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9 나는…. =========================================================================
“녀석의 장례를 치르기 전에 나와 어머니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수린의 일을 아는 자라면 틀림없이 너의 모습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낄 테고, 네 존재가 알려지면 정부든 연합이든 널 끌고 갈 게 뻔했으니까.”
평범한 아기의 반의반도 되지 않는 크기의 나는 평범한 아기들처럼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 반복했지만, 차이점은 울지도 않고 온종일 잠만 자면서 보냈다는거다.
결국 할머니와 아빠는 나에 대해 비밀로 해버렸다.
어머니는 배가 그다지 불러오지 않았기에 가끔 외출할 때 품이 넉넉한 옷을 입혔었는데 그것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가 임신부인 걸 몰랐다고 했다.
“수린이 죽은 다음 날 정부와 연합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었다. 인증기에서 생체 신호가 간 거겠지. 하지만 알려줄 건 없었다. 그들 역시 집안을 살펴보고 집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수린이 자살했다는 판단을 내린 뒤 돌아가 버렸지.”
당시의 나는 무척이나 작은 데다 하루종일 잠들어있는 상태여서 날 숨기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능력자 연합에서 나온 자들은 어머니의 시신을 확인하고 협조를 받아 집안을 살펴본 뒤에 돌아갔다.
“저기, 그런데 아빠는 전에 이야기했을 때 엄마가 병원에서 자살…했다고 했잖아. 그건 어떻게 된 거야?”
“그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겠느냐. 그러니 적당히 숨겼다.”
하긴…. 집에서 1년간 요양 잘하고 있다가 갑자기 고모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나도 충격 먹었겠지.
아빠는 사진첩에서 사진 한 장을 가져와 나에게 보여준다. 빛바랜 사진에는 활짝 웃는 어머니가 있었다. 날 낳아주신 어머니. 내 또래로 보이는 어머니의 사진.
…꿈에서 본 그 얼굴이다.
“그 당시 평범한 의학과 대학생이던 나와 시골에서 홀로 사시던 어머니는 뒷 일은 어찌 될지 모르지만 널 최대한 숨겨놓고 키우기로 했다.”
안되면 해외로 나갈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기였던 나는 종일 잠자다가 입에 분유를 흘려 넣어주면 깨어나서 분유를 받아먹다가 배가 부르면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고 했다.
덕분에 누군가 찾아와도 집 안에 아기가 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고 할머니와 아빠는 다락방에 아기에게 최대한 좋은 환경을 꾸며놓은 뒤 날 그곳에 숨겨놓고 키우셨다.
아빠가 내 건강 기록 파일을 모으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매년 인턴도 되지 못한 의과 대학생이지만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공부해서 정기검진에 맞게끔 항목을 갖췄다고 했다.
“믿을 수 없었던 건 그렇게 12년간 천천히 자라났다는 거다. 그 와중에 네 엄마를 만나 결혼하고 그 뒤에 네 누나가 태어났지. 그리고 네가 막 태어난 평범한 아기들과 신장도 체중도 비슷해졌을 때는 네 엄마가 둘째를 유산했을 때였다.”
유산…. 엄마가 유산했다고?
똑똑.
그때 노크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문을 돌아보니 엄마가 음료수를 가지고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무슨 일이시오.”
엄마는 차게 만든 보리차 두 잔을 쟁반에 들고 들어오며 방긋 웃었다. 열린 문 뒤로 누나랑 화연이랑 영은이가 이쪽을 기웃거리는 게 보였는데 엄마는 내 앞 탁자에 쟁반을 놓고 돌아서서 문을 닫고 내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긴요? 우리 아들 일인데 저도 있어야죠! 어쨌든 어디까지 이야기했지요?”
내 옆에 앉아 날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엄마는 아빨 올려다보며 물었다.
“당신이 유산했던 부분이오.”
“아….”
엄마는 살짝 슬픈 표정을 짓더니 놀란 날 돌아보며 내 손을 꼭 잡아준다.
“그건…. 엄마가 임신 12주에 들었을 때의 일이란다. 임신을 했을 때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았었는데 결국 큰일이 나고 말았지 뭐니.”
당시 대학 새내기였던 엄마는 몸이 좋지 않아 학교도 쉬고 집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극심한 아랫배의 통증과 함께 하혈이 시작되자 큰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난 엄마는 아빠부터 찾았었다.
…결론은 엄마의 잘못도 아빠의 잘못도 아닌 자연 유산이었다. 아빠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던 엄마는 유산을 하자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네 엄마의 유산은 내게도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이게 널 세상 밖으로 데려올 기회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아빠도 마찬가지로 엄마의 유산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나를 세상 밖으로 데려올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고 하며 날 아들로 키우기로 결심하셨다.
“후후후. 그땐 아빠가 이 엄말 정말 공주님처럼 보살펴 줬었거든? 그런데 덜컥 유산해버린 거야. 그땐 무척이나 힘들고 괴롭고 미안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을 정도였단다. 충격으로 앓아누울 정도였는데 어느 날 네 아빠가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굳은 얼굴로 나한테 고백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지 않겠니?”
그즈음 아빠는 날 이대로 계속 할머니의 집안에 두고 키울 수 없다는 판단을 하셨다.
그때의 나는 평범한 어린 아기만큼 큰 상태였지만 여전히 잠만 자고 있어서 어찌 될지 모르지만, 만약 앞으로도 쭉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내가 말하고 걸어 다니는 수준이 되려면 대체 몇십 년이 흘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고 했다.
다행히 평범한 아기만큼 자란 나였기에 자연스러운 출산으로 분장한 뒤 몇 년이 지나면 희귀 질환으로 의학계에 발표하고 나에 대한 치료법을 찾을 생각으로 아버지는 과감하게 행동을 하셨다.
그리고 아빠는 할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산의 충격으로 실어증 증세를 보이던 엄마를 데리고 시골로 데리고 내려왔버렸다.
그때 엄마는 자길 버리려나 싶어 겁이 덜컥 났다고 했다.
아빠의 손에 이끌려 집 밖으로 나갈 때는 자길 버리는 줄 알고 겁이 나서 눈물을 찔끔 흘리는데 아빠는 그런 것도 모르고 시종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엄마를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향했다고 했다.
“크흠. 그런 줄도 모르고 있었군. 미안하오, 그땐 워낙 정신이 없었던 터라.”
엄마는 아빨 흘겨보더니 내 손을 보듬으면서 자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튼, 도착한 곳이 어머님이 계신 시골집이었던 거야. 놀라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려는 건지 궁금하기도 한데 집에서 나오신 어머님도 굳은 표정이셨지 뭐니?”
아빠는 엄마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임신 몸조리를 위해 시골로 엄말 데리고 내려간다며 주변을 속이고 데려왔다고 했다.
“그렇게 굳은 어머님의 손에 이끌려 집 안으로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네 아빠가 꿈에도 볼 수 없을 만큼 귀여운 천사님을 데리고 나왔단다. 그게 아들, 너였어.”
천사라니…. 너무 노골적인 이야기에 얼굴이 뜨거워질 거 같다.
“네 엄마는 널 보자마자 멍하니 품에 안고 한참을 널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내게 처음 한 말은 아직도 기억이 나는군.”
“ "이 아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아기 천사님인가요?" 였지요?”
“음.”
“…그땐 보통 이 애는 누구 애냐고 물어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이어진 부부싸움이라거나.”
아빠랑 엄마는 날 황당하다는 눈으로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녀석은 가끔 제 어미를 생각나게 할 만큼 어처구니없는 행동이나 발언을 해서 날 깜짝 놀라게 하였지.”
문밖에서는 어떻게든 엿들으려는 누나와 영은이를 프랑과 화연이 잡아서 말리느라 난리가 나고 있었다.
“그날….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저이의 입에서 모두 들을 수 있었단다. 사실은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천사처럼 예쁜 아기를 아들로 삼고 싶다고 생각하는 차에 네 아빠가 세상의 고뇌를 모두 짊어진 사람처럼 아들을 우리 자식으로 키우고 싶다고 하지 뭐니?”
이런 일을 여태까지 숨기고 있었던 아빠가 야속하고 얄미워서 엄마는 아빨 방에서 내쫓아버리고 조용히 잠들어있는 내 입에 젖을 물리니 꼼질 거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날 보자 가슴에 맺힌 아픔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게 수유를 하는데 할머니가 들어오셨고 엄마는 할머니한테 바로 날 아들로 삼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날처럼 눈물 흘리시는 어머님은 본적이 없었단다.”
아빠는 다시 쫓겨날세라 방에 조심스레 들어갔다가 내게 수유하는 엄마와 그 모습을 보고 우시는 할머니를 보고 어머니가 생각나 가슴이 아파졌다고 했다.
“이제 우리 아들이지요?”
“…그래. 우리 아들이야.”
그 순간 엄마는 실어증 증세가 사라지며 그때부터 유산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임신한 척, 품이 넓은 옷을 입고 다니며 연기를 시작했다.
“애초에 집 밖에 나갈 때만 아랫배에 포대기를 하고 어머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지낼 뿐이라 무척이나 편했단다. 나중에는 시하도 데려와 시골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지내는데 어찌나 마음이 편하던지 이대로 쭉 그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거든?”
외갓집에 맡겨놓은 누나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온 엄마는 할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누나를 양육하고 유산했다는 사실이 들통나지 않게 배가 나온 연기를 하며 조심스럽게 7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임신 10개월 기간을 맞춘 뒤 집에서 출산한 척하시고는 다음날 나를 포대에 감싸고 동 주민센터로 가 출생신고를 했다고 했다.
엄마는 부드러운 얼굴로 머리를 마주하고 날 다정하게 안아줬다.
아빠는 슬쩍 웃더니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출생신고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네가 여전히 느리게 성장하면 어쩌나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또래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자라기 시작했지. 비록 다른 아이들보다 약간 작긴 했지만 처음 네가 태어났을 때의 모습을 생각해본다면 그 성장은 놀라울 정도였다.”
“어휴. 우리 아들은 어쩜 이렇게 잘 생겼는지 몰라. 그거 아니? 네 아빠가 종합병원원장이 된 이유도 전부 아들 때문이었단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겨도 아빠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기 위해서였지. 그렇죠. 당신?”
“…으흠.”
아빠의 멋쩍은 모습과 상냥하게 웃고 있는 엄마를 보니 내가 했던 걱정은 전부 거짓말 같다.
파지직!
꺄아~! 아악!!
“어휴. 얘들이 정말?”
방문 밖에서 들린 무언가 전기에 지져지는 소리와 함께 누나와…. 이거 영은이 비명이지? 비명이 들리자 엄마는 짐짓 화난 표정을 짓더니 방을 나가려다 멈춰 서더니 날 돌아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들은 언제까지나 엄마의 아들이란다. 그걸 기억해주렴?”
“응. 나도 한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야.”
내 대답을 들은 엄마는 호호하고 빙긋 웃더니 쟁반을 들고 문을 열고 나갔다.
[얘가 정말~! 대통령님은 뭐하시는 거에요?!]
[앗, 그게! 시하가 궁금해 하는 거 같아서!]
[에엑?! 머, 먼저 궁금하다고 하신 건 아주머니셨잖아요!]
꺄아, 꺄악 하는 비명을 들으면서 아빨 돌아보니 아빠도 슬쩍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천사는 네 엄마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이걸 이야기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만 지금이 아니라면 말할 기회가 없겠지. 네 엄마는 모르고 있지만 딱 한 번, 네가 아기였을 때 피를 먹었던 적이 있다.”
순간 중요한 이야기가 흘러나올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때 네 엄마는 아직 젖을 떼지 못한 네 누나에게 젖을 물린 다음 너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반대쪽 수유 브래지어를 푸는데 그때 부서진 단추가 유두를 긁으며 피가 났었지. 잠시 피가 살짝 맺혔지만 네 엄마는 신경 쓰지 않고 너에게 젖을 물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네가 정상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아빠는 판단한다.”
“…내가 피를 먹어서 성장이 빨라졌다는 이야기야?”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 어쩌면 네 엄마의 널 향한 사랑과 헌신이 원인일지도 모르고.”
그런가. 그래서 아빠가 어렸을 때부터 익지 않은 고기는 못 먹게 했었던건가.
…앞으로도 피나 생고기는 먹지 말아야겠다.
“그 뒤에는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큰 말썽 한번 피우지 않고 잘 커 줬지. 중학교 때에 중2병에 걸리더니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알아서 중2병을 벗어나고 네 누날 따라 의한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천천히 내게 다가온 아빠는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자상하게 말했다.
“그리고 솔직히 이야기해줘서 고맙구나. 진실이 어쨌든 가족을 믿고 이야기해줘서 고맙다.”
“아냐….”
조금 쑥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빠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게 어색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빠가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때마침 내일부터 휴일이니 시골에 내려가서 할머니를 보러 갈까.”
“응.”
시골에 내려가 보면 언제나 뒷마당에 세 개의 묘비가 세워져 있어서 어렸을 땐 그쪽에 가기에는 겁이 났었는데….
고모가 아닌 어머니의 묘에 가서 인사해야겠다.
태어나게 해줘서 고맙다고.
방을 나왔더니 그슬린 누나와 영은이가 거실에 널브러져 있었고 프랑과 화연이는 엄마와 함께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화연이는 아빠와 함께 나온 날 힐끔 보더니 엄마한테 이야기했다
“어쩐지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뭐가 말이니?”
“서하의 헤어나올 수 없는 악마적인 귀여움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 거 같습니다.”
엄마랑 아빠는 멍한 표정으로 화연이를 바라보고 쓰러져있던 누나도 고개를 들어 멍한 표정으로 화연이를 보다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도 묘하게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다.
“내 출생의 비밀 가지고 농담하지 마.”
“누가 농담이라고 했지? 난 진정으로, 문자 그대로 100% 진심이다.”
말은 안 하고 있지만, 프랑과 영은 이도 동감이라며 고개를 몰래 끄덕인다. 그때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누나는 소파에 가서 주저앉더니 날 보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그, 그럼 서하는 나랑 사촌이 되는 거야?”
“…누난 내가 친동생인 게 싫어?”
“누가 싫다니?!”
짐짓 상처받았다는 얼굴로 중얼거리니 누나는 발딱 일어나면서 바락하고 소리친다. 그리고 엄마랑 아빠를 흘겨보고서는 카펫 위에 주저앉아있는 내 옆으로 걸어오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나만 모르고 있었다니, 아빠랑 엄마한테 속은 기분이야.”
그런데 묘하게 붉어진 표정에 복잡한 얼굴로 날 보는데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어휴. 서하 군은 그 일이 마음에 걸려서 그렇게 표정이 어두웠었던 거구나?”
“뭐…. 뮈르딘이라는 할배 목소리는 진짜 듣는 사람 입장에서 전부 진실처럼 느껴졌다고요. 그땐 얼마나 정신이 아득해졌었는데….”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할 셈이냐.”
이 이야기가 계속되길 바라지 않는지 아빠는 내 말을 자르며 물었다. 아빠가 이런 식으로 말을 하던 도중에 끊고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아무튼 뭘 묻고 싶은 것인지 알 거 같다.
“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놈들을 찾아서 모두 죽여버리는 게 당연하잖아. 인간뿐만 아니야. 인간 이외에도 아인종 여자들을 잡아서 그 꼴로 만들고 잡아먹는 최악의 괴물들이야. 찾아내서 전부 지워버릴 거야.”
표정을 굳히면서 하는 이야기에 엄마는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영은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응. 서하 군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이후에 도와줄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하렴.”
“복수를 행하겠다고 복수심에 삼켜지지만 말아라.”
“응.”
내 전부를 사랑해주는 가족이랑 연인들이 있다. 이들을 두고 그 악마 새끼들이랑 싸우다 허망하게 목숨을 잃을까 보냐.
기뻐해라, 양아치 이무기. 너보다 더 증오스러운 적이 하나도 아니고 수십 수백이 더 나타났다. 그만큼 네 척살 순위는 내려간 거야.
좋지?
아빠와 엄마, 누나는 물론이고 화연이와 영은이까지 내 몸속에 악마의 피가 흐른다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예전처럼 날 대해주는 게 눈물이 날 정도로 목이 멨다.
가슴속에 응어리지던 괴로움과 공허함이 풀어지는 기분은 비구름 사이에 내려 쬐는 햇볕만큼이나 따스하다.
집에 올라온 뒤에 아빠와 엄마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화연이와 영은이에게 간추려서 설명해줬더니 영은이는 살짝 화난 표정으로 옆에 다가오더니 내 팔을 잡고 뺨을 콕콕 찌르기 시작한다.
“흐응? 반대로 생각해봐. 만약 내가 서하처럼 악마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서하는 날 버릴 거니?”
“그럴 거 같아? 내가 그랬다면 지금 이 자리에 프랑은 물론이고 미호나 히아리드도 없었을 거야!”
“후히히. 거봐, 서하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리한테 다른 반응이 나올 거라 생각한 거니?”
싱글싱글 웃으면서 내 오른팔을 잡았고 화연이도 내 왼팔을 잡으면서 입을 열었다.
“사실 네 가정은 잘못됐을지도 모른다. 과정을 보자면 너는 사람과 사람의 결합으로 태어난 거다. 영적인 부분이야 이제 와서는 상관없는 이야기 아닌가.”
“서하. 저희는 서하가 어떤 존재라 해도 서하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더는 자기 자신이 상처 입을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응.”
나와 내 연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와서 그녀들의 마음이 담긴 위로를 받으니 살짝 눈물이 날 거 같았지만 어떻게든 눈물을 보이지 않고 참을 수 있었다.
이렇게나 나만 봐주고 생각하는 연인들과 날 사랑해주는 가족들이 있는데 어떻게 악마가 될 수 있을까.
============================ 작품 후기 ============================
15화의 떡밥을 풀었는데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려나 ^~^;;
이 기회에 말하는 거지만 저 진짜 네크로필리아 아닙니다(정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