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20화 (420/517)

00420  바다 속의 마을  =========================================================================

뤼아르네는 완전히 토라진 얼굴로 자신을 무시하고 마을의 중심부로 헤엄쳐가는 알드리치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꽁알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야기를 꺼내면 참견하는 꼴 밖에 안될 테니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알드리치의 뒤를 쫓았다.

알드리치는 3층 동글이 건물이 있는 곳으로 헤엄쳐가고 있었는데, 가다 보니 마을의 이곳저곳에서 머메이드들이 완전무장한 모습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같이 싸울 생각인가? 옆에서 알짱거리면 괜히 신경만 쓰일 텐데.

마을을 살펴보고 있으니 뤼아르네는 뒤따라오면서 계속 투덜거리는데 잠시 귀를 기울여보니 알드리치가 날 사도로 여겨주지 않는 거에 대한 불평들이었다.

- 허깨비 같은 데다 못생기고 조루에 해삼 같은 물건을 가지 졌으면서 사도 님보다 잘난 구석은 하나도 없는 주제에….

“…으흠! 뤼아르네 니가 말하는 신은 용왕이지?”

불평이 인신공격으로 변화하는 조짐에 듣기 난감해져서, 열심히 꽁알거리며 불평을 늘어놓던 뤼아르네에게 호칭을 정정해줄 필요가 있을 거 같아 말을 걸었다.

- 네!

“이제 말해주는 거지만, 난 용왕의 사도가 아니야. 누구의 사도도 아니니까 사도라고 부르는 건 그만두지 않을래?”

사도라고 불리는 건 부담스럽기 이전에 마음에 들지 않는 칭호라서 자제를 요청하니 뤼아르네는 볼을 부풀리며 뚱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반론이나 거부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천천히 알드리치의 뒤를 따라가며 옆에서 헤엄치는 뤼아르네의 어깨를 잡아 아까 이상한 반응을 보여준 이유를 물었다.

- 에… 그건, 사도 님이….-

“사도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내 지적에 찔끔한 뤼아르네는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냐고 물어오길래 이름을 가르쳐주며 이름으로 부르라고 했다.

- 서하 님은 저희 해비와 관련된 분도 아니신데 위험한 오트로스 사냥을 도와주신다고 하신데 감격해서 그랬어요.

날 바라보는 두 눈에 존경과 감탄이 가득 어려있어 내 솔직한 마음을 알게 되면 저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그 오트로스라는건 어떻게 생긴 놈인데? 아침에 내가 잡아온 배물리얌이라는 놈이랑 비교하면 많이 세?”

- 그건 장로와 함께 있는 장소에서 알려드리겠소.

앞에서 헤엄쳐가던 알드리치는 어떻게 들었는지 날 힐끔 돌아보더니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까 알드리치의 행동에 아직 삐쳐있던 뤼아르네는 알게 뭐냐는 식으로 내 팔을 끌어안고 알드리치를 노려보며 말했다.

- 배물리얌 다섯 마리가 있다면 오트로스를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승률을 재어보면 4:6 정도로 오트로스가 우세하리라 생각해요.

- …….

뤼아르네는 이쪽을 돌아보며 눈살을 찌푸리는 알드리치의 시선에 주먹을 들이밀며 메롱 하고 혓바닥을 내밀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봤다. 오트로스라는 놈은 고위 아종이던 거대 바다뱀 다섯 마리로 상대할 수 있다, 그 말은 최고위는 아니라는 말이다. 최고위라면 위상석도 없고 위상력도 낮은 고위 이형종 다섯 마리가 어찌 상대할 존재가 아니니까.

예상에는 위상석이 있는 최고위 이형종이 되기직전의 고위 이형종이겠지.

그렇다면 머맨들 중에 상위 이형종의 숫자가 무척이나 적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 인어 자매들은 중위 이형종이었고 내 덕에 중상위 이형종이 된 뤼아르네가 마을의 무녀가 되었다면….

생각하는 중에 마을 중심의 3층 동글이 건물에 도착해 알드리치를 따라 들어가니 블로어페치가 조게 껍데기나 산호, 해초 같은걸 쌓아서 만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꽤나 그럴듯한 의자라고 생각하며 방 내부를 살펴보니 블로어페치가 앉아있는 의자 뒤쪽에는 300개가 넘는 인간의 두개골과 생선의 두개골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인간의 두개골은 대부분 크기가 일정했지만, 생선은 작은 건 인간보다 작았고 큰 것은 인간의 서너 배는 족히 되는 것도 있는 등, 크기는 물론이고 형태조차 무척 다양했다.

- 어서 오시게. 또 보는군.

주름이 가득 진 얼굴로 웃으면서 쭈글쭈글해진 손을 들어 천천히 위아래로 흔드는데, 주름진 생선 얼굴이 왜 이렇게 웃긴지 모르겠다. 최대한 웃음을 참으며 블로어페치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고 알드리치를 돌아보니 두툼한 근육이 붙어있는 팔로 팔짱을 끼며 입을 연다.

- 자, 궁금한 게 있다면 무엇이든 물어보시오. 최대한 성의껏 대답해드리겠소.

“그럼 사양 않고 물어보죠. 당신들은 꽤 뛰어난 비술 실력을 가진거 같은데 어째서 오트로스를 잡으려 하지 않은 거에요?”

- …잡으려 시도해본 적이 왜 없겠소. 일백 년 전만 해도 우리는 500이 넘는 구성원을 가진 마을이었소. 하지만 지금은 200도 남지 않았지.

내 질문이 어떤 기억을 자극했는지 핏줄이 도드라진 손등으로 눈 밑을 꾹꾹 누르며 정신적으로 피로한 듯 한숨을 쉬는 알드리치 대신 블로어페치가 노쇠한 목소리로 이어받았다.

- 마을이 존폐의 위기에 처한 것은 선대의 어리석은 선택이었지…. 처음 배물리얌이 마을 근처에 똬리를 틀었을 때 쳐냈어야 하는 것을…. 쿨럭. 선대 장로와 일족의 장은 쓸데없이 싸워 희생을 내기보단 경계를 택하는 판단을 내렸다네. 그리고 그것이 심각한 위협이 되어 되돌아온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았지….

“배물리얌이 자릴 잡고 오트로스가 찾아온 거에요?”

- 그랬다면 선대에서 어떻게든 해결을 보았을 것이네.

“그럼?”

많은 말을 해서인지 쿨룩쿨룩거리면서 기침을 하는 블로어페치에게 뤼아르네가 다가가 그의 노랗고 쭈글쭈글한 등을 쓸어내린다. 근데 기침은 기관지가 마르고 자극을 받아서 나오는 거 아냐? 물 속인데 생선이 왜 기침을 하는 거지?

- 내가 대신 이야기해주겠소. 마을을 이끌던 선대는 배물리얌을 그대로 방치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선조들이 방심한 틈을 타 그 뒤를 이어 콰르히, 멜파스, 켈리메곤에 이어 오트로스까지 우리를 노리고 마을 주변에 정착하게 되었소. 그게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지.

다섯 마리나 찾아왔다고?

- 그대로 지낸다면 마을의 존폐 문제가 아닌 해비 일족의 멸망이 될 것이라 여기며 일족은 맞서 싸우기로 마음먹게 되었소. 그렇게 놈들과 전쟁을 벌이며 놈들 중 가장 약한 것부터 미끼로 끌어내 죽일 때마다 많은 구성원이 죽어 나갔소.

알드리치는 이야기하다가 블로어페치 뒤편에 있는 두개골의 산을 보며 말을 이었다.

- 전사만 죽은 것이 아니오. 원정을 나가 마을이 빈틈을 타 공격해온 놈들에게 마을의 어린아이들이 떼로 죽어 나갔고 그것을 막기 위해 나선 어른들도 무수하게 목숨을 잃었소. 또 원정을 나간 전사들 역시 대다수가 죽었지. …어쨌든 50년간 큰 피해를 보면서 세 마리의 악수惡獸를 잡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사악한 배물리얌과 뒤틀린 오트로스를 잡는것은 지난했소.

배물리얌은 굉장히 뛰어난 지능과 인어들로는 뒤쫓지 못할 스피드, 거기가 교활한 성격으로 인어들의 원정을 번번이 피해 다녔고, 콰르히, 멜파스와 켈리메곤을 죽인 뒤로는 그 성격이 더욱 음울해지고 비열해져서 인어들과의 전면전을 피한 채 마을의 취약한 부분만을 공격하곤 했단다.

그 와중에 오트로스는 장난이라도 치듯 마을을 습격해 인어들을 잡아먹었고 그러느라 인어들이 틈을 보이면 그곳을 집요하게 공격해오는 배물리얌으로 인해 피해가 겉잡을 수 없이 누적되다 보니 줄어든 마을 구성원의 숫자로는 배물리얌을 막기에도 벅차 원정은 꿈에도 못 꿀 상황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다섯 마리 중 세마리나 잡았다니, 그거 하나만으로 인어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내가 잡은 배물리얌과 오트로스 외에도 마수가 한 두마리 더 살아있을거라는 내 예상을 뒤집는 이야기다.

- 그 용왕님의 저주를 받을 종자에게 일족의 전사들이 농락당해 죽은 수가 일백이었다네. 거기에 오트로스마저…. 더이상 전투가 불가능해질 상황에 처해 극단의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

불견시不見視의 비술, 암흑이가 먼저 떠올린 위상력을 감추는 비술을 일족의 구성원 전원에게 가르쳐 비밀리에 마을을 이곳으로 옮기고 두 놈에게서 몸을 숨기는 걸 택했다고 했다.

- 그렇게 사악한 배물리얌에게서는 마을과 우리의 기척을 지워 몸을 숨기는 방식을 택했지만, 오트로스는 그걸로도 부족했다네. 그렇게 일족 회의를 거치고 거쳐 내린 결론은… 일족의 남자가 생명을 바쳐 내린 저주로 오트로스를 봉인하는 자구책을 세울 수밖에 없었지…. 쿨럭쿨럭.

“혹시, 지금 블레어페치 뒤의 뼈가…?”

- 맞소. 악수惡獸들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일족 전사들과 오트로스를 봉쇄하고 산화한 자들의 유해요.

유해…? 전사들의 두개골을 왜 여기다? 아니, 기리기 위한 의미에서라면 이해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뼈만 남도록 깨끗하게 발라낸 거지?

슬프지만 자랑스럽다는 얼굴을 하는 알드리치나 콜록거리고 있지만 자긍심이 넘치는 얼굴의 블로어페치를 보니 그럴법하다고 생각했다. 불행에 굴복하고 포기한게 아니라 그에 대항해 맞서싸운 증거였으니까.

“오트로스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길래 기척을 숨기는 비술이 소용없었어요?”

- 놈은 무척이나 거대하오. 놈이 작심하고 주변을 휩쓸면 마을을 지키는 안전공간의 비술로는 막을 수 없소. 이 물방울이 사라지면 우리는 목숨을 잃을 길밖에 남지 않지.

블로어페치와 알드리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짐작했던 거랑 별로 다르지가 않다. 알드리치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윽고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오트로스가 가진 능력은 몇 가지 되지 않지만, 그 능력 하나하나가 해저 산맥을 무너트릴 만한 힘을 가지고 있소. 놈은 여덟 개의 팔을 지닌 해저산과 맞먹는 크기를 지닌 마수 중의 마수요. 여덟 개의 다리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고 거대하며 어떤 공격에도 상처를 입히기 힘들 만큼 가죽이 단단하오.

주둥이에서 쏘아내는 압축된 물화살은 일족의 강인한 전사의 뼈마저 부수고 가르는 위력을 가지고 있지.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여덟 개의 다리가 동시에 휘몰아치며 일으키는 소용돌이에 있소. 그 소용돌이에 휘말린다면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산산이 분해될 뿐이오.

“그거 외에는 없고요?”

- …없소.

좋지 못한 안색으로 설명을 마치고 주먹을 불끈 쥔 채 감정을 억누르는 알드리치를 보며 아까 들은 이야기를 정리했다.

일단 말만 들어서는 오트로스는 최고위급을 넘어선 초위급이다. 해저산과 맞먹는 덩치에 그 덩치에서 오는 힘과 바다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능력. 하나하나 따로 놓아도 사기적인 능력인데 합쳐놓으니 인어들이 어찌 손을 못 쓰겠단 생각이 들었다.

해저산과 맞먹는다니, 중력이 심하지 않은 물 속이라 그런지 크기가 엄청 크다. 하긴, 내가 잡은 배물리얌도 덩치가 백청을 능가하긴 했지. 덩치에 비해 별거 아닌 놈이었지만.

그런데 소용돌이나 물화살은 그냥 놈의 신체로 일으키는 현상 아냐? 위상력이 없는 놈이 일으키는 소용돌이나 물화살은 이형 종들에게 아무런 위협도 안될 거 같은데?

“말만 들으면 그냥 신체 능력만 강한 녀석 같은데, 위상력을 이용한 공격 같은 건 안 써요?”

- 위상력이 뭐요?

- 스펙스를 말하는거에요.

내가 가르쳐줬던 걸 아직 안 잊어먹은 뤼아르네가 알드리치에게 설명해준다. 위상력, 위상석. 위상력에 따른 등급.

- 간단하고 알기 쉬운 분류법이군. 그대의 말대로라면 오트로스는 신체 강화 타입인 거 같소. 그리고 물화살과 소용돌이가 위상력이 깃든 공격일거요.

그렇다면 문제 될 건 없다. 놈의 등급이 약간 모호하긴 하지만 그냥 간단하게 공간의 벽으로 처리해버리면 되겠지.

알겠다며 준비가 되는 대로 출발하자고 말하니 알드리치는 내가 싸우겠다는 의지를 접지 않았다는 것에 안심했지만 곧이어 우려가 가득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내 얼굴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 …사악한 배물리얌을 홀로 쓰러트린 그대의 강함을 의심하는 건 아니오만, 우리는 오트로스를 보다 안전히 잡기 위한 전술을 짤 필요가 있소. 그대의 손에 처단되고 남은 것은 오트로스 뿐. 100년간 우리를 괴롭혀온 오트로스마저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자 지금 일족은 여느 때보다 의욕적이며 고양감이 충만해 있소. 틀림없이 그대의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거요.

“아, 싸우는 건 저 혼자 할게요.”

- …그대가 홀로 배물리얌을 물리칠 만큼 강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오. 하지만 오트로스는 인지를 초월하는 마수요. 얕보다간 큰코다칠 거요.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던 마수를 내가 무시한다 여기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하는 말에 나도 입맛을 다셨다.

- 그러니 그대의 능력을 알려준다면 우리가 오트로스를 잡기 위한 진형과 전술을 짜볼 테니… 듣고 있소?

뭐, 내 겉모습만 봐서는 대단할 거 하나 없는 모습이고 등급이 낮은 이형종은 높은 이형종을 제대로 파악 못하는 거 같으니 저러는게 이해가 가긴 하지만 따로 설명하기는 귀찮고….

…생각해보면 내가 싸운 최고위급 이상인 이형종은 그랜드 터틀이랑 백청 뿐이구만. 미국 사막 거북이랑 검은 곰은 자기 능력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상태였으니 제외하고.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위상력적인 부분을 따졌을 때 오트로스는 고위 이형종으로 파악되고, 만에 하나 틀려서 최고위 이형종이라고 해도 내가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초위 이형종이면 뭐… 답 없으니 도망가야지.

알드리치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으니 그가 점점 기분 나빠하는 게 느껴진다. 뤼아르네도 걱정이 한가득인 얼굴로 나와 알드리치를 지켜보고 있어 생각은 대충 접어두고 입을 열었다.

“제 능력은 여럿이서 싸우기보단 혼자 싸우는데 특화된 타입이에요. 직접 보여줘도 겉보기에는 별거 없어 보이는 능력이라 당신의 우려를 잠재워줄 수가 없네요.”

- 그, 그게 아니오. 그… 우리가 실패한다면 놈을 재우기 위해 한 명이 또 희생되어야 하기 때문이오.

사실이 가득한 솔직함을 담아 몸통 쪽 꽉 찬 돌직구를 던지니 알드리치가 당황해서 산 같은 덩치로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부정한다. 하지만 아직 내 말 다 안 끝났거든?

“제가 마음먹으면 2km 정도 범위는 눈 한번 깜빡일 사이에 통째로 지워버릴 수 있거든요? 당신들이 다닥다닥 붙어오면 오히려 싸움에 방해가 되요. 그러니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세요.”

- 하지만….

“확실히 말해두지만 제가 혼자 못 잡으면 당신들이 합세하더라도 못 잡아요. 그러니 제가 못 잡으면 그냥 오트로스에게 다시 봉쇄를 걸고 놈이 찾아오지 못할 곳으로 마을을 다시 옮기는 걸 추천할게요.”

이렇게 이야기했는데도 알드리치는 뭔가 걱정을 끊어내지 못하는지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는 표정이다.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 거, 확실히 일침을 가하기로 했다.

“당신은 당신 눈앞에 있는 자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지만 배물리얌을 혼자 물리쳤으니 능력 꽤나 있겠다 싶어서 날 끌어들인 거 아니에요? 오트로스만 남았으니 이 기회에 잘하면 모든 걸 끝낼 수 있겠다 여겨서요. 틀려요?”

알드리치의 하얀 상어 얼굴이 벌겋게 물드는 걸 보니까 정곡을 찔렀나 보다. 이제야 내가 자신의 속셈을 눈치챘다는 걸 알았는지 헛기침을 하면서 무안한 얼굴로 시선을 돌린다.

그래도 능력을 조금은 확인시켜 줄 필요는 있을 거 같아 검지를 그의 앞에 세워 호박색 공간의 벽을 작게 쳤다.

작은 큐브 모양의 호박색 공간의 벽이 주변의 물을 빨아들이며 분해하기 시작하자 방 안에 있던 세 인어가 깜짝 놀라며 황급히 뒤로 물러선다. 그 모습을 보며 진한 웃음을 보여주니 알드리치는 헛기침만 하며 내 시선을 피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말이 있지만 지금 조건을 봐서는 당신들에게는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이에요. 전 목숨을 걸었으니 낮은 위험 요소 정도는 여러분들도 책임지시죠.”

- …커흠. 과연 무녀가 신의 사도라 여길법한 능력이구려. 그대의 말에 따르겠소.

- 서하 님….

알드리치와 블로어페치가 있는 방에서 나와 3층 동글이 건물의 꼭대기에 오르니 뤼아르네가 뒤따라 나와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내 이름을 조심스레 불렀다.

“응? 왜?”

- 알드리치의 무례를 사과드릴게요. 알드리치도 원래 저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일족의 마지막 어른이 봉쇄의 의식을 펼치고 목숨을 잃어 남자들의 우두머리가 되면서 강박적으로 변한 부분이 있어요.

……아이? 간장을 한 컵 한 번에 마신듯한 찝찝함에 망설이다가 물었다.

“몇 살인데 아이라고 하는 거야?”

- 열 해를 살았어요.

열 살… 그 덩치에?

“…넌?”

- 열네 해를 살았어요.

...그럼 사회적인 연령으로는 나와 비슷하단 말인데. 하지만 인터넷과 티비로 온갖 정보를 다 받아들이면서 지식만은 성인 어른 못지않은 나랑은 비교가 안되겠지.

웬지 가슴이 갑갑하다. 찐 고구마를 쉬지 않고 먹은 것처럼 답답한 기분에 미간을 찡그리며 다시 물었다.

“대체… 너희 종족의 어른은 보통 몇 살을 기준으로 하는 건데? 블로어페치는 어른 아냐?”

- 저희 일족의 여성체는 열 살이면 육체가 모두 성장해요. 남성체는 다섯 살이면 다 성장하지요. 하지만 비술적인 부분에서는 그 두 배가 필요하기에 보통 성체는 여성체 스무 살, 남성체 열 살을 기준으로 해요. 블로어페치는 일족의 역사를 기억하고 전승해야 할 의무를 가진 전사傳史라서 생사와 관련된 행위는 엄금하고 있어서….

“지금 너희 일족 평균 연령이 몇인데?”

- 여성 체는 열다섯 정도 될 거에요. 남성체는 아홉 살 정도….

나이를 들으니 질린다. 이거 뭐, 연령대가 피라미드잖아. 보통 평범한 사회의 연령대는 항아리이기 마련인데 말야… 애써 웃으며 대답하는 뤼아르네를 질렸다는 표정으로 보니 고개를 푹 숙인채 손가락을 꼬물거린다.

어쨌든 알드리치가 빨리 오트로스를 처리하려는 이유를 알 거 같다. 머맨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으니 조만간 오트로스를 봉쇄하지 못할 상황에 처하니 그런 거겠지.

- 알드리치는 자신이 마을의 마지막 어른이라며, 자신이 죽는 건 괜찮지만, 자신이 죽고 난 뒤에는 남자들이 전부 어려 미래가 없다며 걱정으로 밤을 세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나쁜 아이는 아니니까 서하 님이 이해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점점 목소리가 작아지며 나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고 손가락을 꼼질 일 때마다 탄력 있는 가슴이 일렁인다.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는 녀석을 보다가 녀석의 등을 찰싹 때렸다.

- 꺄으?!

“너도 준비해. 싸우는 거야 나 혼자 한다지만 너도 마을을 이 꼬라지로 만든 놈이 죽는 걸 봐야 속이 풀릴 거 아냐?”

- 아? 넵! 금방 준비하고 올게요!

당황한 뤼아르네는 꼬리지느러미를 열심히 파닥거려 빠르게 집으로 헤엄쳐간다. 거참… 그렇게 말하면 계속 미워할 수가 없잖아.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아래쪽에서 근엄한 자세로 마을을 보는 척, 몰래 엿듣고 있는 알드리치를 불렀다.

“거기서 눈치 보지 말고 올라와. 너말야, 너. 지금 두리번거리는 너.”

- ……왜 갑자기 반말이오?

잠시 꾸물거리다가 내 옆으로 올라온 알드리치는 눈썹을 찡그리고 날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내 나이가 열아홉이거든?”

- 그대와 나는 종족이 다르지 않소?

“그래서 뭐? 니가 나보다 나이 많아? 아니꼬우면 오트로스 안 잡아주고 그냥 나 갈 길 간다?”

- …….

치사하고 아니꼽다는 표정이 보이는 거 같다.

뭐랄까, 안 해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한살이라도 더 먹은 내가 한마디 안 해주곤 못 배길 거 같은 이상한 기분에 손짓해 알드리치를 옆에 앉게 한 다음 말했다.

“임마. 아무리 막중한 책임을 가지게 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됐다고 머리로 익숙하지 않은 흉계를 꾸며서 남을 이용해먹으려 드는 거 아니다.”

- 이, 일족을 짐이라고 여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소!

“그럼 너네 일족의 생명이 깃털처럼… 아니, 비늘만큼 가볍냐?”

- 그…! 그건 아니오만….

“자식아. 내가 뤼아르네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니가 아까 해저 언덕에서 이야길 꺼냈을 때 내 볼일만 마치고 그냥 가버렸을 거야. 물론 배물리얌의 사체도 도로 뺏었을거고. 호감을 가진 사람을 이용하려다 걸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못 배웠냐? 내가 성격이 조금만 더 나빴다면 어쨌을 거 같아?”

- …….

내 말에 조금 이견이 있는듯한 표정이지만 이야기 자체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지 진지한 얼굴로 아래에 모인 인어들을 내려다본다.

“긴말 안 할게. 아까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지. 다시 말해봐.”

녀석은 잠시 이해 못 한 얼굴로 날 바라보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크흠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어물거리다가 나와 눈을 마주치치못하면서 입을 열었다.

- 어, 음… 소, 솔직히 말하자면 그대가 있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되오. ……어, 어려운 일족의 상황을 헤아려 부디 도움을 주시면… 고맙겠소.

알드리치의 말에 일어서서 녀석의 새하얀 등짝을 세게 후려쳤다.

쭈아악!

- 크으?!

…녀석은 생각보다 등급이 낮았는지 평범한 신체 강화 상태의 손짓에 휘청하면서 동글이 건물에서 떨어지려 한다.

“조금 부족하지만 뭐, 그 정도로 봐주지. 형한테 맡겨. 그놈도 배물리얌처럼 만들어줄 테니까.”

- 고, 고맙소.

“그리고 남들 속이는 건 그만큼 위험이 따른다는 것도 기억해둬라.”

- 염두에 두겠소.

슬쩍 웃는 녀석의 입술 사이로 톱날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반짝하고 빛났다.

============================ 작품 후기 ============================

주인공 성격은... 좋게 말해도 착하다곤 할 수 없습니다.

표현을 좋게 꾸민다면야 정이 좀 있다고 하겠지만, 그마저도 평범한 사람 같지 않죠.

주인공이 만약 현재 가족이 아닌 일반적인 가정에서 평범한 남매와 평범하게 자랐다면 틀림없이 1급 소시오패스가 됐을 겁니다 @_@

짧은 시간에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 상황에는 무의식에 잠겨있던 본능이 살짝 튀어나오려 하는 그런 성격인 셈이지요 @_@

주인공 나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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