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5 사비 종족 =========================================================================
눈밭을 헤치며 나아가던 알케마는 얼마 안 가 뒤를 돌아보더니 나와 프랑이 사라졌다는 걸 알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알케마의 바로 뒤를 따르던 고위 아종, 블랙 톡신 엘리게이터가 "크샤악!"하고 울자 화들짝 놀라면서 딜라이크를 재촉해 눈밭을 헤치며 나아간다.
벨티칼 산 주변에서 잡은 세 마리의 블랙 톡신 엘리게이터 중 두 마리는 13m에 비늘의 틈이나 관절에서 노란 액체를 흘리던 고위 이형종이었는데 저 녀석만 유일하게 상위 이형종이었다.
몸길이도 훨씬 작은 6m에 조금 연한 노란 액체를 흘리던 녀석은 운 좋게도 상위 이형종이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녀석을 고위 아종으로 진화시키자 키는 그대로였지만 새까만 비늘이 각이 지면서 솟아올라 갑옷처럼 변하더니 그 틈마다 코를 따갑게 만드는 짙은 녹색 액체를 흘렸다.
고위 아종으로 만들고 나서 정신 조작을 걸어두긴 했지만, 그 뒤에는 그냥 내버려뒀더니 어느새 35마리의 부두목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두목은 누구냐고? 당연히 프랑이지.
아무튼, 블랙 톡신 엘리게이터는 우리가 사라진 뒤로 알케마가 속도를 늦출 때마다 뒤에서 "캬악!", "크쉬이익!" 하고 위협하면서 얼른얼른 가라고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알케마는 뒤따라오는 흉악한 녀석에게 반항도 못한 채 울상을 지으며 딜라이크를 달래고 재촉하면서 서른여섯 마리의 고위 아종을 이끌고 나아갔다.
그렇게 블랙 톡신 엘리게이터가 알케마를 혹독하게 다루는 걸 프랑의 허벅지 위에 누워 공간지각으로 구경하고 있는데 산 정상 쪽을 지켜보던 프랑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날 내려다보며 물었다.
「백청을 처분한 뒤에 저 이형종 들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정해두신 게 있으세요?」
“아직… 저것들은 나한테는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지만 말 그대로 짐승 같은 놈들이잖아. 데리고 나갔다가 짐승 특유의 본성이 드러날까 봐 불안해. 무리의 제일 앞에 있는 검은 악어 놈은 피부에서 맹독을 질질 흘려대니 더 위험하고. 안되면 뭐…”
죽여버려야지 별수 있나.
“그나저나 저 속도라면 얼마 안 가서 여기까지 올라오겠네.”
「네. 서하와 제가 없어서 저 흰 도마뱀의 이동이 느려지진 않을까 했는데 검은 악어가 잘해주고 있네요.」
우리가 뒤를 따라갈 때보다 더 무서워하면서 훨씬 빠르게 이동하니 역시 몰아붙일 때는 당근보다 채찍이 더 나은 거 같다. 그렇다고 내가 당근을 준 적은 없지만.
만년설 지역을 벗어났더니 발아래 구름바다가 펼쳐지며 마치 하늘 섬에 다시 올라온 기분이 들었다.
산등성이는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은 황갈색의 황량한 바위산이었지만 때때로 바위틈에서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곳이 있어 길을 따라 이동하다가 물길이 보이면 알케마등이 물로 목을 축이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듬성듬성 쌓여있던 눈이 완전히 사라졌을 무렵에는 내 공간 지각 범위 안에 기묘하게 생긴 이형종 들이 잔뜩 들어와 있었다. 최소가 중상위급에 보통이 상위급이고 가끔 고위급도 보인다.
형태는 뭐라고 해야 하나… 피부가 없는 살덩어리를 구더기처럼 길게 덕지덕지 기워놓은 것 같은 형태에 몸통의 1/3쯤 되는 위치에 뼈와 촉수와 피막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달려있고 몸통의 좌우에 나무 꼬챙이 같은 팔이 2쌍씩 붙어있는 무진장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었다.
아무리 징그럽고 흉측한 모습이라도 무덤덤하던 프랑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으니 할 말 다했지.
눈도 코도 없고 주둥이는 칠성장어처럼 빨판에 뾰족한 가시가 무수하게 나 있어서 저기에 물렸다간 체액이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빨려 나갈 거 같다.
중상위는 몸통이 선홍색이고 상위는 갈색. 여기까지는 봐줄 만 했는데 고위는 흑갈색에 살덩어리가 말라비틀어진 고목처럼 생겨 본능적인 혐오감이 일어날 만큼 기분 더럽게 생긴 놈들이다.
전체적으로 4m에서 7m 정도의 길이를 가진 놈들은 바위 틈에 진짜 구더기처럼 들끓고 있었는데 알케마들이 험한 지형을 따라 올라가며 만들어내는 소음에 하나둘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소음이 아니라 진동에 깨어나는 건가?
“끼이기에에섹….”
희미한 괴성이 들려온다 싶더니 바위틈 곳곳에서 족히 200마리는 될법한 구더기들이 악마나 가질법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다. 그놈들은 멀리서 나와 프랑을 주시하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방향을 틀어 땅을 기어 다니는 알케마들을 향해 화살처럼 쏘아져 내려 갔다.
뇌도 거의 없을 거처럼 생긴 놈들이 프랑에게 가까이 다가왔다간 박살 난다는 걸 본능적으로 인식한듯하다.
다가오면 가만 안 두겠다는 듯이 살기를 뿌리면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데 구더기가 아니더라도 공포를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다가올 생각을 안 하겠지.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약한 알케마들을 노린 거라 생각된다.
=바람 칼!=
가장 앞서 몸을 날린 5m 길이의 날개 구더기가 주둥이를 자기 몸 둘레보다 족히 2배 가까이 벌리며 알케마와 딜라이크를 한 번에 삼키려 했지만, 섬광처럼 날아온 녹색 바람에 날개가 잘려나가며 추락했다.
붉은 피를 뿌리며 바윗덩어리에 온몸이 처박힌 녀석은 살점이 터지고 박살 난 채 꿈틀거리는 역겨운 장면을 연출하다 달려온 고위 아종 들 순식간에 잡아먹혀 버렸다.
“…웩.”
고위 아종이 돼서 색이 선명해진 루뱅의 주둥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뭉개진 살점을 보고 있으니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200마리의 날개 구더기와 37마리의 이형종 간에 전투가 벌어지며 날개 구더기들이 사나운 괴성을 지르며 줄줄이 강하해간다.
꺄아아아악!!
쿠샤아악!
그 공격에 고위 아종들은 독침 毒針과 독액毒液들을 총알처럼 쏘아내며 날개 구더기들을 공격했다.
독에 맞은 날개 구더기들은 제대로 날갯짓도 못하고 경련을 일으키며 추락하더니 원거리 공격이 없는 고위 아종들에게 산채로 잡아먹혔다.
날개 달린 구더기들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지 다시 산 위로 날아가 버리더니, 이번에는 나무작대기 같은 팔에 수 미터짜리 바윗덩어리를 날라와서 고위 아종들에게 투하해나갔다.
미호라면 저 공격들에 어떻게 반응했으려나?
양서류들은 혓바닥을 날려 바윗덩어리의 진로를 바꾸고 악어, 도마뱀, 뱀 같은 파충류는 빠르게 바윗덩어리를 피하면서 구더기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아날리거나 반짝이는 비늘을 쏘아내거나 하면서 돌덩어리의 낙하 방향을 바꿔나갔다.
그러다 바윗덩어리를 피하지 못한 놈들은 쿠웩! 하고 비명을 지르며 바윗덩어리들과 함께 튕겨 나가버리더니 다시 빠르게 기어 올라와 전투에 가담했다. 수백 미터 높이에서 떨어진 바위에 맞으면 고위 아종이라 해도 멀쩡할 순 없는지 바위에 맞은 부분의 비늘이나 껍질이 부서지고 금이 가서 뻘건 속살과 함께 피를 줄줄 흘렸다.
그렇게 난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알케마의 활약이 확연히 두드러졌는데, 무거운 바윗덩어리를 들고 날아오느라 느려진 놈들은 알케마의 녹색 바람 칼날에 단순한 과녁이 되어버렸다.
날개나 몸통이 베어져 추락하고 바윗덩어리를 던지느라 잠시 멈춘 놈들도 과녁판이 되어 바람의 칼날에 몸이 갈라졌다.
느린 연사를 정확도로 충당하려는 건지 5초마다 한발씩 날아가는 칼날은 일격에 숨통을 끊기에는 매우 부족한 위력이었지만 날지 못하게 만들거나 고통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져 떨어지게 하기에는 충분했고 그걸 목표로 한 듯 알케마는 당황하지 않고 한마리씩 한마리씩 차곡차곡 하늘에서 떨어트려 나갔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날개 구더기들은 허겁지겁 날아왔던 곳으로 도망갔는데 습격해온 200마리 중 살아서 멀쩡히 되돌아간 구더기는 20마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캬오오~!!
키시시시식!!
승리의 포효를 내지르며 사방에 퍼져있는 살점이 진수성찬이라는 듯이 고위 아종들이 포식하는 사이 알케마도 분주히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뭘 하는 건가 싶어 살펴보니 여기저기 떨어진 위상 석을 줍고 있었다. 날개 구더기의 몸통 안에 있는 위상석은 바람으로 살을 갈라 꺼내기까지 한다.
쿠쉭!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선명한 붉은색에 검은 점이 온몸에 박혀있는 뱀 한 마리가 자기 옆으로 다가온 알케마에게 노란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쇳소리를 냈더니 알케마는 흠칫 놀라면서 하늘에 떠 있는 우릴 가리키며 외쳤다.
=이, 이건 당신들의 주인에게 바칠 겁니다!=
…쉬익.
샛노란 눈으로 알케마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검은 점박이 붉은 뱀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제 몸만 한 날개 달린 구더기를 꿀떡꿀떡 삼켜간다.
열심히 살점을 주워 먹던 녀석들도 머뭇거리다가 알케마에게 다가가더니 주둥이에서 위상석을 툭툭 뱉어냈다. 슬쩍 삼키려다가 알케마의 이야기에 찔끔한듯했다.
끼이이이이에에엑…….
만찬을 벌이던 녀석들을 구경하고 있었더니 2차전이 벌어질 분위기가 느껴진다.
살아서 되돌아간 날개 구더기들이 이번에는 엄마·아빠 누나 형, 동생을 모두 끌고 오는지 아까의 3배는 될법한 숫자가 몰려오며 계속 듣고 있으면 신경쇠약에 걸릴 것 같은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듣기 싫은 소리네요.」
“어, 나도 좀 거슬린다.”
칠판에 손톱을 세워 긁는 것처럼 신경 거슬리는 소리에 진저리를 치고 있으니 알케마들도 긴장하고 전투태세에 들어가지만… 생긴 것도 더럽게 생긴 놈들이 짜증 나는 소리까지 내뱉고 있으니 이건 진짜 못 참겠다.
손에서 마나 탄 Mk 1을 잔뜩 생성해서 날아오는 놈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날렸다. 속도는 알케마가 쏘는 바람보다 2배는 빠르고 무언가에 닿자마자 터져나가도록 설정해둔 마나 탄은 600마리의 날개 달린 구더기들을 순식간에 육편으로 만들어버렸다.
끼헥?! 께헤헥!
꺄오후, 꺄훅꺄훅!
그 와중에도 운 좋게 살아남은 몇 마리가 허둥거리며 도망가려 하길래 또 다른 놈들을 몰고 올까 봐 호박색 공간의 벽으로 날개와 대가리 부분을 지워버리니 뻘건 피를 흩뿌리며 바위산에 추락해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렸다.
한 두 번 숨을 쉴 사이에 600마리에 가까운 날개 달린 구더기들을 전멸시켜버린 내 모습에 알케마들이 넋을 잃고 날 바라보다가 블랙 톡신 엘리게이터가 정신 차리라는 듯이 포효를 지르니 다른 놈들도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앞장서는 알케마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두 번의 습격 뒤에도 날개 달린 구더기들은 20분 간격으로 나타나 알케마들을 습격하러 날아왔는데, 끊일 새 없는 날개 구더기의 비명소리에 짜증이 폭발해서 공간 지각으로 놈들이 숨어있는 곳을 찾아내 마나 탄을 미친 듯이 날려 산등성이의 형태가 바뀔 정도로 패악질을 부렸더니 일제히 날아올라 산 반대편으로 도망가버렸다.
께후? 꺄우 끄게!
“…….”
도망가면서 한 마리가 대가리를 돌려날 향해 괴성을 지르는 모습이 꼭…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느낌을 받아 빡 돌아버릴 것만 같은 분노를 느꼈다.
저런 단세포같은 무척추동물에게 놀림받았다는 생각에 이빨을 갈면서 쫓아가 죄다 죽여버리려 하는데 프랑의 커다란 손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날 잡더니 가슴골로 인도했다.
「진정하세요. 너무 흥분하셨어요. 자아, 천천히 심호흡 하시구….」
“…훅. 후우.”
비길 데 없이 황홀한 살결에 얼굴을 묻고 분노를 다스리며 주변 상황을 살피니 알케마는 딜라이크를 움직여 적동색 바위 사이를 뛰어다니며 떨어진 위상석을 줍있었고 고위 아종들도 내 패악질에 겁먹은 모습으로 이쪽을 힐끔거리며 날개 달린 거머리들의 육편 조각을 날름거리면서 집어삼켜 나갔다.
내 모습에 겁을 먹고서도 배를 채우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자 어이없는 기분이 차오르며 분노는 뒷전으로 넘어가 버렸다. 얼마나 배고팠으면 저럴까 하고 생각하니 웃음이 피식하고 튀어나와 버린다.
식탐 많은 새끼 고양이들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겠지.
녀석들이 잔뜩 배를 채우고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하니 부두목급인 블랙 톡신 엘리게이터가 카쉬쉭!! 하고 소리쳐 배를 깔고 엎드린 녀석들이나 주변을 돌아다니는 놈들을 한데 모으고 위상석을 모두 모은 알케마한테 출발하라고 으르렁거렸다
=추, 출발할 거에요.=
크슈!
저놈, 꽤나 똘똘하다. 지성이 낮은 이형종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저 녀석 꽤 똑똑하네.”
「검은 악어 말씀이죠?」
배불러서 움직이기 싫은지 무지개색 카멜레온은 배를 깔고 블랙 톡신 엘리게이터를 보며 카우, 카우우거리면서 반항한다.
저 상황에 블랙 톡신 엘리게이터가 어떤 대응을 할까 궁금해서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있는데, 블랙 톡신 엘리게이터는 아무 소리도 내지않고 천천히 카멜레온에게 다가갔다.
무지개색 카멜레온은 자길 노려보며 천천히 접근하는 독 칠갑한 녀석이 거북스러운지 찜찜한 표정을 짓다가 블랙 톡신 엘리게이터가 갑자기 달려들려는 자세를 취하자 깜짝 놀라면서 후다닥 물러난다.
그리고 기 싸움에 져서 그런지 카멜레온은 불만을 감추며 슬그머니 일어나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다른 녀석들도 블랙 톡신 엘리게이터를 힐끔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블랙 톡신 엘리게이터는 그게 만족스러운지 몸을 돌려 대열의 후미로 되돌아간다.
녀석의 비늘 위를 흐르는 녹색 액체 때문인지 블랙 톡신 엘리게이터가 걸어간 자리는 다른 이형종 들도 밟지 않았고 녀석의 주변은 마치 역장力場이 펼쳐진 것처럼 접근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보며 대답했다.
“응. 시키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을 찾는 게 꽤 쓸만해 보여.”
구더기들의 습격 때는 주둥이 안의 구멍에서 독액을 쏘아내 10발 중 7발을 맞추는 명중률을 보여줬고 어지간한 충격은 무시하는지 자기 몸통만 한 바윗덩어리에 적중당해도 끄덕하지 않는 터프함도 보여줬었다.
전투가 끝나면 상황파악부터 먼저 하고 죽거나 다친 놈들이 없는지 점검한 뒤에 날개 달린 구더기의 사체를 뜯어먹었고 먹으면서도 주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알케마를 독촉하는 것도 자기 행동에 흥미를 보인 다른 고위 아종이 알케마의 뒤에서 재촉하기 시작하니 자신은 대열의 가장 후미에 서서 동료를 지키기 위한 우두머리의 행동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볼수록 괜찮은 놈이라는 생각이 드는 중이었지.
「확실히 동료애나 무리의 리더로써 자각이 있어요.」
“저 녀석의 비늘 사이에서 흐르는 독만 아니면 데려가서 곧 완성될 저택의 경비견… 경비악鰐으로 써도 좋을 텐데.”
「그건 무리겠죠.」
좀 아쉽다.
벨티칼 산을 오른 지 14시간이 지나 해가 떨어지니 알케마도 그렇고 고위 아종들의 움직임도 현저하게 느려졌다. 왼쪽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오른쪽도 절벽이나 다름없을 만큼 경사가 진 데다 길이라고 해도 바위와 바위 사이를 뛰어넘어야 하는 구간이 많아. 자칫 발을 헛디뎠다간 수십 킬로미터 아래로 떨어질 판이다.
길의 폭은 3m 정도로 인간에게 좁은 편은 아니지만 지금 고위 아종 중에는 3m에 가까운 녀석들이 많거든.
많은 수의 이형종 들이 야간 투시 능력, 인프라비전infravision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능력이 있어도 이런 험한 돌산을 평지처럼 다니긴 힘든 거 같다.
그것도 고위 아종들에나 통하는 이야기였는지, 딜라이크나 알케마는 인프라비전의 상위 능력인 울트라비전Ultravision이라도 갖고 있는 것인지 낮이나 밤이나 움직임이 별반 차이가 안 났다.
낮에는 고위 아종들의 재촉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동하더니 지금은 여유를 가지고 고위 아종들이 뒤쫓아오길 기다리는… 아!
촤르르륵.
키에에에…….
빨간 몸통에 검은색 점박이 뱀이 결국 몸이 미끄러져 70도에 가까운 경사로 굴러떨어지더니 순식간에 공간 지각 범위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10m가 넘어가는 거대한 뱀이 어둠에 삼켜지는 모습에 다른 놈들도 겁을 먹었는지 움직임이 더욱 조심스러워지며 속도가 더 느려졌다.
그냥 버리고 가자니 뭔가 꺼림칙하고 데려가자니 귀찮고… 나중에 죽일 땐 죽이더라도 일단 지금은 책임져야 할 거 같아 하는 수 없이 날이 밝을 때까지 쉬기로 하고 대열의 앞에 뛰어내려 멈춰 세웠다.
=서하님?!=
저렇게 부르니 사비 종족 이름 같네. 내가 앞에 나타난 걸 눈치챘는지 블랙 톡신 엘리게이터가 후열에서 뒷다리로만 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게 보인다.
“여기서 쉬다가 날이 밝으면 다시 이동해.”
=네, 넵!=
떨어진 놈을 찾으러 놈이 추락하며 만들어둔 흔적을 따라 산 아래로 몸을 날렸더니 점박이 뱀은 어지간히 재수가 없었는지 뾰족뾰족한 바위 위에 꼬치가 꿰이듯 꿰였다가 같이 떨어져 내린 수 미터에서 십수 미터짜리 바위에 머리통이 터져 죽어있었다.
아, 이놈 신체 강화 타입이 아니었지. 수속성 타입이었던가.
달이 구름에 가려져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점박이 뱀의 사체에서 뿌옇게 뿜어져 나오는 시퍼런 위상력이 눈앞에서 아지랑이 친다.
이건 언제봐도… 목숨을 잃은 이형종이나 능력자들을 애도하는 슬픔의 물결 같다.
괜한 감상적인 기분은 털어버린 뒤에 녀석의 시체를 아공간 안에 집어넣으려다가 그냥 꼬리 쪽을 움켜쥐고 아종 놈들이 쉬고 있는 곳으로 뛰어올랐다. 내 능력으로 진화한 녀석의 시체를 들고 나갔다가 어떤 놈들이 연구라도 하면 귀찮은 일이 생길 질지도 모르니까 차라리 저놈들한테 먹이로 집어 던져야지.
머리통과 몸통이 군데군데 터진 놈을 고위 아종들 사이에 집어 던졌더니 녀석들은 코를 갖다 대며 킁킁거리다가 천천히 뜯어먹기 시작했다.
블랙 톡신 엘리게이터는 다른 놈들이 모두 점박이 뱀의 사체를 뜯어먹는 와중에도 점점 사라져 가는 점박이 뱀을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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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