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14 9회차! =========================================================================
=그걸로 괜찮은 거에여?=
“죽이는 게 낫지 않았겠냐고?”
=능력의 낭비인 거 같아여. 언제 볼지도 모르는뎅.=
“글쎄. 지금도 정신조작 용량이 조금씩 늘고 있는데 고위 이형종 한 마리 정도는 괜찮아.”
결국 피스터머와 금색 오랑우탄은 죽이지 않았다. 대신 금색 오랑우탄에게 "지금부터 너한테 지배를 걸겠다."라고 말한 뒤에 정신 조작을 걸어 충성심과 복종심을 새겨넣었다.
그러면서 TP를 주입해서 녀석의 몸 안에 위상석을 만들어 두목에 걸맞은 무력을 가지도록 해줬고, 위상석의 효과로 지능이 조금 더 올라간 덕분에 내 이야기를 대강이나마 알아듣는다는 걸 확인한 다음 날 대신해 숲을 다스리라고 명령했다.
금색 오랑우탄 녀석이 암컷이라는 걸 확인하고 금순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뒤에 하나의 명령을 더 내렸는데, 하나는 나와 비슷하게 생긴 존재가 밀림에 들어서면 절대 공격하지 말고 그냥 위협을 줘서 쫒아내라는 거였다.
“싹 다 죽여버리는 것보단 이쪽이 더 나으니까.”
=우웅. 다른 인간들을 생각해주실 필요가 있으신 거에여? 주인님이랑 상관없는 사람이잖아여.=
“그렇지. 근데 밀림의 근방에 누나의 복귀 장소가 있거든.”
=앗, 넵.=
위상 세계의 통합이 어떻게 진행될지 몰라 이곳에 다른 능력자들이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누나의 안전이다. 그래서 지금 10m짜리 두목 흑검치호를 찾아다니는 중이고.
2대 두목이 된 금순이는 무력적으로 좀 약하다. 시간이 지나서 싸움도 좀 겪고 위상석이 생긴 몸에 익숙해지면 괜찮겠지만 지금 두목 흑검치호랑 붙게 되면 금순이가 필패겠지.
거기다 전 두목 때문에 몰살당한 전력의 공백을 생각하면 파워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두목 흑검치호와 상위 이형종 이상 되는 놈들의 숫자를 줄여놔야지.
경기도의 절반만 한 밀림을 공간 도약으로 뒤지고 다니며 상위 이형종 이상 되는 고양이과 이형종을 모조리 죽여서 아공간 안에 집어넣으며 흑검치호를 찾아다녔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밀림을 뒤지고 다닌 결과, 독수리 날개 같은 게 달린 암컷 호랑이 이형종과 열심히 후손을 보기 위한 행위를 하는 녀석을 발견했다.
얼마나 행위에 집중하고 있는지 내가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열을 올리는 녀석을 바라보다가 그냥 앉아서 기다려주기로 했다.
…마지막 자손 번식 행위인데 하는 도중에 죽이는 건 불쌍하잖아.
두 놈 다 고양이과니까 꽤 높은 확률로 2세가 태어나겠군. 거기다 암컷 호랑이는 상위 이형종이다. 2세가 태어나면 말 그대로 금수저일 가능성이 높다.
=주인님. 점심시간이에여. 식사 하세영!=
“어, 벌써 점심이네.”
어디 보자, 누나가 김치김밥을 만들었었는데.
아공간을 열어서 김밥이 가득 들어있는 반찬 통을 꺼냈다. 배추김치가 5포기는 들어갈 만큼 커다란 김치통만 한 크기에 김밥이 먹음직스럽게 잘린 채 가득 들어있는데, 내용물의 바리에이션이 김치에 치즈에 제육에 야채와 돈까스까지 굉장히 다양하다.
=우왕!=
암흑이는 커다란 반찬 통에 가득한 김밥을 보고 행복해하더니 자기 머리만 한 김밥 하나를 집어 들고 베어먹기 시작했고 나도 손으로 김밥을 집어 먹으며 흑검치호가 행위를 끝내길 기다렸다.
“아, 저 자식 더럽게 오래 하네.”
처음 독수리 날개의 암호랑이와 교미가 끝나갈 때쯤 갑자기 검붉은 색의 레오파드 암컷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한창 교미 중인 녀석들의 옆에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었다. 뭐지 싶어 지켜보고 있었더니 암호랑이가 지친 모습으로 숲 속으로 사라지자 흑검치호는 바로 레오파드와 교미를 시작햇다.
그 뒤로도 교미가 끝날 때쯤 교대하듯이 다른 놈들이 나타났는데, 치타에 재규어에 퓨마에 스라소니처럼 생긴 놈도 있었고 비슷하게 생긴 검치호나 사자에 이어서 스밀로돈까지 등장했을 때는 기다린 지 3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스밀로돈과 교미가 끝나갈 때쯤에 서벌처럼 생긴 대형 고양이가 나타나자 짜증이 가득 솟아서 하늘에서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아 씨발, 그만해! 임마!”
크아앙?!
교미에 정신이 팔렸던 흑 검치호는 내 모습에 화들짝 놀라면서 뒤로 물러나며 앞발을 붕붕 휘두르는데, 거기에 위협을 느끼긴커녕 가소롭기만 하다.
어느샌가 내 몸을 감싼 암흑이를 믿고 위상력을 거칠게 돌려 신체 강화를 끝까지 올린 뒤에 흑검치호에게 달려들어 프랑과 화연이한테 배운 기술로 내 몸통만 한 굵기의 송곳니에 발차기를 먹였다.
물론 놈도 멍청하게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듯이 자세를 잡으려 했지만, 놈의 뒷발에 푸른색 공간의 벽을 펼쳐 두 뒷다리를 묶어버리고 나는 사고 가속까지 일으켜 놈의 움직임을 감지하며 날아들어 잇몸에 발차기를 깨끗하게 먹여버렸다.
콰직!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내 키만 한 송곳니가 부러져나가자 놈은 크게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일으켜 고양이 펀치를 좌우로 휘둘러왔다.
아기 고양이의 귀여운 펀치가 아니라 얻어맞았다간 수십 미터의 강철 벽도 박살 낼법한 위력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뒤로 피하려다 놈의 눈동자에 TP가 집중되는 걸 보고 놈의 다리 사이로 몸을 날렸다.
쭈아아앙-!
내가 몸을 날린 장소에 살벌한 붉은색 레이저가 대지를 긁을 때 나는 놈의 뒷다리 사이로 들어가 몸을 비틀며 잔뜩 커져 있는 놈의 고환을 후려 찼다.
퍼석!
끄아아아오옥?!
……온몸을 뒤틀며 고통을 표시하는 녀석의 모습에 아무리 분노했다지만 같은 수컷으로서 못 할 짓을 했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뒷발이 공간의 벽에 묶인 녀석은 기괴한 춤동작 같은 모습을 보이며 극도로 고통스러워했지만….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호박색 공간의 벽을 펼쳐 놈의 목을 쳐버리니 수 미터짜리 거대한 대가리가 툭 굴러떨어지고 잘린 단면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치솟는다.
크아아앙!!
캬아아앙!
그때까지 놀라서 굳어 잇던 스밀로돈과 서벌 암컷은 흑검치호의 죽음과 동시에 내게 달려들었지만, 상위 이형종과 중상위 이형종으로 내게 덤비는 건 자살….
피슛.
크앙! 캐앵!?
…행위인데, 내 몸을 뒤덮고 있던 암흑이가 두 가닥의 실처럼 얇고 투명한 촉수를 쏘아내더니 암컷 두 마리의 미간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미간에 한 가닥 촉수가 박힌 두 마리는 발작을 일으킨 것처럼 날뛰더니 얼마 가지 않아 풀썩 쓰러져 숨이 끊어지길래 공간지각으로 암흑이의 촉수가 박힌 곳을 살펴보니 뇌가 남아있지 않았다.
=에이, 맛없어. 퉤퉤.=
“대단한데? 이제 촉수를 쏴서 분해할 수도 있어?”
=넵. 투명하게 변한 뒤로 자유자재로 촉수를 휘두를 수 있게 됐어여! 그 부분을 통해서 분해도 가능해여!=
공격 수단이라고는 대상의 몸에 달라붙어 분해하는 수단뿐이던 녀석이 이렇게 촉수를 수십 미터까지 날리다니, 기동력이랑 공격력이 굉장히 늘었겠는걸.
잘했다고 암흑이한테 칭찬해주며 흑 검치호의 잘린 대가리 앞으로 돌아가니 눈동자가 날 향하며 다시 레이저가 발사된다!
“으헥?!”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공간의 벽을 사이에 펼쳐 레이저를 막았는데, 진짜 놀랬다!
“와씨. 깜짝 놀랐네.”
=에이. 저 정도는 맞아도 안죽어여! 제가 막아드릴 수 있어여!=
반사적으로 공간의 벽을 펼쳤고, 암흑이 말대로 그냥 맞아줬더라도 암흑이가 내 몸을 감싸고 있어 피해는 전혀 없었을 테지만 솔직히 조금 쫄았다.
지금도 계속해서 호박색 공간의 벽을 지져 대려 하지만 덧없이 분해되어가는 레이저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체 몸통이랑 떨어진 주제에 어떻게 레이저를 쏘는 거지?
그래서 흑검치호의 대가리를 공간 지각으로 감지해보니 눈알에 모였던 TP가 아직 남아있는 걸 확인했고 그걸 이용해서 레이저를 쏘아냈다는 걸 알아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곧 눈에 담겼던 TP가 떨어지자 레이저는 그쳤고 눈알도 동공의 움직임이 멈추며 그제야 완전히 죽어버린 것을 확인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죽인 세 마리의 사체를 아공간에 집어넣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약간 사소한 트러블이 있었지만 일단은 계획대로 밀림의 고양잇과의 두목을 죽였고 고위와 상위급의 이형종도 적당히 쓸어버렸으니 어느 정도 파워밸런스가 맞춰졌을 거다. 뒷 일은 금순이한테 맡기고 이제 그만 떠나야지.
“볼일도 끝났으니 우리도 출발할까.”
=넹!=
힐끔, 멀리서 날 훔쳐보는 노란 원숭이에게 눈길을 주고 남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알케마가 나아가려던 방향은 바다만큼이나 물이 찬 이 주변에서 마치 바다를 가로지르는 대교처럼 솟아있는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는 거였다. 그 뒤에는 해안선을 따라 동쪽으로 향하는 코스.
누나는 지리 정보를 위해서 촬영을 해달라고 했는데 그러려면 평소 자주 다니던 2km 상공이 아니라 지상에서 100m 정도 되는 높이에서 이동해야 할 거다.
암흑이는 내 머리 위에서 엎어진 채 요즘 아이돌의 최신곡을 흥얼거리고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인증기로 지상을 촬영하며 공간 지각으로 특이점은 없는지 살펴보면서 이동을 계속했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지형이 점점 험난하게 변하며 수위가 줄어들고 있었고 동시에 협곡과 남방 수림의 형태가 눈에 자주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기다 구름도 잔뜩 끼고 있어서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을 바라보며 지형 확인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시속 200km 정도로 남하하며 공간지각으로 주변을 확인하고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는 행동은 굉장히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이었다.
“탐색이 이렇게나 지루했을 줄은….”
=주인님은 탐색 많이 하셨잖아여. 그땐 어떻게 하셨던 거에여?=
“그땐 목표가 확실했잖아. 옆에 프랑도 있었고.”
=그럼 제가 프랑 마님이 되어드릴까여?=
히히 웃으면서 다리를 흔드는 녀석의 이야기에 피식 웃어버렸다. 그런데 이 녀석은 내 웃음을 허락이라고 받아들였는지 프랑과 똑같이 변하면서 내 목을 끌어안고 등에 매달렸다.
“야야. 허락한 거 아니거든? 그리고 프랑 가슴은 좀 더 크고 부드럽다고.”
=압. 넵.=
다시 엄지공주 형태로 돌아간 암흑이는 내 머리 위에서 몸을 배배꼬며 지루해하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녀석이 떨어지지 않게끔 조심하며 하늘에서 두 눈으로 바라본 지상은 사람이 사는 건물만 있다면 현실과 다름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공간 지각으로 살펴본 지상은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다.
수많은 이형종이 먹고 먹히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그런 이형종 들의 사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동물들은 평범한 동물이면서도 먹이 사슬에 의해 죽고 태어나는 모습이 마치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타인과 경쟁하며 누군가를 발판 삼아 밟고 올라서는 인간의 삶과 비슷해 보였다.
온전히 산과 협곡으로 이뤄진 지역에 진입하니 벨티칼 산이 있는 장소로부터 1,000km 가량을 내려온 걸 알 수 있었다.
사방에 가득한 물의 흔적은 어느새 많이 사라져 대지가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했지만, 평야보다 협곡 지형이 압도적으로 많은 탓에 물이 호수처럼 고여있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었다. 이제 홍수 지역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고 여겨도 되지 않으려나?
그리고 이 지역의 특이 사항이라면 과하게 많은 수의 이형종을 꼽을 수 있을 거 같다.
꺄아아오! 크아아아! 캬아아아!!
지상에서는 수십 곳에서 온갖 형태의 이형종 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며 피바다를 만드는 중이고 생전 처음 듣는 포효가 다른 여러 포효에 섞여 들려오는 건 예사였다.
해가 지는 방향으로 4km 떨어진 곳의 하늘에는 비행형 이형종 들이 도그파이팅을 벌이며 서로를 죽이고 있었고 산중 호수의 물속에는 수생형 이형종 들이 물가에 다가오는 육생형 이형종 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우와. 이렇게나 개판인 건 오랜만에 보네여!=
“홍수를 피해 도망온 것들이 어찌어찌 지내다가 싸움을 시작한 거 같지?”
=넹!=
암흑이도 전투를 벌이고 죽어가는 이형종 들이 뿜어내는 광기에 물드는지, 몸을 달싹거리며 지상을 살펴보는 모습이 꼭 뛰어내리려 하는 듯 보여 녀석을 손에 들고 TP를 살짝 뽑아 쓰다듬어줬다.
=앗힝!=
진정하라는 뜻에서 살살 어루만져준 건데 확실히 효과가 있다. 살기에 살짝 물들어가는 모습이 보이던 암흑이는 내가 어루만져주자 바로 지상에서 시선을 돌리고 내 손에 매달려서 뺨을 부비고 다리로 손목을 감싸며 우헤헤 하고 히죽거린다.
암흑이를 진정시키고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에서 빠르게 멀어졌다. 저만한 피와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곳이라면 조만간에 언데드가 출몰할 거다. 언데드가 무서운 건 아니지만, 괜히 귀찮은 일에 휘말릴 필요는 없겠지.
해가 서쪽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완전히 감춰 군청색에서 칠흑색으로 물든 하늘에 양떼구름이 지나간다.
높디높은 하늘이지만 그런 하늘 한복판에 누워 하얀 달빛에 비쳐 은은하게 빛나는 구름을 지켜보다가 빙글 하고 돌아누웠다. 그리고 시선을 드니 시야의 끝에는 수평선이 보인다.
장장 7시간 동안 달리고 달리길 반복해서 바닷가에 도착했지만,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빈틈없이 가득 끼어있어 이보다 높은 높은 곳에서 이곳의 위치를 특징짓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시간도 늦었으니 오늘은 여기서 잠을 자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 구름을 치우던가 할 생각으로 푸른색 공간의 벽을 펼쳐놓고 누워있는데 잠이 잘 안 온다.
원터치 에어 메트리스를 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에 침낭을 펴놓은 덕분에 푹신푹신하고 따뜻하지만, 이상하게 눈이 말똥말똥하다. 암흑이는 이미 고양이처럼 몸을 말은 채 침낭 한편에 누워서 자고 있는데 말야.
내일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려면 좀 자두는 게 좋은데… 눈만 감은 채 이리저리 뒤척여봐도 잠이 안 온다.
=끼욱!=
그러다 암흑이를 깔아뭉개버리는 사고를 저지른 뒤에야 잠자는 걸 포기했다.
=으아앙!=
“미안미안. 괜찮냐?”
잘 자다가 날벼락을 맞고 으앙 우는 암흑이를 일어나 앉아서 쓰다듬어주니 날 원망스레 바라보다가 엄마 품에 파고드는 아이처럼 달라 붙어왔다.
대충 침낭을 모아서 등을 기댈 수 있게 해놓은 뒤에 금방 다시 잠든 녀석을 배 위에 올리고 바다 쪽을 바라봤다.
빛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시커먼 밤바다에 시린 달빛이 뿌려지며 빛의 길이 만들어지고 있는 장면을 바라보니 어쩐지 센티멘탈해지는 기분이다.
고개를 조금 들어 하늘을 보니 새털구름 사이로 반달이 푸른 달빛을 발하며 주변 구름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인어 자매들은 바다에 잘 도착했을지 궁금하네. 지금 시간은 새벽 3시. 해가 뜨려면 4시간이나 남아있는데,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생각해봐도 딱히 할 게 없다.
능력자가 되기 전 유일한 취미였던 게임이랑 독서는 능력자가 되면서 삶이 익스트림해져 자연스럽게 손이 멀어졌고 그동안 위상 세계에서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기에 아공간에 시간을 보낼만한 걸 넣어두지 않았는데, 그게 이제 와서 살짝 후회된다.
나가면 몇 가지 책이나 넣어둬야지. 인증기에 전자책이나 예능 프로그램 같은 것도 넣어두고.
결국, 남은 건 능력까지고 놀기 뿐이라 마나 시브랑 공간 지각 중에 뭘 하면서 놀까 하다가 공간 지각을 천천히 확장해나갔다.
가장 이상적인 밸런스의 거리인 반경 6.75km를 넘겨 확장해나가니 하나씩 하나씩 감지 가능한 종류가 사라지다 거리 감지마저 사라지고 오직 위상력 감지만 남았다.
그 범위를 대충 짐작해보면… 15km? 어라, 이건 최고위 이형종이랑 같은 감지 범위인데?
내가 클래스가 낮을 때의 공간 지각은 하위 이형종보다 훨씬 넓은 범위를 자랑했지만, 클래스가 높아지니 점점 이형종이랑 비슷해지는 거 같다. 이건 역시 가슴의 위상석 때문이겠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공간 지각을 한계까지 늘려 위상력만 감지되는 상황에 양 떼를 한 마리씩 세는 대신 위상력을 하나씩 세 나가갔다.
============================ 작품 후기 ============================
다음 이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