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331화 (331/517)

00331  to rage trouble  =========================================================================

육체적으로 피곤하진 않지만, 정신적인 피곤함에 소파에 늘어져서 눈을 감고 있으니 프랑과 화연이는 할 일이 있다며 사무동으로 넘어가 버렸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동안 얌전히 앉아있던 미호도 게임기를 가져오더니 슬금슬금 내 곁으로 다가와서는 나랑 같은 자세로 소파에 늘어져 게임기의 볼륨을 줄이고 놀기 시작했다.

- 간지러워~.

미호의 부드럽고 몽글몽글한 꼬리를 만지작거리면서 쉬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면서 손님이 찾아왔다는 걸 알려준다.

우리 집은 기본적으로 손님을 받지 않는데. 찾아올 사람은 대부분 등록되어있고 평범한 방문객은 입구에서 차단하는데 누구지?

일어서기 귀찮아서 공간 지각으로 누가 올라오려는 건가 살펴보니 엘리베이터는 1층에 있었고 그 안에 리디아가 세쌍둥이와 함께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다용도실 쪽에서 걸어 나온 수한이 인터폰을 확인하더니 날 돌아보며 말했다.

“주인님. 리디아 이슬라 마리에타 공주님입니다.”

“어, 올라오게 해줘.”

아직도 교복을 입고 있는 걸 보면 방학하고 한고은네들이랑 놀다가 온 건가 보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이브인데 연인들을 위한 이벤트라도 해야 하나….

선물로 뭐가 좋을까 머리를 굴려본다.

액세서리는…. 봄에 목걸이로 선물했었지. 바쁜데 크리스마스이브라고 놀러 나가기도 그렇고…. 서울 시내 꽃집을 죄다 털어서 장미꽃으로 집안을 가득 채워놓을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도착 알림 소리가 들리면서 리디아와 세쌍둥이가 거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세쌍둥이의 손에는 동그랗게 잘 포장된 선물 상자가 하나씩 들려 있었는데, 공간 지각으로 상자 안을 들여다보니 이런저런 모양의 쿠키가 상자 가득 들어있는 상자였다.

“안녕하세요. 서하 경.”

“어서 와 리디아와 아이들.”

늘어진 상태로 손만 흔들어주니 리디아는 작은 미소를 그리면서 이쪽으로 걸어왔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물론 서하 경을 어찌할 수 있을 집단은 없겠지만요.”

그러고서 후후하고 웃은 리디아는 뒤에 세쌍둥이가 손에 들고 있던 동그란 쿠키 상자 중 하나를 받아서 미호에게 건네준다.

“미호 양? 이건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 웅? 이거 뭐야?

“한번 열어보세요.”

게임하면서 놀고 있던 미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거침없이 포장지를 뜯어낸다. 그리고 상자 속에 드러난 빨간색의 동그랗고 고급스럽게 치장된 양철 상자를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작고 귀여운 코를 실룩거리면서 킁킁하고 냄새를 맡더니 잽싸게 뚜껑을 열고서는 속에 든 쿠키를 꺼내서 냄새를 맡아본다.

- 헤에. 맛있는 냄새가 나.

얇고 부드러운 종이에 감싸져 있는 쿠키 하나가 미호의 손바닥만 하다. 미호는 합 하고 한 입 먹어보더니 눈을 번쩍하고 빛내고서는 빠르게 손을 놀리며 쿠키를 삭제해나간다.

“미호야. 선물 받았으면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 우물우물? 선물 고마워!

“후후. 별말씀을.”

손을 뻗는 암흑이한테도 쿠키 하나를 건네주면서 야금야금 먹어치우는 미호는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지 꼬리를 연신 살랑거렸다.

나도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물었다.

“거기 앉아. 오늘 방학식이었지? 학교에 별일은 없었어?”

“네. 친구들이 서하 경이 학교에 오지 못해서 아쉬워한 걸 빼면 다른 일은 없었답니다. 그리고 이건 교내 알림판 하구 겨울방학 행사 안내표에요.”

거기 앉으랬더니 히아리드 지정석에 앉아버리네. 쌍둥이들은 손에 든 선물 상자를 수한에게 건네주고 리디아의 뒤에 정렬했다.

흐뭇한 얼굴로 미호가 쿠키를 흡입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리디아는 얇은 가죽 책가방 안에서 두 권의 얇은 책자를 꺼내 준다. 하나는 그냥 평범한 겨울방학 알림판”으로 그냥 겨울 방학 잘 보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자는 이야기였고 행사 안내표는….

“올해도 겨울 축제를 하려 나보네.”

“서하 경도 참석하실 건가요?”

“아니. 겨울 방학 때는 할 일이 많아서 곤란해.”

겨울 축제는 말 그대로 겨울에 하는 축제인데, 눈이 많이 내리면 그 눈을 가지고 학교 운동장에서 각종 눈사람이나 조각품을 만드는 이벤트다.

눈이 얼마 안 내리면 인공강설기를 동원해 교내에 눈을 뿌려서 수십cm까지 쌓이게 해놓고 이벤트를 진행한다. 이 이벤트에 우승하면 우승 상금도 있고 무엇보다 영은이의 이름으로 진행하는 이벤트인 데다 50년 된 전통까지 있어 매년 겨울이 되면 전국의 이름난 조각가들이 찾아와서 겨울 축제를 진행한다.

작년에는 나도 누나의 손에 이끌려서 억지로 참가했다가 감기에 걸려서 골골거렸었지….

리디아도 딱히 그런 게 궁금하다기보단 진짜 묻고 싶은 건 따로 있지만 물어보기 곤란해서 딴 이야기를 꺼낸 느낌이다.

그럼…. 영국을 통해서도 몇 가지 떡밥을 뿌려놓아 볼까? 대충 이번처럼 고위나 최고위 이형종이 종종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충분하겠지.

리디아도 찾아온 이유가 납치 사건 때문일 테니까 그냥 말하라고 하면 먼저 이야기를 꺼내올 거다.

“그렇게 눈치 보지 말고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봐. 대답해줄 수 있는 건 해줄 테니까.”

“네! 그럼…. 미국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봐라. 물어보니 당장 본론으로 들어가 버리잖아. 리디아는 내가 먼저 질문에 대한 허락을 내비쳐주니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질문했다.

“지금 기분 같아서는 앞으로 미국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도와주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어떤…. 일이라도, 인가요?”

역시 눈치가 나쁘지 않고 머리도 좋은 리디아는 내 어감에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당혹스런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 주인님, 우물우물, 화 많이 났어. 우물우물. 프랑 하구 화연하구 영은 하구 다 화났어.

미호가 입안에 쿠키를 한가득 집어넣고 우물거리면서 말하는 이야기에 리디아는 조용히 침묵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살랑거리는 미호의 꼬리들을 쓰다듬고 만지작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물론 그 정도로 끝낼 생각은 없어. 일단 도날드 트럼펫이 화연이를 납치해서 인질로 삼으란 명령을 내린 게 틀림없을 테니 그 인간은 개인적으로도 파멸시킬 생각이야.”

“아무리 대통령이라지만 드러난 규모만 봐도 일개 개인이 멋대로 동원할 수단은 아니었긴 해요.”

“그래. 리디아가 가끔 도와주는 일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렇다고 해도 알려줄 수 있는 건 한도가 있는 법이야. 정보 규제 같은 거 말이지. 이해하지?”

“아, 네. 말씀대로에요.”

“그래도 몇 가지 도움을 받은 게 있으니까…. 이번 일을 일본의 우국신민회나 제국광명회라는 놈들 일처럼 간단하게 끝낼 생각은 없어. 게다가 최고위 이형종이 현실에 한 번 등장했잖아. 또 다른 최고위 이형종이 나타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내 입에서 나온 이야기에 리디아와 세쌍둥이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간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이형종이 이곳저곳에서 사는 걸 발견했었어. 이제 알겠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 거 말이야.”

물론 내가 신경 써서 확인한 건 미국땅의 이야기지만 리디아들은 바다를 말하는 줄 알고 눈동자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내 발언이 공개될 경우의 여파를 생각하는지 리디아의 긴 생머리 끝이 조금씩 흔들거린다. 공포에 질려서인지 두려움이 밀려와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둘 다일 확률이 높겠지.

리디아는 이 정도만 이야기해준 것도 충분한지 애써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숙였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저희 영국 왕실과 정부는 서하 경이 요청하면 얼마든지 손을 내밀어 도움을 드릴 거에요. 필요하시면 꼭 말씀해주세요?”

“알았어.”

리디아는 일부러 웃음을 지어 보이며 손을 흔들고 과묵한 세쌍둥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문이 닫히는 순간 인증기를 켜서 전화를 거는 걸 보면 영국 여왕한테 내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려는 거겠지.

좋아. 그럼 크리스마스이브의 이벤트를 준비해봐야겠다. 시간은 얼마 없으니 빨리 움직여야겠군.

리디아가 사준 쿠키, 벤스 쿠키를 먹는 미호는 맛있어하는 거 같긴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하나 먹어보니 은은하게 달콤하고 부드러운 게 우유와 약간의 설탕으로 맛을 낸 품격이 있는 쿠키 같다.

좀 더 자극적이고 달콤한 과자나 사탕을 더 좋아하는 거 같은데 아무래도 미호의 입맛은 초딩입맛같다.

그럼….

“미호, 암흑이. 출동이다.”

- 출동?

-출동!-

미호에게는 암흑이를 붙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신용카드 중 하나를 줘서 주변 꽃집에서 활짝 핀 꽃이란 꽃은 가리지 않고 모두 쓸어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 전부 사오면 돼?

“흰 국화 빼고 전부!”

- 응!

그렇게 미호와 암흑이가 세트로 강남의 꽃집이란 꽃집에서 모든 꽃을 모두 사 올 동안 나는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연인들과 펫들, 하녀들한테 줄 선물을 고르기 시작했다.

연인들한테는 어떤 선물을 줄까 고민했는데, 화연이와 영은이에게 줄 선물은 금방 고를 수 있었지만 프랑에게 줄 선물은 정말 선택하기 힘들다.

몸을 치장할 장신구를 선물하려니 종종 건물 벽을 통과해서 날아다니는 프랑을 생각해보면 어울리지 않은 거 같고 반영체인 프랑에게는 화장 도구도 의미가 없다.

흠…. 향수는 어떠려나?

향기…. 향기라.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동백꽃 향기가 무척 좋다고 한 적이 있었지?

영은이에게 줄 선물로는 까르띠에 부띠끄에서 발롱 블랑 드 까르띠에라는 여성용 시계를 사기로 했다. 매장의 위치를 검색해보니 다행히 프랑과 떨어질 수 있는 범위 안의 백화점에 있어서 프랑에게 들키지 않고 살 수 있겠다.

인터넷으로 시계를 찾아보니까 발롱 블랑 드 까르띠에가 쌀알만 한 다이아몬드로 시곗줄을 만들고 고급스럽게 장식해놔서 영은이의 손목에 어울릴 거 같더라고.

매장 앞에 공간 도약을 했더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흠칫 놀랐지만 무시하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까르띠에 매장 안에는 젊은 커플이 득실거렸는데 1억5천 정도 하던 시계를 일시금으로 결제하고 포장해달라고 하니 남자친구와 같이 온 여자들의 시선이 나한테 쏟아졌다.

“고객님? 이 신용카드는 사용 불가로 나오는데요. 다른 카드는 없으신가요?”

“응? 이 카드면 다 된다고 하던데, 다시 한 번 해봐요.”

“네? 이 카드가 뭐길래….”

뭐야. 혜령이 이모가 블랙 사파이어 카드는 결제 한도가 없다고 하면서 줬는데? 혜령이 이모가 잘못 알았다기보단 이 직원이 모르고 있을 확률이 더 높다.

주변에서 킥킥하고 비웃는 소리가 들려서 눈썹을 찡그리고 있는데 진열대 안쪽에 있는 문이 벌컥 열리면서 상대하던 직원보다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은 여자가 헐레벌떡 뛰어나와 날 상대하던 여자를 밀어내고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결례를 저질러 죄송합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아이라 실수한 듯합니다. 양해 부탁드려요.”

“뭐, 괜찮으니 빨리 결제해주세요.”

흐음. 치프 매니저라는 명찰을 단 여자한테 검은색에 은은한 푸른색이 감도는 카드를 건네주니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으면서 입을 열었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블랙 사파이어 카드를 결제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단말기가 필요하거든요.”

헤에, 그래서 그냥 결제가 안된 거였나?

그때 옆에 있던 좀 싼 티 나게 차려입은 여자가 옆에 서 있는 비슷한 양아치 차림의 격식 없는 복식을 한 남자를 보며 콧소리를 섞으면서 입을 열었다.

“오빠는~ 나한테 저거 해줄 수 있엉?”

“뭐? 미쳤냐? 저 시계 아까 얼마 하는지 못 들었어? 1억이 넘어, 1억이!”

남자는 황당해서인지 눈꼬리를 추어올리면서 어처구니없어하는데 여자는 묵묵히 남자를 지켜보더니 대뜸,

“…오빠 나 싫지?”

라고 말했다.

“뭐?”

“나 좋아하지 않으니까 저렇게 사주지도 못하는 거잖아.”

“하, 나…. 미친. 1억이 뉘 집 개새끼 이름도 아니고…. 꺼져 씨발.”

“오빠 지금 욕했어? 나한테 욕한 거야?”

“니가 씨발 정신이 제대로 박힌 년이라면 나한테 그딴 소리는 못해.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해준 게 얼만데, 뭐? 싫어? 네 골통에 든 된장이 썩어서 똥내가 풀풀 나는 게 싫어죽겠다, 이 쌍년아!”

…멀쩡한 커플 하나가 박살 난 거 같지만 내 탓은 아니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유리창 깨지는 거 같은 목소리를 무시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카드와 함께 고급스럽게 포장된 시계 케이스를 들고나와 두 손으로 내밀었다.

“왕림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불편하신 점이나 다른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이 카드가 이런 대응을 받을 만큼 귀한 건가 싶어서 좀 멋쩍어졌는데 마침 하나 더 물어볼 게 있어서 치프 매니저한테 고급 여성 속옷은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물어봤다.

“아, 고급 여성 속옷이라면, 잠시만요!”

치프 매니저는 자리를 비우면서 따라 나와 날 백화점 최상층 VVIP PREMIUM PLACE 라고 적힌 곳으로 안내해줬다.

어떤 대형 백화점에서는 VIP 전용 쇼핑몰이 있다고 들었는데 여기가 그런 건가 보다.

에스컬레이터부터가 신경을 많이 썼다고 주장하는 건지 황동을 도금하고 그 위로 화려하게 세공해놨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더니 입구에는 커다란 덩치의 검은 정상을 입은 사내 둘이 중압감을 풍기면서 좌우에 서 있었다.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시키기 위해 서 있는 거 같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두 남자는 몸은 꿈쩍도 하지 않고 눈만 움직이며 내 복장을 확인하는데, 그냥 흰 셔츠에 검은 면바지만 입고 있는 내 모습에 손을 들어 제지하려다 뒤따라 올라온 까르띠에 매장 여직원을 보고 멈칫했다.

“VVIP 고객님이십니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주세요!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여직원은 바로 어딘가로 뛰어가고 손을 반쯤 내민 두 남자는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이면서 "죄송했습니다." 하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죄송할 것 까지야…. 다시 정자세로 돌아간 두 남자를 앞에 두고 멀뚱히 서 있으려니 금방 돌아와서 금색 글자로 VERY VERY IMPORTANT PERSON이라고 쓰인 반투명한 금속 재질의 카드를 건네줬다.

금속 재질인데 반투명하다니? 신기해서 만지작거리고 있으니까 여직원이 미소와 친절이 가득한 얼굴로 설명해준다.

“저희 무한 백화점 VVIP 프리미엄 플레이스를 이용하시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발급에도 시간이 필요하지만, 고객님께서는 해당 기준을 충족하셨고 지금 바로 이용이 필요하신 것으로 판단되어 임시로나마 출입증을 발급해드렸습니다.”

호오, 이게 바로 VIP 마케팅이라는건가?

아무튼 매장까지 안내해주겠다는 여직원의 친절을 거부하고 빅토리아 시크릿 아너 호라이즌이라는 가게로 들어가니 매장 안에 있던 두 명의 여성 손님이랑 직원 둘이 날 힐끔 보고 귀여운 동물을 보는 눈빛으로 쿡쿡 웃는다.

“어서 오세요. 남자분이 혼자 들어오시긴 힘드셨을 텐데…. 어떻게 원하시는 것이라도 있으세요?”

“연인한테 선물해줄 건데 청순한 쪽이랑 섹시한쪽 두 가지를 추천해주실래요?”

“후후. 그런 분위기는 대체로 남자분마다 그 기준이 틀리기 때문에 매장을 한번 둘러보시고 마음에 드시는 것을 고르시는 게 어떠실까요?”

보통은 예산이 어느 정도냐, 얼마나 하는 걸 원하냐 물어보지 않던가? 여길 이용하는 사람들은 돈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건지 매장 직원은 가격은 언급도 안 하고 칠흑처럼 검은색을 베이스로 핑크색 쇼윈도에 진열된 속옷들을 안내해준다.

난 빅토리아 시크릿 하면 속옷 전문인 줄 알았는데 가방이나 화장품, 향수도 보이고 스카프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핑크색 동그란 통도 보인다.

그중에 검은색에 마치 꽃을 연상시키게 하는 섹시한 가터벨트 스타일의 검은색 속옷과 청순한 느낌이 드는 흰색과 검은색이 7:3의 비율로 나누어진 투톤 레이스 속옷을 발견했다.

“애인한테 저런 속옷을 선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선 여사님도 참…. 우리는 저런 선물을 받을 나이가 지났잖아요?”

“그건 그래요. 하지만 아쉽네요. 저런 총각에게 저런 속옷을 선물 받으면…. 아휴. 호호호.”

다 들려요. 아줌마들! 두 여자 손님은 속옷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날 힐끔거리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줌마지만 겉만 봐서는 30대 초중반의 색기가 뚝뚝 흐르는 여자들이다.

나 같은 총각한테 속옷을 선물 받으면, 뭐 어쩌게? 남편은 없어? 애인이라니?

…아무튼 내가 고른 속옷을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속옷을 포장하는 직원에게 계산을 위해 카드를 내밀었더니 매장 직원의 눈이 확 하고 커진다.

“블, 블랙 사파이어 카드…? 호, 혹시 고객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정서하요.”

어, 아까 시계 매장 직원은 모르던데 여기 직원은 이 카드를 알고 있나보다. 그런데 내 이름은 왜 물어봐?

내 이름을 듣자마자 매장 직원은 물론이고 두 색기 넘치는 아줌마도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란다.

“그랑 블루 회장?!” “어머!”

“헉!”

떨리는 손으로 내 카드를 받아간 여직원은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면서 내 얼굴을 힐끔힐끔 살피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카드를 천천히 긁으면서 이제는 노골적으로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하고 날 살펴본다.

어쩐지 부담스러운 시선인데다 아줌마들도 얼굴에서 묘하게 열기가 느껴지는거 같아!

카드 결제가 끝나자마자 매장 직원의 손에서 카드와 겉만 봐선 뭔지 모르게 예쁘게 포장된 속옷 상자를 뺏듯이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두 아줌마랑 직원의 눈빛이 꼭…. 침대 위에서 연인들이 보여주던 눈빛이라 섬뜩했다.

그다음은 프랑에게 선물해줄 향수를 사기 위해 고급 향수 판매장으로 들어가 동백꽃 향기를 첨가한 향수를 사러 향수 판매장으로 이동했다.

같은 층에 있는 향수 매장은 입구에서부터 사람의 시선을 끌어당기는듯한 부드럽고 시원한 향기가 맡아졌다.

“동백꽃은 그 향이 지극히 옅어 싱글 플로랄 타입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남자분께서도 그런 향을 바라시지 않으실 거에요. 하지만 그 향이 다른 향료와 섞이면 무척이나 매혹적인 향을 품게 되지요.”

향수 판매장의 직원은 우아하고 매혹적인 향기가 나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동백꽃 향수를 원한다고 하니까 살포시 웃으면서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동백꽃 향수는 없는거에요?”

“없다기보다는…. 후후. 직접 향을 맡아보시겠어요?”

그러면서 두 개의 향수 샘플을 가져와 보여줬는데 여직원이 내밀어 주는 향수 뚜껑의 끝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니 그 향기가 프랑의 성품과 매치가 되는 것처럼 굉장히 포근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코끝에 오래 남는 향수였다.

이거다.

“천연향료로만 이루어진 플로랄 부케 타입의 에튀드 퍼퓸 카멜리아에요. 오 드 퍼퓸 타입으로 농도 22%의 아주 진한 향기가 일품이지요.”

“이걸로 하죠.”

고민 없이 단번에 선택하니 여직원은 내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처럼 살짝 미소 짓더니 조용히 상품을 예쁘게 포장하기 시작했다.

연인들이 선물을 받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한걸~.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

아직 두 편은...ㅠ.ㅠ 어제는 어쩐지 글이 잘 나와서 두 편 올렸어요. 흐규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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