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334화 (334/517)

00334  to rage trouble  =========================================================================

“어제 이야기해주려고 했는데 분위기 때문에 말을 못 꺼냈었어. 영은이가 예상한 대로 내가 한 게 맞아.”

“흐응. 그렇구나. 혹시 항공모함에서 나한테 전화할 때부터 계획했던 거니?”

“응.”

미리 계획된 일이었다는 대답에 영은 이는 뭔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한쪽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더니 살짝 한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

“아아. 그래서 그냥 지켜본다고만 해달라고 했던 거구나? 후후. 상황이 아주 재미있게 돌아가겠는걸.”

조금 음산한 목소리로 후후 웃는 영은이한테서 악당 보스 같은 풍모가 언뜻 보이는 거 같다. 나도 덩달아 음침하게 웃으니 옆에서 프랑이 못 말린다는 얼굴로 한숨을 쉰다.

“아까 전화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야?”

“별거 아니야. 사막 색깔의 38m가량 되는 거대 거북이가 라스 베가스에서 남서쪽 130km 되는 지점에 발견됐는데 15번 고속도로를 타고 라스 베가스로 향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어.”

오호. 이제 움직이기 시작한 건가. 성격이 좀 유순해 보인다 싶었는데 10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움직이다니, 너무 신중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제 움직이기 시작했다니 곧 미국은 뒤집힐 거다.

그나저나 검은 곰은 아직 발견 안 됐나?

“그거 말고도 켄터키 주 국유림 산속에 한 마리 더 만들어놨는데. 그건 아직 발견 안 됐나 보네.”

“한 마리 더? 두 마리만 한 거니? 어떤 종류로? 등급은 얼마나?”

영은이는 한 마리가 더 있다는 이야기에 눈을 반짝 뜨더니 몇 가지 질문을 한 번에 쏟아낸다. 영상 기록은 흔적으로 남을까 봐 하지 않았는데, 해둘 걸 그랬나?

“응. 처음에는 그냥 미국을 멸망시키려고 위상 세계에서 수십 마리를 꺼내와서 퍼트리려 했었는데…. 그건 좀 심한 짓 같아서 그냥 2마리로 줄였어. 그 2마리도 해당 지역에서 발견한 최하위 이형종을 진화시킨 거였고.”

수십 마리를 퍼트리려 했다는 부분에서 영은이는 흠칫하고 놀랐지만 2마리로 줄었다는 이야기에 안심했다는 표정이다.

“아무튼, 남은 한 마리는 검은 곰이야. 아무거나 막 진화시켜놓을 수는 없으니까 번식력이 낮고 단독 행동을 하고 땅속이나 하늘, 물속을 돌아다니지 않는 개체로 골랐어. 사막 거북이는 위상력 100만, 검은 곰은 150만.”

“응. 판단을 잘했는걸? 서하가 TP를 먹였다면 아종일 테니 그럼 고위 아종에…. 위상 세계에서 꺼내오지 않은 것도 좋은 선택이었어. 혹시나 고위 아종이 동시에 두 마리가 발견된 시기에 우리 서하가 위상 세계를 들락거렸다면 기록에 남았을 테고, "설마?" 하는 생각에 널 의심할 일이 생길 수도 있을 테니까.”

“으음. 크리스마스인데 일하게 만들어서 미안.”

출근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러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길래 영은이 뒤따라 들어가서 미안해했더니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웃음을 지으면서 내 뺨을 잡고 진하게 입을 맞춰주었다.

“이건 서하를 위해 하는 내 일인걸? 그런걸 가지구 미안해하면 난 서운해~.”

내 뺨을 토닥여준 영은이는 정장이 가득 들어있는 옷장의 문을 열더니 무광택의 검은색 정장을 꺼내 든다. 옷을 벗기 시작하는 영은이를 구경하다가 깜빡하고 말 안 한 게 생각났다.

“아, 맞다. 소피아한테 위상석을 주면서 트럼펫의 재산을 공격하라고 한 거도 있어.”

“어머. 소피아가 그런 쪽으로도 재능이 있었니?”

“있는지는 모르겠고 자신 있게 말하길래 시켜놓은 거야. 그런데 주식? 자본 회사? 그런 쪽으로 공격해서 흡수하거나 뺏는 그런 일 잘하는 친구가 있나 봐.”

“하긴 소피아도 영국 귀족의 따님이었는데다 스파이 교육까지 받았으니 음해나 인신공격 쪽으로 기술을 배운 게 있겠네. 읏차.”

펑퍼짐한 스웨터와 숏팬츠를 벗고 하얀색과 노란색이 물결처럼 새겨져 있는 섹시한 속옷만 입은 영은이는 날 힐끔 돌아보더니 눈웃음을 치면서 엉덩이랑 골반을 살랑살랑 흔들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실실 나온다. 물론 피도 어느 한곳으로 몰리기 시작하고.

“후훗. 그럼…. 대충 견적이 나오는걸? 고위 아종 한 마리는 어찌어찌 대응을 세울지 모르지만 두 마리가 나타나고 서하가 적의를 가진 채 도움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후후. 정말 재밌겠어.”

속옷 차림으로 뒤태를 보이며 중얼거리는 영은이 모습에 슬그머니 다가가 브래지어 위로 가슴을 만지고 한 줌도 안될 거 같은 로우 라이즈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며 내 입술에 살짝 키스한다.

“하고 싶니?”

“괜찮아.”

어제 선물의 효과가 대단했나 보다. 그냥 봐도 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얼굴을 한 영은이는 조금 아쉬운 표정으로 엉덩이를 내 아랫배에 살짝 비비더니 꺼내놓은 정장을 입기 시작했다.

영은이도 요즘 정장은 치마가 아니라 바지 위주로 입네. 팔짱을 끼고 옷 속으로 사라져 가는 속살을 지켜보는데 그랑 블루 빌딩 출입구 쪽에 기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음. 그랑 블루 정문 출입구에 기자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있어.”

“공간 지각으로 본 거니?”

“응. 내가 나가서 한마디 할까?”

“미국에 나타난 이형종을 잡는 건 도와주지 않을 거라고? 그러지 말구 기다렸다가 미국이 토벌에 한 번 패퇴하면 그때 발표하도록 해. 그쪽이 더 효과가 좋을 거야.”

“알았어. 그렇게 할게.”

옷을 모두 갈아입고 가볍게 화장을 한 다음 소피아를 불러 머리카락을 보기 좋게 다듬을 때 수한은 샌드위치와 딸기 주스를 가져와 건네줬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끝내고 출근 준비를 마친 영은이는 테라스에서 기자들이 모인 걸 힐끔 보고는 혀를 내두른다.

“어휴. 함박눈이 내리는데 저렇게 밖에서 우비 쓰고 기다리다니, 기자도 할 짓이 못돼. 그럼 다녀올게?”

“응. 힘내.”

콩나물국에 8첩 반상으로 아침을 먹고 미호를 껴안고 꼬리를 쓰다듬쓰다듬하고 있으니 눈발이 점점 거세어졌다.

미호의 머리 위에 턱을 올린 채 미국 뉴스 채널에 시선을 고정하고 긴급 속보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보고 있으니 크크크 하고 웃음이 절로 나온다.

라스 베가스는 세계적인 유흥의 도시다. 도박 자본이 죄다 마카오로 빠져나가 마카오에 밀려났다고는 하지만 미국의 이름값에 라스 베가스 특유의 관광 상품 덕에 여전히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드는 도시다.(라고 인증기에서 봤다.)

그러다보니 고위 아종으로 진화한 사막 거북이가 라스 베가스로 향하고 있다고, 주 방위군인지 공군 전투 센터인지에서 나온 군인들이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대피시키는 장면이 뉴스를 통해 고스란히 방송되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어둠 속에서 자가용을 타고 남서쪽에서 15번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오는 사막 거북이 이형종을 피해 북동쪽 15번 고속도로를 타고 도망가거나 매캐런 국제공항에서 몰려들었다.

얼마나 다급한지 어두운 공항의 활주로는 환하게 밝혀져 비행기와 헬기가 쉴 새 없이 뜨고 내리고 있었고 비행기 표가 모두 팔렸다는 방송이 흘러나오는가 하면 라스베가스…. 왜 라스베이거스라고 하지?

아무튼 라스 베가스 북쪽의 넬리스 공군기지에서도 민간인의 대피를 지원하기 위해 공중 수송기마저 동원되고 있는 장면이 마치 종말의 도시를 보는 기분이다.

아무래도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대도시라 그런지 폭동이나 소요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듯하다.

그런 외국인 관광객들을 통해서 최고위 이형종이 습격하러 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라스 베가스 상공에서 시민들의 대피 장면을 입을 헤 벌리고 구경하던 미호가 입을 열었다.

- 사람들이 벌레 같아.

“미호야! 그런 말 하면 못써!”

- 우히힉! 자, 잘못했어요~!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프랑에게 응징을 당하는 미호는 귀를 파닥거리면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다가 후다닥 도망가버렸고 쫓아갈 것 같은 모습을 보이던 프랑은 TV 화면을 보더니 살짝 한숨을 쉬었다.

“군의 인도로 피난하고 있으니 그건 다행이네요.”

프랑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주고 다른 뉴스 채널을 돌려보지만 죄다 라스베이거스…. 아, 그러니까 철자는 Las Vegas인데 왜 베이거스냐고!

…라스베이거스로 이동 중인 37m짜리 최고위 이형종을 두고 방송을 하고 있었다.

오!

Live 표시가 달린 화면에서 갑작스레 하얀색 사막 거북이를 향해 미사일 다발이 떨어진다! 시뻘건 화염과 검은 폭연이 수십 미터에 걸쳐 터져 나오며 그 충격파가 헬기를 덮치는지 화면이 덜덜 떨린다.

폭발로 일어난 거센 광풍이 모래를 밀어내는 가운데 이어지는 미사일이 계속해서 사막 거북이에게 떨어진다.

“워우. 저런 걸로는 성질만 돋굴 텐데.”

[콰우우우우우!!]

역시나 시커먼 밤하늘을 환히 밝히는 폭발이 연달아 터져 나오고 시커먼 연기 속에서 하얀색 빛기둥 하나가 뿜어져 나오더니 뒤따라 날아오던 미사일을 죄다 터트려버린다.

시커먼 연기에 휩싸인 사막 거북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연기 속에서 새빨간 불탄이 사방팔방으로 튀어나오는데 사방으로 퍼져나간 불탄은 얼마 없는 식물과 사막을 활활 불태우기 시작했다.

주변이 대낮처럼 밝아지는 가운데 화나서 날뛰기 시작하는 사막 거북이의 모습을 촬영하던 방송국 헬리콥터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지 화면을 돌리고 꽁지가 빠져라 도망친다.

[말도 안 되는 위력입니다! 수십 발의 미사일에 적중당했는데 화이트 쏜 터틀의 껍질에는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질 못했습니다! 그을음 하나 생기지 않은 화이트 쏜 터틀은 분노한 포효를 지르며 미사일이 날아온 라스베이거스를 향해 속도를 높입니다!]

그래, 아무리 방송인이라지만 자기 생명부터 챙겨야지. 능력자였다면 거북이가 당장에 헬기를 격추했겠지만 일반인들이라서 살아남은 거 같다.

뉴스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영은이가 출근하고 나서 30분 뒤에 문자가 한 통이 도착했다. 그 내용은….

[라스베이거스 폭망 확정.]

[미국은 이제 능력자 소집 중. 사막 거북, 화이트 쏜 터틀은 라스베이거스 코앞에 당도.]

…였다.

미국은 이제서야 부랴부랴 능력자를 소집하기 시작했다는데, 이미 사막 거북이는 라스베이거스 코앞에 도달했으니 라스베이거스는 풍비박산 나게 된 거다.

“난 니가 아는 그런 사람이 아냐~ 난 나쁜 남자야. 난 나쁜 남자야 oh oh 난 좋은 남자가, 좋은 남자가 아냐~ 사람이 아냐~ 난 나쁜 남자야. 난 나쁜 남자야~ oh 미안해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어~”

“…무슨 노래에요?”

영은이한테 날아오는 문자를 확인하면서 소파에 몸을 파묻고 혼자 흥얼거리고 있으니 옆에서 프랑이 황당한 얼굴로 날 내려다본다.

“나쁜 남자?”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노래였는데 특정 부분이 입에 착착 감기는 거 같다.

그리고 화이트 쏜 터틀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사막 거북이가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기 직전, 검은 곰이 켄터키 주와 테네시 주의 경계선에서 날뛰는 게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상황은 가을바람을 맞은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3시간 뒤에 프랑과 소피아와 수한이 모여앉아 반찬 밑정리를 하는 가운데 리디아에게서 영상이 하나 도착했다.

“리디아한테서 영상이 하나 왔네.”

“무슨 영상이지?”

“리디아 공주님이요?”

화연이는 오늘 수련은 나갈 생각이 없는지 거실 카펫 위에 앉아 고운 천으로 이스펙트를 꼼꼼하게 닦고 있었고 프랑도 옆에서 그걸 구경하고 있었는데 둘 다 내가 한 말에 관심을 보였다.

“첨부된 동영상 파일 이름은…. "사랑을 담아서, 리디아." 라고 되어있어.”

눈이 가늘어지는 프랑을 보니 리디아의 안녕을 빌어줘야 할 거 같다.

아무튼, 홀로그램창을 띄워서 크게 만드니 거실 바닥을 암흑이와 함께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게임을 하던 미호도 발발거리면서 기어와 홀로그램에 시선을 줬다.

영상은 위성에서 직접 찍은 영상을 보내주는 것인지 화면에 알 수 없는 이런저런 수치와 함께 시간이 표시되고 있었는데, 표시된 시간은 오후 8시경이다. 여기랑 라스베이거스랑 시차가 14시간이던가? 그럼 한국이 오전 10시가 되니까….

1시간 전이잖아?

캄캄한 어둠 속의 라스베이거스는 곳곳에 화광이 충전해 밤하늘을 가득 밝히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화이트 쏜 터틀이라고 이름 붙인 사막거북이가 입에서 레이저 브레스를 뿜어내며 라스베이거스를 파괴하고 있었다.

150km를 3시간도 안 돼서 주파했다니, 미사일 공격에 완전히 빡쳤나보다.

등껍질의 삼각뿔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 부분도 공격용이었는지 그곳에서 아까 뉴스에서 봤던 샛노란 불덩어리를 연달아 쏘아 올리며 주변 빌딩을 터트려대고 있었고 네 다리에 나 있던 뾰족한 가시들은 땅에서 전차가 몰려올 때마다 발사되며 전차를 벌집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거의 어른 몸통만 한 바늘들이 빠르게 발사됐다가 금방 자라나는 모습을 보니 근접과 원거리 모두 커버가 가능한 원거리 타입이다.

소리는 없는 단순 영상이었지만, 소리가 없다는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영상미가 존재하는 파일이었다. 이로써 라스베이거스는 폭망 결정이다.

다만 화면에는 전차나 전투기 같은 것들만 보이고 능력자들은 없는 걸 보면 군인들이 시간 벌이용으로 투입된 거 같아 보이는데, 전선이 밀려난 것인지 어쩐건지 싸움 장소가 라스베이거스 한복판이다 보니 그냥 장렬하게 말아먹은 거 같다.

“흉악하네요….”

화이트 쏜 터틀의 벌어진 주둥이에서 집채만 한 레이저가 뿜어져 나와 고층 빌딩과 호텔들을 단숨에 녹여버리는 걸 본 프랑이 착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리디아에게 받은 영상을 영은이한테서 보내주고 슬쩍 손을 뻗어서 프랑의 가느다란 허리를 끌어안으며 귀에 속삭였다.

“대피할 시간은 충분했다고 하니까 일반인들의 사망 같은 건 없을 거야. 아까 뉴스 화면에도 민간인들의 대피 장면이 가득했었잖아. 영상에도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도 없었고.”

“그렇겠죠?”

하지만 홀로그램창에서 재생되는 영상은 온 도시에 화광이 충천해 하늘을 밝히는게 마치 석양이 지는것 같이 보인다.

“석양이… 진다….”

“네?”

“응?”

“방금 석양이 진다고 하셨잖아요.”

“어어. 왠지 그 말을 해야할거 같았어.”

미국 라스베이거스가 최고위 이형종(추정)의 공격에 파괴되고 있다는 소식은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우리나라 방송사들도 긴급 뉴스를 편성해 라스베이거스의 파멸을 보도하고 있었는데 그러는 와중에 100m에 달하는 거대한 검은 곰 이형종이 미국 동부의 켄터키와 테네시 주 일대를 박살 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터져 나와 그 충격을 더해갔다.

라스베이거스와 맞닿아있는 세인트 조지나 로스앤젤레스, 샌디에고같은 대도시의 시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는 기사가 연속해서 인터넷을 달구고 있었다.

또 다른 최고위 이형종의 등장으로 사막이라 주민이 한데 몰려있는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와는 다르게 인구가 분산되어있는 켄터키와 테네시 주의 주민들도 일제히 피난길에 올랐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에서 긴급 재난 방송과 문자 메시지 발송으로 켄터키 주와 테네시 주의 시민들에게 대피령을 발령하는 한편 테네시와 켄터키 두 개 주와 맞닿은 일리노이, 인디아나, 오하이오, 버지니아, 캐롤라이나와 조지아 앨라배마 미시시피 주도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인터넷 기사가 연속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중 내 눈길을 잡은 건 미국의 한 공영방송의 인터넷 기사였는데, 서부는 어쨌든 동부는 바로 근처에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와 위로 조금 더 올라가면 뉴욕이 있기에 정부에서 빠르게 능력자 레이드 팀을 조직해 출동시켜 한번 붙었지만 크게 패배했다는 기사였다.

“호오. 한번 맞붙었다고? 그런데 소식이 왜 전해지지 않았지?”

“지금 상황에서 레이드에 실패했다는 게 드러나면 패닉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테니 일부러 숨긴 게 아닐까요?”

프랑의 말이 일리가 있다. 수한과 소피아도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확실한 거겠지.

규모는 알 수 없지만 크게 패배했다고 하니 능력자를 죽이고 위상력을 흡수했다면, 잘하면 검은 곰이 고위 아종에서 최고위 아종이 됐을 수도 있겠는데…. 그럼 단순 능력만으로 초위가 되나?

초위는 얼마나 세지? 초위급 이형종이라는 부분에서 조금 긴장되긴 하지만 검은 곰 이형종은 단순한 신체 강화 타입인 데다 그 덩치로 날아다닐 수 없을 테니 공중전으로 싸움을 진행해가면 한번 붙어볼 만 할 거다.

그러는 와중에도 미국은 영은이의 발표와 나에 대한 어떤 반응도 보여주지 않고 있었는데 영은이에게서 다시 문자가 한 통 들어왔다.

[발표할 때가 왔어!]

[미국 안도와줄꺼얌. o(-`д´- 。) 발표발표!]

장난스러움이 가득한 문자지만 미국 처지에서는 절대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내용의 문자를 확인하고 피식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표하시는 거에요?”

“응. 영은이가 지금 발표하라고 하네. 그랑 블루 빌딩 정문에 외국인 기자들까지 잔뜩 몰려있으니까 저기 가서 발표하면 되겠다. 화연이도 같이 가자.”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화연이를 바라봤다. 그런데 화연이는 내가 불렀는데도 못 들은 것 마냥 거실 창 앞에 앉아 바깥만 보고 있었다.

“…?”

화연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웅웅거리는 누호디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아침을 먹은 뒤로도 이스펙트를 쥐고 창가에 앉아 가끔 고개만 끄덕이는 모습을 지금까지 보이고 있었다.

나랑 프랑이 근처에 다가왔는데도 눈치 못 채고 이스펙트를 두 손으로 꼭 잡은 채 멍하니 함박눈이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궁금함이 든다.

누호디한테 무슨 이야기를 듣길래 이렇게 넋을 놓고 있는 거지? 프랑과 눈을 마주치니 프랑도 이스펙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녀도 누호디가 뭐라고 하는지 궁금한가 보다. 프랑과 함께 화연이의 손에 잡혀있는 이스펙트를 함께 잡았더니 누호디의 조금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니까 화연이 다리를 벌리고 남성의 다리 쪽을 향하여 걸터앉아요. 화연이 무릎으로 몸을 지탱하면서 얕게 삽입하고 허리 운동을 하면서 만족하면 중단하는 거지요. 피로가 회복되기 전 성행위를 하면 복부가 뜨거워지고 소화기 계통에 병이 나며 기가 쇠하게 돼요. 이것을 피하고자 그런 체위를 취하면 효과가….]

…뭐야 이거.

============================ 작품 후기 ============================

뭐긴 소녀경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