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25화 (425/517)

00425  혼란인 듯 혼란아닌 혼란 같은 날  =========================================================================

현실로 돌아오니 위상 세계보다 태양의 위치가 조금 더 높아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건 태양의 위치 같은 게 아니다.

지금 시간은 오전 9시 7분, 평일이니 저택에 연인들은 없겠지만 혹시 몰라 공간 지각으로 저택을 훑어봤다.

“역시 없네.”

=누가여?=

“화연이.”

이제 돌아왔을 거라 생각했는데… 혹시 회사에 있나?

저택으로 들어가니 홀을 청소하던 메이드 누나들이 날 발견하고 청소 도구를 손에 놓고서는 서로 모여 가지런히 서서 손을 모아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처음에는 나나 암흑이나 미호를 볼 때마다 미세하게 놀라더니 이제는 적응했는지 안 놀라네.

메이드 누나들의 소리 없는 인사를 받아주고 4층의 거실로 올라가 소파에 앉아 조금 쉬고 있으려니 수한이 날듯이 걸어와 거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다녀오셨습니까, 회장님. 마중이 늦어 죄송합니다.”

별게 다 죄송하네.

저택으로 이사 오고 난 뒤로 수한을 집사로, 소피아를 하우스 키퍼로 임명한 뒤로는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회장님이라고 바꿔 부르게 시켰다.

솔직히 노예 노예 하지만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마구 휘둘렀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같은 사람한테 애교나 침대 위 플레이도 아니고 실생활에서 주인님이라는 말을 계속 들으니 좀 거시기해졌거든.

미호나 암흑이는 인간이 아니니까 제외. 히아리드는 스스로 자아를 확립하면서 단순한 이형종이 아닌 좀 더 뛰어난 고등동물이 된 거라 여겨 녀석이 이름을 부르는 것도 봐주기로 했다.

아무튼, 수한은 시설 관리인들을 통솔하며 정원과 저택의 시설을 관리하는 일을 도맡아 하기 시작했고 소피아는 메이드 누나들을 관리하며 저택 내부의 청결과 손님 접대를 맡았다고 하던가.

프랑은 소피아와 수한의 위에 서서 마나님으로서 함께 저택의 대소사를 맡는다던데…. 이런 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고 아공간에서 지퍼백에 담아둔 빨랫감을 꺼내주며 수한에게 물었다.

“화연이는 돌아왔어?”

“어제 복귀하셨습니다. 아침에 회사로 출근하셨으니 지금도 회사에 계실 겁니다.”

“응. 그럼 난 좀 씻을 테니 식사 준비해줘. 그 뒤에 회사로 갈게.”

“예. 준비해놓겠습니다.”

5층의 그 넓은 대욕실에서 혼자 씻긴 싫어 3층의 실외 인공 온천에 들어가니 암흑이는 씻기 싫다며 내 어깨에서 뛰어내렸다가 조금 미끄러운 바닥에 발라당 자빠져버린다.

=아코!=

발을 뻗어주니 내 발가락을 잡고 일어선 암흑이는 미호를 찾아갈 생각인지 녀석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왔다.

“남쪽 허니콤에서 스케일러들하고 놀고 있어.”

=넹. 저도 갔다올게여!=

그러고선 쌩하니 밖으로 나가버린다.

탄산천인지 거품이 부글부글 피부에 달라붙는 물에 몸을 담그고 정신적인 피로를 풀고 있는데 달칵하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소피아가 알몸에 목욕 타올을 몸에 걸치고 공손한 자세로 걸어오고 있었다. 머리를 뒤로 틀어올린 모습에서 어쩐지 기백이 느껴진다.

“…뭐하냐.”

“회장님의 목욕 시중을… 꺄아~.”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소피아에게 물을 끼얹어주니 약하게 비명을 지르며 쪼그려 앉아버렸… 야! 그곳이 다 보인다고!

“필요 없어! 이거 프랑이 보면 너 큰일 난다?!”

“괜찮아요! 프랑 마님이 안 계실 때 주인… 회장님이 목욕하시면 시중을 들어드리라 명령받았으니까요!”

“…그 시중은 이런 시중이 아닐 텐데?!”

“에헷.”

내 딴죽을 히히 웃으며 넘겨버리고는 야시시한 몸놀림으로 두 팔과 무릎으로 기어오는 소피아에게 경계심이 솟아나서 푸른색 공간의 벽을 쳐버리니 '앗!' 하는 표정으로 공간의 벽을 두드리며 울상을 짓는다.

“회장니임~! 소녀의 수청을 받아주시와요~! 제 청백지신을 도화지 삼아 회장님의 붓으로…!”

“한 번만 더 입을 열면 그 상태 그대로 이순신 장군상 앞에 떨어트려 버린다.”

“읍.”

황급히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소피아는 완전히 시무룩해져서는 힘없이 돌아나가더니 가벼운 탱크톱과 핫팬츠를 입고 다시 들어왔다.

…속옷을 입지 않아서 뽈록 솟은 유두의 흔적과 도끼 자국이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뭐 그 정도는 봐주지.

소피아가 스펀지에 바디워시를 뿌려 거품을 잔뜩 일으키는 걸 보며 물었다.

“내가 없는 동안 별다른 일 없었어?”

“저택은 별일 없이 평화로웠답니다.”

“저택은…이라면, 그럼 밖에서는 소란이 일어났단 말이야?”

“네. 그것도 적지 않은 소란이었어요.”

“무슨 소란이었길래 그런 표현을 쓰는 거야?”

욕조에서 나와 소피아에게 등을 보이며 앉으니 그 짧은 사이에 내 한 부분을 살펴본 소피아는 하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대답했다.

“회장님이 찾으시던 우민구 박사 말이에요.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났는데, 그 장소가 미국의 위상학 개론 세미나였어요.”

“우민구 박사님이?”

혜령이 이모한테 우민구 박사님의 추적을 부탁했었는데,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있었다는 거야?

“네. 예전보다 야윈 모습이셨는데…. 날카롭게 날이 선 분위기여서 알아보지 못할 뻔했어요.”

“흐음…. 세미나라면 무슨 논문 같은 거 발표하러 간 거였나 봐?”

“네. 발표한 논문이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라서 능력자들은 물론이고 비능력자들도 신경 쓰고 있답니다. 우민구 박사님이 발표한 논문의 요지는, "위상 세계의 시간대가 통합되며, 현실 간의 경계가 강화되어 통로가 막힌다는 내용이었어요.”

……뭐?

지금 이렇게 씻고 있을 때가 아니다.

목욕 스펀지로 내 몸에 비누칠을 하는 소피아를 밀어내고 일어나 목욕을 대충 마무리했다.

뒤에서 "아뿔사! 목욕 끝나고 이야기 했어야 했는데에에!" 하며 주저앉아 좌절하는 소피아를 어이없이 바라봐주고 욕실 밖으로 나와 수한을 찾아가 그녀의 도움을 받아 정장으로 갈아입은 뒤에 공간 도약으로 바로 그랑 블루 빌딩에 들어섰다.

소피아가 그렇게까지 말한 상황이라면 사회적인 분위기도 좀 어수선 할 거 같은데, 분위기를 살펴보기 위해 일부러 사무동과 연결된 1층 엘리베이터가 있는 대형 홀에 들어서니 날 알아본 사원과 능력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그들에게 간단히 손을 흔들어주고 마침 1층에 도착해있던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니 사원들이 빳빳하게 굳어버렸지만 신경 쓰지 않고 인증기를 켜서 우민구 박사와 관련된 글을 찾아봤다.

…거의 대부분의 능력자가 우민구 박사의 이야기를 믿는 눈치다. 몇몇은 위상 세계에서 채집 중인데 위상 세계에서 튕겨 나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호기심에 게시물을 클릭해봤다.

[제목 : 나 졎되는줄알아쓰요!]

[내용 : 와씨. 내가 진짜 죽을똥살똥하면서 야트막한 언덕에 작은 광맥 하나 찾아냈거덩? 주변 정리하고 겨우겨우 채굴을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주위가 막 일그러지면서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거 같아 존나 뒈짖하는 줄 알았단 말이야. 겁에 질려서 땅에 머리 박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어느새 위상 세계 입장 대기실로 돌아와 있더라고! 시발, 거기 캠프에 내 장비 다 놔두고 왔는데!!]

바로 아래에 달린 댓글에는 "위상 세계에서 환각초라도 씹어 드신 거 아냐?" 라거나 "고작 광맥? 풋, 생활 보조는 존심에 하기 싫어서 채굴꾼이 된 거임?" 같은 비웃음뿐이었는데 우민구 박사의 논문 발표가 있은 뒤에는 반응이 완전히 달라져 그때 상황을 묻는 댓글이 다수 달려있었다.

하지만 비웃는 댓글에 빈정이 상한건지 작성자는 댓글에 답글을 달아주지 않고 있었다.

이거 뭐야. 위상 세계가 통합되던 과정에 있는 사람은 자연히 현실로 튕거 날아와버리는거야?

멍한 기분에 인증기를 종료하고 가만히 서 있다가 공간 지각으로 사무동과 사업지원 2개 동을 살펴보니 빌딩 전체가 묘한 기류에 휩싸여있었다. 회사 소속 능력자들도 휴식실에 모여 삼삼오오 모여 약간 어두운 기색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어째서 이런 상황이 된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중간에 사원들이 모두 내리고 홀로 35층에 도착하니 비서 누나들이 벌떡 일어나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며 인사한다.

“다들 39층에 모여있죠?”

“네, 회장님. 바로 연락을….”

“먼저 올라갈게요.”

비서장 누나의 말이 끝나기도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화연이의 집무실이 있는 39층으로 올라가니 그랑 블루의 주요 간부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지 다들 표정이 묘하게 굳어있었다.

그중에 한 달 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 보여 웃으며 다가가 힘껏 포옹을 해주니 부끄러운 듯 양 볼에 홍조가 올라온다.

“오랜만이야.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으, 음. 무사 복귀했습니다.”

달아오른 얼굴로 무표정을 연기하는 화연이를 보고 다시 한 번 웃어준 뒤에 화연이의 집무실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프랑과 화연이, 누나와 혜령이 이모 거기에 박지웅 2보스와 사업지원 1부의 김표충 부장 마지막으로 2부의 하유철 부장까지 나와 시선을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박지웅 보스도 다친 곳은 없죠?”

“하하하. 이번 장기 레이드는 히아리드 양의 활약이 대단해서 저는 후방 레이더 역할만 했습니다. 하하하.”

“그 레이더 역할이 제일 중요한 거죠.”

흔한 옆집 아저씨의 포스를 자랑하는 박지웅 보스도 그렇고 연인들을 제외한 간부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해보고 힐링 웨이브 1단계를 쏘아냈다.

질병이 있었다면 치료가 될 테고 없다 해도 피로회복의 효과를 받을 테니까. 다르게는 내가 당신들을 이토록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의미도 전해질 거다.

간부들이 고마워하며 고개를 숙이는 걸 보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민구 박사님이 발표한 소식을 듣고 바로 왔는데, 상황이 어때요?”

화연이의 안내에 상석에 앉으며 물었더니 혜령이 이모가 진지하고 죄송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입을 연다.

“그것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전, 회장님께서 우민구 박사님의 잠적에 대해 조서하라는 분부를 내리셨고 그 이후 천천히 추적을 시작했습니다만….”

혜령이 이모는 내 부탁으로 회사 일로 바쁜 와중에 우민구 박사님의 흔적을 뒤쫓다가 납치나 다른 이유가 아닌 미국으로의 망명을 신청했다는걸 캐치했었단다.

그걸 알아낸 것은 5일 전. 우민구 박사님은 이미 미국이 보낸 에이전트를 통해 미국의 모처에 숨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데려올 수단을 확보하기보단 무엇 때문에 고국을 떠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찾아봤단다.

“이걸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우민구 박사님께서는 이전부터 위상 세계 통합 및 통로 폐쇄설을 공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정부 산하 위상통상자원부의 방해로 논문의 발표는 모두 불발로 끝났으며 한번은 우민구 박사님의 자택에 괴한이 침입해 논문을 비롯한 일체의 자료를 빼돌린 정황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내 표정이 무섭게 굳어서 그런지 혜령이 이모가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다 살짝 목소리가 떨렸다. 분위기도 무겁게 가라앉는 와중에 프랑이 우려 섞인 모습으로 날 달래려 한다.

“서하? 영은이 일부러 그랬을 리는 없어요. 영은도 서하가 말한 그때 처음 알았다는 표정이었잖아요?”

“알아. 아무리…. 여사님이라도 산하기관 전부를 아우를 수는 없었겠지.”

눈을감고 속에 든 한숨을 내뱉으니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화연이나 그랑블루의 주요 간부들은 내 반응에 의아한 모습이었고 누나는 뭘 생각하는지 모를 표정으로 자기 앞에 놓여져있는 서류만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방금 프랑 씨의 말은… 혹시, 회장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눈치 빠른 김표충 부장이 나와 프랑의 반응에서 뭔가 알아냈는지 눈을 빛내며 물어온다. 그걸 대답한 건 누나였다.

“회장님께서는 이미 모종의 탐색으로 인해 위상 세계의 폐쇄와 통합을 예견하셨어요. 다만 그 방법을 막을 수단이 없는 것으로 파악해서 그 대책을 고심 중이셨지요.”

“허어!”

“으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박지웅 보스와 하유철 부장은 누나의 말에 정말 놀란 얼굴로 날 바라본다.

“또한, 위상 세계 통합의 연유를 밝혀내지 못한 우민구 박사님과는 다르게 그 원인을 어느 정도 밝혀내는 것에도 성공하셨어요.”

“저, 정말인가요?”

“네. 그게 며칠 되지 않았지만요.”

혜령이 이모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표정이다. 그 내용도 궁금한지 살짝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내가 궁금한 거부터 누나한테 물었다.

“그보다, 우민구 박사님의 발표 여파가 어때?”

“대책을 마련해두고 발표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둘째치고 말입니다. 현재 위상 세계와 조금이라도 밀접한 관계에 놓인 집단들은 우민구 박사의 발표에 의혹을 드러내고 있고 학자들은 우민구 박사의 명성과 자세한 자료에 발표가 거짓이라기보단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능력자들은 대부분 믿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거기다 몇몇은 통합에 관한 현상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죠.

마지막으로 국가단체의 반응은… 뭐, 에너지원의 고갈로 예전의 화석 연료 시대로 회귀하려 하는 건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죠.”

나는 누나한테 물었는데 대답은 하유철 부장한테서 나왔다. 화석 연료 시대…? 위상 에너지를 이용한 환경에서 예전처럼 대기오염이 심한 물질 같은걸 태우는 시대로 돌아간다는 건가.

“사회에 알려진 내용은 단지 위상 세계를 연결해주는 통로의 차단, 그리고 위상 세계의 통합뿐이야. 우민구 박사님은 위상 세계와 단절된 이후의 상황을 시뮬레이터 해보긴 했지만, 그 이상은 발표하지 않으셨어.”

“아, 그런 거야? 혹시 알고 있는데 일부러 발표 안 한 건 아니고?”

“그건 아닌 거 같아.”

뭐, 그렇다면…….

대충 어찌할지 머릿속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혜령이 이모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누날 보며 물었다.

“통합관리부장님. 위상 세계 통합을 회장님께서 이미 예견하셨다는 말씀은…?”

“아, 그 원인은 나 때문이거든요.”

“네에?!” “헛?!” “으음!”

내 대답에 혜령이 이모나 두 부장님들은 기겁한 표정을 지은 데 반해 박지웅 보스는 이해가 안 가는지 어벙한 얼굴을 하다가 되물었다.

“그… 통합이 어째서 회장님 때문이라는 겁니까?”

“물증은 없지만 제 예감은, 암흑이를 제 위상 세계에 데려가서 일어난 일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간단히 해준 설명이지만 그래도 잘 모르겠다는 얼굴의 박지웅 보스에 비해 혜령이 이모는 단번에 이해한 듯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시간 여행의 모순이 시공간의 통합이라는 복구 현상으로 나타났다는 말씀이신 거네요. 그 일은 올해 초였는데, 그럼….”

“…네에?!”

형광등 같은 박지웅 보스의 반응에 혜령이 이모가 놀라서 입을 다물어버리자 누나는 소파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내뱉었다.

“총무부장님이 뭘 말씀하시려는지 알 거 같지만요, 그건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온전히 회장님 탓이라고는 볼 수가 없어요. 회장님이 아니시더라도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으니까요.”

“그렇군요. 회장님이 아니셨더라도 언젠가는 이루어졌을 통합이군요. 지금 국제 정세를 봐서는 말입니다.”

“맞아요.”

누나의 말을 받아주듯이 말을 이은 김표충 부장을 보며 의아한 기분에 물었다. 국제 정세라니, 국제 정세가 어땠길래?

“국제 정세가 어때서요?”

김표충 부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고는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 비듬 떨어진다.

“회장님께서 이형종을 길들이는 데 성공하신 - 물론 평범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성공을 하신 일에 자극을 받은 여러 나라가 현실적인 이유와 인간에게 우호적이지 못한 이형종의 반응에 중단했던 프로젝트를 재가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분쟁 지역의 여러 나라들은, 중동 쪽 동네 말입니다. 거긴 대놓고 군사 목적으로 개발 중이라는 소문도 들리는 중입죠.”

아, 군사 목적… 누날 돌아보니 누나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연합 본부가 너한테 사육하는 이형종을 더이상 늘리지 말아달라 부탁하게 된 이유가 거기에 없지 않아 있어.”

허, 참. 이형종을 전쟁에 쓰려고 한단 말야? 내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니 김표충 부장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구부정하게 앉으며 중얼거렸다.

“연합은 어쩔 수가 없겠죠. 고작 개인과 하나의 레이드 팀이 그만한 이형종을 다루는데 자기들이라고 못할게. 어디있냐고 나서는데, 그런 나라가 한 두 곳도 아니고 반테러 집단에 가까운 국가들이다 보니 힘으로 억누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입니다. 어쨌든 그런 상황이니만큼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다 관리 소흘이나 모종의 이유로 이형종이 자신이 살던 시간대가 아닌 다른 곳으로 유입될 가능성 따위야 얼마든지 있었을 겁니다.”

자신이 자리를 비웠을 때 그런 큰일이 있었을 줄 몰랐는지 화연이는 진지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듣고 눈은 서류 뭉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장기 레이드 중인 한 달간 심상치 않은 일이 터졌군요.”

“그으… 회장님? 우민구 박사님이 발표하지 않은 다른 내용이라는 건 어떤 건가요?”

혜령이 이모는 분위기를 살피다 지금 꺼낼 타이밍이라 생각했는지 두 손을 비비며 물어왔다. 긴장과 초조함이 느껴지는 몸짓이라 이걸 솔직하게 이야기 해야 하나 싶었는데… 슬쩍 누나를 바라보니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위상 세계와의 통로가 막혀도 위상 에너지의 수급에는 문제가 없을 거예요.”

“…헉?!”

“정말입니까?”

잠시 텀을 주고는 엄청나게 놀란 혜령이 이모와 김표충 부장, 하유철 부장의 반응에 비해 박지웅 보스는 이번에도 그 일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표정이다.

“…박지웅 보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 한 겁니까?”

“하 부장님.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저로서는… 이해가 안 갑니다만.”

“위상 세계와의 연결이 끊어져도 위상석의 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말은 뭘 뜻하겠습니까.”

“음… 어헉?!”

어휴, 저 형광등.

“정말 막을 방도가… 없는 건가요?”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혜령이 이모에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나 고민하는데 다행히 누나가 나서서 고개를 저었다.

“그 시간을 늘릴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요.”

“그렇군요. 강제 소환, 그것이 있으니… 아? 그렇다면 강제 소환도 멈춘단 말인가요?”

혜령이 이모의 질문에 누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세가 도래하는 겁니까….”

“그렇진 않을거에요. 이형종이 현실에 나타나는 만큼 능력자도 각성해나갈 테니까요. 다만 현실의 초점은 인간과 인간의 싸움에서 인간과 이형종의 싸움으로 바뀌는 거겠죠.”

내 간단한 정의에 간부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작품 후기 ============================

여름 감기는 개도 안걸린다는데... 난 개만도 못한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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