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17화 (417/517)

00417  바다 속의 마을  =========================================================================

거대 바다뱀… 이름이 배물리얌? 베물리얌? 아무튼 그런 이름의 바다뱀이 전부 해체되어서는 각각의 집이나 마을 중앙의 거대 동글이 냉장고 속에 들어가는 모습을 푸른색 공간의 벽 위에 앉아 미동도 없이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농땡이 치는 건지 머메이드 세 마리가 근처까지 다가와서는 내 주변을 빙빙 돌며 구경한다.

경계 태세가 끝났는지 상체에 걸치고 있던 갑옷들을 벗어서 하얀 피부와 보기 좋은 젖가슴을 그대로 노출한 상태였다.

- 어떻게 물속에 가만히 떠 있을 수 있는 거지?

- 사자 님이 뭔가에 앉아있는 거 같아!

- 바보야. 사자 님이 아니라 사도 님이야. 근데 뭘 앉고 계신 거지? 안 보여!

- 나도 안 보여!

마르네와 아리네라는 머메이드 둘에게 환청 취급을 받은 암흑이는 인어들 앞에서는 말하지 않기로 한 것인지 머메이드가 이쪽을 보며 재잘재잘 떠들어도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나도 눈길 한번 안 주고 가만히 있었더니 머메이드들은 용기가 샘솟는지 진한 해초 색의 긴 머리를 가진 머메이드 한 마리가 짙은 바다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머메이드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 말 걸어봐~.

- 싫어! 무서워~. 니가 말 걸어봐!

- 내, 내가? 나도 무서운데!

무섭다면서도 내 뒤쪽으로 슬금슬금 헤엄쳐오더니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손가락을 살그머니 뻗었다.

툭.

머메이드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공간의 벽을 톡 건드리자 곧장 머릿속으로 신호가 온다.

- 꺄아! 뭔가 있어! 뭔가 있어!

- 뭐야? 뭐야?

- 뭐가 있는데?

- 몰라!

- 히이~!

공간의 벽에 손가락이 닿은 머메이드는 소름이 돋는지 손을 파닥파닥 흔들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 마! 그런 모습은 1년 전 학교생활이 생각나서 마음에 상처받는다고!

거실 바닥에 떨어진 지우개를 대신 집어줬더니 인상을 팍 쓰면서 더러운 오물을 잡듯이 엄지와 검지로 끄트머리만 잡던 여자애가 떠오른다…!!

더러운 거랑 무서운거랑의 차이가 있지만 다가오기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라 저것들의 모습을 공간 지각으로 지켜보고 있으니 마음에 상처가…! 크흑.

또래로 보이는 세 마리의 머메이드는 서로 손을 잡고 꺅꺅거리면서 호들갑을 떠는데 어째 암흑이가 살짝 한숨을 쉬는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대 바다뱀 해체가 끝나자 산호 밭으로 일하러 가는 머메이드도 있고 사냥이나 채집을 나가는지 채집망이나 산호 창을 들고 마을 밖으로 나가는 머메이드도 있었지만, 내 쪽으로 다가오는 머메이드도 많아진다!

튈까?

평균 외모가 비능력자 연예인 뺨치게 예쁜 것들이라 호의적인 관심이 좋긴 하지만 역시나 꺼려하면서 접근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마음에 상처가…!

스물이 넘는 머메이드에 가시 같은 지느러미가 잔뜩 난 머맨도 한 마리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거, 쏨뱅이 아닌가? 쏨뱅이 머맨이라니….

검은색과 회색과 은색이 삼색으로 이루어져 대비 색이 강렬한 데다 지느러미의 가시도 날카로운 게 머메이드도 쏨뱅이 머맨 주변엔 가까이 가지 않는 걸 보고 저놈도 가시에 독이 있구나 짐작했다.

아, 역시 튀어야겠다.

- 꺄! 일어났어!

- 섰어, 섰어!

- 가운데 다리가 선거야?

- 꺄하하! 가운데 다리래!

……그 얼굴로 그러지 마라. 생긴 건 초등학교 5학년인 주제에 그런 말 입에 담는 거 아니야!

공간의 벽을 치우고 아래로 떨어져 내리니 암흑이가 눈치 좋게 촉수 프로펠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 아잉. 사도 님 어디 가시는거에요~!

- 쫓아가자!

- 잡자!

- 잡아? 잡아?

- 저놈 잡아라~!

어떤 년이 외친 건지 모르겠지만 잡자는 말이 나오자마자 서른에 가까운 인어들이 개떼처럼 달려든다! 와, 진짜 대책 없네!

푸른색 공간의 벽으로 묶어버리거나 공간 도약으로 피할 수도 있지만, 내 능력은 될 수 있으면 숨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뤼아르네와 알드리치가 있는 중앙 건물로 몸을 날렸다.

- 와~?! 사도 님 뒤에 있으니 뭐가 기분이 이상해~!

- 나도나도!

- 아냐! 내가!

촉수 프로펠러가 만들어내는 물흐름이 인어들의 입장에서는 신기한 모양인지, 뒤쫓아오던 것들이 본분을 망각하고 서로 내 뒤에 서려고 아둥바둥거린 덕분에 붙잡히지 않고 중앙 건물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중앙 건물에는 동글이가 3층 규모로 18개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중앙 건물에 나 있는 가장 큰 동글이, 뤼아르네와 알드리치가 들어갔던 곳으로 뛰어드니 머메이드들이 뒤따라오지 못하고 아깝다는 얼굴로 동글이 밖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후우.”

건물 안에는 알드리치와 처음 보는 작은 머맨이 뤼아르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들은 내가 뛰어들자마자 이야기를 멈추고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본다.

- 사도 님? 무슨 일이세요?

“인어들이 날 잡으려 들길래 피한 거야. 난 그냥 가만히 앉아있는데 대체 왜 날 잡으려 드는 거야?”

- 마을에 초대받은 손님은 40년 만에 처음이니까 신기했던 게지.

허락없이 동글이 안으로 뛰어들었지만, 조금 못마땅한 표정의 알드리치와는 다르게 키가 70cm도 안 되는 노란 복어 머맨이 가장 상석에 앉아 날 보며 인자하게 웃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데다 상석에 앉아있는걸 보면 이 마을에서 특수한 위치에 있는 머맨인가보다.

세 인어가 있는 동글이는 지름이 8m 정도였는데, 바닥에는 해초가 가득 깔려있어 생각보다 푹신하다. 뤼아르네와 알드리치는 그 위에 몸을 늘어뜨리고 모로 누워있었다.

복어 머맨의 반응을 본 알드리치는 어깨에 붙어있는 상어 지느러미를 한차례 휘저은 뒤 내게 말했다.

- 마침 잘 왔소. 그렇지않아도 그대의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지. 괜찮다면 같이 대화를 나누지 않겠소?

“그러죠.”

이야기를 나눈다 는 건 공간 지각으로 뻐끔거리는 걸 감지하고 있었기에 알고 있었지만 그게 내 이야기였을 줄은 몰랐다. 무슨 이야긴지 궁금해 자리가 비어있는 곳에 대충 앉으니 뤼아르네가 생글생글 웃으며 슬금슬금 다가와 내 어깨를 잡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 모습을 할아버지 미소로 바라보던 복어 머맨은 자신을 블로어페치 라고 소개했다.

“전 정서하에요.”

- 무녀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네. 고립된 아이들을 구해준것에 감사를 표하겠네.

“아니에요.”

나는 몇가지 정보를 알아보기위해 뤼아르네의 몸으로 실험해본거였는데… 그 점은 말하지 않았는지 나에 대한 대응이 자못 우호적이다. 내가 tp를 주입해줘 진화시킨 이야기도 했으려나? 저 모습을 보면 안한거같기도 하고….

어쨌든 저 상어놈만 빼고 한껏 우호적인 모습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블로어페치를 바라보니 흐뭇한 얼굴로 질문을 던져온다.

- 그대가 말한 인어는 우리를 부르는 겐가. 다른 곳에서 우리와 비슷한 이를 본 적이 있나?

“아뇨. 제가 살던 곳에서는 옛날 옛적에 당신들과 비슷한 존재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그렇게 불렀죠. 실례였다면 사과드릴게요.”

- 흘흘. 사과랄 것까지야 있나. 우리는 창해의 용왕님을 모시는 해비 일족일세. 앞으로 그리 불러주었으면 좋겠군.

해…비? 사비랑 비슷하네. 그런데 이들도 용왕을 섬긴단말야? 아니, 바다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그래도 좀…. 거시기한 기분이 드는데.

- 표정을 보아하니 우릴 보고 뭔가 꺼림칙한 기억을 떠올린듯한데… 연유를 물어보아도 괜찮겠는가.

전부 말해줘도 되나? 잠시 알드리치와 블로어페를 보며 사실대로 말했을 때의 가정을 해봤지만, 모르겠다. 그냥 적당히 이야기하면서 반응을 보고 적당히 조절해야지.

“여기서 북쪽으로 대충 2,000km 쯤 되는 곳에 사비 종족이 사는 건 알아요?”

- 물론이네. 긴 시간 소통을 하지 않았지만…쿨룩. 용왕님을 섬기는 친족으로 사비 종족이 벨티칼 산에 도시를 꾸렸다는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지. 그들을 만난 적이 있는 겐가?

“네.”

- 호오, 이거 참 반가운 소식을 가진 손님이셨군.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네. 잘 지내던가? 자네가 보기엔 어땠는지 알려주게.

아~ 역시 백청에 관한 일은 꺼내지 말자.

“근래에 좀 큰일이 있었어요.”

- 큰일이라… 북쪽에서 느껴진 진동과 관계된 일이려나?

“알고 있었나요? 대충 10일 전쯤에 벨티칼 산이 무너졌거든요.”

- 뭐라?! 신산이 무너졌다니, 그게 진짜요?!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알드리치였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난 알드리치는 몹시 흥분한 기색으로 아가미를 뻐끔거리며 소리쳤다. 그 모습을 힐끔 쳐다보고 블로어페치를 보며 마저 설명했다.

“백청이 누군가와 원한을 사서 목숨을 건 사투 끝에 스스로 산을 무너트렸어요. 사비 종족도 그 산사태에 휩쓸려서 2/3가량이 죽고 사제도 칼카쿰을 포함해서 넷 만 살아남았죠.”

- …허어.

친족이라 부르는 사비 종족의 불행에 낙담한 모습으로 양아치처럼 주저앉아 넋이 나간 알드리치와는 다르게 포메오르투는 침중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야기로만 들어 충격이 덜한지 알드리치는 금방 정신을 차리더니 날 바라보며 물었다.

- 백청 님은 용왕님의 사도로써 물과 번개의 권능을 지닌 그분의 대리자요. 그런 분이 사투를 벌이다 산을 스스로 무너트려야 할 만큼 강대무비한 적이라니, 대체 그 적이 누구요?

이거… 아무래도 백청이 죽었다는 뜻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은 거 같지? 이 이상 이야기를 꺼내봤자 나한테 좋은 일은 없을 거 같아 얼버무리기 위해 그냥 고개를 저었다.

- 그런가….

그리고 이야기가 끊기고 동글이 속에 적막감이 감돌자 침중한 모습인 블로어페치와 낙담한 모습의 알드리치를 번갈아 보던 뤼아르네는 날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 사도 님은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오신 거에요? 이런 말씀을 드리긴 죄송하지만, 저희 마을은 어지간해서는 찾기 힘든 곳에 있었는데.

“북쪽 해안선에서 쉬고 있는데 바닷가재들이 이형종이랑 싸우는 걸 봤었어.”

- 아.

“그게 신기해서 구경하다가 바다 속으로 잡은 이형종을 끌고 들어가길래 그 뒤를 따라가다 보니 고등어처럼 생긴 해비가 보이더라. 그 뒤에는 뭐… 그를 쫓다 보니 여길 발견한 거야.”

- 어휴. 마렛치도 참.

그 고등어 이름이 마렛치인가? 머맨의 이름은 치 자 돌림인가 보군. 뤼아르네는 단단히 화난 모습으로 알드리치와 블로어페치를 꼬리지느러미로 바닥을 찰싹찰싹 때리며 이번에야말로 그를 혼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저번에도 살아있는 이형종을 데려와 어린 피네를 죽게 만들 뻔 한 실수를 저지르더니, 이번에는 사도님이셔서 망정이지 다른 로스무스를 데려왔다면 어떻게 될 뻔했겠어요! 마렛치에게는 주변을 좀 더 세밀히 살필 주의력을 주기 위해서라도 크게 혼을 낼 필요가 있어요!

- …….

- 알드리치?

하지만 대답 없이 묵묵히 바닥에 깔린 해초만 바라보던 알드리치는 뤼아르네의 이야기에 반응하지 못했고 블로어페치도 정신이 딴 데 팔려있어 뤼아르네가 만족할 법한 대답을 들려주지 못했다.

그 모습에 입을 한번 삐죽 내민 뤼아르네는 골반 쪽에 붙어있는 작은 지느러미를 파닥거려 몸을 띄우더니 손가락을 들어 바깥을 가리키며 내 손을 잡아 당겼다.

나가자는 건가? 저 둘은 어쩌고?

의아함이 들었지만 일단은 분위기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어 뤼아르네를 따라 헤엄쳐 방을 빠져나왔다.

“이대로 빠져나와도 괜찮아?”

- 해비의 남자들은 저렇게 생각에 빠져들면 옆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나도 몰라요!

내 팔을 끌어당겨 가슴에 품은 뤼아르네는 그런 거 모른다는 듯이 퉁퉁거리면서 말했다. 근데… 뤼아르네의 가슴 질량이 보기보다 훌륭하다.

전투태세가 풀렸는지 상체를 가리고 있던 갑옷을 벗은 뤼아르네의 가슴은 속성 저항 타이즈 슈츠에 겨울용 옷 한 벌에 암흑이의 방어구 형태까지 3겹이나 껴입은 팔에 묵직한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아무튼,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는지 뤼아르네는 한번 크게 투덜거리고는 표정을 고쳐 방긋방긋 웃으며 북쪽의 동글이 주택가로 헤엄쳐나갔다.

중간중간 몇몇 머메이드가 날 발견하고 헤엄쳐오다가 내 옆에 붙어있는 뤼아르네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U턴해서 도망가버린다.

인어들의 행동이 약간 신경 쓰이긴 했지만 가면서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리와 마지막으로 헤어지던 날 뒤로 강을 타고 남서쪽으로 향하며 겪은 모험담을 이야기하면서 즐거워하길래 나도 맞장구쳐주며 뤼아르네의 기분을 맞춰줬다.

이렇게 해서 뤼아르네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놔야 살살 구슬려서 몇 가지 정보라도 챙기지.

이야기는 대부분이 생선(뤼아르네들)을 노린 고약한 고양이(이형종)을 혼내주고 물에 빠트려 죽이는 이야기였는데, 중간중간 곁들이는 이야기에는 역시 인어들이 비술을 사용한다는 걸 증명하는 내용도 포함이 되어있었다.

- 그래서 물의 요정을 불러 노란 바탕에 검은 점박이 고양이에게 뜨거운 물을 뿌려 깜짝 놀라게 만든 뒤에 물에 끌어들여 익사시켰지요!

“이야, 고양이들은 반사신경이 빨라서 잡기 힘들었을 텐데 동생까지 지키면서 놈들을 잡다니, 정말 대단한데!”

내 호응이 기뻤는지 아니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기쁜 표정으로 열과 성을 다해서 무용담을 자랑하던 뤼아르네는 5m짜리 동글이 하나를 중심으로 3m짜리 동글이 6개가 육망성처럼 붙어있는 집에 도착하자 무언가를 기대하는 얼굴로 날 이끌었다.

- 여기가 저희 집이에요!

공간 지각으로 이미 카르네와 실레네가 작은 동글이 방 안에서 둥둥 떠다니는 걸 봤기에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대단한 걸 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집이랑 비교해서 굉장히 큰걸? 역시 뤼아르네가 무녀라서 큰 집을 받은 거야?”

- 사도 님이 절 강하게 만들어주셔서 그 능력으로 전대 무녀님의 뒤를 이은 덕분이랍니다!

“그래? 음. 내가 진화시켜준걸 알드리치나 블로어페치한테는 말 안했어? 아까 모습을 보니 그런거 같던데.”

- 그건… 저와 사도 님 둘만의 비밀이라고 생각해서… 바라시면 알드리치와 블로어페치에게 말하겠어요!

“아냐. 둘 만의 비밀이라니, 기쁘다.”

- 에헤헤… 우헤헤.

둘 만의 비밀이라 기쁘다는 말이 포인트였는지 잔뜩 기분이 업된 뤼아르네의 뒤를 따라 중앙에 있는 가장 큰 동글이 안으로 들어가니 크기에 비해 해초나 가구 같은 거 하나 없이 텅 비어있는 방이 날 맞이한다.

먼저 방에 들어간 뤼아르네는 어떤 움직임도 없이 편안한 모습으로 동글이 방 안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는데, 뭐지 싶어서 공간 지각으로 방 안을 살펴보니 해류가 동글이에 나 있는 세 방향의 구멍에서 흘러들어오고 나가며 동글이 속을 돌고 있었다.

저것 덕분에 움직이지 않아도 몸이 해류가 몸을 밀어 올리며 둥둥 떠다닐 수 있는 거 같다.

나도 방의 중심부로 헤엄쳐가서 몸에 힘을 빼니 물살에 따라 몸이 둥실둥실 떠다니기 시작한다. 만약 구름 위에 누워있다면 이런 느낌이려나?

미소 짓는 얼굴로 날 지켜보며 편한 자세로 동동 떠다니던 뤼아르네는 뭔가가 생각났는지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하더니 8시 방향의 동글이로 헤엄쳐갔다.

뭘 하러 가는 건가 지켜보자 뤼아르네는 작은 동글이 속에 떠다니는 온갖 해산물을 고르는데, 뤼아르네의 살굿빛 피부가 금세 푸르게 질리는 걸 보니 저 안의 온도가 보기보다 꽤 낮은 거 같다.

몇 가지 해산물을 챙겨 든 뤼아르네는 얼른 내가 있는 방으로 되돌아오더니 손으로 가슴과 배와 팔을 마찰하며 춥다는 표정으로 부르르 떨더니 내게 가져온 해산물 패키지를 내밀었다.

- 드세요! 오늘 채집한 싱싱한 것들이에요!

…입안에 진주를 머금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먹지? 시험 삼아 입에 든 진주를 뱉고 내 손가락 두 개보다 굵은 새우의 껍질을 벗겨 생새우를 입에 집어넣으니 바닷물도 같이 밀려들어 온다.

어우. 먹기 힘든데.

먹는 걸 사양하면 실망할까 봐 먹을 방법을 궁리하다 우연히 뤼아르네의 얼굴을 봤는데, 귀가 빨개진 채 내 손에 들린 진주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 앗, 아니에요. 에헤헤.

다시 입에 진주를 물고 물으니 얼굴까지 붉어진 뤼아르네가 몸을 배배꼬며 아랫배를 만지작거린다.

…이 진주가 뤼아르네의 뱃속에서 나왔던 거지? 생살을 가르고 손을 집어넣어 꺼내던 그로데스크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아무래도 인어에게서 체내에서 꺼낸 진주는 내가 모르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거 같다.

직접 새우의 껍질을 까서 뤼아르네의 입에 가져가니 잠깐 부끄러워하다가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내밀어 새우를 받아먹는다.

얼굴을 잔뜩 붉히면서 입을 오물거리는 뤼아르네는 탐스러운 가슴이 부풀고 가슴 아래 나 있는 폐와 연결된 아가미에서 거칠게 물살을 뿜어내고 있어 감정적으로 고조되고 있다는 걸 파악했다.

좋아. 분위기도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 한번 시도해볼까?

“아, 눈이 좀 뻑뻑한걸.”

몇 번 더 음식을 먹여주고 뤼아르네의 꼬리지느러미가 파닥거리기 시작할 때 일부러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리며 암흑이가 자신의 몸의 일부로 만든 고글을 톡톡 건드리며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신호를 캐치했다는듯이 스르륵 하고 고글이 풀려난다.

호감도가 그렇지 않아도 가득 차있는 상태에서 호감도를 때려 넣는 마나 비전을 보인다면 어떻게 될까?

하지만 바닷물 속에서 눈을 뜨면 눈이 아플 텐데… 그래도 비술을 훔쳐 배우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쯤은!

마나 비전을 키고 몇 번 눈을 끔뻑거리며 바닷물에 눈알을 적신 뒤, 공간 지각으로 뤼아르네의 시선을 체크하고 정확히 마주 바라보니 새우를 오물오물 씹고 있던 뤼아르네의 움직임이 잠시 멈춘다. 하지만 금방 원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통한 거야 안 통한 거야? 나 나름대로 그윽한 눈빛을 연기하며 뤼아르네의 눈을 마주하는데… 아, 눈 따가워.

안 되겠다.

“아, 잠깐.”

…이거 너무 따갑다! 식염수로 눈을 씻으면 좋겠…는 데 식염수가 어디 있냐! 눈알을 찌르는듯한 따가움에 손으로 눈을 가리고 끙끙거리니 암흑이가 잽싸게 고글 형태로 만들어져 눈을 가리고 바닷물만 바로 분해해 공간을 만들어낸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아려오는 눈알에 괴로워하고 있으니 뤼아르네가 염려가 가득한 표정으로 다가와 내 손을 잡고 물었다.

- 사도 님, 괜찮으신가요?

“눈이 무진장 따가워….”

으으으. 호감도를 확실하게 때려 박으려다 눈알이 뽑히겠네….

- 왜 그러셨어요? 뭍에 사는 생물은 바다 속에서 눈을 뜨면 무척 괴로울 텐데….

“…그러게.”

어떻게 솔직하게 '니 마음을 완전히 빼앗아서 비술에 대해 캐물어 보려고 그랬어'라고 말하냐.

기껏 잡아놓은 분위기를 다 망쳐버린 거 같아 한숨을 푹푹 쉬면서 그냥 배나 채울 겸 뤼아르네가 가져온 해산물에 손을 뻗었다.

분위기를 다시 잡기보단 그냥 밥을 먹고 나서 다른 방법으로 꼬셔봐야지. 내 연애 스킬로는 이 상황에서 다시 좋은 분위기를 만들 재주가 없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진주를 뱉은 뒤에 굴을 하나 집어 들고 표정 관리를 하면서 껍질을 까서 한입에 털어 넣었다.

“…어!”

혀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으면서도 쫄깃쫄깃한 굴은 비린 맛은 하나도 나지 않는 채 짭조름하면서도 코의 점막을 자극하는 강렬한 향기에 눈이 번쩍 떠졌다!

“우와. 엄청 맛있는데?”

- 우후훗. 맛있죠?

사실 평범한 회 같은 걸 제외하고는 생굴이나 해삼, 멍게 이런 건 못 먹는데, 특히 중학생 때 생굴을 먹었다가 장염에 한 번 걸린 뒤로는 생굴은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뤼아르네가 가져다준 건 진짜 너무 맛있어서 컬쳐쇼크를 일으킬 정도다!

혹시나 싶어서 대합인지 홍합인지 모를 조개를 까먹으니 내장에서 느껴지는 쓴맛과 조갯살의 탄력에 바닷물의 짭조름한 맛이 섞여 무척이나 맛있다! 뤼아르네에게 까줬던 내 손가락보다 조금 더 크고 굵은 새우도 까먹은 뒤에 처음 보는 해삼이나 멍게에 손을 뻗었다.

…그런데 따뜻한 곳에 나와서 그런지 금새 살아서 꿈틀꿈틀 거리는 해삼을 보니 이건 어떻게 먹는 건가 난감하다.

- 사도님, 이리 줘보세요.

손에서 꾸물거리는 해삼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으니 뤼아르네가 배시시 웃으면서 해삼을 건네받아 손으로 확 찢어서 내장을 발라내고 잘게 찢어 내 입에 넣어준다.

- 내장은 쓴맛이 많이 나서 어른들만 먹어요. 이걸 이렇게 드시면 맛있을 거에요.

음, 뭐 해삼이나 멍게는 조개 내장보다 쓴맛이 좀 더 강하긴 했지만 씹는 맛이 오돌토돌해서 상당히 맛있었다.

그렇게 조개도 생으로 먹고 새우도, 전복도 먹고 입안에 착착 감기는 해초도 먹으면서 여기에 오면서 겪었던 일을 (각색해서) 들려주거나하면서 식사를 이어나갔다.

============================ 작품 후기 ============================

다음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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