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395화 (395/517)

00395  디버프debuff  =========================================================================

영은이가 알아보겠다고 한 위상 세계의 통합설은 나도 궁금해서 설날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인증기 커뮤니티의 능력자들이 모인 게시판을 찾아봤는데 그 어떤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쓸데없는 이야기로 키보드 배틀을 벌이며 심력을 소비하는 꼴이라 바로 나와버렸다.

…사실 흥미가 가는 글이 잔뜩 있었고 그중에 하나, 굉장히 시선을 잡아끄는 제목이 있어서 보고 싶었는데, 내가 이런 질 안 좋은 곳에서 노는 걸 싫어하는 프랑 때문에 아쉬움을 느끼면서 인증기를 종료했다. [야이~ ㅎㅎㅎ 그래서 위상력 에너지 안쓸꺼야?]라니, 심상치 않은 병신력이 느껴지는 제목이었는데 말이지.

“그런 정신이 안 좋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놀면 못써요. 정 궁금하시면 영은한테 문자를 보내세요.”

…그래서 프랑 말대로 영은이한테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묻는 문자를 보냈지만, 문제는 [미안ㅠㅠ] [아직 안돼요.] [바빠서 좀 이따 문자 보낼게!] 같이 질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단어로 이루어진 단답형 내용뿐이라 궁금증을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속 시원하게 궁금증을 풀지 못한 채 설이 끝났지만, 내 생각보다 일이 많은지 휴가 나간 수한과 소피아가 돌아온 뒤에도 영은이는 퇴근하지 못하고 일에 묻혀있었다.

설이 끝나고 누나와 함께 위상 세계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다가와 완공 직전인 신촌동 대저택으로 이사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느라 분주한 소피아와 수한을 보다가 소파에 얌전히 앉아있는 프랑한테 물었다.

“아직 몸 상태가 나빠?”

“네. 저주의 부작용이 조금 오래가네요.”

저주의 해주 방법으로 마나 시브를 이용해 프랑의 위상력을 내 마음대로 움직인 후유증인지 프랑과 암흑이는 평소와는 다르게 위상력에서 이질적인 느낌을 받고 있다고 했다. 어째서인지 몸 안에 있는 위상력이 우리 집 아이가 아니라 남의 집 아이 같은 느낌이라나?

“아, 아이를 가져 본 적은 없지만요!”

“곧 가지게 해줄게.”

“……!!”

폭발한 것처럼 얼굴이 새빨개진 프랑을 두고 테이블 위에 퍼질러져 있는 암흑이를 돌아봤다.

녀석은 프랑이 받는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는지 집에 돌아온 뒤로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거실에 퍼질러져서 이리저리 굴러다녔는데, 이삿짐을 정리 중인 소피아와 수한한테 몇 번 걷어차이고 밟힌 뒤로는 테이블 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위상 세계에 같이 가긴 힘들겠지?”

“같이 가면 짐만 될 거 같으니 저와 암흑이는 집에서 요양하고 있을게요. 시하 님이랑 둘이서 다녀오세요.”

“알았어.”

누나랑 단둘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정신적인 압박이 느껴지지만… 신경 쓰면 지는 거다.

지는 거야!!

…가는 김에 위상 세계의 지도나 그려야겠다. 그걸 위해 설날 동안 지도를 그릴 때 쓰는 투영법을 날림으로 배웠으니까.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으니 소피아가 애써 포장한 짐을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풀어헤치며 본의 아니게 방해하던 미호가 여우 귀를 쫑긋 세우면서 두손을 붕붕 흔든다.

- 쥔님 다녀와~!

“그래. 미호는 프랑이랑 암흑이한테서 떨어지지 말고 잘 지켜.”

- 응!!!

=다녀오세여어~.=

암흑이는 만사가 귀찮은지 늘어진 채로 손가락만 까닥거리고 소피아와 수한의 배웅도 받으면서 누나의 집무실로 공간 도약을 펼쳤다.

소리 없이 엘리베이터 앞에 나타나자 처음 보는 예쁜 여자한테 업무 지시를 내리는 누나가 보였다. 누나는 플라비우스 종족의 깃털로 꾸미고 만든 하얀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라운드 스커트 아래로 드러난 뽀얀 다리가 눈에 확 들어와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저건 누나다. 저건 누나다. 저건 누나다. 저건 누나다.

…아오. 그냥 도망가버릴까….

“왔어? 이것만 하면 끝나니까 잠깐만 기다려. 아시겠지요? 순서대로 진행하면서 필요할 때 이혜령 총무부장님께 도움을 청하세요. 말씀드려놨으니 그때 찾아가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그럼 뒷 일을 부탁드릴게요, 채린 씨.”

뭣?! 저 갈색 긴 머리 웨이브의 도도한 커리어 우먼이 유채린이라고?! 커리어 우먼은 이런 거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검은색 얇은 뿔테 안경을 끼고 하얀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타이트스커트에 커피색 스타킹을 신은 여자가?!

펑퍼짐한 능력자 연합 전투복을 입고 있어서 볼품없어 보이던 첫 만남 때나 몸에 맞지 않는 정장을 입은 거처럼 후줄근했던 그랑 블루 발족식 때와는 다르게, 틀어 올려 묶은 긴 머리는 완벽했고 깔끔한 차림에 여성스러운 S자 라인이 한껏 드러나는 육감적인 몸매는 정말 동일인물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다.

“…채린 아줌마?”

앗, 이마에 핏줄 생겼다. 유채린 맞네.

“농담이에요, 채린 누나. 군바리같던 모습에서 너무 예쁘게 바뀌어서 깜빡 몰라볼 뻔했어요.”

“…감사합니다.”

“누날 많이 도와주고 있다면서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히죽 웃으면서 손을 내미니 유채린은 내 손을 빤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마주 잡아왔다. 회복 능력자지만 자기 몸 안에 쌓인 피로는 느끼지 못하는 건가?

위상력의 움직임이 활발하지 않고 조금 느릿해 보이는 게 지쳐 보여서 마나 시브로 유채린의 몸 안에 힐링 터치를 쑥 밀어 넣으니 움찔하면서 다리가 풀려 쓰러질뻔했다.

황급히 허리를 잡아주고 놀래서 눈이 커진 유채린에게 말했다.

“그동안 피로가 좀 쌓였네요. 이걸로 피로가 다 풀렸을 테니 5일 동안 힘내세요.”

“읏. 예에.”

상기된 얼굴로 다리를 후들후들 떠는 유채린을 냅두고 누나의 손을 잡고 부산물 처리장으로 도약하니 샐쭉한 표정을 지은 누나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뭐한 거길래 채린 씨가 그런 모습을 보인 거야?”

“어? 마나 시브의 응용이야. 힐링 터치를 몸 내부로 밀어 넣어서 피로를 회복시켜주는거.”

“새로 익힌 거야?”

“새 능력이라기보단 응용이라니까.”

누나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무슨 벙커 입구처럼 생긴 곳을 지나 좁고 긴 통로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어지간한 종합운동장 5개를 합친 것처럼 넓고 커다란 공간이 나타났다. 천정에는 전등이 빼곡하니 달려있어 무척이나 밝았고 온도 조절장치도 돌고 있는 건지 기온이 굉장히 낮아 사체를 보관하기에 적당해 보인다.

“여기에 백청의 사체를 꺼내놔.”

“여기에? 누가 훔쳐가지 않아?”

“니가 아닌 이상에는 못 훔쳐가. 입구는 우리가 들어온 높이 2.5m에 폭 1.5m짜리 통로뿐이고 경비 시스템이 그랑 블루와 연동되어있어. 누가 침입하기라도 하거나 땅을 무너트리려 하면 당장 그랑 블루 빌딩에 경보가 가서 대기 팀이 즉시 출동하게 돼.”

설명을 들으면서 백청의 사체를 꺼내놓으니 누나가 탄성을 지른다.

“우와아. 엄청 크다. 이게 초위 이형종인 이무기구나. 근데 남은 뿔 한쪽은?”

“몰라. 저걸 잡을 때도 없었어.”

“못 찾았어?”

“대대적으로 수색했는데 안보이더라고. 벨티칼 산은 완전히 무너져버려서 수색도 힘들고.”

“그래도 능력이 원래대로 돌아왔으니까 이번에 가면 공간 지각으로 한 번 더 살펴보자. 알았지?”

“응.”

나가기 전에 백청의 살코기를 왕창 잘라서 아공간 안에 집어넣었다.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구워 먹어야지.

아직도 공사 중인 신新 능력자 연합 빌딩 옆에 임시로 세워둔 위상 세계 입장 대기소로 이동했다. 누나가 데스크센터에서 입장 등록을 하는 사이 영은이한테 누나랑 위상 세계 탐색을 다녀오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음… 이번에도 늦게 확인하나 보네.

“누구한테 문자 보낸 거야?”

인증기 화면을 작게 해서 보고 있는데 금방 입장 절차를 끝내고 돌아온 누나가 내 어깨너머로 홀로그램 창을 보며 물었다.

몰래 문자를 보내겠다고 누나가 위상 세계 입장 등록을 하느라 정신이 팔렸을 때 했는데도 귀신같이 눈치챈다. 괜히 거짓말했다가 의심을 사면 골치 아파지니 그냥 솔직하게 대답했다.

“여사님. 위상 세계에 다녀오겠다고 한 거야.”

“그래?”

다행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만약 둘러댔다면 원조 눈치 귀신의 의심을 사서 귀찮고 곤란한 질문 세례를 받았겠지.

“자자. 얼른 들어가장!”

“그렇게 좋아?”

“그러게 말야. 능력자가 됐는데도 누구 때문에 일귀신이 돼서 회사에서 숫자랑 씨름하고 있으니까 스트레스가 팍팍 쌓이고 있었거든?”

…그러게 말야, 라는 말은 왜 붙인 건데? 뭐가 그리 좋은지 누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능력자들 사이를 헤치면서 5층의 C클래스 이상 전용 입장실로 향했다.

중간에 날 알아본 능력자들이 내 옆에 있는 누날 보고 새 애인인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누난 못 들은 건지 모른 척 하는 것인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괜히 나만 뻘쭘하네.

능력자들이 사용하는 건물이라 그런지 임시인데도 굉장히 고급스러운 실내 디자인에 통로 곳곳에 나무와 화분을 비치해뒀고 광량도 밝아서 산뜻한 분위기인데 내 기분은 왜 이렇게 우울할까…. 아마도 원인은 내 옆에서 팔짱을 끼고 생글생글 웃으며 끌어당기는 여자 때문인 거 같다.

문득 아빠가 가지 말라고 말리려다 누나의 말빨과 협박에 침묵해버린 어젯밤이 생각난다.

위상 세계는 위험하고 또 위험하니 웬만하면 현실에서 회사 운영에 전념하는 게 어떠냐는 아빠의 이야기가 계속될 동안 누나는 거실 바닥만 내려다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누나는 드물게 화난 표정으로 "그럴게요. 대신 그랑 블루를 나가서 미국이나 러시아에서 레이드 팀을 따로 만들 테니 그건 괜찮죠? 안 괜찮다고 해도 할거에요."라고 개핵직구를 날려 아빠랑 엄마를 기겁하게 만들었다.

“좀 그만 잡아당겨. 안 도망가.”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팔짱 끼고 다니는 남매가 세상에 어디 있어! 이러니까 누날 내 새 애인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킥킥. 뭐한테 도망간다는 거야? 아, 저기다. 502호!”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누나는 지정받은 호실을 발견하고 내 팔을 잡아당기며 입장 대기실로 들어갔다.

방안은 5인 파티용 입장 대기실로 아늑한 거실처럼 꾸며놨다.

소파는 천연 모피로 만든 초고급 소파인 데다 테이블 위에는 각종 과일이 올려져 있고 업소용 냉장고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신형 냉장고에 돈을 처발라 만든듯한 화장실에… 화장실은 샤워실과 연결되어있었는데 샤워실도 한 번도 보지 못한 고오급 샤워실이다.

“와~ 무슨 5성 호텔 스위트룸 같아.”

신나서 입장 대기실을 수색하듯 돌아다니는 누나를 지켜보다가 목을 가다듬고 엄한 목소리로 누날 불렀다.

“누나. 그만 여기 와서 앉아봐.”

“응? 응.”

누나가 맞은편 소파에 앉을 때까지 기다려준 다음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위상 세계에 들어가는데, 들어가기 전에 누나한테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해줄게.”

“니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이형종을 무시하지 않고 경계를 착실히 하라는 거?”

“…어.”

뭐야. 난 그냥 내 곁에서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만 하려 했는데? 내 표정을 본 누나는 고양이처럼 웃더니 스스로 팔짱을 끼면서 도톰하게 부푼 가슴을 밀어 올리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프랑이 이야기해주더라. 너한테서 6km만 떨어지지 않으면 어떻게든 날 지켜줄 거라구. 이 누나도 우리 귀여운 동생을 믿으면 되는 거지?”

“그래….”

으으. 어째 시작부터 누나한테 말려드는 기분이다.

조금 입맛을 다시다가 입장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빠트린 점은 없는지 점검하고 있으니 누나가 살랑살랑 걸어와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

“자, 입장 시도할게.”

“으, 응.”

가…슴이 밀착되는 난데없는 스킨십에 당황하고 있으니 누나는 내 가슴을 안으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주변 풍경이 일렁이기 시작하다가 한 점으로 집중되기 시작한다.

으아… 불안하다!

풍경이 완전히 바뀌기 직전, 발밑에 푸른색 공간의 벽을 쳤고 완전히 위상 세계로 빠져나온 뒤에 바로 공간의 벽 위에 착지했다.

누나는 주변 풍경이 한 점에 빨려들기 시작할 때부터 눈을 감고 있더니 위상 세계로 들어와 두 발이 공간의 벽에 닿자 그제야 눈을 떴다.

“우, 후와아?”

발아래 끝없이 펼쳐져 있는 하얀 구름에 귀여운 감탄사를 흘리며 쪼그려 앉아 구름을 구경한다. 볼 거라곤 구름밖에 없는데 뭐가 재밌다고 저리 정신없이 구경하나 몰라?

나도 가볍게 360도 한 바퀴 돌아보며 특이점은 없나 살펴봤다. 다행히 하늘 섬, 잘바테라는 안보이고 시야에 들어오는 거라곤 푸른 하늘과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과 구름뿐이다. 바람이 조금 세서 누나가 약간 흔들거려 어깨를 잡아줬다.

그나저나 입장하는 위상 세계의 시간대는 같지만 나타나는 장소는 누나꺼랑 내꺼랑 나뉜 건가? 아니, 저번에는 내가 하늘 섬에서 따로 귀환 포인트로 귀환하는 바람에 위치가 바뀐 거겠군.

“하늘 섬을 생각나게 하는 구름이야.”

“그 구름은 특수한 구름이었어. 평범한 구름은 아니지.”

“아니~! 보통 구름은 난기류 때문에 울퉁불퉁하고 형태가 막 지 마음대로 만들어진단 말야. 심하면 다 퍼져버리구. 그런데 하늘 섬의 구름은 양털 융단처럼 고르게 퍼져서 포근해 보이는데 지금 밑에 보이는 구름도 비슷한 느낌이야.”

“…미안. 내가 누나의 지식을 너무 얕본 거 같아.”

구름은 그냥 구름이라고 생각하면서 대충 보고 넘겼는데 누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그런 거 같다. 요동치는 바다처럼 역동적인 구름은 아니지만 부드러운 양털이 생각날 만큼 포근해 보여 대자연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어 쪼끔 감탄이 생기긴 한다.

내가 순순히 인정하니 누나는 헤죽 웃으면서 일어나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찌르면서 말했다.

“저 구름에 뛰어들면 굉장히 따뜻하고 포근할 거 같지 않니?”

뭐 어쩌라고. 아, 구름에 뛰어들고 싶다고? 그럼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알았어.”

“응? 꺄악?!!!”

무슨 소리 하냐는 얼굴의 누나에게 다가가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끌어당긴 뒤에 공간의 벽을 박차 구름바다를 향해 낙하한다.

“야아아아! 무슨짓이야아아아!!”

낙하하며 마찰하는 대기에 귀가 먹먹한지 사지를 바동거리며 당황한 채로 있는 힘껏 소리치는 누나를 무시하고 총알처럼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누나가 포근할 거 같다는 소녀적 감성을 가지게 해준 구름에 도착하는 순간.

“앗차거!”

누나의 비명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게 현실이지. 포근포근 말랑말랑 따끈따끈. 이런 구름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잖아.

생각보다 구름의 물방울 입자가 굵은 데다 비를 머금고 있었는지 누나가 내 품 안에서 진저리를 치는게 느껴졌다. 그 상태로 구름의 하층부에 도달하니 색이 어두워지며 먹구름이 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비구름이었나?

구름을 관통하는 건 순식간이었고 구름을 뚫고 나오자마자 낙하할 때 발생하는 힘을 공간 도약으로 해소하며 다시 푸른색 공간의 벽을 펼쳐 그 위에 착지했다.

“으으. 다 젖었어….”

나도 다 젖었는데. 비를 머금고 있던 구름을 통과하면서 흠뻑 젖어버린 누나가 몸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울상을 지은 채 날 노려보는 모습에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어쩔꺼야 이거!”

“능력은 뒀다가 국 끓여 먹을 거야?”

“아 맞다. 나 물도 다룰 수 있지.”

깜빡했다며 바보처럼 배시시 웃은 누나가 물 조작으로 물기를 한데 모으는 동안 발밑을 둘러보니 역시나 육지와 산이 전부 물에 잠겨 바다가 되어있었다.

화산 폭발의 영향으로 운석을 맞은 것처럼 움푹 패이고 녹아내린 엘리펀트로스 산이 끄트머리만 물 밖으로 간신히 내밀고 있는 게 보인다.

이제 수신제라는 걸 지내던 사비 일족이 전멸했으니 앞으로 홍수는 안일어나겠…. 아니다. 수신제를 안치르면 수기가 쌓였다가 더 심하게 폭발한다고 했지? 대량의 수기 때문에 이 지역의 특성이 아예 변화해버리는 건 아닌지 몰라.

이번 홍수는 꽤 오랫동안 유지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던가.

철퍽.

“…뭐하는 짓이야.”

갑자기 등 어림에 뭔가가 닿더니 퍽 소리를 내며 터진다.

그렇지않아도 살짝 겉만 젖어서 꿉꿉한데 물이 터지며 속옷까지 젖아가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며 으르릉거리니 물기 한점 없는 뽀송뽀송한 누나가 귀여운 악동 같은 얼굴로 모른 척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모은 물을 나한테 집어던진 거야? 얼굴이랑 몸에 잔뜩 묻은 물을?

…생각하지 말자.

한숨을 푹 쉬고 이번에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이번에 할 일은… 벨티칼 산에 다시 가서 살아있는 건 없나, 백청의 뿔을 산 어딘가에 숨겨놓진 않았나 찾아보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해안선을 따라 지금 있는 대륙이 뭔지 확인하는 거.

내가 한숨만 쉬고 곰곰이 생각에 잠기니 누나는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손을 놀려 내 몸에 묻은 물을 그러모아 뒤로 던지더니 곧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표정으로 내 팔을 잡으면서 물었다.

“뭐부터 할 거야? 벨티칼 산 수색? 아니면 지도 작성?”

“벨티칼 산의 생존자 수색 겸 백청의 한쪽 뿔 찾기. 그담엔 위치 확인을 위한 지도 작성.”

“그래! 그럼 출발~!”

왜 이렇게 신난 거지? 진짜 일하느라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던 건가?

단순한 계획인데도 누나는 활짝 웃으면서 내 등에 답싹 업혀 오길래 뭐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천연덕스럽게 공간 도약으로 갈 거 아니냐고 했다.

“내 섀도 점프로는 널 쫓아가지 못하니까 이렇게 해야지!”

“…그래그래.”

어쩐지 남은 5일이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지칠 같다는 생각이 소록소록 올라온다.

============================ 작품 후기 ============================

어느 분의 제보로 시립 도서관을 다녀왔습니다.

정말 천국이더군요.

노트북을 들고 디지털 미디어실에 갔었는데 에어컨 빵빵하지,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조용하지(30명이 넘게 있었는데 살살 들리는 키보드 소리를 제외하면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더군요.) 디지털 미디어실 문밖에는 정수기에 음료수 자판기에... 정말 최고였습니다.

오후 6시에 디지털 미디어실 이용이 종료되기에 시간이 지나서 어디 있을 데 없나 어슬렁거리다 지하 휴게실에 가니 여기도 책을 읽을 수 있게 꾸며놨더라구요. (+에어컨 빵빵)

다만 휴게실이라 그런지 조금 소란스럽고 챙겨온 음식들을 먹느라 위장을 자극했지만 이런 소란도 나름 괜찮아서 만족스런 5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만!

집에서 도서관을 오갈 때가 문제네요. 갈 때는 불지옥 올 때는 헬지옥.

얼른 가을이 왔으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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