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399화 (399/517)

00399  누나와 단 둘이.  =========================================================================

“다시 올 일이 있을지 의문이지만 기회가 되면 그렇게 할게.”

칼카쿰에게는 이렇게만 말해뒀다. 은혜를 갚는다지만 이형종의 은혜 갚기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데 막 아무거나 받을 수는 없잖아. 막말로 "우리의 은혜 갚기는 은인을 죽여 삶의 번뇌와 고통에서 해방해드리는 겁니다!!" 하면서 달려들면 어쩌려고.

제례용 안장은 칼카쿰이 3계층의 직인 계급 사비 다섯을 불러 독악이의 널따란 등에 제례용 안장을 올리고 단단히 고정하게 했다.

작업을 지켜보며 5일째가 되는 날까진 천천히 이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번에는 누나의 나들이가 주목적이니까. 급하게 돌아다닐 이유는 없으니 남은 이틀 동안 느긋하게 이동하면서 누나가 일하면서 받았을 정신적인 피로와 스트레스나 풀어줘야지.

“서하야! 이리와서 봐봐! 이렇게 폭신한 건 처음 봐~!”

안장의 설치가 완료되자 누나는 제일 먼저 섀도 점프를 써서 안장에 올라가 구경하며 즐거워하더니 나더러 올라오라며 손짓했다.

그래서 올라가서 보니 정자의 중앙에는 반달을 눕혀놓은 것처럼 생긴 게 있었는데, 테두리에 등받이가 달린 걸 보고 나서야 침대가 아니라 사비 종족의 체형에 맞춘 의자라는 걸 눈치챘다.

엉덩이와 등이 닿는 부분에는 무슨 재질인지 모르겠지만 푹신푹신한 가죽을 썼고, 이것도 사비 종족에게는 제례용이라 크고 수려하게 만들어서 그런지 나나 누나한테는 의자가 아니라 침대다.

사비 종족의 덩치가 있어서 그런지 칼카쿰은 2인용 안장이라고 했지만, 우리한테는 굉장히 넓은 정자 수준이다. 실제로도 천장이 삼각꼴 모양으로 달린 데다 난간도 있어서 고급 정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안장과 의자의 프레임에 쓴 건 황갈색의 평범한 나무인 줄 알았는데 적당히 신체 강화를 돌려 힘을 줘도 꿈쩍도 안 하는 게 보통 나무가 아니었다. 거기에 향나무처럼 향긋한 향기가 흘러나와 침대에 앉아있으니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의자라고 불러야 할지 침대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가구에 발랑 엎어진 누나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독악이에게 신호를 보내서 움직이게 하니 생각과는 다르게 흔들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이구아나를 타고 갈 필요가 없겠군.

이구아나의 등에 달린 안장을 치운 다음 알케마에게 독악이의 등에 올라타라고 손짓하니 독악이가 온몸을 뒤틀며 극심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이리저리 출렁이는 정자 속에서 누나가 짧은 비명을 지르는 게 들린다.

“야, 왜 이래.”

크쉭!

가까이 다가오는 알케마에게 빨간 눈동자를 부라리고 이빨을 딱딱거리는 게, 알케마가 자신의 등에 타는 게 어지간히 싫은 모습이다. 알케마도 이렇게나 거부하는 독악이의 등에 타는 건 후환이 두려운지 내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크슈우우….

“알케마가 등에 타는 게 싫어?”

쿠으.

누나가 올라타는 건 별로 거부반응을 안 보였으면서 왜 알케마한테만 이렇게 날 선 반응을 보이나 모르겠다.

하는 수 없이 이구아나한테서 풀어놓은 안장을 집어 들고 홀가분한 표정을 짓고 있던 두 마리에게 걸어가니 샛노란 눈을 끔벅이던 녀석들은 뒷걸음질 치며 싫다는 표정을 짓는다.

“…당장 이리 안 와?”

피이이….

울상으로 꾸물꾸물 다가온 이구아나 두 마리는 암컷과 수컷 한 쌍이었는데, 덩치가 좀 더 큰 암컷한테 안장을 채우려 드니 암컷의 눈동자가 실망에 물들었다. 그때 암컷에 비하면 조금 왜소한 수컷이 슬렁슬렁 걸어와 암컷과 나 사이에 끼어든다.

피익.

“…니가 차겠다고?”

피이이.

나름 체격을 생각해서 암컷한테 채우려 한 건데, 뭐 당사자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지.

꼴에 수컷이라고 암컷 앞에서 강한척 하고싶어하는거 같아 알케마한테 안장을 건네주며 뱀처럼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수컷 녀석에게 안장을 채우라고 지시한 뒤에 뒤로 물러서서 이구아나 두 마리를 지켜보니, 암컷이 고마운 표정으로 수컷에게 다가가 슬금슬금 얼굴을 비벼댄다.

...그래, 성공했구나. 그래서 기분 좋냐?

애정어린 표시를 보이는 암컷 앞에서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이는 수컷의 모습이 귀여워서 피식웃었다.

결국 알케마는 독악이의 거부로 등 위에 올라타지 못하고 암컷과 수컷, 두 마리의 이구아나 중 수컷 등에 타게 됐다. 스스로 나서긴 했지만 그래도 안장은 마음에 안 드는지 좀 못마땅한 얼굴로 뚱해져 있는 수컷의 안장에 몇 가지 짐을 챙기는 알케마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바다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

=바다라면 동쪽과 서쪽, 남쪽 어디로 가든 비슷할 거라 생각합니다. 무엇 때문에 여쭈시는지요?=

“해안선을 따라 이동해보려고. 신의 땅이란 곳도 찾아야 하고 다른 신수를 섬기는 종족도 찾아보고 싶고.”

=그렇다면 동쪽으로 나아가시는 것이 옳다 여겨집니다.=

“어째서?”

노비 계급의 사비에게 짐을 맡긴 알케마는 내 앞으로 다가와 쪼그려 앉더니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헤뷜트의 자료 저장소에서 대지의 주인을 섬기는 종족, 메리아놀이 동쪽으로 향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문장을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동쪽이라는 막연한 방향이었지만 특정한 목적지로 향할 계획이 없으시다면 동쪽을 탐색해보시는 것이 어떠신지.=

“동쪽이라….”

내 반응이 긍정적이라 여겼는지 알케마가 그림을 조금 더 그려나가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거… 지도야? 지도 같은데.

=동쪽으로 나아가신다면 현재 남쪽과 동쪽, 북쪽은 대지의 면적 대부분이 침수되어 행동에 제약이 많이 걸릴 것입니다. 하오니 벨티칼 산의 지류를 따라 서쪽으로 돌아서 침수지역을 벗어나 남쪽을 통해 동쪽으로 향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일 겁니다.=

그러면서 바닥에 그린 그림에 삼각형의 한 곳을 짚고 서쪽으로 반원 형태로 빙 두르는 선을 그린다. 동쪽이라… 조금 먼 여행이 되겠는걸.

“그래. 니가 이구아나에 타고 앞장서서 길 안내를 해.”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어째 존칭과 사극체가 어색하게 섞인 말투를 쓰는 알케마와 대화를 끝내고 쉘터를 회수했다.

어차피 2일 뒤면 현실로 넘어갈 거고 그 뒤에는 나 혼자 다시 들어와서 공간 도약으로 주변을 탐색해나갈 거니까 대충 방향만 확실하면 된다.

그러고 보니 참, 절벽에서 시작해서 동쪽으로 엘리펀트로스 산까지 도망갔다가 다시 서쪽으로 쭉 왔다가 이번엔 또 동쪽으로 가야 하네.

이동 동선이 별로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이에 떠날 준비가 끝난 알케마를 돌아보니 어느새 우리 주변에는 많은 수의 사비들이 모여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몰려와?”

=서하 님이 떠나신다는 소식에 배웅하기 위해 찾아온 겁니다.=

“별걸 다 하네. 그럴 시간에 마을이나 짓지.”

아까 칼카쿰과 이야기를 나눌 때 지나치듯이 들은 이야기지만, 벨티칼 산처럼 여느 평범한 산들도 살기에 나쁘지 않지만, 지금처럼 습기와 물이 가득한 지역도 사비 종족에게는 살기 좋은 지역이라고 하더라.

벨티칼 산이 무너져 삶의 터전이 사라졌으니 이주를 하는 건 아닐까 했던 생각이 틀린 거였지. 그리고 칼카쿰이 도착하자마자 조잡하긴 하지만 집을 세울 터를 다지기 시작한 곳이 수천 곳이 넘어간다.

한창 바쁠 시기일텐데 하던 일도 팽개치고 날 배웅하기 위해 모여있는 걸 보니 눈살이 찌푸려졌다.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면서 독악이의 등에 다시 올라타니 누나가 침대에 모로 누워 잠들어 있었다. 피곤하지 않다고 했으면서….

새근새근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오만 상념이 다 든다.

프랑이 서양의 여신 이미지라면 누나는 동양의 여신이랄까, 화연이나 영은이도 아름답기 짝이 없지만 여신이라기보단 무인이나 문인 같은 느낌이 더 많이 드는 데다 좀 서구적인 이미지가 강해서 프랑한테 좀 밀리는 느낌이었는데, 누나야말로 동양의 미가 모두 합쳐진 듯한 외모다.

내 인기척 때문인지 금방 눈을 뜬 누나는 눈을 비비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더 자.”

“아냐. 괜찮아. 근데 이게 무슨 소란이니?”

작은 손으로 주먹을 꼭 쥐고 귀엽게 기지개를 켠 누나는 내 옆으로 다가와 주변을 살펴보더니 살짝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와아. 저들이 다 서하 널 보러 나온 거구나?”

“할 짓 없는 것들이지.”

“그렇게 말하지 마. 전부 서하 니가 구해준 사비잖아. 생명의 은인이 떠난다는데 이럴 만 두 하지.”

독악이를 중심으로 호위하듯이 빙 둘러싼 고위 아종들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진 못하지만, 레드 카펫을 지나가는 연예인을 구경하는 인파처럼 멀찍이서 이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거나 무언가 꽃 같은 걸 던지는 사비들을 보다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투덜거렸다.

“이렇게 시선이 집중되는 건 불편하다고. 할 일도 많은 주제에 이렇게 모이다니, 한둘도 아니고 1만은 족히 넘게 모였어.”

“아직 그 소심함을 못 고친 거니?”

“난 원래 소시민이었거든?”

내 말에 킥킥거리며 웃은 누나는 빙긋 웃으면서 다가와서는 내 손을 잡고 손등을 쓸어내리며 달래준다.

“얼마나 오래 걸린다구 그래. 잠시뿐이니까 참아. 착하지?”

이거… 너무 가까워!

그걸 인식하자마자 쉘터 안에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 리플레이 되기 시작한다! 게다가 누나의 부드럽고 따뜻한 손을 맞잡고 있어서 얼굴에 열이 집중될 거 같다…!

누, 누나가 이거 눈치채면 어쩌지? 안 그래도 귀신같은 눈치인데. 앗, 손에 땀 날 거 같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이러는 와중에 수컷 이구아나 이형종의 등에 올라탄 알케마가 우리한테 보고하듯이 말하고 선두로 나가니 그 뒤를 정자를 등에 올린 독악이가 따르고 나머지 16마리의 고위 아종도 걸음을 옮긴다.

“د نعمتونو مخکې د اتل!!”

“، اې بالمقابل، د خپلې روغتیا په!”

“د خوښي چيرته تاسو لاړ شئ!!!”

우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니 웅성거리던 소리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며 귀를 먹먹하게 한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표정이 나쁘지 않은걸 보면 못된 소리는 안 하는 거 같다. 그건 누나도 비슷하게 느꼈는지 살짝 미소 지으며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면서 중얼거렸다.

“열렬한 배웅을 해주는 거 같네.”

1만이 넘는 숫자가 만들어주고 있는 길을 따라 이동하는 중에 환호성을 지르는 사비들을 바라보던 누나가 픽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나한테 하는 건 아니지만 이만큼이나 성대한 배웅은 처음 보는 걸~?”

“…누나도 비슷한 경험 있잖아.”

내가 말하는 건 누나의 고등학교 졸업식 때의 일이다. 그땐 졸업하게 된 누나를 가운데 두고 600명이 넘는 전교생이 누나를 둘러싸고 왕왕거리는데 진짜 광신도 집단인 줄 알았다.

사람이 저렇게 인기가 많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달까.

“그런 경험은 겪어보지 못해서 나도 그땐 살짝 무서웠었어.”

누나도 그때 일이 생각났는지 킥킥거리면서 웃다가 내 팔에 팔짱을 껴온다. 팔에 누나의 가슴이 닿는 순간 그 부분부터 소름이 목덜미까지 타고 오르는 감각에 숨이 멎을 뻔했다.

나, 날 죽일 셈인가.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따져야 하나. 징그럽다고 쏘아붙이면 평범하게 보일까. 그러다 마음에 상처 입으면 어쩌지.

생각은 많았지만 그중 하나가 목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팔뚝에 느껴지는 몰캉하고 보드라운 무엇인가의 감 쪽 때문에 뻣뻣하게 굳어있으니까 누나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날 올려다봤지만… 그런 누나도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으으으. 누나가 이렇게 밀착하니까 코 밑으로 샴푸 냄새가 살살 풍겨오는데 미치도록 가슴이 설렌다.

이런 기분은… 진짜 처음이다. 프랑이나 화연이나 영은이랑 처음 만났을 때. 꽁냥거릴땐 달달한 기분에 가슴이 간질거리면서 우헤헤 하고 절로 웃음이 나온 적은 많았지만, 지금처럼 심장이 떨려서 말도 제대로 못 할 기분이 드는 건 처음이다.

이러면 누나가 눈치챌 텐데…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누나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가슴이 뛰어서 내 반응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인지….

힐끔 누나를 곁눈질로 훔쳐보니 누나는 환호성을 지르는 사비들을 보며 살짝 손을 들어 흔들고 있었다.

이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칼카쿰을 뒤로하고 난민촌을 벗어나자 알케마가 속도를 올리고 그 뒤를 따라 독악이도 네 다리와 꼬리를 휘적거리며 거의 스포츠카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흰색과 녹색과 주황색이 섞인 눈을 현혹하는듯한 아름다운 숲이 펼쳐지며 완만한 능선을 알케마의 인도에 따라 이동하고 있으니 벨티칼 산의 붕괴 흔적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좌우로는 여전히 수평선이 보이는 부자연스러운 광경이지만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합쳐진 듯한 산세의 아름다움에 누나가 감탄을 터트리며 인증기를 켜서 주변 풍경을 찍어대기 시작한다.

사진을 찍느라 떨어져 나간 누나의 가슴에 아쉬움과 홀가분함을 느끼면서 살짝 한숨을 쉬고 누나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누나는 언제부터 저런 마음을 품기 시작 한 걸까. 나와 프랑이나 화연이가 그렇고 그런 짓을 할 때부터인가?

그렇다면 내가 프랑과 화연이랑 사귀겠다고 선언했을 때 보여줬던 행동은 뭐였지?

…그때도 기쁘면서도 슬픈 표정이었구나. 그럼 누난 그때부터 날 의식하기 시작한 건가? 아니면 근래에 들어 본격적으로 자기 마음에 솔직해지기로 한 걸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 내 곁에는 여자가 한둘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 나한테 마음을 열기 시작한 누나는 그저 내 옆에 함께 있는 거에 만족하기로 하는 건가?

…아아, 머리가 뜨거워진다. 누나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낮에 본 누나의 알몸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려 머릿속이 폭발 할 거 같다.

더이상 생각하는 건 그만두자. 이 이상 계속하면 내가 이상해질 거야.

개굴! 개골!!

피이익! 피이, 피식!

두두두두두

크으으우우. 크쉬이!

고위 아종 18마리가 질주하며 대지를 울리는 진동과 소음, 위압감에 능선에서 터줏대감으로 지내던 이형종 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게 공간 지각에 감지된다.

이런 거라면 성가시게 달려들 놈들은 없겠네.

어스름이 내릴 무렵까지 광란의 질주를 한 결과, 다른 곳보다 유독 높은 능선 한 곳에서 고등학교 운동장만 한 공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밤이 되면 녀석들의 시야가 어두워진다는 걸 알고 있기에 이곳에서 쉬기로 하고 속도를 늦춰 녀석들을 공터 쪽으로 몰고 갔다.

출발하고 나서는 죄다 비슷한 풍경이라 10분도 지나지 않아 지루해져서 뒹굴뒹굴하던 나와는 다르게 간간히 탄성을 터트리며 풍광을 즐기던 누나는 이동이 멈추자 나와 함께 독악이의 등에서 내려와 고위 아종들에게 간단한 명령을 내리는 날 구경했다.

“주변에 알아서 사냥하다가 해가 뜰 무렵에 돌아오도록 해. 이 근방에 너희들을 위협할만한 게 그렇게 많지는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 둘씩 짝을 지어서 다니도록 하고.”

개골? 개구르륵.

피피이.

크슈! 크흥.

각양각색의 울음소리로 대답한 녀석들은 그새 친해진 놈들이 있는지 두셋씩 짝을 이뤄 어슬렁거리며 숲 속으로 사라져갔다. 나와 숲 속으로 사라지는 녀석들을 번갈아 보던 누나는 또! 내 손을 잡더니 귀엽게 눈을 뜨며 물어왔다.

“사냥 보내는 거야? 위상석 구해오라고?”

“아냐. 저 녀석들도 소비한 체력은 보충해야 하니까 사냥 보낸 거야. 저 많은 놈들이 먹을걸 내가 챙겨줄 순 없으니까.”

“흐응~. 그럼 우리도 밥 먹자. 쉘터 꺼내봐.”

“그냥 요리기구 꺼내서 해먹으면….”

“집 사놓고 어따 쓸꺼니? 얼른얼른 꺼내봐~!”

누나의 재촉에 푸른색 공간의 벽을 치고 그 위에 쉘터를 꺼내놓으니 누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쉘터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그 뒤태를 바라보다가 아직도 남아있는 독악이와 알케마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흰 사냥 안 가냐?”

=어제 식사를 해서 앞으로 며칠은 먹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식습관도 파충류인가… 독악이도 지금은 그다지 생각이 없는지 엎드린 자세로 눈을 감고 긴 들숨 날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알케마도 할 일이 없는 모습이라 이때 몇 가지 물어보자는 생각이 들어 푸른색 공간의 벽으로 의자 두 개를 만들고 앉으면서 말했다.

“거기 앉아.”

=감사합니다.=

“아까 출발하기 전에 메리아놀들이 동쪽으로 향했다고 했잖아. 그것들은 정확히 어떤 종족이야? 누굴 섬기는 것들인데?”

=메리아놀은 하나의 종족을 칭하는 단어가 아니라 여러 종족이 모여 만들어진 연합을 뜻합니다. 주主가 되는 종족은 역시 대지의 종족이라 불리는 프라우드지요. 그다음으로는 숲의 종족이라 부르는 플뢰가 많으며 그 외의 많은 소수 부족이 모여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저희 종족도 몇몇 존재한다고 하는데 역시 날개 달린 것들은 없다 합니다.=

대지의 종족과 숲의 종족… 문득 머릿속으로 치고 지나가는 장면이 하나가 있었다. 어머니의 기억으로 본 고문실의 장면.

짧고 뭉툭한 다리와 통통한 몸, 어린 아이 같은 얼굴에 갈색 머리의 종족과 길고 푸른 녹색 머리카락에 호리호리한 몸매의 종족.

흔히 표현하는 판타지에서 드워프와 엘프라고 불리는 것들. 지금 알케마가 말한 게 그 종족들을 말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영국이 엘프를 직접 잡아서 생체실험을 하고 있으니 드워프도 당연히 존재하겠지.

그러고 보면 사비 종족도 리저드맨이잖아? 혹시 짐승의 주인이라는 것들을 섬기는 건 수인 아냐? 죄수 말고 짐승 인간.

그래서 알케마에게 기억나는 엘프의 모습을 공간의 벽으로 형태를 만들어 보여주며 이것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플뢰군요… 자료 저장소에서 본 삽화와 일치합니다.=

“그럼 이게 프라우드?”

고문실의 풍경을 떠올리며 좀 작고 통통한 여자를 만들어 보여주니 알케마도 신기한 걸 보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와 엘프가 있단 말이지? 드워프는 판타지의 법칙을 따르면 손재주가 굉장히 좋다고 하던데, 잘하면… 흐흐.

메리아놀을 만날 때가 기대되기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다음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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