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390화 (390/517)

00390  디버프debuff  =========================================================================

고통에 얼굴이 파래진 프랑의 옆에서 잡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집중해 마나 시브를 돌렸다.

몇 시간이 지나자 암흑이도 반쯤 정신을 잃고 늘어져 버려 날 억지로 받아낸 후유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걸 알게 됐다.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아까 프랑이 말했던 것처럼 침착하게 위상력을 점점 굴려 나간다. 냇가 조약돌이 물길에 둥그스름하게 깎여나가듯 굳어있는 위상력을 깎아나가며 8시간에 걸쳐서야 겨우 힐링 웨이브를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TP를 모을 수 있었고, TP가 모이자마자 바로 힐링 웨이브를 발사했다.

화아아아아….

온통 하얀 눈의 세계에 퍼져나가는 이질적인 파란색의 빛무리. 파란빛은 프랑의 온몸과 자그마한 암흑이의 몸을 감싸다가 사라져 갔고 그에 따라 프랑의 어깨와 골반, 다리에서는 무시무시한 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우드득. 뚜두둑. 쯔즉. 뚜득

「하아아….」

움푹 우겨졌던 왼쪽 어깨깨가 원래대로 돌아오고 피멍이 든 채 박살 난 골반과 뒤틀린 다리도 아름다운 곡선을 되찾아간다. 소리만 들어서는 혀를 깨물만큼 격통이 느껴질 거라 생각이 드는데 프랑의 얼굴은 전신 마사지를 받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 보인다.

백청의 공격에 다친 상처가 아닌 덕분에 1단계의 힐링 웨이브로도 완치되는 게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암흑이도 반쯤 흐물거리던 모습에서 원래의 타이트한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가더니 눈을 뜨고 이제야 살겠다는 모습으로 내 목에 매달려왔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자태로 돌아간 프랑은 상체를 일으켜 세워 어깨와 허리와 다리를 만져보더니 살포시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서하. 덕분에 살았어요.」

=쥔님~ 캄싸!=

“고마운 건 나지. 우리들중에 하나라도 없었다면 이렇게 무사하진 못했을꺼야. 프랑도, 암흑이도 정말 잘해줬어. 고마워.”

=고마우시면 칭찬을 요구합니다!=

“그래그래. 참 잘했어요. 장해~.=

영은이를 흉내 내면서 암흑이의 엉덩이를 톡톡 건드리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볼을 부풀리면서 항의한다.

=이런 장난 같은 칭찬은 필요 엄써!! TP를 담은 애정 가득한 쓰다듬을 요구합니다!!=

“…누호디한테 배운 거냐?”

「킥.」

내 목에 매달려서 뺨을 잡아당기며 조르는 암흑이를 힘있게 쓰다듬어준 뒤에 스트레칭을 하면서 아픈 곳이 없는지 체크하는 프랑을 바라봤다.

잔뜩 흘러내린 땀방울이 추위에 얼어 서리가 내린듯한 거대한 유방을 바라보다가 아공간에서 프랑의 속옷과 옷을 꺼내주면서 물었다.

“프랑은 위상력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어?”

=저는… 아주 조금 풀렸어요. 예전처럼 돌아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듯하네요.=

“영구적인 디버프는 아닌 게 확실하지?”

옷을 건네받은 프랑은 나무에 쌓인 눈을 털어 몸을 닦으며 말했다.

「네. 일정 지역에 뿌려지는 필드형 디버프일까 했지만, 중세 시대로 넘어왔는데도 봉인이 유지되는 걸 보면 개체에 적용되는 디 버프. 그리고 약간씩이지만 위상력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지효성도 아니에요. 즉, 시간이 지나다 보면 자연히 풀리게 될 성질의 봉인이라는 거지요.」

프랑의 분석을 들으면서 벨티칼 산을 떠올렸다.

백청이 어떤 수작질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못해도 1분 가까이 흙모래와 암반과 함께 추락한 사실을 봐서는 산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봐야겠지. 산 정상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을 독악이들도… 죽었을 테고.

산자락에서 살고 있던 사비 종족도 산사태에 휩쓸려 몰살당했을지도 모른다.

산을 무너트린 능력과 나와 프랑과 암흑이의 위상력을 봉인한 능력. 그걸 생명의 대가로 용왕이 직접 힘을 빌려준 건가? 왜? 용왕은 자길 섬기는 사비 종족이 몰살당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나?

랑그 드란의 첫인상이 너무 강해서 신수들이 모두 신령스러운 존재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하늘 섬의 신전에서 본 벽화의 내용과 용왕의 행태, 그리고 용왕의 사도라는 백청이 한 짓을 떠올리니 신수라는 것들에게 인간미를 바라는 건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랑그 드란은 그냥 개체의 성격이 그런 거겠지.

내 짧은 위상 세계의 삶에서 큰 한이 맺혔던 한 가지를 해결했지만, 마음이 마냥 가볍지는 않았다.

눈으로 피부의 땀을 닦아낸 프랑은 옷을 입고 주위을 살펴보며 홀가분하면서도 조금은 아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백청을 죽인 건 다행이지만 사체를 회수하지 못한 건 아깝네요.」

“아냐. 봉인을 풀고 현실로 돌아가서 산소통 같은걸 구한 뒤에 다시 들어가면 되지. 어차피 다음에 진입하면 백청의 주둥이 속에서 나타날 테니까.”

그러고 보니 예상했던 것처럼 위상 세계에서 중세 과거로 넘어올 수 있어서 진짜 다행이다. 만약 안 됐었다면 나랑 프랑은 꼼짝없이 거기서 죽었을 테니까.

회색의 브이넥 티셔츠와 평범한 회색 바지를 입은 프랑을 보면서 봉인 디버프를 해제할 다른 수단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중세 시대에 넘어온 김에 뮈르딘을 만나보고 갈까? 뮈르딘이라면 봉인을 해제할 방법을 알고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누호디도 웬지 해결 방법을 알고 있을 거 같긴 하지만 어째 끗발로는 뮈르딘이 더 뛰어날 거 같단 말야.

그렇지만 지금의 거인 버전 프랑을 카멜롯으로 데려갔다간 사달을 제공하는 꼴이 될 테고 그렇다고 해서 위상력을 쓰지 못하는 프랑을 여기에 두고 혼자 가는 것도 조금 껄끄럽다.

이 시대의 인간들은 프랑을 발견하면 부정하고 사악해 보이는 거인이라고 달려들어 토벌하려 할 거 같단 말야. 그리고 싸움이 나면 프랑은 자기 나라의 선조가 되는 사람들이라고 어떻게 저항도 못할 거 같고, 이 세계에도 능력자들이 있으니 저렇게 눈에 띄는 프랑을 막 데리고 다니는 건 안된다. 게다가 나도 모건 르 페이의 일이 좀 신경쓰이기도 하고.

그걸 간추려서 말했더니 프랑도 조금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계에는 마법사라는 존재도 있으니 위상력으로 제 몸을 지키지 못하는 저는 현실로 돌아가는 쪽이 낫겠네요.」

“응.”

=저기, 주인님. 누호디도 비술에 대해서 잘 아니까 봉인에 대한 걸 알고 있지 않을까여?=

“급수로 비교하면 뮈르딘이 누호디보다 몇 급은 뛰어날 거라 생각해. 그래서 여기에 온 김에 보고 가는 쪽이 나을 거라고 한 거야.”

=아, 음. 넴.=

“위상 세계 입장 제한은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니까 뮈르딘을 만나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

「네.」

프랑은 위상력 운용 기술을 쓰지 못하게 됐으니 내가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넘어와야겠다.

10일 만에 현실로 넘어오니 대저택이 완공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저택 내부에서 마지막 마감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공간 지각으로 지켜보다가 정원을 돌아보니 공사 용품과 자재들도 다 치워져 있었고 인부들 휴식 장소로 이용하던 목조 간이 건물도 전부 철거된 상태였다.

「어머… 정원이 완성됐네요?」

프랑 말대로 각종 꽃과 잔디에 크고 멋진 분수대와 그곳에서 흐르는 작은 냇가가 아름다운 정원이 백청의 디버프에 걸린 찝찝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고 있었다.

우선 푸른색 공간의 벽으로 캐노피같이 생긴 걸 만들고 그 아래 프랑의 몸 굴곡에 맞춘 의자를 만들어서 쉴 곳을 만들어줬다. 난 바로 위상 세계로 다시 들어가야 하고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누날 시켜서 프랑이 지낼 텐트를 만들어주라고 해야지.

그전에 일단 누호디에게 먼저 봉인의 해제 방법을 알고 있냐고 물어보기 위해 암흑이만 데리고 그랑 블루 빌딩의 펜트하우스로 공간 도약을 펼쳤는데 봉인 디버프를 당해서 좁아진 공간 지각 범위 때문에 12번이나 공간 도약을 해야 했다.

차라리 공간의 벽을 치고 달리는 게 더 빠르겠네. 어쨌든 집으로 돌아와서 누호디가 어디 있나 찾아보니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누호디 전용 무기 거치대도 휑하니 비어있고 집 안에는 아무도 없고….

인증기를 켜서 화연이한테 연결을 시도하니 통신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 연결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토벌전에 들어가서 아직 안 나온 건가?”

시간은 오후 4시가 넘어가고 있는데 빌딩에는 누나도, 혜령이 이모도, 박지웅 제2 보스도 없고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TV를 켰더니 설날 특선 영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이걸 어쩌냐.”

=왜그러심까?=

재킷 안주머니에 들어가 있던 암흑이는 내 중얼거림을 듣더니 머리를 내밀며 물었다.

“오늘부터 명절이라고 다들 쉬나 보다.”

=명절! 설날이란 거?=

“응.”

다시 인증기를 켜서 누나한테 걸었더니 홀로그램 창이 뜨면서 들뜬 누나의 얼굴이 나타났다.

[언제 온 거야? 어디야? 백청은 잡았어? 다친 덴 없구?]

“방금. 빌딩의 펜트하우스. 백청은 잡았지. 다친 곳은 없고.”

여러 가지 질문에 단답형으로 대답해주니 누나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흘겨본다. 그러니까 하나씩 물어보래도 매번 질문을 퍼붓고 그래?

[지금 부모님이랑 할머니 집에 와있어. 그렇지 않아도 할머니가 너 안 와서 실망하셨었는데 얼른 와.]

그러면서 누나는 화면을 돌려 차례상 준비로 바쁜 할머니의 집안을 보여준다. 엄마와 아빠는 튀김과 부침개를 만들고 있었고 할머니는 미호와 함께 만두를 빚고 계셨다.

[어?! 주인님~!]

[이 녀석!!]

[힉?!]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막 빚던 만두를 팽개치고 이쪽으로 달려들려 하던 미호는 할머니한테 꼬리를 잡혀서 버둥거리다가 꿀밤을 맞고 시무룩해져 버렸다.

“…안돼. 누나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전화 한 거야. 이것만 설명해주고 바로 위상 세계에 들어가야 해.”

내가 오는 줄 알고 누나 뒤에서 웃고 계시던 할머니는 내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실망한 표정을 지으신다. 왠지 죄송해서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급한 일이 있어서 못 간다고 얼른 설명해 드리니 웃으시면서 손을 흔드셨다.

[난 괜찮다. 급한 일부터 먼저 해결해야지. 난 신경 쓰지 마라.]

[무슨 말이야? 5일 쿨타임을 기다려야 하잖아. 오기 싫어서 핑계 대는 거 아냐?]

“핑계 아니야. 중요한 일이니까 잠깐 따로 나와봐.”

찌릿한 눈빛을 보내면서 내 표정을 살펴보던 누나는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는지 표정이 요상하게 변하면서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다시 물었다.

[큰일이라니, 무슨 일인데?]

“나랑 프랑이랑 암흑이가 백청한테 저주를 받아서 위상력이 굳었어.”

[…뭐?]

뜨악한 얼굴의 누나를 나도 모르게 인증기의 캡쳐기능을 이용해 사진을 찍어놓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난 마나 시브로 조금씩 저주를 해결할 수 있지만, 암흑이나 프랑은 그러질 못해. 그래서 해결방법을 알아보러 다시 들어가려는 거야.”

[백청이 죽기 전에 발악한 거니? 아예 위상력을 못쓰게 된 거야?]

누나는 긴장되고 초조한 얼굴로 내 모습을 살펴보면서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난 위상력의 1/10 정도는 움직일 수 있는 상태고 지금도 계속해서 그 양이 늘어나고 있지만, 프랑하고 암흑이는 능력을 아예 쓰질 못하는 상태야. 그러니까 누나가 지금 해줘야 할 일이 있어.”

[내가 뭘 하면 돼?]

“신촌동 저택에 프랑이 쉴 수 있는 천막을 지어줘. 그리고 이형종의 사체를 쏟아놓을 데가 필요해.”

[위치 찍어줄 테니 그곳에 가서 관리인이 안내해주는 곳에 사체를 꺼내놔. 그리고 천막은… 지금 바로 처리해줄게. 근데 5일 쿨타임은 어쩌고 바로 들어간다는 거니? 무슨 방법이 따로 있는 거야?]

“현실에서 위상 세계로 넘어갈 때는 쿨타임이 안 생기지?”

[응.]

“위상 세계에서 중세 시대로 넘어가는 것도 쿨타임이 발생 안해. 거기서 현실로 넘어올 때도 발생 안 하는걸 이번에 확인했어.”

[헐… 현실이랑 위상 세계랑 중세랑 서클처럼 연결된 거니? 그래서 이동하는데 쿨타임 안 드는 거구?]

“응, 사기지. 그리고 휴대용 산소 호흡기를 몇 개 사야 하는데 어디 파는지 알아?”

[그건 빌딩 지하에 있는 대형 마트에서 팔거야.]

“알았어. 고마워.”

할 이야기는 다 해서 전화를 끊으려고 했더니 [넌 애가 정도 없니?! 전화해놓고 할머니랑 엄마랑 아빠한테 인사도 안 하고 가려고?!]라고 무섭게 화를 내서 하는 수 없이 할머니랑 부모님한테 따로 전화해서 안부 인사를 드렸다.

[……그러니까 몸조심하고 밥 제때제때 챙겨 먹거라. 밥이 보약이야.]

“네, 할머니. 잘 챙겨 먹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다녀와서 인사드리러 갈게요.”

[그러거라.]

[아들, 몸 조심해야 한다!]

“응.”

으아. 할머니랑 엄마랑 이야기한다고 1시간이나 써버렸네. 아빠는 "그래." "그래?" "그래." 세 마디로 끝났는데 할머니가 엄마랑 같이 화상 통화를 한 덕분에 이야기에 맞장구치고 대답해주느라 시간이 무진장 흘러버렸다.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사소하고 잡다한 이야기라 듣는 내내 고역이었다….

통화 중에 누나한테 받은 쪽지에는 부산물 처리장의 주소와 함께 지도가 링크되어있었는데, 링크를 눌러 지도를 띄우니 우리 회사 남쪽에 있는 대모산 너머에 화살표가 찍혀있었다.

우선 마트에 들러 마스크에 자그마한 알루미늄 통이 달린 휴대용 산소 호흡기를 여러 개 사서 아공간 안에 집어넣고 바로 공간 도약으로 그랑 블루 빌딩이 있는 뒷산을 넘었다. 그러자 어림잡아 3만 평이 넘는 거대한 공장이 눈에 들어왔는데 폭이 100m에 길이가 400m가 넘는 슬레이트 건물이 7채나 서 있었고 그보다 조금 더 작은 창고가 무수하게 지어져 있는 게 보였다.

이게 부산물 처리장이라고…? 처리장이라는 단어로 표시하기에는 너무 시설이 거대한데…. 부산물 처리 공장이라고 해야겠구만.

건물 안의 설비도 전부 자동화가 다 갖춰진 데다 깔끔하고 공장 내부도 환하게 밝혀놓고 일하고 있는 게 작업 환경이 좋아 보인다.

그런데 설날인 데다 오후 5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부산물 운반용 대형 트레일러가 들락거리고 사람들도 공장 안에서 일하고 있는 게 공간 지각으로 느껴진다.

설마 우리 레이드 팀이 악덕 기업이었던가 하고 침을 꿀꺽 삼켰…는 데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전부 밝은 걸 보면 억지로 일을 시키는 건 아닌 거 같지?

누나가 연락을 했다고 해서 어디로 가야 하나 둘러보는데 경비들이 지키고 있는 정문에 멋진 정장을 차려입은 40대 남자가 서성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척 봐도 경비실에서 일하는 사람으로는 안 보여서 그의 앞에 뛰어내렸더니 경비들과 정장의 남자가 움찔하면서 후다닥 뒤로 물러선다. 그러다 내 얼굴을 보더니 바로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세곡동 부산물 처리 공단의 책임자인 한윤수입니다!”

“안녕하세요. 급해서 그러는데 바로 창고로 안내해주실래요?”

“이쪽입니다!”

바짝 굳은 그가 안내해준 곳은 가로세로가 50m x 50m에 높이가 20m의 창고였는데…. 내 아공간 안에 있는 사체의 반도 안 들어가겠다.

“좁네요. 이만한 공간이 4개는 있어야겠는데요.”

말하면서 상위와 고위 이형종의 시체를 죄다 꺼내서 창고를 순식간에 채웠더니 한윤수의 안경이 미끄러져 콧등에 걸쳐진다. 어버버거리는 그는 황급히 다른 창고를 안내해줬고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네 곳의 창고에 이형종의 시체를 모두 채워놓으니 타이밍도 좋게 누나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다 채웠어?]

“응. 이형종 중에 블랙 톡신 엘리게이터도 있고 독이 있는 것들도 많으니까 정리할 때 조심하라고 해.”

[어디 어디에 있는데?]

“…네 곳 전부다?”

[어휴… 바보야. 독이 있는 건 따로 모아두든가 해야지 그걸 다 섞어놨어?]

짜증이라기보단 흐뭇함이 섞인 얼굴로 핀잔을 주는 누날 보니 과연 창고 4개 분량의 고위 이형종 시체를 챙겨온 보람이 있는 거 같다. 뒷머릴 긁적거리면서 담부터는 분류해놓겠다고 말해주니 까르르 웃으면서 뒷일은 자기한테 맡겨두라며 C컵에 가까운 가슴을 통통 두드렸다.

[그리고 프랑이 지낼 텐트는 1시간 뒤면 만들어진대. 가서 한번 봐.]

“오, 빠르네? 고마워.”

[됐어. 이번에는 얼마나 걸릴 거 같아?]

“잘 몰라. 그리고 가능하면 미호를 프랑한테 붙여놔줬으면 하는데 괜찮을까?”

[곁에서 지켜줄 가드 말이지? 미호라면 잘 해줄 테니 저녁 먹이고 바로 보낼게.]

“응.”

길게 말 안 해도 제깍제깍 알아들으니 대화하기가 편하다.

마지막으로 영은이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누나랑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안색이 확 밝아졌다가 위상 세계에 있었던 일을 전해주니 안색이 확 굳어진다. 변화무쌍한 그녀의 예쁜 얼굴이 재미있어 구경하고 있으니 영은이가 얼굴을 붉히며 좀 아쉽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바로 들어간다구?]

“응. 중세 시대의 뮈르딘을 만나러 갈 거야.”

[봉인을 해제하는 방법을 물으러 가는 거구나….]

뭔가 말을 할까 말까 미간을 찡그리는 거 같아 화면에 얼굴을 조금 가까이하며 말했다.

“왜? 하고 싶은 말 있어?”

[아니야~ 요즘 저쪽 세계에 이상한 소문이 들리는 거 같아서… 알아보고 있는데 확실치가 않아. 좀 더 알아보고 있을 테니까 다녀오렴. 다녀오면 이야기해줄게.]

내 이야기에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린 영은이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소문이라니, 무슨 이야긴지 궁금했지만 이야기해주지 않는 걸 보면 아직은 루머에 가까운 정보일 거다. 확실해지면 재촉하지 않아도 말해줄 테니 궁금증은 일단 접어둬야겠다.

“알았어. 그런데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아까 집에 갔더니 없던데?”

[명절이라 고위 관료들이 모인 오찬에 만찬이 있어서 일하러 나왔지~.]

“알았어. 그럼 다녀올게.”

[잘 다녀와~.]

“영은이도 일 열심히 해.”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영은이와 통화를 끝내고 프랑이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공간의 벽을 펼쳐 뛰어올랐다.

집으로 돌아왔더니 과연 누나 말대로 1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프랑의 몸 크기에 맞는 티피가 넓은 공터 한가운데에 지어지고 있었다. 옛날 인디언들 집처럼 생긴 티피는 거의… 그냥 삼각뿔 텐트랑 똑같이 생겼네.

「준비는 다 끝나신 거에요?」

근처에서 텐트를 짓는 데 도움을 주던 프랑한테 다가가니 날 보며 빙긋 웃음을 짓는다.

“응. 금방 다녀올 테니 몸조심하고 있어. 미호 불러놨으니까 누가 시비 걸거나 공격해오면 가만두지 말고 둘이서 때려눕히고.”

「그럴게요.」

안주머니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채 티피를 구경하는 암흑이의 머리를 눌러 들어가게 했다.

거의 다 지어진 티피를 보다가 공간의 벽을 프랑의 입술 근처에 만들고 폴짝 뛰어올라 프랑의 입술에 살짝 키스해주며 말했다.

“빨리 다녀올게.”

얼굴이 발그래해진 프랑도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뮈르딘에게 안부 인사도 전해주시구요.」

“응.”

============================ 작품 후기 ============================

다음 이 시간에!

제 이야기를 보러 와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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