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354화 (354/517)

00354  이무기와의 재회  =========================================================================

거인 프랑의 힘줄과 근육이 재생되고 피부가 근육을 뒤덮으며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걸 지켜보다가 양아치 이무기에게 시선을 돌렸다.

프랑이 죽을뻔했다는데 양아치 이무기에 대한 적개심이 맹렬하게 솟구친다.

놈은 몸길이가 정확하게 478m였고 몸통 중에 가장 두꺼운 곳의 지름이 38m였는데 그게 여덟 토막으로 끊어진 상태다. 그런데 저 병신같은 놈은 자기 공격에 자기도 피해를 입었는지 절단면이 하얗게 익은 채 김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다른 토막 난 몸뚱아리는 죄다 움직임을 멈췄는데 대가리가 붙어있는 토막만은 간헐적인 경련을 일으키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대가리의 뿔이 부러진 흔적이 있는 곳에는 파직 거리며 연신 스파크가 튀기고 있었는데 놈의 퍼런 눈깔은 뒤집힌 채로 끄트머리가 세 갈래로 갈라진 혓바닥을 축 늘어트리고 있었다.

아직 죽지는 않았군.

이성을 잃고 검을 그어내렸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내 공격에 거인 프랑이 휩쓸릴까 봐 머리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을 노렸는데 그 덕분에 기관 폐, 폐와 심장, 간 같은 주요 장기가 멀쩡해서 살아있는 듯 하다.

거기다 벼락으로 절단면이 지져져 그게 출혈을 막은 효과도 준거겠지.

놈의 숨통을 끊기 위한 TP를 확보하기 위해 시커멓게 타버린 땅의 이곳저곳에 흩어진 블루 스톤을 공간 지각으로 찾아서 주워 먹었다. 피부로 위상력을 흡수하는 게 아니라 먹으면 그 자체로 TP가 회복되니 이쪽이 더 빠르다.

입안으로 집어넣고 삼키면 그 순간 달걀 노른자가 터지듯 톡 터지며 액화되어 식도로 넘어가는 감각이 나쁘지 않아 줍는 족족 집어삼켰다.

반쯤 죽을뻔한 덕분에 뇌가 곤죽이 되어가는 두통이 날 괴롭히고 있었지만 TP가 회복될수록 위상력이 몸 안을 돌며 두통을 조금씩 줄여준다.

카학….

“프랑?!”

블루 스톤을 주워 먹어 TP가 1,000만까지 회복됐을 때 뒤쪽에서 피를 토하는 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라 돌아보니 거인 프랑이 입에서 까만 피를 한 움큼 토해내고 있었다.

황급히 달려가 공간 지각으로 몸 내부를 살펴보는데 몸 안의 어디가 잘못된 게 아니라 벼락에 치명적인 상처를 받았을 때 폐에 고였던 피가 토혈의 형태로 쏟아져 나온 거 같다.

그사이 전신의 체모를 제외하면 거의 원상태로 돌아온 거인 프랑은 다시 한 번 크게 기침을 내뱉더니 바르르 떨다가 늘어져 버렸다. 위상력의 급격한 감소와 죽을뻔한 충격에 심신이 흔들린 거 같다.

다시 한 번 거인 프랑의 몸 상태를 주의 깊게 살펴봤지만 나쁜 곳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심각한 상처는 모두 재생됐지만, 체모가 한 올도 남지 않았다.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짙고 예쁜 눈썹과 다듬은 잔디 같던 음모도 모두 없어져 버려 흡사 마네킹 같아 보였지만… 미녀는 어떤 모습이라도 아름답다고 하더니 사람의 두상이라는 게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멍하니 거인 프랑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흠칫 놀라면서 손을 들어 목과 어깨 어림에 남아있던 암흑 이를 한데 모아 손에 쥐었다.

암흑 이를 잊고 있었다니, 얼마 남지 않은 녀석을 조심스럽게 한데 뭉치니 스스로 꾸물거리면서 하나의 덩어리로 합쳐졌다. 그래도 한 줌도 남지 않은 모습이라 프랑과는 다른 의미로 가슴이 아파져 온다.

“암흑아.”

…….

반응이 없다. 위험하면, 벼락을 맞게 되고 그걸 분해할 수 없을 거 같다면 도망가랬더니 말 안 듣고 날 구하고… 정말 말 안 듣는 녀석이다.

조그마해진 암흑 이를 조심스레 쥐고 조금 한숨을 쉬었다가 천총운검을 찾아봤다. 하지만 내 공간 지각에도 보이지 않는 게 아무래도 저 양아치 이무기의 공격에 증발한 거 같다.

제길, 형태만이라도 남아있었으면 수리 기능이 달린 옷장으로 고칠 수 있는데 완전히 사라져버리다니….

옷이고 뭐고 소지품도 몽땅 사라져서 거인 프랑처럼 알몸이 되어버렸지만 보는 사람은 없으니 그다지 부끄럽진 않다.

그동안 모아뒀던 블루 스톤을 모두 찾아서 먹었더니 위상력이 3,000만까지 회복돼서 양아치 이무기의 숨통을 끊어주기 위해 몸을 돌렸다. 이제 복수의 때가 찾아왔…는 데…

대기가 떨리며 덩달아 발밑에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뭐지?”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는데 쉬익… 시익… 하는 가쁜 소리가 이무기가 있는 데서 들려왔다. 그 소리는 무시하고 주변을 둘러보지만 높고 빼곡하게 자란 나무들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않는다.

지진인가?

점점 진동이 심해진다고 느낄 무렵 공간의 벽을 박차고 잿빛 구름이 몰려든 하늘로 뛰어올랐더니 서쪽 저 멀리서 높이 수백 미터짜리 육지 해일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밀려오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씨발?!”

도망가… 아니, 양아치 이무기의 목을 먼저 따버려야…!

아니, 검기 탄에도 칼에 베인 상처 정도밖에 안 났었다. 일반 마나 탄 Mk 2나 마나 포 Mk2로 양아치 이무기의 멱을 따려다간 저 육지 해일에 휩쓸릴 거야!

육지 해일에 거인 프랑이 휩쓸려버리면 정신을 잃은 상태인 거인 프랑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거인 프랑을 구하면 양아치 이무기를 죽이지 못하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프랑인 게 당연하잖아!!

황급히 공간 도약으로 기절한 거인 프랑의 옆으로 돌아와 내 몸통보다 더 굵은 새끼손가락을 껴안고 하늘로 공간 도약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산이고 언덕이고 들판이고 숲이고 모조리 집어삼켜 버리는 파괴의 행진이 발아래 펼쳐진다.

공중에서 제자리 공간 도약을 반복하며 무시무시한 육지 해일이 일대를 휩쓸고 지나가는 걸 지켜봤다.

양아치 이무기와 토막 난 몸뚱아리들은 어림잡아 300m짜리 육지 해일에 휩쓸려 순식간에 공간 지각 범위 너머 동쪽으로 사라져버렸고 눈에 들어오는 지상은 모조리 거친 파도에 잠긴 시꺼먼 흙탕물밖에 보이지 않는다.

육지 해일이 밀어닥치는 기세에 대기마저 떨리고 순식간에 지평선 너머까지 물로 가득 차버리는 광경을 지켜보니 가슴이 떨린다.

가빠지는 숨결을 내뱉으며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진 거인 프랑을 내려다봤다.

40m가 넘는 키의 거인 프랑을 데리고 한번 도약을 할 때마다 31,220 TP가 사라진다. 문제는 죽다 살아난 후유증인지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파서 TP 회복량이 대폭 떨어진 상태라는 거다.

원래 내 회복량은 위상 세계에서 분당 1%지만 현재 회복량은 0.2%, 초당 2000 정도밖에 안 될 만큼 떨어졌는데 한번 도약에 3만이 넘는 TP가 사라지는 건 위험하다.

수백 미터의 무시무시한 해일을 피해 어디로 가야 할지 둘러봤다.

동쪽으로 가는 건… 안될 거 같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해일이 휘몰아치고 있으니 서쪽으로 가야 하나? 하지만 지상을 보면 이미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곳이 물바다인데…. 300m짜리 해일이니 어지간한 산들은 죄다 물에 잠긴 상태 일 거고…

우기가 시작되면 물이 쌓이고 쌓이다가 거대한 산꼭대기에 고여있던 물이 쏟아져 내려오면서 물바다를 만드는 거 아니었어?

우기가 돌아오려면 아직 3개월이나 남았을 텐데 대체 어디서 이만한 물이 쏟아져 나온건지 모르겠다. 욱신거리는 두통에 양아치 이무기에 대한 분노와 짜증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그나마 프랑도, 암흑이도 죽지 않고 무사하다는 게 다행이다.

이대로 40m짜리 거인 프랑을 데리고 반복 공간이동을 하는 건 TP가 꽤 소비되는 일이라 일단은 쉴 수 있는 장소를 찾기로 하고 서쪽으로 공간 도약을 펼쳤다.

미치겠다. 수위가 어째 점점 더 올라가는 기분인데? 분명 육지 위인데 지금은 마치 바다 위를 이동하는 기분이다.

20분째 공간 도약을 반복하고 있지만 앉아서 내려서 쉴만한 곳이 안 보인다. 그동안 TP는 1,200만 TP를 사용했지만 회복된 양은 230만 정도밖에 안 된다.

20분에 970만을 사용한다 치면 앞으로 1시간도 되지 않아 TP가 고갈 나서 수심 수백 미터짜리 급류가 휘몰아치는 저 아래로 빠져버릴 거다.

그리고 거인 프랑은 물에 빠져 죽겠지.

머리는 띵하고 뒷목에는 수십 킬로그램 추를 매단 느낌에 온몸은 물먹은 솜 마냥 축축 늘어지는데 쉬지 않고 공간 도약을 하고 공간 지각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있으니 기절할 거 같은 피로가 몰려온다.

정신을 잃기라도 하면, 나도 거인 프랑도 다 죽겠다는 생각에 마나 시브로 위상력을 회전해서 정신을 차리려 하지만 피로가 쌓이는 속도가 가속되고 있다.

높이 300m짜리 완만한 산이 공간 지각에 감지되지만, 수위는 그보다 훨씬 높아져 있었다. 물속에 완전히 잠겨있는 산의 모습을 보니 짜증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아이씨… 확 마포로 구멍을 뚫어버릴까.”

수백 킬로미터짜리 공동 수십 개가 땅에 생기면 물이 죄다 그쪽으로 들어가 버릴 테니까 수위가 낮아질 거 같기도 한데….

그리고 한 번 더 공간 도약을 하자 지평선에 수면에서 20m가량 솟구쳐있는 녹색 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으아!”

살았다는 생각에 빠르게 공간 도약을 펼쳐 겨우 섬에 도착했는데, 섬처럼 보이는 장소는 역시나 산이었다.

산은 피라미드 같은 모양새였는데 봉우리가 조금 뾰족하긴 하지만 수면에서 30m가량 높이 솟아올라 있어 쉬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거인 프랑이 산봉우리에 낙하 충격 없이 누울 수 있게끔 계산해서 공간 도약을 한 뒤에 손을 놓으니 거인 프랑의 커다란 몸이 나무를 부러트리고 깔아뭉개며 풀썩하고 산봉우리에 드러눕혀졌다.

순간적으로 거인 프랑의 몸무게에 산봉우리가 뭉개져서 물에 빠지진 않을까 했지만, 기우로 끝나서 다행이다.

다만 산의 경사 때문에 드러누운 거인 프랑의 허벅지까지가 물에 잠겨버렸는데 물살이 조금 세긴 해도 저 정도 잠겨있다고 물에 떠내려가거나 하진 않겠지.

쉴 장소가 생기자마자 기절할 것 같은 피로감이 몰려온다.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라서 황급히 거인 프랑의 가슴 위에 뛰어내리니 맨발에 가슴의 따뜻하고 보드라운 피부가 달라붙어왔다.

쓰러지듯이 누워버리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온몸이 거인 프랑의 가슴에 파고들며 부드러운 체온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이대로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지만….

“그전에 힐링 웨이브를 한 번 더….”

탄화해서 부스러졌던 내 팔다리나, 피부가 녹아내리고 근육이 타버려 내장과 뼈까지 노출되던 거인 프랑의 온몸은 살색이 아니라 약간 투명한 모습의 이상한 느낌이라 남은 TP를 모조리 쏟아부어 3단계의 힐링 웨이브를 쏘아냈다.

그리고 몸에서 푸른 빛의 물결이 뿜어져 나와 거인 프랑과 한 줌도 남지 않은 암흑이의 몸을 휘감는 걸 지켜보다가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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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카만 밤하늘에 보름달만 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달을 바라보고 있다가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꿈이구나. 이것도 어머니와 관련된 꿈인가?

보름달은 청백색이나 연황색과는 다르게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따뜻한 빛이었다.

긴 시간을 꿈쩍도 하지 않고 보름달만 바라보고 있었는데도 지루함이나 잡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신비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머릿속으로 남녀노소를 알 수 없는 현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해 불가의 아 해로다.=

뭐지?! 소리라고?

목소리는 어째서인지 날 지칭하는 거 같아 흠칫 놀라면서 주변을 돌아보려는데 몸은 물론 눈도 꼼짝할 수 없었다. 그러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보름달을 자세히 살펴보니, 달이라면 으레 보일법한 크레이터 자국이나 음영이 없는 게, 마치….

=백청이 한을 품었느니라.=

보름달이라고 착각했던 건 눈이었다. 그제야 하늘을 뒤덮고 사위를 밤으로 바꿔버린 존재가 어둠 속에 어렴풋이 들어온다!

밤, 밤하늘이 아니었어…! 크다!

어떻게 이런 존재가… 있을 수 있나 했지만 나는 비슷한 존재를 알고 있다. 그리고 눈앞의 거대한 존재 또한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히아리드와 누호디가 알려준 존재.

대해의 주인.

창해의 용왕.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빛을 몸으로 모두 가려버릴 만큼 길고 거대한 청룡처럼 생긴 그 존재는 어째서인지 하나뿐인 보름달 같은 눈을 한층 강하게 빛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 해는 호신에 신경을 써야 할지어다.=

그 말이 머릿속을 울리는 것과 동시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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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아….

귓가에 쏟아지는 빗소리와 전신을 두드리는 빗방울에 눈을 뜨,

“으익.”

눈을 뜨자마자 빗방울이 눈을 때린다. 아려오는 눈동자에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더니 어두운 회색의 세상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는 걸 느끼며 손을 들어 가슴을 꾹 누르니 대해의 주인의 모습과 이야기가 머릿속에 재생되는 것처럼 펼쳐진다.

백청이 나에게 한을 품었다고? 백청은 누구야? 용왕은 왜 내 꿈에 나타난 거지?

멍한 기분에 눈을 가늘게 뜨고 비를 뿌리는 시커먼 하늘을 올려다봤지만 거대한 청룡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

백청이라는 게 혹시 양아치 이무기를 말하는 건가? 그 양아치 이무기는 그럼 그 청룡이랑 뭔가 연관이 있는 거 아냐? 같은 뱀 종류잖아.

그럼 그놈을 토막 쳐버린 나한테 뭔가 안 좋은 감정을 보일 법도 한데 용왕은 왜 나한테 적의를 안 보내는 거지? 몸조심하라고 경고까지 해준 걸 보면 뭔가 이상한데….

용왕의 이야기를 떠올렸더니 양아치 이무기, 백청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놈은 죽지 않았다는 예감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놈의 예감은 진실인 게 틀림없겠지.

뱀 새끼가 토막 쳐졌으면 그냥 죽을 것이지 살아남아서 사람 힘들게 만드네… 그러다 문득 암흑이와 거인 프랑이 생각났다. 암흑이는 내 왼손에 쥐어져 있었고, 거인 프랑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고 되돌아보니 거인 프랑은 여전히 산비탈에 몸을 누인 채 조용히 혼절해있었다.

내가 앉아있는 오른쪽 커다란 가슴이 천천히 부풀고 천천히 가라앉는 걸 보면 숨도 제대로 쉬고 있다.

공간 지각으로 거인 프랑의 몸을 쭉 살펴봤지만 털 한 올 없는 프랑의 알몸은 잡티 하나 없이 매끈하다. 다행히 그 양아치 이무기의 공격에 입은 상처가 모두 회복된 것 같다.

…그리고 거인 프랑의 심장에 있던 회백색 기운이 사라진 걸 발견했다.

“…….”

불안해진다. 체온이 식어 오한이 들 정도로 불안해졌지만, 이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눈물이 날 정도다.

머리와 어깨를 두드려대는 굵은 빗줄기에 온몸을 맡겼다. 앞으로 어떻게 할까. 뺨을 때려서 거인 프랑을 깨워볼까?

…생각난 김에 바로 행동에 옮겼다. 거인 프랑의 뺨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여기서 힘을 실어 뺨을 때렸다간 뺨에 구멍 나겠는데?

때리는 건 안 되겠다 싶어 프랑의 귓구멍으로 자리를 옮겨 목에 위상력을 담아 프랑의 이름을 수없이 불렀지만, 거인 프랑은 미동조차 없었다.

거인 프랑을 깨우기 위해 귓구멍에 들어가서 TP를 주입해보고 거대한 젖꼭지에도 TP를 발라보고 다리 사이로 내려가 나보다 더 큰 음핵에 TP를 주입해봤지만 깨어나긴커녕 육체적인 반응조차 없었다.

프랑의 그곳에서 언제나 맡아지던 사과 향기조차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생각보다 충격이 크진 않았다.

그냥… 가슴 한쪽에 구멍이 뚫린 느낌이 들 뿐, 문득 가슴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땐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가슴을 두드리니 그제야 숨이 터져 나온다.

“흐으으으흐흐흐.”

오르락내리락하는 거인 프랑의 가슴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거인 프랑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뜨뜻한 게 빗물에 섞여 뺨을 타고 흐른다.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그냥 위상 세계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나.

프랑의 웃는 모습, 우는 모습, 슬퍼하는 모습, 기뻐하는 모습, 개구쟁이 같은 모습, 엄마처럼 푸근하게 웃어주던 모습.

프랑을 처음 만났을 때 봤던 처연한 미소와 그 뒤로 함께하며 보여주던 밝은 모습이 내게 손을 뻗으며 도망가라고 하던 마지막 모습과 겹치면서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러다 시야가 밝아지며 빗방울이 두드리는 거인 프랑의 얼굴이 보였다.

…….

귓가를 때리는 빗소리에 넋을 놓고 편히 잠든 거인 프랑의 얼굴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프랑이 사라진건 아니겠지?

프랑은 아직 살아있는거겠지?

눈물은 멈추지 않고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 작품 후기 ============================

두통! 좋은 대화수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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