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03화 (403/517)

00403  누나와 단 둘이.  =========================================================================

밀림 속을 온통 시끄럽게 만드는 비명과 포효 소리에도 누나는 멀쩡한 모습으로 머리카락을 만지다가 위에 있는 날 불렀다.

“서하야~ 어떻게 되고 있어?”

“애들이 열심히 배 채우고 있어.”

산 채로 잡아 씹어 먹거나 삼키거나 뜯어먹는 와중에 알케마도 바람으로 안경원숭이 비스름하게 생긴 녀석을 바람으로 붙들어 매 놓고 잘게 포를 떠서 날름날름 삼키고 있다. 온몸에서 피를 뿜으며 괴로워하는 안경원숭이는 몇 안 되는 상위급 이형종 중에 하나인데 알케마가 저걸 잡았네.

“그래? 전부 원숭이 계통이야?”

“응.”

“흐~응.”

만들어준 의자에 얌전히 다리를 모으고 앉은 누나는 팔걸이에 팔을 걸고 턱을 받치더니 뭔가 짐작이 가는 게 있는듯한 콧소리를 낸다.

“왜?”

“원숭이들이 자기 두목을 구하러 온 건가 싶어서.”

음.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이 갑자기 덤벼드는 게 좀 이상하긴 했다. 자기보다 고등급의 이형종이 한 두 마리도 아니고 18마리 넘게 모여있는데 말야. 이 거대 실버 뱅이 지른 두 번의 포효가 부하들을 부르는 소리였나?

그럼 내가 우연찮게 원숭이 무리의 보스를 잡은 거?

아종 녀석들이 멈춰서며 주변 나무를 다 부러트린 덕분에 겨울 바람이 밀림 아래까지 내려오는거 같다. 추운지 맨살이 드러난 허벅지를 쓰다듬는 누나한테 아공간에서 모포 한 장을 꺼내 던져주고 물었다.

“아무래도 이 밀림에 보스가 두 마리인 거 같은데… 이 원숭이 무리를 쓸어버리면 다른 녀석이 귀찮게 하지 않을까?”

“보스가 둘?”

“응. 지나오면서 거대 실버 뱅처럼 우릴 지켜보던 게 한 마리 더 있었거든.”

“네 능력을 가지고 뭐 그런 걸 걱정하니?

내게 건네받은 모포로 무릎을 덮은 누나는 뭐 그런걸 걱정하느냐는 듯이 핀잔을 준다. 나 혼자만 있다면 그런 걸 걱정하지 않겠지만 데려가야 할 것들이 많잖아. 거기다 누나도 있고.

“만약을 말하는 거야, 만약을! 여기에 최고위나 초위 이형종이 살고 있을지 누가 알아?”

“말도 안 돼. 초위급이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많을 거 같아?”

“그러니까 만약에….”

“이그. 너 아직 그 버릇 못 버렸구나? 최악에 최악을 가정하는 건 좋지만, 그것도 과하면 병이야. 암튼~ 이제 조용해진 거 같은 데 다 끝난 거 아니니?”

…할 말이 없다.

“어. 더이상 밀려오는 원숭이도 없고 녀석들도 돌아오고 있어.”

실버 뱅은 희귀한 종이었는지 마지막에 본 한 녀석을 제외하곤 없어서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방 지워버리고 공간의 벽을 해제했다.

“오늘 밤에는 밀림을 벗어날 때까지 계속 가자.”

“응.”

고위 아종들 중에서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가까이 다가오는 것들만 간단하게 잡아먹은 독악이가 가장 먼저 돌아왔고 그 뒤를 이어 줄줄이 돌아오다가 마지막으로 뱀의 몸체애 사람의 팔이 두 개 달린 녀석이 되돌아오는 것으로 18마리가 모두 모이자 알케마에게 바로 출발을 명령했다.

누나 말대로 그냥 호박색 공간의 벽을 펼쳐놓고 이곳에서 쉬는 것도 가능하지만, 왠지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서 그냥 바로 밀림을 돌파하는 게 나을 거 같다. 좀 흡혈 벌레 같은 걸 신경 쓰는 것도 귀찮고.

왜앵~ 피싯.

누나의 하얀 목덜미를 향해 빠르고 조용히 다가오는 하얗고 까만 얼룩무늬 모기를 공간의 벽으로 지워버리자 옆에 앉아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있던 누나는 날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내 어깨에 머릴 기대온다.

…어제 일이 생각나서 움찔움질거리고 있으니 누나가 가만히 있으라는 듯이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돌아가야 하는데 어제 그 일은 아직 꺼내지도 못했고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도 못 잡아 조금씩 초조해져 갔다.

내 허벅지를 꼬집은 누나는 손을 치우지 않고 더 나아가 살살 쓰다듬기 시작한다. 손길이 무척이나 다정하고 상냥하면서도 사냥당하는 기분이라 좀 무섭다….

한참을 어물거리다가 꼬물거리는 누나의 손을 꽉 잡고 누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앉으면서 물었다.

“……누난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응?”

조금 비겁하지만, 결정을 누나한테 미뤄버리기로 했다. 대신 누나가 한 결정은 내가 전력으로 이루어줄 거다.

근데 무슨 말이냐는 듯이 날 올려다보면서 되묻는다! 아니, 되묻는 척하는걸 간파했다!

“알아들었으면서 모르는 척 하지 마.”

“…치사해. 남자면 좀 강하게 나와줘야 하는 거 아냐?”

“누나도 알잖아. 내가 책임져야 하는 여자가 셋이나 있다는 거.”

돌직구를 던지니 누나는 흠칫했다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것도 잠시, 고개를 금방 들어 올린 누나는 조금 싸늘한 눈빛을 던지며 날 시험하려는 듯한 말을 한다.

“내가 그 셋이랑 헤어지고 나만 바라봐달라고 하면 어쩌려구?”

“그러지 않을 거라고 믿어.”

그건 예상 못했다!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한 내가 대견할 정도야!

표정 숨기기를 필사적으로 시전하면서 누나를 빤히 올려다보니 다행히 들키진 않았는지 누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내 이마에 머리를 맞대오며 중얼거렸다.

“이… 멍텅구리야.”

그 상태로 한동안 가만히 있던 누나는 손을 들어 내 뺨을 잡고 습기가 차오른 눈동자로 날 응시하다가 천천히 입술을 포개어왔다.

부드럽고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입술이 내 입술에 부끄러운 듯이 비벼오고 대범한 척 부끄러움을 무릅쓴 분홍색의 민감한 살덩어리가 내 입안으로 침입해 이곳이 자신의 영역임을 선포해왔다.

건방진 침입자를 응징하기 위해 도망가지 못하게끔 사로잡아 희롱하니 멈칫거리다가 숨겨왔던 마음을 드러내듯이 진하게 어울려져 온다.

“하앙…♡ 윽.”

생전 처음 듣는 누나의 달콤함이 어우러진 목소리에 살짝 이성이 날아갈 뻔했다. 프랑과의 첫 경험에서 강렬한 음색을 듣지 않았다면 못 참았을지도….

누나도 자기가 흘린 신음에 얼굴을 확 붉히더니 내 머리를 잡고 더욱 열정적으로 입수를 맞춰왔다.

쿵덕거리는 심장에 마나 시브를 움직여 과도한 흥분을 억누르며 누나의 키스에 어울려주니 누나도 점점 거친 숨결을 흘리며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기 시작했다.

나도 위상력의 힘으로 흥분을 억누르고는 있지만 해선 안 될 행위를 해서는 안 될 사람과 하는 배덕감에 기이할 정도로 성적인 기분이 밀려와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참으면 참을수록 다음에 밀려오는 욕망의 충동이 강해지는 느낌이라 나도 모르게 사람 같지 않을 만큼 가느다란 허리에 손을 올리니 누나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나와 누나의 입술에 이어진 얇고 투명한 선이 이렇게나 짜릿한 느낌을 전해줄 줄은….

멍하니 있으니까 누나가 다시 가볍게 버드 키스를 해주고는 기쁘면서도 슬프고 허전하면서도 충만한 느낌을 주는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 내가 선택하게 해줘서….”

“…….”

“하지만….”

누나는 손을 들어내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은 아니야. 그러니 기다릴게.”

혼란스러워진다. 지금은 아니라니? 기다려준다니, 뭘?

물어보려고 입을 떼려는 순간 내 팔을 잡아당겨 옆에 앉힌 누나는 내 허벅지에 머리를 올리고 누워버렸다.

머리는 기다려준다는 뜻이 궁금해서 물어보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러면 안 된다고 말려와서 갈팡질팡하다가 누나의 얼굴을 봤다.

가지런한 눈썹이 감긴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떠올라있고 만족감마저 느껴지는 아름다운 표정이었지만 내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을 어찌하진 못했다.

누나는 날 고문할 생각이었는지 부드럽기 짝이 없는 뺨을 콕콕 찌르거나 오똑한 콧방울을 살짝 팅겨도 미동도 없을 만큼 곤히 잠들어 밀림을 돌파할 동안 한 번도 깨지 않았다.

그제야 누나도 지난밤에 한숨도 못 잤다는걸 눈치챘다. 3일간 사비 종족을 구출하는 강행군을 한 뒤에 밤에 잠도 못 잔 상태로 격렬한 정신노동을 한데다 그 뒤에 나만큼이나… 아니, 누난 여자니까 나보다 더 심하게 고민하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그걸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표정과 감정 관리까지 했을 거고.

잠에서 깨지 않을 만큼 깊게 잠든 무방비한 누나도 처음이라 이왕 이렇게 된 거, 호기심 충족을 위해 누나의 얼굴 이곳저곳을 만져보며 시간을 보냈다.

=서하 님. 밀림의 끝이 보입니다.=

누나의 말랑말랑한 입술을 살살 눌러보며 놀고 있는데 알케마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동족 하늘이 어렴풋이 밝아오고 있었다.

“…우와. 시간이 사라졌어.”

분명 원숭이떼의 반격을 퇴치하고 다시 길을 떠났을 대가 오후 10시쯤이었는데.

=예? 시간이 사라졌단 말씀입니까?=

“혼잣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

=네.=

시간은 삭제됐고 하룻밤을 꼬박 달려 밀림을 빠져나가는 선택을 했지만, 그 선택이 실수였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왜냐면… 누나의 귓불을 만지작거릴 무렵에 내 공간지각으로 고위 이형종 한 마리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따라오는 걸 느꼈었거든.

그 녀석은 우리에게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고 끄트머리에 살짝 걸쳐진 채 뒤를 쫓았는데 우리가 멈추지 않고 남하하는 동안 계속해서 쫓아왔었다.

그놈은 거대 실버 뱅의 맞은편에 있던 검은색 검치호였다. 뭐라고 해야 하지, 그 녀석은 우릴 쫓아내려 뒤쫓은 게 아니라 우리가 나가는 길에 자기 부하들이 우리한테 괜히 걸려서 박살 날까 봐 길을 만들어주기 위해 쫓아온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아종들도 괜히 녀석을 건드리지 않은걸 거다.

우리가 숲 속에 캠핑을 했다거나 사냥을 했다거나 하면 그 검치호 놈은 음흉하게 함정을 파려 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제 슬슬 독악이가 비늘 틈으로 독을 흘릴 시간이라 곤히 잘 자는 누날 깨우기 미안했지만… 훌렁 밀어 바닥에 떨어트렸다.

“꺅?!”

쿵 하고 침대 같은 의자에서 굴러떨어진 누나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더니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갑자기 왜 굴러떨어지고 그래. 괜찮아?”

정신을 못 차리던 누나는 내가 능청스럽게 손에 힐링 터치를 일으켜 바닥이랑 부딪친 엉덩이를 토닥여주니 그제야 눈을 끔뻑거리면서 "아야야."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잠버릇이 나쁘지 않은데…?”

“거의 10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잘 자긴 하더라. 마지막에 굴러떨어지지 않았다면 완벽했을 텐데.”

“우웅.”

아무리 눈치 귀신인 누나라지만 선문답에 심통이 나서 내가 밀어 떨어트렸다곤 생각 못 하겠지! 기지개를 켜는 누나의 아름다운 몸의 라인을 보고 있으니 어제 말한 "기다린다."라는 대답을 물어볼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누나.”

“응?”

“어제 말한 기다린다는 뜻이 뭐야?”

내가 이걸 물을 줄은 몰랐는지 얼굴이 살짝 붉힌 누나는 머뭇거리다가 다가와서는 내 이마에 살짝 키스를 해주면서 말했다.

“아직 우린 준비가 안 됐어. 그치?”

“응.”

“그걸 기다린다는 뜻이야.”

……으응? 더 아리송해지는데. 그 준비를 누가 해준다는 건가? 우리가 해야 하는 거 아냐?

누나는 더이상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고 정자의 난간으로 나가더니 물을 만들어내 얼굴을 씻고 몸에도 물길을 돌려 간단히 더러운 걸 씻어낸 다음 독악이의 피부를 보고 시간을 확인한다.

“우리 독악이 몸 씻을 시간이네?”

쿠슈옹!

네 다리를 재게 놀리던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콧김을 강하게 뿜으며 누나의 말에 화답해주었고, 그게 어디가 웃겼는지 누나는 까르르 웃으면서 독악이의 등에 물줄기를 강하게 뿌리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누나와 되돌아오지 못할 강을 넘지 않는다는 게 적잖이 안심되는 기분이지만 조금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누나와의 어색한 관계가 개선된 게 가장 큰 이득,

촤악!

“으앗! 차거!!”

대비하지 못한 채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줄기에 얻어맞으니 심장이 벌렁거린다!

“앗, 실수.”

“실수라니! 물을 조종하는 누나가 실수할 리가 없잖아! 이건 고의야, 고의!”

“있지 왜 없어! 니가 실수로 날 밀어서 떨어트린 것처럼 나도 실수로 너한테 물을 쏠 수도 있지!”

“…….”

들켰네. 에헷.

실수를 빙자한 물세례를 온몸으로 받으며 뛰어올라 누날 덮쳐 껴안으니 누나도 차갑다고 비명을 지르며 내 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버둥거렸다.

“히히. 못 가!”

“안 가면 되지.”

“어?”

누나가 가볍게 손가락을 팅기니 내 몸과 누나의 몸을 적시고 있는 물이 빠져나와 물 구슬을 형성한다. 그러고서는 내 품 안에 파고들며 히죽히죽 웃는다.

“아웅. 따뜻하다~.”

“…….”

혹시, 이게 전부 다 누나의 계획이 아니었을까? 내가 누날 안게 하기 위해서 내 성격을 바탕으로 시뮬레이션한 누나의 계획.

내 품에 꼭 안겨서 행복하다는 듯이 부비거리는 누날 보면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다.

뭐 상관없나. 나도 피식 웃으면서 누나를 끌어안은 손에 힘을 줘서 더욱 세게 안아줬다.

============================ 작품 후기 ============================

갸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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