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62화 (262/517)

00262  멀린, 그리고....  =========================================================================

나는…. 뭐지.

어떻게 태어난 거지….

내 부모님은 누구시지.

나는, 내가 악마의 혼혈이라고? 그 퍼런 피부의 악마들의?

시커먼 돌로 이루어진 감옥, 쇠창살이 달린 반월형의 작은 창살 밖으로 시뻘건 태양이 자줏빛 하늘을 새빨갛게 불태우고 있다.

…또 꿈이다.

시간을 알 수 없는 기괴한 색의 어둠이 내리는 감옥, 그 쇠창살 아래 한 사람이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아 있었다.

10대 후반의 동양인으로 보이는 여성은 왼쪽 팔이 뿌리째 사라져있고 왼발 역시 무릎까지 사라진 모습으로 넋이 나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벌거벗은 온몸에 푸른 정액이 흐르고 있고 날카롭게 베인 자국이 몸의 곳곳에 나 있었으며 그나마 남은 팔과 다리도 송곳에 관통된 상처가 무수하게 많았다.

하지만 피는 흐르지 않는다. 베인 자국에서도 새빨간 근육만 노출되어있을 뿐 피는 흐르지 않고 있었다.

…뮈르딘이라 불린 노망난 모습 같은 할배의 목소리 덕분에 어찌 된 일인지 깨달았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어머니라고 불러야 할 저 사람이 겪은 기억이겠지.

…미칠거 같은 기분이다. 저 사람이 내 진짜 엄마라고?

18년 동안 엄마라고, 아빠라고 생각하고 부른 사람들이 친 부모님이 아니라니….

멍하니 날 낳아준 엄….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버킹엄 궁전의 자료 보관실에서 봤던 악마들보다 위 단계로 보이는 두 퍼런 악마 새끼들이 겔겔 웃으며 감옥 안으로 들어온다.

악마 두 놈이 다가오지만, 어…머니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악마 두 놈은 그런 것 따위 상관없다는 모습으로 어머니를 범…. 크윽.

나는 저 악마 새끼들의 아이라는건가….

외부 자극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시체처럼 두 악마의 노리개가 되는 모습을 두 눈에 담고 있으려니 두 악마 새끼들은, 어머니의 남은 왼쪽 다리를 천천히 뜯어먹기 시작했다.

저런 식으로 범해가면서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는것 처럼 야금야금 갉아먹는 장면을 보니 머릿속의 끈이 끊어질 거 같은 분노와 함께 토할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이… 개 새끼들.

이빨이 부러질 만치 턱에 힘이 들어간다. 눈이 터질 것 같은 압력을 받으며 걸쭉하고 뜨거운 무엇인가가 뺨을 타고 흐르는 거 같다.

고장 난 인형처럼 악마들의 움직임에 몸이 덜컥이던 어머니는 자신의 신체 일부가 먹혀가는데도 얼굴조차 찡그리지 않는다.

시체 같은 어머니의 모습과 시퍼런 피부의 악마들을 뇌에 새기듯이 각인한다.

이윽고 충분히 즐겼다는 듯이 게헥헥거리며 악마 새끼들은 감옥 문을 나갔는데 어머니가 죽지 않게 조치라도 한 것인지 왼쪽 다리도 뿌리까지 사라진 상태지만 상처는 마치 10년은 지난 것마냥 아물어있었다.

…그때 시체나 다름 없는 얼굴을 하고 있던 어머니의 눈에서 맑고 투명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새카만 감옥 바닥에 쓰러져있는 어머니는 혀를 깨물고 죽을 생각조차 못 하는지 간헐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러던 중, 기적이라고 해야 할지 저주라고 해야 할지, 어머니의 몸 주변에 빛덩어리가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참 뒤 빛무리가 확연히 커져 어머니의 몸을 휘감을 때 즈음 감옥 밖에 아까 들어온 놈들과 다른 두 마리의 악마가 나타났다.

어머니의 몸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당혹하고 분노한 악마 두 놈이 문을 잡아 뜯어 부수는 것과 동시에 어머니의 모습은 지우개로 지워버린 것처럼 그곳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나도 눈을 떴다.

지저귀는 새소리와 함께 창밖에서 비치는 햇살이 눈과 귀를 간지럽힌다.

조용히 눈을 뜨니 내 이마를 덮고 있는 따뜻한 손과 날 걱정스레 내려다보는 프랑의 얼굴이 보인다. 말랑말랑한 프랑의 허벅지를 베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니 프랑은 말없이 두 손을 뻗어 내 등을 껴안았다.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투박한 나무 창문 너머 희뿌연 안개가 서린 숲을 바라보고 있으니 프랑은 내 앞으로 돌아와 내 얼굴을 마주한다.

그녀는 단호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내 손을 꼭 잡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서하. 저는 서하가 어떤 존재인지 상관 안 해요. 서하는 서하일 뿐인걸요. 서하는 저의 전부이자 삶이에요.”

“…프랑.”

“그건 화연도, 영은도 마찬가지에요. 아버님도, 어머님도, 시하 님도 다들 서하를 진심으로 사랑해요. 그 사실은 어떤 일이 벌어져도 변함이 없을거에요.”

“응….”

정말 내가 악마의 자식이라는 걸 알고 나서도 변함이 없을까? 내 영혼은 악마의 그거라고 뮈르딘이 이야기했잖아. 나만 해도 내 자신이 역겨울 만큼 껄끄러운데…. 하물며….

…내 마나 시브가 물빛이 아니라 푸른 빛을 내는 건 틀림없이 그 악마 새끼들의 피부가 푸른 것과 연관이 있겠지.

그러고 보면 내 능력은 다른 능력자와 비교하면 죄다 미친 스펙이다.

거기에 공간 지각이 어떻게 위상력을 감지하나 했더니 이형종의 위상력 감지 능력이 깃든 거였어! 그 증거로 내 공간 지각 범위는 이형종의 위상력 감지 범위랑 비슷하다고!

평범한 기감 능력자는 C 클래스라 하더라도 150m가량이 한계란 말야….

위상력이 내 몸 안에서 고요한 수면처럼 존재하는 것도…. 이형종이 전투를 하지 않을 때 위상력이 뭉쳐있던 것과 같았던 거야.

어째서 내가 이렇게 다른 능력자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건지. 남들과는 다른 능력을 지닌 것인지 그 이유를 알게 됐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다.

내 정체를 알게 됐지만, 여전히 날 사랑해주는 프랑을 품에 안으니 사과 향이 콧속으로 들어와 가슴에 가득 차오른다. 덩달아 눈이 뜨거워지며 축축한 무언가가 흐르기 시작한다.

난 악마의 자식이야. 어째서 엄마랑 아빠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랄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악마의….

“서하, 우는…거에요?”

“……”

목이 메이고 가슴이 뜨거워져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조금이라도 열었다간 울어버릴 것만 같다.

“괜찮아요. 서하는 서하잖아요. 뮈르딘 님이 이상한 말을 했지만 바뀐 건 없어요. 바뀔 것도 없어요.”

프랑은 내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면서, 자상한 목소리로 날 어루만져준다.

“하지만 나는 악마의 자식이야….”

뺨을 따라 뜨거운 무언가가 계속 흘러내리는데 프랑이 내 품에서 떨어져 나가더니, 내 뺨을 잡고 입맞춤을 해온다.

멍하니 눈물을 흘리며 프랑이 해주는 달콤한 키스를 받아들이고 있으니 프랑도 눈에 물기가 차오르더니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흔들림 없는 강한 눈빛으로 날 마주 보며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주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저를 보세요. 저는 살아있는 사람도 아닌걸요? 이런 저를 받아주신 아버님과 어머님이시고 시하 님이세요. 화연과 영은도 상관 안 해요. 그러니까 그분들도, 그녀들도 상관하지 않을 거에요.”

손가락으로 내 뺨에 흐르는 눈물 자국을 쓸어준 프랑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사랑해요, 서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는 서하의 곁에서 서하와 마지막까지 함께 할거에요. 그러니 눈물 흘리지 마세요….”

“내가 그 푸른 피부의 악마들의 자식이라고 해도?”

“상관 안 해요! 서하는 서하일뿐이에요, 저의 서방님이신걸요!”

프랑의 진심이 가득한 이야기에 갈기갈기 찢어져 나가던 마음이 조금은 아무는 거 같다…. 그리고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프랑은 순백의 나신을 드러내더니 내 머리를 품에 끌어안고 뒤로 천천히 드러눕는다.

멍하니 그녀의 나신을 끌어안고 있다가, 손가락을 뻗어 프랑의 눈물을 훔쳐주고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을 한입 베어 무니 프랑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어째서인지 추워서 죽을 거 같은 한기를 느끼며 셔츠와 바지를 벗어 던지고 허겁지겁 프랑의 보드랍고 따뜻한 나체 위에 몸을 겹쳤다.

…흥분도, 애무도 없었지만, 프랑의 꽃잎은 사랑으로 가득 차 부드럽게 내 물건을 받아들인다.

“하윽.”

만두를 입에 물듯 앙 하고 가슴을 베어 물자 프랑은 허리를 애처롭게 뒤틀지만, 남근을 받아들인 상태라 꼬치에 꿰인 물고기처럼 움직이질 못하고 가늘게 신음을 흘릴 뿐이었다.

프랑의 허리를 끌어안아 피부와 피부를 맞닿으며 집요하게 유방의 첨단을 빨아들인다. 혓바닥으로 깊숙이 희롱한다. 프랑은 참지 못하고 다시 한 번 달뜬 신음을 흘리며 손을 뻗어 아기를 보듬듯이 내 머리를 어루만진다.

허리를 움직이니 들이닥쳐 오는 쾌락의 물결에 프랑의 허벅지가 뒤틀리지만, 그녀의 골반을 꽉 잡고 다시 한 번 허리를 깊게 찔러 넣었다.

“흐으…. 으….”

얇게 흐느껴 우는듯한 신음. 프랑의 그곳은 사랑으로 가득 젖어있었다. 꽃잎의 끈적한 율동을 남근 가득 느끼며 천천히 허리를 젓기 시작하니 프랑의 아기 우는 듯한 신음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허리가 잔뜩 휘어지며 발가락을 세우는 모습에 프랑의 등과 허리를 잡아 자리에 앉으니 잔뜩 흘러내린 모습으로 내 목에 팔을 두른 프랑은 잘게 떨며 무릎을 바닥에 대고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귓가에 흐느껴 우는 프랑의 신음을 들으며 그녀의 목을 약하게 깨무니 남근을 휘감은 그녀의 녹아내릴 듯 부드러운 벽이 강하게 조여들었다.

“아…. 아앗. 아아…. 하앙!”

악기를 연주하듯 그녀의 등골을 쓸어내리며 어루만지니 꽃잎에서 사랑이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진한 사과 향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리니 저녁노을처럼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까이해 혓바닥으로 내 눈물을 훔쳐낸다.

“울지 말아요, 나의 서방님.”

하얀 피부와 늘씬한 팔다리, 큰 가슴을 가진 프랑의 품 안은 내 모든 것을 포근히 감싸주는 어머니의 품이었다.

남근이 한번 꿈틀거리니 가벼운 신음을 흘린 프랑은 다시금 몸을 바이올린을 켜듯 부드럽게 허리를 움직이며 그녀의 몸속에 들어가 있는 내 분신을 조이면서 느긋하게, 하지만 격렬하게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하앙….”

“으윽.”

허리의 움직임에 따라 프랑은 나지막한 신음을 내며 쾌감으로 빠져들어 갔다. 내 어깨에 기댄 프랑을 끌어안으며 뒤로 누웠더니 기승위가 된다.

여전히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프랑은 허리만 움직이는 데 힘에 부치는지 떨리는 허벅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복숭아마냥 달아오른 엉덩이를 잡고 들어 올렸다 내리는 것과 동시에 허리를 놀리니 프랑의 입에서 격한 비음이 터져 나온다.

반복되는 행위에 정상을 향해 급격히 달아오르는 그녀와 나의 육체는 곧이어 함께 열락에 파묻혀 천천히 스러져간다.

정신없이 프랑의 온기에 파고들며 그녀의 따스함으로 추위를 몰아내길 수 시간, 자신의 몸으로 엉망진창이 된 내 정신을 위로해준 프랑은 지쳐서 깊게 잠들어버렸다.

…프랑의 말대로 나는 나일 뿐이다. 내 정체에 대한 비밀을 알았다고 해도 달라진 건 없어. 지금 두려운 건 내 영혼이 악마의 그것이라는 걸 안 가족과 연인들의 반응이다.

…….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가는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잠든 프랑에게 이불을 덮어준 다음 옷을 챙겨입고 방문을 열고 나왔다.

장작이 타오르는 벽난로 앞의 흔들의자에는 뮈르딘이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천천히 벽난로 앞으로 걸어가니 뮈르딘은 날 향해 눈길도 주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 아이의 말대로다. 너는 너지. 네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너의 행동일 뿐이다.”

순간 울컥해서 막말을 내뱉어버렸다.

“아 진짜, 관음증 변태 할배같으니.”

나랑 프랑이랑 사랑을 나누던 걸 훔쳐본 거야? 화가 나서 할배를 노려보니 클! 하고 웃더니 평이한 어조로 입을 연다.

“너도 나만큼 늙어봐라. 아무리 예쁜 여자의 알몸이라도 가운데 토막이 안선다.”

“…개변태 할배같으니라고.”

“어린놈이 말버릇하고는. 그 아이는 너 같은 녀석에게 과분한 아이다.”

“흥. 그런 거 말 안 해도 다 알고 있거든요?”

자작거리면서 타오르는 벽난로 앞에 가서 주저앉으니 장작불의 온기가 몸을 어루만진다. 한쪽 다리를 끌어안고 무릎 위에 턱을 올린 채 타오르는 불길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려했지만….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레 궁금증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아빠랑 엄마는 날 어디서 데려온 걸까. 내 정체를 알고 있으실까? 누나는 나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프랑은 날 받아줬지만, 화연이랑 영은이는 내 정체를 듣고도 날 받아줄까.

“애새끼 주제에 아주 세상이 무너질 거 같은 표정이구나.”

“70살 넘은 할아버지에게 고민이 있는 것처럼 10살 꼬마에게는 꼬마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는 법이거든요?”

“각자 삶에 나름대로의 고민이라, 좋구나. 그래서 넌 어찌할 거냐.”

뮈르딘은 흘흘 웃더니 흔들의자를 앞뒤로 흔들며 질문을 던졌다. 어쩌긴, 당연히 할 걸 해야지.

“돌아가면 엄마랑 아빠한테 물어봐야죠. 날 어디서 데려왔냐고.”

“그리고?”

“그 새끼들을 모두 잡아 죽여야죠.”

퍼런 피부의 악마 놈들을 떠올리니 자연스레 이빨이 갈리며 산산이 조각내 죽여버리고 싶단 생각이 몽글거리면서 솟아오른다.

“흘흘….”

뮈르딘은 엉망으로 자란 수염을 쓸어내리며 내 알 바 아니라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이럴 땐 너 자신의 이성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그것들을 용서해주어야 한다, 뭐 이런 이야기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냐?

강 건너 불구경이라도 하는 거 같은 느긋한 뮈르딘의 표정을 보니 가슴에 차오르던 악의가 제풀에 꺾여 사라지는 거 같다.

슬쩍 뮈르딘, 내가 사는 현대에서는 멀린이라 부르던 아서 왕의 조언가이자 대 마법사인 할배를 공간 지각으로 살펴봤다.

“예끼. 훔쳐볼 거면 기네비어 왕비의 알몸이나 훔쳐볼 것이지 나 같은 늙은이가 뭐가 볼게 있다고 훔쳐보느냐.”

기네비어? 아서 왕의 부인? 랜슬롯이랑 외도하고 카멜롯을 풍비박산 나게 만든 그 여자?

그런데 멀린의 몸 안에 위상력이나 위상력 타입 같은 게 안 보인다. 뭐지, 위상력을 숨길 수도 있는 거야? 아니면 위상력이 없는건가?

“…딴 남자의 여자를 뭐가 볼 게 있다고 훔쳐봐요. 그거보다 할배는 어떻게 제가 푸른 피부의 악마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냥 보인다.”

“…….”

이번에는 내가 아니꼬운 표정으로 할배를 올려보자 끌끌하고 웃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지성을 지닌 존재의 눈을 들여다보면 그의 내면이 한 치 깊은 바닷속 마냥 어른거리며 보이지. 네 녀석의 눈 속에 그 악마의 형상이 보였던 거 뿐이다.”

…그런가.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대답이지만 어쩐지 그 부분은 캐물을 생각이 없어져서 살짝 한숨을 쉬며 다른 걸 물었다.

“그럼 뮈르딘 할배는 위상력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힘을 쓰는거에요? 그 오두막에 쳐진 환영이나 공간을 이어붙인 건 할배가 한 거 맞죠?”

“위상력? 너희는 근원의 힘을 그렇게 부르나 보구나. 근원의 힘을 받아 쓰는 방법은 천차만별이지. 네 녀석이 근원에서 빌려 쓰는 힘을 쓰는 방식은 그야말로 코흘리개가 아부바부하면서 손에 쥔 장난감을 집어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정을 못 하겠네. 그러니까 위상력이 없어도 위상력을 끌어들여서 마법이란 걸 쓸 수 있다는 거지? 그럼 그걸 이해하면 나도….

내 생각을 또 읽었는지 뮈르딘은 콧방귀를 끼더니 느긋한 모습으로 설명을 이어나간다.

“마도학은 수천 년 드루이드의 정수가 집약된 비술의 결정체지. 네 녀석의 대가리 수준으로는 100년간 설명해줘도 내 발톱의 때만큼도 이해 못할 테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해라.”

“배….”

“배운다고 쉽게 쓸 수 있는 거면 이 비술이라 부르겠느냐.”

“자….”

“네놈도, 자고있는 저 아가씨도, 전~부 자질이라곤 어린애 코딱지만큼도 없다.”

아, 뭔 말을 못하겠네!

혹시나 마도학이란걸 내 연인들이나 가족들한테 가르쳐주면 어떨까 했는데 저 할배는 본적도 없으면서 다 안다는 듯이 지껄인다.

“제 생각이라도 읽는 거에요? 뭔 말도 안 했구만.”

“허허. 네 녀석은 네 앞가림이나 하면서 살면 되는 거다. 게으름뱅이면 게으름뱅이답게 사는 게 제일이니까.”

“왜 자꾸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거에요?”

“인과율의 톱니바퀴는 네 녀석이 날뛴다 해도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법이니까. 네 녀석이 암만 과거의 비밀에 비운의 주인공 코스프레를 해봤자 개미가 바위에 박치기 하는 것 만큼이나 쓸데없는 짓이다.”

아, 뭔소리야 진짜. 게다가 막 이상한 단어를 쓰는데 따질 기운도 없다.

“…내가 지구를 뒤집어엎고 막 학살하고 다녀도 영향이 없어요?”

“네가 그런 짓을 한다면 그것 역시 인과율의 흐름에 포함되어있는 게지.”

크아~ 몰라! 안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한데 이 할배랑 이야기를 하다 보니 더 머릿속이 헝클어지는 기분이다.

내가 어떻게 여길 찾아올 줄 알았냐고, 내가 어떻게 이형종과 인간의 혼혈인 줄 알았냐고, 그럼 내 어머니는 어떻게 됐냐고, 이 세계와 내가 사는 세계는 어떻게 연결된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머리도 무겁고 귀찮고 짜증 나서 더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프랑의 품에 안겨 잘 생각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뮈르딘 할배가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넌 착하다.”

“…뭐 어쩌라구요.”

“악마가 아니야.”

“…흥.”

진짜 흥이다.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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