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364화 (364/517)

00364  귀환, 그리고 정리.  =========================================================================

물속으로 30m만 내려가도 상당히 어둡다. 하물며 그게 500m 정도 되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심연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어두운 건 둘째치고 물안경이 없으니 물속에서 눈을 뜬다 해도 굴절률 차이 때문에 한 치 앞도 분간이 되지 않아 주위 파악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공간 지각이 있는 나나 프랑한테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다.

귀환 포인트는 위상력의 움직임에 민감하다. 바로 옆으로 다시 공간 도약을 쓴다거나 하면 귀환 포인트가 사라질 수 있으니 평범하게 헤엄쳐서 귀환 포인트에 다가갔다.

프랑은 한 손은 짐 보따리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 산비탈을 짚으며 물살이 거칠게 일어나 귀환 포인트에 영향을 줄세라 조심스레 다가왔다.

-손 줘.-

프랑을 돌아보며 손을 내밀고 입을 뻐끔거리니 잠시 주변을 살펴보던 프랑은 위치를 옮겨 산등성이에 내려선 뒤에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한 손과 머리로 짐 보따리를 받치고 다른 손을 내밀었다.

최대한 빌딩에 주는 충격을 줄여보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은 프랑의 손에 내 손을 얹고 눈앞에 일렁이는 하얀 빛무리를 잠시 바라봤다.

새삼 긴장감이 올라오는 기분에 침을 꼴깍 삼키고 손을 뻗어 빛무리에 TP를 주입한다.

하얀 빛무리는 금방 환히 밝아지며 곧 주변을 환히 밝아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온 정신을 집중하며 공간 지각의 범위를 좁히고 또 좁혀서 500m까지 압축하고 먼지 한 톨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신경을 쏟아붓는다.

내 목덜미에 매달려있는 암흑이의 담담한 얼굴, 긴장감에 표정이 딱딱해지는 프랑의 얼굴과 쪼그려 앉은 몸, 짐 보따리와 그 안의 뼈, 살코기, 가죽.

500m 안의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 3D 영상처럼 맺히는 순간, 귀환의 빛은 사방을 백색으로 물들였고 곧이어 주변 풍경도 하나둘씩 지우기 시작했다.

백색 빛에 증발하듯이 위상 세계의 모든 풍경이 사라졌을 때 사고 가속 스킬이 생각났다. 사고 가속을 일으키면 더욱 많은 시간을 가지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나자마자 앞뒤 가리지 않고 사고 가속 스킬을 발동하니 이전보다 훨씬 오랜 시간 백색 공간에 머무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는 체감 시간이 5초 정도면 위상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면서 백색광으로 인한 눈부심에 투덜거렸었는데 지금은 5초를 지나 10초가 다되어갈 때쯤 백색 공간에 변화가 생겨난다.

백색 캔버스에 그림이 그려지듯 사물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할 무렵 사고 가속의 힘을 빌려 500m 안에 생겨나는 모든 것을 머릿속에 담는다.

그랑 블루 빌딩 생활동, 사무동, 사업 지원 1동, 사업 지원 2동.

지하 3층 레이드 팀 전용 주차장에서부터 지상 5층 주상 복합 쇼핑몰까지.

생활 동을 제외한 다른 빌딩은 무시한다. 생활동 34층 이하도 무시한다. 35층부터 40층까지 살아있는 생명체를 감지해본 결과, 35층 36층 37층 38층에는 아무도 없다. 아빠랑 엄마도 사업 지원 1동의 병원에 있고 누나도 자기 집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집 안에는 소피아만 있었는데 소피아도 수한과 같이 쓰는 방에서 노트 패널로 무언가를 조작할 뿐, 미호와 히아리드도 없다.

그나마 소피아 혼자 있다는 거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어느 장소에 나타나는지 살펴보는데 프랑의 몸이 빌딩 밖에서 생성되기 시작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에 비해 내 몸은 위상 세계에 입장할 때 그 장소에 나타나고 있었다.

그런가! 귀환 포인트에 TP를 넣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나타나는 위치가 달라지는 거였어!

내가 주체가 되어서 나는 위상 세계에 입장하던 장소 그곳에 나타나는 거고 나에게 이끌려 나온 프랑은 넘어올 때 자세 그대로 현실에 구현되는 거야!

이제서야 위상 세계에 입장할 때와 퇴장할 때의 거미줄 같은 포지션이 이해가 간다. 이 위치라면 프랑의 팔과 겹쳐져 있는 미호들의 방 지붕만 박살 나겠군.

그정도로 끝나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주변을 살펴보고 있으니 주변 풍경이 차츰차츰 완성되어간다. 한결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주변 풍경이 구성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주시하며 소피아 하나만을 집중해서 감지한다.

그리고 현실 풍경이 완성되어갈 때쯤 소피아의 몸을 푸른색 공간의 벽의 상자를 만들어 그 속에 가뒀다.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이 점점 크게 떠져 갈 때 우리 침실 전체와 드레스 룸에도 푸른색 공간의 벽을 쳤다.

침실에는 연인들이 목숨처럼 소중히 아끼는 물건들이 있어 만에 하나 부서지게 놔둘 수 없다.

바로 이어 바닥 전체에 공간의 벽을 쳤더니 푸른색 공간의 벽은 물질을 부수지 않고 공존하듯이 펼쳐졌다.

푸른색 공간의 벽을 더 넓게 쳐나간다. 넓게, 더 넓게. 우리 집 지붕이 부서지더라도 빌딩 파편이 낙하하지 않도록.

펼쳐지는 푸른색 공간의 벽은 프랑의 발밑에도 생성되며 더욱더 뻗어 나간다. 두께 50cm에 수백 미터짜리 부정형 발판을 만들어냈더니 TP가 순식간에 2천만이나 줄어들었다.

그 덕에 공간의 벽은 최대한 넓게 펼쳐져 프랑의 추락을 막았고 짐을 놓치더라도 낙하해서 빌딩을 부수지 않을 거다.

그리고 사고 가속 기능을 중단하니 순식간에 주변 풍경이 완성되며 현실로 돌아왔다.

「읏.」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나와 프랑의 몸에서 물이 주르륵 쏟아진다.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아있던 프랑도 물의 무게가 더해진 짐보따리에 뒤로 휘청하고 넘어지려 해서 황급히 푸른색 공간의 벽을 세워 그녀의 등을 받쳐줬다.

우드득. 쿠지지지직.

내 손에서 프랑의 손이 떨어져 나가며 팔이 겹쳐져 있던 미호들의 방 지붕이 부서지고 밀려나며 자욱한 먼지를 일으켰다.

뒤로 넘어질 뻔한 프랑은 등받이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두 손으로 백청의 부산물이 가득 든 짐 보따리를 움켜쥐었다. 소피아와 방에 쳐둔 공간의 벽을 치우고 바닥에 펼친 것만 남겨둔 채 무너진 천장으로 뛰쳐나가 프랑의 모습을 확인했다.

“후우.”

푸른색 공간의 벽 위에 멀쩡히 서 있는 프랑을 보니 긴장감이 확 풀어졌다. 예상외로 큰 피해 없이 돌아와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는 데 사무동과 사업지원 1, 2동의 창가에 직원들이 잔뜩 달라붙어 이쪽의 프랑을 구경하는 게 보였다.

저 아래에 아무것도 안 입고 있는데!

황급히 프랑의 어깨 위로 뛰어오르니 프랑이 살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피해가 거의 없이 돌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것보다 다리! 다리 사이 조심해!”

「네? 다리…. 아앗!」

내가 자세에 주의를 시키니 프랑은 시선을 아래로 돌리더니 빌딩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원들을 보고 황급히 허벅지를 모았다.

각도도 그렇고 통짜 드레스 아래쪽이 보이진 않겠지만, 괜히 신경 쓰인다. 짐보따리도 내려놔야 하니 다리를 모은 채 당황해하는 그녀를 잡고 신촌동의 대저택 부지로 도약했다.

이제 거의 다 완성되어가는 거대한 저택과 넓은 부지의 조경을 꾸미고 있는 신촌동 부지로 도약했더니 일하던 인부들이 프랑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다가 자빠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덕분에 이래저래 부끄러움에 잠식당하던 프랑은 짐 보따리를 내려놓고 다리를 모아서 잔디밭 위에 얌전히 앉아버렸다.

그래, 서 있는 것보다 앉아있는 게 나도 맘 편하지.

현실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쉬는 것도 잠시, 푸른색 공간의 벽을 치우…려다가 부서진 콘크리트 파편들과 우리 몸에서 흐른 물이 떠올랐다. 소피아도 푸른색 공간의 벽에 갇혀있으니 바닥에 쳐둔 것만 빼고 침실과 소피아한테 뒤집어씌운 공간의 벽을 회수했다.

음. 예정했던 것보다 14일이나 초과했으니 되게 걱정하고 있을 연인들에게 빨리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랑 블루 빌딩으로 가서 화연이하고 데려올게 여기서 기다려. 누가 공격해오거나 하면 내가 책임질 테니까 때려눕혀 버리고.”

「여긴 서하의 집이라는 걸 이 근방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으니까 절 발견해도 서하와 관련된 이형종이라고 생각할 거에요.」

이형종…. 끄응.

그때 멀찍이서 공사 현장감독이 겁에 질린 채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양복에 노란색 안전모를 쓴 남자는 척 봐도 소심한 인상인데 프랑의 뒷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주춤주춤 걸어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저렇게 무서우면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도망가지 왜 다가오냐?

뭔가 싶어 현장 감독을 지켜보고 있는데 잔뜩 겁먹은 거 같은 그의 얼굴이 날 확인하는 순간 확 풀리면서 안도한 표정 바뀌고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더니 후다닥 달려와서 허리를 꾸벅 숙이면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그, 작업 중에 갑작스럽게 거인이 나타났다고 인부들이 겁에 질려서 말입니다. 그런데 멀리서 뵈니 회장님이신 거 같아 확인을 위해서 왔었습니다. 회장님이시면 도망간 인부들을 도로 데려와서 다시 작업을 시작해야 하니까요.”

“아.”

공사 현장 감독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두 다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프랑을 무의식적으로 훔쳐보는데, 프랑이 자세를 바꾸기 위해 살짝 움직이니 크게 움찔하면서 땅에 주저앉아버렸다.

“히익!!”

…얼굴색도 새하얗게 변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이 간다. "헉헉."하고 숨을 삼킨 현장 감독은 부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한 모습이다.

일어서서도 두 다리가 연신 후들거리는 현장 감독을 본 프랑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렇게 무서우면 그냥 도망가지… 책임감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의 시선에서 벗어나서야 진정한 현장 감독은 이마에 흐르는 진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애써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얼마 전에 미국에 있었던 난리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그…. 비슷한 일이 일어난 건 아닌가하고, 그래서….”

“괜찮아요. 안전하니 신경 쓰지 마시고 작업은 계속해주세요.”

“예!”

공사 현장 감독이 휘청거리면서도 후다닥 달려가 버리는 모습에 프랑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직업 정신이 투철하네. 그런데 프랑이 머리카락이 없어서 사람들이 못 알아보나? 다들 금방 알아볼 거라 생각했는데 못 알아보는걸.”

「으우…. 일단 제 크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가정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괴물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작용해서 이형종으로만 보는 거지요….」

이제 조금씩 머리카락이 나는 머리를 쓰다듬어본 프랑은 울상을 지으면서 입술을 삐죽였다.

“여기가 내 집이라는 건 이미 많이 알려졌으니까 키 40m의 거인이 있다고 해도 시민들이 크게 놀라진 않겠지만 그래도 프랑의 모습을 가려서 볼 수 없도록 하는 게 좋겠지?”

「네. 사실 아까부터 시선이 계속 느껴져서 좀 그랬어요. 하늘에서도 인공위성이 지켜보고 있기도 하구요.」

인공위성이 지켜보고 있다고? 프랑의 말을 듣고 하늘을 올려다봐도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만 보일 뿐 인공위성 같은 건 안 보이는데 프랑의 눈에는 보이나 보다.

나도 누가 우리 프랑을 훔쳐보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간단하게 손짓으로 프랑의 머리 위쪽에 호박색 공간의 벽을 다중 중첩해 투시율을 0으로 만들었다.

빨리 돌아오겠다고 하고 암흑이를 프랑에게 던져준 뒤에 집으로 도약했다. 바로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려고 했더니 멍청한 얼굴로 미호네 방 입구에서 무너진 천장을 보고 있는 소피아가 눈에 들어왔다.

“소피아.”

“…….”

“…소피아?”

“후겍?!”

“뭐야. 왜 이렇게 놀래?”

넋을 놓고 있던 소피아의 뒤로 다가가서 뒤통수를 손날로 가볍게 건드렸더니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두 팔을 파닥거리면서 울상을 지었다.

“주인님! 집이! 푸른색 벽이!”

아, 바닥에 깔린 공간의 벽은 회수를 안 했었군.

콘크리트 파편과 먼지로 엉망이 된 방이랑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색 공간의 벽을 번갈아 가리키면서 당황하는 소피아를 붙잡아 진정시키면서 물었다.

“괜찮아. 저건 나 때문에 무너진 거고 푸른색 벽도 내가 펼친 거야. 방은 회사에 연락해서 치우고 고치라고 해. 미호랑 히아리드는 어디 갔냐?”

푸른색 벽을 내가 펼친 거라는 말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고 반쯤 무너진 천장을 쳐다보고 말했다.

“미호가 놀자며 히아리드를 데리고 나갔어요. 점심밥 먹고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전화해서 돌아오라고 할까요?”

“그런 거면 됐어. 다 놀고 나면 돌아오겠지.”

“네에. 아, 주인님!”

“어?”

“무사히 귀환하셔서 다행이에요. 예정일을 넘겨도 돌아오지 않으셔서 조금 걱정했었거든요.”

두 손을 깍지끼고 생긋 웃으면서 말한 소피아는 이내 종종걸음으로 청소도구를 가지러 가버렸다.

“…하아.”

저런 모습을 보이면 종속 하녀로 만들어버린 게 좀 미안해지잖아.

푸른색 공간의 벽을 회수하면서 미호들의 방 안에 소피아가 치우기 힘들 법한 커다란 콘크리트 파편들을 하나하나 지우고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사슴 가죽옷을 벗어던지고 적당히 손에 잡히는 검은색 면바지와 하얀색 셔츠를 입고 나오니 긴 금발을 말총으로 묶고 면 마스크를 한 소피아가 커다란 쓰레기봉투와 청소기를 가져와서 시멘트 가루와 먼지로 어지럽혀진 방 안을 청소하는 게 보였다.

새카만 스커트 아래로 서양인 특유의 하얀 피부가 어른거리는 걸 보다가 사무동 39층으로 도약했다.

“잘 다녀왔나. 무사한 걸 보니 다행이군.”

“응. 다녀왔어.”

…음. 생각보다 그다지 걱정은 안 한 거 같다.

진지한 얼굴로 서류를 쌓아놓고 결제 중이던 화연이는 날 보고 표정이 조금 밝아지더니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다시 시선을 내려 계속해서 서류 결제를 이어갔다.

달려와서 안아주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손 정도는 잡아주길 바랐는데 여전히 서류에 신경을 쏟는 모습이라 입술을 삐죽였다. 우린 화연이들이 걱정할까봐 잠도 줄여가면서 되돌아왔는데 말야.

조금 억울한 기분에 화연이한테 다가가서 펜을 뺏어서 내려놓으니 화연이의 밤하늘 같은 눈동자가 날 향하며 의문이 서린다.

묻기 전에 먼저 입을 열어서 화연이에게 말했다.

“일단 영은이한테 연락해서 돌아왔다고 전해줘. 그리고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신촌동 저택으로 오라고 하고.”

“중요한 일이라니? 그보다…. 옷차림이 어떻게 된 거지? 슈트는? 프랑도 보이지 않는데.”

음. 먼저 말해도 다 물어보는군.

“할 말이 많으니 다 모이면 말해줄게. 누나랑 혜령이 이모도 데려올 테니 그 사이에 영은이한테 연락해줘.”

“연락이라면 서하가 직접 해주는 게 여사님이 더 기뻐할 거다.”

“인증기가 박살 나서 연락을 못 해.”

“…!!”

왼손을 들어서 살랑살랑 흔드니 그제야 놀란 표정이 된 화연이를 두고 혜령이 이모한테 도약했다.

누나랑 단 둘이서는 상황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어 자기 집무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혜령이 이모를 납치하다시피 데리고 누나의 집무실로 도약했다. 억지로 끌려와 한 손에 만년필을 든 채 당황하고 얼떨떨해하는 혜령이 이모와 날 보고 누나도 눈이 동그래졌다.

바로 화연이 집무실로 자리를 옮기니 영은 이한테 연락을 했다는 화연이도 데리고 바로 신촌동으로 공간 도약을 펼쳤다.

“헉?”

“…!!?”

“어!? 프, 프랑?”

잔디밭에 앉아있는 프랑 앞으로 도약했더니 화연이와 누나, 혜령이 이모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입을 딱 벌리고 경악한 얼굴로 프랑을 쳐다봤다.

프랑도 세 명의 눈빛에 애써 웃음을 지으면서 손을 들어 살짝 흔들면서, 「다녀왔어요.」 하고 인사했다.

5.1채널 대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처럼 크고 우렁우렁한 음색에 세 여자는 깜짝 놀라면서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프랑…. 이게 대체 어떻게 된겁니까?”

“프랑이 맞는 거야?”

화연이와 누나는 황급히 다가와서 프랑의 무릎 근처에서 올려다보며 이건 말이 안 된다는 얼굴로 프랑의 몸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뒤따라온 혜령이 이모도 긴가민가하면서 프랑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거 같네요? 미녀는 대머리라고 해도 미녀라더니 정말인 거 같아요”

혜령이 이모의 이야기에 프랑은 멋쩍은 표정으로 자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 멀찍이 떨어져서 프랑의 키를 대중 삼아보던 누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하고 중얼거리는 게, 직접 보지 않고 이야기로만 들었다면 웃기지 말라고 따졌을 표정이다.

“키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커졌어. 몇 미터야?”

「40m 정도에요.」

“원래대로는 못 돌아가는 겁니까? 프랑은 몸의 형태를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었지 않습니까?”

화연이는 금방 침착한 모습으로 되돌아와서 프랑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불가능해요. 이제 날 수도 없고 몸의 형태를 바꿀 수도 없게 됐거든요.」

살짝 웃음 짓는 프랑을 본 누나가 쌍심지를 켜면서 날 돌아보며 소리쳤다.

“아니, 프랑이 이렇게 될 동안 서하 넌 뭘 한 거야?!”

“나도 놀고 있었던 건 아닌데?!”

방심은 했지만.

프랑이 거대해진 것과 내 인증기가 박살 났다는 이야기에서 뭔가 눈치챘는지 표정이 살짝 굳어지면서 입을 열었다.

“…우선 인증기가 부서졌다고 했으니, 능력자 연합 한국 총괄지부에 보고해야겠군.”

“인증기가 부서졌다는 게 무슨 말이야?”

“서하가 자기 인증기가 부서졌다고 했다.”

“…….”

아아, 누나의 얼굴이 겁나서 마주 보질 못하겠다. 옆머리가 따끔따끔하다.

인증기가 부서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혜령이 이모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내 왼손을 잡더니 소매를 걷어올려 팔뚝의 피부를 만져본다.

“저, 정말….”

정말로 인증기가 없다는 걸 확인한 혜령이 이모는 당황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보며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인증기는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부서지지 않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팔다리가 새카맣게 탄화되서 부스러졌다고는 죽어도 말 못하지. 그랬다간 누나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짐작도 안간다.

말로 설명하기도 겁나는 누나의 얼굴을 애써 외면하면서 말했다.

“이야기는 여사님이 오면 다 해줄 테니까 그때까지 궁금한 건 참아주세요.”

무슨 일인지 당장 듣고 싶어 하는 누나와 혜령이 이모를 달래고 있으려니 프랑이 암흑이를 내 어깨 위에 올려줬다. 프랑의 거대한 손이 다가오자 세 명 다 흠칫하는 모습에서 이번 일은 간단히 넘기긴 힘들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는 와중에 정문에서 드리프트로 들어온 새카만 스포츠카가 쏜살같이 달려오더니 타이어가 찢어지는 소리를 내면서 멈춰 선다. 고무 타는 냄새를 피워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 영은이도 프랑의 모습을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어머나?! 이게 어떻게 된 거니? 프랑이 왜 이렇게 변한 거야? 무슨 일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모였네. 어쨌든 중요인물은 다 모였으니 손뼉을 쳐서 산만한 분위기를 잡고 주의를 내게 집중시켰다.

“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일단 말하자면 프랑은 확실하게 되살아났어.”

내 이야기를 들은 화연이를 비롯한 누나와 혜령이 이모는 프랑의 무릎이나 종아리 쪽을 만져보더니 멍한 표정이 됐다.

“정말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군. 예전에는 어딘가 인공적인 느낌이 들었었는데….”

“되살아났…다니, 그게 가능한 거야?”

「저도 좀 많이 놀랐었지만…. 맞아요. 백청과 싸우기 전에 약간 일이 있었거든요.」

“백청?”

“백청이 누구야?”

「양아치 이무기의 이름이에요.」

“아! 그럼 그 녀석을 잡은겁니까?”

「잡지는 못했지만, 치명상을 주는 데는 성공했어요. 그 덕분에 일정 부분의 부산물을 챙겨올 수 있었지요.」

“설마 저 산만한 비늘 무늬 보따리가…?”

프랑의 이야기에 연인들과 혜령이 이모는 프랑의 뒤에 놓여있는 군청색과 상아색이 반반씩 섞인 비늘 보따리에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잡지는 못했다는 이야기에 누나의 표정이 조금 굳어지고 화연이와 영은이도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날 돌아봤다.

“그냥 처음부터 전부 이야기해줄게. 그쪽이 이해하기 편하겠어. 그러니까 내가 위상 세계에 들어간 뒤에 어떻게 된 거냐면….”

============================ 작품 후기 ============================

다음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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