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379화 (379/517)

00379  서쪽 산.  =========================================================================

해가 질 무렵에 일어나서 저녁으로 간단하게 프랑크 소시지를 생으로 먹었다. 날도 어두워지는데 불을 피워서 굽거나 음식을 만들면 당연히 냄새나 불빛이 퍼질 테고 서쪽 산에 사는 뭔가가 불빛을 발견할지도 모르잖아.

내가 볼 수 있다는 건 저쪽에서도 날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프랑은 엎드려서 몸을 숨긴 채 서쪽 산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프랑의 머리 위에 엎드려서 서쪽 산을 바라봤다. 그리고 불타오르던 하늘이 진화되고 있을 무렵에 프랑이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더니 자그맣게 속삭였다.

「서하. 석재 건물들에서 무언가가 나오고 있어요.」

목소리가 크다지만 100km를 넘게 떨어져 있으니 그냥 편하게 말해도 될 텐데 말이야. 프랑의 이야기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형태가 어떤지 보여?”

「그것까지는 모르겠어요. 작고 꼬물거리는 게… 굉장히 많아요.」

그리고 작게 무리를 지어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흠, 저쪽에 초위 이형종이 있다 해도 100km가 넘게 떨어져 있으니 우리를 눈치채지 못할 거다.

100km 안으로 접근한다 해도 나와 프랑을 중심으로 6.75km 안쪽에는 우리처럼 죽은 듯이 꼼짝 않고 있는 게 못해도 41마리가 있다. 그러니 초위 이형종의 위상력 감지 범위에 우리가 들어간다 해도 육안으로 우릴 보지 않는 이상 눈치챌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는 말이지.

“꼬물거리는 게 이 근처로 다가오면 말해줘. 바로 잡으러 가게.”

「네.」

그 뒤로 작은 목소리로 꼬물거리는 것들의 행동을 중계해주던 프랑의 이야기에 따르면, 녀석들은 산자락에 있는 호수나 골짜기에 고여있는 물속에 들락거리기 시작했고 산을 타고 오르거나 산을 타고 내려오거나 피라미드 같은 제단에 모인다고 했다.

「꼬물거리는 것들의 형태가 비슷한 걸 보면 전부 동종족인거 같아요. 곳곳에서 모여서 가만히 있다가 퍼지고 다시 뭉치고 하는 걸 보면 어쩐지 사회생활도 하고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건물을 지을 정도니까 지성도 꽤 갖췄다고 봐야겠지.”

「그렇죠… 아, 한 덩어리가 호수를 건너 왼쪽으로 향하고 있어요!」

사냥을 나오는 건가? 녀석들이 산자락에서 한참을 멀어지는 걸 프랑을 통해 확인한 뒤에 재킷을 벗어서 아공간 안에 집어넣고 졸고 있는 암흑이의 머리통을 두드려서 전신 타이즈 형태로 모습을 바꾸라고 했다.

“놈들을 잡아올 테니 프랑은 여기서 기다려.”

「네. 저쪽으로 쭉 나가시면 금방 발견하실 거에요.」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에 프랑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9번 정도 공간 도약을 했더니 인간처럼 두 발로 선 7마리의 도마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위 이형종 2마리에 상위 이형종 5마리.

놈들을 발견하자마자 거리를 최대한 벌려 녀석들을 살펴봤다.

도마뱀 인간은 대가리를 구부정하게 앞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머리에서 다리까지의 길이는 고위가 2.5m가량이고 상위는 2m 정도였다. 꼬리가 몸길이만큼이나 길다. 다리도 거의 50cm 정도에 앞발도… 팔이라고 해야 할 거 같은데. 팔도 50cm 정도 된다.

얇고 두껍고 피부가 늘어지고 등에 뿔이 나고 목에 깃이 난 각양각색의 다섯 마리 도마뱀 인간은 입을 꾹 다문 채 한 방향으로 꼬리를 S자로 흔들며 뒤뚱뒤뚱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형종이라 타입은 알 수 없지만, 선두에 선 고위 이형종 두 마리는 끄트머리에 초록색 보석이 박힌 구불구불한 나무 막대기를 쥐고 눈 밑과 머리에 빨간색과 하얀색의 염료를 얼룩덜룩하게 칠하고 있었는데 다른 상위 이형종 다섯 마리에 비해 몸을 치장한 걸 보면 뭔가 계급이라도 있는 건가 싶은데….

그 뒤를 따르는 세 마리의 상위 이형종은 염료 같은 건 칠하지 않고 각각 검과 창과 겸 鎌을 든 걸 보면 확실하다.

일단은 정신 조작으로 일곱 마리 전부를 데려가 봐야겠다. 결심하자마자 푸른색 공간의 벽을 다섯 마리 전부 통째로 덮어씌워 버리니 놈들의 눈동자가 크게 떠지고 동공이 확대된다.

바로 뛰어내려 위상력의 형태를 정신 조작 타입으로 만들고 보라색과 초록색, 파란색의 감정선을 뽑아올려 충성심으로 가공한다. 그 뒤에 가장 앞에 선 고위급 도마뱀과 눈을 마주치니 82만의 TP가 소비되며 도마뱀 인간의 노란 눈동자가 하얗게 빛나다가 원래 색으로 돌아갔다.

암흑이를 정신 조작 중인 부담에 약간 더 추가된 느낌에 뒷골이 묵직하고 싸해졌다. 이 묵직한 느낌에 TP가 소비된 걸 보면 확실히 지배가 된 거 같지만… 제대로 정신 조작이 들어갔는지 몇 가지 테스트를 해봐야겠다.

“야, 내 말 들리면 눈 한번 깜빡여봐.”

꿈뻑.

눈 아래와 머리에 빗살무늬로 흰색과 빨간색이 교차되게 칠한 녀석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선명한 연두색 비늘에 카멜레온 같은 눈을 한 얄팍한 도마뱀 인간이었는데 내가 말을 하자마자 쭈글쭈글한 피부에 뒤덮여있는 까만 눈이 까닥까닥 움직이더니 쭈글쭈글한 피부가 끔뻑하고 감겼다 떠졌다.

“두 번 깜빡여봐.”

끔뻑끔뻑.

“세 번.”

끔뻑끔뻑 끔뻑.

-오오. 대단함다.-

구경하던 암흑이는 내 명령에 눈을 깜빡거리는 도마뱀 인간을 보며 감탄을 터트리는데 먼저 정신 조작을 당한 녀석이 이렇게 감탄을 흘리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아무튼, 시킨 대로 눈을 깜빡이는 카멜레온 눈깔을 감싸고 있던 공간의 벽을 해제하니 녀석은 구불구불한 나무 막대기를 들어 올려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두 갈래로 갈라진 혓바닥을 추릅하고 내밀었다가 집어넣었다.

“زآیا زه تاسو سره مرسته وکړي.”

-내가 뭘 도와주면 되느냐고 물어봄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통역해주는 암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나머지 녀석들도 정신 조작을 걸어야지.

풀려났는데도 불구하고 날 공격하거나 자기들을 구출할 생각도 없이 멀뚱거리는 카멜레온 눈깔의 모습에 다른 여섯 마리의 도마뱀 인간이 불신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러든 말든 차례차례 놈들의 머리에 똑같이 충성심을 때려 박아넣고 공간의 벽을 해제했더니 몸이 결린다는 듯이 꺼덕이다가 날 바라보며 한마디씩 말을 꺼냈다.

“يو عجيبه احساس.”

-이상한 기분이다.-

“وړاندې کول او د ځانونو د.”

-어떤 일이 벌어진건지 모르겠다.-

“زه پوهېږم، چې ولې gecukk په څېر چې وګورو.”

-게쿡이 왜 저런 모습을 보이는지 알 거 같다.-

게쿡이라, 가장 먼저 풀려난 카멜레온 눈깔의 이름이 게쿡인가?

마구잡이로 떠들고 있는 상위급의 도마뱀 인간들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얄팍한 갈색의 도마뱀 인간은 주둥이를 꾹 다문 채 노란 눈동자에 세로로 갈라진 홍채로 날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일단은 다섯 놈을 붙잡아 프랑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공간 도약을 겪은 다섯 마리의 도마뱀 인간은 눈을 빠르게 깜빡이면서 빠르게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다섯이 한 번에 말을 쏟아내니 잔뜩 부푼 풍선에 물을 뿌린 뒤에 손가락으로 긁을 때처럼 거슬리는 소리가 쏟아져서 귀가 따갑고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어휴….」

프랑도 듣기 괴로운지 눈쌀을 찌푸리면서 도마뱀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암흑이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도마뱀 인간들의 말을 띄엄띄엄 통역해준다.

-어… 그니까 주인님을 새로이 탄생한 영웅이라고 하는 거 같슴다. 강한 거인 암컷을 지배하고 혼돈의 덩어리도 굴복시키고 그분이라고 부르는 게 전이술轉移術을 쓰는데 주인님도 그걸 써서 헤뷜트의 새 영웅이 될 분이라고 짐작하는뎁쇼?-

거인 암컷… 프랑을 돌아보니 조금 붉어진 표정으로 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혼돈의 덩어리는 암흑이를 말하는 걸 테고 헤뷜트는… 서쪽 산에 있는 이놈들의 마을 이름인가? 규모로 보면 마을이라기보단 도시 같지만.

놈들이 쏟아낸 단어를 유추해보고 있는 사이 상위급 도마뱀 인간들은 어느새 손을 깍지 끼더니 게코게코 거리면서 날 보고 고개를 위아래로 젓고 있었는데 저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시끄러워서 놈들이 하는 짓을 멈추게 했다.

“정신 사나우니까 좀 가만히 있어 봐. 너희들 중에 리더는 누구야?”

좀 짜증 난다는 투로 이야길 꺼냈더니 다섯 마리가 대번에 움직임을 멈추고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내가 가장 처음 정신 조작을 건 녹색의 카멜레온 눈깔, 게쿡을 돌아봤다.

내 시선과 도마뱀 인간들의 시선이 닿으니 게쿡이 한발 앞으로 나서면서 주둥이를 벌렸다.

“زه مشر.”

-자기가 머리라고 함다.-

초록색 보석이 박힌 나무 막대기를 들어 다시 머리를 긁적이는 녀석은 빨갛고 하얀 염료를 눈 아래와 머리에 빗살무늬로 칠하고 있었는데 눈깔이 연신 또록또록 굴리면서 날 살펴보고 있었다.

이 녀석도 대화가 가능할 만큼 지능이 뛰어난데… 히아리드나 첫째 인어 같은 녀석들처럼 말을 못하는군. 그러기 위한 조건이라도 있는 건가?

“암흑이 넌 이상한 어미 붙이지 말고 저 녀석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통역해줘.”

-잉…-

이상한 어미가 아니고 자신의 존재성이라고 항의하는 암흑이를 무시했다. 니 존재성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바뀌냐? 아무튼, 앞에 나선 카멜레온 눈알의 도마뱀 인간에게 물었다.

“우리는 길이 100m 정도에 굵기가 40m 정도 되는, 몸이 중간부터 잘린 뱀을 찾고 있어. 몸통은 위쪽이 군청색이고 아래쪽은 상아색 비늘이 달린 놈이야. 머리에는 뿔이 부러진 자국이 있어. 그거에 대해 아는 거 있어?”

“شته.”

-있다.-

“자세히 설명해봐.”

“دا د ….”

-백청 님은… 우리의 영웅이었다. 푸르른 대지의 날에 신의 땅에서 내려온 영웅이었던 그것은 최고 사제에게 해야 할 일이 있다며 동쪽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께 바치는 일족의 수신제 水神祭가 하늘에 펼쳐졌다. 수신제는 메마른 대지의 날에 펼쳐져야 할 것. 갈기들은 이변을 느끼고 영웅이었던 것이 향한 동쪽으로 탐색을 나갔다. 그리고 탐색을 나간 갈기들이 영웅이었던 것을 끌고 되돌아왔다.-

백청! 백청을 님자까지 붙여서 말하는 걸 보니 이놈들은 백청과 뭔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게 틀림없다. 하지만 뭔가 좀 이야기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딱딱 끊어지는 게 도마뱀이라서 지능이 좀 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웅이었다는 말은 뭐야?”

“له لاسه سترګې د بدن له لاسه ورکړ. د بيه ټيټه شوې.”

-신력 神力을 잃고 신체 身體도 잃었다. 격이 떨어졌다.-

「서하에게 몸이 잘리고 뿔이 뜯겨나간걸 말하는 걸까요?」

“…!”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주던 카멜레온 눈알의 도마뱀 인간은 프랑의 이야기를 듣더니 피부에 덮여있던 눈동자가 확 드러나면서 상체를 들썩거리고 꼬리로 땅을 거세게 두드려대기 시작한다. 녀석을 제지하면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키이익 키잇하고 울어댔다.

-주인님이 영웅이었던 것을 물리쳤다는 걸 몰랐던 거 같슴다. 주인님을 새 영웅으로 추대해야 한다는 뎁쇼?-

달빛이 내려쬐이는 한밤중에 도마뱀 인간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니 기분이 서늘하다 못해 피부에 소름이 돋는 거 같다. 저런 소리는 충성심의 정신 조작 효과일 테니 신경 쓰지 않고 일단은 이야기를 듣던 도중에 의문이 들었던 걸 물어봤다.

수신제는 누구에게 바치는 것인지, 갈기들은 누군지, 헤뷜트는 너희 도시 이름이 맞는지. 영웅이었다는 말은 이제 영웅이 아니게 된 거냐고.

-대해의 주인이신 창해의 용왕님께 바치는 물의 제전이다. 갈기는 우리의 도시 헤뷜트를 이끄는 지도자들이고 백청 님은 사도의 증거인 신력을 잃어버렸으니 더이상 영웅으로 존재할 수 없다.-

용왕! 백청이 용왕의 사도였다고? 그럼 그 뿔이 사도의 증거였다는 건가? 그래서 그렇게 이상한 기운을 뿌려댔던 거군.

그렇다면 이놈들이… 카멜레온 눈깔의 이야기에 확신했다.

“너희, 사비 일족이지?”

“هو.”

-그렇다.-

대답을 듣자마자 프랑을 돌아봤다. 프랑도 자기가 했던 말대로 이루어졌단게 확실해지자 표정이 굳어졌다.

사비 일족. 플라비우스 종족과 전쟁을 벌였다는 종족.

용왕은 백청이 홀로 자길 섬기는 놈이랬는데 백청은 사비 일족의 영웅이다? 그만한 존재감을 가진 용왕이 고작 날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정신조작의 충성심은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내게 충성하려는 의지를 갖추게 된다. 그렇다면 이놈도 자기 기억과 성향을 바탕으로 생각하던 것을 꺼낸 게 틀림없다. 그걸 확인해보려면 다른 녀석한테도 물어보는 게 정확하지.

남은 여섯 마리의 도마뱀 인간들에게 차례차례 물어봤더니 상위 이형종인 다섯 마리는 마치 남 일인 양 의욕이 없는 태도로 자기들과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여줬다.

남 일이라니… 너네 종족 일이잖아?

의아해서 옆에 서 있는 고위 이형종, 우리나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조금 통통하고 순한 얼굴을 한 갈색의 도마뱀 인간에게 물었더니, 카멜레온 눈깔과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백청이 그분을 섬기는 사도라지만 우리의 영웅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카멜레온 눈깔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에 이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가 생각했지만 바로 접어버렸다. 정신 조작에 당한 녀석이 날 속이려 들 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갈색 도마뱀 인간이 하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멜레온 눈깔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거칠게 꽥꽥거린다.

“Agrum! سپين زنګ توکمونه لکه زموږ په څېر دي! زموږ د اتل”

-아구름! 백청 님은 우리와 같은 종족이다! 백청 님이 우리의 영웅이 아니라면 누가 영웅일 수 있나!-

카멜레온 눈깔이 성난다는 듯이 꼬리를 좌우로 붕붕 흔들고 나무 작대기로 갈색 도마뱀 인간을 찌를 듯이 가리키며 소리치지만, 갈색 도마뱀 인간은 뉘 집 개가 짖느냐는 듯이 긴장감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태도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매번 이야기 하는 거지만, 게쿡? 그것은 당신의 의견이 아니라 아훔렉의 의견이에요. 우리 종족의 영웅은 아훔렉과 칼카쿰입니다.-

이 녀석은 말을 또박또박 잘하네. 카멜레온 눈깔, 게쿡은 다시 주둥이를 열어 뭐라 말하려고 하길래 시끄러우니 입 다물라고 하자 합죽이처럼 주둥이를 닫고 갈색 도마뱀 인간, 아구름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게쿡이 그러든 말든 끝이 갈라진 혓바닥을 내밀어 왼쪽 눈을 핥는 아구름을 보면서 다시 물었다.

“어째서 저 녀석이랑 말이 틀린 거지? 백청은 용왕을 섬기고 너희들도 똑같이 용왕을 섬기잖아?”

-그것을 알려드리려면 저희 일족의 구조부터 아셔야 합니다. 저희는 5개의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중 사제 계층이 저희 종족의 갈기들로써 지배하는 분들이온데, 사제 계층에서 시작된 두 개의 파벌이 있습니다.

한쪽은 백청 님은 우리가 섬기는 그분의 사도이니 우리의 영웅이기도 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아훔렉과, 반대로 백청 님은 백청 님일 뿐, 우리는 우리이며 백청 님과 우리는 같은 신을 섬기지만 다른 존재라는 의견을 펼치는 칼카쿰의 두 개 파벌로 나뉘어 있습니다.

게쿡은 아훔렉을 따르는 사비이며 저는 칼카쿰을 따르는 사비입니다. 때문에 의견이 완전히 반대되지요.-

계급으로 나뉜 사회 구성에 파벌까지. 현실에 있는 어느 나라가 생각나는 사회 구성이다. 그러니까 서로 파벌이 달라서 말이 다른 거였나.

“그럼 백청을 끌고 간 건 백청을 자기네들의 영웅으로 보는 파벌 쪽인가?”

-아닙니다. 저희 종족의 영웅은 아니실지라도 그분의 사도임은 확실하기에 손이 비는 갈기 분들이 나서서 백청 님을 모셔오셨다 들었습니다.-

…다 죽어가는 백청을 구한한 이유는 역시 같은 존재를 섬기는 것들이라 도움을 준거 뿐이라는 거군. 계급에 파벌까지 나누어져 있는 이형종이라는 게 좀 신기하긴 하지만 이형종의 사회체계 따윈 궁금하지 않다. 중요한 건 다른 거다.

“그럼 내가 백청을 공격하면 너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거지?”

-이유 없이 백청 님을 공격하신다면… 저희 종족들 전체와 적대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합당한 명분이 있다면 백청 님은 저희와는 다른 존재. 제가 속해있는 칼카쿰의 파벌은 그것을 지켜보기만 할 것입니다.-

“احمق! هم سپين زنګ ورته خدمت زموږ اتل!”

아구름의 이야기에 못마땅한 듯이 눈매가 일그러지던 카멜레온 눈깔의 게쿡은 성질난다는 듯이 꼬리로 땅을 두드려대며 소리쳤다.

-멍청한! 그분을 섬기는 백청 님은 비록 격이 떨어졌다 하더라도 우리의 영웅이었다! 그분의 사도를 우리와 별개의 종으로 나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대는 기억해두어야할것이다. 백청 님을 공격한다면 사비 종족은 그대를 결사적으로 막을 것이니.-

-그렇게 여기는 것은 너희 아훔렉과 아훔렉을 따르는 갈기들뿐이다. 백청이 인과를 엮어 빚어낸 사태를 어찌하여 우리가 책임져야 한단 말이냐. 이 분은 그분이 쓰시는 전이술을 사용하시고 거인 암컷과 혼돈의 덩어리를 사역하신다. 이 분의 능력을 게쿡, 너는 짐작이 가능하단 말이냐. 이 분이 우리 종족을 공격한다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종족의 멸망, 그것을 너희 아훔렉과 아훔렉의 갈기들이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이냐.-

-크으….-

호오… 아구름 이 녀석, 머리가 되게 좋은데? 내가 한 몇 개의 질문에 내 뒤에 프랑이 조용히 서 있는걸 보더니 서열을 바로 파악한 거 같다. 그 판단에는 내가 보여줬던 몇 가지의 능력도 영향을 줬겠지만.

게쿡은 논리 정연하고 잔잔한 호수의 수면 같은 반응을 보이는 아구름의 말에 쉬익거리는 쇳소리를 내며 불만스럽다는 듯이 아구름을 노려보기 시작하고 아구름도 그런 게쿡을 노란 눈동자로 빤히 바라본다.

두 녀석은 서로 다른 파벌이라고 하더니 반응이 완전히 다르군. 아훔렉의 파벌은 막아설 거고 칼카쿰의 파벌은 그냥 방관한다는 건가.

“날 막아서는 아훔렉의 파벌을 죽이면 칼카쿰 쪽도 가만히 있지 않겠지?”

-백청 님과의 싸움과 아훔렉과의 싸움은 다른 것입니다. 그대가 사비 일족을 처형한다면 칼카쿰도 당연히 나서게 될 것입니다.-

이 녀석은 뭔가 아는 게 많은 거 같으니 좀 더 물어봐야겠다.

흥분해서 콧구멍을 벌름거리고 혓바닥을 날름날름하면서 어버버거리는 게쿡보다 아구름이 대화 상대로 더 적합한듯해 갈색의 통통한 도마뱀 인간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백청을 어디로 끌고 갔는지는 알아?”

-신의 땅으로 옮기는 중이라 들었습니다.-

“아까도 백청이 신의 땅에서 내려왔다고 했지? 신의 땅은 뭐야? 어디 있는 곳인데?”

-벨티칼의 정상, 그분께서 간혹 모습을 비추시는 거대한 호수를 뜻합니다.-

아구름은 고개를 돌려 서쪽 산의 꼭대기를 돌아본다. 서쪽 산을 벨티칼이라고 부르나 보군.

저 산의 정상이라… 까마득하게 높은 산, 랑그 드란의 등껍질보다 더 높아 보이는 산꼭대기에 둥그스름하게 패여 있는 곳을 보다가 다시 물었다.

“저기로 가면 뭔가 있어?”

-그렇습니다. 그곳은 그분의 자비로 스펙스가 가득 모인 곳. 그곳에서 정양을 한다면 아무리 심각한 부상이더라도 완치될 수 있는 기적의 땅입니다. 아훔렉의 갈기들은 죽어가던 백청 님을 신의 땅으로 옮길 것을 주장했고 칼카쿰의 갈기들도 그녀를 회복시키는데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합니다.-

스펙스는… 인어 자매가 말한 위상력의 다른 이름이니 산 정상에 위상력이 가득 차있다는 말인가.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 상처를 모두 회복한다는 이야기군.

“니가 그분이라고 칭하는 건 창해의 용왕이지? 그곳에 백청이 머무른다면 회복에 걸리는 시간은 어느 정돈지 알아?”

-그…분을 그렇게 부르시는 건 불경한 행동입니다만… 회복에 걸리는 시간은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신체 훼손율과 신력의 감소로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군… 그럼 정리해볼까.

백청을 끌고 간 건 사비 일족이다. 어떻게 백청을 발견하고 끌고 갔는지는 됐고, 사비 일족은 두 개의 파벌이 있으며 내가 백청을 공격한다면 하나의 파벌은 막아서지만 다른 파벌은 막아서지 않는다.

그리고 백청은 입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위상력이 가득 차있다는 신의 땅으로 향하고 있다.

…그럼, 프랑과 이야기를 마저 나눠봐야겠군.

============================ 작품 후기 ============================

아스팔트가 적은 시골은 시원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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