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62 수색 =========================================================================
백청의 토막 난 두 번째 조각을 찾고 난 뒤, 주변을 수색하며 백청에게서 잘라낸 몸뚱이 다섯 토막을 마저 찾았을 무렵에도 남은 뿔 한쪽과 살아있으리라 추정하는 백청의 본체는 찾을 수 없었다.
일곱 토막으로 나눠진 몸뚱아리 중 여섯 토막을 찾았지만 위상력이 깃든 이무기의 뿔과 백청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머리에서 1/3 어림이 되는 부분을 찾을 수 없다는 건 역시….
「이상하네요… 다른 뿔 한쪽은 어딜 갔는지….」
하지만 프랑은 남은 뿔 한쪽이 안 보이는 게 더 이상한지 연신 주변을 돌아보고 위상력 감지를 발휘하는 듯 미간을 좁히지만 좀처럼 안색이 펴지지 않는다.
무려 100km에 가까운 위상력 감지 범위이고 낮에 공간 도약으로 살펴본 지역만 500㎢ 정도 된다. 이 범위 안에 없다면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용왕이 그랬었잖아. 백청이 한을 품었다고. 몸을 지키라고.”
「…그 말은 백청이 자신의 뿔 하나를 물고 어디론가 숨었다는 걸까요?」
“낮에 수색한 범위를 생각해봐. 위상력이 있는 뿔 한쪽이 없는 걸 보면 틀림없이 백청이 뿔을 물고 어디론가 숨었을 거라 생각해. 어째서 뿔을 두 개 다 가지고 가지 않았는지 궁금하지만…. 우음.”
말을 하다 말고 중간에 끊으니 프랑이 날 돌아보며 두 눈에 궁금증을 자아낸다.
“프랑이 말했잖아. 뿔은 상서로운 기운을 가진 유물 같다고. 용은 여의주를 가지고 비바람을 조종한다고 하는데 백청 그놈은 이무기잖아? 이무기라서 여의주는 없을 테고 대신 뿔을 매개로 삼아 홍수를 일으키고 비바람을 모은 거 아닐까?”
「앗.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야기하면서 모아놓은 백청의 몸뚱아리 6조각과 뿔을 보면서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계속 수색해서 백청을 찾아 조져버리고 싶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됐어.”
백청이 어디로 숨었는지 단서조차 없는 상황이다. 수심 수백 미터에 수천 킬로미터 영역이 수몰된 지금 상황에서는 식수를 보급할 수단이 없다. 식량이야 백청의 저 살을 발라 먹으면 되겠지만, 식수는 어떻게 구할 방법도 없다.
발아래 시커먼 흙탕물은 먹을 엄두도 안 나고.
수몰된 지역 너머로 나가서 식수를 구해볼까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이리저리 마음이 갈팡질팡하다 결국 현실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금처럼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놈을 찾는 건 위험 할 거 같아 그러니 백청을 찾는 건 일단 뒤로 미뤄두고 돌아가자. 돌아가서 화연이랑 영은이를 안심시켜주고 다시 준비물을 갖춰서 들어오는 거야.”
「그렇게 해요.」
문제라면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지름 수십 미터에 길이 수백 미터의 백청한테서 토막 쳐준 저 여섯 부위다. 그도 그럴게 쌓아놓은 여섯 토막의 뱀의 몸뚱아리는 프랑에게도 언덕처럼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부피거든.
널따랗게 펼친 푸른색 공간의 벽 위에 산처럼 쌓여있는 백청의 몸뚱아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보고 있으려니 암흑이가 오줌마려운 표정을 지으면서 꼬물거리기 시작한다.
“왜 그러냐?”
-주인님~ 저기….-
우물쭈물하던 암흑이는 어째서인지 백청의 살코기를 탐내길래 살코기를 가로세로 높이 5m짜리로 잘라서 던져줬더니 -우헤헤.- 하면서 살 속으로 파고들어 가서는 내부부터 녹여 먹는 거 같다.
그걸 보고 있으니 프랑이 거인 프랑이 된 뒤로 아무것도 먹지 않은게 생각났다.
“프랑은 배 안고파?”
「네. 저도 히아리드처럼 딱히 먹지 않아도 괜찮은거 같아요.」
“그럼 먹는게 좋다는 말이잖아. 저 살코기를 발라내서 바베큐라도 해먹자.
초위 이형종의 바베큐라… 호강하는 기분이네. 그동안 하지 않은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물속에서 나무를 마구 뽑아와서 백청의 살코기 속에 파묻혀있는 암흑이를 불렀다.
“나무에 수분 좀 분해해 줘.”
-옛 썰!-
살코기 속에서 뛰쳐나온 암흑이는 순식간에 물에 젖은 나무의 수분을 분해해 바짝 마른 나무로 만들어버리기 시작하고 나도 암흑이가 말려놓은 나무를 신체강화를 돌려 쪼개고 부수기 시작했다.
그런데 프랑의 거대한 손이 다가오더니 나무를 잡아 손바닥으로 한번 마주 비볐더니 1초 만에 장작이 한가득 쌓여버렸다.
“…멋져.”
프랑이 만들어준 장작으로 후딱 불을 붙여서 백청의 살코기를 구웠다. 불 붙은 장작을 옮겨 프랑도 불을 크게 피워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푸른 공간의 벽 덕분에 이런 바다 한복판 같은 곳에서도 캠핑 기분을 낼 수 있게 된 건 무척 마음에 든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게 된 기분이라고 할까.
내 팔뚝만 한 살점을 나무에 꼬치 꿰듯 꿰어서 불에 구우니 새하얀 고기가 노릇노릇해져 가는데 고기에서 배어 나온 기름이 모닥불에 떨어지니 치지직거리면서 맡아본 적 없는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풍겨져나온다.
그 냄새를 맡으니 뱃속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프랑도 자기 손바닥만한 고기를 불에 구우며 말했다.
「1++ 등급 횡성 한우를 구울 때보다 더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뱀고기를 구우면 이런 냄새가 나는 거야? 냄새가 장난 아니네. 어서 고기를 넣으라고 위가 꼬이는 기분이야.”
「뱀 고기를 먹어본 적 있지만, 그 냄새랑 달라요. 이건 이무기의 고기라서 그런가 봐요.」
이무기의 고기라고 부르니 함부로 먹었다간 큰일 날 거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먹다가 탈이 나더라도 힐링 웨이브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살코기가 구워지는 냄새에 입에서 침이 줄줄 흐르려고 하길래 손 등으로 입가를 닦으면서 얼른 고기가 구워지길 기다렸다.
자작자작 타오르는 모닥불에 구워지는 살코기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는데 프랑이 시선을 돌려서 백청의 토막 난 몸뚱아리를 보며 말했다.
「서하. 아까 살펴봤는데 백청의 가죽을 벗겨서 간단한 옷을 만들고 싶어요. 공간의 벽으로 자르는 걸 도와주실래요?」
“…오. 알았어. 이거 다 먹고 잘라줄게.”
백청의 비늘 하나가 대충 내 키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이니까 적당히 잘라서 기워 맞추면 되겠다. 대충 차이나 드레스처럼 만들고 가죽을 길게 잘라내서 실처럼 만들어 기워내면… 으흐흐, 노팬티 차이나 드레스라니!!
머릿속으로 프랑이 입을 옷을 디자인하는데 그 사이 토막 난 단면을 살펴보던 프랑은 궁금해하는 얼굴로 날 보며 물었다.
「그런데 잘린 단면이 굉장히 깔끔해요. 초위 이형종이라 방어 능력이 굉장히 높았을 텐데… 어떻게 자르신 거에요?」
“어? 아… 그거 말 안 해줬구나.”
뿔을 부러트리기 위해 백청의 머리에 달라붙어 있던 프랑이 놈의 공격에 피투성이가 되어가던 모습에 빡돌아서 날린 특수한 공격.
순간적으로 눈이 뒤집히면서 고작해야 10만 TP 정도밖에 응축하지 않던 검기 탄에 TP를 있는 대로 밀어 넣어 1000만 TP까지 응축시켜서 공격했더니 무색투명한 무언가가 땅이나 나무 같은 자연은 훼손하지 않고 정확하게 백청의 몸뚱아리만 갈라버렸던 걸 설명해줬더니 프랑의 예쁜 두 눈이 놀람에 물들었다.
“그땐 심장에서 무언가 쭈욱 빠져나간 기분을 느꼈었는데 나중에 내 몸 안을 살펴봤을 때 이상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어. 그 뒤로는 좀 바빠서 신경을 안 쓰고 있었고.”
「무색투명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공간 지각에 감지도 되지 않는 것… 그건 용왕이 펼쳐줬다는 그것과 같은 거 아닌가요?」
이번엔 내가 놀랄 차례였다.
“드, 듣고 보니 그러네?”
하지만 그 검기를 펼쳐낸 천총운검이 사라졌으니 어떻게 확인할 수단도 없다. 소비 TP를 20%나 감소시켜주던 천총운검의 소멸이 새삼 뼈아프게 느껴진다.
「초위 이형종의 몸통을 단번에 갈라버리는 기술이라니, 무시무시하네요. 혹시 다른 무기를 구해 TP를 천만까지 응축시켜서 쏘아내면 똑같은 효과가 발휘될까요?」
“그건… 모르지. 얼마 전에 미국이랑 드잡이질 할뻔했을 때, 머슬 베어를 소멸시킬 때 천총운검에 TP를 밀어 넣었던 적이 있었잖아.”
「네. 검신에 검푸른 불꽃이 피어오르는 걸 보고 놀랬었지요.」
“그땐 10만 TP밖에 응축하지 않았는데 그 이상 응축하는 건 위험하다는 예감이 들었었거든? 어쩌면 위험하다고 느낀 게, 내가 1000만 TP를 이상 없이 온전하게 응축시키지 못하던 상황이라 그랬던 게 아닐까 해.”
그 날 일을 생각하면서 백청의 살코기가 다 익은 거 같아 한입 베어 물면서 말했다.
“프랑이 피를 철철 흘리고 크게 다쳐서 무진장 화가 났었거든. 아마 분노 때문에 잡념이 없어져서 1,000만이나 되는 TP를 응축하는데 성공한 게 아닐까 싶어.”
내 이야기에 프랑의 얼굴이 미소를 그린다. 그리고 입안 가득 퍼지는 탱글탱글한 고기의 식감에 황홀해졌다가 이윽고 황당해졌다.
뭐야 이거?
「돌아가면 검 한 자루를 구해서 시험해봐야겠네요.」
“그래야지. 근데 이 고기는 냄새는 죽여주는데 아무 맛도 안 나네.”
우물우물하다가 삼키고 다시 한 입 베어 물었지만 후각이 미각에 약간의 영향을 줘서 감칠맛이 나는 것 같다는 착각을 일으키지만 역시나 몇 번 씹으니 입안에는 탱글탱글한 식감만 남았다.
「아무 맛이 안 나요?」
프랑도 이렇게 고소하면서도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를 피워올리는 고기가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는 게 믿기지 않는 표정을 했다.
“아빠가 좋아하는 신선한 오징어 회를 그냥 먹었을 때가 생각나. 이건 그냥 먹기보단 소스가 중요 할 거 같네.”
그래도 식감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서 노르스름하게 구워진 고기를 뜯어 먹으며 꼬치 몇 개를 더 만들기 시작했고 프랑도 노릇하게 익은 부분을 뜯어먹어보더니 눈썹이 살짝 찡그려졌다.
진짜 나도 황당했다고.
그런데 프랑은 생고기를 다시 아주 얇게 포를 뜨더니 겉만 살짝 구워 먹어보더니 남은 걸 내게 내밀었다.
「이걸 한번 드셔 보시겠어요?」
“…어!! 어떻게 된 거야?! 맛이 변했어!!”
「후후. 아마 바짝 익혀서 맛을 내는 성분이 모두 흘러나온 건가 봐요. 소고기도 너무 바짝, 오래 구워버리면 고무 씹는 느낌이 나면서 아무 맛도 나지 않잖아요?」
구울 때 피어오르던 향이 모두 맛으로 변해버린 듯 고소하고 감칠맛이 가득 나는 게 씹을수록 우러나오는 맛에 황홀감에 빠질 거 같다.
그렇게 우리는 백청의 살코기로 오랜만에 포식할 수 있었다.
프랑도 어마어마하게 먹었고 나도 무지막지하게 먹었고 암흑이도 말없이 조용하고 빠르고 많이 먹었지만, 우리 셋이 먹은 건 남은 고기에 비해 티도 나지 않을 양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살살 노을이 지려고 하는 하늘 아래에서 프랑과 함께 백청의 살코기를 발라내고 뼈와 가죽을 분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무려 초위 이형종의 부산물이다. 살덩어리는 식용 외에는 의미가 없을 거 같으니 모두 버리고 비늘 가죽이랑 뼈만 챙겨가도 충분할 거다.
분해해 보니 역시나 이무기도 뱀 새끼라 그런지 골격은 뱀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어서 굉장히 길고 크고 튼튼한 척추에 늑골이 촘촘하게 붙어있는 형태였다.
내가 비늘 가죽과 고기 사이에 공간의 벽을 밀어 넣어 고기와 가죽을 분리하면 프랑은 분리된 비늘 가죽과 뼈를 따로 분류해 차곡차곡 쌓았다.
그 뒤에 뼈에서도 하나하나 고기를 발라내고 발라낸 고기는 쌓아놓기 편하게 적당히 깍뚝 썰기처럼 만들어놓으니 프랑은 쉬지 않고 고기와 뼈를 옮겼다.
백청의 몸길이가 광화문 교차로에서 이순신 장군 동상까지만큼이나 긴 데다 평균 몸통 두께가 40m였으니까 거기서 나오는 비늘 가죽이나 고기, 뼈의 양이 진짜 산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고깃덩어리가 부피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크기가 크기다 보니 그 깍둑썰기로 만들어놓은 고깃덩이가 진짜 집채만 한 사이즈인데 저거 한 덩이면 100명이 배부르게 먹어도 남을 거 같다.
그런데 토막 난 백청의 몸뚱아리 일부분을 모두 처리하는데도 피가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는 게 신기했다.
“괜히 인적이 드문 밀림이나 산속이나 초원에 가서 사서 고생하는 어떤 곰 형의 프로그램을 보면 뱀 피도 붉던데 백청의 몸뚱아리에서는 피가 한 방울도 안 흐르네.”
「물속에 오래 있어서 피가 다 빠져나갔을 수도 있겠죠. 어휴, 이 기름기.」
자기 몸보다 너댓배는 거대한 살코기를 가볍게 안아 올려서 옮긴 프랑은 가슴과 배에 흘러내리는 동물성 기름에 얼굴을 살짝 찌푸리면서 손으로 가슴과 배의 기름기를 쓸어내리는데, 덕분에 풍만한 가슴과 꽉 조여진 11자 형태의 복근이 기름기에 번들거리기 시작한다.
거기에 노을빛이 기름으로 코팅된 프랑의 나신에 반사되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데다 흘러내린 기름이 프랑의 다리 사이 갈라진 틈을 지나 허벅지 안쪽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이 꼭 애액이 흐르는 거 같아 무지하게 야하다.
꼭 로션 플레이를 하기 전에 몸에 투명한 로션을 발라놓은 느낌이다. 저 위에서 미끄러지면 굉장히 기분이 좋을 거 같다….
평소보다 더욱 먹음직스럽게 반짝이는 분홍색 젖꼭지를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가 애써 시선을 돌려 고기의 산을 돌아봤다.
“아, 음. 그런가? 아 근데 진짜 이거 다 어쩌냐. 답 없네 진짜.”
프랑도 내 이야기에 산처럼 쌓인 고기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만 해도 수천 명이 며칠은 먹을 양이겠어요.」
“맛도 좋은데… 인도의 아공간 능력 보유자, 이름이 라와르랬지? 그 사람한테 가서 아공간 능력을 배울 수 있나 확인해볼 걸 그랬다.”
「돌아가면 그것도 확인해봐요.」
비늘 가죽은 어떻게 차곡차곡 접어서 프랑이 짊어질 수 있다지만 문제가 되는 건 살코기와 뼈와 얼마 없는 내장기관이다.
살코기는 주로 식용으로 쓰일 테니 버린다 쳐도 내장기관은 연구소에 던져주면 초위 이형종에 대한 연구결과물을 받아볼 수 있을 테고 뼈와 가죽도 무기와 방어구 소재로도 고급 재료일 게 뻔하니 버리고 갈 수 없다.
어떻게든 다 챙겨야 할 부산물이라 저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인데 프랑은 능숙한 모습으로 척추뼈에서 갈비뼈를 분리하면서 내게도 척추뼈와 백청의 갈비뼈를 모두 분리해달라고 부탁했다.
「고기를 모두 발라내서 부피는 굉장히 줄어들었으니 뼈를 따로 종류별로 모으면 부피가 더 줄어서 가죽에 담아서 가져갈 수 있을 거예요.」
오, 그런가?
프랑의 부탁대로 공간의 벽으로 갈비뼈와 척추가 붙어있는 부분을 부러트리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포인트는 '분해'가 아니라 '부러트린다'는 거다.
백청의 뼈는 대체 어떤 재질인지 내 호박색 공간의 벽으로도 잘 분해되지 않아서 그랜드 터틀의 모가지를 잘라낼 때처럼 여러 번 중첩해야 겨우 뿌드득 하고 부러져나갔다.
프랑은 척추를 타고 올라가 이음새 부분을 주먹으로 퍽퍽 내려치는데 몇 번 치지 않아도 오도독하고 부러지는 걸 보니 저 주먹질이 단순 위력으로 호박색 공간의 벽보다 뛰어난 거 같다.
하지만 난 공간의 벽을 여러 곳에 칠 수 있지!
어찌어찌 척추와 갈비뼈의 얇은 이음매를 공략하면서 약 279m 정도 되는 백청의 몸뚱아리에서 226개의 갈비뼈를 뽑아낼 수 있었다.
척추에서 갈비뼈를 분리한 뒤에 척추뼈도 마디 사이의 틈에 공간의 벽을 찔러넣어 30m 길이로 토막 내놓으니 프랑은 비늘 가죽 한 장을 가져오더니 노끈처럼 폭이 좁고 길게 잘라달라고 부탁했다.
그녀 말대로 잘라줬더니 프랑은 가장 크고 넓은 비늘 가죽을 펼쳐 내가 잘라주는 비늘 가죽끈으로 갈비뼈를 30개 단위로 가지런히 묶고 척추뼈도 차곡차곡 포개놨다.
“와. 부피가 확 줄었네.”
살코기가 부피를 어마어마하게 차지했던 거구나. 프랑은 이런 정리가 익숙한지 갈비뼈 묶음을 한곳에 모으고 척추뼈도 한곳에 모았다.
그 뒤엔 가장 길고 넓다란 비늘 가죽 위에 하나하나 옮기면서 테트리스 하듯이 반듯하게 뼛조각들을 쌓아 올리고 높낮이와 부피를 가늠하더니 몇몇 살코개 덩어리를 집어와 사이사이에 올려놓기 시작한다.
그 위에 남은 비늘 가죽도 한데 뭉쳐 서서는 보자기로 감싸듯 감아올리는데 끄트머리를 남은 비늘 가죽끈으로 꽁꽁 묶어버리니 마치 거대한 만두 같은 모양의 짐보따리가 완성됐다.
문제는 그 짐보따리가 작은 산 만 하다는 거다. 저걸 어떻게 들고 가지 했는데 프랑은 자기 몸보다 수십 배는 큰 짐 보따리를 간단하게 들쳐멨다.
「생각보다 안 무겁네요.」
그게 안 무거워?
저거, 무게가 얼마나 나갈지 짐작도 안 가는데 프랑은 간단히 짊어진 채로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그 모습에 부담 같은 건 전혀 없어서 빈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치 개미가 자기 몸의 수십 배가 넘는 빵조각을 들고 움직이는 걸 보는 기분이다.
============================ 작품 후기 ============================
다음 이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