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04 진입 준비와 설득. =========================================================================
누나는…. 설득시켜야 할 필요가 있나?
요 몇 달간 누나가 보여준 이해 가지 않는 행동을 생각해보면, 나한테 날 선 반응을 보이고 화난 모습을 보이면서 무시하다가도 히스테리를 부리는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니 또 살짝 화가 나서 그냥 무시하려고 했는데 그렇다고 자기 청춘을 바쳐가면서 그랑 블루의 일을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열정적으로 처리하는데 완전히 무시하려니 또 거시기하고….
에이. 심경이 사나워지니 생각도 막 꼬이는 거 같네. 이럴 땐 그냥 닥돌!
토요일인 데다 오늘은 일이 별로 없는지 누나가 39층의 자기 방에서 혼자 책을 보면서 뒹굴 거리길래 일단 덮쳤다.
“하윽.”
얇은 반바지와 스웨터 한 장을 입고 퀸사이즈 자기 침대 위에 엎드려있던 누나의 위로 공간 도약을 해서 주저앉아버렸더니 어린애가 집어던진 돌맹이에 맞은 개구리처럼 팔다리를 파르르 떤다.
“무, 뭐…야. 어?”
숨 막히고 허리가 아픈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면서 뒤를 돌아보더니 날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꺄아아아!! 이 짐승같은 놈아! 지금 뭐 하는 거야아!”
“어? 어! 잠깐!”
팡! 팡!
큼지막한 깃털 베개의 끄트머리를 잡더니 있는 힘껏 날 후려치기 시작한다!
“잠깐은 뭐가 잠깐이야! 이런 식으로 쓰려고 공간 도약을 배운 거야?! 이 변태야!”
팡! 퍽! 퍽 팡!
“칵! 베개에 섞어서 주먹 휘두르지 마!!”
누나의 체취가 가득 담긴 깃털 베개가 내 몸을 두드리는데 어째 충격이 베개가 줄 만한 게 아니다 싶었더니, 있는 힘껏 베개 사이사이 주먹으로 날 쳐대고 있었다!
“꺄!”
진심 펀치 수준으로 쳐대는 누나의 팔목을 잡고 베개를 쥔 손도 잡아버렸더니 균형이 무너지면서 넘어졌는데, 이번엔 누나가 내 위에 올라탄 형상이 되어버렸다.
“…….”
“…….”
씩씩거리면서 내 가슴 위에 엎어진 누나는 몸을 꿈지럭거리더니…. 와, 누나 가슴 더 커진 거 아냐? 내 배에 닿는 느낌이 완전 평면 패널 시절에는 꿈도 못 꿀 감촉인데.
아무튼, 꿈지럭거리면서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자기 손목을 잡고 있는 내 손을 보더니 붉어진 얼굴로 날 흘겨본다.
날 얼마나 후려치는 데 힘을 썼으면 저렇게 얼굴이 붉어질 정도냐…. 진짜 누나 맞아?
“…놔.”
“안 때린다고 약속하면.”
약속을 들먹이니 누나의 눈이 대번에 실쭉해지더니 무릎을 찍, 끄억!!
“까불고 있어.”
내, 내가…. 고자라니….
방심하고 있을 때 수십 킬로그램의 무게가 실린 무릎 찍기는 내 파이어 에그에 고자가 되어버릴 거 같은 충격을 줬다.
극심한 고통에 새우처럼 몸을 구부리고 말도 못한 채 부들부들 떨고 있으니 팔짱을 끼고 흥흥거리던 누나의 눈에 슬금슬금 걱정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야. 많이 아파?”
“으흐흐….”
순간적으로 숨도 못 쉴 정도구만 무슨 천연덕스럽…. 우, 움직이니까 더 아프다.
말도 못하고 훅훅 헉헉 숨을 고르고 있으니 누나는 겁이 더럭 나는지 내 위에 엎어지듯 몸을 기대면서 내 몸을 살펴본다.
“어, 어딜 찍혔길래 그러는 거야? 무릎에 뭔가 말랑한 게 닿은 거 같았는데…. 많이 아파?”
아오…. 진짜. 진짜 진짜…!
애써 정신을 차리고 파이어 에그에 힐링 터치를 걸었더니 그제서야 급속도로 고통이 사라져 가면서 마비되어가던 이성이 돌아온다.
“흐. 흐흐. 흐흐흐흐.”
모로 누운 채 흐흐 거리면서 웃기 시작하니 누나는 찜찜한 표정을 애써 감추면서 내 어깨를 잡고 살짝 흔든다.
“서, 서하야…?”
유령처럼 스르륵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위로 젖히고 누나를 내려다보며 귀신들린 표정으로 씨익 웃으니 누나의 얼굴에 두려움이 스쳐 지나간다.
“누~우~나~?”
“힉?! 어, 으응?”
“…어딜 찍어누르는 거야! 급소를 맞으면 얼마나 아픈지 알아?!”
“꺄아악!!”
덮쳐드는 내 모습에 기겁하면서 비명을 지르다가 사레가 들렸는지 켈록거리기 시작한다. 딸꾹거리는 누날 밀어서 넘어트리고 뒤에서 덮쳐버렸다.
두 다리를 뻗어 누나의 다리를 옭아매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허우적거리는 두 팔을 잡아 한 손으로 꼼짝달싹 못 하게 잡아버렸다.
“흐이이?!”
팔과 다리가 봉쇄되자 머리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손을, 팔을 꿈지럭거리지만 그 정도로 탈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냐!!
“각오해!”
자유로운 한 손으로 누나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히익?! 꺄하하학?! 이히히힉! 하, 하지 마! 하지마아앙?!”
누나가 격하게 머리를 저으니 비단 같은 머릿결이 나풀거린다. 이거다!
눈앞을 어지럽히는 머리카락을 약간 모아서 쥐고 붓처럼 누나의 귀를 간지럽히니 숨이 넘어갈 듯이 파닥거리기 시작한다.
“햐으아앙! 히이!”
귀며 목덜미며 턱 아래를 간질간질하니까 프힛! 푸흡, 히이잉! 하면서 말도 못하고 내 간지럼 공격에 저항하려 한다.
“흐아앙! 하지마아! 으앙!! 하윽. 히히힉. 꺄하하항!!”
자비 없는 간지럼에 누나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하고 이마와 목덜미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자, 흑. 잘못했어어! 그만…. 제발! 죽을거가타아앙! 앙힉. 흐히힉, 헉.”
아직 파이어 에그의 원한이 풀리지 않았지만 괴로워하고 웃다가 비명을 지르다가 숨이 넘어갈 듯이 꺽꺽거리기 시작할 때쯤에서야 봉인해둔 팔다리를 풀어줬다.
아직 분노는 다 풀리지 않았지만 이대로 계속했다간 창자가 꼬여서 죽을지도 모르니까.
기절한 듯 엎드린 누나의 허리를 베개 삼아 풀썩 드러누워 버렸는데도 누나는 죽은 듯이 한참 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숨은 쉬는 거 같은데…. 기절한 건가? 나도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있으니 누나가 뭐라고 웅얼웅얼거리는데 이불에 얼굴이 파묻혀있어서 잘 들리지도 않아 그냥 가만히 있었더니 누나가 힘없이 손을 뻗어 내 어깨를 꾹꾹 밀어댄다.
“…무거.”
아, 무겁다는 거였군. 그래서 머리를 치워…줄 거라 생각했냐!! 일부러 목에 힘줘서 누나의 허리를 뒤통수로 꾹꾹 누르니 꺄으아으하면서 버둥거리다가 몸을 비틀면서 내 공격에서 벗어난다.
“배 아파…. 나쁜 놈아….”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힘겹게 중얼거린 누나한테 킁! 하고 콧방귀를 크게 껴줬다.
“누나가 방금 무슨 짓을 할 뻔했는지 알기나 해?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결혼도 안 한 과부를 만들려고 하다니.”
“으~.”
때려주고 싶은데 배가 땡겨서 못 움직이겠는지 푸으으하고 화난 숨소리만 낸다.
한동안 죽은 듯이 엎드려있던 누나는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더니 푸근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어, 저 얼굴은 영국 갔다 오기 전의 얼굴인데.
예전 모습으로 돌아온 건가?
나도 슬쩍 고개를 누나 쪽으로 돌리는데, 누나는 내가 고개를 돌리는 낌새를 눈치채자마자 잽싸게 얼굴을 다시 이불에 묻어버렸다.
…뭐여. 숨바꼭질이여?
“누나.”
“…왜.”
“고마워.”
“난 찬성 못 해.”
“헐. 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누난 숨기고 있던 얼굴을 다시 보이면서 한숨을 폭하고 쉬더니 다시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니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거면 뻔하잖아, 멍충아. 능력자가 되기 전엔 빠릿빠릿하던 애가 능력자가 되더니 눈치가 곰탱이가 됐어.”
“이제 눈치 볼 필요가 없으니까 안 보는 거지!”
내 반박에 기막히다는 듯이 헛웃음을 치더니 "잘났네요. 정말~!" 하면서 내 머리를 엉망으로 흐트러트린다. 그러더니 내 머리를 배에 품듯이 몸을 굽히면서 나와 눈을 마주했다.
“정말 혼자서 들어갈 거야?”
“데려간다고 해도 누나나 프랑이랑 화연이는 아니야.”
“영…. 아냐.”
영? 요즘 묘하게 말을 하다 말거나 입안으로 우물거려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자주하네. 머리로 누나의 배를 쿡 찔렀더니 읍, 하고 숨을 삼켰다가 다시 한숨으로 바꿔버렸다.
“말 좀 하다가 멈추지 마. 뭔데? 영 뭐?”
“아니라니까! 아무튼, 우리는 왜 안 데려간다는 건데?”
“그야 약하고 소중하니까 그렇지.”
“약하….! 어?”
“누나가 가지고 있던 로맨스 소설에서는 자기 소중하게 여겨달라고 빼애액거리던 여주인공들 되게 많더니 현실에서는 어째 다들 위험한 일에 뛰어들지 못해서 안달인가 몰라.”
한숨을 쉬고 팔짱을 끼면서 누나한테 다시 말했다.
“난 위상 세계에서든 현실에서든 무서운 게 없어. 하지만 내 가족들을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 생기는 건 정말 참기 힘들다고.”
뭔가 복잡한 표정으로 날 빤히 바라보던 누나는 배가 땡기는지 낑낑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날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고위 이형종을, 최고위 이형종을 데려다 놓고 예비 신부들을 강화시키려는거야?”
“응. 적어도 한 마리의 최고위 이형종이 이곳을 지키면 누구도 건들지 못할 테니까.”
누나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한숨을 폭 쉬고서는 내 이마를 쓰다듬었다. 꼭 어렸을 때 떼를 쓰거나 하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내가 원하는 걸 들어주던 것 처럼….
“그런 거라면 네 위상 세계로 레이드 팀을 이끌고 가도 되지 않아? 위험한 곳은 그 악마들의 서식지 일 뿐이구 다른 곳은 괜찮을 거 같은데.”
응?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하네, 난 누나가 내 연인들을 내버려두고 혼자 다니면 안 되네 마네하는 쪽으로 설득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이런 이야기 방식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냐. 누나도 봤잖아? 하늘 섬의 플라비우스 종족이 섬기는 하늘의 주인같이 사방 신으로 생각되는 것들은 위상 급이라고 생각이 들고 그런 사방 신을 섬기는 놈들 중에 초급이 있을지 어떻게 알아.”
“니가 하는 걱정은 알겠지만 그런 괴물 같은 이형종 들이 있을 곳이라면 서하 니가 공간 지각으로 미리 알 수 있잖아. 그게 아니더라도 미호나 히아리드, 아니면 암흑이 중에 하나만 데려가도 야생의 고위 이형종을 잡는데 무리가 팀이 연합해서 잡을 수 있으니까….”
말하던 누나는 도중에 입을 다물어버렸다. 누나도 날 설득하기 위한 주제 선정을 잘못했다는 걸 눈치 챈 거겠지.
누나가 이렇게 설득하려다 말실수하는 건 드문 경우라 히죽거리면서 웃고 있으니 얼굴이 붉어지면서 베개를 휘둘러 날 때린다.
“웃지 마!”
“그만 때려 좀! 누나도 눈치챘잖아. 누나 말대로 하면 내가 그들을 보호하면서 다니게 되는 거니 오히려 위험 속에 노출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 거기다 나 혼자라면 하루에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지만 누나 말대로 하면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도 이동 못 해.”
“으으, 진짜. 다 큰건지 아직도 어린애인지….”
“누나보단 어른이거든?”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더니 누난 다시 베개를 휘두르려 하길래 날아오는 베개를 잡아 확 뺏어버렸다.
“꺅?!”
그 순간 내 쪽으로 확 딸려오면서 넘어지려던 누나를 손으로 잡으려는데 누나의 얼굴이 갑자기 눈앞으로 다가왔….
“아….”
……!!
…나랑 입술이 부딪친 누나는 몸을 경직시키더니 넋이 나간 표정이 되어버렸다. 나, 나도 조금 놀라긴 했지만, 일단은 누나 얼굴이 너무 가까워서 슬금슬금 떨어졌….
헉!
“왜, 왜 울고 그래. 방금 그건 사고니까 노카운트야! 게다가 우린 남매잖아! 서양에서는 가족끼리도 방금처럼 살짝 뺨이나 입술에 키스도 해주고 엄마도 아기한테 뽀뽀해주고 그러니까!”
넋이 나간 얼굴로 가만히 있던 누나는 내가 난감한 얼굴로 슬금슬금 멀어지니 넋이 나간 표정 그대로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진짜 그건 사고니까 진짜로 무효 아냐?!
“그, 그러고 보니 유치원 다닐 때 누나가 나한테 막 뽀뽀해주고 그랬으니까 이제 와서 +1 카운트된 거 뿐이잖아!”
아니 진짜…. 아, 진짜라는 단어 그만 써야겠다. 아무튼,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을 닦아주려 했더니 누나가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 내 팔을 밀어낸다.
“읏…. 아냐. 됐으니까 그만 가.”
“어? 어, 방금 그건 진짜 사고….”
“얼르은!”
“아, 알았어!”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에 허둥거리면서 침대에서 내려와 누나 방을 나오려는데, 뒤를 힐끔 하고 돌아보니 누나는 깃털 베개를 끌어안고 얼굴을 가린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조용히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오니 이제는 내 냄새가 사라지고 아빠랑 엄마, 누나의 냄새로 가득한 거실이 눈에 들어온다.
“…아~~!”
평소였으면 그냥 호들갑 떨면서 더럽다고 난리 쳤을 건데 누나가 이상한 반응을 보여주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이상해져 버렸잖아.
…더, 더럽기보단 내 연인들 누구하고도 다른 느낌에 조금….
으아~!! 누, 누날 상대로 내가 뭘 생각하는 거야!! 내 머릿속에서 썩 꺼져라 음란마귀야!!
문득 든 생각에 기겁하고 두 손으로 내 머리통을 두드려대면서 옥상으로 공간 도약해버렸다. 이상한 기분에 얼굴이 후끈거리고 돌아버릴 것처럼 가슴이 울렁거린다.
마나 시브 뭐하냐! 일 안 하고!!
…그리고 연인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간 건 그로부터 1시간이 지난 뒤였다.
며칠간 집과 학교를 오가면서 고등학교 학창시절의 마지막을 만끽하…기는 개 코다.
학교 가봤자 선생님들은 나랑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지, 애들도 멀리서 동경하는 눈빛만 보내지, 후배들은 내 그림자가 보일세라 후다닥 도망가서는 멀리서 도촬이나 해대지.
한고은과 김창현 두 녀석은 하하 호호 커플 분위기를 내면서 둘만의 결계를 치고 놀고 있고, 수유리는 남자 친구가 생기더니 십년지기 친구랑도 안 놀아준다고 날 잡고 하소연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 외에는 다른 의미로 따돌림당하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리디아도 조기 진입 허가증이 나온 빛 속성 능력자였기에 방학이 끝나고 그랑 블루 레이드 팀의 예비대에 섞여 한 달에 한 번씩 레이드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동안 여의도의 호텔에서 지내더니 아예 생활동의 아파트 한 채를 사버린 거 같았다.
“그래서 말인데요…. 아, 앞으로 등하교를 같이해도 될까요?”
살살 프랑의 눈치를 보면서 말하는 게 혹시나 프랑의 심기에 거슬릴까 봐 무서워하는 거 같았다.
“가는 길에 같이 가는 건데 어렵게 부탁하실 필요는 없어요, 리디아.”
“앗, 그, 그런가요.”
“네,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동안만이라도 같이 다녀요.”
…프랑의 뒷배경에 내가 있는 걸 생각해보면 뭐, 조심스럽게 대하는 건 이해가 가는데 왜 프랑을 무서워하는 거지? 그러고 보면 리디아는 처음부터 프랑을 어려워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무서워하는 걸로 바뀐 거 같다.
나 대신 프랑이 대답해줬지만, 프랑의 뜻이 내 뜻이기도 하니까 나도 고개를 끄덕여주니 리디아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살짝 기뻐하는 리디아와 함께 그랑 블루 빌딩으로 돌아왔더니, 영은이를 설득할 타이밍이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어서 오렴~”
- 주인님, 프랑. 어서 와~!
나랑 프랑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클린 룸 밖에서 일곱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기다리던 미호는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답싹 안겨들었다.
미호를 쓰다듬어준 프랑은 옷을 평상복으로 바꾸면서 아이보리색 라운드 니트티셔츠와 회색 반바지를 입고 거실 소파에 늘어져 있는 영은이에게 다가갔다.
저렇게 늘어져 있는데도 탐스럽게 부푼 가슴의 형태가 무너지지 않는 게 진짜 신기하다. 인터넷에서 약간만 선정적인 단어로 검색하면 수많은 살색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그 사진들을 보면 누웠을 때 가슴이 대부분 펑퍼짐하게 퍼져버리던데 말이지.
“미호야. 프랑한테 영화 보러 가자고 졸라.”
피곤한 듯 늘어져 있는 영은이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프랑을 보면서 미호의 귀에 속삭이니 여우 귀를 한번 털어낸 미호는 작게 - 왜에? 하고 되물었다.
“영은이를 설득할 일이 있어서 그래. 이건 비밀이니까 프랑한테 영화 보러 가자고 떼를 써. 알았지? 너만 믿는다!”
- 응! 주인님은 나만 믿어!
나랑 미호의 작당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프랑과 피곤해서 그런지 그야말로 모기소리처럼 나눈 대화를 영은이도 듣지 못했다.
그리고 미호는 하얀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쪼르르 달려가더니 영은이와 프랑을 번갈아 보다가, 프랑을 껴안고 조르기 시작한다.
- 프랑~ 나 영화 보고 싶어.
“응? 영화? 무슨 영화?”
- 어벤저스 vs. 엑스맨 개봉했대~ 그거 보고 싶어!
어? 진짜? 나도 그거 보고 싶은데! 미호는 그 영화를 실제로 보고 싶었는지 망설임 없이 자연스럽게 조르기 시작한다.
“…서하도 보고 싶어 하는 거 같으니 그럼 같이 갈까?”
윽. 안돼! 영은이는 일 때문에 바빠서 오늘이 지나가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몰라! 그런데 미호가 재치 좋게 말을 돌리면서 프랑의 가슴에 얼굴을 부비부비한다.
그나저나 키 165cm의 프랑과 150cm의 미호가 서로 껴안고 있으니 미소녀 자매처럼 눈이 즐거운걸.
- 주인님은 바빠서 영화 볼 시간 없대! 영은도 오늘은 피곤하다고 했단 말이야. 아니면 나 혼자 가?
“안돼! 너 혼자 가면 무슨 난리가 날지 모르잖니!”
오, 나이스 미호! 프랑은 혼자 가도 되냐는 미호의 물음에 깜짝 놀라면서 안된다고 하더니 나랑 영은이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둘이서 다녀와. 아니면 수한도 데려가던가.”
- 수한~!
내 말이 끝나자마자 미호는 주방 안에서 믹서기에 생과일을 갈고 있던 수한에게 바람처럼 달려가서 등에 메달려버린다.
- 영화! 영화 보러 가!
“…알겠습니다. 위험하니 내려와 주십시오.”
주방 안에서 들려오는 미호와 수한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영은이의 옆에 앉으니 영은이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온다.
프랑은 주방 안으로 들어간 미호를 보며 살짝 한숨을 쉬더니 날 보며 물었다.
“바쁜 일이라니,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응. 능력 좀 가다듬어보려고. 영화는 길어봤자 두어 시간이니까 미호 데리고 다녀와. 다녀오면 화연이도 돌아올 테고 그때 밥 먹으면 되겠다.”
“알았어요.”
최수한의 팔을 잡고 끌고 오는 미호에게 다가간 프랑은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더니 최수한까지 셋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버렸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영화관은 수성 서울 병원 맞은편. 프랑의 반경 500m의 공간 지각 범위에 벗어나는 거리다. 그러니 만에 하나 프랑이 집안 상황을 궁금하해도 공간지각으로 집 안을 살펴보지 못해.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보러 와주시는 분들과 추천 및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께는 언제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