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357화 (357/517)

00357  이무기와의 재회  =========================================================================

저 먹구름은 지상에서 150km 상공에 있을 텐데도 눈에 보이는 눈알은 실제 달보다 2배 정도 더 큰 거 같다.

…저 새끼 용왕이잖아?!!

“이런 씨브으부브브흐?!”

-쥔님!! 안돼요!!!!-

발작적으로 씹새끼라고 소리치려 했더니 암흑이가 잽싸게 내 입을 틀어막는다!

“부르흐그프흐!!”

암흑이 너 뭐 하는 거야!!? 입 막지 마!! 팔 묶지 마!! 저 새끼한테 마포를 날려버릴 거라고!!

몸을 늘어트리며 내 몸을 묶으려 구속복처럼 변하는 암흑이를 신체 강화를 돌려 풀어내려고 힘을 쓰니 암흑이가 울상을 지은 채 입을 격렬하게 뻐끔거린다.

-으아아앙! 진짜 안돼요!! 저분은 신이라구요!! 쥔님하고 프랑 마님까지 죽을꺼에요옷!! 제발 진정하세요오!!-

아… 이, 이…!

프랑까지 죽는다는 이야기에 덜그럭하고 브레이크가 걸려버린다. 마포를 움켜쥔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보름달을 노려보고 있으려니 재미있는 걸 본다는 식으로 또다시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하하하하. 실로 재미있는 아해로다. 허나 이 현상은 본 신이 초래한 상황이 아닌즉, 적개심은 거두도록 하라.』

그걸 어떻게 믿어?! 아니, 그럼 이 현상은 백청 그 새끼가 저질렀단거 인증한 거네?! 아놔 진짜! 암흑이 너, 이거 당장 안 풀어?!

“으므므므흐그므!! 크와앙!!”

-으앙!-

고개를 붕붕 저으면서 있는 힘껏 숨을 내뱉으니 압력에 암흑이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더니 턱 아래로 흘러내려 버렸다. 다시 입이 막히기 전에 양손에 마포를 움켜쥐고 으르렁거리면서 소리쳤다.

“이 홍수는 그 새끼가 일으킨 거 맞지?! 그렇지?!! 인정?! 응?! 인정?!!”

그 새낀 나 처음 봤을 때부터 죽이려 들었는데 이번에도 또…! 그 또라이 새낀 뒈질 거면 그냥 뒈지지 왜 자꾸 이 쌩지랄을 하는 거야!!!

울분에 차서 비명 지르듯이 소리 지르니 또다시 웃음기가 섞인 음성이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후하하. 과연 듣던 대로의 성질머리군.』

뭐시?!

『선연善緣이 있다면 악연惡緣도 있는 것이 순리이다. 아해는 그것을 이해하며 주위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뭐? 듣던 대로라니, 누구한테 뭘 들었는데?! 너도 니 할 말만 하고 내 질문은 다 쌩까는거냐!!

“그 뱀새끼도 당신 부하 아냐?!! 왜 나흐부프브으?!!”

-주인니이임!! 으아앙!-

또다시 내 입을 막는 암흑이의 몸에 화를 내려다가 비의 바다가 지척까지 다가온 것을 눈치챘다. 일단 양손의 마포를 치우고 거인 프랑의 젖꼭지를 잡고 다시 공중으로 공간 도약을 썼다.

하지만 이번에는 용왕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셈으로 최대한 하늘 높이 올라가려는데 느닷없이 존나 재수 없는 현묘한 목소리가 막아선다.

『그만. 그 이상 다가오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영혼을 옥죄는듯하게 변한 목소리와 동시에 몸이 덜컥하고 멈추더니 허공에 나동그라졌다!

허공에 넘어지는 느낌에 심장이 철렁할 만큼 깜짝 놀라서 허우적거리다가, 내 몸만 공중에 걸려 추락하지 않는 걸 눈치채고 아연실색하면서 거인 프랑을 찾아보니 거인 프랑도 허공에 걸린 모습으로 내 밑에 축 늘어져 있었다.

비는 여전히 나와 거인 프랑의 몸을 두드리지만 그렇지않은 빗방울은 모조리 비의 바다를 향해 쏟아져 내리는데, 손을 내밀어 허공을 짚어보니 보이지 않는 바닥 같은 게 만져진다.

그런데 빗방울은 계속해서 떨어져 내 손등을 두드리거나 아니면 바로 옆으로 지나쳐간다. 이리저리 보이지 않는 벽을 더듬어보지만 이건 내 공간의 벽처럼 나 이외에 모든 걸 흘려내는 거 같다. 다만 다른 점은 내 몸만 공중에서 받쳐주고 있다는 걸까.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에 분노조절장애가 치료되는 기분이라 침을 꼴깍 삼키면서 고개를 드니 먹구름에 가려져 희미한 보름달이 어쩐지 웃고 있는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현묘함이 사라지고 위압감과 중압감에 가득한 목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진다.

『백청, 그 아이는 그저 오롯이 존재함과 이루어 본 신을 추종하는 아이이니라.』

그래서 뭐?

불만 가득한 얼굴로 보름달 같은 용왕의 눈을 올려다보면서 입을 막고 있는 암흑이의 몸을 긁어내려니 이놈이 꾸물거리면서 내 입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암흑이의 몸통을 찰싹찰싹 때리고 TP를 막 퍼부으니 꿈틀 움찔 말랑거리면서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으후히흐힣?! 앙댕!!-

안 되긴 뭐가 안돼! 젤리같이 변해버린 몸통을 끄집어 내리고 용왕의 눈을 아니꼬운 눈으로 보면서 입을 열려고 하니 용왕이 먼저 선수를 쳤다.

『약속하거라. 그 이치를 벗어나는 힘을 쓰지 않는다면 아해가 소중히 여기는 선연을 복구시켜주겠노라.』

…저 말을 쌩까고 내 할 말을 던지려니 듣고 흘려넘길 수가 없는 내용이다. 선연이라면 프랑을 말하는 거야?

“…이치를 벗어나는 힘이 뭔데요?”

내 손에서 꾸물거리는 암흑이를 움켜쥐고 영혼을 억누르는 목소리에 오슬거리며 되물으니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이니라.』

“그거? 마탄이랑 마포요? 그거 안 쓴다고 약속하면… 프랑을 고쳐주겠다는 거에요?”

『약속하겠느냐.』

아오. 씨발. 너만 묻지 말고 내 질문에도 대답해달라고!!

…지금 프랑의 상태가 호전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빠지고 있었나? 공간 지각으로 거인 프랑의 몸을 쭉 살펴보고 있었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복장이 터져 죽을것만 같지만, 애써 분노를 속으로 밀어넣으며 시선을 내렸다. 내 분노보다 프랑의 상태 확인이 먼저야.

거인 프랑의 늘어진 몸을 보다가 보채서라도 한 가지만 물어보기로 했다. 저놈도 지 할 말만 하는 놈이니 여러 가지 물었다간 되려 성질 낼 거 같으니까.

“…그전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딱 하나만.”

보름달에 또다시 웃음기가 번지는 걸 보면서 그게 허락의 표시라고 생각이 들어 입을 열었다.

“프랑은 영혼석에 본질을 담고 있었던 게 맞죠? 그걸 좀비화된 프랑의 시체가 영혼석을 먹고 되살아난 거에요?”

『죽은 몸이 산 영혼과 결합했느니라. 순리에 벗어나며 이치에 어긋나 시時가 흐르면 간間이 벌어져 혼백은 소멸하고 육신은 붕괴에 이르노라. 속히 결정하라.』

아이 씨… 당신, 뮈르딘이랑 친구 맞지?

아무튼, 위험하다는 이야기인 거 같아 내 손에서 꼬물거리며 빠져나오는 암흑이의 몸통을 콱 움켜쥐면서 말했다.

“마포랑 마탄만 안 쓰면 된다 이거죠?”

『그러하다.』

“약속할게요. 앞으로 절대 안 쓸 테니 프랑 고쳐줘요.”

어차피 마나 탄 Mk 2보다 약한데 마탄을 쓸 이유는 없다. 이 용왕이 왜 이렇게 친절을 베푸나 의심병이 고개를 쳐들려고 하는 와중에 불안한 눈으로 먹구름에 가려진 용왕의 유리알같은 눈알을 보고 있으니 이전처럼 현묘한 소리로 바뀐다.

『약속을 어긴다면 그대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것을 언제나 심익心翼하라.』

심익? 심익이 뭐야. 문맥상으로는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거 같은데? 그런데 지금 나한테 협박하는 거야?

헌데 보름달이 갑자기 사라졌다! 뭐야?! 안 고쳐주고 어디갔어?!

“으억?!”

그리고 나와 거인 프랑은 다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 이거 속은 거 아냐?”

거인 프랑도 정신을 못 차린 채 축 늘어져서는 머리부터 떨어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니 불안감이 더 강해진다. 아니야. 명색이 창해의 용왕이란 거창한 타이틀까지 가지고 있는데 사기 칠 리가….

“에라이 썅!!”

우선 추락하고 있는 거인 프랑한테 황급히 공간 도약으로 뛰어들어 젖꼭지를 낚아챘더니 내 목을 껴안고 빳빳하게 굳어있던 암흑이가 부르르 떠는 게 느껴졌다.

-으, 으으.-

나도 용왕한테서 무시 못 할 정신적인 압박감을 받았더니 무진장 피곤하다. 초거대 거북이 랑그 드란한테서는 이런 느낌은 없었는데… 진짜 쉴 장소가 필요해.

그때 장소라고 하니까 퍼뜩 한가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용왕한테 메오 아지토스라는 퍼랭이 새끼들이 어디 있는지도 물어볼걸.”

에이 씨발 용왕! 지 할 말만 씨불이고! 용왕 새끼 진짜 짜증 나~!!

우어어어!! 백청 그 새끼나 용왕 그 새끼나 똑같은 것들이야 그냥!!

퍼득하고 든 생각에 안타까움보다 용왕을 향한 분노가 마구마구 치밀어 오른다.

저 폭풍! 아니 태풍… 허리케인! 저것도 좀 없애주고 갈 것이지 그냥 갔네. 기왕 알려주는 김에 백청, 그 새끼도 어딨는지나 좀 알려주지…!

훅, 후욱.

안타깝고 짜증 나고 피곤하고 환장하겠다 진짜.

속으로 아는 욕 모르는 욕을 있는 대로 쏟아부으면서 용왕 새끼를 씹고 있는데 용왕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공중에 덜컥 멈춰졌을 때의 기묘한 느낌이 생각난다.

딴 건 신경 안 쓰는데 내 몸만 걸리고 나머지는 다 통과하는걸 확인했을 때의 느낌이 꼭 공간의 벽과 비슷해서 가슴이 울렁거렸었다. 그때는 거인 프랑도 허공에 걸쳐졌었지.

이걸 공간의 벽을 칠 때의 감각과 결합해보면 피아 구분이 가능한 공간의 벽이 만들어질 거 같다!

실험해보기 위해 지상 2km까지 내려간 다음 비의 바다 속에 그때의 느낌을 떠올리며 공간의 벽을 쳤는데 예전처럼 호박색 공간의 벽이 나타났다.

“잉? 뭐야. 니가 왜 나와?”

호박색 공간의 벽은 나타나자마자 거침없이 비의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감각이 느껴진다. 왜 저 색이 나오냐?

암흑이는 잔뜩 지친 표정으로 내가 뭘 하는지 호기심 어린 얼굴을 하고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암흑이의 시선을 받으며 여러 번 공간의 벽을 쳤지만 계속해서 호박색 공간의 벽만 튀어나와 비의 바다를 빨아들인다.

귓가에 들이치는 빗방울에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턴 다음 다시 공간 도약으로 거인 프랑을 끌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중얼거렸다.

“공간의 벽이… 뭔가가 바뀐 건 확실한데.”

바뀐 건 확실한데 뭐가 바꼈는지 모르겠다.

답답하고 피곤한 느낌에 내려서서 쉴 장소가 필요하다고 성질을 부리면서 공간의 벽을 쳤더니 뒷골이 콕콕 찔리는 느낌이 들면서 푸른색 공간의 벽이 비의 바다에 생성된다.

공간의 벽이 생성되자마자 물의 흐름을 막아서며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기 시작한다!

“…오! 그런 거였나!”

아까 산봉우리에서 쉴 때 우산 형태의 공간의 벽을 칠 땐 비를 '막아야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쳤었다. 그러자 푸른색 공간의 벽이 쳐지면서 빗물이 공간의 벽을 타고 흘러내렸었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공간의 벽을 칠 때 의지를 담으니 푸른색 공간의 벽이 나타나면서 물길을 막기만 할 뿐, 분해하지 않는다.

“의지의 문제였던 건가!”

마나 탄 Mk 2를 만들 때도 의지를 썼었는데 공간의 벽에는 왜 안 썼는지…. 내 멍청함에 진짜 한숨이 나올 정도다.

공중에 푸른색 공간의 벽을 넓게 치고 조심스럽게 그 위에 프랑을 내려놓았다. 만약 이상이 생기면 바로 공간 도약으로 뛰어오를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내려놓으니 거인 프랑의 몸이 털썩하고 푸른색 공간의 벽에 드러누워 졌다.

TP가 좀 더 많이 줄어든 거 같지만 일단 쉴 장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성공했어! 예쓰!!”

-주인님 추카추카!-

드디어 성공했다는 기쁨에 주먹을 불끈 쥐고 암흑이의 축하를 받고 있는데 이윽고 빗물도 푸른색 공간의 벽을 타고 흐르는 모습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 생각대로라면 프랑만 공간의 벽에 드러눕고 그 외에 것은 전부 분해해야 하는데?”

-빗물도 같이 타고 흐르는데염….-

“…아몰랑.”

일단 쉴 장소가 생겼다는 게 중요한 거지! 잽싸게 공간의 벽을 원룸처럼 만들어서 비바람이 들이치는 걸 막았다.

적당히 바람도 통하게끔 망사 형태로 된 창문도 벽마다 하나씩 만들면서 알게 된 건데, 한번 쳐 두면 형태를 바꿀 수 없는 호박색이랑은 다르게 푸른색 공간의 벽은 한번 만들었다 해도 내 마음대로 이리저리 형태를 변화할 수 있었다.

덕분에 허공에 푸른색의 네모난 상자 집을 수월하게 만들 수 있었다.

거인 프랑의 몸 크기에 맞게 원룸을 만들었더니 어마어마하게 큰 방이 되었고 동시에 내 TP도 어마어마하게 줄어들어 버렸지만 그래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곳에서 편히 쉴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반투명한 푸른색 벽 너머로 사납게 몰아치는 비바람을 보다가 빗물에 촉촉하게 젖은 거인 프랑의 가슴 위로 올라갔다.

거인 프랑은 용왕이 찾아왔을 때부터 돌아갈 때까지 별로 바뀌지 않은 모습으로 고른 숨소리를 내면서 눈을 감고 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용왕한테 사기를 당한 게 아닐까 싶어졌다.

“쪼잔한 용왕이 진짜 사기 친 거 아냐? 고쳐준다더니 왜 거인인 상태 그대론데?”

-으우아앙! 주인님! 그런 말씀 마세요오!!-

의심병이 도져서 용왕을 씹으려고 하니 내 목에 매달려있던 암흑이가 화들짝 놀라면서 내 목을 찰싹찰싹 때린다.

…암흑이 이 녀석은 용왕 앞에서는 이상한 말투를 안 쓰더니 용왕이 사라지니까 원래대로 돌아갔다가 내가 용왕을 씹으려고 하니까 또 말투가 정상적으로 바뀐다. 무의식적으로 말투가 바뀔 만큼 무섭냐?

손바닥으로 날 때리는 암흑이의 양팔을 잡아 들어 올리니 대롱대롱 매달려 두 다리를 바둥거린다.

“내가 보기엔 전혀 바뀐 점이 없단 말야! 고쳐준다고 해놓고서는 그냥 사라졌잖아!”

-으으! 그게 아님다! 확실히 프랑 마님은 백청과 싸운 뒤로 희미하게 이상한 점이 느껴졌었는데 용왕님이 왔다 가신 뒤로 이상한 느낌이 사라졌슴다!-

“…이상한 점?”

-그러니까… 둘이면서 하나같고 하나같으면서 둘인 거 같은 느낌이었슴다.-

무슨 말이지.

“…어쨌든 그 이상한 점이 용왕이 사라지면서 같이 사라졌다는거지? 진짜로?”

-진짜로!-

꽈르르르릉.

그때 순간적으로 사위가 하얗게 작열하더니 곧장 우렛소리가 울려 퍼진다. 근처에 벼락이 떨어졌는지 온몸이 떨릴 정도로 커다란 우레 소리다. 감히 날 의심하는거냐, 하는….

반투명한 푸른색 벽 너머로 쏟아지는 빗방울과 지랄맞게 거대한 허리케인을 잠시 바라보다가 암흑이를 내려줬다.

허리케인 따위야 공간의 벽을 쳐놓으면 끄덕도 없으니 내비두고. 내 마포가 질서랑 세계의 축을 무너트리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했지?

“…프랑이 고쳐지지 않으면 용왕이 먼저 약속을 어긴 거니까 나도 마탄이랑 마포로 위상 세계를 아주 쑥대밭을 만들어버리면 되겠지.”

-끄응….-

어디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진 정하지 않았지만 내 말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암흑이의 표정이 울상으로 물들었다.

“거기다 기왕 온 김에 백청이 있는 곳이라던가 태풍을 잠재워주고 퍼런 놈들이 있는 곳도 좀 알려주고 가면 좀 좋아. 용왕이 아니라 쫌생이 왕이구만.”

-으으. 주인니이임.-

암흑이는 그러면 안된다고 보채고 나는 짜증나는 용왕을 마음 안팎으로 씹어대면서 거인 프랑이 누워있는 곳을 침대처럼 올리고 목이 편하게끔 베개 형태도 만들어 머리를 받쳐줬다.

그러다 반들반들한 민머리가 눈에 들어오니 한숨이 폭 나온다.

예쁜 백금발이 모두 사라지다니… 얼마나 지나야 머리카락이 다시 길게 자라려나. 민머리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거인 프랑의 가슴 첨단에 앉아 프랑이 정신을 차리길 기다렸다.

용왕이 정말로 고쳐줬다면 프랑이 조만간 깨어나겠지.

프랑의 체온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가슴 위에 앉아 분홍색 젖꼭지에 등을 기대고 기다리길 2시간, 공간의 벽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자장가 같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몸이 위아래로 출렁거리는 느낌에 눈을 부릅떴다.

후으으….

“프랑?!”

고른 숨소리의 흐름을 깨는 길고 깊은 호흡에 큰 가슴이 출렁거리고 그 위에 앉아있는 나도 거친 파도에 휩쓸리는 것처럼 위아래로 흔들린다.

잠시 잠에서 깨어나는 움직임을 보여주던 거인 프랑은 느릿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리더니 멍하고 흐릿한 눈으로 푸른색 반투명한 천장을 올려다본다.

긴장감에 심장이 쿵쾅거리고 꽉 쥔 두 손은 땀으로 축축해졌다.

흐릿하던 눈동자에 초점이 잡히고 두어 번 깜빡거리더니 이성이 없던 거인 프랑의 눈과는 다르게 총기가 서리기 시작한다!

“프랑! 프랑?! 정신 들어?!!”

-프랑 마님!!-

「하아아… 서하?」

“우아아아아!! 프랑이 정신을 차렸어! 정신을 차렸다고!!”

-프랑 마님~!!-

다리 사이에 앉아있던 암흑이를 껴앉고 방방 뛰다가 달려내려 갔다. 내 이름을 부르는 프랑의 목소리에 목이 메이고 눈이 따가워져서 눈물이 날 거 같다.

목이 메는걸 꾹 참으면서 서둘러 공간의 벽을 치고 프랑의 얼굴 앞으로 뛰어오르니 프랑의 벽옥색 눈동자가 날 향하면서 놀람으로 크게 떠진다.

「서하…? 왜 그렇게 작아지셨어요?」

덩치가 크다 보니 목소리도 장난 아니게 크다. 빗소리마저 뒤덮는 프랑의 목소리가 100평이 넘는 공간의 벽 원룸 안을 왕왕 울려댄다.

“내가 작아진 게 아니야.”

하지만 프랑은 내 모습에 당황해하더니 내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지 자기 몸을 내려다보고 머리를 만지더니 흠칫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 꺅?! 머, 머리카락이!?」

소담하게 나 있던 음모가 한 올도 남지 않아 그대로 음부가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에 얼굴을 붉히면서 허벅지를 오므리고 팔로 가슴을 가리고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몸이 바뀌지 않아요.」

반 영체 상태였을 때처럼 모습을 바꾸려 했던 거 같은데 생각대로 몸의 형태가 바뀌지 않자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당연히 안되지. 이제 프랑은 되살아나서 반영체가 아니라고.”

「…네에에?!」

되살아났다는 이야기에 큰 눈을 끔뻑거리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깜짝 놀라면서 어깨를 움츠린다.

「아! 맞아요! 제 시체가 돌아다니다가, 영혼석이… 몸이… 아아?!」

“진정해.”

혼란스러워하는 프랑에게 나도 진정할 겸 그동안 있었던 일을 충격받지 않게끔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하니 프랑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간다.

「그, 그러니까 제 시체가 제 영혼석을 뺏어서 삼켜버렸구, 그 뒤에 서하는 제 몸이 날뛰고 싸우는 걸 막고 피하면서 진정시켰다는 건가요? 그 뒤로 몸을 이끌어서 절벽으로 이동했고… 아아.」

처음에는 날 공격하려고 날뛰었다는 이야기에 프랑은 울뻔했지만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니 억지로 눈물을 참고 고개를 끄덕여가며 내 이야기를 들었다.

절벽 위를 지나 양아치 이무기를 만났고 그 녀석과 싸우면서 우리가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땐 프랑은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지었고 용왕을 만나 거래를 통해 프랑의 몸과 영혼 간의 괴리를 고쳐주었다는 걸 들은 프랑은 안타깝고 죄스러워하는 표정이 됐다.

「서하….」

“미안해하지 마. 그렇지않아도 마탄이나 마포는 단순 폭발인 데다 너무 넓은 범위 때문에 쓰기에 힘들었었어. 그 대가로 프랑이 정신을 차리게 된 거라면 난 만족해.”

지금도 프랑의 따뜻한 시선과 부드러운 목소리를 다시 들으니 울음이 터져 나올 거 같아서 꾹 참고 있단 말이야.

“몸은 어때? 어디 아프다거나 하진 않아?”

공간의 벽 위에서 프랑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하니 울음기가 섞인 웃음을 지은 프랑은 자기 몸을 만져보더니 나쁜 곳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시선을 옮겨 내 다리 사이에 앉아있는 암흑이를 보면서 상냥하게 입을 열었다.

「서하를 지켜줘서 고마워.」

-우히. 그건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슴다!-

헤죽거리면서 자기 뺨을 비비는 암흑이를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던 프랑은 조금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용왕이라는 존재는 정말 쩨쩨하네요. 서하의 마탄과 마포는 절세의 위력인데 고작 절 치료하는 걸로 주고받다니.」

-힉?-

“그치? 진짜 쪼잔해.”

-주인니임!-

역시 프랑도 그렇게 생각했구나! 용왕 자식이 쪼잔하고 쩨쩨하다고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어!

자꾸 용왕을 실드치고 왱알거리는 암흑이가 못마땅해서 붙잡아서 입을 막아버렸다. 바둥거리고 꼬물거리면서 내 손에서 빠져나가려는 녀석의 몸에 TP를 살짝살짝 주입하니 덩달아 몸이 꿈틀 움찔거리면서 경련을 일으킨다.

…사실, 영혼이랑 육체의 이상을 회복시킨 행위가 고작이라는 일로 치부할 일인지는 좀 의문이 들긴 하지만 쩨쩨하다는 생각은 나도 동감이라 프랑의 이야기에 맞장구 쳐줬다.

암흑이는 TP를 주입 당하면서, 쾌락에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격렬하게 바동거리길래 슬쩍 손을 놔줬더니 고개를 털고서는 엉금엉금 기어와 내 다리를 부둥켜안고 울먹이면서 우릴 올려다본다.

-으으. 그런 말씀하시면 안돼요오….-

나와 프랑의 비난을 듣고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암흑이 자신도 최고위 이형종이면서 저렇게 겁먹은 모습이라니… 용왕이 그렇게나 무서운 존재인가?

…생각해보니 용왕이 보여준 모습과 현상이라면 무서워할 법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다리를 부둥켜안고 겁에 질린 암흑이의 모습에 프랑은 살짝 쓴웃음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위상 세계에 입장한 지 21일이나 지났다니, 화연과 영은이 걱정되네요. 틀림없이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건 나도 걱정이지만 이긴 하지만… 백청 그 새끼가 남아있는데 이대로 돌아가긴 좀 꺼림칙 해. 키가 40m나 되는 프랑이 현실에 나타나면 소란이 조금 일어나기도 할 테고.”

뭐, 소란같은건 내 이름빨로 찍어누르면 될 일이긴 한데… 그러는 와중에 프랑의 알몸이 찍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프랑의 나체 사진이 돌아다니는 걸 상상하자 속에서 화병이 일어나 쓰러져버릴 거 같다.

「네, 넷?! 제 키가 40m 라구요?! 서하가 작아진 게 아니었던 거에요?!」

내가 작아질 이유가 있나?

“아까 내가 한 말 못 들었구나. 내가 작아진 게 아니라 프랑이 커진 거야. 고위급일 때보다 족히 30m는 더 자랐어. 그야말로 자이언티스지.”

「…!! 거, 거인녀라니, 대머리 거인….」

프랑은 내가 작아진 게 아니라 자신이 커졌다는 사실이 꽤 큰 충격이었는지 어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 작품 후기 ============================

가출한 제 컨디션 보신분 안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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