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19화 (419/517)

00419  바다 속의 마을  =========================================================================

알드리치는 평범한 모습으로 마을 안이 아니라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물방울 바깥의 해저언덕으로 날 데려갔다.

그의 뒤를 따르다 보니 방금 뤼아르네에게 한 행동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비술을 캐내는 것에 몰두해서 죄악감이 마비된 게 이유였을까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내면의 본성이 행동으로 나온거였을까.

비록 뤼아르네가 먼저 안겨 오며 요구한 거지만, 그때 내 대응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내심 뤼아르네의 호감을 당연한 걸로 여기고 그녀를 이형종으로 취급하며 막돼먹은 행동을 한 것은 빼도 박도 못하는 인간쓰레기같은 짓이었으니까.

차라리 밀어내고 솔직하게 말했으면, 거래를 통해 마을의 근심을 해결해준다거나 하는 도움을 주고 정당하게 대가로 받아낼 방법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뤼아르네가 있는 마을을 힐끔거리고 있으니 알드리치가 팔짱을 끼고 똑같이 마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꽤 당혹스러웠겠소. 우리 일족의 여자들은 성욕이 남달라 조금이라도 마음에 드는 남성체가 있다면 금방 달려들곤 하지.

“…조금 놀라긴 했지만 뤼아르네들을 구해주면서 한번 겪어본 거라 당혹스러울 것 까진 없었어요.”

진짜 당혹스러운 건 내 행동이었으니까.

- 그렇소? 그렇다면, 그대만 좋다면 우리 일족의 다른 여자들도 좀 안아주시는 게 어떻소. 열다섯의 남성체로는 일백이 넘는 여성체를 만족시켜주기가 무척이나 어렵다오. 그대같은 강자의 씨라면 여성체들도 마음에 들어할테고 마을의 번영에도 크게 도움이 될 거요.

……뭐?

혼란에 빠진 내 머리를 혼돈의 카오스로 밀어넣는 말이다. 자기 종족의 여자를 다른 종족의 남자한테 안기게 한다고? 거기다 아이까지 낳게 해?

그렇지만 해비가 인간도 아니고 그들이 인간을 닮았다고 해서 인간의 예법을 요구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고, 방금 내가 한 짓을 생각해보면 내가 이들에게 뭐라고 할 처지도 아니라 그냥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넘겨버렸다.

어두컴컴한 해저 언덕 위에서 밝게 빛나는 해비의 마을을 보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으려니 알드리치가 무거운 음색으로 입을 열었다.

- 그대도 봐서 알겠지만, 현재 우리 일족은 남성체가 여성체에 비해 압도적으로 부족하지. 남성체가 태어날 확률이 여성체에 비해 1/5밖에 안 되긴 하지만 남성체 하나가 여성체 다섯을 감당할 수 있다는 점을 보면 크게 문제 되진 않소.

생리학적으로 일부다처제였나. 잠깐, 하나가 다섯을 감당한다니 정력이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이야?

내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꿈에도 짐작을 못 할 알드리치는 우울한 얼굴로 마을을 감싼 채 빛을 발하고 있는 아름다운 물방울을 보며 말했다.

- 해비의 남성들은 성에 담백한 편이오. 그 때문에 마을 구성원의 숫자가 단시간에 많이 늘어나지 않지. 헌데 이 작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남성체가 매년 둘씩 희생되다보니 이것이 고질적인 남성 부족의 원인이 되었고 여성체의 욕구불만을 일으키며 전체 구성원의 숫자가 늘지 않는 이유가 되었소.

“뭐 때문에 매년 둘씩이나 희생되는 건데요?”

- 오트로스. 그 신의 저주를 받을 망할 자식 때문이지.

이빨을 갈면서 씹어먹듯이 하나의 이름을 내뱉는데, 상어다보니 까드득같은 귀여운 소리가 아니라 꽈두드드득하는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거기다 퉤 하고 뭔가를 뱉어내는데, 뭔가 했더니 이빨 조각이었다!

식겁해서 슬금슬금 알드리치한테서 거리를 벌리고 있었더니 왜 멀어지냐는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 놈의 주식은 우리 해비 일족의 여자요. 여자만을 노리는 최악의 마물인 그놈은, 일족의 여자를 사로잡으면 날카로운 창 같은 다리의 끝을 체내에 붙여 체액과 내장을 빨아먹고 뼈를 부숴 뽑아먹지. 잡히면 뼈나 내장 할 것 없이 모조리 빨려 먹혀 너덜너덜해진 가죽만 남게 된다오.

…으웩. 상상해버렸다.

- 그놈을 막기 위해서는 일족의 남성체가 온전한 자신의 생명을 사용해 놈에게 저주를 내려 움직임을 봉쇄하는 수뿐. 만약 봉쇄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우리 일족의 여성체는 하루가 채 가기도 전에 모두 잡아먹히고 말 것이오.

알드리치는 약간 살기가 돋은 눈으로 시선을 돌려 남쪽을 노려본다.

- 그대가 우리 마을에 찾아온 이유는 알고 있소. 그대 같은 강한 아쿠르가 그것을 어디에 쓸 생각으로 원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대의 성정이라면 원하는 비술을 알려줘도 무방할 것이라는 결론을 장로와 내릴 수 있었소.

아, 정신 차리고 나눈 이야기가 그거였나?

이쯤 되니 대강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짐작이 간다.

- 그대가 마을의 무녀와 두 아이를 구해준 것은 잘 알고 있소. 또한, 사악한 배물리얌 역시 그대가 처리해주었지. 그에 대한 사례도 준비하고 있소. 그러나 그대가 오트로스를 잡는데 이번에도 손을 거들어 준다면 우리는 그대를 한 가족이자 영원한 친우로 기억할 것이며 그대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도와줄 것이오.

겉의 이야기만 들어본다면 별문제 없는 도움 요청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음흉한 상어 놈이 말하는 것에서 내가 파악한 점을 늘어놓자면.

그러니까 알드리치의 말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날 이용해 먹겠다는 거다.

위상력을 숨기고 살아가는 이유는 방금 말이 나온 오트로스라는 놈을 비롯해서 다른 고위급 이형종 때문일 거다.

내가 마을에 처음 접근할 때 해비들이 보여줬던 대응. 뤼아르네의 손에 이끌려 마을에 도착했을 때 인어들이 날 두고 나눈 이야기.

그때 분명 사악한 배물리얌이라는 내가 잡은 바다뱀 놈이 마을을 괴롭히고 있었댔지. 거기에 오트로스까지.

배물리얌이 고위 이형종이긴 하지만 비술에 뛰어난 일백이 넘는 해비들이 맞싸운다면 감당하지 못할 놈도 아니다. 해비도 인어의 모습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인간 능력자가 아닌 이형종이니까.

그런 뱀 대가리를 공격도 하지 못하고 숨어 지낸 이유가 오트로스 외에도 강한 이형종이 있어서 오트로스를 봉쇄시키고 사악한 배물리얌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이다가 다른 이형종에게 뒤통수 맞을 걸 걱정해서는 아닐까.

알드리치는 오트로스가 얼마나 강한지 말하지 않았지만 인어 하나의 목숨을 바쳐 움직임만 막는다는 설명으로 봤을때 배물리얌보다 약하진 않을거다.

그걸로 봤을때 어떻게 해도 마을의 전력으로는 오트로스를 뺀 다른 이형종을 동시에 처리하고 막아낼 힘이 안 되는걸 알 수 있는데, 그런 와중에 시기 좋게 나타난 내가 배물리얌을 잡자 오트로스도 마저 죽여 마을의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으로 알드리치가 접근한 거다.

오트로스까지 잡고 나면 더는 위상력을 숨기고 지낼 이유가 사라지게 되니 비술을 내게 알려줘도 상관없게 되니까 이런 조건을 내민 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오트로스라는 놈을 봉쇄한 뒤에 해비 전체가 나서서 나머지 근심을 잡아버리면 되는 일이잖아. 왜 오트로스를 봉쇄만 시켜놓고서는 마을에 접근하는 생명체에게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겠어. 그게 이유니까 그런 거 아냐.

…….

아까 뤼아르네에게 한 실수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 보니 결단을 내리기가 힘이 든다.

평소의 나였다면 이쯤 됐을 때 그냥 나 몰라라 하거나 "감히 날 이용하려 들어?"라고 하면서 정신조작을 걸던가 박살 내던가 해버렸을 텐데 말이야. 자각했더니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잠시 고개를 들어 눈을 감고 달아오른 머리를 식혔다.

그래.

날 이용해먹으려는 수작으로 보여서 조금 기분이 좋진 않지만, 알드리치의 행동이 아주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마을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자라면 기회가 왔을 때 마을의 우환거리를 해결하는 건 당연한 일일 테니까.

남남인 나보단 자기 동족이 더 중요한 게 당연하겠지.

…사고 가속까지 일으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이번에는 그냥 당해주기로 했다. 도와주면 마음 편하게 합법적으로 내가 원하는 비술을 얻어갈 수 있다는 점도 있고… 뤼아르네에게 몹쓸 짓을 한 댓가라고 생각하자.

대신 상대해보고 귀찮거나 못 당할 놈이다 싶으면 그냥 도망가버릴 생각이다. 솔직하게 이야길 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음흉하게 속셈을 꾸미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줄 이유는 없잖아?

말을 꺼내기 전에 잠시 알드리치가 한 말을 처음부터 되새겨봤다. 오트로스만 잡아달라고 했지 그거에 대한 배경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지금도 이 이상 말을 할 기색은 안 보인다.

오트로스와 싸우다 글렀다 싶으면 뤼아르네와 두 동생만 챙겨서 칼카쿰이 있는 곳에 데려다줄 거다. 뤼아르네 자매도 용왕을 섬긴다고 하니 칼카쿰도 배척하진 않겠지. 거기다 내게 빚도 있으니까 내가 직접 데려온 애들을 홀대하지도 않을거고.

주변에 물도 많고 해비가 민물 담수에도 멀쩡히 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문제 될 것도 없다. 아, 그땐 이놈도 끌고 가서 놈의 머릿속에 든 지식을 정신 조작으로 다 빼돌리는 게 낫겠군.

머릿속으로 행동 기준을 정해놓고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도와드리죠.”

알드리치는 내가 곰곰이 생각에 잠기니 긴장한 모습으로 기다리다가 생각을 끝내고 승낙의 뜻을 비치니 그제서야 아가미로 물살을 내뿜으며 안도한다.

- 고맙소! 해비는 그대가 도움을 준 일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됐어요. 감사인사를 할려거든 뤼아르네한테 하세요. 언제 시작할까요?”

- 그대만 괜찮다면 내일 바로 시작했으면 하오.

성격이 급한건지 머맨을 희생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는 것인지 알드리치는 바로 시작하려는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준비 같은 건 안 해도 돼요?”

- 우리는 이 순간만을 오래토록 기다리며 준비해왔소. 일족 전체를 불러모으는데 몇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지. 허나 그대는 오늘 힘을 썼으니 지쳐있지 않소. 그러니 내일….

“전혀 지치지 않았으니 준비만 되면 바로 가죠.”

힘을 쓴 건 암흑이지 내가 아닌데.

알드리치는 정말 놀랍다는 얼굴로,

- 무녀가 된 여성체는 성욕적으로도 매우 강해서 기절 씩이나 시킬 정도였다면 적지 않은 체력을 썼을 텐데, 아침에는 배물리얌까지 잡고… 정말 대단한 체력이군.

이라며 감탄하고 또 부러워했다. 정력이 뛰어난 수컷을 부러워하는 건 어느 종이든 비슷한 거 같구만.

“그보다 오트로스에 대한 정보를 좀 알고 싶은데요.”

- 음.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소? 우선 지시를 내려놓고 알려드리리다.

“그러죠. 얼마나 기다리면 돼요?”

- 그다지 오래 안 걸릴 거요. 뤼아르네의 집에서 기다려 주시오. 준비만 끝내고 바로 가겠소.

“알았어요.”

알드리치와의 대화를 끝내고 뤼아르네의 집에 돌아오니 기절에서 깨어난 뤼아르네가 동생인 실레네의 어깨를 붙잡고 마구마구 흔들고 있었다.

“뭐해?”

- 사도님!

다리가 원래 물고기 꼬리로 되돌아간 뤼아르네는 꼬리지느러미를 저으며 파다닥 헤엄쳐오더니 자기가 만족시켜주지 못해서 내가 실망하고 떠나가버린 줄 알았다며 울상을 지었다.

- 이번에는 반드시 사도 님을 만족시켜 드릴게요! 그러니 한 번 더 해요! 아직 사정도 안 하셨잖아요!

- 나, 나도… 하고 싶어!

…눈앞이 아찔해진다. 강한 의지를 보이며 두 손을 꼭 쥐고 내 허락을 기다리는 자매를 보니 말이 안 나온다.

대체 정조관념이 어떻게 되먹은 인어들이야? 알드리치의 반응이나 권유도 그렇고, 인어들은 성적으로 너무 개방적인 거 아냐?

눈을 반짝이다 못해 번쩍이는 뤼아르네에게 혹시 결혼 같은 개념이 있는지 물어봤더니.

- 왜 결혼 같은걸 하는 건가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황스러워서 어버버거리며 결혼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더니 뤼아르네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 마음이 맞고 서로가 원하면 자유롭게 하는 게 더 좋지 않아요? 마을을 유지하고 나아가 번영시키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많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매번 같은 상대와 하는 것 보단 좀 더 다양한 이들과 더욱 많은 관계가 필요해요!

“그럼 낳은 아이는 어쩌고? 아빠는?”

- 육아는 공동의 의무죠! 마을의 남자들이 모두 아이들의 아빠이고 여자들은 엄마인 거에요!

…쿨럭.

아니, 나도 세 명의 연인과 한 명의 예비 연인을 두고 있으니 남 말 할 처지가 아니지만, 결혼이라는 개념도 없고 막 다른 남자를 가리지 않고 몸을 섞는다는 건… 그건….

- 보다 강한 씨를 받아 자손을 불려 나가는 것이 생존과 마을의 번영을 가져오는 행위에요. 자궁을 놀리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행위에요!

아, 확실히 인어의 자궁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긴 하고 지금 뤼아르네의 자궁은 둘 다 비어있긴 한데. 그런데 말이야.

“그럼 넌 나보다 더 강하고 센 남자가 나타나면 그 남자한테도 안길 거야?”

- 네! 강한 씨를 받아 강한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좋으니까요!

…크아~! 이건 아니다. 진짜 아니다!

갑작스런 대쉬에 당황해서 일단 내 몸만 지킬 생각으로 암흑이를 이용해 유사 성행위를 치른 게 마음에 걸렸었는데,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걸 알게 되니까 죄책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어!

해비 일족에게는 성교가 사랑을 확인하는 행위가 아닌 단순 번식과 쾌락의 도구였던 거야!

이 녀석들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행위지만 나한테는 치명적인 NTR이… 헉,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래. 그냥 속 편하게 알드리치를 도와서 오르투스를 처리해주고 비술만 배우고 떠나자. 아까 있었던 뤼아르네와의 일은 한 겨울 바다의 꿈으로 여기는 거야.

그보다 막내는 이제 중학생 정도로밖에 안 보일 만큼에 발육도 없다시피 한데 자기도 기필코 하겠다는 모습이, 살짝 무서워하면서도 결심이 확고한 모습이다.

그걸 본 뤼아르네는 장하다는 표정으로 실레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언니라면 거기서는 말려야지!!

역시 인간이랑 이형종은 사고방식이 다른 거 같아….

“지금은 안돼. …다음에 기회가 되면 안아줄게.”

- 히잉….

정말 알아보기 쉬울 만큼 눈에 띄게 실망한 뤼아르네는 다시 졸라볼 생각인지 눈을 빛내며 다가오려 한다. 그때 뭔가 약한 진동 같은 게 몸을 훑고 지나가자 고개를 홱 돌려 마을의 중앙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건 막내 실레네도 마찬가지였다.

- 아, 아. 사도님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잠시 긴급 소집이 있어서.

“응. 다녀와.”

이 진동 같은 걸로 연락을 하는 건가? 나도 공간 지각이 아니었다면 눈치 못 챌 뻔 했다.

소집의 이유를 알고 있는 나는 동생과 함께 마을 중심으로 가는 뤼아르네를 손을 흔들어 배웅해주고 동글이 안으로 들어와 암흑이를 불렸다.

“암흑아.”

=넵?=

“니 위상력 감지 범위에 이형종이 느껴져?”

손등에서 머리만 만들어낸 암흑이는 내 질문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도리도리 젓는다.

공간 지각을 최대한 넓게 펼쳐서 살펴봐도 반경 15km 이내에 이형종은 보이지 않아 혹시 내 감지가 좀 이상한 걸까 암흑이에게 물었지만, 암흑이도 이형종을 못 찾았다는 이야기에 오트로스라는 놈은 대체 어디에 있나 궁금해졌다.

“마을의 존재를 위협하는 놈이니 그놈의 근처에 마을을 지을 리는 없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기간마다 봉쇄를 걸어야 하고 놈이 풀려나는지 안 나는지 상태를 계속 체크해야하니 가까운 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혼자 중얼거리니 암흑이는 잠시 입을 다물고 날 지켜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주인님은 상어맨의 속셈을 다 눈치채셨져?=

“대충은. 겉으로 보기엔 무겁고 중후한 모습인데 속으로는 좀 음흉한 거 같아. 대충 상황 보다가 위험하거나 짜증 나게 만들면 그냥 가버릴 생각이야.”

=인어는 어쩌실거에여?=

“인어?”

=뤼아르네라는 인어요.=

뭐야. 암흑이가 이형종한테 신경 쓰는 건 처음 본다. 언제나 음식 아니면 하등한 생물로만 보는 거 같았는데.

“왜? 그 녀석이 맘에 들어?”

=그게. 생각보다 맛있어서… 헤헤.”

헐… 충격적인 대답에 조금 놀란 눈으로 녀석과 눈을 마주하면서 물었다.

“수컷으로 각성했냐?”

=넹? 무슨 말씀이세여?=

…음. 그 맛있다는 의미가 아니었나 보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리면서 마을 중앙 건물에 모인 인어들을 훑어봤다.

잠깐 사이에 꽤 멀리에서부터 헤엄쳐온 인어들은 머맨과 머메이드를 모두 합쳐서 167마리였는데 그중 머맨이 15마리, 머메이드가 152마리였다.

알드리치의 말에 의하면 성비는 1:5니까 머맨은 30마리 가까이 있어야 할 텐데 15마리뿐이라니, 머맨 1마리가 머메이드 10마리를 넘게 책임져야 하나?

성욕이 강한 여자 10명을 매일매일 만족시켜주려면 거시기가 하루종일 꿀단지에 들어가 있어야겠네.

…고추 뿌리 썩겠다.

끔찍한 생각에 진저리를 치면서 동글이 속을 부드럽게 휘감는 해류에 몸을 맡긴 채 마을 중앙 광장을 계속해서 감지했다.

알드리치는 뤼아르네와 블로어페치와 함께 3층 높이의 동글이 건물 위에 서서 광장에 모인 인어들을 내려다보며 뭐라 뭐라 연설을 하고 있었다. 가끔 인어들이 손을 흔들거나 주먹을 뻗으면서 호응해주고 있는 걸 보면 분위기가 나쁘진 않는 거 같다.

그리고 몇몇 머메이드가 내가 있는 쪽을 힐끔거리는데서 내 이야기가 나왔다는 걸 눈치챘다. 뤼아르네의 표정이 어째 모호해서 헷갈리긴 했지만… 아무튼 연설이 끝났는지 인어들이 환호성을 지르는데 뭔가 알아먹지 못할 이상한 소음이 귀에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인어들의 말은 너나 히아리드나 알케마랑은 좀 다른 느낌이네.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신기하고.”

암흑이는 =그런가여.= 하고 무성의하게 대답하더니 촉수를 몇 가닥 꺼내서 내 거시기가 있는 옷 위를 더듬기 시작한다.

“…뭐 하는 거냐.”

=앞으로 주인님을 도와드리려면 주인님의 성기 사이즈를 측정해볼 필요가 있을 거 같아서…. 히히.=

“필요 없거든? 너 이러다 프랑한테 걸리면 죽는다?”

=……죄송합니당!=

후덜덜하면서 촉수를 되물린 암흑이는 =프랑 마님 무서워.=를 반복하다가 스르르 방어구 형태로 돌아가 버렸다.

알드리치의 일장연설이 끝나자 전투태세를 갖추는지 머메이드들은 전원 자기 집으로 돌아가 방어구를 차려입고 무기를 챙기기 시작했다.

머맨들도 나름 팔과 다리에 무언가의 껍질 같은걸 둘둘 감기 시작한다.

무기로 쓰일법한 작살이 나 끈 같은걸 챙기는 인어들로 인해 분주해지는 마을 분위기에 슬그머니 동글이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구경하고 있었었더니 뤼아르네가 돛새치 버금가는 속도로 헤엄쳐왔다.

“왜 그래?”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 가슴에 안겨 온 뤼아르네는 얼굴을 묻은 채 아무 말이 없어 왜 이러는지 의아스러웠는데, 뒤따라 돌아온 카르네와 실레네가 나랑 거리를 두면서도 부러운 표정으로 자기 언니를 바라보는 모습에 의문만 깊어졌다.

- 흠. 올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이 집은 입구가 너무 작군. 그대, 아쿠르여. 잠시 나와주겠소?

- 알드리치! 사도 님은 아쿠르가 아니에요!

- ……오트로스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려 하니 잠시 나와주시오.

날 여행자라고 지칭하는 알드리치에게 뤼아르네가 도끼눈을 하면서 바락 소리치자 잠시 뜸을 들이던 알드리치는 뤼아르네를 무시하기로 했는지 엄지로 자신의 등 뒤를 가리키고는 몸을 돌려 헤엄쳐나갔다.

============================ 작품 후기 ============================

>_<;;

오트로스인데 또 오르토스라고 자꾸;; 수정했ㅅ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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