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74 마지막 정리. =========================================================================
어머니한테 향을 올린 다음 할머니의 집 안으로 들어왔더니 할머니는 화연이를 끌고 안방으로 들어가셔서 화연이에게 큰 절을 받으셨다.
흐뭇한 모습으로 화연이의 절을 받은 할머니는 한쪽 옆에 얌전히 프랑을 가만히 보시다가 말씀하셨다.
“작은 아가, 너는 절 하지 않을 셈이니.”
“네?! 아, 저는…. 사람이 아닌데….”
갑작스러운 지목을 받은 프랑은 당황해서 어버버거리다가 날 보고 아빠랑 엄마를 보는데 엄마의 손에 밀려 앞으로 나간 프랑은 이어진 할머니의 말에 얼굴이 빨개져 버렸다.
“우리 강아지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
할머닌 어디까지 알고 계시는 거지? 빨개진 얼굴로 할머니한테 절을 올리는 프랑의 뒷모습을 보다가 아빠랑 엄마를 바라보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할머니한테 전부 이야기해줬나 보다.
그리고 날개 달린 히아리드와 집 안을 종종거리며 구경하는 미호를 보신 할머니는 "얘들도 신붓감이니?" 하고 물어오셔서 뇌가 쏟아져라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온다는 이야기에 키우던 수탉 세 마리를 잡아 손질해놓으셨다는 할머니는 뒤뜰로 나가서 푹 고은 삼계 닭죽을 가져오시고 엄마도 언 동치미와 총각김치를 꺼내와 뒤늦은 말복 음식을 챙겨주셨다.
점심을 먹은 뒤 할머니는 사진첩을 가져와 한 번도 보지 못한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그리고 얼마 전 처음 본 어머니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사진에는 나보다 어려 보이는 선이 가느다랗고 아름다운 여자아이가 어린 시절의 아빠랑 삼촌의 팔을 끌어안고 활짝 웃고 있었는데, 꿈에서 본 어머니와 똑 닮아있었다.
19살 이전에 찍은 사진인지 나보다 조금 더 어려 보이는, 꼭 양갓집 규수만큼이나 곧게 뻗은 긴 머리에 눈처럼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어머니는 조용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외견이라 푼수에 왈가닥으로 안 보인다.
“…사진만 봐서는 되게 착하고 얌전해 보이는데 정말 푼수에 왈가닥이었어?”
내 말에 할머니는 소리죽여 웃으시고 아빠는 한숨을 푹 쉬면서 입을 열었다.
“형님과 냇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을 때면 매번이라고 할 만큼 등 뒤에 몰래 다가와서는 나와 형님을 강물에 밀쳐 넣었지. 난 빠져 죽지 않기 위해서 수영을 배웠고.”
나랑 할머니 눈치를 살피던 미호는 여섯 개의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엉금엉금 기어가 할머니 품에 안겼다.
할머니는 넉살 좋은 녀석이라며 손을 들어 미호의 하얀 머리를 쓸어주면서 엄마한테 약과를 가져오라 시키고는 미호에게 하나 까서 먹여주신다.
“겨울에 눈이 올 때면 아침마다 나와 형님 방에 들어와서 자고 있는 우리에게 눈을 뿌려대질 않나 산과 들을 뛰어다니다 자빠져서 데굴데굴 구르는 바람에 팔다리에 생채기가 나서 속상해하는 어머니에게 침 바르면 낫는다고 했다가 등짝을 맞기도 여러 번이었지.”
…진짜 왈가닥이었네.
졸지에 키워준 엄마에 낳아준 어머니까지 엄마가 둘이나 되어버렸지만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정작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일은 따로 있었다.
“수린이 고것은 자기 복수를 하는 건 원하지 않을 게다. 싸움을 원체 싫어하는 아이였으니까.”
나한테서 어머니를 알게 된 연유를 모두 들으신 할머니는 슬픈 눈빛으로 날 바라보면서 말씀하셨다.
“할머니. 전 꿈에서 어머니가 어떻게 당하는지 전부 지켜봤어요. 어머닐 죽음으로 몰고 간 녀석들을 전 절대로 용서 못 해요.”
“그러다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그 아인 더 싫어할 게야.”
할머니는 내가 그 악마들과 싸우려는 게 몹시 싫으신지 거듭날 설득하려 하시지만 내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죽거나 다치지 않게 지금보다 훨씬 강해진 다음에 치사하게 절 손도 못 댈 정도로 멀리서 때려눕힐 거에요.”
세상일이 내 생각대로 흘러가면 좋겠지만 그렇게 될 리는 없겠지. 하지만 내 능력을 알고 있는 가족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 모습을 본 할머니도 옅게 한숨을 쉬시며 무리하진 말고 몸조심하라는 말로 마무리 지으셨다.
그날 오후에는 화연이와 누나와 두 펫을 데리고 마을 옆의 냇가로 놀러 나왔다. 냇물은 계곡에서 흘러내려 온 차가운 물이 흐르고 있어서 피서를 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할머니는 싹싹하고 작고 예쁜 프랑이 마음에 들었는지 음식을 가르쳐준다며 붙잡고 뒤뜰 장독을 모아둔 곳으로 나가셨었다. 프랑은 그런 할머니 모습에 무척이나 기뻐하면서 따라갔고.
귓가를 따갑게 울리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그늘에서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다 문득 든 생각에 누나랑 화연이를 돌아봤다.
누나랑 화연이는 손에 샌들을 들고 냇물 속에 발을 담근 채 물장구를 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니 살살 장난치고 싶어진다.
“그러고 보면 난 31살이 되는 건가?”
누나랑 화연이는 갑자기 내가 무슨 소릴 하나 싶은 표정으로 돌아본다.
“맞잖아. 아빠가 20살일 때 내가 태어났으니까 올해로 31살이지.”
실실 웃으면서 하는 말에 누나도 화연이도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짓는다. 누나는 손으로 물을 뿌리면서 말했다.
“뭐어? 그게 말이 돼?
“안될 건 뭔데? 민증으로는 18살이지만 태어난 날로 따지면 31살이잖아. 자, 오빠라고 불러봐.”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내 반박에 벙찐 표정으로 자그마한 바위 위에 앉아 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던 누나는 말도 안 된다는 소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화연이는 작게 웃음 짓더니 조그만 입술을 벌려 듣기에도 짜릿한 단어를 꺼낸다!
“서하 오빠?”
“으헤헤.”
난데없는 화연이의 배신에 누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화연이를 본다.
“난 중세 시대 다녀오면서 키가 또 커졌다고? 이제 누나보다 키도 크고 나이도 많고 돈도 많으니까 오빠라고 불러도 이상할 게 없잖아?”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지 누나는 얼굴에 비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그래서 31살에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하게?”
앗. 그렇게 되나?
“그렇게 들으니까 무진장 한심한 사람이 된 기분이야!”
나랑 누나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던 화연이는 피식 웃으면서 내게 다가오더니 눈높이를 맞춰본다.
나도 화연이도 맨발로 서 있어서 키를 재보는데 코앞까지 다가온 화연이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살짝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친다.
“정말이군. 이제 182cm는 될 거 같다.”
“정말?!”
“그래. 눈높이가 5cm는 차이 나는 거 같다. 내가 얼마 전에 쟀을 때 177이었으니까 확실해.”
매의 눈이네.
실제로 176cm이던 키가 182cm까지 자랐는데 중세 시대에서 뮈르딘의 이야기에 2일간 정신을 잃고 잠에 빠져있을 때 좀 더 커진 거 같았다.
“말도 안 돼. 3월까지만 해도 160의 꼬맹이였는데 5개월 만에 20cm나 자라다니!”
누나는 믿을 수가 없다는 목소리로 참방거리면서 폴짝폴짝 뛰어오더니 나랑 확연히 차이 나는 눈높이에 황당해하면서도 즐거워했다.
나도 씩 웃으면서 손을 뻗어 두 여자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쓰다듬어 주니 누나는 내 옆구리를 찌르면서 흘겨본다.
- 꺄하하!
=차갑습니다.=
첨벙거리면서 뛰어다니던 미호는 꼬리고 머리고 물에 홀딱 젖더니 이제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는 히아리드에게 능력을 사용해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속옷이라고는 팬티만 입고 있던 히아리드는 물에 젖은 원피스 덕에 폭발적인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분홍색 유두가 훤히 비쳐 보인다.
그 모습에 주변에 여름 성수기라 근처 민박과 펜션에서 지내는 걸로 보이는 여행객이 지나가다 말고 히아리드의 몸매를 훔쳐보기 시작한다.
…저 새낀 미호를 훔쳐보네?
배 튀어나온 중년 남자의 거지 같은 눈초리에 찜찜한 기분이 들어버렸다.
“히아리드. 미호 데리고 돌아가서 옷 갈아입어.”
=네, 하늘님.=
- 꺄아~! 시러! 더 놀래~!
미호를 품에 껴안은 히아리드는 한여름의 햇살을 받아 순백으로 빛나는 네 장의 날개를 퍼덕이며 할머니 집 방향으로 날아간다.
저 멀리 날아가는 히아리드의 뒷모습에 시선을 보내던 휴가철 여행객들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다 눈에 마나 시브와 살기를 미약하게 집중한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더니 허둥거리며 도망간다.
“…좀 재수 없다. 우리도 들어갈까?”
옷을 갈아입은 미호와 히아리드를 데리고 물가에서 노는 건 관두고 이번엔 뒷산에 놀러 가기로 하고 나가려는데 이번엔 화연이가 할머니한테 붙잡히는 대신 프랑이 풀려나 내 곁으로 다가왔다.
풋풋한 채소 향기와 사과 향 체취가 섞인 프랑에게서 여름 소녀 같은 묘한 향기가 난다.
그렇게 일요일은 온 가족이 다 함께 사람이 별로 없는 뒷산의 계곡으로 놀러 가 수영도 하고 챙겨온 도시락도 먹으면서 즐겁게 놀 수 있었다.
계곡에서 생각도 못한 가족 여름 휴가를 보냈더니 마음속에 품을 뻔 한 마이너스의 감정은 여름의 햇살 아래 남김없이 사라져 갔다.
집에 되돌아갈 땐 할머니한테서 어머니의 사진 한 장을 받았다. …마치 이름 없는 하얀 들꽃처럼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집에 돌아가서 액자에 보관해야지.
여름방학에 외할아버지 집에 놀러 가지 않으면 추석 때 아빠가 외할아버지한테 무시무시하게 갈굼당한다는걸 알기에 그다음 주말에는 외할아버지 집에 놀러 가는 걸로 길었지만 짧았던 여름방학이 끝났다.
* * *
내 과거가 밝혀진 여름방학이 끝나고 2달간은 큰일 없이 흘러갔다. 아니, 큰일이라면 큰일인가.
아무튼, 그랑 블루 위상석 정제소가 만들어졌다.
2달 전에, 내가 중세 과거에서 헤롱거리고 있을 때 우리나라 랭킹 8위인 한솜 레이드 팀의 주력이 위상 세계에서 고위 이형종을 만나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 사건이 일어났었다.
그전에 한솜 공격대는 레이드팀의 확장을 위해 정제소를 짓고 있었는데 주력 레이드 팀원의 괴멸로 인해 운영에 치명적인 지장이 생겨버렸고 손해를 메꾸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의 다 지어진 정제소를 팔아 뒷수습을 하려 했다.
한솜 레이드 팀의 입장에서는 미래를 생각해 크게 지었지만 혜령이 이모가 구상하던 크기에는 못 미치는지 일차적으로 그 정제소를 매입하고 주변 부지도 추가로 매입해 확장하는 것으로 하겠다며 95%가량 완성된 정제소를 인수했다.
그리고 멈춰있던 정제소 건설의 바톤을 이어받아 마저 완공시킨 뒤 본격적인 가동과 함께 정제소의 확장을 추진했다.
정제소가 가동을 시작하며 개업식을 할 때에는 그랑 블루 발족식 때처럼 국내 대기업의 회장들과 수많은 레이드팀의 수장들이 직접 찾아와 축하화환과 함께 축하의 인사를 전해왔다.
이렇게 가동된 그랑 블루 위상석 정제소에서는 위상석에서 에너지를 뽑아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사각형 패널 충전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고로 혼자 다 해 먹을수록 이윤은 크게 남는다고 했다.
폐급 위상석을 구해서 충전하고 정제 소에 넣어서 에너지 패널로 만들어 판매 및 수출까지 시작하니 충전해둔 고위급 위상석을 팔지 않아도 매년 수십 조에 이르는 이득이 난다던가.
지금은 일반 생활에 쓰이는 에너지 패널의 생산만 하고 있지만, 공장이 확장되면 그때는 대형 발전기에 쓰이는 대형 에너지 패널도 만들 수 있게 된다고 하는데 그쯤 되면 세상의 돈이란 돈은 다 긁어모을 수 있을 거라고 혜령이 이모가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정제소 관리소장으로 전직 장성 출신의 청렴결백한 군인을 앉혀놨는데 영은이가 정말 믿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해서 나도 의심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혔다.
물론 마나 비전으로 호감도를 주입한 건 당연한 거고.
그리고 내가 이사장으로, 주한 할아버지를 대표이사로 한 재단이 완성되었다.
재단 이름은 늘 푸른 재단.
재단 하위 부서로 운영위원회와 정책위원회를 조직한 다음 기획부, 정책연구부, 관리부, 사업부를 바탕으로 재단 운영을 해나가게 했다.
간단하게 1조 원을 집어넣고 모든 운영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볼 수 있게끔 투명하게 하도록 지시한 뒤에 손을 뗐더니 어머니가 내 등을 찰싹 때리면서 무슨 일을 그렇게 하냐고 혼을 냈다….
“그냥 돈 던져주면 끝인 줄 아니? 재단 감사팀을 만들어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들이 없나 살펴봐야지!”
“그, 그건 대표이사인 주한 할아버지가.”
“그분은 다른 업무로 바쁜데 언제 감사업무를 하시겠니?”
“그럼 어쩌라고! 엄마가 대신 해줄 거야?”
“그래. 엄마한테 맡겨두렴.”
“…진짜?”
엄마랑 함께할 시간을 뺏는다고 생각하는지 아빠가 신문 너머로 날 노려보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병원을 옮기면서 기본 총무 일이 그랑 블루로 넘어가 버리는 바람에 엄마가 너무 심심하지 뭐니. 마침 우리 아들이 좋은 일 하는데 그런 부분이라면 엄마가 도와줄 수 있단다.”
“화, 확실히 엄마라면 감사 업무에 딱 맞을 거 같은데.”
아빠가 작은 병원을 할 때 날카롭고 꼼꼼하게 총무부를 운영한 덕분에 7층짜리 건물을 살 수 있을 정도로 확장했으니까….
무시무시한 아빠의 눈치를 외면하면서 엄마한테 맡겼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의 친구나 후배들을 불러모으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바로 감사팀을 조직해버렸다.
그러면서 나한테 서류뭉치를 건네주길래 뭔가 보니 감사팀의 인원에 대한 경력서와 감사보고서였다.
“이걸 2일 만에 다 한 거야?”
“이미 재단 운영이 시작됐잖니? 우리 아들 돈이 어떻게 새어나갈지 모르는데 빨리 처리해야지!”
아, 네. 누나 성격이 어디서 왔나 했더니 엄마한테서 왔군요.
그래서 감사 보고서를 넘겨보니 재무제표로, 재무상태와 운영 성과, 현금 흐름에 주석이 달린 한눈에 이해가 될 만큼 간단명료한 보고서였다!
진짜 누나 업무 처리 능력은 엄마한테 물려받은 거야?
그 뒤에 만난 주한 할아버지가 허허 웃으시면서 엄마의 업무 능력에 진짜 놀랐다며 대표이사로서 부담이 절반이나 줄었다고 엄마를 수십 분간 칭찬하셨는데 진짜 우리 집에서는 나 빼고 다 천재인 거 같아….
재단 업무가 시작되고 장 먼저 혜택을 받은 건 당연히 죽은 경호원 누나의 동생인 권희지였다.
보호자가 없는 권희지는 간단히 법정 대리인을 내세워 권희지의 재산을 보호해주고 보호자 역할을 맡게 해줬다. 내가 대부가 되어주고 싶었지만 주민등록법상으로는 나도 아직 미성년자니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예상대로였지만, 명목상의 친척이란 작자들이 희지의 재산을 노린 들개…. 똥개처럼 달라붙으려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 앞에 직접 나설 필요가 있을 거 같아 어느 날 희지 앞에 나타난 친척들을 막아섰더니 뚜껑이 열릴만큼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들이밀기 시작했었다.
“아니, 우리 희지가 아직 어려서 큰돈을 손에 쥐고 있으면 위험하니 우리가 관리해주겠다는 건데 당신이 뭐라고 막아선단 말요!!”
“뭐긴요. 제가 일본에 배상금 받아내서 희지한테 건네준 당사잔데요?”
“뭐…. 네?”
손바닥 위로 호박색 공간의 벽을 띄워 올린 뒤에 내 뒤에 붙어서 불안에 떠는 희지를 다독이면서 입을 열었다.
“아저씨랑 아줌마들이 뭔데 희지의 언니의 사망 위로금에 침 바르려고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이미 희지한테 위로금으로 지급한 돈은 재단에서 직접 관리에 들어갔거든요?”
휘둥그레진 눈으로 공간의 벽을 힐끔힐끔 보던 인간의 탈을 쓴 똥파리들에게는 1,000억이란 돈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금액인지 약하게 반항하기 시작한다.
“아니, 그런 게 어딨습니까…. 관리를 해도 친척인 우리가 관리해야지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남남인데 어떻게 믿고….”
“어떻게 믿고? 사람이면서 그런 개소리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희지랑 희지의 언니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봤는데 아주 가관이더라구만요. 친척이란 인간들이 희라, 희지 자매가 힘들 땐 외면하고 무시하면서 없는 사람 취급하더니 큰돈이 생기니까 그제야 친애의 감정이 샘솟으시나 봐요.”
이죽거리면서 빈정거리니 일곱 똥파리의 가장 앞에 선 똥파리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가 누군지 아는 이상 분노를 터트릴 수야 없겠지.
“그러니 걱정 안 해도 돼요. 희지가 성인이 되고 자기 관리가 가능해지면 그때 재단에서 희지 본인의 계좌를 만들어 직접 챙겨줄 거니까요. 정말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말고 도와줘야지 어디 눈에 뻔히 보이게….”
혀를 차면서 더러운 벌레 보듯이 친석이라는 인간들을 바라보니 그래도 창피라는 걸 아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큰돈이 생겼다고 빌붙으려는 이런 인간들이라면 돈을 위해서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희지한테는 전담 재산관리사와 변호사가 붙어서 그 돈 전부 관리해줄 거고요. 희지한테 몹쓸 수작 부리는 인간들이 없게끔 재단 차원에서 희지를 보호해주고 살펴줄 거니까, [닥치고 꺼져주세요.]”
뭐라 말하려던 친척을 빙자한 똥파리들은 마나 보이스를 섞은 목소리에 파랗게 질리면서 슬금슬금 물러난다.
“아, 그리고 이렇게 함부로 희지 앞을 막아서거나 쫒아다니는거, 스토킹 방지법에 걸리는 거 알죠? 앞으로 한 번만 더 이런 모습을 보이면 재단 소속 법률팀이 영혼까지 탈탈 털어드릴 테니 앞으로 희지 앞에 나타나지 않길 바랄게요?”
도망치듯이 사라지는 친척이란 인간들을 짜증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내 뒤에 숨어있던 희지가 살짝 긴장된 숨을 내뱉더니 애써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고, 고마워요. 서하 오빠….”
“고맙긴,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이런 상황이 생길 거 같아 일부러 여기에 집을 마련해주고 저런 인간들이 못 찾아오게 비밀로 했는데…. 인간은 돈 욕심 앞에서는 무진장 유능해지나 보다.”
쓴웃음을 짓고 희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힐링 터치를 걸어주니 창백해진 안색이 불그스름해지며 혈색이 보기 좋게 돌아온다.
“아니에요. 오빠 잘못이 아니라 대가 없이 큰돈을 받은 제 잘못이죠….”
“그건 대가가 아니야. 네가 정당하게 받아야 할 배상이지.”
“…저요. 앞으로 하고 싶은걸 찾았는데요. 오빠가 그걸 지켜봐 주면 좋겠어요.”
“어? 뭔데?”
“열심히 공부해서 늘 푸른 재단에 취직한 다음 저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거요.”
이제 중2 밖에 되지 않은 희지는 반짝거리는 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날 보며 말했다.
“…그래. 힘내.”
“네!”
나같은 성격의 인간이 있으면 희지처럼 착하고 순수한 사람도 있어야 균형이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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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