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0 위험과 위협의 차이 =========================================================================
“알았지? 그랜드 터틀이 입에서 쏘는 충격파를 주의하면서 신호를 보내면 하철수에게 네가 쓸 수 있는 최대한 강한 빛 벼락을 떨어트려.”
=네.=
“미친…. 그랜드 터틀의 빅뱅을 피해 없이 막다니….”
히아리드에게 생각해둔 계획을 설명해주고 있는데 뒤에서 눈으로 봤지만 믿지 못하겠다는 식의 지부장 형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저건 공격과 발디딤용 능력일 거라 생각했는데 대체 무슨 능력이길래….”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지부장 형은…. 정신 차리면 알아서 할 일 찾겠지. 지금은 하철수 저 자식이 정신 차리기 전에 처리하는 게 먼저야.
두 손으로 하늘의 지팡이를 꼭 쥔 히아리드를 대기시켜놓고 이제 완전히 사라진 섬광과 조금 녹아내린 그랜드 터틀의 등껍질을 확인 뒤 공간의 벽을 회수했다.
열을 받아서 피어오르는 김인지 등껍질이 녹아내리면서 퍼져나오는 연기인지 알 수 없는 게 자욱하다.
뒤에서 히아리드가 TP를 집중하고 빛 벼락을 발사할 준비를 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전신에 두르고 있는 마나 시브를 다시 한 번 체크 한 뒤 공간 보호막을 치고 그랜드 터틀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랜드 터틀은 자신의 광역 폭발 공격이 끝나자 대가리를 살짝 내밀어 주변을 살펴봤다. 그리고 자신의 공격이 주위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게 분통 터지는지 "꾸우우우우."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붕붕 휘두르다 곧 날 발견한다.
꾸우우우우우!!!
“닥쳐!”
우선 저놈이 주둥이에서 충격파를 쏘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그럼 아래턱을 뜯어버리면 되겠지!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는 놈의 아래턱에 공간의 벽을 5 중첩 시켰더니 "끄으우오옥!!" 하면서 대가리를 비튼다. 역시 최고위 이형종에게 지금 내 공간의 벽은 그다지 피해를 못 주는구나. 그럼 질보다 양이지!
놈의 아래턱에 있는 대로 공간의 벽을 계속해서 중첩하니 우득, 우지직 하는 뼈가 부러지고 살이 우그러지는 정신이 심란해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온다.
그허어어어!!
퍼걱! 푸지직!!
곧이어 살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랜드 터틀의 아래턱이 통째로 터져나간다.
시뻘건 고깃덩어리와 잘게 부서진 뼈 덩어리들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고 사라진 턱 부분에서 시뻘건 피가 쏟아지며 반쯤 뜯겨 나간 흑갈색의 거대한 통나무 같은 혓바닥이 덜렁거린다.
됐어. 이제 주둥이에서 무색 원의 충격파는 쓰지 못할 거야.
히아리드에게 향할 혹시 모를 공격을 봉쇄한 다음 턱이 분쇄된 고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발버둥 치는 그랜드 터틀을 내려다보며 공간 지각으로 등딱지 위를 살펴 하철수를 찾았다.
대가리를 흔드는 덕분에 피가 사방으로 뿌려지며 산을 붉게 물들이는 와중에, 하철수는 조금 녹은 그랜드 터틀의 등껍질에 사이에 처박혀 버르적거리고 있었다.
눈이 그대로 충혈된 상태에 관자놀이와 이마를 뒤덮은 핏줄,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는 놈의 눈동자는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걸 보니 아직 정신이….
“=저어엉서어하아아아아으아아악!!!=”
정신을 차린 건가?! 귓가를 윙윙 울리는 하철수의 목소리는 평범한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다. 긴장해서 마나 시브를 몸에 집중하고 혹시 모를 정신 조작에 대비하려 했지만….
“=비이일어먹으으으을…. 아버지이이!! 이혜려어어엉!!!! 다, 죽어 어 으아 아 어!=”
어떻게된건지 모르겠지만 저렇게 이성을 갖추지 못하고 발악적으로 소리치며 얼굴에 시퍼런 핏줄을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니 아직 정신 조작을 쓸 만큼 제정신은 아닌 거 같다.
어쩌면 저놈이 부리고 있던 고위와 상위 이형종이 모조리 죽으면서 충격에 자극을 받아 저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지간히 짜증 나는 목소리라고 생각하면서 하철수를 중심으로 공간의 벽을 메스실린더 모양으로 만들고 하철수가 있는 부분에 공간의 벽을 채웠더니 이리저리 튕겨 나오며 공중으로 치솟는다.
꿔어허어어억!!
쿵! 쿵쿵! 쿠궁!
자신의 몸에서 하철수가 튕겨 오르자 혀가 반쯤 끊어지다 말아 덜렁거리는 머리를 크게 뒤흔들며 발악을 하기 시작한다.
하철수의 몸을 두르고 있는 다크매터 슬라임은 빛 속성을 제외하고 절대 타격을 입지 않는다더니, 점점 차오르는 공간의 벽에 연신 밀려나고 튕겨 오르는 모습을 보니 나처럼 공간의 벽을 발판처럼 이용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저항력을 받으면서 피해는 전혀 받지 않는 게 증명됐다.
대체 어떤 원리로 모든 걸 분해해 버리는 공간의 벽에 버티는지는 모르겠다.
빠르게 메스 실린더 모양을 더욱 길게 만들고 바닥을 채워가며 하철수를 하늘 위로 튕겨 올려내기 시작하니 자기 등껍질에서 떨어진 하철수를 느꼈는지 그랜드 터틀이 내게 무시무시한 살기를 뿌리더니,
꽈앙!!
공중으로 뛰어올라 날 깔아뭉개려 한다!
꿔허어어어!!
수 킬로미터를 제자리 점프로 튀어 오른 놈은 내 위에서 무시무시한 살기와 함께 포탄처럼 쏘아내려 온다.
넌 좀 있다 조져줄 테니 기다려, 새꺄!
공간의 벽을 박차고 놈의 바디 프레스 범위에서 피했더니 지부장 형과 바람 속성 능력자도 허둥지둥 멀리 도망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생각했다. 너무 멀리 떨어지면 그랜드 터틀의 분노가 어디로 튈지 모르니 놈의 시야가 닿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
쿠콰아앙!!
그리고 떨어져 내린 놈의 아래에 있던 산이 바디 프레스의 충격에 아예 구릉지가 되어버리고 주변 건물이 충격으로 죄다 박살 나버리는 모습에 눈을 찌푸렸다.
제길, 다행히 사이렌 소리에 다들 빠르게 대피해서 인명피해는 없는 거 같은데….
그랜드 터틀의 눈앞에 알짱거리면서 계속해서 하철수를 팅겨올리며 그랜드 터틀의 시선을 붙잡았다.
쁘아앙! 뻐엉! 프아아앙!!
보디 프레스로 날 깔아뭉개지 못한 그랜드 터틀은 제 성질을 못 이기고 발악하듯 새까만 두 눈에서 살기를 줄기줄기 흘리며 터져나간 주둥이에서 충격파를 쏘아대기 시작한다.
하지만 주둥이가 폭발력과 충격파의 방향을 잡아주고 있었는데 아래턱이 사라졌으니 제대로 날아올 리가 있나. 턱 아래의 애꿎은 땅만 연달아 터트리며 덩달아 자기도 자기 자신이 쏘아낸 충격파에 찢어발겨 지며 더욱더 피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도 하철수는 메스실린더 모양의 공간의 벽 속에서 점점 밀려 올라오며 지상에서 1km가량 치솟아 올랐다. 어느 정도 높이 솟아올랐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입구가 좁고 통이 큰 물병 모양으로 재생성한 다음 메스실린더 모양의 공간의 벽을 치웠다.
저렇게 해두면, 빛 벼락을 맞고 다크매터 슬라임이 터져나가더라도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겠지.
문득 공간 보호막에 침 같은걸 튀기는 공격을 받은 게 생각났다. …혹시 모르니 좀 더 두껍게, 다섯 겹으로 만들어놓자.
꿔허어어어어억!!!
쿠쿵, 쿵! 쿠웅!
날 향해 괴성을 지르며 발을 구르는 그랜드 터틀은 무시하고 하늘에 마탄을 한 발 쏘아 올려 터트렸다. 히아리드에게 말했던 신호.
그리고,
=하늘이시여!!=
짜랑짜랑한 히아리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며 어느새 모여든 먹구름의 한복판이 새하얗게 달아오르더니,
츠팟!!
그랜드 터틀의 광역 폭발보다는 덜하지만, 태양을 가릴 정도의 빛이 폭사 된다. 동시에 하늘에서 어지간한 빌딩 굵기의 빛의 벼락이 물병 모양의 입구를 통과해 하철수에게 정확히 내려꽂혔다.
쯔자자자작…!
프펑!!
“=끄아아아아아아!!!=”
빛의 벼락에 적중당하는 순간 검은 액체가 사방으로 터져나간다! 그리고 하철수는….
빛의 벼락에 적중당해 다크매터 슬라임이 폭발하듯이 퍼지는 순간 히아리드의 빛 벼락에도 아주 잠깐 구워졌는지 더럽고 찢어졌던 옷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리고 몸도 빛과 열에 익어버렸다.
그런데 체모도 재가되어 사라지고 새빨간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놈의 몸뚱아리에서 전혀 다른 위상력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아, 1,400만짜리는 다크매터 슬라임의 위상력이었어! 놈을 감싸던 다크매터 슬라임이 터져나가니 하철수의 위상력이 정확하게 감지된다.
위상력 350만. 정확하게 B 클래스에 진입한 상태 그대로다.
그런데 위상력의 형태는 3차원의 축을 한번 꼬은 뫼비우스의 띠 모양이 아니라 4차원 축을 180도 회전시켜 꼬아 붙인 모양이다. 저런 모습을 클라인의 병이라고 하던가? 저게 정신 조작 능력자의 위상력 형태인가보다.
붉게 충혈되다 못해 안구의 혈관이 파열되어 새빨갛게 변한 눈, 폭발한 것처럼 번져나간 홍채는 인간의 그것이 아닌 걸로 보인다.
전신이 빛과 열에 구워지고 익어버려 시커멓게 타고 벌 건 근육이 드러난 끔찍한 몰골로 추락하는 놈은 그 순간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이지도, 이성도 사라진듯한 모습이지만 내게 무시무시한 증오를 보내고 있었다. 아까도 혜령이 이모랑 하유철 부장의 이름을 으깨 먹어 버릴 듯이 증오를 담아 소리쳤었지.
-정, 서….-
순간 무언가 입술을 달싹이기에 나도 모르게 독순술로 녀석의 입 모양을 읽어버렸다.
…네놈이랑 말 섞기 싫어. 놈과 시선을 나눈 건 고작 0.5초 남짓. 무언가 말을 하려는 놈을 공간의 벽으로 감싸버렸다.
빛 벼락의 여파에 익어버린 걸 보면 가만히 내버려둬도 항아리 모양의 공간의 벽에 떨어져 분해돼버리겠지만 저런 놈은 1초라도 빨리 세상에서 없애버려야 한다.
말도 채 잇지 못하고 내게 시뻘겋게 익은 팔을 뻗으려던 놈은 공간의 벽에 갇히자마자 서서히 분해되며 하철수라는 존재가 세상에 지워져 간다.
분해되는 와중에도 피에 물든 시뻘건 눈동자로 날 응시하길래 나 역시 놈이 티끌 한 줌 남기지 않고 사라질 때까지 바라봐줬다.
내 예감대로 나에게 있어 첫 번째 살인이지만 눈앞에서 분해되어가는 하철수를 보며 괴롭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감정은 없고 반대로 통쾌하다거나 속 시원하다는 감정도 들지 않는다.
그냥…. 해야 할 일을 했다는 기분뿐이다.
꿔어어어어억!!!!
쿠앙! 쾅쾅! 콰앙!
하철수가 사라지는 순간은 나뿐만 아니라 그랜드 터틀도 보고 있었는데, 하철수가 지워지는 모습을 마지막까지 보더니 앞다리를 대지에 연신 내려찍으며 피를 토할듯한 포효를 질러댄다.
마치 포탄 수십 발이 연달아 터지는듯한 무시무시한 굉음.
작은 빌딩 두께의 두 앞다리가 대지를 내려찍을 때마다 지진이 난 것처럼 주변의 땅이 불쑥불쑥 솟아오르고 근방에 겨우 버티고 서있던 주택과 공장들이 먼지 구름을 피워올리며 무너져간다.
그 사이 다크매터 슬라임은 항아리 모양의 공간의 벽을 타고 슬금슬금 흘러내리더니 한데 뭉쳐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섯 겹으로 공간의 벽을 쳐둔 게 정답이었는지 다크매터 슬라임의 흔적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이에 가장 많이 고여있고 두 번째와 세 번째에는 아주 약간의 파편만 모여있었다. 나머지는 흔적도 없으니 지상에 떨어진 다크매터 슬라임의 파편은 없겠지.
우선 공간의 벽을 한 겹 더 치고 속에 겹쳐져 있던 다섯 겹의 공간의 벽을 치워버렸더니 후두두 떨어지며 한 곳으로 모여든다. 한 곳에 모두 모인 녀석은 합쳐지더니 내가 가끔 가지고 놀던 화연이의 젖가슴처럼 흔들거리며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저놈이 딴 데 도망가지 못하도록 공간의 벽을 축소해 동그란 구체 모양으로 바꿨더니 다크매터 슬라임은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공간의 벽 안에 고인 채 이리저리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확인해보니 역시나 위상력 1,400만, 정확히 1,422만이다. 나나 프랑이 본 위상력은 하철수의 것이 아니라 저 다크매터 슬라임의 것이었어.
이제 그랜드 터틀을 잡아 죽…?!
하철수가 자라진 지점에서 350만의 자욱한 위상력이 안개처럼 퍼져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뭐야? 능력자도 죽으면 위상력을 퍼트리…는구나.
나도 참, 뮈르딘이 그랬었지. 능력자가 죽으면 위상력이 퍼져 나온다고. 인간이 가장 큰 위상력 생성기라고. …근원력 생성기랬던가?
…저것도 내가 흡수할 수 있으려나.
같은 등급, 같은 클래스의 위상력이니 흡수할 수 있는 조건은 만족하는데….
시험해보기 위해 안개처럼 퍼져나오는 위상력 속으로 뛰어들어 전신의 마나 시브를 격렬하게 회전시키니 기다렸다는 듯이 350만의 위상력이 내 몸속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다.
능력자를, 사람을 죽이고 그 위상력을 흡수하는 거라 조금 기분이 찝찝했지만 애써 생각을 털어냈다. 날 그토록 마음고생 시킨 놈이니 위로금, 아니 위로 위상력으로 여겨야지.
첫 만남부터 재회하는 그 순간까지 최악이었지만 마지막에 내게 도움이 되어주는군. 그러고 보면 정신 조작 능력자의 위상력 타입은 뫼비우스의 띠랑은 전혀 다른 클라인의 병 모양이었지.
…한번 실험해봐야겠다. 잘하면 저 다크매터 슬라임을….
눈을 감고 가만히 하철수가 사라지면서 세상에 퍼트린 위상력을 몸 안으로 흡수한다.
700만이던 위상력이 1,050만까지 늘어난다. 그리고 그런 날 보며 발광하던 그랜드 터틀은 움직임을 멈추고 시커먼 두 눈으로 날 조용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증오, 혹은 분노라고 부르기엔 너무 유치하고 품격에 걸맞지 않을 정도의 나를 향한 적의.
정신 조작으로 어지간히 하철수에 대해 애정을 품어버렸나 보다. 그리고 자기도 죽게 될 거라는걸 깨달은 것인지 공격하려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손을 들어 그런 그랜드 터틀의 몸 전체를 공간의 벽으로 지워버리려는 순간.
“회, 회장! 잠깐! 스톱!! 멈춰!!!”
저 멀리 도망갔던 지부장 형이 바람 속성 능력자의 도움을 받아 날아오며 애타는 손짓으로 날 멈춰 세운다. 그 뒤를 따라 히아리드도 내 옆으로 날아오더니 격노와 증오가 담긴 눈으로 날 보는 그랜드 터틀을 주시한다.
“…왜요? 그랜드 터틀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빨리 죽여야….”
“방금 다 지워버리려 했지?! 저건 최고위 이형종이다. 사체의 가치가 얼마나 될지 몰라! 강동구가 완파되었는데 복구 비용과 이재민을 위한 시설 확보 비용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나. 아, 다, 당연히 저놈을 죽이면 그 사체의 주인은 회장이지만 넌 대한민국 최고의 레이드 팀 마스터잖나. 집과 재산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에게 자비와 아량 정도는 보여줄 수 있겠지?”
“아, 그러네요.”
지부장 형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그 순간 그랜드 터틀의 몸 내부에 있는 842만의 위상력이 조용하지만 무시무시한 기세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뭔가 등골이 오싹한 게, 그랜드 터틀이 마지막 수단을 쓰려는 거 같다. 마지막 수단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막아야겠다. 슬쩍 지부장 형을 보니 형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다.
지부장 형이 눈치 못채게 혹시 몰라 챙겨온 고위급 위상석에서 TP를 뽑아 공간의 벽을 치느라 소비한 TP를 채우면서 다시 한 번 저 거북이 녀석의 주변으로 공간의 벽을 씌울 준비를 했다.
그리고 놈의 사지와 목에 얇고 커다란 공간의 벽을 네모난 판 모양으로 만들어서 10 중첩, 20 중첩을 해가니 놈이 구슬픈 울음소리를 낸다.
끄허어어어어!!
뿌드드드드드….
어지간한 주택 서너 채를 합친 것보다 큰 거북이의 거대한 혀가 사라진 턱 아래로 끊어질 듯이 덜렁거리고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눈에 보일 만큼 공간의 벽이 겹쳐진 피부가 비틀리고 살이 뒤틀리며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꺼어어….
쯔즈즈즈즉. 뚜두둑. 투둑. 우지직.
살과 살이 마찰되고 근육이 끊어지는 듯한 소음이 울려 퍼지자 아래턱이 사라진 거북이는 기괴한 포효를 지르며 가속되던 위상력의 회전을 늦추면서 몸을 움직여 공간의 벽을 벗어나려 한다.
후우.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조마조마했는데 스스로 회전을 멈춰주니 다행이다.
놈이 움직여서 도망치려 할 때마다 공간의 벽을 연달아 치면서 쫓아가니 그랜드 터틀은 고통스럽다는 듯이 구슬프게 울며 거대한 덩치를 이리저리 비틀거리다 힘이 다했는지 먼지를 피워올리며 거체를 대지에 안착시켰다.
쿠우우우웅….
“…형. 그랜드 터틀이 원래 저렇게 허약해요?”
그랜드 터틀의 목에 다시 공간의 벽을 쳤지만, 녀석은 더는 움직일 기력이 없는지 네 다리를 버둥거리는데 그 움직에 대지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허어어….
지부장 형은 공간의 벽에 갇혀있는 다크매터 슬라임을 보다가 내 말을 듣더니 '이런 미친놈을 봤나.'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미친놈이라니!
“…하아. 네 수준에서야 허약한 거다. 저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쇼크웨이브는 B 클래스 중상급의 신체 강화 능력자가 갖은 장비로 중무장한 상태라 하더라도 일격에 빈사 상태로 만들어버려. 거기에 일정 이상의 피해가 누적되면 놈은 등껍질 속으로 숨어버린 다음 껍질에 쇼크웨이브를 응축시키고 진동시켜 한 번에 폭발시키는 빅뱅을 쓰는데, 이건 반경 수십 킬로미터를 먼지로 만들어버리지.”
아, 아까 등껍질이 하얗게 타오르던 그게 그거였나 보다. 확실히 충격파도 꽤 아프긴 했었지. 마나 시브의 보호 효과가 아니었다면 나도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중간에 날 보며 입 밖으로 "그걸 막다니, 괴물 같은 녀석."이라고 중얼거린 지부장 형은 쓰러져서 사지를 힘겹게 버둥거리는 그랜드 터틀을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거기에 거대한 체구와 등껍질, 두터운 피부는 내가 전력을 다한 엘리멘탈 클러스터 밤을 날려도 흠집조차 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거대한 덩치니 체력과 내구력은 덤으로 따라오겠지. 껍질이 없는 곳이나 머리를 공격하면 아까처럼 등껍질 속으로 숨어버리기도 하고 멀쩡한 상태 때는 5km, 6km를 점프해서 덮치는 공격을 가하기도 한다.”
“설명만 들어서는 평범한 B 클래스들은 절대 못 잡는다는 이야기로 들리는데….”
투드드드득. 꿔허어어….
공간의 벽의 압력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 그랜드 터틀의 목이 공간의 벽이 쳐진 부분을 시작으로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한다.
“당연하다. 수십 년 전 미국에서 최고위 이형종인 이무기를 레이드 하려다 A 클래스 3명을 포함해 수백명이 증발한 사건도 못 배웠냐. 저 그랜드 터틀은 이무기보다 못하다고 평가를 받는 편이지만…. 최고위 이형종 자체가 너 같은 괴물 자식을 제외하면 일반 능력자들이 어찌할 수 있을 존재가 아니야.”
음. 뭐….
“현실로 넘어오기 전에 무언가와 격렬한 전투를 치뤄서 체력이 떨어진 상태일 수도 있고 정신 조작을 가했던 하철수가 죽으면서 심령에 큰 타격을 받은걸 수도 있고. 어쨌든 중요한 건 이제 죽어간다는 거지.”
품 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인 지부장 형은 복잡한 심경으로 공간의 벽에 의해 점점 목이 비틀려가는 그랜드 터틀을 눈도 깜짝이지 않고 주시한다.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