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337화 (337/517)

00337  to rage trouble  =========================================================================

소리와 기척이 없이 영은이 뒤쪽에 나타났더니 가장 먼저 침묵이 내려앉아 있던 회의실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말도,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없이 무거운 침묵이 유지되는 회의실은 10분만 이렇게 있어도 숨 막혀 죽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영은이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종이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다.

영은이가 앉아있는 자리의 맞은편 벽에는 대형 패널 화면이 걸려있었는데 그 속에는 금발의 중년 남자가 회색 양복을 입고 앉아있었으며 그의 뒤로 미국의 국기와 함께 파란색 바탕에 황금색 수실로 동그란 원을 그리고 그 속에는 독수리가 다섯 개의 별과 함께 그려진 깃발이 나란히 서 있었다.

중년의 강직함이 느껴지는 외모의 남자였는데 아무래도 저 사람이 조 셀든 부통령이겠지?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도 저 사람이었다.

나와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곧고 깔끔하게 다듬은 노란색 눈썹이 살짝 꿈틀하더니 [흠.] 하고 얕게 헛기침을 한다. 남자의 반응에 영은이도 고개를 들어 셀든 부통령을 보더니 그의 시선이 자신의 뒤로 향하는 것을 보고 뒤로 돌아보며 놀랐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회장. 소리 없이 뒤에서 나타나시다니, 놀랐습니다.”

“제가 놀래키는데 좀 재주가 있어서요.”

싱긋 웃으면서 어깨를 살짝 으쓱였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영은이의 알게 모르게 지어진 미소뿐이었다. 장관인지 모를 14명의 사람은 굳고 무표정한 얼굴로 내 얼굴을 바라봤다.

저번과는 다르게 일말의 웅성거림도 없는 회의실에는 나와 영은이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다른 사람들은 날 바라보며 긴장된 표정을 하고 있는 게 의아해서 영은이를 보며 물었다.

“분위기가 너무 굳어있는 거 같은데, 미국이 괴롭히나요?”

[어흠.]

조금 비꼼이 담긴 말을 내뱉으니 조 셀든 부통령(추정)이 살짝 헛기침을 하는 게 들린다. 그 모습에서 분노라던가 딱히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걸 보면 나한테 마이너스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거 같진 않다.

“그럴 리가요. 모두들 회장이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제 옆자리에 앉으시지요.”

영은이한테 이렇게 존대를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 묘한 건 묘한 거고 그걸 드러내지 않으면서 영은이가 옆에 마련된 고급 원목 의자를 빼서 앉을 수 있게 해준다.

거기 앉으니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던 조 셀든 부통령이 감정이 희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랑 블루 회장. 저는 쓰러진 도날드 트럼펫 대통령의 직무를 임시로 이어받은 조 셀든이라 합니다. 미합중국의 부통령직을 맡고 있습니다.]

“…정서합니다.”

역시 조 셀든 부통령이었군. 셀든 부통령은 잠깐동안 날 유심히 살펴보더니 고저차가 거의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국은 정말 풍수지리학적으로 뛰어난 곳에 위치한 국가인듯 합니다.]

응? 양키가 풍수지리를 알아? 그보다 갑자기 웬 풍수지리? 영은이도 그다지 감정이 섞이지 않은 얼굴로 조 셀든 부통령의 이야기를 받아준다.

“셀든 부통령께서 지리학에 깊은 지식이 있으시다 들었는데 풍수지리에도 관심이 있으셨을 줄 몰랐습니다.”

[지리학을 파고들다 보니 동양의 흥미로운 기술에 자연 눈이 갔을 뿐입니다. 특히 풍수지리는 동아시아 고유의 사상이다 보니 동아시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겠지요.]

왜 저렇게 혓바닥에 꿀을 바르나 모르겠네. 영은이는 동아시아의 중심이라는 이야기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은채 이야기를 받아넘겼다.

“풍수지리학을 현대 과학으로 분석해보니 토속 신앙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기사를 저도 읽었습니다. 꽤 흥미로운 주제였었지요.”

[확실히 풍수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위해서는 지질학에서부터 계절학, 풍속학과 지리학에까지 폭넓고 다양한 지식을 필요로하니 그 얼마나 방대한 지식과 식견이 필요하겠습니까. 단순 미신과 토속신앙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깊고 오묘한 학문입니다.]

풍수 지리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길래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살짝 눈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조 셀든 부통령이 날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하니 동아시아의 중심, 그것도 풍수지리학적으로 뛰어난 곳이니 전 세계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함을 지닌 그랑 블루 회장이 태어난 것이겠지요.]

결국 그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거냐? 나름 날 추켜세워주면서 기분을 풀어줄 속셈인가 본데 어림도 없다. 무표정으로 조 셀든 부통령을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부통령도 날 빤히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우선, 쓰러진 도날드 트럼펫 대통령을 대신해 귀하에게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본래라면 직접 만나 사과를 드려야 하는 것이 옳겠지만, 현재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러지 못하는 점을 이해해주십시오.]

그러면서 다시 고개를 숙이는 조 셀든 부통령을 시큰둥하게 바라봤다. 쓰러진 게 아니라 쓰러트린 거 아냐? 아니면 쓰러진 척이라거나.

내 생각을 짐작한다는 듯이 조 셀든 부통령은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귀하께서 시기 좋게 트럼펫 대통령이 쓰러진 것 아니냐고 의심을 하실 법합니다. 그러나 도날드 트럼펫 대통령은 머슬 베어의 2차 레이드가 실패로 돌아간 보고를 받은 직후 급성 고혈압으로 쓰러진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도 고령이었기도 했었고 쓰러질 때 위치도 나빴기에 의자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치며 뇌진탕을 일으켰고, 2차 피해로 뇌졸중이 일어나 현재 의식 불명의 상태입니다.]

“회복 능력자의 회복으로도 치유가 안 됐어요?”

아니, 청와대만 해도 D 클래스 회복능력자가 상주하는데 미국 대통령이 사는 백악관에 회복능력자가 없다는 게 말이 돼?

어처구니없고 사과하기 싫어 수작을 부리는 건가 싶어 조 셀든을 빤히 바라보니 쓰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어처구니없어하시는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트럼펫 대통령이 쓰러진 직후 옆 방에서 대기 중인 C 클래스 회복 능력자가 달려왔지만…. 거듭된 충격과 노환이 터져 나와 능력으로는 회복과 치유로도 손 쓸 도리가 없었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도날드 트럼펫 대통령은 올해로 82살이란다.”

영은이는 셀든 부통령의 설명에 덧붙이듯 내 귀에 살짝 속삭여주는데, 82살이라고? 저번에 처음 봤을 땐 그렇게 늙어 보이진 않았는데?

[물론 이런 말만 해서는 회장의 연인이자 그랑 블루의 제1 보스를 납치하려 계획을 꾸민 저희의 사과를 받아주기 힘드실 겁니다. 그러니 말씀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진짜 재수 없이 넘어져서 뒤통수가 깨진 건가?

셀든 부통령은 용서를 빈다는 말을 하지 않고 우리가 하는 사과를 받아달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며 뭔가 말을 하는데 이게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사과 방식인가 싶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냥 듣고만 있으면 어떤 식으로 계속 나올까 가만히 입을 닫고 있으려니 영은이도 나서서 이야기를 막지 않고 같이 듣기만 하고 있었다.

[미국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귀하께서 사과를 받아주실지, 그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미국은 최대한 귀하의 뜻에 부합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용서를 빈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바라는 사항을 말하면 그것을 들어주는 걸로 사과를 주고받은 셈 치자는 뜻일 거다.

또 최대한 들어준다고만 하지 무조건 들어준다는 말은 안 했다. 느낌이 날 여전히 무시하는 거 같아 기분이 안 좋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얼굴이 점점 찌푸려지니는데 옆에 앉아있는 영은이가 날 다독이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정치는 감정적으로 하는 게 아니지만, 회장은 정치인이 아니지요. 그러니 감정적으로 행동하셔도 문제가 없어요. 그 점은 조 셀든 부통령께서도 확실히 주지하고 계실 터이니 회장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면 뒷감정이 남지 않도록 확실히 이야기하는 쪽이 좋을 것 같습니다.”

조 셀든 부통령도 영은이의 이야기에 공감하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서로 좋지 않은 감정을 털어버리고 동등한 입장으로 서야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법이지요. 확실한 화해를 위한 거래가 이루어진다면 귀하께서도 만족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니까 말로만 하는 사과보단 서로가 챙길 수 있는 이득을 챙기는 걸로 사과를 주고받은 셈 치라는 거지? 이게 정치꾼들의 사고방식인 거야? 체면과 자존심을 지키는 대신 물질적인 이득을 주고받는 걸로 끝낸다고?

…진짜 마음에 안 든다. 거기다 이제 와서 미국의 믿음 같은걸 받아서 뭘하겠냐 싶지만 여기서 대놓고 틱틱거리고 나가면 영은이의 입장이 곤란해질 테니 짜증 난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게까지 말하시니까 저도 편하게 물어볼게요. 아까 제가 들은 게 잘못된 게 아니라면, 미국이 저지른 잘못을 낮추면서 제가 하는 요구조건을 들어주는 "척" 하려는 거 같아 보이는데, 제가 잘못 이해한 걸까요?”

“으흠. 확실히 받아들이기에 따라 아 다르고 어 다른 화법이었지요.”

영은 이의 대꾸를 들으며 시선을 돌려 조 셀든 부통령을 보니 안색이 살짝 흐려져 있었다. 무시하고 이번엔 리디아에게서 받은 문자의 내용으로 노골적으로 한번 찔러보기로 했다.

“지금 머슬 베어 2차 레이드도 실패했고 거기다 워싱턴 D.C 근처로 이동 중이라면서요? 이대로 바닷가에 도착해 북상하기 시작하면 바로 미국의 수도가 나온다면서요. 그거 때문에 이렇게 대화의 장을 서둘러 마련하신 거 아니에요?”

내 말에 공간 지각으로 살펴보는 나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영은이의 눈이 미미하게 꿈틀거리고 조 셀든 부통령의 안색은 더욱 흐려졌다.

[…아니라고 대답해드릴 수가 없군요.]

“핵배낭도 통하지 않았다면서요. 자국에 전략핵미사일을 쏜다고 해도 통할지 안 통할지 모르는데 그러면서 그렇게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제 속을 긁으시는 거에요? 미국 정보부는 제 성격이 어떤 거라고 알려주지 않던가요?”

[…….]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조 셀든 부통령의 얼굴은 마치 가면을 쓴 거 같다. 몇 번을 말해도 묵묵부답으로 대할 거 같다는 예감이 든다.

참 협상이라는 거 짜증 나네. 한숨을 푹 쉬고 표정을 펴고서 말했다.

“제 감정선은 낮고 좁아요. 그러니 그 부분을 이해해주시고 대답해주세요.

[…말씀하시지요.]

“제 연인을 납치해 인질로 삼겠다는 계획은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거에요?”

[국토안전보장국과 연방긴급사태관리국의 국장의 발의로 도날드 트럼펫 대통령의 인가에 따라 태평양 7함대 사령관 로버트 필립 중장 및 국가방위안전사령부의 이능력비밀검찰국 알트론 베너 소장의 동의하에 이루어진 계획입니다.]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국토안전보장국과 연방긴급사태관리국과 국가방위안전사령부 이능력비밀검찰국…. 평범하게 말로 하려고 해도 혀가 꼬일 거 같은 집단의 이름이 줄줄이 흘러나온다.

“헐. 로버트 필립 중장은 납치 시도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는데요?”

[그 점은 저희도 놀랐었으나 그를 긴급 포박 및 호송 뒤 심문과 조사를 통해 회장의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것을 알게 된 후 두려움을 품고 계획을 포기했다는 고백을 받아냈습니다.]

무표정으로 내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을 해주는 조 셀든 부통령을 보니 또다시 의심병이 도지기 시작한다.

테이블에 손을 올리고 리듬 타듯이 손톱으로 톡톡 두드리기 시작하니 영은이는 날 돌아보고 조 셀든 부통령도 내 모습을 기억해두겠다는 듯이 주시한다.

여기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는 두 개.

하나는 이대로 미국에 한 번의 기회를 주고 영국이나 러시아처럼 나랑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나가게 하는 거.

다른 하나는 쭉 계획해왔던 대로 이번 납치 계획의 주모자와 가담자 전원을 처분하는 거.

어느 쪽이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걸까 저울질을 해보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영은이가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리더니 손은 깍지를 끼고서 입을 가린다.

입을 가려? 혹시나 싶어 공간 지각으로 영은이의 입 모양을 주시하고 있으니 곧이어 입술이 달싹거리기 시작한다.

-서하가 오기 전에 추궁을 했지만 지금 하는 이야기와 똑같은 대답만 받았어. 미국은 어디까지나 죄를 트럼펫과 로버트 필립, 알트론 베너와 납치 계획을 꺼낸 국장 둘, 다 해서 다섯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거라고 외교 정보부 차관들은 판단하는 중이야.-

그렇겠군. 결국 꼬리 자르기 형식으로 나가는 건가? 영은이의 겉모습은 눈을 감은 채 턱을 괸 모습이 생각에 잠긴 모습이지만 손에 가려진 입은 계속해서 뻐끔거린다.

-어떤 방식으로 나가든 이제 미국과는 좋게 지낼 수 없을 거라 생각해. 앞으로 러시아나 영국처럼 미국의 우호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는 없을 거야. 이제 와서 미국과 사이 개선을 추구하기보단 가능한 뜯어낼 수 있는 걸 뜯어내고 우리 서하의 울분을 풀어낸 다음 영국과 러시아를 등에 업고 미국을 견제하는 쪽이 나아.-

…영은이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제서야 머릿속이 교통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잠시 생각하는척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계획은 국토안전보장국과 연방긴급사태관리국 국장들이 꺼냈고 트럼펫 대통령이 허가해서 로버트 필립 중장이랑 알트론 베너 소장이 진행했다 이거에요?”

[그렇습니다.]

“그럼 주범격인 그들과 실행범들에게는 어떤 벌을 내리실건데요?”

셀든 부통령은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옆에서 누군가에게 서류를 건네받는다. 잠시 서류를 살펴보던 셀든 부통령은 깜빡했다는 듯이 날 보며 입을 열었다.

[아, 이것은 미국 연방 범죄자 양형 기준표입니다. 범죄 등급은 가장 가벼운 1급에서부터 가장 무거운 43등급이 있는데 43등급은 무기징역으로, 가석방, 보석방, 기타 어느 이유로든 출소하지 못하고 죽을 날까지 교도소에서 살아야하는 등급입니다.]

그러면서 서류의 전면을 보여주는데 미국 연방법 양형기준 개관이라는 표지와 함께 펄~럭이는 미국 국기와 독수리 마크가 찍혀져 있었다.

[트럼펫 대통령은 현재 혼수상태이므로 집무가 불가능함과 대통령으로서 취임 시에 낭독한 선서를 어김에 따라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하나 사고로 인한 의식불명 상태로서 탄핵안은 유보될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대통령직은 궐위 될 것이며 그 외의 공직자들은 공직 추방 절차에 따라 공직에서 추방되며 불소추 특권 또한 회수된 뒤 연방법원에 세워 법의 심판을 받게 될것입니다.]

뭔가 복잡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결국 트럼펫 대통령은 사고로 다쳐서 입원했고 그동안은 가만히 내버려둔다는 이야긴가. 다른 사람들은 직위 해제하고 자기네 나라 법원에 세워서 처벌하고?

저게 미국이란 덩치 큰 괴물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라는 건가? 최대한 맞아?

“미국 공직자가 저한테 죄를 저질렀는데 우리나라에서 법의 심판을 받는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 받아요?”

[…연방 헌법상 그들이 저지른 죄상은 국가 안보에 관련된 죄목이라 그렇습니다. 귀하께서는 그들을 한국의 법원에 세우길 바랍니까?]

…정치라는 거, 진짜 짜증 나는구만. 정치에 오만가지 법이 뒤섞여 있으니 더이상 이야기를 듣고 있다간 머리 아파서 화가 날 거 같다.

내 얼굴이 찡그려지고 화가 난다는 기색이 진해지자 옆에 있던 영은이가 손을 뻗어 내 어깨를 조물락거린다.

셀든 부통령도 잔뜩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한 가운데 아까 프랑이랑 화연이하고 이야기했던 네 가지 항목을 조금 고쳐서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그전에 영은이한테 물어봐야지.

“여사님. 제가 원하는 대로 조건을 걸어도 될까요?”

“당연히 되지요. 피해자는 회장이시니까요. 슬프지만 저희 정부는 힘이 약해 회장을 도와드릴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뒤에서 서포트해드리는거 뿐이니 회장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도록 하세요. 그 뒤는 정부에서 전력을 다해 서포트해드리겠습니다.”

조 셀든 부통령은 영은이의 말에 신경 쓰인다는 표정을 옅게 짓더니 내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기다리기 시작한다.

“좋아요. 첫 번째, 이번 납치 사건을 꾸미고 계획한 관련자들 전원을 IWO 능력자 재판소에 올리는 것. 두 번째, 주범격을 포함한 동조자 전원의 명단. 세 번째, 이번 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인정과 사과를 공개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공표할 것. 네 번째,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에 대한 영국, 러시아의 감찰.”

내 짧은 네 가지 조건을 들은 조 셀든 부통령의 무감정한 얼굴에서 살짝 찌푸림이 생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합당한 요청이라 생각….]

“똑바로 들으세요. 이건 요청이 아니라 요구거든요? 네 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들어주지 않으면 저는 두 번 다시 아메리카 대륙을 밟지 않을꺼에요. 이번 납치 계획 사건의 관련자들에게 불가사의한 사고사나 타살이 의심되는 일이 발생해도 마찬가지에요.”

조 셀든 대통령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지 날 보며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다 별수가 없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요구하신 내용을 전부 수용하겠습니다.]

뭔가 조건을 수정하지 않을까 했는데 꽤 깔끔한 태도로 받아들인다. 그러자 옆에서 영은이가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회장? 관련 내용은 모두 공개로 진행하되, 영상으로 남겨 증거물로 삼기를 추천해요. 레이드 역시 영상으로 기록하시고요.”

“그럴게요.”

[전면적으로 귀하의 요구를 수용하겠습니다. 그러니 두 마리의 이형종의 레이드 준비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필요하시다면 특별 수송기를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조건을 수정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걸리는 시간이 늘어날 테고 내 성질머리에 짜증 나서 뛰쳐나가 버리면 자기들만 곤란하니까 그냥 조건을 받아들인 가보다.

“일단은 저희 대통령님이랑 이야기 좀 해볼게요. 저도 몇 가지 준비해야 할게 있으니까요.”

[…모쪼록 빠른 처리를 부탁드립니다.]

============================ 작품 후기 ============================

오 해피 데이~

난 새드 데이~

@한걸음한걸음 // 미호는... 굉장히 숙성시켜야합니다. 우유가 치즈가 될 정도로!

@Brokenherat // 등급이라기 보다 그만큼 오래 살아야 정신 연령이 비슷해질겁니다 ^^

선추코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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