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60화 (260/517)

00260  여긴 어디?  =========================================================================

섬멸전의 막바지가 이루어지는 숲을 보다가 문득 든 생각에 프랑을 돌아보며 물었다.

“뭔가 이상한데. 아서 왕은 고대 브리튼의 왕이라며. 고대 브리튼은 기원전 이야기 아냐? 근데 바이킹은 내가 알기로 거의 8세기? 9세기? 그쯤에 영국에 상륙해서 침략하기 시작했다고 배웠는데.”

“네? 어…. 네에. 바이킹의 영국 침공은 8세기에서 10세기경에 이루어지고 그 후에 여러 인종이 북적이다가 하나가 되어면서 영국이 만들어져가는 시기에요. 서하 말을 듣고 보니 이상하네요.”

“존 휠레라는 기사는 아서 왕이 원탁의 기사를 이끌고 출정했다고 이야기했지. 그럼 아서 왕의 존재는 확실하다는 이야기고 바이킹도 직접 봤으니 이 시대의 역사는 프랑 말대로 8세기에서 10세기 사이일텐데….”

설마 아서 왕 전설이 단순히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존했던 이야기야?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내려오면서 살펴봤지만, 이형종은 하나도 못 봤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이 살고 능력자가 존재하고 우리가 아는 국가와 역사에 기록된 사건이 일어나는 걸 보면 이 세계가 위상 세계라는 생각은 정말 안 드는데.

…그럼 우리 현실은 어떤 곳이지…. 가만히 프랑을 바라보니 프랑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날 바라본다.

정말 모르겠다. 일단 프랑 말대로 카멜롯이랑 아서 왕부터 찾아봐야지.

“…남쪽 해안선에 바이킹이 있는 곳을 찾아서 기다리다 보면 아서 왕이 찾아오려나?”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까 만난 그 기사의 말로는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가 출정했다고 했고 론디니움의 군대도 지원에 나섰다고 했으니까 적지 않은 수의 군대가 모여있을 거에요. 아서 왕이 나섰으니 어쩌면 옆에 멀린도 같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복잡한 생각은 치워버렸는지 아서 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눈을 반짝이는 프랑 98세.

그제서야 공주님 같은 드레스에서 평범한 원피스에 데님 반바지를 입은 차림으로 바꾼 프랑은 눈을 반짝이며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

아, 일본에는 아서 왕을 여자로 만들어서 야게임 주인공으로 만든 게 있었는데.

에이. 진짜 나도 씹덕이구만. 근래에 들어서 게임이나 애니에서 손을 떼긴 했지만 아서 왕에 대해 생각하니까 그 야겜부터 생각나는 걸 보니 아직 물이 덜 빠진 거 같다.

“뭔가 좋은 방법이라도 생각나셨나요?!”

“어? 아니, 아니야 잠시 딴생각했어. 마침 이 세계에 들어오자마자 영상 기록을 시작했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의심 가는 부분은 모두 뒤져보자. 일단 윈체스터에 가기 전에 가까운 스톤헨지를 먼저 들러보는 게 좋겠어. 우리가 들어왔던 곳도 스톤헨지였으니까!”

“네!”

아서 왕이랑 원탁의 기사를 그렇게나 좋아하고 있었나? 기쁘고 설렌다는 표정의 프랑과 함께 서쪽에 있을 스톤헨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프랑은 원탁의 기사를 좋아해?”

스톤헨지를 향해 뛰어가는 도중에 프랑을 보며 물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인걸요. 직접 볼 수 있다는 게 기대 돼요. 거기에 아서 왕과 엑스칼리버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막 설레여요!”

저렇게 기대하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니까 진짜 질투가 날 거 같다. 조금 기분이 그래서 시선을 앞으로 돌렸더니 프랑은 내 얼굴을 보고 배시시 웃으면서 내 목을 껴안아 왔다.

고양이가 스킨십을 하는거처럼 내 뺨에 자신의 뺨을 비비며 달래듯이 입을 연다.

“후후. 아무리 아서 왕이 멋지고 원탁의 기사들이 굉장해도 저한텐 서하뿐이에요. 서하도 단군 신화의 주역들을 볼 수 있다면 저처럼 신기하고 들뜬 기분이 드실 거에요.”

“안 들어. 그리고 아서 왕이 여자일 수도 있잖아.”

“…네?”

아차. 심통이 나버려서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버렸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하는 표정을 지은 프랑을 보니까 기왕 입에 내뱉은 거, 확 말해버려야겠다.

“그도 그럴게. 아서 왕이 꼭 남자라는 법은 없잖아?”

“하, 하지만 이야기책에서는 전부 남자라고 묘사를….”

당황한 프랑은 더듬거리면서 말을 꺼내지만 확 말 허리를 자르면서 입을 열었다.

“남장한 여자일 수도 있지. 그 이야기를 지어낸 사람이 멋대로 성별을 바꿨을 수도 있고. 일본의 어떤 사람들은 아서 왕이 여자라고 믿기도 하는데? 이야기에서 남자라고 나온다고 남자라고 믿으면 일본에서 말하는 이야기에 아서 왕은 여자니까 그럼 아서 왕도 여자게?”

“…….”

음. 충격이 너무 컸나. 프랑은 엄마한테서 "넌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애야!" 라는 말을 들은 아이 같은 얼굴이 돼버렸다.

무의식적으로 날 쫓아 날아오는 프랑을 보니 넋이 빠진 얼굴이다.

“음. 아무튼, 날 포함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딱히 단군왕검 신화 같은 거에 프랑 같은 반응을 보여주진 않을 거라 생각해. 영국 사람들은 아서 왕을 굉장히 좋아하나 봐?”

핫?! 하고 정신을 차린 프랑은 날 향해 눈을 깜빡이다가 더듬더듬 말을 이어간다.

“조, 좋은지 싫은지 중립인지 고르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좋다고 대답할…거에요. 아서 왕 전설은 여러 가지 이야기와 만화, 소설로 만들어져서 퍼진 대중적인 이야기니까요. 이를테면 영국에서는 중국에서의 삼국지 같은 인지도가 있는 게 아서왕 전설이거든요.”

하긴, 나도 영국 역사에 대해서는 바이킹이랑 치고받고 싸우던 나라였고 대항해시대 게임을 하면서 영국 해군은 한때 세계 최강이라고 불렸다는 정도의 지식밖에 모르지만, 아서왕, 엑스칼리버, 원탁의 기사는 아니까.

그나저나 영국의 북쪽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빠져나와서 런던까지, 론디니움까지 내려오는데 2시간을 쓰고 거기서 전쟁을 구경하느라 또 2시간 정도 썼더니 점점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발아래 깔린 붉은 양탄자 같은 구름바다를 내려보다가 구름을 뚫고 아래로 뛰어내렸더니 사위가 상당히 어두워져 있었다.

“쉴 곳을 찾아봐야겠네. 구름 위에서 이동하느라 주변이 어두워지는 줄도 몰랐어.”

“어디서 쉬실 생각이세요?”

“난 스톤헨지 주변까지 가서 쉴 장소를 찾았으면 하는데, 프랑은 어떻게 생각해?”

해가 지는 서쪽 하늘을 바라본 프랑은 다시 날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요.”

“응. 근데 이상하다…. 런던에서 스톤헨지를 갈 땐 전부 평원, 평지였는데 론디니움에서 스톤헨지로 가는 길은 구릉지에 숲이 잔뜩 있어.”

확실히 런던과 스톤헨지 사이에는 산 이랄 만한 곳은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굴곡이 꽤 보인다. 프랑도 그제야 발아래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정말…. 영국 같으면서도 영국 같지가 않은 세상이에요.”

“그러니까 아서 왕에 원탁의 기사들도 있는 거겠지?”

“아하하.”

응? 프랑은 내가 원탁의 기사와 아서왕을 보고 싶어 하는걸 꼬집는 거라 생각하는지 배시시 웃으면서 내 등에 매달려 가슴을 슬금슬금 비비면서 애교를 부려온다.

…오해하는 거 같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말하지 말자!

나도 손을 뒤로 돌려 프랑의 엉덩이 사이를 음흉하게 만지작거리니 "꺅~" 하면서 팔을 돌려 내 목을 꼭 껴안아 왔다. 등에 닿는 포동포동한 가슴과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말랑말랑한 감촉이 참….

으흐흐.

그렇게 열심히 달려서 스톤헨지라고 표시되는 곳에 도착했는데…. 좀 당황스럽다.

“여기 맞죠?”

“응. 맞아.”

프랑도 당황스러운지 연신 주변을 돌아보고 있고 나도 옆에서 함께 주변을 살펴보는데 스톤헨지는 보이지 않고 온통 숲 숲 숲 숲. 숲뿐이다.

“…스톤헨지가 없는 세상인가?”

완전히 해가 저문 데다 구름이 잔뜩 껴서 달빛도 비추지 않아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이 발아래 펼쳐져 있다.

하지만 마나 비전 덕분에 회색 명암의 세계긴 하지만 알아보는 데 무리가 없고 프랑도 시야 분석을 쓰는지 여기저기 살펴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스톤헨지는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려가서 살펴보자.”

내 머릿속에 기억된 지도와 공간 지각으로 지형을 비교하고 분석해본 결과 지금 있는 곳이 현실에서 스톤헨지가 있는 곳이란 점은 100% 확실하다.

공간지각이 숲에 닿지 않을 만큼 높이 떠 있어서 그런가? 이렇게 나무가 우거진 숲이니까 나무에 스톤헨지가 가려져 있을 수 있겠지.

등에 프랑을 업고 지상으로 내려가니 숲이 점점 공간 지각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어?”

“뭔가 공간 지각으로 느껴지는 게 있으신가요?”

두 손을 들어서 눈을 비벼보지만, 여전히 숲만 보인다. 하지만….

“공간 지각에는 스톤헨지가 감지되는데, 눈에는 숲 밖에 안 보여.”

“네?”

“우와. 이게 말로만 듣던 환상 마법인가?! 마법으로 스톤헨지를 가려놓은 거야?”

“?!”

공간지각으로 감지되는 스톤헨지에 500m까지 내려가니 그제서야 프랑도 몸을 경직시키면서 내 목을 꼭 껴안는다.

“시야 분석으로는 아무것도 안 보였었어요! 진짜에요!”

“알아알아. 프랑이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 아무래도 시야 분석은 직접적으로 시야에 간섭하는 능력이라 환상으로 가려진 곳은 못 보나 보다.”

“아….”

잔뜩 당황한 프랑은 그제서야 내 목을 힘껏 껴안고 있던 팔에 힘을 풀면서 내 어깨에 턱을 올린다.

“아, 그러고 보니 스톤헨지는 멀린이 만든 구조물이라는 전설도 있었지?”

“앗, 그 이야기는 저도 들은 적이 있어요…. 현실에서 스톤헨지는 멀린이 만든 마법적인 결계라는 이야기도 있었으니까요.”

“그래. 스톤헨지도 기원전 선사시대에 만들어졌고 아서 왕도 고대 브리튼, 선사 시대 이야기니까. 고고학적으로도 시대상이 맞긴 하네.”

“어디까지 이야기에요. 이, 야, 기.”

그나저나 멀린은 대마법사고 아서 왕을 도와준 거랑 호숫가의 요정과 썸씽을 일으켰다는 거 밖에 모르는데 멀린에 대해서 좀 더 알아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프랑은 손가락을 뻗어 내 뺨을 좌우로 살짝 꼬집길래 난 그녀의 볼기짝을 잡아 좌우로 확 벌려버리면서 "히잉?!" 공간 지각 안으로 들어온 스톤헨지를 살펴봤다.

스톤헨지는 현실에 있는 것과는 다르게 멀쩡한 직사각형의 바위 31개가 동그랗게 둘러싸여 있었고 그 위에 비슷한 크기의 직사각형 바위 31개가 원을 만들듯이 올려져 있다.

그 안에는 ㄷ자 형태로 만든 돌기둥들이 5개가 ㄷ자 형태로 나눠져 서 있었고 삼각형의 뾰족한 바위 여러 개가 진형을 이루며 촘촘히 박혀있는 모습이다.

“아, 스톤헨지의 복원도를 본 적이 있는데 딱 그런 모습이…에요. 아웅. 그, 그만 만지세요오.”

“이게 스톤헨지의 원래 모습이라고?”

잠시 머릿속에 현실의 스톤헨지 모습과 지금 공간 지각 안에 들어와 있는 스톤헨지를 비교해보니 정말이다. 세워져 있는 돌기둥의 형태와 위치가 일치하고 있어.

프랑이 내 뺨을 콕콕 찌를 때마다 난 프랑의 꽃잎을 쿡쿡 찔러대니 움찔움찔거리던 프랑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프랑은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어깨에 다시 턱을 올리고 발아래에 펼쳐진 숲의 환영과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스톤헨지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정말 이곳에 멀린이 있을, 아윽! 저, 정마알~!”

팬티를 젖히고 살짝 젖기 시작하는 골짜기에 손가락을 찔러넣었더니 프랑은 바로 허리를 세우고선 손날로 내 머리를 콩콩 때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내 머리를 두드리는 손에 힘이 강해지는 걸 보니까 장난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스톤헨지 옆에 오두막이 있긴 한데 사람은 안 보여. 집주인은 딴 데 간 건가? 함부로 환영을 뚫고 막 들어가도 괜찮을까 몰라.”

일단 0.1 TP의 마나 탄을 환영이 있는 외곽에 슬쩍 던져봤다.

투두두둑.

마나 탄은 그대로 환영을 통과하면서 공간을 일그러트리며 나무 하나를 가볍게 지워버렸는데도 환영은 건재했다.

공간 지각으로 멀쩡한 모습의 스톤헨지와 통나무 오두막집을 쓱 훑어봤지만…. 공기 중에 포함되어있는 위상력이 스톤헨지 중심부를 한가로이 돌고 있을 뿐 오두막집에는 특별한 무언가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뭘로 환영을 만들어내는 거야? 저 스톤헨지로?

“한번 내려가 보자.”

“네에.”

몸에서 푸른 빛 후광이 비칠 정도로 마나 시브를 집중하고 천천히 환영 속으로 들어가…려는데 마나 시브가 아우라처럼 퍼져 나오더니 나는 물론이고 프랑까지 뒤덮기 시작한다.

“오. 신기한데. 이러면 프랑도 마나 시브의 효과를 받게 되나?”

“와아. 뭔가 두근거리고 부드러운 느낌이에요. …에헤헤.”

갑자기 배시시 웃는 프랑을 돌아보니 조금 머뭇거리다가 두 다리를 동동 흔들면서 입을 연다.

“꼭 서하의 품에 안긴 기분이에요.”

“…어흠.”

살짝 귀가 뜨거워지는 기분을 외면하면서 다시 천천히 환영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뭔가…. 물로 된 막을 통과하는 느낌이 들면서 드디어 육안으로도 스톤헨지와 통나무집이 보인다.

“프랑, 몸 상태가 안 좋아졌다거나 그런 건 없지?”

“네. 멀쩡해요. 서하서하. 저기, 저기 오두막으로 한번 가봐요!”

약간 흥분한 표정의 프랑이 빨개진 내 귀를 만지작거리면서 손가락을 뻗어 오두막을 손가락질한다. 공간 지각으로 이미 다 살펴봤는데 뭘 또 보겠다고….

딱히 위험 요소 같은 건 안보이니까 상관없나? 어깨를 으쓱하면서 프랑을 등에 업은 채로 통나무 집을 살펴보는데, 이거…. 나무가 다 살아있어?

“평범하게 통나무를 잘라서 가로로 쌓은 건데 어떻게 통나무 집이 살아있지?”

“아? 저, 정말이네요…. 나무 수액이 흐르고 있어요. 서하! 들어가 봐요!”

꼬물거리다가 내 등에서 내려온 프랑은 내 손을 잡고 끌어당기기 시작한다.

“잠깐잠깐.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주인 있는 집이잖아. 예의 없이 막 들어가면 도둑이랑 뭐가 달라.”

“앗…. 그, 그러네요! 아하하!”

“멀린이 사는 집일지도 몰라서 흥분한 건 알겠지만 집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보자. 오두막 바깥에서 모닥불 피우고 쉬는 것까진 뭐라 하지 않으시겠지.”

환영을 쳤다는 거 자체가 들어오지 말라는 뜻일 거 같긴 한데…. 아 몰라. 뭐라 하면 환영이 보여서 궁금해서 들어와 봤다고 하지 뭐.

밤도 늦고 살짝 쌀쌀해서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나뭇가지를 모아오는데 프랑은 미련을 못 버리는지 힐끔힐끔 통나무 집을 계속 훔쳐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숲도 좀 신기한 게 공간 지각 범위 안에 동물들이 하나도 없네.”

“아, 그러고 보니 날아오면서도 동물들은 하나도 못 봤어요. 이 숲에 오두막의 주인 말고 다른 숲의 주인이 따로 있어서 다 내쫓은 걸까요?”

“흐음? 동물을 왜 다 내쫓아?”

“…결계를, 환영을 지키기 위해서? 영국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보면 숲의 주인이나 숲에서 사는 마법사들이 동물 같은 것들을 다 쫓아내고 결계를 쳐서 자기만의 영지로 삼은 이야기가 많아요. 그러니까 이 숲도 그럴지도 모르죠.”

“환영을 친 결계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 내쫓았다…. 그럼 결계 안에 있는 우리는 척살 대상 1호 아냐?”

“윽, 그건 그러네요.”

찜찜한 표정이 되어버린 프랑은 내가 모아온 장작을 모아 전기를 집중해 불을 피우며 입을 열었다.

“…정말 이형종과 비슷한 괴물들이 있을지 모르니까 주변을 경계하면서 조심해요.”

“어. 공간 지각에 신경 쓰고 있어.”

사실 아까 숲의 주인 어쩌구하는 이야기를 할 때부터 조금 꺼림칙해서 뭔가 나타나면 바로 알 수 있게끔 계속 공간 지각 범위를 주시하고 있었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비상식용 허리띠를 풀어서 한입 뜯어먹었, 오? 이 허리띠는 쇠고기 육포 맛이 나네? 마나 레이를 극소 범위로 뽑아내 비상식용 허리띠를 잘라서 프랑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거 먹어봐. 쇠고기 육포 맛이야. 그리고 멀린은 대체로 선한 이미지 아냐? "이 숲은 내꺼다! 다 꺼져!" 하면서 내쫓는 이미지가 잘 안 잡히는데.”

“앗, 고소한 게 고급 육포 맛이에요. 그럼 왜죠? 어째서 동물들이 하나도 없는 걸까요?”

…얼빠진 표정으로 되묻는 프랑을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니 프랑도 내 눈빛에 뻘쭘해 하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품에 답삭 안겨온다.

“서울이 통째로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엄청 큰 숲이지만 사는 동물이 몇 없어서라거나, 프랑 말대로 숲의 주인이랄 수 있는 괴물 같은 게 있어서 동물들을 다 쫓아냈을 수도 있고, 알고 봤더니 멀린이 까탈남이라서 환영에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끔 뭔가 술수를 부려놓았을 수도 있겠지.”

찌륵 찌르륵거리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밤하늘에 떠 있는 반달을 보며 중얼거렸더니 프랑도 그럴 수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이야기하다 보니 이 통나무 집 주인이 멀린이라고 확신해버렸는데, 멀린이 아니라 다른 마법사일 수도 있고 다른 마법사가 동물들을 잡아서 산제물로 바치느라 씨가 말랐을 수도 있고 가정은 여러 가지야.”

산제물이라는 말에 살짝 얼굴을 찌푸린 프랑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하지만 전설에서는 멀린이 스톤헨지에서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는 걸요? 직접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구….”

“그거, 말 그대로 전설이잖아. 어쩌면 멀린이 먼저 와서 산 제물을 바치며 사는 마법사를 때려잡고 자기 걸로 만들었을 수도 있잖아?”

“우웅.”

프랑은 내 품에 안겨서 스톤헨지와 통나무 오두막집을 번갈아 보며 고민에 빠진다.

품에서 올라오는 사과 향의 체취에 슬그머니 손을 움직여 프랑의 원피스 속으로 집어넣고 보드라운 허벅지를 쓰다듬으니 화들짝 놀라면서 내 손을 찰싹찰싹 때린다.

“지금은 안돼요!”

“왜? 아무도 없잖아아. 누가 다가오면 공간 지각으로 금방 파악할 수 있단 말야.”

아까부터 더듬어서 살짝 욕구가 쌓었는데…. 응석 부리면서 졸랐더니 프랑은 단호한 모습으로 거절했다.

“그래도 안 돼요! 서하 말대로 마법사일지도 모르잖아요! 마법사는 먼 곳도 마음대로 볼 수 있다고도 하는데 남들에게 그….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칫. 조르면 허락해주는 안돼가 아니라 절대 안 된다는 뜻의 안돼다.

하는 수 없이 프랑의 허리를 끌어안고 나뭇가지를 모닥불 속에 집어넣으면서 구시렁거렸더니 프랑은 말 안 듣는 어린애를 보는 표정으로 한숨을 폭 쉬면서 자기 허리를 감고 있는 내 손을 쓰다듬었다.

============================ 작품 후기 ============================

제 이야기를 봐주시고 추천 선작 후원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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