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65화 (265/517)

00265  이상한 세계의 카멜롯.  =========================================================================

슬쩍 카멜롯 성을 살펴보니 그 여자는 홀랑 벗고 얇은 모포만 허리께에 올린채 잠들어 있는게 보인다. 문도 안달린 방인데 누가 들어오면 어쩌려고….

“거, 그 능력은 여기서 쓰지 말아라. 네녀석이 살던 곳에는 눈치채는 자가 없을지 몰라도 이 곳의 반계에 든 자들은 금방 눈치채니까.”

아니, 자기를 보는거 말고 다른 사람을 보는것도 알 수 있어?

내가 공간 지각으로 그 검은 머리 여자를 살펴보는 순간 날아온 뮈르딘의 타박에 움찔했더니 프랑의 눈이 동그래져서 나와 뮈르딘을 번갈아 본다.

머쓱해져서 어깨를 한번 으쓱해주고 질문을 던졌다.

“반계는 뭐에요? 이 세계에도 능력자 같은 존재들이 있는거에요?”

“…….”

…표정이 진짜. '무식도 그정도면 하늘이 내려준 은총이구나.' 하는 눈빛이라 울컥할꺼같다.

“각성…이라고 했던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건 근원이 남아돌때, 자질이 있는 녀석들이나 알껍질을 부수고 나오듯 생겨나는 법이다. 노력 없이는 무엇도 없어. 반계는 거기 아가씨나 너같은 놈들이 선 세계를 말하는거고.”

그리고 뮈르딘은 눈을 감아버렸다. 나나 프랑같은 사람이 선 세계? 이건 또 웬….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없다. 뮈르딘은 몸 안으로 근원을 받아들인다고 했었지. 그럼 이 세계의 능력자들은 각성이 아니라 몸 안으로 근원, 위상력을 흡수하고 응축해서 능력을 발휘한다는거야?

그제서야 카멜롯 성에 I 클래스나 H 클래스만 많이 보이던게 이해가 간다.

…천천히 흔들거리는 의자에 앉아있는 뮈르딘, 그 왜소한 모습에서 더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많은걸 알려줘서 고마워요 뮈르딘.”

고개 숙여 인사를 하니 뮈르딘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여준다.

“저희는 그럼 가볼게요. 잘지내요.”

이제는 반응조차 보여주지 않는 뮈르딘을 뒤로하고 석조 건물을 빠져나왔다.

프랑과 함께 할배의 집에서 나왔더니 초승달이 머리 위에 떠올라있는 시간이었다. 깊은 밤중의 카멜롯은 무척이나 어두컴컴했다.

전기로 밝혀진 불빛이 없으면 밤은 미지의 세계라는 뮈르딘의 말이 이해가 갈 정도다.

공간의 벽을 펼쳐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며 시선을 내려 어둠에 휩싸인 카멜롯을 내려다 봤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카멜롯은 성벽과 도심 몇몇에 피워진 횃불을 제외하면 빛이라곤 한 점도 없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 잠겨있었다.

…가슴속에 맺혀있던 큰 궁금증과 의문은 모두 사라졌지만 반대로 그 자리에 들어선 내 본질에 대한 두려움과 소중한 가족들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이 채워지고 있었다.

손에 프랑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버티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우선은 내 과거에 관한 이야기는 집에 돌아갈때까지 가슴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뮈르딘이 알려준 위상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 일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전 아직 혼란스러워서 잘 모르겠어요.”

“…나는 두개의 파벌로 나뉘지 않을까 생각해.”

“파벌이요?”

“내 이야기를 들어봐.”

우리가 있는 현실에 위상력이 부족해 강제 소환이 이루어진다면 내가 위상 세계에서 상위나 고위 이형종을 끌고와 죽이는걸로 현실 세계에 위상력을 퍼트릴 수 있을거야.

그걸 반복하다보면 현실에 위상력이 가득 퍼져서 그 상처가 났다던 세계도 수복되겠지? 그럼 언젠가 강제 소환이 멈출거야.

그럼 그 뒤에는?

강제 소환이 멈추게 되는 시기쯤 되면 현실에 가득찬 위상력으로 인해 현실에서도 능력자로 각성하는 사람이 나타날테고 동시에 이형종도 나타나게 될지도 몰라.

그렇게 이형종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정말 몇몇 포스트 어포칼립스 장르 소설처럼 현실에 고위, 최고위 이형종들과 레이드하는 말세적인 장면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겠지.

그런 전투가 일어날수록 인간들의 미지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위상력을 이끌어낼테고 이형종과 싸우며 사망하는 능력자들의 몸에서 피어오른 위상력의 꽃 역시 위상력의 증가에 박차를 가할거라 생각해.

그러니 뮈르딘과 나눈 대화가 담긴 영상이 세상에 퍼지면 세상은 틀림없이 두가지의 반응이 나오게 되겠지.

위상력이 모자라 강제 소환자가 나타나는 전자가 낫다

차라리 강제 소환을 멈추고 현실에서 위상력이 생겨나고 현실에서 모든것을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후자가 낫다.

이 두가지 파벌로 나뉘게 될게 틀림 없어.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프랑은 눈을 감고 차분히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미 머나먼 과거와 연결되어 쌓이기 시작하는 위상력을 멈출 방법은 없을거에요. 시간을 늦출수야 있겠지만 그러기 위한 댓가를 얼마나 치뤄야할지 제 머리로는 짐작이 가지 않아요.”

“그럼 프랑은 후자가 낫다고 보는거야?”

“네…. 이미 우리 세상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 안에 있는 형상이잖아요. 무슨 수를 써도 증가하는 위상력을 완벽하게 막을 수단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이형종이 나타날 미래를 대비해야한다면 역시 이형종에게도 통하는 위상력과 과학을 접목한 무기를 만들어 대비하는 수 밖에요.”

그리고 조용히 눈을 뜬 프랑은 내게 따뜻한 눈빛을 보내다가 다가와 날 품에 끌어안고 방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걸할 수 있는 사람은, 서방님 뿐이에요.”

“기승전서방님이야?”

“푸훗.”

킥킥 웃는 프랑을 껴안고 카멜롯 왕궁으로 시선을 돌렸다.

현실에 나타나는 이상 현상의 비밀을 알게 됐다. 거기다 위상력도 증가했고 공간 도약도 익혔다.

이대로 내일 점심때까지 기다리면 귀환 포인트 사용의 쿨타임이 끝나서 우리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될거다.

돌아가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러다 프랑이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를 보고싶어한게 생각나서 나처럼 어둠속에 잠겨있는 카멜롯을 내려다보는 프랑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쩔까. 귀환하기전에 남쪽으로 내려가서 아서 왕이랑 원탁의 기사들을 한번 찾아볼까?”

“네? 으음….”

바로 찾으러 가자고 이야기를 꺼낼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프랑은 고민하는 모습을보여주었다. 어째서…라고 할 것도 없겠지.

날 신경쓰고 있는거다.

…부모님과 연인들에게 내가 악마의 혼혈이라는걸 말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말한다면 날 여전히 가족으로, 연인으로 봐줄지 아닐지.

그걸 생각하면 위에 구멍이 날 지경이지만 그건 현실로 돌아간 뒤에 생각 할 일이다.

카멜롯과 아서 왕, 원탁의 기사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기대하고 흥분하던 프랑의 모습이 생각나서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고 하늘을 걸어 희미한 별빛을 따라 남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왕 왔으니 한번 보자. 만나줄지 안줄지는 모르니 멀리서 대왕이라고 불리는 사람을 한번 구경해봐야지. 돌아가면 언제 또 다시 귀환 포인트를 만날 수 있을 지 모르잖아?”

“괜찮으시겠어요?”

두 눈 가득 걱정이 담긴 얼굴에서 역시 날 염려했다는걸 알 수 있었다. 이런 프랑을 사랑하지않으면 누굴 사랑한단 말인가.

가슴 속에 가득 차오르는 훈훈한 감정에 웃으면서 프랑의 뺨을 콕 찔렀다.

“괜찮아. 나중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지 뭐. 그럼 남쪽으로 가자.”

그 순간 이형종이 날 볼때 느껴지던 시선 비스무리한게 느껴졌다.

…….

설마 싶어 공간 지각으로 그 검은 머리카락의 노출마녀를 보니 역시나 잠에서 깬 여자가 풍만한 유방과 새카만 음모를 고스란히 드러낸채 자신의 침상 위에 매혹적인 자세로 누워 두 눈에서 흰 빛을 뿌리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온 몸에 마나 시브를 집중하고 눈에도 마나 비전을 강하게 응축해서 그녀를 바라보니 살짝 찢어져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얼굴에 놀람이 스쳐지나간다.

뒤이어 색기가 묻어날듯한 미소를 짓더니 기이한 느낌이 드는 동작으로 두 팔을 머리 뒤로 돌려 쓸어올리며 날 흘겨본다.

마녀의 움직임에 따라 출렁거리는 가슴과 흔들리는 젖꼭지에 살짝 눈이 가지만 이내 시선을 올려 마녀의 눈동자에 마주한다.

…마녀는 관능적인 자세로 한 손을 올려 자신의 도톰하게 솟은 유방을 어루만지고 끝에 돋아있는 새하얀 피부와 상반되는 분홍색 젖꼭지를 어루만진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은 검은 수풀이 우거진 다리 사이로 손을 가져가는데….

콱 그냥, 누굴 유혹하고 있어? 확 공간의 벽으로 침대를 지워서 자빠트려버릴까보다.

“프랑.”

“네?”

“카멜롯 성에서 이상한 노출증 변태 아줌마가 날 꼬시려하고 있어. 얼른 딴데로 가자.”

노출증 아줌마라는 이야기에 프랑의 눈썹 끝이 점점 올라가며 카멜롯을 뒤돌아보려하길래 허리를 끌어안으며 북쪽을 향해 발을 굴렀다.

공간 지각에 벗어나기 직전 내 몸놀림에 무척이나 놀라는게 느껴졌지만…. 무시하자. 처음보는 남자한테 발정난 암캐같이 구는 여자는 가까이 하는게 아니랬어.

뮈르딘의 좋을게 없다는 이야기는 틀림없이 저 노출녀를 두고 한 말일꺼야. 나도 꺼림칙해서 힘껏 달려 카멜롯을 벗어났다.

한참을 달려 카멜롯을 벗어나 수십킬로미터를 이동한 나는 그제서야 잔뜩 화난 표정을 하고 있는 프랑의 뺨을 살짝 토닥였다.

“뮈르딘 할배가 말한 좋을게 없다는 이야기는 틀림없이 그 노출 아줌마를 두고 한 말일꺼야. 이 세계는 우리가 모르는 다른 능력이 있을테니 마찰을 일으키기보단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 응?”

“…그 여자, 카멜롯 성의 성벽에 있던 검은 머리에 난잡한 복장을 하고 있던 여자였죠?”

…어라. 프랑도 봤었나? 맞다고 고개를 끄덕여주니 발끈하는 표정으로 카멜롯 성이 있는 방향을 사납게 노려보며 외친다.

“그 여자는 틀림없이 사악한 마녀인 모건 르 페이일거에요!”

읭? 모건 르 페이면 진짜 마녀잖아?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외모도 모르는데 그렇게 확신하는거야?”

“검은 머리에 그, 남사스러운 복장에 얼굴에…! 하여튼 모건 르 페이는 태어날때부터 마녀였어요! 거기다 사악한 네크로맨시에 능통한걸요?! 거기에 아서 왕을 배신하고 죽음으로 이끌게 한 모드레드의 어머니에요! 마법으로 변장해서 동생인 아서를 유혹해서 자식을 낳은 최악의 마녀라구요!”

우와아. 이렇게 불뿜듯이 화내는 프랑을 보는건 이번이 3번째인거같다.

“그 사악한 마녀는 틀림없이 서하를 유으우부브브!”

“쉿. 우리 착한 프랑, 너무 흥분했어. 진정해, 응?”

이대로 손을 놨다간 당장 카멜롯 성으로 날아가 심판의 벼락을 날려버릴거 같이 씩씩대는 모습이라 진땀을 흘리면서 프랑을 토닥이며 진정시켰다.

“자, 진정해.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 쉬고….”

“후우, 하아, 후우.”

내 말에 따라 시키는대로 심호흡을 하던 프랑은 한참이 지나서야 진정한 표정이 되었다.

“프랑은 모건이 싫어?”

“싫어요!”

오. 이렇게 확실한 표현이라니. 정말 싫은가보다.

“어디가 그렇게 싫은데?”

정말 모건이 싫은지 눈썹을 찡그린 프랑은 고개를 도리도리 젓기 시작했다. 진정한 프랑의 손을 잡고 북쪽으로 발길을 옮기며 다시 물었더니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듯이 이야기가 쏟아진다.

“가장 싫은점은 요정이기도 하면서 친동생인 아서 왕을 몸으로 유혹해 아이를 가지고, 그 아이로 하여금 아서 왕을 공격하게 한거에요! 거기에 그 변덕! 아서를 공격하거나 도와주는것도 싫어요! 랜슬럿 경에게도 애정을 품고 있는것도 싫어요! 그래놓구선 마지막에 아서 왕을 아발론 섬으로 데려간것도 전~~~~부 싫어욧!”

콧김을 푹 하고 뿜은 프랑은 "으으." 하고 이를 앙 다문다.

…그당시에는 왕족의 피를 보존하기 위해서 근친은 흔히 일어나는 일 아니었나? 거기다 랜슬럿도 동성애에 빠져있었고 아서왕도 갤러헤드를 보고….

이 이야기를 했다간 프랑한테 바가지를 긁힐거라는 예감이 매우매우 강하게 들었다.

그래. 말하지말자.

프랑의 한탄과 함께 열변을 토하는 기사도 열전을 들어주고 맞장구쳐주면서 남쪽으로 이동하다가 숲에 둘러쌓인 호수를 발견했다.

둔덕이 호수를 ㄷ자 모양으로 감싸고 있고 그 뒤에는 나무들이 빼곡히 자라 어딘가 모르게 안락함을 주는 장소다.

호수라지만 호수와 연못의 경계선에 선 곳이랄까. 저수지라고하는쪽이 옳으려나?

“저기서 날이 밝을때까지 보내자.”

프랑이 쉬지않고 계속 이야기해주며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만 그래도 어두운 밤에, 시커먼 하늘을 달리고 있으려니 날 낳아주신 어머니와 알라스토르의 사악한 검은 성이 계속 떠올라 몸과 마음이 지치고 기분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럴땐 그냥 모닥불을 피워놓고 프랑을 품에 안고 쉬고싶어.

내 심정을 눈치챘는지 프랑도 입을 다물고 별 말없이 호숫가의 공터에 내려와 마른 나뭇가지를 줏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그걸 도와 고목 나무 하나를 끌고와서 토막낸 다음 장작으로 만들었다.

모닥불을 피우기 위한 준비를 끝내니 프랑이 마른 나뭇잎을 모아놓고 그곳에 손가락에서 불똥을 팅겨 불을 피웠다.

그 사이 6.75km까지 늘어난 공간 지각으로 주변을 살펴보니 늑대나 멧돼지. 여우같은 들짐승들이 보이지만 이형종이 아닌 평범한 들짐승이라 전혀 위협이 될거 같지 않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주변에 공간의 벽을 쳐놓고 쉬도록 해요.”

“응.”

프랑의 말대로 모닥불을 중심으로 주변에 돔 형태의 공간의 벽을 만들어 막아버리고 풀밭 위에 드러누웠다.

프랑도 내가 눕는 모습을 보고 옆에 붙어 내 팔을 베고 같이 누으니 그녀의 따뜻한 온기와 사과 향기의 체취가 코 끝을 간지럽히면서 불안에 떠는 내 정신을 안정시켜준다.

눈을 감고 되도록 아무 생각 하지 않으려 머릿속을 비우는데 내 팔을 베고 누워있던 프랑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서하는 언제부터 눈치채신거에요?”

날 힐끔거리며 말을 하려다 말기를 반복하더니, 그게 궁금했었던건가. 말해놓고도 괜한걸 물어본건 아닐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두 손을 뻗어 프랑의 허리를 껴안아 아랫배를 붙이며 나지막히 말했다.

“푸른 악마와…. 어머니의 꿈을 꿨던건 엘리펀트로스 우두머리를 잡고 C 클래스에 올라섰을때였어. 그때 처음 검은 성에 대한 환상을 봤었어.”

프랑에게 모든걸 털어놓을 생각을 해도 예감이 제지하는 일은 없어서 천천히 모두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하늘 섬에서 두번째 플라비우스 종족을 죽였을때 다시 꿨던 꿈. 하지만 꿈에서 깬 뒤로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었지. 그러다 영국의 자료 보관실에서 알라스토르의 사악한 검은 성을 봤을때 꿈의 내용이 모두 기억나버렸던거야.”

“아, 그때 머리를 감싸쥐셨던게….”

“응. 꿈이 모두 생각나면서 두통이 찾아왔던거였어. 그때에는 어째서 이런 꿈을 꾸는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 꿈에서 나온 여자도 누군지 몰랐었고.”

프랑은 날 반듯하게 눕히고 내 위로 올라와서 입을 살짝 맞춰준다. 내 이야기를 들은 그녀의 눈에 살짝 습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프랑도 참 울보네.

손을 올려 프랑의 뺨을 쓸어주며 계속 이야기했다.

“히아리드를 처음 만났을때 나한테서 악취가 난다고 했던 말, 알붐 케투스가 날 보고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를 말했을때.”

잠깐 말을 멈추고 공간의 벽을 치우며 밤 하늘을 올려다봤다. 초거대 거북이를 봤던 그날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별과 반달이 되어가는 초승달이 보인다.

“뮈르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알게 됐어. 초거대 거북이가 나한테 했던말의 의미까지.”

-부디 그들을 미워하지 말기를.-

그들은 푸른 피부의 악마겠지. 무리잖아. 그런 놈들을 미워하지말라니….

“그렇게 퍼즐 조각이 머릿속에 점점 늘어나기 시작할 무렵에 뮈르딘의 이야기를 듣고 확신하게 된거야. 밑그림이 그려지면서 퍼즐 조각이 그 위에 차곡차곡 끼워맞춰진거지.”

확실한 물증은 없다.

그러나 뮈르딘의 이야기와 내가 꾼 꿈. 그리고 내 능력과 지금까지 일어났던 히아리드와 알붐 케투스, 그리고 초거대 거북이의 이해 불가능 한 이야기들이 한데 뭉쳐지는 순간….

“그 꿈에 나타났던 여자가, 왼팔과 왼쪽 다리가 뿌리까지 사라진 그 여자가 날 낳아준 어머니라는 생각에 도달해버렸어. 그리고….”

꿈의 내용까지 들은 프랑의 표정은 뭔가를 깨달은 표정이 되어서 날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프랑? 왜그래?”

“서…방님. 그거, 그 분이요. 서하의…. 낳아주신 어머님이요. 그분은….”

떨리는 눈으로, 당장이라도 눈물이 흐를듯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프랑의 입에서 가느다란 흐느낌과 함께 나온 말은 벼락이 되어 뇌를 관통하고지나갔다.

“서하에게 고모님이 되시는 분, 그분이신거…. 같아요.”

…순간적으로 숨쉬는것도 잊어버리게 만든 충격적인 이야기에 할말을…. 잃었더니, 프랑은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내 머리를 품에 끌어 안더니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서하가 생환하시고 병원에 계실때, 할머님과 외할머님과 서하의 가족이 모두 모여계실때 아버님께서 이야기 해주신거요…!”

…이제야 생각난다.

[그리고 다음 해 봄에 또 한번의 재앙이 우리를 덮쳤다.

정 수린, 너에겐…. 고모가 되지. 수린이가 형님의 뒤를 이어 전액 국비 지원으로 대한 대학교 의학부에 입학했지만, 입학식날 어머니와 내 앞에서 위상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으셨지. 나는 넋을 놓고 물방울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어머니는 수린이의 물방울 앞을 떠나지 않고 살아돌아오길 기도했었고 나는 미친 사람처럼 공부에 매달리며 매일매일 운동장을 들락거리며 수린이의 생환을 간절히 기도했었다.

그리고 15일 후 기적같이 수린이 귀환했지만….]

위상 공간 정신 장애 1급 판정.

[왼팔과 왼쪽 다리가 뿌리째 잘려나가고 전신에 심각한 상처와 윤간의 흔적을 몸에 새긴 채 알몸으로 생환한 수린이는….

1년 후, 능력자 정신 병원에서 목을 맨 채 자살하고 말았다.]

그때 확연히 떨리던 아빠의 목소리가 다시금 귓가에 휘몰아치는거 같다.

“그…런가.”

그랬던건가.

아빠가 말한 그 상처는…. 그런거였구나. 난 아빠의 아들이 아니고 고모의 아들이 되는구나. 그럼 누나는 사촌 누나인가? 아빠는 외삼촌이 되고 엄마는 외숙모가….

“서하….”

눈에 맺힌 눈물이, 눈을 감자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린다. 프랑은 더욱 힘줘 내 머릴 끌어안으며 보듬어준다.

“고모가 아니라 어머니였구나.”

웃음이 난다. 엄마랑 아빠는 틀림없이 그걸 알고 있었던거야. 그러면서 날 친자식처럼….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참을 수 없을만큼 가슴이 간지러워져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크크크. 있잖아, 프랑. 난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진짜 고민했다? 킥킥. 프랑도 알겠지만 아빠도 엄마도 누나도 전부 미남미녀인데다 똑똑하고 성격도 좋잖아. 근데 난 못생긴데다 공부도 못하고 멍청하고 성격도 나쁘고…. 중학교때 한번은 한밤중에 이불 뒤집어쓰고 울기까지 했다니까? 아무리 나쁜 유전자가 몰빵했다고 해도 기본이 있는데 나 혼자만 집에서 전혀 다르니까, 아빠랑 엄마가 줏어온 애가 아닐까 하고…. 물어봤다가 진짜 그렇다고 할까봐 무서워서 물어보지도 못했는데….”

“서하…!”

“진짜였던거야….”

이런 내가 애처로워서 눈물을 흘리며 어쩔줄을 몰라하는 프랑의 뺨에 손을 뻗어 잡으며 말했다.

“울지마. 엄마는 엄마고 아빠는 아빠야. 누나도 나한테 하나뿐인 누나야. 그렇다고 낳아주신 어머니를 부정할 생각은 없어. 18년동안 날 키워주고 사랑해주신 부모님도, 잘못하면 혼내면서도 날 사랑해주고 아껴준 누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용서할 수 없다. 머릿속에 새겨진 어머니의 모습이, 악마 새끼들의 행위가! 그 놈들의 모든게!!

“그 악마놈들은 절대 용서 못해. 반드시 그 성을 찾아내서. 그 악마놈들을 모조리 전부다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겠어…!”

절대 용서 할 수 없다.

이 순간 내 인생을 모두 걸어서라도 이루어야할, 해결해야할 목표가 생겨났다. 그 시간이 아무리 오래걸린다해도. 내 평생을 바쳐야한다고해도.

반드시 끝을 보고야 말테다.

그런데 고모는,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12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 작품 후기 ============================

캬 존잘님들 너무 많아! 다른 분들 작품 읽느라 제 글 쓸 시간이 없네요 ㅋㅋㅋ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