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6 이상한 세계의 카멜롯. =========================================================================
안 좋은 일은 꼭 이어서 온다고 하던데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틀린 게 하나도 없는 말인 거 같다.
프랑의 따뜻한 품에 기대어 무거워진 머리를 의식하며 겨우 잠이 들 무렵 소름이 돋을 만큼 께름칙한 감각이 공간 지각을 통해 등줄기를 자극해왔다.
북쪽에서 정확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소름 돋게 만드는 무언가를 살펴봤지만 3차원 입체로 살펴볼 수 있는 공간 지각으로도 정체가 파악되지 않는다.
역병의 기운이 형태를 이루면 저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유독 폐기물이 불탈 때 피어오르는 연기가 뭉친듯한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진행방향에는 나와 프랑이 있다.
뭐지?
위상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형종도 아니야. 보통은 있을 수 없고 내 상식으로 이해할 수도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경계심이 들어 프랑을 깨웠다.
“서하…?”
“뭔가 꺼림칙하고 괴이한 연기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 좋은 느낌은 아니니까 일단 피하자.”
이형종이라면 간단하게 공간의 벽으로 지워버렸을 테지만 위상력도 느껴지지 않는 저 연기는 무척이나 위험한 느낌이 든다.
연신 공간 지각을 자극하며 신경 거슬리는 저 연기가 하늘까지 날아서 쫓아오면 그때 가서 공간의 벽이든 마나 탄이든 쏘아내서 지워버리겠다고 마음먹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2km 정도 높이까지 뛰어올라 공간의 벽을 발밑에 쳐두고 그 꺼림칙한 연기를 주시하고 있으니 하늘로 뛰어오른 우리를 눈치챈 것처럼 제자리에 멈춰선 연기는 머뭇거리며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재수가 없어서 공간의 벽을 쳐서 그 연기를 지워버리려는데 문득 뮈르딘이 한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도학은 수천 년 드루이드의 정수가 집약된 비술의 결정체지. 네 녀석의 대가리로는….-
…이 세계에는 마도 학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 마도 학이란 건 잘은 모르지만 내 공간 지각을 눈치챌 만큼 신비한 부분이 있을 거다.
거기다 뮈르딘이 말한 반 계에 들어선 존재. 반계라는건 일반적이지 않은 세계에 들어선 이들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한다.
내 공간 지각을 눈치챈 뮈르딘과 카멜롯 성의 검은 머리 마녀, 뮈르딘이 이야기한 좋지 않은 일, 공간 지각을 감지하고 나와 시선이 마주친 검은 머리 마녀.
카멜롯이 있을 북쪽에서 우리를 쫓아온 꺼림칙한 연기. 그리고 성을 나올 때까지 내 뒷모습을 쫓던 검은 머리의 마녀.
이쯤 되면 저 안개는 그 마녀가 보냈을 거라는 예상이 들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왜? 내 모습과 능력이 신기해서 붙잡으려 하는 건가? 아니면 뮈르딘의 집에 나타난 이 세계의 사람과는 다르게 생긴 우리에게 호기심이 생겨서?
확실한 건 저 역병같이 생긴 구름이 내게 좋은 영향을 줄 무언가는 아니라는 거다.
만약 그 검은 머리 마녀가 프랑의 이야기대로 모건 르 페이 라는 여자라면 섣불리 건드려서 좋을 건 없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정리한 부분을 프랑에게 이야기해주니 그녀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내 팔을 잡고 물었다.
“그 연기가 아직 쫓아오고 있나요?”
“우리가 하늘로 올라온 뒤에 우리가 있던 곳까지 와서는 멈춰 서서 머뭇거리고 있어.”
“그렇다면 실험해보고 싶은 게 있으니 조금 움직여봐요.”
“응.”
프랑의 요구대로 서쪽으로 쭉 움직인 다음 숲 속으로 내려오니 연기가 조금씩 흔들리면서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위치를 파악하진 못했는지 한데 뭉쳐진 연기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딴 데로 가는데?”
“정말 그 연기를 모건 르 페이가 만들어내고, 우리를 쫓아왔다면 아마도 호수 근처에 있어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째서?”
“모건 르 페이는 여러 가지 이야기와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대표적인 부분으로는 멀린에 버금가는 대마술사라고도 하고 아발론의 섬의 주인이자 물의 요정이라는 설도 있지요. 이 세계에는 마도 학이라는 분야가 있으니 우리가 모르는 권능에 가까운 능력을 갖추고 있을 수도 있지 않나 싶어요.”
그러면서 "서하의 공간 지각도 눈치챘는데 모건 르 페이라면 호수 근처에서 휴식하던 우리를 찾는 건 수월하지 않았을까요." 하고 말을 맺었다.
“그럼 역시….”
“네. 역시 서하의 능력에 흥미를 느낀 게 틀림 없을 거예요. 자, 다시 하늘로….”
순간 짜증이 치솟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그렇지 않아도 악마에 대해서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치는데 이따위로 수작을 부리는 걸 보니 가슴이 터질 거 같다.
엉뚱한 곳을 헤매는 그 연기에 공간의 벽을 쳐버렸다. 호박색 공간의 벽이 구름을 감싸는 순간 연기가 녹아내리듯이 내 공간의 벽에 흡수되는…데.
뭐지? 형용할 수 없는 꺼림칙한 느낌이 공간의 벽을 자극하다가 사라진다.
=거기 있었구나.=
“누구냐!!”
그 순간 뮈르딘의 중후하고 마음을 편히 해주는 목소리가 아닌 고음에 색정적인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목소리가 들리자 몸을 홱 돌리며 내 앞을 막아선 프랑이 날카로운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공간 지각에도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이 목소리는 혹시….
“모건 르 페이?”
=나를 알고 있구나?=
홀랑 벗고 침상 위에 누워있는 변태 노출 마녀의 웃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니, 내가 생각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강제로 이미지가 들어오는 거다. 그 모습과 저 고음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싫은 느낌이 마구마구 들기 시작한다.
프랑에게도 그 이미지가 전달되는지 인상을 와락 찌푸리더니 나와 북쪽에 있을 카멜롯을 번갈아 보기 시작한다.
일단 프랑의 손을 잡고 다시 하늘로 뛰어올랐더니 그 목소리는 여전히 우릴 쫓아오는 것처럼 따라오기 시작했다.
=어딜 그리 급히 가는 거니. 그러지 말고 카멜롯으로 돌아와 나와 담소라도 나누자꾸나.=
그러면서 무릎을 모으고 있는 다리를 좌우로 벌리더니, 왼발을 들어 오른 위로 겹치며 발끝을 까닥거린다. 다리를 벌리는 순간 훤히 드러나던 비부에서 뭔가 반짝이는 게 보인다 했더니 발정하고 있는 거 같다.
짜증 나는 수작질에 질 낮은 미인계까지, 속이 부글부글 끓는 와중에 대꾸를 해주지 않고 하늘로 높이 높이 뛰어오르고 있으니 모건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어떻게 이렇게 먼 곳까지 이미지와 목소리를 보내는 거지?
=너라는 존재가 무척이나 흥미로워. 어떻게 그런 모습을 이룰 수 있었던 거지? 궁금해. 정말로 궁금해.=
“미안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궁금한 점이 없어. 게다가 지금은 좀 바빠서 서로 질문을 주고받기에는 좋은 여건이 아닌 거 같은데.”
프랑도 흠칫할 만큼 살기를 띤 서늘한 목소리를 내뱉으니 성적인 의미로 귀를 자극하는 웃음이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호호호. 그러지 말아라. 내가 비록 뮈르딘보다 지혜는 떨어질지언정 지식은 그렇지 않단다. 틀림없이 너의 흥미를 자극할 거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래? 그렇겠군.”
=그렇지?=
머릿속에 들려오는 모건의 목소리와 바뀐 내 태도에 프랑은 불안한 눈으로 날 올려다본다. 그 눈빛에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가늘고 부드러운 눈썹을 쓸어주었다.
“그런데 뮈르딘도 그렇고 모건은 어떻게 이렇게 직접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지? 내가 방금 구름을 지워버린 거 때문인가.”
=그게 궁금했구나.=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으니 모건은 =신기할 테지, 아무렴 그렇고말고.= 하며 중얼거리더니 다시 한 번 성욕을 자극하는 웃음소리를 길게 내뱉는다.
=호호호. 이치만 알면 아주 간단한 술법이란다. 몸과 마음을 일체화해 뜻을 전하고자 하는 상대의 본질을 파악해 본질의 틈에 의지를 끼워 전달하는 방식이지. 문제는 메시지를 받을 대상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거든?=
그런데 내가 공간의 벽을 쳐서 연기를 지워버리는 바람에 그 정보를 제공해버린 거군.
홧김에 저지른 내 멍청한 행동에 속으로 혀를 차고 뭔가 수단을 떠올려보지만 내 머리로는 다시 카멜롯으로 날아가 마나 탄으로 저년을 지워버린다는 선택지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아니, 나도 지금 뱃속 깊은 곳에 잠들어있던 악랄한 본성이 깨어나고 있는 거 같은 데다 모건이 자꾸 이상한 목소리로 내 성질을 자극하고 있어서 그렇게 간단하게 죽여버리고 싶지가 않다.
아, 혹시 그 방법이라면….
일단 굳은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궁금한 게 많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거든.”
=흐음~?=
“당신은 지식만으로는 뮈르딘에게 버금간다고 했지? 그러니 그걸 알려주면 당신의 초대를 고려해보지.”
물론 고려할 그때는 약점 잡힐 부분은 모두 떼어놓고 올 생각이다. 모건이 보낸 게 틀림없을 그 꺼림칙한 연기만 봐도 자기 마음에 안 들거나 수틀리면 못된 수작질을 벌일게 뻔해보였으니까.
빠르게 생각을 마칠 동안 아무런 말이 없던 모건은 뭔가 마음에 든다는 듯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날 알면서도 조건을 내걸다니? 정말 흥미로운걸. 과연 무엇이 궁금할지 나도 마찬가지로 흥미가 일어.=
머릿속에 떠오른 모건의 핏기 하나 없는 새하얀 얼굴은 색기가 뚝뚝 떨어질 듯한 독 사과 같은 미소를 그린다. 미안하지만 당신에 대해서는 프랑이 이야기해준 거밖에 몰라.
근친녀, 발정녀, 네크로맨서.
“간단해. 키는 200cm가량. 관자놀이와 이마에 뿔이 나 있고 눈을 부리부리하고 붉은 기운이 흘러, 코는 들창코에 입이 광대뼈까지 찢어진 거마냥 흉측하게 생겼어. 피부는 푸른색. 근육질에 악마 같은 놈들이야. 검게 생긴 성에 살고 있지. 놈들이 있거나 있을법한 장소에 대해서 아는 게 있나?”
뮈르딘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묻지 못한 곳. 그곳을 저 모건이라는 마녀가 알려준다면 한 번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눠줄 용의가 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나 혼자 그 성을 찾으려면 무척이나 오랜 세월이 걸릴지 모르니 그 수고와 노력과 시간에 비하면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거쯤이야.
프랑은 마녀와 거래하려는 내 모습에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내 허리를 껴안아온다.
모건은은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검지를 들어 새빨간 입술을 문지른다.
=…그건 곤란한걸.=
“그럼 댁이랑은 할 이야기가 없군. 이만 끝내.”
=오호호호호! 간 큰 아이야. 날 너무 자극하지 말려무나. 이렇게 날 흥분시키면 너에게도 곤란한 일이 닥칠 거야.=
한 손을 올려 입을 가린 모건은 크게 웃는데 웃을 때마다 가슴에 달린 두 개의 살덩어리가 출렁출렁거린다.
웃기시네, 내 능력도 모르고 날 협박해? 뮈르딘보다 지혜가 모자란다더니 진짜 멍청하네.
“훗. 당신이 곤란해질지 내가 곤란할지 나도 궁금한데.”
=뭐라?=
속에서 검은 불이 솟는 기분이라 성질을 긁어볼 겸 이죽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여자인 이상 내게 걸리면 한 마리의 암컷이 될 뿐이야. 그걸 눈치채고 짐승처럼 조교 받길 원해서 이 먼 곳까지 쫓아와 나에게 말을 거는 거 아냐?”
도발하듯이 비릿하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꺼냈더니 프랑은 조금 당혹스런 얼굴로 날 힐끔 바라봤지만 이내 얼굴을 굳히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내 이야기를 들은 모건은 기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얼음처럼 차가운 미소를 만들더니 점점 얼굴이 일그러지며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가만 듣자 하니 갈수록 오만방자해지는구나.=
“됐고, 알려줄 거야 말 거야. 빨리 정해.”
=후후후…. 알려줄 수 없다. 그렇다고 너를 보고 싶은 이 마음을 달랠 수가 없으니 억지로라도 볼 수밖에 없겠는걸? 네 옆의 그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그 애가….=
이런 개년이?
“흣. 프랑을 건드리시려고? 해봐. 그랬다간 카멜롯을 시작해서 아서 왕이랑 랜슬롯도 네가 보는 앞에서 찢어발겨 죽여줄 테니까. 서비스로 이 땅덩어리도 지도상에서 지워주지. 이 섬나라가 사라지면서 땅 대신 물로 가득 차면 당신도 어찌 될지 궁금한데.”
내 역린을 건드리려는 모건에게 씹어먹겠다는 듯이 살기를 뿌리면서 입을 열었다. 이 살기가 닿을 리는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
=…….=
내 말이 진심이라 느꼈는지 얼굴이 무섭게 굳어버린 모건은 눈빛이 점점 가라앉기 시작한다.
=후, 후후후…. 그래. 그랬었어. 내가 마음을 준 이들은 하나같이 마지막에 나를 배신하고, 버리고, 두고 떠나버렸지….=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모건의 얼굴은 점점 굳어지고 일그러지며 도화지처럼 새하얀 얼굴이 악귀처럼 변해버린다.
목소리도 일렁거리며 사악한 느낌이 풀풀 풍기기 시작하고 눈은 공허함에 가득 차다 못해 구멍이 뻥 뚫릴듯하다.
목소리와 함께 머릿속을 자극하는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다. 저대로 두면 제 풀에 열 뻗쳐서 발작할 기세다.
=너도 마찬가지구나!! 간교한 혓바닥을 놀려 기다렸다는 듯이 필요….=
역시나 발작하면서 소리를 지른다. 뇌가 부르르 떨릴만큼 커다란 고성에 인상을 쓰면서 프랑을 껴안았다.
700만으로 늘어난 TP를 전부 끌어다 온몸에 집중했다. 아니, 온몸에 집중하다 못해 심장에서 가속해 주변의 위상력까지 몸 주변으로 끌어들인다.
내 몸만 지켜주는 마나 시브를 확장해 프랑도 보호하겠다는 의지로 최대한 집중했더니 스톤헨지의 환영을 뚫고 들어갈 때처럼 푸른 빛이 몸에서 뿜어져 나와 프랑까지 뒤덮었다.
“미친년이 어디서 발작이야. 프랑, 모건의 목소리가 들려?”
“아, 아뇨. 들리지 않아요. 그런데 괜찮으세요?”
“어, 괜찮아. 좀 짜증 나긴 하고 쫓아가서 죽여버릴까 생각도 들지만…. 그냥 안 할래.”
놀란 눈으로 나와 자신의 몸을 뒤덮고 있는 푸른 빛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던 프랑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손을 들어 내 뺨을 쓸어주었다.
모건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묵묵히 내 앞을 막아서고 있던 프랑은 머릿속에 모건의 이미지가 사라지고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게 되자 내 품에 안겨오며 내 등을 쓸어주었다.
“잘 생각하셨어요. 저런 여자는 상대하지 않는 게 정답이에요.”
…예상대로 모건의 간섭이 막아져서 다행이다. 이렇게 확장까지 가능하고 확장된 마나 시브가 주변 사람들도 보호해준다니, 꽤 유용하게 쓰일 거 같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보단 여기서 현실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내 뺨을 어루만지는 프랑을 품에 끌어안고 그녀의 목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데 모건과 이야기를 나눴더니 더 기분이 더러워졌다.
한숨을 쉬다 보니 몸의 한쪽이 점점 따스해지는 게 느껴져서 동쪽을 돌아봤더니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공간의 벽을 작고 얇은 의자 형태로 만들어 앉고 프랑을 무릎 위에 앉힌 다음 해가 점점 머리 위로 떠오르는 걸 보며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범위 마나 시브 보호막은 TP가 끊임없이 내 몸 밖으로 빠져나와서는 나와 프랑 주변을 노닐다 몸 안으로 들어오길 반복하고 있었다.
덕분에 TP 소비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늘 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처음 봤던 역병 걸린 구름 같은 것들 여러 개가 호수까지 다가와 호수 주변을 살펴보는데 아무래도 프랑의 이야기대로 호수, 물과 관련된 권능이 있는 건지 나와 프랑이 머물던 모닥불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볼 뿐, 하늘에 떠 있는 나와 프랑을 발견하진 못하고 있었다.
미친년. 감히 프랑에게 손대려고 해? 나중에 날 잡고 아주 암캐처럼 조교 시켜주마.
속으로 이빨을 갈면서 가만두지 않겠다 벼르고 있었더니 프랑이 두 손을 들어 내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서하, 분노에 이성을 맡기지 마세요. 이성이 마이너스의 감정에 지배되면 마음도 삐뚤어진답니다.”
그러면서 입술에 버드 키스를 해주는데,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스리기 시작했다.
물론 모건을 암캐처럼 짖도록 만들어줄 생각은 여전하지만, 프랑 말대로 저런 년 때문에 내 마음이 삐뚤어진다니, 그럴 수야 없지.
마나 시브를 집중한 상태를 쭉 유지하고 있었더니 그 뒤로 모건의 말은 들려오지 않았고 하늘 높은 곳에 있어서 그런지 꺼림칙한 연기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해가 머리 위를 지나갈 때쯤 인증기를 켜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중세 판타지 세계에 들어온 지 5일이 막 지나고 있었다.
“후우…. 예감에 이끌려 귀환 포인트에 뛰어든 건데 여러 가지로 충격적인 시간이었어.”
“…….”
내 무릎 위에서 말없이 허리를 꼭 안아주는 프랑의 온기를 느끼 한숨을 쉬었다.
“프랑, 미안하지만….”
“괜찮아요. 어차피 돌아가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데 전설은 전설로 남겨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요.”
그러면서 힐끔 카멜롯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더니 내 귀에 작게 속삭인다.
“사실 뮈르딘님의 외모가 생각하던 것과 달라서 크게 실망했거든요!”
멍한 표정으로 프랑을 보니 "에헷." 하고 혀를 살짝 내밀었다. 이 아가씨가 여기까지 와서 뮈르딘 뒤통수 때리네….
이대로 있다간 변태노출마녀가 무슨 미친 짓을 할지 모르니 프랑에게 사과하고 현실로 돌아가려 했는데 프랑이 먼저 웃으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돌아가면…. 엄마랑 아빠한테 물어봐야지. 정말 고모가, 친어머니가 맞는지.
여러 가지로 정신적인 충격을 준 중세 판타지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현실을 강하게 떠올리자 나와 프랑의 몸 주변에 둘러져 있던 푸른 아우라에서 위상력을 흡수하며 몸 주변의 공간에서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돌아가자.”
세상이 좌우로 잡아 늘여지듯 늘어나며 한 점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눈앞에 시커먼 점이 생겨나더니 그 점은 빛과 세상을 먹어치우듯이 점점 커지다가 결국 나와 프랑마저 집어삼키고 세상이 칠흑에 잠겨 들었다.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