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398화 (398/517)

00398  누나와 단 둘이.  =========================================================================

“누, 누나야. 이건, 그러니까. 그게, 집에 들어오니까 누나가…!”

누운 자세 그대로 날 빤히 바라보는 누나한테 허둥거리면서 변명을 하는데, 누나는 들은 체 만 체 자기 몸을 가리고 있는 수건을 잡고 눈을 비비며 상체를 세웠다. 그러고는 허둥거리는 날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 챙겨주려고 한 거지?”

그리 말하면서 소파에서 일어나는데, 구겨진 수건이 펴지면서 펄럭여 누나의 맨살이 눈에 들어온다. 잡티 하나 없이 통통하고 탄력 넘쳐 보이는 오른쪽 아랫배와 예술 같은 허벅지가 만나는 곳이 살짝 접히며 힐끗하고 하얀 피부와 상반되는 거무스름한 털 같은 게…!

“아냐?”

“…어?”

아. 아아! 아오! 정서하 이 미친새꺄! 눈앞에는 누나야! 누나라고!! 얼굴에 불이 나는 느낌이지만 어떻게 얼버무리기 위해 두 손을 파다닥거리며 소리쳤다.

“아니, 맞아! 아무리 쉘터 안이 따뜻해도 그렇게 있다가 감기 걸리니…까….”

“…….”

왜, 왜 누나도 얼굴이 붉어지는 거야?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부끄수줍한 누나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고 있으니 누나는 날 흘겨보면서 입을 작게 삐죽이고서는 귓볼까지 은은하게 붉어진 모습으로 방을 향해 걸어간다.

촉촉하게 젖은 긴 생머리가 찰랑거리고 엉덩이를 겨우 가리는 목욕 수건 아래로 돋보이는 각선미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그보다 누나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럽다.

날 아직까지 어린애로 보는 데다 내가 프랑이랑 화연이랑 같이 자는 거에 극도로 거부감을 보일 만큼 누나는 성적인 부분에 담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방금 누나랑 눈이 마주쳤던 순간 정말 죽도록 맞겠다구나하는 생각에 각오까지 했는데… 저런 반응은 진짜 예상 밖이다.

문득 아직도 쪼그려 앉아있었다는걸 깨닫고 일어서…려다가 슬쩍 바지 앞섬을 손보고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는 누나의 체온이 남아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

…….

아아. 방금 내 눈치 스킬로 누나의 반응을 캐치한데 대한 판단이 내려졌는데…. 뭐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똑똑하지 못한 내 지능으로 인해 지금 받아들인 정보가 뇌에 과부하를 걸어 녹아내릴 것 같은 묵직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니까 누나는 이미, 날 동생이 아니라… 남자로 보고 있었다.

남매에게는 서로를 죽여라 Kill each other라는 명령어가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으르렁거리며 물어뜯기 바쁘다는 건 통계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한 진리에 다다르는 하나의 문장이라 해도 절대 과장된 표현이 아니리라.

하지만 그런 통계를 비웃듯이 누나는 정말 어렸을 때부터 날 챙겨주고 보듬어주기 바빴다.

아빠와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누나는 날 처음 본 2살 때부터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고 그 덕분에 어렸을 때의 나는 누군가가 엄마랑 아빠 중에 누가 더 좋아? 하고 물으면 응당 나와야 할 "엄마가 더 좋아!" 가 아닌 "누나가 좋아!"라는 생뚱맞은 대답을 종종 할 정도였다고 했다.

물론 내가 속을 썩이게 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아빠만큼이나 논리적으로 잘못을 지적하고 엄마만큼이나 호되게 혼을 내지만 아닐 때는 엄마 같은 누나라고 할 만큼 날 챙겨주고 살펴줬었지.

내가 중2병에 걸리고 성격이 나빠져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던 상황에서 내 병을 고쳐주기 위해 애쓰던 것도 누나였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남들을 믿지 못하고 시종일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성격이 더 악화되지 않게 케어해준것도 사실 대로 말하면 엄마보다 누나의 공이 더 컸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며 나만을 챙겨주던 여신처럼 예쁜 누나.

엄마와 아빠가 일하느라 바쁠 때 내가 심심해하면 내 손을 잡고 놀러 다녀주던 아름다운 누나.

이런 누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좋아한다라는 감정은 like와 love를 폭넓게 아우르는 단어지만 나는 지금까지 누나를 Like적인 의미로 좋아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저 녀석의 음습하고 어두운 감정을 받아준 여인들이 넷이나 되는구먼. 대단해. 참으로 대단해. 그 양부모와 세 여인, 거기에 너도. 너희는 세상을 구한 영웅이나 마찬가지다. 자긍심을 가져도 된다.]

내 과거를 알게 된 날, 뮈르딘이 했던 이야기가 다시 머릿속에 재생된다.

[아니야. 너보다, 다른 둘보다 월등히 오랜 시간 사랑을 쏟아부어 저 녀석이 뒤틀리지 않게 잡아준 여인이 저 녀석의 옆에 하나 더 있다.]

정신이 없던 와중에 들은 터라 나는 여인이 하나 더 있다는 이야기를 단순하게 받아들여 그 대상이 엄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누나였던 거다.

[아잉. 그걸 눈치 못 채는 우리 서하가 바보징. 아~ 그나저나 개헌을 해야 하나? 이게 통과되려나 모르겠당.]

동시에 영은이가 한 이야기도 떠오른다. 이거 외에도 누나와 뒷산에서 어처구니없는 추격전을 벌였던 그 날, 누나의 이상한 모습에 고민하고 있을 때 영은이는 날 보며, "남들 다 아는데 혼자만 모르면 그게 바보야."라고 했었지.

내가 누나한테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끼고 누나랑 거리를 두다 보면 자연스레 원래 모습을 되찾지 않을까 하는 헛짓거리를 하고 있을 때, 프랑과 영은이는 이미 확신을 하고 있었던거다.

그리고 방금 누나에게 반응한 내 모습을 떠올려보니… 이쯤 되면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도 누나를 Love의 의미로 좋아하고 있었다고.

괴롭지만 기쁘고… 기쁘지만 또 괴롭다. 비록 친남매가 아니지만 그래도 사촌간이잖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감정을 품는것 자체만으로도 손가락질 받을 사이인데….

이율배반적인 감정에 괴로워하고 있으니 깔끔하게 세탁한 깃털 날개 제복으로 갈아입은 누나가 방에서 나왔다.

“뭐해? 바닥이랑 친구하려구?”

“친구 하자고 하면 해주려나….”

누나의 말에 뇌를 거치지 않고 반사적으로 헛소리를 내뱉으니 누나가 다가와 내 이마에 손을 대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열은 없는데.”

가까이 다가온 누나한테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향기가 물씬 풍겨나와 다시 뇌가 뒤죽박죽되는 거 같아 일단 누나를 밀어내며 인신공격을 시도했다.

“…다 큰 처자가 알몸에 목욕 수건 한장 달랑 걸치고 거실에 드러눕다니, 누난 여자로써 수치심도 없어?”

“이렇게 공중에 떠 있고 니가 푸른색 공간의 벽으로 팔방을 막아놨는데 누가 엿본다구 그래.”

“엿보는 게 문제가 아니야! 누난 속 편한 곳에서는 너무 무방비해진다고!!”

“아이, 깜짝이야.”

버럭 소리쳤더니 손날로 가볍게 내 머릴 때린 누나는 생긋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씻고 잠깐 앉았는데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렸단 말야.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크으…. 평소였다면 쬐끄만게 어쩌구하면서 나한테 꿀밤을 마구 먹였을 텐데! 이런 사소한 행동과 동작 하나하나에 확신을 넘어선 맹신을 준다.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고개를 푹 숙이니 하얀 라운드 스커트 아래로 도자기처럼 흠집 하나 없이 뽀얗고 매끈한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냥 눈을 감자.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자 누난 내가 화났나 싶은지 내 옆에 앉아 내 머리를 살살 쓸어만 져주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화났어?”

“내가 화날 이유가 어딨다고.”

화난 건 누나한테가 아니라 나한테란말야. 누날 여자로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엄마한테 뭐라고 하면서 밝혀야 하지. 아빠한테 알렸다간 맞아 죽을지도 몰라.

“너, 아파트에 살 때 맞은편에 살던 도촬범이 나 훔쳐본다고 무지 화냈었잖아. 기억 안 나?”

…그랬었지, 참.

답답한 기분에 한숨을 쉬면서 안마하듯 얼굴을 부비고 있으니, 내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도 모르는 누나는 피식하고 웃으며 내 머리를 마구 흐트러트려 까치집으로 만들고선 다시 쓱쓱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앞으로 조심할게. 그보다 이제 어찌할 거니?”

“…사비 종족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이 돌아왔다고 해. 그 녀석만 만나보고 떠날 생각이야. 파묻힌 사비 종족을 구해주면서 백청의 뿔 한쪽도 탐색해봤지만 나오지 않았으니까 더는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어.”

“갈 땐 그 아이들도 다 데려갈 거야?”

“고위 아종들? 풀어줄 수도 없고 죽이기도 싫으니 데려가야지. 그건 왜?”

“그랑 블루 레이드 팀도 이제 17팀이니 각각 팀의 마스코트로 넣어주면 좋을 거 같아서. 어떻게 생각해?”

그새 그렇게 늘어났나? 18마리는 독악이 하나와 2종류 이상이 섞인 혼종이 세 마리에 개구리가 둘, 뱀이 셋, 악어가 둘에 도마뱀이 셋, 이구아나가 둘, 카멜레온이 두 마리가 있다.

“죄다 파충류에 양서류라서 이런 녀석들을 마스코트로 삼는 건 좀 그런 거 같지 않아?”

“그 부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럼 그러든가.”

화제가 돌아가니 조금은 숨통이 트이긴 개뿔, 누나가 옆에 찰싹 앉아있어 지극히 남성스러운 생체반응이 일어날 거 같아 큰일 났다.

“그보다 누난 안 피곤해? 좀 있다 출발하려고 했는데 깜빡 졸 정도면 피곤한 거 같으니 좀 더 쉬었다가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그리고 난 어딘가 피신하고.

“씻고 잠깐이지만 눈을 붙여서 괜찮아. 바로 출발해도 돼.”

허리에 손을 올리고 가슴을 으쓱하는 누나의 표정에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쳇, 하는 수 없군.

잠깐 눈을 붙였다지만 정말로 잠깐일 뿐이라 피로가 사라지긴커녕 자다 깨서 더 쌓였을 테니 손을 잡아 힐링 터치를 누나의 몸 안으로 밀어 넣어서 피로를 회복시켜줬다.

누나는 몸 안에 밀려드는 감각이 이질적인지 흠칫하고 몸을 부르르 떤다.

“이, 이거 뭐야? 힐링 터치? 아, 채린 씨한테 한 게 이거구나.”

신기해하며 자기 몸을 내려다보는 누날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다가, 또 한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위상 세계에 들어와서 줄곧 기분이 좋아보이던 누나는… 이걸 데이트라고 생각해서 그런게 아닐까? 자의식과잉인 변태새끼라고 지적할 지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누나의 행동이 다 설명이 되는데.

지금 내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는 주제를 꺼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화연이랑 영은이를 같이 안는 것도 솔직히 말해서 세간에 알려지면 그다지 좋지 못한 시선을 받게 될 거다. 좋게 말해서 좋지 못한 시선이지 개망종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건 100%겠지.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클 거다.

장모와 딸이 한 남자를 공유한다고….

이런 상황에 내가 누나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면, 그리고 그게 알려지면….

문득 중학생 때 본 어느 사건의 판결문의 내용이 생각난다. 근친상간은 한 쪽이 신고를 해야 성립이 되는 죄일 뿐이고 단순히 하는 것 자체에는 범죄가 되지 않는다던가.

어렸을 땐 거기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한참 고민해봤지만, 누구한테 물어보거나 상담할 내용이 아니라 그냥 잊어버렸었는데 지금 그게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옆 나라에서는 사촌 간의 결혼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만약 그런다면 옆 나라로…. 그 순간 작고 보드라운 손가락이 내 뺨을 잡고 살짝 잡아당기기 시작한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이 누나가 부르는 소리도 못 들어?”

“어? 응?”

“밖에서 알케마가 너 부르고 있다구.”

바짝 접근한 누나의 체취랑 가까워진 얼굴에 뺨에 닿는 손가락 때문에 이상해질 거 같다. 머리가 폭발할 것처럼 복잡해져서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 이 상황을 피해서 머리 좀 식히고 다시 생각해야겠다.

=일족을 구출해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흙먼지에 꾀죄죄한 모습의 칼카쿰은 두 마리의 사제와 약 300의 사비를 끌고 왔는데, 로브의 여기저기가 찢어져 있고 그 틈으로 비늘에 뒤덮인 속살이 보이는 걸 봐서 벨티칼 산이 무너질 때 꽤 낭패를 당한 차림새다.

덩달아 묘하게 코를 찌르는 악취가 느껴져서 핑크색으로 엉망진창이 된 머릿속이 깔끔하게 악취로 가득 들어찼다. 거기다 이 냄새를 맡은 누나가 "이게 무슨 냄새야?!"하고 질겁하면서 멀찍이 도망가버려 정신 환기의 효과가 탁월했다!

속으로는 안도했지만, 겉으로는 칼카쿰을 선두로 300마리의 사비가 질서정연하게 무릎을 꿇고 깍지를 낀 자세를 취하는 게 거북스러워 인상을 쓰면서 입을 열었다.

“내 속 편하자고 한 짓이니까 그런 행동은 하지 마. 그리고 흰 녀석이 안 보이는데 따로 헤어졌나?”

=…아훔렉은 산이 붕괴하기 하루 전 신로神路에 들어섰습니다. 필경 매몰되어 죽었겠지요.=

지친 모습으로 눈을 감고 대답한 칼카쿰은 무척이나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하얀 놈이 죽었다니… 처음부터 밑도 끝도 없이 백청을 감싸더니 결국 저승길을 자초했군.

아비가 죽었다는 이야기에 알케마의 눈동자가 슬픔에 물들었지만 칼카쿰은 내게만 신경을 쏟으며 나한테 질문을 해도 되겠냐는 허락을 구했다.

“해.”

=신의 땅으로 향하신 뒤의 정황을 소상히 알려주시길 원하옵니다.=

“왜?”

=훗날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 말을 듣고 칼카쿰을 빤히 바라보니 나와 눈을 마주하며 '그 외의 뜻은 없습니다.'라는 눈빛을 보낸다.

처음에는 벨티칼 산이 무너진 탓을 내게 돌리려 하나 싶어 짜증이 확 올라왔지만, 저 눈을 보니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그래서 신의 땅으로 향하던 과정은 한두 마디로 생략하고 백청이 사비 종족을 잡아먹기 시작한 부분부터 이야기해주니 새벽 하늘색 비늘에 뒤덮인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진다.

=이… 으… 아아아.=

쉬이익. 취익. 슈으으.

“그래서 프랑하고 같이 백청을 공격했어. 그렇게 패색이 짙어지자 발광하면서 산을 무너트리고 용왕의 힘을 빌려 우리한테 저주를 내린 거야. 그리고 백청은 그 대가로 목숨을 잃었지.”

이야기가 끝났을 때 칼카쿰은 깍쥐를 낀 손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을 준 채 덜덜 떨고 거칠게 호흡을 하고 있었다.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알케마와 세 마리의 사제 계급도 백청이 그렇게까지 했을 줄 꿈에도 몰랐다는 표정으로 침울해졌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넌 백청이 너흴 버러지 취급했다는 부분에서는 화를 내지 않네?”

=백청은 극히 오만한 존재였습니다. 언제나 저희 사비 종족을 얕보며 시종으로 여기곤 했지요.=

격한 분노가 지나간 뒤의 허무한 표정으로 이제는 수원지로 변해버린 벨티칼 산의 흔적을 바라보는 칼카쿰의 모습에는 슬픔이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저는 그 점에서 불안감을 느껴 백청과 거리를 두자고 일족의 모임 때 몇번이고 이야기를 꺼냈지만…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남편과 전체 수의 1/2의 동족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지도자의 기분은 어떨지 궁금하다. 그렇다고 직접 겪고 싶진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말수가 없어진 칼카쿰에게서 몸을 돌려 쉘터를 아공간 안에 집어넣고 알케마를 손짓해서 부른 뒤에 5m짜리 이구아나 고위 아종의 등에 안장을 설치하게 했다.

기왕 이동해야 하는 거, 내가 업거나 안고 가면 누나도 불편할 테고 공간 도약은 더 못 버틸 테니 이런 식으로 탈것을 만들어야지.

안장은 원래 딜라이크에 덮어씌우는 거였다. 사비들을 구출하던 도중에 우연히 2개를 주워서 나도 모르게 아공간 안에 집어넣어 놨었는데, 딜라이크와 덩치가 비슷한 이구아나에게 잘 맞을 거 같다.

졸지에 탈것이 되어버린 이구아나 두 마리는 자기 등에 안장을 메고 있는 알케마를 보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혀를 날름거렸지만 내가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안장을 매고 있을 때 누나가 깨끗하게 씻겨줘 독이 말끔히 사라진 독악이가 시커먼 몸뚱이를 끌고 오더니 자기 등에 안장을 매주길 바라는지 내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이건 작아서 니 등에 못 매. 어슬렁거리면서 방해 말고 저리 가.”

쿠우우….

딜라이크의 안장은 덩치가 7m가 넘는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데도 이구아나에게 안장을 매는 알케마를 괜시리 콧등으로 툭툭 건들고 꼬리로 발을 걸며 심통을 부리기 시작한다.

=서하 님. 필요하시다면 제례용 안장을 드리겠습니다.=

“제례용 안장?”

=예. 제례를 위해 특수 제작한 2인용 안장이온데, 그것을 저 흑초악黑剿鰐의 등에 멘다면 평온한 여행이 가능하실 것입니다.=

독악이를 흑초악이라고 부르나? 자기 딸이 독악이한테 괴롭힘 당하는 게 보기 안쓰러웠는지 칼카쿰이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물건은 도시가 산사태에 파묻히면서 다 잃어버렸을 텐데 어떻게 준다는 건지 모르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로브 소매에 손을 집어넣은 칼카쿰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 그 속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미니어처 안장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땅에 내려놓은 뒤에 귀로는 들리는데 말로는 표현 못할 기괴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안장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어머, 어머?”

오, 신기하네. 저것도 비술인가? 멀리 피해있던 누나도 이 모습에 달려와서는 내 옆에 딱 붙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점점 커지는 안장을 지켜봤다.

나도 혹시 배울 수 있는 건 아닐까 공간 지각으로 칼카쿰의 몸 안과 몸 밖의 위상력을 감지해봤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TP만 조금씩 감소하는 게 보일 뿐, 이것도 비술에 포함되는 건가 보다.

이걸 보면 프랑이 익힌 소인화나 뮈르딘의 공간 이동, 모건 르 페이의 소환이나 백청의 저주처럼 비술에는 내가 인식 못 하는 무언가가가 있는 거 같다.

“서하야, 저거 능력이 아니라 비술이지?”

“응.”

칼카쿰이 꺼낸 안장은 흔히 우리나라 시골에서 볼 수 있을법한 나무로 지어진 정자처럼 생겼지만 그보다 좀 더 고급스럽고 탑승자의 안전과 편의성을 보강한 모습이었다. 안장의 외벽에는 용왕으로 짐작되는 문양이 양각되어있었고 내부도 무척 넓어 정자 중앙에 침대 하나가 있는 걸 제외하면 바닥에 10명은 편히 앉을 수 있을 만큼 컸다.

=마음에 드시는지요.=

“마음에 들어. 그런데 제례용이라며? 나한테 그냥 줘도 돼?”

용왕이 승질이라도 내면 어쩌려고? 뒷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칼카쿰은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례용일 뿐, 제례에 쓰이는 물건은 아닙니다.=

“괜찮다니 잘 쓸게.”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저희 종족의 진의 眞意이오나 지금 저희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이런 것 뿐이기에 죄송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훗날 여건이 되신다면 다시 한 번 찾아주시길. 그때는 저희가 받은 은 恩만큼의 감사와 사례를 표하겠습니다.=

은혜를 갚는다는 이야기에 누나의 눈동자가 과하게 반짝거리는 모습이 조금 어이없었지만, 우리 레이드 팀의 살림꾼이라서 그런갑다하고 넘겼다.

그리고 이 정자라면 누나랑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겠다 싶어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다.

============================ 작품 후기 ============================

으음. 간잽이라는 칭호 감사합니다 ㅋㅋ

간보기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쭈~~욱은 농담이구요.

저는 이래뵈도 법과 질서를 준수합니다. 지금 주인공과 누나의 관계는 서류상으로 친남매죠. 붕가? 불법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안해요!

독자님: 이놈이 덥다고 더위먹고 머리를 비우고 우동사리를 채워놓은거 아냐? 주인공은 이제 고3인데 여자랑 붕가질한것도 위법이잖아?!

아뇨, 위법 아닙니다. 두 사람이 섹스를 하게된 동기가 형사법률에 위배되는 사항이 없다면 처벌은 물론이고 나라에서 두 사람의 관계에 관여조차 할 수 없습니다.

물론 13세 이하라면 그런거없이 너 전자발찌^ㅅ^ 지만요.

그럼 시하는 언제 처녀를 탈출을 언제할까요@[email protected]? 맞춰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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