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8 정신, 그리고 조작. =========================================================================
“흐음. 뒤에 내 TP 효과를 밝히는 날이 오면 그땐 우리 그랑 블루에 있는 자질의 한계에 부딪힌 생활 보조 능력자들을 전부 C 클래스까지 만들어버리면 좋을 거 같은데.”
축 늘어져 정신을 잃은 최수한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니 화연이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에 대해 시하와 한번 이야기를 나눠 봤었는데, 지금 그랑 블루의 H 클래스 이하 생활 보조 능력자는 다 해서 400명쯤 된다. 이들이 전부 C 클래스가 된다면 지금은 거의 손을 못 대고 있는 고위 이형종의 레이드가 가능해질 테고 전투와 생활 보조로 나뉘던 업무도 균등하게 나누어져서 지금보다 주둔지의 안정화가 눈에 띄게 향상 될 거다.”
누나랑 그 부분에 대해서 이미 이야기를 나눠봤나 보군. 그런데 영은이는 화연이 이야기에 티가 나게 얼굴을 찡그리더니 소파에 몸을 뉘이며 입을 열었다.
“그랬다간 기존의 능력자들이 반발하지 않겠니? 상대적인 박탈감도 느낄 테구 뭣보다 남이 잘되는 걸 웃으면서 볼 만큼 착한 사람은 얼마 없다구? 그게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럴 거야.”
“그건 당연하겠지요. 그러니 그랑 블루 입사자를 대상으로 종신 계약을 맺을 이들에게만 적당한 대금을 받는 방식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만, 여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종신 고용인인가. 영은이는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화연이를 보더니 싱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어머, 생각 좀 해뒀는걸? 자고로 기대치와 현실 사이의 불일치에는 현금 문제를 끼워 넣으면 다~ 해결되는 법이지.”
“영은도 황금만능주의이야?”
프랑은 물질이 모든 것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방식에는 찬성하지 않는지 살짝 얼굴을 찡그린다. 그러자 영은이는 쓰게 웃더니 프랑을 덥석 끌어안고 하얀 찹쌀떡 같은 뺨에 뺨을 마구마구 비벼대더니 "꺄아~!" 하고 비명을 지르는 프랑의 어깨 위에 턱을 올리면서 이야기한다.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는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뒤로 인류와 함께 역사를 그려온 유서 깊은 사상인걸? 나도 서하를 만나기 전까지는 금으로 안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었단 말이야.”
그러면서 날 보며 히죽 웃고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저번에 이야기가 나왔던 것처럼 1 TP 당 일정 대금을 받으면 될 거야. 대충 그랑 블루 사원에게는 세계 위상석 거래소의 고시 TP액의 10배 정도면 적당하지 않겠니? 비싸다고 생각하면 안 받을 테고 비싸도 받을 아이들은 열심히 레이드 팀 활동에 참여할 테니 나쁘지 않아.”
“그럼 역시 그랑 블루 사원이 아닌 자들에게는 좀 더 비싸게 받는 쪽이겠군요.”
“당연하지? 그랑 블루 소속의 메리트가 없다면 누가 우리 서하의 레이드 팀에 들어오겠니? 대충 고시 TP액의 100배로 해버려.”
100배…. 어제 마감된 고시환율이 1 TP 당 875달러던가. 100배면 우리나라 돈으로 1 TP에 1억이 넘는다. 그럼 고시액의 10배라면, H 클래스에서 C 클래스까지 되는데 29900 TP가 든다고 치면 2,990억이다.
버둥거리면서 영은이의 품에서 도망친 프랑이 한숨 쉬는 걸 보면서 입을 열었다.
“너무 비싼 거 아냐? 그렇게 되면 H 클래스 능력자가 C 클래스가 되기 위해서는 3천억에 가까운 돈이 필요한데?”
“어머, 서하는 자질의 한계에 부딪힌 사람들의 위상력을 늘려주는 거잖니? 그 효과를 생각해보면 10배, 100배도 싼 편인걸.”
그리고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거기에, 서하는 한 번에 C 클래스가 되는걸 생각한 거겠지만 실제로 F 클래스만 되더라도 넓고 많은 숫자의 토벌전에 참여할 수 있거든? 그랑 블루 소속이 된다면 H 클래스가 F 클래가 되는데 45억. 이 정도라면 2~3년 뼈 빠지게 돈을 벌면 그 정도는 금방 모을 수 있어.”
“여사님 말이 맞다. 토벌전에는 강력한 능력자보다 팀워크가 잘 맞는 이들이 더 중요하지. 그리고 토벌전에 합세한 뒤 돈이 모일 때마다 TP를 늘려간다면 점점 강해지면서 돈도 금방 모인다. 안되면 할부, 혹은 대출이라는 무기도 있지.”
우와…. 돈으로 옭아매는 건가. 화연아, 지금 영은이가 뒤에서 '잘 자랐구나, 내 딸!' 하는 표정을 짓고 있거든?
그렇게 영은이는 음흉하게 웃더니 손바닥을 비비면서 입을 연다.
“그리고 화폐는 우리나라 화폐나 현물로만 받는 거지.”
“…대단하시군요.”
그거까진 생각 못 했는지 화연이는 감탄 반 질린 표정 반으로 영은이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바라봤다.
어, 그러니까 저렇게 대금을 우리나라 돈으로만 받으면 세계 기축통화라고 불리는 달러가 무진장 모여들겠네. 거기다 현물이라고 하니 귀금속이나 위상석도 많이 모일 테고.
영은이나 화연이의 반응을 보면 그거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는 거 같지만, 그 이상은 모르겠다. 아무튼, 아직까진 내 마나 시브 능력을 밝힐 생각은 없으니까 이 이야기는 그만 접어둘까.
하지만 프랑은 우려스럽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영은이를 보면서 말한다.
“그렇게 하면 다른 나라가 손을 뻗어오지 않을까? 간단하게 생각해봐도 고위 클래스 능력자를 양산할 수 있는 능력이잖아. TP로 능력자를 클래스업 시켜준다고 하면 위협으로 느끼고 가만있지 않을 거 같은데….”
“오~ 우리 프랑도 이제 국가 간의 정치문제에 눈이 뜨이는 거니? 네 말이 맞아. 우리 프랑처럼 고운 손을 뻗어올 리가 있겠니. 손이 아니라 욕망을 뻗어오겠지.”
그러더니 최수한이 아까 가져다준 미지근해진 오렌지 음료를 한 번에 들이키고는 입을 열었다.
“서하의 능력이라면 세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어쩌고저쩌고 그러니 그 능력은 철저한 통제가 필요하다! 라는 식으로 나불거리면서 언론 조장을 하겠지. 하지만 말이야, 우리 서하가 누구니? 최고위 이형종도 홀로 잡아내는 서하라구?”
“맞습니다. 거기다 아버님과 어머님의 안전방위 시스템도 완성되었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만 몸조심한다면 서하에게 위협이 될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도 프랑은 안심을 못 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영은이는 눈을 번뜩이더니 번개같이 날아들어 프랑의 몸을 낚아챈다.
“꺅?!”
“우후후. 프랑은 우릴 못 믿는 거니? 얼굴에서 걱정이 떠나질 않네~?”
“히이이! 그, 그만해애!”
한국의 마녀라고 불리는 영은이고 그런 영은이의 자질을 이어받은 화연이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영은이가 음흉한 변태 아저씨처럼 프랑의 몸을 어루만지고 프랑은 그런 영은이의 손짓을 필사적으로 막아내는걸 구경하다 보니 최수한의 몸이 마지막 변화를 시작한다.
이번이 세 번째지만 역시 TP를 한계까지 주입받은 육체는 체내의 위상력을 빨아들이며 다음 클래스에 걸맞은 신체 조직으로 바뀌는 거 같다.
문제는 이때 주기적으로 TP를 주입해주지 않으면 체내에 쌓여있던 위상력을 전부 빨아먹은 뒤에 더이상 흡수할 게 없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는 건데, 간단히 생각하면 죽어버리겠지.
아무튼, TP를 계속 주입하다 보면 신체가 위상력을 흡수하는 걸 멈추고 안정화를 시작하는데 지금 최수한의 상태가 안정화를 하는 단계다.
안정화가 끝나면 정신을 차리니 이대로 두면 되겠지. 그럼…. 시선을 돌려 뇌사상태가 되어서 뻗어있는 네 마리의 개와 고양이를 바라봤다.
소울 리퍼의 함에서 에너지 드레인을 당해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사람들에게도 통한 힐링 웨이브가 정신 조작으로 인해 무너진 뇌사 상태는 치료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까 소피아의 상태가 나빠 보여서 힐링 웨이브 5단계를 쏘아냈었는데, 그때 퍼져나온 푸른 빛무리가 녀석들을 휘감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면 그 이상의 단계를 쏘아내봤자겠지….
뇌사상태가 되어버린 네 마리의 개와 고양이는 고통스럽지 않게 생명을 거둔 뒤에 그랑 블루 빌딩의 뒷산에 고이 묻어주었다.
그냥 공간의 벽을 쳐서 지워버리면 되겠지만…. 산 생명을 가지고 실험해놓고 뇌사 상태가 됐다고 목숨을 끊은 뒤에 이렇게 땅에 묻어주는 나는 위선적이고 가증스러운 인간인 걸까?
간신히 영은이의 마수를 뿌리치고 날 쫓아온 프랑은 그저 안쓰러운 얼굴로 살짝 묵례를 올렸고 미호는 내 등에 매달려 네 마리를 땅에 묻어주는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최수한은 영은이때와 같이 4시간 만에 정신을 차렸다.
당연히 정신을 차린 최수한은 또 커진 가슴에 감-격한 표정을 지었고 잔뜩 흘린 땀과 애액을 보더니 얼굴을 붉히면서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사이 화연이와 영은이는 푸릉푸릉거리다가 뿅! 하고 커진 최수한의 가슴에 감탄하더니 서로 수군거린다.
“우리도 A 클래스가 되면 가슴이 더 커질 거 같지 않습니까.”
“으음. 수한이나 시하를 보면 그럴 거 같지 않니?”
“프랑처럼 E컵이 되면…. 좋겠군요. 서하도 큰 가슴을 좋아하는 거 같으니 말입니다.”
“그치?”
그 옆에서 화연이와 영은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들의 가슴을 빤히 보던 미호가 영은이를 보며 물었다.
- 나도 진화하면 히아리드처럼 가슴 커져?
영은이는 미호의 말에 히아리드의 가슴을 보더니…. 고개를 젓는다.
“미호야. 저건 가슴이 아니라 살덩어리라고 해야 하는 거란다. 따라 해보렴. "더럽게 크고 거추장스러운 살덩어리." ”
- 더럽게 크고 거추장스러운 살덩어리?
=…….=
히아리드는 조금 상처받은 표정이 되어버렸다.
가슴 크기는 프랑이 E컵 정도, 화연이랑 영은이는 D+ 컵 정도 되는데 히아리드는 단순히 사이즈를 잰다면 I 컵을 넘어간다. 솔직히 저 정도면 평범한 사람은 생활하기도 힘들지.
하지만 히아리드는 단순히 키만 큰게 아니라 전체적인 신체 비율이 인간보다 1.3배 더 크다.
“생각해보렴? 우리 미호의 자그마한 몸에 저런 크기의 "더럽게 크고 거추장스러운 살덩어리"를 달고 있으면 움직일 수 있을 거 같니?”
- 우웅…. 없어!
“그치? 그러니까 저런 가슴을 뭐라고 한다고 했지?”
- 더럽게 크고 거추장스러운 살덩어리!
영은이한테 이상한 지식을 주입받던 미호는 해맑은 얼굴로 히아리드의 가슴에 말뚝을 박는다. 영은이의 악의 깃든 장난은 히아리드도 더이상은 간과할 수 없었는지 작은 목소리로 호소한다.
=거, 거추장스럽지 않습니다.=
“어휴. 내 머리보다 더 큰 이 살덩어리가 거추장스럽지 않다는 거니?”
히아리드의 뒤로 돌아간 영은이는 놀랍다는 얼굴로 두 손을 들어 수박만 한 히아리드의 가슴을 조물락거리기 시작했다.
영은이는 진짜 전생에 변태 아저씨였을 거야. 자신의 손에 출렁거리는 히아리드의 가슴을 보는 영은이는 진짜 변태 아저씨처럼 "우헤헤."거리면서 히아리드의 큰 가슴을 조물조물거린다.
뭐, 그냥 크기로 보면 수박만 하지만 히아리드의 신체 비율로 보면 사람의 D 컵 정도 같은데. 그렇게 따지면 영은이도 더럽게 크고 거추장스러운 살덩어리가 되는 건가?
우와, 그럼 프랑은 더럽게 크고 거추장스러운 살덩어리보다 더 크겠네.
…라고 말했다간 오늘 밤에는 혼자 자야 할 테니 입 다물어야겠다.
히아리드를 괴롭히는 영은이를 힐끔 바라보고 일곱 가지 감정선을 조작하는 정신 조작 능력에 대해 떠올려봤다.
빨간색은 분노
주황색은 미움
노란색은 욕망
초록색은 기쁨
파란색은 즐거움
남색은 슬픔
보라색은 사랑
파란색과 초록색을 섞으면 행복, 여기서 대상을 지정하면 믿음
보라색과 파란색과 초록색을 섞으면 충성심
대충 발견한 감정의 분류는 이 정도다. 애초에 단일 감정 색도 사람은 물론이고 이형종을 상대로도 활용도가 높고 두 가지, 세 가지 감정 색을 섞으면 다른 효과가 늘어나긴 하지만 대부분 비슷비슷한 효과들이다.
하지만 충성심을 만드는 보라색2 파란색3 초록색5의 배율은 정말 우연히 발견한 거지만, 이런 식으로 배율을 잘 찾으면 다른 감정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복잡한 감정일수록 좋은 효과라고 보기는 힘드니까.
감정을 많이 섞으면 섞을수록 복잡한 감정이 나오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이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피드백을 해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한데 그런 존재가 소피아뿐이다.
그런 소피아도 10번 정도 실험해보면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이상 억지로 실험해보다간 뇌사상태에 빠져버리겠지.
그때 최수한이 깨끗하게 씻고 집사 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최수한에게는 사랑과 기쁨, 욕망의 감정선을 2:7:1로 실험해볼 생각이다. 이게 개와 강아지를 상대로는 충성심과 비슷한 효과를 보였는데 정확하게 알아봐야지.
진한 초록색에 가까운 백색의 감정선을 최수한에게 주입하니 두 눈이 녹색으로 물들었다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더니 흠칫하고 허리를 곧추세웠다가, 곧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역시 TP가 정확하게 최수한 위 현재 위상력의 1/10만큼 소비된다. 그리고 클래스의 차이점인지 소피아 때보다 피로감이 약간 더 쌓인 기분이다. 소피아의 수준을 100번 정신 조작할 수 있다면 최수한은 60번에서 70번 정도 될 거 같은데….
이형종을 정신 조작할 때는 부담이 더 커지는 건가? 이형종을 대상으로도 테스트를 해봐야겠네…. 잠깐 히아리드를 바라봤다가 다시 최수한을 보면서 물었다.
“기분이 어때?”
“이 기분은…. 주인님께 무엇이든지 바치고 싶은 기분입니다.”
“헌신인가요?”
“헌신이라니, 아까 소피아 그것이 느꼈던 감정과는 다른 의미인 걸까?”
음. B 클래스에게 정신 조작을 걸었더니 C 클래스에 걸었던 것보다 압박감이 1.4배 정도는 강해진 거 같다.
B 클래스가 최고위 이형종과 같은 위상력 양이니 다크매터 슬라임에게 헌신이나 충성을 걸면 이정도 부하가 걸릴까?
압박감이 딱히 사고 능력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만, 압박감이 느껴지는 것 자체가 조금 불쾌하긴 하다. 이것만 확인하고 히아리드에게도 걸어서 확인해봐야겠다.
프랑과 영은이가 서로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으려니 최수한이 담담한 모습으로, 하지만 간절히 바란다는 얼굴로 입을 연다.
“소피아에게 시험했던 것을 저에게도 해보시지요.”
“음…. 같은 감정을 연속으로 주입 하는 거랑 다른 감정을 연속으로 주입할 때 정신에 가해지는 부담감이 같을 거 같진 않은데.”
“괜찮습니다. 주인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정신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진심이 가득한 최수한의 저 말을 들으니 정신 조작은 진짜 위험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연인들한테는 절대 쓰지 말아야지.
일단 손을 뻗어 최수한의 뺨을 잡고 담담하고 부드러운 눈빛을 보내는 얼굴을 보며 헌신을 해제했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최수한은 여전히 곧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날 보길래 흠칫해버렸다.
“뭐야. 헌신이 해제 안된 거야?”
TP는 정상적으로 소비 됐는데?
“아닙니다. 제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알았기에 잊지 않기 위해 마음속에 새겼을 뿐입니다.”
“흐음.”
마치 신을 앞둔 경건한 신도 같은 모습에 영은이마저도 감탄한다.
“제 몸 상태를 점검해보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그러니 정신 조작으로 충성심을 시험해주십시오.”
으…. 저런 모습을 보니 경각심이라고 해야하나, 안그래도 위험한 능력인데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제 와서 고민이 들기 시작해서 머뭇거렸다.
인상을 쓰고 머뭇거리고 있으려니 최수한이 계속해서 재촉하길래 나도 모르겠다 싶어 10 TP 가량의 충성심을 최수한에게 주입했다.
그랬더니 하얀색에 가까운 회색빛에 들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온 새카만 눈동자가 날 조용히 응시한다.
“그렇군요. 소피아는 진심으로 주인님을 모시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아, 충성은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뜻하니 맞는 거 같아요.”
최수한의 이야기에 손뼉을 친 프랑이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린다. 전직 기사라서 그런지 충성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고 있었나 보다.
프랑의 말을 듣고 화연이도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그럼 첫 번째는 헌신이고 두 번째는 충성이군요. 두 가지의 개념을 생각해보면 비슷하지만, 명령을 내려야 하는 쪽은 충성을 주입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헌신은 자발적인 복종이라는 부분과 일맥이 통하니까 능동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 쪽에 어울리겠는걸?”
“복종이라니…. 헌신을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프랑은 영은이의 말을 듣더니 깬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화난 표정으로 나무란다. 헌신에 어떤 의미가 있더라?
“엥? 나름대로 맞는 말이잖아! 헌신의 사전적 의미도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있는 힘을 다하는 거란 말이야!”
“그럼 자식에게 헌신적이신 부모님이 자식에게 복종한다는 뜻이 되잖아! 영은은 헌신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단 말야?”
어? 아, 그게 그렇게 되는구나. 프랑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헌신을 복종의 일환으로 생각한다는 건 동의를 못 하겠다.
“이잉?”
“서하한테 헌신하는 영은도 자발적인 복종심을 가진 거야? 그런 거야?”
“으음!”
프랑에게 혼나기 시작하는 영은이는 할 말이 없어졌는지 찔끔한 표정을 짓더니 잘못했다며 프랑을 달래기 시작한다.
연인들의 헤프닝을 보다가 다시 최수한의 뺨을 잡고 충성심을 해제해줬더니 최수한은 살짝 숨을 삼키고는 눈을 감았다가 뜬다.
“머리가 아프다거나 그런 거 없어?”
“없습니다. 멀쩡합니다.”
“그래. 도움이 됐어. 이제 그만 가서 쉬어도 좋아.”
“네.”
손을 올려 최수한의 흑단 같은 머릿결을 한번 쓸어내려 주며 말하니 얼굴이 살짝 붉어진 최수한은 절도있는 움직임으로 일어나더니 나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연인들에게도 고개를 숙인 뒤에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남았군.
“그럼 히아리드, 이리와.”
=네, 주인님.=
“어? 히아리드한테도 실험해보게?”
간신히 프랑에게 용서를 받은 영은이는 프랑을 품에 안은 채로 내 앞에 다가와서 앉는 히아리드와 날 번갈아 본다.
“응. 이형종을 정신 조작했을 때 받는 부담감을 체크해봐야지.”
하철수 같은 꼴이 안되려면 조심해야지.
B 클래스 능력자인 수한에게 정신 조작을 해본 결과 생각보다 부담감이 약한게 의아했다. 그렇다는 말은 이형종에게 정신 조작을 걸었을때 받는 부담감은 능력자와는 다르다는 이야기가 되겠지.
이것만 확인해보면 내일 다크매터 슬라임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될 거다.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