 나는 영은이 몸에서 나는 냄새를 송장화에 비유해버렸지.

실수했다는 생각에 영은이가 씻고 오면 사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나저나 신기하네. 작년까지만해도 누나한테서 별다른 냄새는 안났는데…?

============================ 작품 후기 ============================

위상력에_향기가_있다면.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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