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330화 (330/517)

00330  to rage trouble  =========================================================================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집필한 군주론에 대해 열띤 분위기로 의견을 주고받던 둘은 수한이 깍아온 과일을 다 먹을 때까지 끝나지 않아서 좀 지루해져 버렸다.

한국 토종미녀상인 수한과 서양 대표미녀상인 프랑을 보는 건 눈이 즐겁지만, 귀랑 머리는 별로 즐겁지 않다.

“프랑 마님의 깊고 폭넓은 견해에는 감탄했습니다.”

“저도 수한이 군주론에 대해 그렇게 명확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을 줄은 몰랐어요. 참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어, 이제 끝났어?”

복잡하고 어렵고 지루한 이야기에 적응을 못 하고 멍하니 듣고만 있었더니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이제야 대화가 끝난 거 같아서 반색하면서 물었더니 수한은 죄송해하는 표정으로 살짝 허리를 숙이고 프랑도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미안해요, 서하. 많이 지루했지요?”

“아냐~ 괜찮아. 나도 귀가 트이는 기분이었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유익한 시간 자주 가지도록 해.”

미안해하고 죄송스러워하는 둘을 보니 무슨 말을 못하겠다. 괜찮다며 손을 흔들어주고 TV를 켜서 미국 뉴스 방송을 켰더니 영은이가 아침에 발표했던 내용이 재방송으로 흘러나온다.

그런데 한국의 항의문을 믿지 못하겠다는 아나운서의 이야기에 인상을 쓰고 있으니 수한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점심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니.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걸로 해줘.”

“예. 즉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주방으로 들어가는데 프랑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무언가 만들기 시작한다.

저 방송이 미국 현지인들의 대표적인 반응이라고 봐도 되는 건가? 문득 영은이한테 문자 한번 넣어주지 않은 게 생각나서 인증기를 켜서 돌아왔다는 문자를 날려주고 화연이도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져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 대기음이 흘러가고 늦게 떠오른 홀로그램 창에 화연이의 피곤한 얼굴이 보였다.

[서하.]

“응. 나 집인데 지금 어디야? 암흑이랑 미호도 안 보이네.”

잠시 머뭇거리던 화연이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국회 비공식 조사 청문회장에 함께 있다.]

순간 피가 싸늘하게 식는다. 청문회? 무슨 청문회? 청문회는 안 좋은 의미에서 쓰이는 거 아닌가?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겠지?

“누가 누구를?”

서늘하게 바뀐 내 목소리에 화연이는 잠시 할 말을 잇지 못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국회가 나에 대한 조사 청문회다.]

“국회의사당이지?”

[그래.]

“바로 갈게.”

여기저기서 일을 뻥뻥 터트려주시네. 크리스마스 선물이냐? 이빨을 드러내며 자리에서 일어서니 화연이가 다급하게 말린다.

[아니, 올 필요 없다. 이미 청문회는 끝이 났고 내용은 말 그대로 그날 그 장소에 있었던 일의 조사를 위해 질문을 받고 그에 관해 답하는 수준이었으니까! 네가 뭘 상상하는지 모르겠지만 안 좋은 일 같은 건 벌어지지 않았다.]

미국을 건드렸다고 국회의원들이 꼬치꼬치 캐묻고 괴롭히는 게 아니라고? 가만히 화연이를 보고 있으니 화연는 정말이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미호도 암흑이도 모두 여기에 있다. 여사님도 같이 있고. 이제 청문회도 끝났으니 여사님을 제외하고 다 함께 돌아갈 거다. 가서 이야기해줄 테니 오지 말고 기다려.]

“…알았어. 빨리 와.”

영은이는 또 못 온다니, 이번 일도 간단한 사항은 아니니까 며칠 또 청와대에서 살아야 하나보다.

화연이 말대로 10분도 지나지 않아 테라스에 화연이와 미호, 미호의 목에 메달린 암흑이가 내려섰다. 화연이가 올 때까지 살살 끓어오르려던 가슴을 진정시키며 거실을 서성이고 있었는데 날 본 화연이가 빠르게 걸어오더니 내 팔을 잡고 살짝 한숨을 쉰다.

그 옆으로 미호가 도도도 달려오더니 태클 걸듯이 내 가슴에 부딪혀왔다.

- 주인님~ 우히힝.

내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는 미호를 토닥여주고 화연이를 보면서 물었다.

“모두 설명해줘 봐. 어떻게 된 거야?”

“그래. 일단 앉지.”

내 팔을 잡아끌고 소파에 가서 앉은 화연이는 미호에게 프랑을 불러오라고 시키고 내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그전에, 갔던 일은 어떻게 됐지?”

“위상 세계에는 안 들어가고 미국 땅에 있는 놈들로 두 마리만 잡아서 고위 아종으로 만들었어. 한 마리는 모하비 사막에 있는 사막 거북이고 다른 한 마리는 켄터키 산속에 있는 검은 곰.”

“그건 다행이군. 네가 위상 세계에 들어갔다 나오고 나서 바로 고위 아종이 두 마리나 출현했다면 일반인들은 몰라도 능력자 연합은 널 의심했을 거다.”

“응. 위상 세계에는 안 들어갔으니까 괜찮아.”

음. 생각해보니 미국의 미친 기술력이라면 위성 촬영 기술 같은 걸로 내가 이형종을 만드는 장면을 포착하진 않았겠지…?

“혹시 위성 사진 같은 거에 내 모습이 찍혔지 않을까? 일부러 내가 한 짓인 걸 모르게 하려고 했는데 위성 사진 같은 데에 찍히면 곤란한데.”

“아무리 미국이 고성능 인공위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해도 그 넓은 땅덩어리 전체를 보완하진 못해. 네 모습을 판별할 만한 고해상도의 카메라를 가진 인공위성은 많이 없다. 그리고 그런 건 대부분 미국의 대도시를 감시하고 있지 사막 한복판이나 오지의 숲 속을 감시하진 않아.”

오, 그런가? 막 영화에서 보면 위성에서 찍은 사진을 확대확대확대보정해서 도트로 뭉개진 화면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건물 유리창 같은데 반사된 얼굴까지 확인해서 누군지 다 알아내더니, 역시 영화는 현실이랑 다른 거군.

“화연이는 어떻게 그런 걸 잘 알아?”

“…내 관심이 그런 쪽이니까.”

그러면서 화연이는 시선을 피하면서 얼굴을 붉히는데, 그런 쪽 취미라는 게 그렇게 부끄러워할 만한 일인건가? 그때 미호를 허리에 달고 손수건으로 젖은 손을 닦으며 나온 프랑이 화연이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어서 와요 화연. 별일 없었죠?”

“네. 한국으로 돌아와서 여사님의 호출을 받아 조지 워싱턴 항공모함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조사 청문회가 있었지만 큰일은 아니었습니다..”

“청문회요…? 방송이 되지 않은 걸 보면 비공식 청문회였나 보네요.”

프랑은 청문회라는 말에 살짝 놀란 표정이 됐지만 나와는 다르게 평범한 모습이다. 정말 화연이 말대로 큰일은 아니었나 보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날 힐끔 살펴본 화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육하원칙에 따라 그날 있었던 일을 구두로 설명해주고, 영상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자리였습니다. 정식으로 미국에 대한 항의문의 근거자료를 확보해야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증거 확보를 위한 조사 청문회였다는 건가.

미호는 서 있는 프랑을 힐끔 보더니 달려들어서 내 품 안으로 기어들어 왔다. 이 녀석은 유치원생 같은 외모에서 진화하면서 중학생 정도로 커졌는데 여전히 어린애 같은 성격이구만.

녀석의 복실복실한 꼬리를 어루만져주니 여우 귀를 파닥거리면서 좋아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서하가 출발하기 전 인증기로 통화를 연결해놨었지요. 덕분에 서하가 출발한 뒤, 블레이드 플라이어를 잡고 되돌아오기까지의 모든 상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항의문을 발표한 뒤 4시간 넘게 흘렀는데 이후로 어떻게 진행될지 예상되는 게 있나요?”

“로버트 필립 중장의 발언과 G.S 레이드 팀의 미카엘 그라나도 제2팀 보스 및 제2팀 보스 보좌의 행동이 모두 기록된 증거 자료를 확보했으니 이대로 미국의 반응과 대응을 지켜보고 적합한 대처를 취하는 식이 될 겁니다.”

“적합한 대처…. 미묘한 이야기네요.”

프랑의 김빠진 대답에 화연이도 조금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미국에 비해 한국은 무력적인 면에서는 서하와 미호, 암흑, 히아리드 덕분에 월등하게 높지만, 군사력이나 국력은 한참 아래쪽에 맴돌고 있으니까요. 다만 미국도 서하의 분노를 무작정 외면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면서 화연이는 날 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예외가 되는 점은, 서하가 미국 땅에 최고위 급인 고위 아종 두 마리를 풀어놨다는 거겠지요. 미국의 군사력과 무력으로는 그 두 마리를 어찌 처리할 수 없을 테니 어쩔 수 없이 서 하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때 증거물을 제출하며 도날드 트럼펫 대통령에게 사과와 관련자의 처벌을 요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자식을 박살 내야 하는데 화연이가 하는 말은 꼭 트럼펫 당자사에게 잘못을 물을 수 없다는 식인 거 같다. 화연이는 그 자식을 건드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걸 입 밖으로 꺼내서 화연이를 곤란하게 할 필요는 없겠지. 그때가 되면 내가 직접 나서서 트럼펫을 뒤집어버릴 테니 그냥 가만히 있자.

“흠. 혹시 나한테 도움 요청을 안 하고 핵미사일 같은 걸 쓰진 않을까?”

내 생각에 화연이는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해준다.

“핵미사일이 최고위 이형종에게 통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미국은 체면 때문에라도 자국 땅에 핵을 쓰지는 못할 거다. 만약 쏘려고 해도 해당 주에서 격렬한 반발을 일으키며 반대할 게 뻔하지. 모하비 사막 근방에는 LA와 라스베이거스, 샌디에고 같은 대도시가 근방에 밀집되어있다.

내후년에 있을 선거를 생각해보면 공화당으로서는 인구 밀집 주인 캘리포니아나 관광자원이 풍부한 네바다, 유타 주에서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화연이의 이야기가 끝나니 거실에는 TV 소리만 맴돈다. 갑자기 찾아든 침묵에 미호도 우리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고 있어서 분위기가 더욱 썰렁하다.

그때 수한이 김치전과 얼음 동치미를 가져와 먹기 좋게 잘라주기 시작한다. 수한의 가위질 소리와 함께 TV에서는 한 명의 토크쇼 진행자가 한 명의 게스트를 두고 미국의 인질 시도 행위에 대한 주제로 토론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니 임우식 선생님은 국내의 유명 인사인 유화연 그랑 블루 레이드 팀 제 1보스의 납치 시도는 미국의 기본 범죄 양형 기준에서 19개 절로 분류되어있는 것 중 대인범죄, 공무원 관련 범죄, 범죄 사업 및 조직 관련 범죄, 사기 및 속임수, 민권 관련 범죄, 공공안전 관련 범죄, 국가안전 관련 범죄, 다른 범죄들의 모의, 미수 및 청부, 공범, 사후공범 및 범인 은닉의 8개 항목이 적용된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세부 범죄 특성에 따른 조정을 고려해 범죄등급의 가중을 결정해야 합니다만, 이번 경우에는 전 세계 유일의 최고위 이형종을 상대할 수 있는 능력자의 약혼녀이자 B 클래스의 신체 강화 능력자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를 두고 그랑 블루 회장이 받을 피해 금액을 설정한다면 4억 달러 이상, 그러니 범죄 등급을 30등급 이상 상향 조정해야 할 겁니다. 그렇다면 주범격인 도날드 트럼펫 대통령에게 양형을 선고하게 된다면 최소 2400년의 징역이 나오게 되겠죠]

[이번 경우를 민사 사건으로 봐야 할지 형사 사건으로 봐야 할지에 대한 엇갈린 견해가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는데요. 만약 민사 사건으로 진행될 경우 과거에 민사 소송과 관련한 대통령의 면책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부 판결이 있었는데 민사 사건으로 진행된다하더라도 도날드 트럼펫 대통령은 직무수행에 치명타를 입게 되겠군요?]

[맞는 말씀입니다. 이번 사건은 여러 가지 복잡한 정치적 사항이 개입된 일종의 정치범죄로 한국과 미국 양 국가 간의 마찰로 비화할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독보적인 힘을 가진 그랑 블루 회장의 의사가 가장 중요할겁니다.]

[유영은 대통령께서는 미국 정부에 이번 사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면서 그랑 블루 회장께서 지켜본다고 발표하셨는데요. 지켜본다 함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지난 일본의 능력자 습격 사태 때의 그랑 블루 회장의 모습을 생각해봤을 때 그것을 1차 경고로 받아들여야겠지요.]

[2차, 3차 경고가 되어가면 일본에 했던 행동을 똑같이 취하실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랑 블루 회장의 속 뜻을 제가 알 수야 없겠지만 그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치전을 집어 먹으면서 TV만 빤히 보고 있으니 프랑과 화연이, 수한도 덩달아 TV에서 보여주는 토론을 지켜보더니, 프랑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저것과는 다르게 서하가 한 가지 더 조처를 해놓은 게 있어요.”

“조치라니, 무엇입니까?”

“소피아가 서하에게 의견을 한가지 냈는데, 트럼펫 대통령이 가진 자본 회사에 대해 적대적 M&A를 시도해 완전히 파멸시키자는 것이었어요. 상위급 위상석을 챙겨서 화연이 오기 전에 집을 나섰죠.”

화연이는 그 이야기를 듣더니 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소피아는 적을 만드는 행동을 무척 꺼려했었는데 서하를 위해 그런 행동에 나서다니,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안심되기도 하군요.”

“그런 성격이었나요?”

“아마도 스파이였던 자신의 모습과 행동에 나오는 무의식적인 반발 심리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아무튼, 확실히 서하를 위해 꺼려하는 일을 스스로 자처하고 나설 정도라면 서하를 배신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김치전 한 조각을 들어 "나도나도." 하는 미호의 입에 넣어주고 톡 쏘는 맛의 시원한 동치미를 들어 마시려니 프랑과 화연이는 대화를 끝내고 날 돌아봤다.

빤히 바라보는 둘의 모습에 왜 저러는 건지 몰라 살짝 눈을 떴더니 화연이가 입을 열었다.

“아무튼, 서하는 오늘부터 방학이지? 위상 세계 입장은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둔 게 있나.”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지. 후환을 두고 위상 세계에 들어가고 싶진 않아.”

내가 진화시킨 사막 거북이랑 검은 곰이 빨리 날뛰어줘야 미국이 발 등에 불이 아니라 용암이 떨어진 꼴이 돼서 허둥지둥할 텐데, 두 녀석이 조용하니까 미국도 지금 간을 보는 거 같잖아.

프랑이랑 화연이는 그때까지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얼굴이 조금 밝아지더니 잘 생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상대가 미국이니만큼 확실히 문제를 해결해놓고 자리를 비우는 게 옳은 결정이지.”

일이 해결될 동안 위상석이 생겨나서 바뀐 점이나 확실히 찾아봐야겠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한 편 같은 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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