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67화 (267/517)

00267  나는….  =========================================================================

웅성웅성

현실로 돌아온 순간 공간 지각이 반경 6.75km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내 머릿속으로 이미지화시키기 시작한다.

나와 프랑이 돌아온 곳은 현실의 스톤헨지의 중심.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 수많은 관광객이 갑자기 스톤헨지 중심에서 나타난 나와 프랑을 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찰칵찰칵

우릴 찍는 휴대폰 카메라의 촬영음을 들으며 프랑의 손을 잡고 하늘로 뛰어올랐더니 내 발밑에 생겨난 호박색 벽을 보더니 관광객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난다.

“능력자! 무단 진입한 범죄 능력자?”

“갈색 로브 때문에 얼굴이 안 보여!”

“신고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러고보니 뮈르딘의 집에 있던 갈색 로브를 그대로 입고 와버렸네....

아무튼 우리를 보고 사진을 찍고 능력자 연합에 전화를 걸어 신고하는 사람도 보였지만 난 위상 세계 임의 출입 허가증이 있으니 신경 끄고 그대로 런던을 향해 몸을 날렸다.

소란이 일어나고 있는 스톤헨지를 빠르게 벗어나면서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는 후드를 벗고 화연이와 영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하! 잘 다녀왔어?] [다녀왔나.]

영국 시각으로 금요일 오후 2시, 한국은 밤 10시다. 홀로그램 창에 떠오른 평범한 잠옷을 입은 두 연인을 보니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아오려고 한다.

[…뭐야. 서하, 왜 그러니? 프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서하?]

목이 메서 말을 못하고 있으려니 두 연인은 나와 프랑을 보며 놀라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프랑은 날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날 대신해 두 연인에게 입을 열었다.

“좀 많은 일이 있었어. 돌아가면 서하가 전부 이야기해줄 거야.”

[괜찮은 거니?]

프랑의 이야기에 화연이와 영은이는 더욱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날 본다. 눈을 감고 마나 시브를 돌리며 심호흡을 하니 꽉 메였던 뭔가가 조금씩 내려가며 그제야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괜…찮아.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다치거나 잘못된 부분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

[그럼 다행이지만….]

[…….]

희미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두 연인은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날 뚫어지게 바라보길래 다시 살짝 웃어주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5일간 별다른 일 없었어?”

[있었다. 드와이트 에델베르그와 그 부인, 그리고 세 아들딸이 이틀 전 한국으로 가겠다고 우리에게 연락을 해왔었다. 그리고 어제 한국에 입국했고 우리 경호팀을 보내 그들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미호와 히아리드가 지키고 있는 연합 오피스텔도 마찬가지로 아무 이상 없다.]

[어머님, 아버님께는 능력 테스트를 위해 위상 세계에 들어갔다고 전해드렸어. 영국의 여왕도 서하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연락이 와서 아버님과 어머님께 말씀드린 것과 똑같이 이야기해줬는데 괜찮지? 그리고 아버님은 영국 시간으로 오늘 오후 8시 한국 김포공항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실 예정이니까 서하도 그때 같이 오면 돼.]

“응. 알았어. 그리고 돌아가면…. 중요한 이야기를 할 테니 기다려줘.”

[…중요한 이야기라니,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한걸? 목욕재계하고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게 빨리 와야 해~?]

[빨리 와서 안아줘.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영은이는 방긋 웃으면서 손으로 키스를 날려 보내고 화연이도 살짝 붉어진 얼굴로 부드럽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며 통화를 종료했다.

아빠한테는 볼일 보고 돌아왔다는 간단한 문자 한 통을 보내고 엄마한테는 직접 전화를 걸었더니 엄마의 우물우물하는 목소리가 들어왔다.

[으들?]

“…엄마?”

으들이라니? 그 직후에 전화가 끊기더니 누나한테 전화가 걸려오면서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는데 엄마랑 누나는 얼굴에 하얀 팩을 한 채 홀로그램 창에 바짝 다가선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팩하느라 발음이 이상했구나. 누난 자기 얼굴의 마스크 팩을 벗겨내면서 물어왔다.

[너 위상 세계 다녀왔다며? 다친 덴 없지?]

“응. 없어. 그런데 엄만 그런 거 안 해도 젊은데 누나한테 또 낚인 거야?”

종종 화장품 바꾸고 싶어 하는 누나가 팩 몇 개 가져와서 엄말 꼬드기더니 또 그러는 건가 싶어 물었다.

[우후후.]

[아냐! 이번엔 엄마가 팩해야겠다고 했단말야! 엄마도 이제 늙었다는 걸 인정, 아야!]

[…!!]

엄마가 옆에 있는데 그런 말 하면 당연히 맞지.

눈을 치켜뜬 엄마가 손을 휘둘러 누나의 등짝을 때리고 철썩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누나의 짧은 비명도 함께 들려온다.

누나는 이어지는 엄마의 공격을 두 손으로 막으면서 나한테 물었다.

[암튼, 오늘 비행기 타고 아빠랑 같이 오는 거지?]

“그럴 거야. 별일은 없지?”

[없어 없어. 얼른 돌아와~ 이러다 하나뿐인 동생 얼굴도 잊어먹겠다. …응? 엄마가 사랑한다구 전해달래.]

“…나도 엄마랑 누나랑 사랑해.”

[히히. 꺄아! 엄마! 주름, 주름!]

[응? 어머나!]

마스크 팩 때문에 계속 무표정으로 있던 엄마는 내 사랑한다는 말에 방긋 웃었다가 팩에 주름이 가득 져버렸다.

누나랑 엄마의 호들갑을 보면서 피식 웃고 통화를 종료하니 옆에 있던 프랑이 내 팔을 잡아 품에 안으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응, 알아. 다들 날 사랑해주고 있다는 거.”

하지만 내 정체를 알았을 때 부모님이랑 누나가, 연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생각해보면 두려움이 앞선다.

…거절당하면, 내 존재를 부정당하면 그때는 어떡하지…. 프랑이랑 둘이서 위상 세계에서 살까.

고모가 친엄마라니….

햇볕이 내려 쬐는 한여름의 하늘이지만 내 마음속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사보이 호텔에 도착해서 갈색 로브를 벗고 프랑과 함께 욕실에서 씻고 나왔을 때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다친 덴 없느냐.]

평상시와 똑같은 고저 차가 별로 없는 아빠의 낮은 목소리지만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흐흐. 내가 누군데 다쳐. 날 걱정할 게 아니라 나랑 상대할 이형종을 걱정해야지.”

[…그래. 호텔에는 5시쯤에 돌아갈거다.]

“엉.”

아빠가 오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통화를 끝내고 소파에 앉아 멍하니 있으려니 주방에서 생과일주스를 만들어와 내게 내밀면서 말했다.

“배 안 고프세요? 그곳에서는 제대로 식사를 못 하셨잖아요.”

“어, 그럼 룸서비스 시켜먹자.”

간단하게 햄버거와 핫도그 같은걸 시켜서 배를 채우고 다시 멍하니 앉아 창문 밖으로 템스 강을 바라보고 있었더니 프랑이 잔뜩 걱정어린 모습으로 내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때 인증기가 울리며 전화가 왔다는 신호에 누군지 확인해보니 리디아였다.

“아, 이야기해주기로 한 거 깜빡하고 있었네.”

“정령에 관해서 말씀이시죠?”

“응. 보름달이 뜬 한밤중에 강가에서 만났다고 할 거야. 그 뒤로 같이 이형종을 잡았더니 프랑이 위상력을 흡수해서 벼락을 다루게 됐다고 할 건데. 이 정도면 괜찮겠지?”

“꼼꼼하게 다듬으면 문제가 없을 거 같아요.”

“프랑한테 질문이 갈 수 있을 텐데, 그땐 그냥 입 싹 다물고 모르는척해 버려.”

“후후. 네에.”

세부적인 부분도 별거 없다고 나머진 모른다고 하면 되겠지.

걸려온 전화를 받아주지 않고 프랑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한참 뒤에 통화 아이콘을 터치했더니 발그레한 얼굴의 리디아가 홀로그램 창 너머에서 나타났다.

[…….]

“…….”

뭐야. 왜 말이 없어? 얼굴은 왜 붉히는데.

나도 만사가 좀 귀찮아진 상태라서 소파에 늘어져 리디아가 뭐라도 말하길 기다리는데 리디아도 발그레한 얼굴로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할 말 없으면 끊는다?”

[하, 할 말 있어요!]

조금 불퉁하게 입을 열었더니 빨개진 얼굴로 화다닥거리면서 놀란 리디아는 홀로그램 창에 얼굴을 가까이하며 다급히 외친다.

실내에서 조명빨을 잘 받아서 그런지 촉촉이 빛나는 벌꿀 색 머리카락이 찰랑거리고 갓 구운 흰 빵같이 깨끗한 피부가 홀로그램 창에 커다랗게 줌인 된다.

[으흠. 위상 세계에 가신 일은 잘되셨나요?]

“어. 잘 되다 못해 정신이 멍해질 정도야. 아무튼, 무슨 일로 전화했어? 정령 그거 때문에?”

[그 일에 관해서인데, 프랑 씨는 서하 경의 동반자시잖아요? 그래서 그 부분을 여왕님께 열심히 설명해 드렸더니 이해해주시고 프랑 씨에 관한 이야기는 여쭙지 않기로 답니다?]

호오. 거기에 고위급 위상석을 하나 팔아줬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큰 영향을 미쳤겠지? 신경 써서 진실이 눈꼽만큼 담긴 이야기를 해주기도 좀 그랬는데 잘됐네.

“…고마워. 수고했어.”

[그, 그 대신이랄까….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부탁? 뭔지 들어보고.”

[저도 그랑 블루에 입사하고 싶어요!]

리디아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부끄럽다는 듯이 날 힐끔힐끔 바라보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무, 물론 다른 사심은 없어요. 그저 세계 최고가 될 그랑 블루 레이드 팀의 일원으로서 같이 있고 싶….]

“겨우 그런 이유로 희귀 속성 능력자면서 왕족인 네가 우리 나라에 온다고? 영국에도 세계 랭킹 7위의 레이드 팀이 있잖아.”

[비교가 안 되잖아요~! B 클래스와 C 클래스 능력자 숫자에서 레이드 팀 위상력 총합에서는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랑 블루에는 그랜드 마스터인 서하 경이 있는데….]

“됐고 빨리 불어. 무슨 이유야?”

[아휴….]

틀림없이 저렇게 얼굴이 붉어진 이유와 연관이 있을 거다. 말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리디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결국 포기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입을 열었다.

[여왕님께서는 제가 서하 경과 이전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기를 바라세요.]

밀접…. 설마?

“여왕님은 너랑 나랑 정략결혼이라도 바랄 생각이야?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저도 한국에 있을 동안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랍니다?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갖은 이야기로 설득해보려 했지만 템페스트 공작님께서 한마디 하시는 바람에 여왕님께서도 안되면 연인 미만 친구 이상의 사이라도 되라고…. 아우우.]

“그 아저씨가 뭐랬는데?”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고….]

그 아저씨는 신체 강화 능력자주제에 나랑 비슷하게 생겨놓고 여성관은 전혀 다른가 보다.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냐고? 여자 남자관계에 그딴 기준을 세우는 게 어딨냐.

맘에 든 여성이 유부녀면? 불륜이라도 저지르게?

“뭐, 좋을 대로 해. 희귀 속성 능력자가 들어오면 우리야 좋지. 하지만 그랑 블루에 들어온다고 해서 나랑 같이 레이드에 들어간다거나 내 근처에서 같이 지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아.”

[네! 미리 잘 부탁드릴게요!]

엄포를 놨지만 상관없는지 활짝 웃으면서 살짝 머리를 숙이며 인사한 리디아는 "방학 끝나고 뵐게요!" 하고 발랄한 모습을 보여주며 인증기를 종료했다.

“리디아한테도 마나 비전을 보여야겠네.”

“정말 리디아 공주님을 받아들이실 거에요?”

“여자라는 뜻에서 물어본 거면 NO. 동료라는 뜻에서 물어본 거면 YES.”

고개를 끄덕이는 프랑을 보다가 다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실 리디아를 받아들이려 했던 건 뮈르딘의 이야기 덕분이기도 해.”

그는 날 보며 이렇게 말했었지. -널 위해서가 아니다. 나와 브리튼의 미래 때문이지.-

“날 위해서가 아니라 뮈르딘과 브리튼의 미래 때문에…. 알고 보니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과거와 현실의 상황이지만 그래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조언과 친절을 베풀어줬으니까 그 빚은 갚아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아. 그러고 보니 뮈르딘도….”

“…?”

이제 생각났다는 듯이 손바닥을 마주친 프랑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와 팔걸이에 앉아서 내 머리를 끌어안고 쓰다듬어 준다.

“뮈르딘도 인간과 악마의 혼혈로 태어난 사람이에요. 부친이 인큐버스, 모친이 인간이었고 태어나자마자 수도원에 보내어져 세례를 받아 인큐버스의 운명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혹자는 용의 아이라는 말도 있지만, 악마의 자식이라는 이야기가 주론이랍니다.”

“아, 그때 말을 하다만 그게 그거였구나.”

그래서 나와 동질감을 가져서 순순히 가르쳐준 건가? 내 옆에 있던 프랑이 내 정신을 지탱해줄 거라 생각하고?

하아…. 현자라고 불린 사람이니까 내가 미리 과거를 알아둬야 피해가 줄어들 만한 일이 미래에 일어난다는 쪽으로 생각해 야해?

쉬지 않고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프랑의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고 천천히 마음을 비워갔다. 깊게 생각하지 말자.

그래. 내 과거를 알았지만 변한 건 없어. 나는 나일 뿐이니까.

…하지만 엄마, 아빠, 누나와 화연이, 영은이가 내 몸속에 악마의 피가 흐른다는 걸 알게 되고 날 거부하는 상상을 하면 두렵고 가슴이 아프다.

누군가 어깨를 잡고 흔드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아빠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빠?”

“그래. 피곤한 거 같아 깨우지 않았다. 돌아갈 준비는 끝났으니 나가자꾸나.”

“으응.”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그 잠깐 사이에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꿈을 꿨었다. 내가 악마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가족들과 내가 능력자가 아닌 상태로 즐거운 시간을....

내 짐은 프랑이 전부 싸놨는지 객실 입구에 두 대의 캐리어가 놓여있었고 경호 팀원 다섯은 여전한 모습으로 대기 중이었다.

“경호팀 전원 준비 끝났습니다.”

한수희 2팀장은 내 시선을 받고 기다렸다는 듯이 빠릿빠릿하게 대답한다.

“네. 그럼 돌아가죠.”

호텔 총지배인과 컨시어지들의 배웅을 받으며 호텔 밖으로 나왔더니 리디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방긋방긋 웃으면서 다가온 리디아는 아빠에게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나에게 다가왔다.

“돌아가시는 길 배웅해드리러 나왔어요.”

“방학 끝나고 보자더니.”

“아. 에헤헤.”

나와 아빠, 프랑 이렇게 셋은 리디아의 리무진을 타고 공항으로 이동하는데 리디아는 날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가 슬금슬금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멍하니 앉아서 차창 밖을 바라만 보고 있었더니 아빠가 의아한 표정을 날 바라봤지만…. 다시 손에 들린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의학서적이 아니라 해학 유서라는 종이책인 걸 보면 이제 취미 생활을 다시 즐기시려는가 보다.

누나에게는 과도한 관심과 함께 행동에 제약을 주지만 나에게는 방임에 가까운 앙육태도.

혹시 아빠는 내가 친자식이 아니라서, 누나만 친딸이라서 대응이 달랐던 건가?

…물론 그런 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아빠의 성격상 마음에 안 들거나 싫었다면 아무건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을 거다.

아까 자고 있을 때도 깨워주지도 않았을 테고 몸조심하라는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하지만….

“난 아빠가 좋아. 아빠는 어때?”

“…뭘 잘못 먹었느냐.”

저거 봐. 어휴…. 누나가 저렇게 물었다면 "너는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보석이다."라거나 "내 삶에 단 두 송이의 꽃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엄마고 하나는 너다."라는 말을 했을 텐데 다짜고짜 약 먹었냐는 말이라니.

아무 말 없이 아빠를 보고 있으니 프랑은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한 모습으로 아빠와 날 번갈아 보는데 아빠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내리면서 간단히 입을 열었다.

“짐승도 자기 자식을 아낀다. 하물며 인간임 이에야 두말할 나위 없지.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건 짐승보다 못한 자다.”

“그냥 좋아한다고 하면 되지 어렵게 말하긴.”

킥킥 웃으면서 말했더니 아빠는 어흠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책에 집중했다.

그래. 날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면 아빠는 저런 말을 해주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내가 악마의 핏줄이라고 해도 저런 반응을 보여주실까?

내 생각을 읽었는지 프랑은 조용히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아줬다.

내 상태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는지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도 리디아는 별말 없이 조용히 웃으며 손을 흔들어 우리를 배웅해줬다.

나도 손을 흔들어주며 비행기에 올라탔더니 잠시 내가 올라탄 비행기를 공항 대기실 외벽에 달라붙어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되돌아나간다.

영국에 올 때 탔던 프리미엄 클래스에 다시 올라 잠시 기다리니 비행기는 소음이라곤 10dBA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이륙한다.

먹먹한 기분에 좌석에 몸을 누이고 프랑을 품에 안은 채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한국에 도착해있기를.

이렇게 내 태생의 비밀을 가슴속에 간직한 채 영국을 떠나 귀국길에 올랐다.

============================ 작품 후기 ============================

막장 아침드라마로 진행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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