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01 누나와 단 둘이. =========================================================================
내게 기습적으로 입술을 포갠 누나를 당황하고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예전의 나였다면 누나의 진심이 담긴 키스에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누나를 안아버렸겠지만, 누나의 눈물을 본 순간 얼음물에 머리를 담근 것처럼 이성이 차갑게 식어버려 누나의 키스에도 놀람과 당황 이외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식어버렸다.
떨리는 눈동자로 날 올려보던 누나는 내 감정을 눈치챈 것인지, 아니면 그 뒤의 일을 생각하지 않았던 건지 내 품에서 스르륵 빠져나가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자기 방으로 뛰어갔다.
순간 손을 뻗어 누나의 어깨를 잡으려 했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예감이 들어 머뭇거리는 사이에 누나는 방문을 닫았고 뒤이어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
본능도 이성도 팻맨fatman을 맞은 일본처럼 폭망해버려 복잡해진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구름이 낀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너머로 보름달이 빼꼼하고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한동안 멍하니 보름달을 바라보다가 독악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내가 접근하는 기척에 눈을 뜬 독악이는 큰 눈을 꿈뻑이며 거목의 기둥 같은 꼬리를 살랑거려 반가움을 표시한다.
아무 생각 없이 공간의 벽을 발판삼아 걸어 올라가 녀석의 콧잔등을 어루만져주니 크흥, 푸흥하면서 기쁜 숨소리를 낸다.
놀람과 당황의 감정이 수그러들자 이내 이성적인 판단이 돌아오는 거 같다.
이 상황은 프랑도 예상하고 있을거다. 그러니까 같이 와도 상관없었는데 일부러 몸 상태를 핑계로 빠지고 나랑 누나 둘이서만 있을 수 있도록 해 준거겠지. 그리고 누날 나만큼이나 좋아하는 화연이도 당연히 눈치채고 있겠지? 영은이는 빼박이고.
…아 진짜. 나만 빼고 다 알고 있었잖아?
휘영청 밝은 달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폭발한 정신을 겨우겨우 재구성해가다 누나가 차지한 방을 공간 지각으로 살펴보니 누나는 베갯머리에 얼굴을 묻고 훌쩍거리고 있었다.
“…으아~ 돌겠네! 진짜.”
입술에 닿은 그 감촉… 느낌과 눈물을 흘리는 누나의 얼굴은 진짜 평생 못 잊을 거 같다.
…누나의 고백 아닌 고백을 받자마자 떠오른 생각, 계획이 하나가 있긴 하다.
영은이가 사촌 간 결혼에 대한 개헌을 추진해야 하나~? 하는 말을 꺼냈을 땐 그 건은 이미 진행 중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이야기를 장난삼아 꺼내는 성격은 아니니까. 거기다 지금 떠올린 방법을 쓴다면 엄마나 아빠도 어느 정도 납득시킬 수 있을 거로 예상된다.
부모님이 온전히 받아들이진 못하시겠지만 돌아가신 어머니의 호적으로 옮겨가고 서류상으로도 흠잡을 데 없는 사촌지간이 된다면….
그러다 생각이 누나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는 것에 흠칫하고 놀랬다.
“나한텐 책임져야 할 여자가 이미 셋이나 있잖아….”
내가 능력자로서 설 수 있게 정신적인 면에서 크나큰 도움을 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프랑.
영은이의 클론이자 어린 시절부터 나만 바라보며 가슴에 품은 첫사랑인 화연이.
화연이의 엄마이자 1세기에 가까운 삶을 살아오다 내게서 운명을 느낀 영은이.
거기에 누나까지 받아들이려 한 사실에 나 자신에 환멸이 느껴진다.
“끄으으….”
머리를 벅벅 긁다가 주먹으로 땅을 내려치다가 한숨을 푹 쉬길 반복하다 보니 정신이 황폐해질 거 같다.
처음 프랑과 화연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게 엊그제였다. 그녀들의 이해심으로 프랑과 화연이를 같이 품에 안게 됐고 그 뒤에는 영은이를 그 난리를 치고 그녀들의 배려를 받아 연인으로 받아들였잖아.
그 난리의 여파 때문에 영은이는 나와의 결혼은 꿈에도 바라지 않고 단지 내 곁에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상황인데 여기서 누나를 더한다고?
“우와~ 진짜 대박. 내가 이만큼이나 인간쓰레기였나.”
내 세 연인을 무시하고 누날…. 아으아아~!! 방금 떠올린 생각은 진짜 핵폭탄급의 인간쓰레기 생각이잖아!!
“아냐… 이건 아냐… 진짜 사람이라면 이러면 안 되는 거야.”
…근데 난 순혈 인간이 아닌데? 그러니까 괜찮을…리가 없지!!
“시발. 이걸 지금 생각이라고 하는 건가… 으아~~ 돌아버리겠네!!”
크웅?
혼자서 중얼거리다 머리를 쥐어뜯고 흙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지랄발광을 하고 있으니 독악이가 졸다말고 무슨 일인가 싶어 이쪽을 힐끔거린다.
“으으. 그냥 이형종이랑 싸우는 게 더 속편 할 거 같아….”
나 진짜 어쩌지….
“잘 잤어?”
아침에 일어난 누나는 거실에 앉아있는 날 보고 간밤에 아무 일 없었다는 표정으로 밝게 웃으며 아침 인사를 건네왔다. 씻고 나온 것인지 살짝 촉촉하게 젖어있는 머릿결과 발그레해진 뺨이 무척이나 귀여웠… 아악!
“…안녕하십니까.”
“킥킥. 뭐 하는거야~. 아침은 간단하게 먹구 가자. 그리고 특제 샌드위치를 쌀 테니까 그걸로 점심을 해결하면 오늘은 하루종일 이동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겠지?”
“응….”
콧노래를 부르며 주방으로 들어가는 누나를 보니 어젯밤의 일은 내가 개꿈을 꾼 걸로 치부해도 될법한 밝은 분위기다.
퀭해진 눈 밑을 힐링 터치로 문질러 흔적을 지우면서 누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목면 재질의 은은한 분홍색 잠옷이지만 누나의 몸매를 가리기엔 역부족….
“어후.”
돌겠네. 갑자기 왜 이렇게 번뇌가 폭발는거지? 연인들이 내 욕망을 다 받아줘서 이제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난 그냥 색을 밝히는 변태 망둥이일 뿐인가.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이런 내 상태에 좌절하고 있는 사이에 누나는 토스트와 베이컨에 동글동글한 별 모양의 달걀을 부치고 야채 샐러드와 과일 주스를 준비해 나왔다.
“먹장~.”
해맑은 얼굴로 웃으면서 내 앞에 접시를 밀어주고 두 손을 모아 잠시 눈을 감은 누나는 빵을 집어 들어 오물오물 씹고 먹기 좋게 잘린 베이컨도 포크로 찍어 먹는다.
누나가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나와 시선을 마주친 누나는 고개를 귀엽게 갸웃하는데, 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기억 속에 하나도 남지 않은 모습이다.
아니, 남지 않은 척하는 모습일 거다.
나도 손을 뻗어 아침을 먹으며 현실로 돌아가기 전에 누나와의 일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점심은 누나가 준비해둔 스페셜 3단 샌드위치로 달리는 독악이의 등에서 해결하고 쉬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주변 풍경은 침엽수와 활엽수가 섞인 산맥의 모습에서 활엽수가 잔뜩 난 바위산의 풍경으로 바뀌고 있었다. 무너진 벨티칼 산의 모습은 이제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고 알케마도 더는 뒤돌아보는 일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신경을 쏟고 있었다.
키갹! 끼긱! 끼이익!
미처 도망가는 게 늦은 은색 원숭이 이형종이 루뱅의 혓바닥에 낚아 채어져 입속으로 빨려들듯이 사라진다.
“아앗! 실버 뱅이!”
“??”
그 장면을 지켜본 누나가 깜짝 놀라면서 정자의 난간에 매달려 안타까운 얼굴로 발을 동동 굴린다.
“왜? 은색 원숭이 이름이 실버 뱅이야?”
“쟤 모피가 같은 무게의 금보다 30배는 더 비싼데~!”
…내 말도 무시하고 루뱅을 보며 아까워 죽으려 드는 누날 보다가 공간 지각으로 녀석의 주둥이 속에 있는 은색 원숭이를 바라봤다. 키가 2m가 겨우 넘어가는 중하위 이형종인데 그렇게나 비싸다고?
금이 1kg에 대충 5천만 원 정도던가.
“저 크기면 성체니까 모피를 벗기면 22kg 정도가 나올 텐데… 히잉.”
“……저게 330억이나 한다고? 뭐길래 그리 비싸?”
330억이면 상위급 위상석이랑 가격이 비슷하네. 고작 중하위 이형종이면서 몸값이 엄청나군.
그래도 돈이 목적이라면 블루 스톤만 시중에 풀어도 금방 모이….
“실버 뱅의 모피 가죽은 고위 이형종까지의 방균 방독 작용에 절대 더럽혀지지 않아. 특수 가공처리를 하면 고위 이형종의 공격까지 막아지는거란 말야! 원자재 값으로 책정된 게 330억이지 방어구로 가공하면 거기서 가격이 6배는 겅중 뛴다구. 재료가 없어서 못 만드는 최고급 방어구 재료…”
거기까지만 듣고 바로 튀어나가 루뱅의 머리통을 쥐어박아 주둥이를 열고 목구멍에 넘어가기 직전의 실버 뱅을 끄집어냈다.
깨굴?! 깨르륵!
내 손에 들린 허리가 부러져 죽은 실버 뱅의 사체를 보며 억울하다는 듯이 개골개골거리는 녀석에게 블루 스톤 하나를 꺼내 주둥이 속에 던져 넣어주니 입안에 들어온 이물질을 뱉어내려다 급작스럽게 온몸을 배배꼬며 환호의 울음을 지른다.
게로로?! 게굴! 게구륵!!
실버 뱅에는 루뱅의 독침이 덕지덕지 묻어있어 일단 바로 아공간에 집어넣고 힐링 웨이브를 썼다. 손을 마나 오러로 보호하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까.
블루 스톤이 주는 희열에 정신을 차린 루뱅도 빠르게 달려 무리에 복귀하고 나도 공간 도약으로 정자로 되돌아오니 누나가 물을 마구마구 뿌려 내 몸을 씻겨낸다.
“잘했어! 사냥감을 뺏은 건 미안하니 나중에 더 큰 거 잡아줘.”
“더 맛있는 거 줬으니 괜찮아.”
돈이라면 최하위 이형종을 잡아 억지로 진화시켜 죽이면 나오는 블루 스톤으로 손쉽게 벌 수 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쉽게 구할 수 없는 특수 방어구의 재료, 어푸!
“적당히 좀 해!”
소방 호스도 아니고 무슨 물줄기가 이렇게 세? 손만 씻어도 충분한데 날 비에 젖은 생쥐 꼴로 만드는 누나한테 버럭 소리치니 키득거리면서 내 몸에 묻은 물기를 제거해준다.
“한번 꺼내봐. 상태 확인해보게.”
“루뱅의 독침에 범벅되어있으니 조심해.”
“응응.”
두 손에 다시 마나 오러를 잔뜩 일으키면서 아공간에 집어넣었던 실버 뱅을 꺼내놓으니 누나는 또다시 손가락 끝에서 물을 뿌려 루뱅의 타액을 씻어낸다.
씻겨낸 물은 독악이의 등에 떨어지지 않게 공중에 띄워 저 멀리 숲 속으로 날려버리더니 자그마한 손가방에서 수술용 장갑처럼 보이는 얇고 반투명한 재질의 고무장갑을 꺼내 손에 끼고 은색 체모가 잔뜩 나 있는 실버 뱅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흐음. 흠. 나이는 20살 전후의 성체로 보이구….”
실버 뱅은 평범한 사람보다 머리가 1개 반은 더 큰 원숭이었는데 팔다리가 사람보다 조금 더 길고 척추가 약간 굽어서 구부정했지만, 골격이 사람과 무척이나 비슷했다.
전신에는 장모長毛가 나 있어서 얼핏 예티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누나는 실버 뱅의 털을 역으로 밀어보고 뒤집어보고 하면서 가죽을 살펴보는데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털 밑에도 짙은 눈 색의 가죽이 있었다.
“얘 암컷이네.”
신기하게도 생식기의 형태가 사람과 진짜 똑같이 생겼다. 실버 뱅의 다리 사이를 벌려본 누나는 슬그머니 좁히며 뒤에서 구경하던 날 째려본다.
“……뭐, 왜. 뭐.”
왠지 화가 날 듯한 감정이 실린 눈빛이라 주먹을 내밀어서 누나의 머리에 딱밤을 먹였더니 머리를 감싸 쥐고 화를 낸다.
“아야! 왜 때려?!”
“뭔가 내 인격을 의심하는 눈빛이라 화나서 그랬다. 왜!”
“너 짐승 맞잖아! 프랑도 화연이도 너보구 짐승이랬는데!!”
“뭣이?!”
내가 왜 짐승이냐, 밤에 잠도 안 재우고 괴롭히지 않느냐, 그걸 어떻게 아는 거냐, 화연이가 다 이야기해줬다, 티격태격하면서 싸우다 말발에 밀리기 시작해서 물리력을 행사해 누나의 입을 막아버리니 주먹을 들어내 팔을 때리고 발로는 내 정강이를 까면서 무력을 쓰기 시작한다.
“앙!”
“아악! 무는 건 반칙이지!!”
“우물우물!”
“씹지 마!”
피부를 강화했다간 행여나 누나의 이빨이 부러질까 봐 강화하지도 못하고 손가락을 뻗어 누나의 매끈한 이마에 딱밤을 먹이기 시작하니 이마를 가리고 후다닥 물러난다. 그러면서도 아르릉거리는게 진짜.
“누나 왜 그렇게 정신연령이 어려졌, 푸억!”
철퍽! 촤악!
이제는 물을 생성해내 나한테 물 폭탄을 던져대기 시작하는 누나를 어찌하지도 못하고 두 팔로 얼굴만 가리면서 소리쳤다.
“어푸! 아아 진짜!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 그만, 푸헥!”
“너어. 또 그랬다간 이 정도로 안 끝날 줄 알아!”
씩씩거리면서 날 노려보던 누나는 내 항복 선언에 봐줬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콧김을 내뿜고는 물바다가 된 정자를 치우기 시작했다.
으아~ 진짜 여자라서 혼내지도 못하고.
누나의 예쁜 치열이 새겨진 손등을 쓰다듬으며 실버 뱅의 사체를 아공간에 집어넣으니 정자를 다 씻고 말린 누나가 날 흘겨보며 말했다.
“어디도 훼손되지도 않은 멀쩡한 개체니까 2인분의 풀세트 방어구는 충분히 나오고 남을 거야.”
“은색 원숭이가 그렇게 비싸면 금색 원숭이는 어때? 전에 한 번 본 적 있었는데 금원숭이도 비싸?”
엘리펀트로스 산 인근에 살던 금색 원숭이 무리가 생각나서 누나한테 물었더니 간단하게 대답해준다.
“잡몹.”
“…어. 하긴, 그만큼 산에 모여 살고 있었으니 비쌀 이유가 없겠지.”
주변에 실버 뱅이 또 없나 공간 지각으로 둘러보는데 누나가 그런 게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말했다.
“아냐. 골든 몽키는 색만 번지르르하지 쓸데라곤 하나 없어. 그나마 장점이라면 그 모피 색인데, 모피 색도 본체가 죽으면 거머죽죽하게 변해서 소용없는걸. 이형종 등급도 낮고 가죽이나 뼈의 강도도 평범하기 그지없어서 말 그대로 잡몹인거야.”
“그런 거였어?”
그나저나 2인분의 방어구 풀세트라, 방어 구로 가공하면 6배 가까이 가격이 뛴다고 했으니 그럼 1,980억짜리 방어구가 되는 셈인가?
진짜 억소리나네!
그 뒤로 누나는 능력자가 되기 전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는 장난을 치고(기습적으로 옆구리를 찌른다든지, 기초 상식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넌 몰랐지?" 하며 살살 약올린다던가 공간 지각으로 주변을 살펴보는 내 뒤로 돌아가 목을 조른다든지.) 빙글빙글 웃으면서 내 얼굴을 구경하곤 했다.
평범한 모습을 가장하는 누나를 보니 가슴이 조금 답답하고 양심이 따끔거렸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감도 잡지 못해 나도 평범을 가장하면서 누나한테 톡 쏘아준다.
“그렇게 할 일 없어?”
누나의 옆구리를 콱 찌르면서 쏘아주니 작게 비명을 지른 누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자기 할 일을 찾아 해나갔다.
가장 우선하는 것은 인증기의 촬영 기능을 이용해서 주변 지형의 정보를 기록하는 것.
이런 게 왜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일반인은 그냥 "숲이구나." 혹은 "아름다운 겨울 숲이네." 아니면 "숲 지대 이형종이 많이 살 법한 곳이군." 이 정도의 생각을 할 테지만 전문가는 숲의 형태와 토질, 나아가 나뭇잎이 깔린 형태와 땅의 색을 가지고 온갖 생태 환경에 대한 정보를 다 얻어낼 수 있다나?
“그러니까 탐색 팀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촬영 기능으로 최대한 많은 곳을 기록해 나가는 거야.”
삐용삐용거리는 촬영음을 연신 울려대며 촬영에 열을 올리는 누나는 진지한 얼굴…은 아니고 소풍 나온 아가씨처럼 밝은 얼굴로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근데 이형종이 정말 안 나온다. 이렇게 편해도 되는 건가 모르겠네.”
“무슨 말이야. 지금 우리가 나아가는 길목에 있을 이형종 들이 죄다 도망가느라 난리구만.”
“뭐? 이형종이 왜 도망가?”
진심으로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되묻는 누날 보니 내가 더 이해가 안 간다.
“이형종도 삶의 욕구가 있는데 도망가는 게 당연하지. 고위 아종만 18마리에 고위 이형종이 1마리에 규격 외의 존재가 하나 있는데 죽고 싶은 놈이 아닌 이상에야 덤비겠어?”
누나는 이런 내 반응이 더 이상하단 표정이다.
“그럴 리가 있니? 동종동형이라도 툭하면 싸우는 게 이형종인데… 이 아이들도 니가 정신 조작으로 묶어놓지 않았다면 이렇게 사이좋게 달릴 리 없잖아!”
“그럼 사비 종족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걔들은 지성이 있으니까…. 아직 지성체를 발견하지 못해서 연구가,”
“누난 위상 세계를 연구하던 사람들의 생각이 대부분 옳다고 받아들이는 거지? 이형종이라면 지성이나 지혜가 없어 동족이라도 죽고 죽이는 야만적이고 흉악한 것들이라고.”
“음….”
“내가 지금까지 돌아다니면서 본 것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더라. 누나 말대로 본능에 따라 치고받고 싸우는 것들이랑 그렇지 않은 것들. 전자는 말 그대로 짐승이나 다름없는 지성을 가진 것들이었어. 생존 욕구와 위상력에 대한 탐욕이 비등한 것들.”
“무리를 짓고 지능이 뛰어날수록 단순한 살육과 흡수 본능이 억제된다는 거니?”
“더해서 등급이 높을수록 그런 거라고 생각해.”
엘리펀트로스와 누나와 같이 있을 때 만난 하늘 섬의 플라우비스 종족, 그리고 사비 종족의 경우를 들어 설명…… 해줄 필요도 없이 누나는 모두 이해한 표정이다.
“하긴, 능력자들의 대다수가 상대하는 건 중위급 이하의 이형종이고 학자들이 연구하는 것도 그렇게 실험체가 많은 것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니까… 고위 이형종을 사냥하는 팀이 거의 없고 그나마도 정보를 기밀로 삼아 유출하지 않으니 연구하는 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할 법하네.”
그러면서 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변을 내는 모습을 보며 누나는 정말 천재구나, 하고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사, 살려주세요;;
여러분들을 낚을 생각은 없었는데 오늘 코멘트를 확인해보니 오해하기 딱 좋게 끊었네요. 거기다 400회까지 겹쳐서 분위기가!
(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