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402화 (402/517)

00402  누나와 단 둘이.  =========================================================================

알케마가 이끄는 길이 서쪽에서 남쪽으로 바뀌는걸 느끼고 하늘로 뛰어올라 지금 나아가는 방향을 보니 확실히 능선이 완만하게 남쪽으로 휘고 있었다.

담수호로 치자면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있는 오대호를 모두 합치고 거기서 다섯 번을 곱해도 모자라 보이는 거대한 호수의 서쪽에 조금 치우친 곳에 신생 벨티칼 산이 있고, 그곳에서 시작된 능선이 마치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처럼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길목에는 눈에 확 들어오는 진녹색의 울창한 숲이 자리를 잡는 게 눈에 들어왔다.

위상 세계에 울창하지 않은 숲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이대로 가다 보면 만날 숲은 다른 곳보다 더 빽빽하고 좁아 이 커다란 덩치들이 같이 지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들 정도다.

“밀림 아냐?”

“글쎄? 밀림이면 뭐 다를 게 있어?”

“얘가 밀림을 우습게 보네….”

내려와서 누나한테 본 걸 이야기해줬더니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손가방에서 스프레이를 하나 꺼내 맨살이 드러난 곳에 대고 칙칙 뿌려댄다.

“아니다. 너야 무시해도 별로 상관없겠다.”

뭘 뿌리나 싶었는데 스프레이에서 묘한 위상력의 잔향이 느껴진다. 벌레 쫓는 스프레이 위상 세계 버전인가.

누나가 드러난 피부에 모두 뿌리는 걸 기다렸다가 스프레이 통을 뺏어서 살펴보니 확실히 스프레이 통에서 희미한 위상력이 느껴지는데 순수한 느낌이 아니라 조잡하게 이것저것 섞인 느낌이다.

알싸한 향기가 묘하게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서 이 정도라면 곤충들은 확실히 다가오지 못할 거 같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누나 주변에 더 신경 써야지.

스프레이 통을 돌려달라며 손을 내미는 누나를 놀리기 위해 이리저리 피하고 있으니 짜증 난 얼굴로 손톱을 세워 찌르려 한다.

우리가 이렇게 노는 동안 우리가 탄 정자를 짊어진 독악이를 비롯한 16마리의 고위 아종은 알케마의 뒤를 따라 밀림 속으로 진입했다.

밖에서 봤을 땐 촘촘한 나무 사이로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멀리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간격도 넓었고 어중간한 나무들은 선두에 나선 몇 마리의 고위 아종이 박살 내면서 지나가고 있어 독악이가 나무를 피한다며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아도 되게 만들고 있었다.

순식간에 어두컴컴해진 주변 풍경과 약간 후덥지근해진 기온에 공간 지각을 돌려 주의해야 할 점은 없는지 파악을 시작했다.

“겨울인데 이게 무슨 일이니….”

손바닥을 파닥거리며 바람을 부치는 누나는 후덥지근한 공기에 섞인 습기가 피부에 달라붙어 끈적끈적거린다며 투덜거리고는 위상력을 움직여 물구슬을 만들어내더니 주변을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하고 나서야 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나 머리만 한 저 세 개의 물 구슬이 주변의 습기를 흡수하고 있는 게 보인다.

재주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밀림을 살펴보니 확실히 작고 위상력도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뭔가 심상치 않게 알록달록한 작은 곤충이나 짐승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그놈들은 위상력이나 위험도 감지 못하는지 겁도 없이 무리 근처로 다가왔는데, 고위 아종들은 대부분 독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알록달록한 녀석들을 잘도 잡아먹는다

개골! 개고르!

특히 살맛 난 건 루뱅 같은 개구리들인 거 같다.

정신없이 혓바닥을 쏘아내며 뭔가를 잡아먹는 녀석들은 잠깐 이동을 멈추고 땅을 헤집어 뭔갈 주둥이 속에 채워 넣으며 개골골거리다가 멀어지는 무리에 복귀하곤 했다.

칼날 같은 날개가 달린 1m 짜리 평범한 잠자리! 가 정자 옆을 날아가려다가 송어+두꺼비 혼종의 혓바닥에 잡혀 주둥이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본 누나는 얼굴이 일그러지며 소름 끼친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떤다.

“뭐니. 원시 잠자리야? 저것도 이형종?”

“아냐. 위상력 없는 곤충이야.”

“어휴….”

징그럽다는 얼굴로 슬금슬금 내 옆으로 다가와 내 팔을 껴안는다. 그러면서 내가 밀어내지 않을까 눈치를 살피는 누나를 속으로 살짝 웃어주고 우리 뒤쪽에서 다가오는 주둥이가 두 개 달린 모기를 호박색 공간의 벽으로 지워버렸다.

알케마는 멀쩡한가 싶어 녀석을 살펴보니 온몸이 비늘에 뒤덮여있어서 모기나 곤충 같은 것들이 접근하지도 못한다. 애초에 빠르게 달리는 중이라 달라붙는 놈들이 요행이지만.

물 구슬의 위력도 얼마 못 가는지 습기와 기묘한 더위에 힘들어하던 누나는 결국 몸 주위로 동그란 물의 장막을 쳐버렸다. 그 속에는 나도 포함되어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열기와 습기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쾌적하고 서늘함만 남았다.

주변 풍경이 물의 막에 녹아들어 마치 만화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환상적으로 변했다. 누나는 말도 잊고 정신없이 물의 막에 정신을 쏟는 와중에도 끌어안은 내 팔을 놓지 않는다.

잠시 팔을 통해 느껴지는 누나의 가슴 감촉에 신경을 집중했다가 다시 공간 지각 범위 안으로 관심을 돌렸다.

…누나의 가슴 감촉과 공간 지각에 번갈아 신경을 쓰면서 앉아있다 보니 밀림의 중심을 부수며 관통하는 우릴 멀리서 지켜보는 두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높은 바위 언덕이나 높게 솟은 구릉지에서 신기하다는 듯이 이쪽을 주시하는 놈은, 서쪽의 구릉지에는 근 10m에 달하는 칠흑처럼 새카만 검치호처럼 생긴 놈이 구경 중이고 남동쪽의 바위 언덕에는 아까 잡은 실버 뱅보다 3배는 더 큰 녀석이 홍채가 작아 사악하게 보이는 얼굴로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둘 다 위상석까지 있는 고위 이형종이다. 말 그대로 괴물인 녀석들은 밀림의 나무를 부러트리고 파헤쳐 빠르게 이동하는 우리를 호기심 어린 기색으로 살펴보고 있는 게, 저 둘이 이 밀림의 터줏대감들인 거 같다.

그보다….

“저거, 실버 뱅인가? 근데 되게 크다.”

“어디?”

실버 뱅이라는 이야기에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물의 장막을 촬영하던 누나가 눈을 빛내며 날 바라본다. 하지만 지금 위치에서는 나무에 가려서 안 보일 걸?

“거의 7m에 가까운 녀석이 이쪽을 지켜보고 있어. 위상력도 고위급이고.”

“잡자!”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소리친 누나를 황당해하는 눈으로 바라보니 두 눈에 욕심이 가득해진 누나가 내 팔을 잡고 흔들며 애교를 부려왔다.

“서하야앙~ 잡아 줘. 응? 7m나 되면 적어도 7인분의 풀세트를 만들 수 있을 거란 말야~! 그런 보물을 두고 그냥 간다는 건 레이더로서 실격이야!”

“이야기하는 중에 이미 공간 지각 범위 밖으로 나가버렸는데?”

“가서 잡아와!”

“헐.”

“독과 질병균에 방어 능력이 뛰어난 9벌의 방어구라면 기존의 장비에 더해서 특수 부대를 조직할 수도 있는 숫자란 말야! 그렇지 않아도 공략 지역 중에 독지가 나타나서 곤란 해하던 참이었는데 이건 우리 그랑 블루를 배려한 신의 계시야!”

“와 진짜. 누나 결혼하면 살림은 진짜 잘하겠네.”

“칭찬은 됐고! 얼르응~!”

칭찬 아닌데?! 내 등을 찰싹찰싹 때리면서 재촉하는 누나한테 떠밀리며 한숨을 푹푹 내쉬니 얼른 갔다 오라는 듯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너라면 할 수 있어!”

“아, 갔다 올 테니까 그만 밀어! 떨어지겠어!”

“아자~! 서하는 할 수 있어~!”

히히거리면서 웃는 누나의 응원을 들으며 7m짜리 실버 뱅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빠르게 처분하고 올 생각으로 녀석이 있던 방향으로 공간 도약을 한번 했는데, 없다? 엥? 어디 간… 으잉? 공간 지각에는 보이는데?

눈에는 안 보이지만 공간 지각에는 놈의 존재가 느껴져서 잠깐 혼란스러워했다가, 녀석이 몸을 투명하게 만들었다는 걸 눈치챘다.

“호오, 신기한데.”

잠깐… 저 녀석의 가죽이 그리 비싸다면 생포해서 정신 조작을 걸고 가죽을 뜯어낸 뒤에 힐링 웨이브로 재생시키면 안 될까?

누나가 입고 있는 날개 깃털 제복도 히아리드한테 깃털을 달라고 해서 또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을 했지만, 실행에는 옮기지 말아야겠다. 그런 짓을 하면 그 푸른 악마들이랑 다를 게 뭐야. 필요에 의해 죽인다면 깔끔하게 죽여주고 생명을 농락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잠깐 내가 과거에 비슷한 짓을 한 적은 없나 떠올려보고 그런 적은 없었다는걸 확인한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투명화로 숨어있던 녀석이 슬금슬금 뒤로 도망치려는 게 보인다. 뻔히 보이는 하늘에 서서 고개를 끄덕거리는 내가 위험한 녀석이라는걸 눈치챘나 보다.

피식 웃으면서 놈의 심장이 있는 곳에 호박색 공간의 벽을 펼치니 잠깐 저항하던 심장이 부들거리다 퍽 하고 터지더니 그대로 지워지듯이 사라진다.

콰우우우우우오오오!!!

그와 동시에 밀림이 떠나가라 포효를 지른 녀석의 몸이 물에 기름 탄 듯 알록달록한 게 퍼지더니 투명화가 풀리면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바로 죽을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몸을 돌려 두 팔과 두 다리를 이용해 미친 듯이 도망가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공간 도약으로 놈을 쫓아가서 푸른색 공간의 벽으로 가둬버리니 주둥이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공간의 벽을 두드리고 어깨로 들이받던 녀석은 자신을 죽이는 게 나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는지 원독에 찬 눈동자를 내게 향하더니 한 움큼의 피를 토해내고는 털썩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음. 빨리 누날 쫓아가야 하는데 안 죽네. 머리를 지워버리면 당장에 죽을 테지만 가죽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겠고… 생명력이 질기니 뇌를 분해시켜버린다고해도 당장 죽는다는 보장도 없고….

위상석을 뽑으면 당장 죽어버리겠지만, 산채로 위상석을 끄집어내면 무슨 반발 작용인지 시체까지 다 사라져버리니 그것도 곤란하다.

끼이이. 끼윽. 끄헉!

하는 수 없이 녀석의 관절이 있는 부분에 공간의 벽을 밀어 넣어 무력화시키고 놈의 뒷덜미를 잡아드니 피를 토하며 연신 비명을 지른다.

생명을 괴롭히지 않는다고 말한 게 10분 전인데 작심삼일도 아니고 작심십분이구만….

“생명력이 강한 것도 안 좋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일행이 지나간 흔적을 쫓아 빠르게 이동했다.

알케마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 무리를 세운 다음 거대 실버 뱅을 땅에 내려놨다.

독악이의 등위 정자에서 내려온 누나는 쓰러져 꿈틀거리는 7m의 은색 거대 유인원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달라고 닦달했다. 그래서 설명해주니 누나의 눈빛에 힐난이 어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렇게 데려왔단 거야?”

“일부러 가죽에 상처 안 내고 멀쩡하게 가져오려고 그랬단 말야. 심장을 지워도 안 죽고 살아있는데 어쩌라고.”

“…바보야. 상처가 조금 난다고 가격이 확 내려가진 않아. 이렇게….”

콰우우우우!!! 쿨럭! 커걱!

“앗, 깜짝이야.”

갑작스레 피를 토하며 포효를 지른 녀석 때문에 누나가 화들짝 놀라면서 날 껴안아왔다. 누나의 반응에 놈은 더욱 흥분하고 자길 내려다보는 우리에게 강렬한 적개심을 띈 채 목에서 피 끓는 소릴 내며 버둥거리기 시작한다.

끄륽. 게르르르, 쿠흐.

아무래도 놈도 신체 강화 타입인 듯 피 웅덩이가 되어버린 심장이 위치하던 곳에 실 같은 게 이어지더니 꾸물거리며 살덩어리가 뭉쳐지기 시작하고 공간의 벽을 끼워 넣어 없애버린 관절도 천천히 재생되기 시작한다.

고위에 위상석까지 만들어진 신체 강화 타입은 심장이 터져도 재생하는 건가? 진짜 사기네.

물론 심장을 재생하는 데는 TP를 쓰는 게 아니라 위상력을 쓰는지 천천히 줄어들고 있지만, 심장이 터져도 살아있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거니 그 정도쯤이야…….

아무튼 내 수고를 이해해주지 않는 누나 때문에 좀 심통 난 것도 있고 이렇게 괴로워하는데 살려줄 것도 아니고 계속 고통 주는 것도 못된 짓이라는 생각에 목에 호박색 공간의 벽을 쳐서 분리해버렸다.

“엄마야!”

목이 뎅겅 하고 잘려 우리 발치에 데구르르 굴러오며 시뻘건 피를 피슉피슉 뿜어대니 누나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두세 걸음 후다닥 물러난다. 내가 봐도 눈알을 뒤룩거리면서 굴러오는 흰털 원숭이 머리는 조금 소름 끼쳤다.

가늘게 경련을 일으키는 거대한 실버 뱅의 몸뚱아리를 아공간 안에 집어넣고 눈알의 움직임도 멈춘 대가리도 집어넣으니 남은 건 흙바닥에 자그맣게 고여있는 피 웅덩이뿐이다.

이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알케마는 어째서인지 감탄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독악이는 실버 뱅을 보며 부리부리한 눈으로 지켜보다가 내가 아공간에 사체를 집어 넣어버리자 아쉬웠는지 입맛을 다셨다.

“어휴… 이제 어쩔꺼야? 계속 갈 거니?”

“응. 계속……. 어?”

소름이 돋았는지 팔뚝을 문지르며 물어보기에 대답해주려 하는데 갑자기 내 공간 지각 범위에 중하위부터 상위까지 다양한 이형종이 침투하는 게 느껴졌다. 생김새가, 원숭이?

어느 한 방향 따지지 않고 조심스레 접근하는 모양새라 빠르게 훑어보니 거의 150에 달하는 원숭이 이형종이 정확하게 우릴 중심으로 포위한 채 다가오고 있었다.

“서하야?”

말하다 말고 숲 쪽으로 멍하니 서 있는 내 모습에서 뭔가 느끼기라도 했는지 숲을 둘러보며 누나가 조금 불안하면서도 든든한 표정으로 날 부른다. 그런 누나의 어깨를 잡고 상위 이형종 세 마리가 접근하는 쪽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이형종이야. 150마리 정도가 우릴 포위하고 습격해오려는 거 같아. 아니, 점점 늘어난다.”

=전투를 준비하겠습니다.=

옆에서 얌전히 듣고 있던 알케마가 바로 눈을 빛내더니 위상력을 움직이며 싸울 준비를 한다. 주변 이곳저곳에서 부러진 나무 위에 몸을 누이고 있는 녀석이나 나무를 갉작거리는 고위 아종들을 보며 말했다.

“괜찮은 거야?”

겁을 먹은 표정은 아니지만 150마리에서 점점 늘어난다는 이야기에 누나가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제일 높은 녀석이 상위급이야. 마침 저녁이고 하니까 이 녀석들 밥이나 먹으라고 하지 뭐.”

“그럼 나도 싸울래!”

“안돼. 누난 공간의 벽 안에서 기다려.”

단호하게 말하면서 푸른색 공간의 벽으로 집 모양 상자를 만드니 누나가 뺨을 불룩하게 만들며 항의한다.

“왜에?! 나도 C 클래스 특수 능력자란말야! 잘할 수 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네. 전부 유사인간형 이형종이야. 머리가 좋은 녀석들이라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는데 누날 위험 속에 놔둘 순 없어.”

“하지만!”

“여기선 내가 대장이야. 내 말 들어.”

“으우….”

납득하지 못하겠단 표정으로 잔뜩 볼멘 표정을 짓는 누날 보니 조금 설명이 필요할 거 같아 덧붙였다.

“누나의 전투 센스가 뛰어나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내 전투 방식이 일반적이고 평범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어. 전투 경험을 쌓고 싶거든 화연이를 따라 일반 레이드나 탐색 토벌전에 들어가서 익히도록 하고 지금은 얌전히 구경만 해.”

“…알았어.”

이렇게 설명을 해도 싸우겠다고 억지를 부리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내 말에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린 누나는 순순히 푸른색 공간의 벽으로 들어갔다. 누나가 편히 앉을 수 있게 의자 하나를 만들어주고 입구를 막은 다음 그 공간의 벽 상자 위에 뛰어올라 소리쳐 여기저기 늘어져 있는 고위 아종 녀석들을 불렀다.

“자!! 여길 봐! 지금 이곳으로 사냥감들이 잔뜩 다가오고 있으니 저녁으로 알아서 잡아먹도록 해. 그리고 이거랑 비슷하게 생긴 은색 원숭이가 있으면 먹지 말고 죽인 다음 나한테 가져와.”

거대 실버 뱅의 사체를 꺼내 흔들어 보이며 말했더니 십수 마리의 고위 아종들이 각각의 울음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끼아악! 꺄아악! 꺄아오!!

고위 아종들이 움직이는 기척을 느꼈는지 숲 속에서 사람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같은 울음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적의가 상당히 어려있는 걸 보면 우리 면면의 위상력에 겁을 집어먹고 도망갈 거 같진 않다.

알케마도 한 방향을 향해 뛰어가는 걸 보다가 공간 지각을 펼쳐 날 중심으로 반경 6.75km 범위를 민감하게 감지하기 시작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난 누나 곁을 지켜야지.

숲 속에서는 금방 전투가 시작됐고 고위 아종들은 우거진 밀림을 박살 내며 원숭이를 학살하기 시작한다.

상황이 이상하다 여겼는지 싸우다 도망가려고 눈치 보는 녀석들을 핀포인트로 머리만을 날려버리며 상황을 파악해보니 죽는 놈들의 숫자보다 공간 지각 범위 밖에서 몰려드는 놈들이 더 많아 오히려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잠깐 공간의 벽을 쳐서 막아버릴까 생각해봤지만, 가만히 놔두고 고위 아종 녀석들이 사냥하는 걸 지켜봤다. 지켜보다가 위험해지면 막지 뭐. 공간의 벽은 나중에 쳐도 되니까.

앗, 저거 실버 뱅이네.

사람보다 두 배는 더 큰 은색 원숭이 한 마리가 빠르게 날뛰면서 카멜레온 고위 아종을 공격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상위 이형종이지만 꽤 빠른 움직임으로 카멜레온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가서 도와줄까 하다가 주변에 고위 아종 한 마리가 더 나타나니 실버 뱅은 바로 공간 지각 범위 밖으로 튀어나가 버렸다.

공간 도약으로 쫓아가서 잡을까 했지만… 공간의 벽을 쳐뒀다고 해도 위상 세계에서 흔하지 않은 일을 많이 겪었더니 누나 혼자 두고 이동하는 건 안심이 되지 않아 그냥 무시했다.

쿠우우우우!! 크우우우!

꺄아아! 끼아아악!

나무가 흔들리며 잎사귀가 스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이사이로 이형종 들의 울음소리가 밀림을 가득 채운다.

공간 지각으로 보는 숲 속에서는 싸움도 뭣도 아닌, 일방적인 학살과 식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종 한 마리당 못해도 스물이 넘는 원숭이떼가 달라 붙어있지만 가벼운 포효에도 나가떨어지는 것들이라 상대가 안 된다.

특히 알케마가 타고 다니는 이구아나는 원숭이들에게 안장을 찬 스트레스를 푸는 것인지 사나운 모습으로 원숭이를 조각조각 내고 있었다.

발톱마다 원숭이를 한 마리씩 꿰어놓고 머리만 잡아 뜯어먹는 걸 보니 역시 저 녀석도 이형종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2화 늦었지만... 400회까지 봐주신 & 앞으로도 봐주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완결까지 펑크내지않고 쭉 갈게요!

400회 축하 코멘트와 추천도 감사드려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