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97 누나와 단 둘이. =========================================================================
누나랑 간단히 알케마의 처우를 결정하고 땅속에 생매장된 사비 종족을 파내는 일을 시작했다.
아까 고위 아종들을 먼저 꺼내면서 공간 지각으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알게 된 거지만 누나의 예상대로 꽤 많은 숫자의 사비가 땅속에 묻혀있었다.
처음에는 땅을 공간의 벽으로 치우는 것에서부터 내려가서 가사상태에 빠져있는 사비 종족을 끄집어내는 것까지 모든 걸 혼자 다 하다 보니 쉴 틈이 없었다. 알케마는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발만 동동 굴리고 있어 도움도 안 됐고.
사이사이 야생의 이형종이 나타나서 어슬렁거리며 접근해오기도 했지만, 전투는 누나와 독악이들에게 맡겨놓고 나는 사비 종족을 파내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그렇게 발굴된 녀석들은 하나같이 축 늘어져서 정신을 잃고 있었는데, 눈 앞에 축 늘어진 동족이 나타나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알케마가 가사상태에 빠진 동족에게 다가가더니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간단하게 깨우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가사상태에서 깨어난 사비 종족 중 가진 능력과 상태가 괜찮은 녀석은 그대로 발굴 작업에 투입했다.
그렇게 사비 종족을 열심히 파내다 보니 속성 타입만 모인 전사 계급들도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고, 대지 속성 타입의 사비도 계속해서 늘어나 사비 종족을 파내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어나갔다.
사비 종족을 구출하기 시작한 지 1일째가 되던 날에는 파헤쳐진 곳에서 스스로 기어 나오는 녀석들이 생겼고 구출한 녀석들이 모여 움막을 짓거나 굴을 파는 등 피난촌이 생겨났다.
2일째가 되던 날에는 어딘가에서 후줄근하고 다친 모습으로 피난촌에 스스로 찾아오는 녀석들이 나타났다. 끊임없이 두 마리, 세 마리씩 짝을 지어 피난촌을 찾아오는 행렬이 끊이지 않아 뜻밖에 벨티칼 산이 무너질 때 몸을 빼내는 데 성공한 녀석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 세 마리의 고위 아종이 날 찾아왔다. 산이 무너질 때 용케 파묻히지 않고 몸을 빼내서 살아남은 녀석들이었다.
빠른 TP 회복 속도와 속성 타입인 전사 계급의 사비를 동원해 2일간 3만이 넘는 사비 종족을 대량으로 캐냈는데 이상하게도 사제 계급은 한 놈 밖에 나오지 않았다.
백청에게 잡아먹힌 5마리를 빼더라도 아훔렉과 칼카쿰을 포함해 7마리는 있어야 하는데…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재수가 없어서 파묻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3만이나 되는 숫자가 모여있으니 각종 사건 사고가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사제가 통제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알케마에게서 들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의식주, 세 가지라고 하는데 사비 종족은 사제 계급을 제외하면 장신구를 낄지언정 벗고 살아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먹을 것과 쉴 곳이었다. 그런데 두 가지가 전부 없고 통제할 사제도 하나 뿐이니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
3 만에 달하는 사비를 지배하는 데 필요한 사제 계급은 셋. 하지만 발굴된 사제 계급은 고작 하나…. 그나마 알케마가 예비 사제로서 교육을 받던 중이었고 아훔렉과 칼카쿰의 자식이기에 평범한 사제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유일한 사제한테서 듣고 알케마도 사비 종족의 통제에 투입해버렸다.
계급에는 쉽게 복종하는 사비 종족의 특성 덕분에 사제 하나에 더해서 알케마가 투입되자 혼란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고작 둘 뿐인 지배층이라 조금은 위태위태한 느낌이었다.
그나마 단 하나뿐인 사제가 꽤 나이가 많은 녀석이라 이런 상황에서의 해결책을 잘 알고 있어 다행이었다.
그 둘이 동분서주하며 구출된 사비들이 할 일을 지시해준 덕분에 혼란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었고 덩달아 먹을 것과 쉴 장소도 동시에 해결해나갔다. 바로 기운을 차린 녀석들에게 비를 피할 장소를 만들게 시키거나 사냥을 보내 식량을 확보하게 시킨 거다.
역시 쓸데없는 생각을 막는 데는 몸을 쓰는 노동이 최고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성이 있는 종족이다 보니 성향이라고 해야 하나, 저마다 성격이 달라 사람처럼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거나 좀 폭력적인 것들도 있어서 분위기가 좀 흉흉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러자 알케마가 눈이 퀭해진 모습으로 날 찾아와 두 손을 깍지 낀 채 무릎을 꿇고 간청해왔다.
=서하 님만 괜찮으시다면 서하 님의 근위대를 치안의 유지에 활용했으면 합니다만… 부탁드려도 될지요.=
“근위대 같은 거 아니니까 그냥 데려가서 써.”
=네? 네….=
고위 아종들을 막 대하는 게 좀 혼란스러운 눈치였지만 알케마는 다른 반문은 하지 않고 치안 유지에 놀고 있던 고위 아종 18마리와 기존에 치안을 담당하던 사비 종족을 함께 투입했더니 흉흉한 분위기는 금방 사라졌다.
구출된 녀석 중에는 꼬리가 잘린 놈들이나 팔다리가 끊어진 녀석들도 많아 대충 구조가 끝났다고 생각이 들 무렵 다친 놈들을 한데 모아 힐링 웨이브를 쏴서 상처를 치료해주기 시작했다. 누나가 기왕 도와주고 있는 거, 내가 가진 능력으로 해줄 수 있는 건 해주는 게 좋다고 조언을 해줘서였다.
“기왕 도와줄 땐 화끈하게 도와줘야 해. 그래야 혹시 나중에 이들의 도움을 받을 일이 생기면 일이 쉽게 풀릴 테니까.”
“내가 이것들의 도움을 받을 일이 생길지 의문인데.”
“그럼 놔두든가.”
“아냐. 할게.”
그렇게 잘린 팔다리 꼬리를 재생시켜준 건 좋은데 그걸 지켜보던 덜 다친 놈들마저 날 영웅이라 부르면서 고개를 조아리는 게, 꼭 자기들도 치료해달라는 걸로 보여서 하는 수 없이 10분마다 힐링 웨이브 1단계를 쏘아내면서 다친 놈들을 모두 회복시켜버렸다.
그걸 옆에서 모두 지켜본 알케마는 날 대하는 태도가 어쩔 수 없이 복종한다는 모습에서 진심으로 날 인정한 듯이 날 섬기 시작했고 날 좋게 보던 사비 종족의 일부도 내게 더욱 우호적으로 변했다.
3일째 아침이 됐을 무렵에 녀석들의 도시가 있던 곳을 모두 살펴볼 수 있었다.
“مور ! تر لاسه کړي ….”
마지막 피난촌에 도착해 기운이 없는 수많은 사비가 모여 쉬는 곳을 지나가는데 1m도 채 안 되는 작은 사비가 축 늘어져 있는 큰 사비를 끌어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뭐라 뭐라 중얼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뭐라는 거야?”
=저 아이가 끌어안고 있는 게 어미인가 봅니다.=
“…죽어있네.”
=네….=
어제 광역 치료를 해줄 때 없었던 것과 흙투성이인 지금 모습을 생각해봤을 때 방금 동족들에게 구출된 모녀였나 보다. 큰 사비를 부둥켜안고 어엉하고 우는 작은 녀석을 보고 있으니 모래를 씹은 것처럼 입안이 텁텁해지는 기분에 고개를 돌려버렸다.
내가 뭐 전능한 존재도 아니고 다 살려줄 순 없는 게 당연한 거지만 그래도 기분이 가라앉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공간 지각으로 땅속을 세심하게 훑어나가며 미약한 위상력이 감지되는 곳마다 호박색 공간의 벽으로 화살표를 만들어 위치를 표시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더 돌고 나자 공간 지각 안에 감지되는 살아있는 사비 종족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이제 이 근방에 생매장된 사비는 안 보이네.”
=네. 서하 님보다는 못하지만, 동족들이 구출작업을 계속해서 그럴 겁니다.=
알케마는 내가 구출 활동을 하는 동안 점점 분위기가 침착하게 변하더니 이제는 예전의 가볍고 순진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제 어미인 칼카쿰을 떠올리게 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역시 고난과 정신적인 고통은 인격을 성숙하게 만드는 법이지.
...근데 난 왜 변한게 없을까?
누나도 3일 동안 낮이면 독악이와 고위 아종 17마리를 제어하며 사비 종족들이 어찌 못할 만큼 강력한 야생의 이형종을 사냥하러 다녔고 밤이면 나와 함께 다니며 구출 현장에 빛 속성으로 광원을 만들어주는 강행군을 했었다.
그 덕분에 3일째 아침이 밝았을때에는 누나의 날개깃털 제복도 흙투성이에 머리도 푸석푸석해지고 피곤에 절은 모습이라 공중에 푸른색 공간의 벽을 만들고 그 위에 쉘터를 설치해 누나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왜에? 난 괜찮아아.”
“안 괜찮아 보여. 좀 씻고 자둬.”
…그냥 쉬면 될 텐데 "니가 힘들게 구조활동을 하는데 내가 어떻게 놀아?" 하면서 들어가지 않으려던 누나는 점심 먹고 출발할 건데 그렇게 피곤해서야 제대로 따라올 수 있겠냐고 따졌더니 아무 말 하지 않고 쉘터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렇게 누나를 쉬게 해놓고 하늘로 뛰어올라 벨티칼 산을 다시 한 번 살펴봤다.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내린 토사에 곱게 깔렸던 대지는 흉물스럽게 이리저리 파여있었고 사비를 구출하느라 광범위하게 흙을 삭제한 곳은 노천 광산처럼 변해있었는데 그런 곳이 열 곳이 넘어가고 있었다.
땅으로 내려온 다음 쉘터로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이제 이곳에서 살긴 힘들겠군.”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신산이 무너졌다 해도 이곳은 저희 종족의 삶터이니까요.=
지난 3일 동안 바쁘게 뛰어다니던 알케마도 내가 마지막으로 피난촌들을 둘러본다는 말에 내 곁을 따라다니다가 내 중얼거림을 듣고 대답했다.
“삶터라고 해서 이 이상 도와주진 않을 거야. 더는 도와줄 수단도 없지만.”
=지금까지 해주신 것만으로도 저희 종족은 서하 님께 감사드릴 것입니다.”
“농담하지 마. 많은 놈이 나 때문에 이번 일이 일어났다고 날 원망한다는 거 다 알아.”
그 예로, 첫날에 처음 구출해낸 녀석들은 전사 계급들이었는데 그놈들은 내가 칼카쿰과 이야기를 나눌 때 있었던 녀석이었는지 날 보자마자 산이 무너진 게 나 때문이라고 살기를 머금고 덤벼들길래 나도 짜증 나서 사고 가속과 신체 강화를 최대한 발휘해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죽을 정도로 패버렸다.
아니, 누나랑 알케마가 말리지 않았다면 진짜 죽여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는 알케마가 구출된 녀석들을 가장 먼저 설득을 하는 건지 적어도 내 앞에서 벨티칼 산 어쩌구 하는 놈들은 없어졌지만 나는 그 일을 아직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하지만 서하 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동족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서하님께 원망을 품고 있는 자들도 서하 님께서 살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을 받아들일….=
알케마도 눈치가 나쁘지 않았는지 내 옆얼굴을 힐끔 보며 내 기분을 달래주려 했지만….
“됐어. 너희들한테 무슨 대접을 받자고. 어차피 떠나면 더는 볼 놈들도 아닌데.”
차갑게 내뱉은 말의 뜻에 알케마는 하얀 비늘의 색이 조금 어두워질 정도로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누나는 언젠가 도움을 받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그리 생각 안하거든. 그러니 날 따라오려는 알케마도 나와 함께 여길 떠나면 두번 다시 동족을 못만날꺼다. 그 점을 인식시키고도 날 따라오겠다 맹세한 알케마니까 미안함이나 죄책감같은건 없다.
마지막으로 싱크홀 주변을 공간 지각으로 둘러봤다. 싱크홀에서는 여전히 막대한 양의 물이 펑펑 쏟아져나오고 있어 싱크홀에서 시작된 침수와 강이 점점 넓어져 산이 있던 곳 전체가 늪지화되기 시작하는 거 같다.
피난촌에서 이 이상은 내가 할 일이 없겠구나 싶어 이제 그만 내 할 일 하러 가겠다고 말했더니 알케마도 깍지를 끼며 공손히 대답한다.
=그럼 저도 떠날 채비를 갖추고 오겠습니다.=
“끝나면 쉘터가 있는 곳으로 와.”
=네.=
그때 살색의 통통한 도마뱀붙이 사비 한 마리가 헐레벌떡 달려오더니 우릴 보고 게겍 게코게코거리며 두 팔을 허우적거렸다.
“AlKema د، او خدای CakaKum موټر روحيه ورکړه!!”
“뭐라는거야?”
=어, 어머니가 동족을 이끌고 돌아오셨대요!!=
살색 사비의 말이 이어질수록 눈이 점점 커지던 알케마는 공간의 벽에서 펄쩍 뛰어내리더니 바람을 불러 전령 역할을 한 사비와 함께 어디론가 쌩하니 날아갔다.
칼카쿰이 살아있었나? 녀석들의 뒤를 쫓아가서 만나볼까 했지만 어차피 떠나기 전에 한번 볼거, 그때 몇가지 물어보고 출발해야겠다 생각하면서 짐을 챙기러 쉘터로 걸음을 옮겼다.
여길 떠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생각해봤는데, 프랑과 함께 백청의 뿔을 수색할 때 남쪽으로 내려가자 기온이 살짝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던 걸 보면 여긴 적도의 윗부분일 테니 추운 북쪽으로 올라가기보단 남쪽으로 향하는 게 나을 거 같다.
갈 때는… 고위 아종을 데려가야 하나? 어차피 알케마때문에 속도가 느려질 텐데 누나 호위 삼아 그냥 다 데려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
정신 조작 용량의 최대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늘어나는 거 같고 지금도 남은 용량도 45%인 데다 딱히 정신 조작을 할 일도 없는데 용량을 확보하기 위해 독악이 빼고 17마리를 죄다 죽여버리는것도 껄끄럽다.
잡생각을 떠올리면서 걷다 보니 쉘터가 시야에 들어온다.
18마리의 고위 아종이 공중에 떠 있는 쉘터 주변을 빙 둘러싸서 사비 종족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고 있고 그 너머를 사비 종족이 어슬렁거리며 쉘터를 구경하고 있었다. 저것들이 사는 집이랑 쉘터는 전혀 다른 건축물이다 보니 주로 생산이나 직공 계층이 건물에 호기심을 보이는 거 같다.
어떻게 지금 구경 중인 사비들이 생산이나 직공인지 알 수 있었냐면, 나도 처음에는 사비들의 계급을 알 수 없었는데 옆에 따라다니던 알케마가 5계층은 1가지 색, 4계층은 2가지, 3계층은 3가지, 2계층은 4가지의 색으로 머리와 눈 밑을 치장할 수 있다고 해서 알게 됐다. 로브는 1계층인 사제 계급만 입을 수 있다던가.
아무튼, 지금 구경하는 저것들은 2개나 3개의 색을 칠하고 있었는데 내가 접근하니 우르르 좌우로 벌어지며 지나갈 길을 만들어주고 고위 아종들도 크으응거리며 고개를 조아리며 내게 경외를 표시했다.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훈훈한 공기가 내 몸을 휘감아온다.
누난 2층에서 자고 있으려나? 2층으로 올라가서 거실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급 가죽 소파에 쓰러져 무방비하게 자는 누나가 보였….
…….
목욕 수건 한장만 몸에 걸친 채 자는 누나는 몸을 뒤척이기라도 했는지 수건이 반쯤 흘러내려 있는데, 그 부분으로 드러난 누나의 알몸이 고스란히 망막에 새겨졌다.
……보자마자 돌아서 버렸다. 아니 진짜 멀쩡한 침대 놔두고 저기서 왜 자는 거야?!
단 하나의 흠이라고 생각되던 가슴이 평균 이상으로 커지니 경국지색이란 수식어는 누나에게만 어울릴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은 목욕 수건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 볼륨은….
으아! 으아앙!! 사라져라, 음란마귀야!!
생각을 돌려야 해! 사고를 전환해야 해!! 내가 아까까지 무슨 생각을 했더라?
아까 하던 생각을 이어나가면서 눈에 맺힌 살인적인 영상을 애써 잊으려 했지만….
“으응….”
…누나가 잠결에 흘린 신음에 내 노력은 모조리 날아가 버렸다.
심장이 궁덕거리고 얼굴에 피가 몰려 뜨겁고 따끔거린다. 마나 시브를 미친 듯이 돌리면서 평정을 되찾으려 했지만 눈을 감을 때마다 떠오르는 그 모습에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어떤 표현으로도 묘사할 수 없을 가슴은 완벽한 아치를 그리며 앙증맞은 유실을 강조하고 있었고 부드러워 보이면서도 꽉 조여진 복근이나 아랫배의 끝에 나있는…!
아, 제길.
저건 누나다. 저건 못생긴 누나다. 저건 못생기고 마녀 같은 누나다. 저건 못생기고 마녀 같고 동생 괴롭히는 게 낙인….
에이! 때려쳐!!
여자 알몸 한 두 번 보는 것도 아닌데 동정처럼 왜 이래~! 그냥 수건으로 둘둘 말아서 방에 처박으면 되는 거잖아!!
좋아, 간다!
눈에 힘을 주고 돌아서자 예술을 넘어서 살인적인 자태의 곤히 잠든 누나의, 전신 샷이 눈에 들어온다.
…네. 무립니다.
돌아서자마자 다시 되돌아서 버렸다. 아까 신음을 흘리면서 몸을 뒤척였는지 목욕 수건이 전부 흘러내려서 도자기를 빚어 만든 것처럼 투명하고 우윳빛 피부가…. 아악!
눈을 가리자. 그냥 눈을 가리고 공간 지각으로 누나가 있을법한 곳만 감지를 치운 채 천천히 다가가서 수건으로 그냥 말아버리는 거야!
아니, 그냥 저렇게 두고 나가버려도 되잖아? 왜 굳이 누날 챙겨주려는 거야?
당연히 저렇게 있으면 감기 걸리니까 그렇지! 저렇게 칠칠맞게 자다가 지나가던 도마뱀이 누나의 예쁜 알몸을 보면 어쩌려고!?
으으으. 정신이 분열될 거 같아… 누난 진짜…
아공간에서 수건을 꺼내 눈을 가리고 천천히 돌아서서 살그머니 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어서 고동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만! 머릿속에 공간 지각 범위가 3D 영상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라있지만! 누나가 있는 소파 부분만 새카만 어둠에 잠긴 것처럼 뻥 뚫려있어 그곳을 향해 조심스레 다가간다.
그리고 구멍에 가까이 다가간 뒤에 쪼그려 앉아 바닥을 더듬으며 소파를 향해 나아가길 잠시, 손끝에 소파의 천연 가죽 질감이 느껴졌다. 그 주변을 손으로 휘휘 저으니 과연, 소파 아래로 흘러내린 수건이 손에 닿는다.
“…후우.”
살짝 한숨을 쉬고 그 수건의 끝을 잡아 천천히 들어 올려 누나에게 덮,
사아악. 몰캉.
히익…! 소, 손가락에 뭔가 말랑한 게 스치다가 닿았어! 뭐야?! 가슴!?
수건을 쥔 손끝에 뭔가 말랑한 게 닿자마자 뻣뻣하게 굳어 귀에 감각을 집중해 누나의 반응을 엿듣는다. 고르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소리. 약간 빠른듯하지만 콩닥거리는 누나의 심장 소리.
터질 듯이 둥둥거리는 내 심장 소리.
수십초간 꼼짝하지 않고 있으면서 누나의 반응을 엿듣다가 잠에서 깨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고서야 조심스럽게 수건으로 누나의 몸을 덮어간다.
수건이 살짝 당겨지는 느낌이 들 때까지 당겼다가 누나의 몸 위로 수건을 돌려 슬쩍 놓으니 사브락거리는, 수건이 누나의 몸을 가리는 소리가 들렸다.
좋아. 됐어. 안 보고도 움직일 수 있어. 그럼 이제 수건의 남은 한쪽도 둘러놓고 그냥 침대에 버리고 오면 돼. 그 뒤에 누나가 깰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해야지.
좋아. 완벽한 계획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을 가린 수건을 내린 순간, 누나의 밤하늘 같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
“…….”
…망했다.
============================ 작품 후기 ============================
396편 내용 수정하려다 삭제를 클☆릭!! ㅂㄷㅂㄷ
조아라 인터페이스 개망인듯!
순간적으로 더위를 잊을만큼 등골이 오싹했어요ㅠㅠ 삭제한 편수 복구 기능 있었으면 좋겠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