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09 별거 없이 간단한 계획. =========================================================================
연인들은 점심시간이 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화연이도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났는데 프랑이나 영은이는 혼자 잠옷을 입고 있는 화연이를 의아한 표정으로 봤지만, 다리 사이로 흐르는 어젯밤의 흔적에 금방 서로를 부축하며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일어났어?”
“…그래.”
그리고 화연이도 함께 깨어났는데 하늘색 바탕에 하얀색 곰돌이 그림이 그려진 귀여운 잠옷을 입은 화연이는 힘없이 앉아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더니 이불 속으로 꼬물거리면서 파고들더니 애벌레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음. 귀여운 모습이긴 한데….
“너무 신경 쓰지 마. 암흑이는 이형종이잖아. 아까 왜 그랬냐고 물어봤는데 애액에 TP가 포함되어있는 게 느껴져서 그랬대.”
화연이의 머리가 있는 부분으로 다가가서 이야기하니 화연이를 감싸고 있는 이불이 꿈틀 움찔거린다. 이 장면을 언젠가 본 거 같은데….
기묘한 기시감을 느끼면서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암흑이는 다크매터 슬라임이잖아. 이형종이니까 TP에 이끌리는 건 본능적인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 애액은 전부 분해해 버리고 TP만 흡수했지 않겠어? 그냥 간단하게 암흑이가 청소해줬다고 생각해.”
껍질을 벗기듯 돌돌 말린 이불을 한 꺼풀씩 벗겨내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진 화연이의 얼굴이 드러난다.
오늘은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망가진 모습을 보여준 화연이라 웃음을 참지 못하고 실실 웃으면서 화연이의 이마에 입을 맞춰줬더니 날 찌릿하고 흘겨본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화연이를 끌어안고 누나가 어디 있나 공간 지각으로 살펴보니 누나는 유채린과 함께 혜령이 이모를 만나서서류를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나는 저번에 사고로 뽀뽀를 한 뒤부터 다시 날 피하면서 도망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젠 될 대로 되라 싶다.
…라고 하는 건 그냥 자기 최면일 뿐이고, 사실은 누나가 나한테 가진 감정을 눈치채버려서 누나도 날 피하고 나도 누나를 피하고 있다는 게 정답일 거다.
그걸 생각하면 나도 좀 심란하다.
연인들의 설득이라는 핑계를 대고 일주일간 다른데 신경을 쏟고 있었지만, 목적을 달성하고 여유가 생기니 바로 그쪽으로 신경이 가고 있다.
난…. 따지고 보면 지혜도 떨어지고 지식도 얕지만 눈치와 기억력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특히 눈치만은 내 능력과 상관없는, 눈치 귀신인 누나한테 배운 내 몇 없는 네추럴한 능력이다.
이 눈치를 가지고도 누나가 보여줬던 반응을, 연인들이 주던 눈치와 내게 비밀로 하던 그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다면 접시물에 코 박고 죽어야지.
이건…. 말로 꺼내는 것도 금기시될 일이고 내가 그쪽으로 신경을 쓰면 쓸수록 내가 가진 최후이자 마지막 안식처를 내 손으로 부수게 되는 일이 될 거다.
그러니 누나도 마음을 정리할 때까지 나도 누나와 거리를 두는 게 정답일 테지.
최수한이 차려준 늦은 점심을 먹는 프랑과 화연이, 영은이를 보고 있으니 영은이가 빙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까 화연이 혼자 잠옷을 입고 있었던 걸 보면 화연이도 설득이 끝났지?”
묵묵히 젓가락을 놀려 밥을 먹던 화연이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가 다시 젓가락을 움직이는 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누나까지 설득했으니까 겨울방학을 하면 바로 시작할 생각이야.”
“계획이 어떻게 되니? 몇일 예정으로 갈 거야?”
“일단은 양아치 이무기를 조져놓고 10일 간격으로 나왔다 들어갔다 할 생각이야. 양아치 이무기를 조질 때만 암흑이를 데려가고 그 뒤로는 놓고 다닐 테니 화연이는 암흑이를 데리고 고위 이형종 사냥을 하도록 해.”
“음, 그 부분에 관해서 말인데….”
조용히 매생이 국을 마신 화연이는 수저를 내려놓으면서 날 보며 입을 열었다.
“연말에 밀린 상위, 고위 이형종의 레이드를 개시하는 연초의 레이드 타임에는 시하도 가세할 예정이다. 그때 미호와 암흑이를 적절히 배분해서 레이드 대상 이형종을 잡을 생각인데 괜찮겠나?”
“누나도? 그럼 그렇게 해. 위험한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
“물론이다. 내가 미호와 세트가 되고 누호디의 보조를 받으면 위상석을 생성한 고위 이형종도 잡을 수 있다는 전술 기획실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시하도 마찬가지로 암흑이의 보호를 받으면 고위 이형종 정도는 쉽게 잡을 거다.”
“응.”
내 허벅지에 머릴 올리고 게임을 하고 있던 미호는 나와 화연이 이야기를 듣더니 눈이 동그래진다.
- 나도 위상 세계 들어가도 돼?
“너 혼자는 안돼. 화연이랑 꼭 함께 다녀. 그리고 다른 놈들에 관해서도 좀 공부하고.”
- 응! 야호!
미호는 위상 세계에 들어간다는 이야기에 의문이 들 정도로 좋아하면서 일곱 꼬리를 살랑거리며 깡총깡총 뛰어다녔다.
신나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미호를 보던 프랑은 살짝 시무룩한 얼굴로 날 보며 입을 열었다.
“전 어떻게 해요?”
“어? 양아치 이무기를 잡을 땐 프랑도 같이 가야지. 프랑도 그 녀석한테 당한 게 있으니 복수를 해줘야 할 거 아냐.”
“아, 그렇죠! 저도 당한 게 있으니 그 양아치 같은 이무기한테 복수해야죠!”
그제야 얼굴이 밝아진 프랑은 환하게 웃으면서 식사가 끝난 식탁을 최수한과 함께 정리하기 시작한다.
암흑이가 조그마한 요정 같은 모습이 된 뒤로 미호와 함께 많은 곳을 싸돌아다니고 소피아와 함께 한글을 배울 무렵 나는 암흑이가 해줬던 이야기에서 얻은 힌트, 마나 탄의 강화와 숙제가 된 공간의 벽의 피아 식별을 두고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마나 탄이 공간의 벽보다 상위 능력이었을 줄 몰랐어요.”
“내가 가장 먼저 만들어낸 능력이 내가 가진 능력 중에 가장 순수한 힘이라는 게 조금 당황스럽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야.”
그땐 섞는다거나 비튼다거나 하는 생각 없이 그저 내 몸속의 마나 시브를 이용해 공격 수단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체육관의 중앙에서는 화연이가 마치 회오리를 연상시키는 창술 동작을 연습하고 있었고 나는 한쪽 구석에 앉아 프랑과 함께 마나 탄을 응축시키고 보다 보다 순수하게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마나 시브를 움직여 손가락 끝으로 TP를 집중하면서 말했다.
“예전에 지부장 형이 수십만짜리 기본 속성 공격을 하는 걸 보고 놀랐던 적이 있잖아.”
“네.”
“그땐 단순히 10배가 넘는 위력을 컨트롤 하는 게 힘드니 적은 양의 TP를 다루는 게 당연하다고 넘겼었는데 그게 잘못된 거였나 봐. 거기에 엉뚱한 아이디어로 마탄, 마포 같은 하위 버전을 만들어내 버리고 동급의 공간의 벽까지 만들어버리고….”
내 이야기를 쭉 듣던 프랑은 살짝 눈썹 끝을 늘어트리면서 내게 말했다.
“그건 제가 먼저 꺼낸 이야기였으니까 서하의 잘못이 아니에요.”
“아냐. 컨트롤이 미숙하면 수련을 해야 하는데 나태하고 자만심에 가득 차서 수련을 게을리한 내 잘못이야.”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이야기를 꺼내니 프랑은 미안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면서 방긋 웃는다.
“간단한 게 제일라는 이야기가 있지.”
“simple is best 말이네요.”
“응. 그러니까 해당 분야에서 앞서가는 능력자를 찾아가서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른 거야!”
능력자를 찾아간다는 이야기에 프랑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의아한 표정이 됐지만 이내 머리 위에 느낌표를 띄우면서 입을 열었다.
“강현우 지부장!”
“맞아.”
50만 TP를 응축시킨 속성 탄을 사용하는 화속성 능력자. 씨익 웃으면서 공간 도약을 하기 위해서 프랑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음…. 프랑의 허리를 안고 두 번의 공간 도약을 거쳐 강동구의 능력자 연합 빌딩이 있던 자리에 왔더니 철골 작업 중인 풍경이 강동구 전체에 펼쳐져 있었다.
잔해가 싹 치워진 평평한 대지 위에 동시에 올라가고 있는 건물 골조들과 수많은 건설 차량들과 인부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니 테러의 상처가 아물고 있는 거 같다.
기왕 완파된 거 싹 밀어버리고 재개발해버리는 게 좋지.
그런 개발 중인 곳에서도 눈에 가장 많이, 그리고 강하게 들어오는 건 강동구 중심부에 세워진 커다란 위령비와 그 옆에 다시 지어지고 있는 세계 위상 능력자 연합 한국 총괄지부의 건축 현장이다.
날아오르려는 새의 모습을 표현한 위령비에는 사망자 27,43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근방에는 수많은 꽃다발과 조화가 가득 들어차 있고 지금도 몇몇 사람들이 위령비를 보고 국화를 한 송이 두 송이씩 놓고 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위령비를 다시 한 번 보는데 한쪽 구석에 적힌 세 글자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난 그냥 그랜드 터틀의 사체 처분 비용중 순이익의 절반을 성금으로 냈을 뿐인데 서울 시장이 찾아와서 성금 일부를 가지고 위령비를 제작 주문하고 재해 기념관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러라고 했다.
11.7 테러 사건은 사망자가 2만 명이 넘어가는 한국 유사 이래 최악의 테러 사건이었다. 위령비를 세워 희생자의 혼을 추모하고 재해 기념관을 만들어 이번 일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건 좋은 일이라 나도 동의했다. 동의했는데!
왜 내 이름을 거기다 새기려고 하느냐고!
감사의 뜻으로 이름을 넣겠다는 걸 들었을 때 부끄러움과 창피함에 온몸에서 두드러기가 날 거 같아 절대 내 이름을 새기지 말라고 했는데….
…그렇게 넣지 말라고 했는데 결국 넣었냐.
“…?”
내가 가만히 개발 중인 강동구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내 옆에 붙어있는 프랑이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내 이름이 새겨진 곳만 살짝 파내버리자. 가끔 보면 무슨 비석에 새겨진 이름 같은 거, 전쟁 박물관 전사자 위령비에 보면 네모나게 이름을 파낸 자국도 보이고 그러더만.
생각은 길고 행동은 짧았다. 위령비 앞에 인적이 사라지자마자 내 이름 세 글자만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지워버렸다.
누군가 보면 의아해하겠지만 내 이름을 내가 지운다는데 누가 뭐라겠어!
그 뒤에 공간지각으로 강동구 주변을 모두 살펴봤는데 지부장 형의 위상력이 안 느껴진다. 혹시 부산이랑 대전에 있는 능력자 연합 빌딩에 간 거 아냐?
인증기로 전화를 걸어서 어디 있냐고 물어봤다간 그동안 보여줬던 행동 패턴을 생각해봤을 때, 지부장 형은 날 피해서 도망가버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근처에 지부장 형이 없어. 부산이나 대전에 있는 한국 지사로 갔을지 모르겠는데.”
“그럼 체육관으로 돌아가서 화연에게 물어봐요.”
“응. 그러자.”
프랑의 가늘고 부드러운 허리를 끌어안고 공간 도약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강동구를 내려다봤다.
현실에 위상력이 가득 차서 현실에도 고위 이형종이 등장하게 되면, 규모는 작겠지만, 여기에서 일어난 일과 비슷한 사건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건가.
…얼른 우민구 박사님도 납치해…. 아니, 초청해서 위상력을 사용한 열병기를 개발해야겠다.
체육관으로 돌아오니 화연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전해질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화연이의 뒤로 공간 도약을 했더니 우리가 온 줄 모르고 땀을 줄줄 흘리면서 차가운 이온음료를 마시고 있어서 장난기에 화연이의 어깨를 확 움켜쥐면서 소리쳤다.
“어흥!”
퍼억!
“컥!!!”
끄어어어….
“서, 서하?!” “꺅! 서하아!”
배에 구멍이 난 거 같은 고통에 배를 움켜쥐고 쓰러졌더니 화연이랑 프랑이 놀라고 경악한 얼굴로 잡고 부축해준다.
“화연! 이, 이게 무슨 짓이에요?!”
“실수입니다! 가,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이러면 누구라도…! 서하, 괜찮나! 어, 얼른 힐링 웨이브를 써라!”
히익. 히이익. 수, 숨이 잘 안 쉬어져!
…….
“…으어. 화연이를 함부로 놀라게 하려면 죽을 각오를 하고 해야겠어어.”
“미, 미안하다.”
체육관 바닥에 대자로 뻗어서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니 화연이가 미안해서 어쩔줄 몰라한다. 내 배를 살살 쓰다듬어주던 프랑도 날 째려보면서 나무라기 시작했다.
“정말, 화연의 근처에서 나타나면 될 것을 왜 일부러 뒤에 나타난 거에요! 거기다 수련으로 근육이 긴장되어있을 때 놀라게 하니 당연히 반격이 들어오죠!”
“난 그냥 귀엽게 "꺄악!" 하고 놀라는 걸 기대했는데…. 팔꿈치 공격이 들어올줄은 몰랐어.”
“그게 말이 되나! 무방비한 상태에 뒤를 허용하면 비명을 지를 시간에 즉시 반격해야지, 이형종과의 목숨을 건 시간에 비명은 죽여달라는 제스춰밖에 안된다!”
멍하니 중얼거렸더니 화연이는 눈썹 끝을 치켜세우며 날 호되게 야단쳤다. 거기다 화도 조금 나는지 내 가슴을 손바닥으로 철썩철썩 내려친다.
아, 아프거든? 하다못해 애교 있게 찰싹찰싹으로 해주면 안 될까? 몇 번 내 가슴을 세게 때려준 화연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팔짱을 끼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왜 돌아온 거지? 프랑과 둘이서 데이트하러 갔던 거 아니었나?”
“데이트가 아니라 강현우 지부장 씨를 만나러 갔던 거였어요.”
데이트라는 소리에 프랑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양손을 젓는다. 지부장이라는 이야기에 화연이는 의아한 모습으로 프랑을 보며 되물었다.
“지부장을 말입니까?”
“네. 서하가 기본기를 단련해야겠다면서 한국 속성 능력자들 중 최고이신 지부장 씨에게 조언을 들으러 강동구에 갔었는데 안 계셔서 돌아온 거에요.”
“강동구는 건설이 한창인데 업무를 봐야 할 지부장이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지요. 지부장은 총괄 지부의 생존자들과 임시로 부산광역시의 능력자 연합 한국 지사에 총괄 지부를 꾸렸다고 들었습니다.”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하마터면 구멍이 뚫릴뻔한 배를 쓰다듬으면서 물었다.
“부산으로 간 거야? 대전이 우리나라 거의 중심 쪽에 위치했으니까 그쪽으로 가지 않았을까 했는데 최남단으로 갔네?”
“지리상으로는 그렇지만 대전 지사는 이미 수용 인력이 한계라서 제외했을 거다. 부산 지사는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크게 지어진 곳인 데다 해로를 통한 타국의 능력자 연합 지부와 연계하기 쉽게 만들어 수용 공간을 많게 지었다고 들었다.”
“그럼 부산으로 가봐야겠다. 갔다 올게.”
“그래. 그리고! 다음부터 기척 없이 뒤에서 접근하는 건 삼가도록 해라.”
심장이 떨릴 만큼 놀랐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날 째려보는 화연이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실실 웃으며 말했다.
“다음번엔 대비하고 놀래킬게.”
그 모습에 못 말리겠다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프랑과 황당해하는 화연이었다.
수련을 다시 시작하려는지 이스펙트를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화연이를 두고 프랑과 함께 하늘로 공간 도약을 했다.
음…. 공간의 벽을 치면서 달리는 거보다 공간 도약을 연속으로 펼치는 게 낫지 않을까. 잠시 시선을 돌려 집이 지어지고 있는 곳을 돌아봤다.
대저택의 기초 토대를 다지는 작업은 2달 전에 끝났고 지금은 마치 정글짐처럼 철골조로 빈틈없이 채워진 모습과 대저택의 외형이 잡혀가는 모습을 보니 이사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거 같다.
기한이 줄어들 때마다 인센티브 지급이라는 게 유효한 조건이었던 거 같다. 그렇다고 부실 날림시공을 하면 안 되니까 부실시공이 드러나면 건축비용의 100배의 위약금을 물리는 계약을 맺었으니 날림 시공은 안 하겠지.
“공간 도약을 연습해볼 겸 연속으로 써서 가보자. 공간 도약을 할 장소를 생각하는데 1초, 이동하는 데 1초가 걸리니까 계산상으로 1분이면 202km를 갈 수 있어.”
“네!”
…라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에엑.”
상체를 숙이고 헛구역질을 하는 프랑을 보니 조금 멋쩍어졌다. 처음 10번까지는 괜찮았는데 연속 공간도약 횟수가 20번을 넘어갔더니 프랑의 안색이 새파래지면서 내 등을 찰싹찰싹 두드리면서 멈추라고 하더라.
그래서 멈췄더니 저렇게 헛구역질을 하는 거지. 사실 나도 속이 좀 울렁거리고 안 좋다. 거기다 2초에 1회가 아니라 4~5초에 한 번씩 했고.
그래도 발로 뛰는 것보단 빠르지만, 연속 공간 도약은 멀미에 치명적이라는 게 판명 나서 그냥 평범하게 공간의 벽을 치고 뛰어다녀야겠다.
“우우…. 청룡열차를 1시간 동안 쉴 새 없이 탄 기분이에요….”
파리한 얼굴로 내 가슴에 안겨 할딱거리는 프랑에게 손에 힐링 터치를 뿌리면서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주니 할딱거림이 멎어간다.
“그냥 달려가자. 나도 속이 별로 안 좋아.”
“네에.”
그러니까 여기가…. 대전 광역신가? 방향을 잘못 잡았네. 이렇게 가다간 거제도로 가버리겠어. 다시 방향을 조절하고 프랑과 함께 공간의 벽을 밟으며 하늘을 달려나갔다.
============================ 작품 후기 ============================
사람 잡아먹는 촉수 괴물은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