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332화 (332/517)

00332  to rage trouble  =========================================================================

남은 건 집사와 하녀에 미호와 히아리드, 암흑이에게 줄 선물이었는데 고심할 것도 없이 대충 필요하겠다 싶은 걸 골랐다.

최수한은 늘 집사 정장을 입고 다녀서 여성용 커프스 버튼을 샀고 소피아는 내게 정신 조작의 시험 대상이 된 후로 나에게 매여있다는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는지 종종 사슬 목걸이…. 좋게 말해서 사슬 목걸이지 개목걸이나 마찬가지인 목걸이를 걸고 다니길래 검은색 타투타입의 초커 팔찌 세트를 샀다.

히아리드한테는 흰색과 노란색이 기묘한 패턴으로 수 놓인 실크 스카프를 네 장 샀고 미호한테는 그랑 블루 지하 대형 마트에서 과자랑 사탕을 미호 몸보다 커다란 상자에 담아 주면 행복해할 거 같아서 그랑 블루 지하의 대형 마트에 들렀다.

어지간한 대형 백화점보다 밝고 깔끔하게 꾸며진 수백 평 규모의 마트에는 주변 아파트 주민들도 애용하는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총관리인이 달려와서 허리를 꾸벅꾸벅 숙이길래 좀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곧 그랑 블루 레이드 팀의 직원이란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큰 상자 있을까요?”

“커다란 상자 말씀이십니까? 어느 정도를 원하시는지요?”

“사람 키보다 큰 상자에 과자를 가득 담을 수 있는 거면 좋겠네요.”

“당장 제작해드리겠습니다.”

그러더니 총관리인은 물류관리창고로 들어가더니 넓다란 골판지를 순식간에 접고 붙여서 정말 사람 크기만 한 상자를 만들어왔다.

그 뒤로 마트 총관리인 아저씨는 직접 상자를 들고 따라다니면서 과자를 담는 걸 도와주고 알록달록한 포장지로 포장까지 해주길래 고맙다고 인사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언제라도 방문해주십시오!”

…어휴. 그랑 블루 레이드 팀의 직원이라 그런지 깍듯하게 대해주는데 그거 때문에 사람들 시선이 원…. 그냥 다음부터 딴 데 이용하던가 해야겠다.

그럼 남은 건 암흑이 선물인데 암흑이는 그야말로 순수한 이형종 그 자체에 가까우니 인간의 선물보단 내 TP를 1만 정도 응축시킨 TP 구슬을 선물로 주는 게 낫겠다.

필요한 걸 모두다 샀을 땐 1시간이 훌쩍 넘어가 버렸다.

사온 선물을 들고 바로 위상석 창고 방으로 공간 도약을 한 다음 선물을 내려놨다. 여기 놔두면 누구도 눈치 못 채겠지. 딱히 서프라이즈를 노리는 것도 아니지만 기습적으로 주는 게 더 놀라겠지? 흐흐흐.

거실로 공간 도약했더니 때마침 미호가 등 뒤에 자기 몸집의 5배가 넘는 꽃을 바람으로 띄운 채 테라스에 내려서고 있었다.

내가 시킨 대로 강남의 꽃집이란 꽃집은 전부 돌아다니며 꽃을 죄다 긁어모으고 있는 거 같다. 거실에는 이미 비슷한 부피의 꽃동산 다섯 개가 세워져 있었다.

거실에 꽃 뭉치를 내려놓더니 달려와 내 가슴을 끌어안으며 물었다.

- 주인님~ 꽃 더 사와야 해?

거실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이 쌓인 꽃동산들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면 됐어. 그럼 장식을 시작해볼까?”

크리스마스 이브라 그런지 꽃은 장미 계통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는데 일단 꽃봉오리 쪽을 제외한 줄기를 모두 자르도록 미호한테 시켰다.

- 알았어!

자신만만하게 대답한 미호는 바람을 정밀하게 일으켜 조종하더니 정확하게 꽃잎만 남기고 바람으로 잘라내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미호의 목에 매달려있던 암흑이가 어처구니없어하며 미호의 여우 귀를 잡아당기면서 입을 뻥긋거린다.

-문디 호냥아. 꽃잎만 남기면 어떡함! 단디 줄기만 못 자름?!-

- 아야야. 귀 잡아당기지 마아!

이제는 사투리까지 쓰기 시작하는 암흑이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며 미호는 줄기만 바람으로 잘라내면서 한쪽에는 꽃봉오리만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미호와 암흑이가 소란을 피우니 자기들 방에 있던 수한과 소피아가 나오면서 꽃에 파묻힌 거실을 보고 놀란 눈이 됐다.

그런데 소피아는 언제 돌아왔냐? 소피아는 그렇지않아도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며 꽃 천지인 거실을 돌아보며 웃음 짓는다.

“호와아? 이 꽃들은 다 뭔가요, 주인님?”

“우리 첫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그냥 장식해보는 거야. 넌 아까 나가더니 언제 돌아온 거야?”

“앗, 방금 언니에게 다녀왔어요! 언니를 통해 주식 귀신에게 연락을 했거든요!”

주식 귀신? 소피아는 눈치 빠르게 미호가 줄기만 딴 꽃으로 집안을 보기 좋게 꾸미기 시작하면서 대답했다.

수한도 단정하게 늘어트린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보기 좋게 올려묶은 다음 소피아를 도와 집안 이곳저곳에 색깔별로 치장하는데 볼이 살짝 붉어지고 눈꼬리가 조금 늘어지는 게 말은 안 해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넵! 그 인간은 할 줄 아는 거라곤 주식밖에 없어서 이런 때라도 써주지 않으면 방구석 폐인밖에 되지 않는답니다!”

방구석 폐인이 뭐 어때서! 남한테 피해 주지 않는 건전한 취미구만! …아니, 내가 한때 방구석 폐인이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그 사람하고 같이 일할 거야?”

“네! 기대해주세요!”

꽃봉오리들을 한가득 품에 안은 소피아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할 정도니 더이상 묻는 건 말아야겠다. 나중에 때가 되면 알아서 이야기해주겠지.

임시 연구소에서 돌아온 히아리드도 테라스를 통해 거실로 들어오며 꽃 천지인 집안을 돌아보더니 드물게 빙그레하고 웃었다.

- 히아리드가 웃었어!

-오오. 천사 미소, 오오.-

=아, 으흠.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무튼 미호는 꽃에 달린 줄기들을 바람으로 잘라내고 잘라낸 꽃잎을 소피아가 장식하고 히아리드와 수한은 정리하고 난 뒤에서 지켜보고.

분할 업무를 시작하니 금세 집 안을 꽃으로 가득 채우고 꾸밀 수 있었다. 발목 높이까지 쌓인 각양각색의 꽃봉오리들이 집안 가득 차있으니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히아리드는 꽃을 좋아했는지 꽃망울을 들어 향기를 맡으며 작게 미소 짓는 모습이 보였다. 엎드려서 거실에서 방으로, 주방으로 살살 길을 만들기 시작하는 녀석들의 등을 내려다보다가 인증기를 켰다.

영은이는 일이 바쁠 거 같지만, 진짜 중요한 할 이야기가 있으니 바쁘더라도 집에 와서 꼭 저녁 먹고 가라고 신신당부하는 문자를 보냈다.

연인들한테 다 선물 주는데 혼자만 날짜 지나서 받으면 안 되니 중요한 일은 맞지. 거기다 내가 미국에 풀어놓은 이형종 이야기도 해줘야 하고.

“이, 이게 다 뭐니?”

내 문자를 받은 영은이는 정확히 7시에 퇴근해서 집에 도착했는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꽃밭이 된 집안을 둘러보더니 기분 좋은 당혹감을 보이면서 꽃의 길을 따라 꽃으로 뒤덮인 소파로 다가오며 물었다.

“맘에 들어? 크리스마스트리는 식상해서 해본 거야. 미호가 많이 도와줬지.”

- 많이 도와줬어!

꽃이 거실 바닥에 한가득 깔려있어서 공중을 둥둥 떠다니며 게임을 하던 미호가 손을 번짝 들면서 기운차게 대답한다.

“가슴이 간질간질한걸~?”

영은이는 화사하게 웃으면서 내 입술에 살짝 키스해주고 미호한테도 뺨에 뽀뽀를 해줬다.

- 이히히.

뒤이어 프랑과 화연이도 집에 도착해서는 꽃밭 천지인 집 내부를 놀란 눈으로 두리번거렸다. 눈이 동그랗게 변한 화연이는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꽃길을 따라 소파로 다가오고 프랑은 예쁘게 눈웃음을 짓더니 스르륵 날아와 내 뺨에 쪽, 하고 키스를 해줬다.

“정말 예뻐요! 미호가 왔다 갔다 하길래 뭐 하는 걸까 생각했는데 이런 이벤트를 꾸미고 있었군요?”

“뭔가…. 고생을 많이 했을 거 같군.”

“미호가 없었으면 못했을 거야.”

내 말에 프랑은 기특하다며 미호를 끌어안고 뺨을 비벼주고 화연이도 손을 뻗어 미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미호는 여우웃음을 지으면서 공중에서 빙글빙글 떠다니며 기뻐했다.

- 우헤헤~.

“우선 세 사람 다 씻고 와. 밥 먹자.”

내가 먼저 씻고 나서 집안을 꾸미다가 떨어진 꽃잎만 모아 욕조에 꽃잎을 잔뜩 띄워놨지.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욕실의 모습도 마음에 들어 할 거 같다.

세 연인은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욕실로 들어가더니 욕실에 가득한 꽃잎에 또 웃음을 터트린다.

[어마?]

[호호호. 꽃잎 욕조네?]

꽃잎 욕조에 즐거워하면서 목욕을 끝내고 나온 연인들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파에 앉아 꽃봉오리를 들고 향기를 맡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영은이는 중요한 일이 뭔지 궁금해하는 거 같았지만 수한과 소피아가 음식이 가득 차려진 상을 들고나오자 일부러 이야기를 꺼내 좋은 분위기를 망치기는 싫었는지 웃으면서 저녁을 들었다.

화기애애한 저녁 식사를 끝내고 상을 치운 뒤에 모여서 차를 마시면서 잡담을 이어갈 때 준비했던 선물을 가지고 나왔더니 연인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특히 프랑이랑 영은이는 멍하니 내 손에 포장된 각양각색의 선물들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왜 당황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포장된 작은 상자를 집어 프랑의 손에 올려줬다.

“자, 이건 프랑한테 주는 선물.”

손바닥 크기만 한 조그마한 선물상자를 받아든 프랑은 기쁘고 당황스럽고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선물 상자를 받았고 화연이도 직사각형의 좁고 긴 선물 상자를 받더니 멍한 표정이 됐다.

영은이도 프랑이 받은 선물 상자와 비슷한 크기의 선물 상자를 받더니 고맙고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이걸 어쩌니. 우리는 서하한테 줄 선물 같은 거 준비도 못 했는데….”

아, 그거 때문인가? 프랑도 화연이도 당황이 가득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길래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나한텐 너희들이 가장 큰 선물이야.”

그러자 잔뜩 감동한 표정으로 세 연인이 날 끌어안더니 내 얼굴에 키스를 퍼붓기 시작한다!

“고마워요, 서하!”

“고, 고맙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니,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으흠흠. 자, 너희들 것도 있어.”

옆에서 살짝 부럽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소피아와 수한, 미호와 히아리드와 암흑이에게도 선물상자를 하나씩 건네주니 얼굴이 환해지며 감동이 터져 나올 거 같은 모습이 됐다.

특히 자기 키보다 더 큰 상자를 받은 미호는 멍하니 알록달록한 색종이로 포장된 상자를 들어보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있는 힘껏 상자를 찢어버렸다.

부욱.

- 우왕?!

미호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뻥 터지면서 쏟아져나온 과자봉지가 미호의 머리 위로, 주변으로 우수수 쏟아지니 눈이 화등잔처럼 커진다.

- 우왕! 우왕!? 이거 전부 과자야?!

“그래. 사탕 같은 건 먹고 나면 꼭 양치하고.”

- 꺄아아~! 주인님 진짜 진짜 사랑해~! 우와아~!

미호의 여우 귀가 미친 듯이 팔락이고 새하얀 일곱 꼬리도 풍차처럼 빙글빙글 돌며 기쁨을 주체못하고 방방 뛰며 행복해한다.

겨우 과자인데 저렇게 좋아하다니 좀 쑥스럽다.

주변에 쏟아진 과자 봉지들을 끌어안고 행복한 표정으로 뒹굴뒹굴하는걸 보고 웃고 있는데 소피아도 선물상자를 풀어보더니 조그마한 가죽 케이스를 열어 사슬 문양의 초커와 팔찌를 꺼내 들고 떨리는 눈동자로 날 보면서 울먹거렸다.

“가, 감사합니다아…. 평생 보물로 삼을게요…!”

수한도 손톱 크기만 한 푸른색 구슬 안에 은하수가 떠 있는듯한 보석을 가공한 두 개의 커프스 버튼을 꼭 쥐더니 잔뜩 홍조가 오른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히아리드도 자기 머리카락과 날개 색이 아름답게 수 놓인 커다란 스카프를 보더니 자기 목에 두르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고 암흑이는 1만 TP가 응축된 푸른 구슬을 보더니 갑자기 온몸이 흐물거리다가 자기 가슴 속에 TP 구슬을 담아버렸다.

탐스럽게 부푼 가슴 사이로 푸른 구슬이 떠다니는 게 마치 슬라임의 핵처럼 보인다.

-뾰, 뿅 간다…!-

선물의 가치에 비해 과하게 기뻐하는 녀석들을 보고 있으니 선물 받은 게 그렇게 좋을까 싶은데 프랑도 포장지가 찢어지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풀더니, 손바닥만 한 투명한 다이아몬드 형태의 용기 안에 연한 핑크색의 향료가 담긴 향수병을 꺼내 들고 그야말로 달이 빛나는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건….”

“동백꽃을 모티브로 한 향수야. 시향해보니 바로 프랑의 모습이 떠오르더라구.”

“고, 고마워요. 서하.”

살짝 눈물이 맺힐 만큼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헤죽하고 얼굴에 웃음이 맺힌다. 그다음은 화연이가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풀었는데 바로 드러나는 두 세트의 속옷을 보고 얼굴이 빨갛게 변해버렸다.

“이, 이건 뭐냐.”

“어, 속옷. 어떨 땐 소녀 같고 어떨 땐 요녀 같은 화연이가 생각나서 산 거야. 맘에 들어?”

“으, 음. 마…음에 든다.”

민망한 얼굴로 얼굴을 붉히면서 속옷을 만지작거리는 화연이에게 다가간 영은이는 짓궂은 얼굴로 붉어진 뺨을 콕콕 찌르니 화연이는 움찔하면서 영은이를 돌아봤다.

“좋겠는걸~? 연이 너는 속옷 선물의 숨겨진 의미같은건 모르니?”

선물의 의미…라고? 그런 건 생각 못 했는데. 프랑이 눈물을 살짝 보일 만큼 기뻐한 것도 선물의 의미 때문이겠지?

그, 그래도 영은이가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나쁜 건 아닐 거야! 당혹스러운 기분을 감추면서 화연이를 보니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안하다. 이런 쪽으로는 젬병이라서….”

“속옷 선물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이 경우에는 두 가지 다 적용되는 거려나?”

키득거리는 영은이의 98% 부족한 설명에 화연이는 그냥 붉어진 얼굴로 속옷이 든 케이스를 손가락 끝으로 쓸어내리기만 한다.

프랑과 화연이 선물을 개봉하는 모습을 지켜본 영은이도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포장지를 조심스레 벗기기 시작하니 모두들 영은이의 손에 들린 선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머.”

금방 풀어헤쳐 진 포장지 속에는 우아한 크리스탈 케이스에 손목시계가 들어가 있었다.

조그마한 다이아몬드를 촘촘하게 연결한 시곗줄과 아름답게 세공되어있는 시계를 멍하니 보던 영은이는 머뭇거림 없이 차고 있던 세련된 손목시계를 벗어버리더니 내가 선물해준 시계를 손목에 차고 전등의 불빛에 이리저리 비춰본다.

갑자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찍어내는 영은이는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으로 내 품에 안겨 왔다.

“…아유. 주책없게 눈물이 날려구 하네. 전등 빛이 너무 센 거 아니니?”

그때 속옷 선물의 의미를 찾아본 화연이도 내 옆으로 다가와 손을 꼭 잡아주고 프랑도 포근하고 옅은 동백꽃 향기를 흘리며 스르륵 날아오더니 내 뺨을 잡고 키스를 해줬다.

다들 지나치게 기뻐해서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쁘다.

각자 받은 선물을 보며 즐거움에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몰래 내가 준 선물들의 의미를 살펴보니, 향수는 나를 언제나 기억해주세요, 하는 의미였다. 프랑에게는 여러 가지 의미가 될 수 있는 뜻이다.

그리고 속옷은….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대체로 너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영은이가 그렇게 부러워한 거였나?

시계의 뜻은 무지 심플했는데, 단순하게 이 시간을 너와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나이가 우리보다 많은 영은이는 은근히 그런 면을 신경 쓰고 있었는데 시계를 선물해주니 감격이 터져 나왔던 거였다.

어떻게, 아무 생각 없이 산 선물이 의미를 생각했을 때도 연인들에게 알맞은 의미였다는 게 진짜 다행이다. 다음부터 선물할 때 의미도 생각하면서 해야겠네.

…그런데 대부분의 평범한 선물은 전부 좋은 의미잖아?

히아리드한테 선물한 스카프만 봐도 영원히 너만을 사랑한다는 뜻인데 내가 히아리드를 사랑할 리가 없잖아.

그날 밤은 감동과 감격에 찬 연인들의 헌신적인 사랑에 녹아버리는 줄 알았다. 그…. 말로 하기 부끄러운 곳까지 핥고 빨아주는데 솔직히 말해서 내가 해주는 건 좋지만, 입장이 반대가 돼서 받아주니까 기분이 무진장 이상했다.

[그만큼 당신의 마음에 감격했고 또 사랑한다는 이야기지요.]

“음…. 마음은 기쁘지만 뭐랄까, 내가 해줄 땐 좋지만, 막상 그런 행위를 받으니 기분이 좀.”

[후후. 그래서, 사랑하는 여성이 당신의 더러운 모든 것을 받아준다는 것이 기분 좋지 않았나요?]

“안더럽거든요? B 클래스에 오르면서 소화율이랑 흡수율이 완벽에 가까워져서 생리 활동을 더 안 한다고요. 완전 깨끗해요.”

투덜거리면서 중얼거렸지만, B 클래스인 화연이나 영은이는 3주나 4주에 한 번씩 볼일을 보는 걸 보면 이건 나만 해당되는 사항이다. 연인들한테는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는거 같아 말은 안 했다.

[어머, 배설 구멍으로 하는 성행위는 독특한 감각에 무척이나 황홀한 느낌이지만 하기 전의 준비나 하고 난 뒤처리가 워낙 까다롭고 지저분한데 그럴 필요가 없다니 그거 정말 좋군요!]

…아, 이 아줌마 그렇게 안 봤는데 섹드립이 쩐다. 성녀처럼 상냥하면서도 맑은 목소리로 19금 섹드립을 하니까 뭔가 배덕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장난이 아니야….

늦은 새벽까지 연인들과 온몸이 녹을 거 같은 사랑을 나눴지만, 몸도 정신도 너무 뜨거워져 버려서 잠이 오지 않아 간단하게 씻고 몸의 열을 식힐 겸 거실로 나왔었다.

불을 켜지 않고 거실 창을 열고 거실 소파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쐬고 있었는데, 이스펙트의 창대가 웅웅거리면서 울기 시작하길래 뭔가 할 말이 있나 싶어 잡았더니 지금 이런 상황이 된 거다.

“아 진짜…. 무슨 최고 무녀가 입이 그래요? 최고 무녀가 되려면 섹드립을 잘해야 한다거나 그런 게 있어요?”

[섹드립…? 아, 성적 농담 말인가요? 호호호. 무녀의 자리는 여성으로서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보아야 오를 수 있는 자리에요. 그리고 이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사랑하는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성행위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 추잡하고 부끄러워할 게 아니에요.]

아…. 이 아줌마의 성 개념은 어떻게 되먹은 것인지 모르겠다. 가만히 놔두면 이런 쪽의 이야기만 주구장창 할 거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든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절 부른 거에요?”

[후후…. 그대가 연인들과 하는 이야기를 지켜보며 깨달은 거지만, 당신은 누르라크군요?]

“누르라크가 뭔데요?”

[어머…. 그런 개념이 없는 세상인가요? 누르라크란 인간과 이형종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랑의 결실물을 말하는 단어랍니다.]

누호디의 이야기에 머릿속으로 번개가 치고 지나간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감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