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380화 (380/517)

00380  서쪽 산.  =========================================================================

도마뱀 인간들에게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해놓고 프랑과 함께 벨티칼 산이 안 보이는 언덕의 비탈길로 자리를 옮겼다.

아구름과 게쿡에게서 들은 정보를 종합한 뒤에 프랑과 함께 확인 작업을 하고 벨티칼 산 반대편의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프랑이 날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어찌하실 셈이신가요?」

“결론은 하나뿐이잖아. 백청을 그대로 두면 완전히 회복하는 순간 날 죽이려고 찾아다닐 거야. 그놈이… 그년이랬나? 하여튼 그년이 나한테 원한을 품었다는 건 용왕도 확인해준 이야기니까 확실하겠지. 초위급이 먼저 습격해온다고 가정하면… 진짜 답 없어. 그러니 회복하기 전에 가서 죽인다.”

「그러면 저 사비 종족과도 싸우게 될 텐데… 서하의 능력이라면 사비 일족을 절멸시키는 데 모자람이 없겠지만 자신을 섬기는 종족이 죽어 나가는데 용왕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는 게 걱정이에요.」

“……그게 문제야.”

머리가 복잡해지는 기분이라 뒷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아구름의 이야기로는 사비 종족은 약 90,000마리로, 도마뱀이나 뱀이나 카멜레온 같은 뱀 목(Squamata)의 파충류로 이루어진 종족이며 모두가 벨티칼 산에 모여 산다고 했다.

사회는 5단계로 이루어진 계급사회로 굴러간다. 그중 가장 윗줄인 1계층의 사제 계급은 열두 마리가 존재하며 종족의 중요 사안은 아훔렉과 칼카쿰이 주도하는 사제 계층의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그런 열 두 마리의 사제가 9만의 사비를 이끌고 있다는 이야기다.

2계층은 전투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전사 계급으로 약 3,000개체가 있고 3계층으로는 제작 활동과 관련된 직공이 8000, 가축을 기르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생산 계급이 4계층으로 12000.

나머지 약 70,000마리는 각 계층에 필요한 노동력을 보충해주고 전투 시에 숫자의 무력을 담당하는 노동 계급이라고 했다.

가진 지성과 지능으로 계급을 나눈다고 하는데 지성이 없는 불가촉천민, 그냥 짐승 같은 것들은 숫자를 세지 않아 모르겠단다. 지금도 벨티칼 산 안쪽을 파내면서 도시를 확장하고 있다나?

하나의 종족이 9만 마리나 된다는 말에 나도 프랑도 좀 놀랬지만 크게 신경은 쓰이지 않아 계속해서 물었었다.

게쿡과 아구름은 전사 계급이고 세 마리의 상위급이 노동 계급으로 그들을 이끌고 사냥을 나왔다고 했었다. 놀란 점은 아구름이 암컷이고 게쿡이 수컷에 둘이 결혼한 사이라더라… 다른 파벌이랑 결혼했다는 점에서 꽤 놀랐었지.

보통 상대 파벌과는 원수지간이나 다를 바가 없을 텐데 저 둘이 결혼을 한 걸 보면 파벌이라기보다 그냥 하나의 집단의 의견 차이로 봐야 하냐?

어쨌든 아구름도, 게쿡도 위상석이 없는 고위 이형종이다. 사비 종족의 무력적인 면을 담당하는 전사 계급에 위상석도 생성되지 않은 고위 이형종이 포함되어있다면 나머지는 뭐 안 봐도 대충 등급이 짐작이 간다.

그런데 프랑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저으면서 내 생각의 헛점을 지적했다.

「서하? 서하에게 고위 이형종은 위협이 되지 않는 등급이라 하더라도 고위 이형종의 숫자가 3천이에요. 그중에 특이점이 있을지 어떻게 알아요?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얕보는 건 금지에요.」

“아… 또 방심할뻔했네. 프랑 말이 맞아.”

그래도 숫자가 좀 많긴 해도 사비 종족을 쓸어버리려 한다면 어려울 건 없는 거 같은데. 쓸 수단도 많고 사비 일족을 절멸시킬 자신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놈들이 섬기는 대상에 있다.

혹시 내가 너희 종족을 다 쓸어버리면 용왕이 개입해올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아구름은 눈동자를 크게 뜨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사비 종족이 위험에 처하면 그분께서 나타나 사비 종족을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라고 입을 열었다.

떨리는 눈동자를 보고 슬쩍 마나 비전과 마나 보이스를 켜서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두 번 다시 용왕의 가호를 못 받게 해주겠다고 협박을 했더니 아구름은 물론이고 다른 놈들도 넙죽 엎드리더니 절대 거짓말이 아니라고, 부디 용서해달라며 두 손을 싹싹 빌더라.

그러니 사비 종족을 싹 쓸어버리는 건 여러 가지로 곤란하다.

「전승은 전승일 뿐이지만 위상 세계와 이형종의 세계관은 사람의 섯부른 판단은 금물이니까요.」

사비 종족을 쓸어버릴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그중 몇 개만 고르라면 벨티칼 산 주변의 이형종을 사로잡은 뒤에 최고위 아종으로 진화시켜서 사비 종족의 도시인 헤뷜트에 투하하는 방식도 있다. 지성이 없는 평범한 이형종을 강제로 진화시키면 대부분 미쳐 날뛰니 도시에 몇 마리 떨어트려 주면 순식간에 싸움이 날거다.

아니면 하늘에서 마나 포 Mk 1을 최대 범위로 마구마구 집어 던져도 된다. 마포보다 범위가 좁고 마나 포 MK2보다 분해력이 약하다지만 고위급 이하가 버틸 위력이 아니니까 폭발에 휩쓸리는 것들은 대부분 소멸할 거다. 다르게라면 호박색 공간의 벽으로 벨티칼 산을 내부에서부터 무너트리는 방법을 써도 된다.

지금처럼 사비 종족을 보이는 족족 납치해서 정신 조작을 걸어놓은 뒤에 들여보내서 사제나 전사 계급을 암살하거나 파괴 공작을 지시해서 혼란을 일으키는 방식을 써도 된다. 그 틈에 나랑 프랑이 벨티칼 산의 정상에 잠입해서 백청의 목을 따버리는거지.

하지만… 이 방법들은 사비 종족은 물론이고 벨티칼 산도 날려버릴 테니 전승대로라면 용왕이 개입할 확률이 100%일 거다. 자기 영역에서 깽판 치는 놈이 있다면 나라도 빡쳐서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

그나마 마지막에 정신 조작으로 암살을 시도해 혼란을 일으키는 게 피해가 덜 나는 거지만….

어떻게 해야 용왕이 등장할 가능성을 낮출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고 있으니 프랑이 다른 방법을 꺼내 들었다.

「…용왕의 개입 여부가 가장 중요하니 일단은 저들, 아구름과 게쿡을 이용해서 사비 종족의 내부 정보부터 수집하는 게 어떨까요? 몰살이라는 수단은 마지막으로 미뤄두고 다른 수단이 없는지 찾아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어쩌면 사비 종족이 서하에게 우호적으로 나올 방법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요.」

“에이. 저놈들은 이형종이고 난 사람이라구. 내가 같은 파충류도 아니고 정신 조작을 당하지도 않은 녀석들이 나한테 호감을 보일 리가 없잖아.”

하지만 프랑은 조금 조심스러운 표정이 되더니 날 바라보며 말할까 말까 고민 중인 모습을 보였다.

“…아, 내 심장에 있는 위상석 때문에 호감을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건 아냐. 우호적으로 나온다고 해도 내 목적은 백청을 죽이는 건데 두 파벌이 자기네 주인의 사도를 죽이는데 협조하진 않을 거잖아. 특히 아훔렉이라는 놈은 내 목적을 알게 되면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 거 같단 생각이 들어.”

「하긴… 친해…진다 해도 문제네요. 일이 잘 풀려서 아훔렉이 백청을 대신해 서하를 영웅으로 옹립하면 백청을 처단할 명분이 생기긴 하지만 칼카쿰이 그렇게 두진 않을 거 같기도 하고… 같은 종족이 아니니까… 하지만 아구름과 게쿡이 결혼한 걸 보면 정당 간 싸움 같은 게 아니라…」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겨 중얼거리는 프랑을 보다가 나도 나 나름대로 진행할 방식을 찾아봤다.

“일단 프랑 말대로 정보부터 수집해봐야겠다. 백청의 부상이 금방 회복이 되는 건 아니라고 하니 어느 정도 시간은 있겠지.”

「네.」

도마뱀 인간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니 녀석들은 양아치처럼 앉아 꼬리를 느릿느릿 휘젓고 있었다. 눈을 꿈뻑거리다가 내가 다가오는 걸 발견한 녀석들은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나 날 바라본다.

녀석들을 붙잡고 계급 간 이형종의 등급 차이를 물었다.

처음에는 등급이 뭔가 이해를 못 해 갈팡질팡하던 녀석들 앞에 몇 마리의 이형종을 잡아와 등급을 알려주니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노동 계급은 상위급입니다. 직인과 생산 계급은 고위급과 상위급이 섞여 있으며 사제들은 최고위급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아훔렉과 칼카쿰은 사제들보다 더 강하니 초위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초위가 두 마리…

「그 둘의 능력이 어떤 건지 알아?」

-아훔렉은 물과 바람을 다스리며 칼카쿰은 물과 대지를 다스립니다. 신체는 전사 타입을 뛰어넘습니다.-

초위급은 A 클래스니까 아훔렉과 칼카쿰은 신체 강화 타입과 속성 타입을 같이 지니고 있는 건가. 거기다 두 가지 속성을 사용한다니, 만약 싸우게 된다면 주의해야겠다.

「사제 계급부터 전사계급이 전부 속성 타입에, 회복 타입이나 신체 강화 타입이 없는 게 굉장히 불균형하네요.」

“원시 부족 같은 계급구조니까 용왕과 관련된 속성을 우대받는 거겠지. 우리 세계의 옛 부족들도 지도자들은 뭐 주술이라던가 그런 미신을 받드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잖아.”

어느새 해가 뜨려 하고 있어서 아구름들에게 언제까지 돌아가야 하냐고 물었더니 지금 당장 되돌아가고 싶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내가 원한다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길래 우선은 돌아가서 백청과 관련된 소문을 너희 종족들에게 의심을 받지 않게끔 모아서 다음 사냥 때 나와서 알려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녀석들에게 아공간에 넣어둔 고위 이형종의 사체를 꺼내서 평상시 사냥했던 만큼을 가져가라고 했더니 녀석들은 쉭쉭거리면서 흥분한 듯이 혀를 낼름거리고 꼬리로 땅을 퉁퉁 내려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 그건 안돼. 이건 나도 필요한 거라서.”

머뭇거리지 않고 블랙 톡신 엘리게이터에 달려들려 하는 게쿡을 멈춰 세우고 13m짜리 악어를 아공간 안으로 집어넣었더니 게쿡의 표정이 실망으로 물들었지만, 그 뒤에 숨겨져 있던 황금 개구리를 발견하더니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멀리서 다른 이형종을 살펴보던 아구름도 홍채가 눈동자의 2/3을 가릴 정도로 커지더니 황금 개구리로 파다닥달려왔다.

등은 황금색이고 배 밑은 검은색과 초록색이 반복되는 3m짜리 개구리였는데 게쿡과 아구름은 슬금슬금 개구리 뒷다리를 잡아당기면서 내 눈치를 보더니 내가 제지하지 않으니 매끈한 도마뱀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게코게코거리는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د پنځو Leuven. خوندور!”

“چې د غوره وخت هم دی. Leuven، پوهیدلې هم ګډون وکړي.”

노동 계급 도마뱀 인간들도 입가에 침으로 보이는 걸쭉한 액체를 질질 흘리는데 이 이형종이 그렇게나 맛있나 싶었다. 내가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이니 암흑이가 아구름과 게쿡의 이야기를 통역해준다.

-저 개구리를 루뱅이라고 부르는 거 같슴다. 맛있다고 하고 주인님이 루뱅도 잡았다며 대단하다는 뎁쇼?-

…저게 맛있어? 딱 보면 졸라 강한 독이 있어 보여서 먹었다간 죽을 거 같은데?

황금 개구리는 고위 이형종이었는데 날 발견하는 순간 거의 최고위급 신체 능력을 보여주면서 도망가려 했었다.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에는 최고위 이형종보다 더 빨라진 모습에 조금 놀라면서 호박색 공간의 벽으로 머리를 쪼갰는데 확실히 그런 속도라면 사비 종족이 잡기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부분이 제일 맛있지?」

맛있다고 하길래 궁금해서 물었던 거 뿐인데 두 녀석은 프랑이 루뱅을 도로 뺏으려려하는걸로 봤는지 잔뜩 풀이 죽은 모습으로 모두 맛있지만, 심장과 뇌가 제일 맛있다고 했다.

아공간에 루뱅이 2마리 더 있는데 한 마리 정도야 뭐.

그래서 뺏으려는 거 아니라고 하고 가져가도 좋다고 했더니 다시 화색이 돌아오면서 꼬리를 붕붕 휘두르는 게 루뱅이라는 개구리를 어지간히 좋아하나 보다 생각했다.

“독 같은 건 없어?”

-루뱅의 피에 독이 있어 다량 섭취하게 되면 호흡이 가빠지고 근육이 굳어가다 결국 죽게 됩니다. 심장을 먹기 위해서는 10일간 1시간마다 정화수를 갈아주며 심장을 약초와 함께 재워놓으면 피가 모두 빠져나가 식용할 수 있어지지요. 적정량의 피를 머금은 루뱅의 고기를 먹으면 심장이 쫄깃할 정도의 감칠맛을 주기 때문에 다른 부위는 대충 피를 씻고 먹습니다.-

복어냐… 아니, 복어는 그렇게 물에 담궈둔다고 해서 독이 씻겨나가는 일 같은 건 없지만.

마치 복어회 한점에 복어 알을 1, 2개씩 올려서 독의 짜릿함을 즐긴다는 이상한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러다 복어 알을 너무 많이 먹어서 심장마비로 죽고 그런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래서 물어봤더니 역시나 저놈들 사이에서도 루뱅을 잘못 먹고 죽는 것들이 종종 나온다고 대답했다.

미식과 식탐은 종족을 가리지 않는 건가 싶어서 피식거리면서 웃고 있으려니 아구름들은 3일 뒤에 다시 오겠다며 나한테 손을 깍지끼고 고개를 꾸벅꾸벅 숙였다. 아까 구억 거리면서 고개를 숙이던 게 인사하는 거였군.

“나에 관한 건 동족들에게 절대 알리지 말고 의심 사지 않게 조심해서 정보를 수집해. 특히 게쿡, 니가 불안하니까 넌 더 조심하고.”

-아, 알고 있다. 나는 대화에 소질이 없다. 아구름에게 맡긴다.-

-걱정 마십시오. 여리박빙如履薄氷의 마음가짐으로 임하겠습니다.-

아구름들은 루뱅 한 마리와 온통 빨간색에 팔다리에 파란색과 녹색이 점묘화처럼 찍혀있는 이구아나를 짐짝처럼 들고 돌아갔다.

“…여리박빙이 무슨 뜻이야?”

「저, 저도 사자성어는 잘….」

큿. 파충류한테 지성에서 밀렸다는 생각이 드니까 패배감이 밀려든다.

아구름들이 돌아간 뒤로 놀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그래서 돈도 벌 겸 벨티칼 산 주변의 상위 이형종 들을 잡아서 강제로 진화킨 뒤에 블루스톤을 뽑아냈다.

프랑의 손에 잡힌 이형종은 반항할 생각도 못 하고 벌벌 떨기만 해서 TP를 주입하는 건 무척이나 수월했다. 고위 아종으로 진화한 녀석은 그대로 프랑의 손에 찢어졌고 블루 스톤을 줍고 찢어진 사체를 아공간 안에 집어넣으면 프랑은 다시 이형종을 잡아오고.

그렇게 모은 블루 스톤은 팔아도 되고 먹으면 TP를 회복시켜주기도 하니 MP 포션 대용인 셈이지! 이형종 숫자가 줄어들어 사비 종족의 사냥꾼들이 잡을 게 없어지는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내 알 바 아니다.

낮에는 프랑의 움푹 파인 쇄골의 홈에 누워 산책하는 기분으로(그래도 공간 지각으로 주변 경계는 소홀히 하지 않았다.) 블루 스톤을 수거하고 밤에는 사냥을 위해 헤뷜트에서 나오는 사냥꾼들을 찾아다녔다.

아구름을 돌려보낸 다음 날 밤, 사냥을 나오는 사비 종족의 사냥꾼들을 잡아서 정신 조작을 건 뒤에 정보를 캐내려 해봤지만… 대부분 게쿡처럼 언어중추가 발달하지 못한 거 같은 녀석들이 대다수였고 쓸만한 정보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딱히 다른 일에 도움이 될 거 같은 녀석들도 아닌 거 같고 도움이 안 된다고 섣불리 죽였다간 나중에 무슨 아쉬운 일이 생길지 모르니 몇 마리의 사냥감을 선물로 준 뒤에 내가 부르기 전까지 날 만난 적이 없는 것처럼 평소와 같이 생활하라고 명령을 내린 뒤에 보내주었다.

전부 다 합치면 고위 6마리에 상위가 18마리나 되는 숫자였지만 딱히 정신 조작 용량, 그러니까 정신 조작을 걸 수 있는 수치를 많이 차지하는 것도 아니었고, 가슴에 위상석이 생긴 뒤로 정신 조작 용량도 꽤나 늘어나 고위급이라면 수십 마리를 지배할 수 있을 정도에 상위급은 수백 마리를 지배할 수 있을 수치라 그냥 내버려뒀다.

그다음 날 밤에는 여섯 마리의 사비 종족의 사냥꾼을 발견했는데 멀리서 살펴보니 뭔가 하얀 게 희끗거려서 뭔가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 티 없이 새하얀 날개 없는 용처럼 생긴 녀석이 뭔가 하얀 줄기 같은 걸로 몸을 칭칭 감고 있는 희한한 모습이었다.

장신구 같은걸 지닌 사비 종족은 처음 봐서 유심히 살펴보니 몸의 마디마디가 나누어져 있고 마디마다 흰 비늘이 용비늘처럼 삐죽삐죽 솟아있었다. 특히 칠흑처럼 까만 눈동자는 눈처럼 하얀 피부와는 상반되서 무진장 멋있었다. 거들 테일 아르마딜로 리자드라는 종과 비슷한 거 같다.

여섯 마리의 사냥꾼 중 그 하얀 놈 한 마리만 끄트머리에 하얀 보석이 박힌 나무막대기를 손에 쥐고 있었고 나머지 다섯 마리는 창과 검을 양손에 쥐고 있었다. 지금까지 확인해본 결과에 따르면 나무 막대기를 쥔 한 마리가 전사 계급이고 무기를 쥔 녀석들은 노동 계급이겠지.

「장신구 같은 걸 지니고 홀로 다섯 마리의 노동 계급을 끌고 다니는 건… 혹시 저 사비 종족이 사제 계급이 아닐까요?」

“뭔가… 다르긴 해. 지금까지 본 전사 계급은 장신구라고 해봤자 눈 아래나 머리에 빨갛고 하얀 염료를 바른 게 전부였는데 말이야.”

저 하얀 놈은 나무뿌리를 그물처럼 엮어서 몸에 걸치고 있고 팔찌나 발찌도 하고 있고… 거기다 사냥 나오는 놈들은 한 무리당 전사 계급이 둘이나 셋에 노동 계급은 다섯 마리에서 9마리 정도를 끌고 다녔었는데 저 하얀 놈만 혼자에 노동 계급을 다섯이나 데리고 있다.

확실히 뭔가 다르다.

“이번에는 정신 조작을 걸지 않고 놈들의 반응을 봐야겠다. 말을 듣지 않고 날뛰면 그냥 정신 조작을 걸어버리기로 하고.”

「정신 조작이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확인이야. 백청을 조지기 전에 가능한 많은 가짓수의 상황을 겪어보고 싶으니까.”

내가 파둔 거대한 구덩이 속에 몸을 숨긴 채 고개를 끄덕거리는 프랑을 두고 놈들의 머리 위로 공간 도약을 펼치자마자 푸른색 공간의 벽을 만들어 놈들을 단번에 묶어버렸다.

신체 강화 타입인 노동 계급은 팔다리와 꼬리만 가볍게 묶어 움직임을 봉쇄하면 끝이고 속성 타입으로 의심되는 하얀 놈은 머리만 빼고 몸통 전체를 구속해버리니 당장에 찢어지는 비명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키이잇. 키익, 키시식!!

몸통 전체가 묶여버린 하얀 놈이 고개를 버둥거리면서 쇳소리를 내자 나머지 다섯 마리 도마뱀 인간들도 몸을 들썩거리고 머리를 숙여 자기 손을 묶고 있는 푸른색 공간의 벽을 물어뜯으며 구속을 풀려 애를 썼다.

“소용없으니 괜히 힘 빼지 말지?”

내가 그놈들 앞에 나서며 입을 열자 당장에 두 옥타브는 올라간 비명소리가 하얀 놈의 주둥이에서 튀어나왔다.

끼아아악! 꺄아아아!!

“그건 내 뒤에 거인도 풀지 못하는 구속이라고. 그러니까 내 말을….”

내 이야기에 프랑이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그걸 본 흰 놈은 더욱 지랄발광을 해댄다.

꺄오오오옥! 크샤아아악!!

“그러니까 내 말을….”

키아아아! 캬우으오오오!!

“잠깐 내 말 좀….”

으꺄아오오옥!! 캬갹 꺄시시식!! 빼애애액!!

아오… 개돼지도 아니고.

말이 들리지 않는지 하얀 녀석은 비명을 쉴 새 없이 지르는데, 저건 단순한 비명인지 암흑이는 통역을 해주지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도 내 말을 듣지도 않고 비명만 지르는 하얀 녀석이 짜증 나서 그놈의 주둥이를 푸른색 공간의 벽으로 막아버렸더니 눈알이 뽑힐듯 부릅 뜬다.

쿠궥?!

한밤중의 소리는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걸 고려했을 때 저렇게 지랄발광을 계속하게 내버려두면 다른 사냥꾼이 저 비명에서 내 존재를 눈치챈다거나 해서 도시로 되돌아가 나에 대해 알리기라도 하면 귀찮아질 테니까.

다섯 도마뱀 인간은 팔다리를 구속하고 있는 공간의 벽을 물고 대가리를 마구마구 흔들지만 누렇고 하얀 이빨만 까드득 거리면서 갈려 나가지 공간의 벽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그렇게 팔짱을 끼고 기다리며 난동을 부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노동 계급 다섯 마리는 자기 팔다리를 묶고 있는 푸른색 공간의 벽이 범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는지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주둥이가 막힌 하얀 녀석은 날 씹어먹을 듯한 눈빛을 보내는 게, 어지간히 성질이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놈은 몸 안에 200만짜리 위상 석을 가지고 있었는데, 뭐지? 예비 사제급이라도 되나? 그러고 보니 옛날이야기에서 이런 신분이 계급으로 나눠진곳에서는 신분이 높을수록 성질이 지랄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던데, 아까 발광하는 꼬라질 보면 그게 사실인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주변이 조용해진 거 같아서 하얀 녀석한테 말했다.

“난 그냥 대화를 원해. 그렇게 너흴 묶은 건 내가 너희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한 거였을 뿐이지 너희들을 해칠 생각은 없어. 하지만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고 날뛰려 한다면…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걸로 간주하고 내 마음데로 네놈들을 처분하겠어.”

그렇게 말을 하고 뒤에 있는 프랑에게 손짓을 보내니 미리 잡아둔 고위 이형종 한 마리를 들고 와 하얀 놈의 앞에 떨어트렸다.

끄트머리가 녹색으로 물든 뾰족한 가시가 온몸에 삐죽삐죽 돋아나 있는 도마뱀은 프랑의 위상력에 위축당해 주눅이 들어있었는데 하얀 놈은 가시 도마뱀이 자기 앞에 떨어지니 눈알이 빠져나올 정도로 커졌고 다섯 마리의 도마뱀 인간은 잠시 멍하니 프랑과 가시 도마뱀을 지켜보다가 미친 듯이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공간의 벽과 팔을 물어뜯고 다리도 피부가 벗겨지고 살이 패일 정도로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패닉에 빠진 도마뱀 인간들을 보고 있으니 이 가시 도마뱀이 사비 종족이 무서워하는 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간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비 종족 사냥꾼들을 살펴볼 때 다른 건 다 잡아도 지금 눈앞에 있는 가시가 비죽비죽 솟아 나와 있는 5m짜리 도마뱀은 전부 피해가길래 위협 삼아 던져준 건데 생각보다 효과가 큰 거 같다.

주눅 들어있던 가시 도마뱀은 나랑 프랑을 힐끔거리다가 피 냄새를 풍기며 반쯤 발광하고 있는 다섯 마리한테 고개를 돌리더니 군침이 도는지 녹색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각진 움직임으로 슬금슬금 다가간다.

가시 도마뱀이 가까워질수록 다섯 도마뱀 인간은 팔다리가 부러지고 찢어질 정도로 거칠게 몸을 흔들면서 미친 듯이 발광하길래 이대로 두면 진짜 미쳐버릴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 호박색 공간의 벽을 펼쳐 가시 도마뱀의 뾰족뾰족한 머리를 지워버렸다.

“…!!”

머리통이 사라지면서 뻘건 피를 뿌리며 대지에 몸을 늘어트린 가시 도마뱀을 보고 움직임을 딱 멈춰버린 다섯 도마뱀 인간은 이리저리 찢어지고 부러진 주둥이와 팔다리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겁먹은 표정으로 내 눈치만 살피기 시작한다.

하얀 놈도 질끈 감았던 눈을 뜨더니 한 꺼풀 기가 죽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어서 이제야 대화를 나눌만한 여건이 마련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대기권에서 낙하시킨다면 딱히 텅스텐 같은 고강도의 막대기뿐만 아니라 적당히 대기권의 마찰열을 견딜 정도의 물체와 부피라면... ㅋㅋ

그나저나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한가봐요... 누가 지옥불 반도 아니랄까 봐 -_-

피서 대책으로 마트에서 팥빙수 12개들이 한 박스랑 우유를 사 왔습니다. 한낮에 이걸 먹으면 조금은 더위를 잊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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