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59 여긴 어디? =========================================================================
“아아…!”
7개의 바윗덩이 중 4개가 성벽에 명중한다. 사람만 한 바위에 맞아 살짝 출렁이는 성벽을 본 프랑이 애달픈 신음을 흘린다.
아무래도 프랑은 런던 측에 감정을 이입해서 보고 있는 거 같지? 내 품에 안겨있던 프랑의 애타는 목소리를 들으며 북쪽 전투의 전황을 계속해서 살펴본다.
돌덩이가 성벽을 맞출 때마다 바이킹 진형 쪽에서는 연신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성벽 위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온다. 동시에 프랑의 입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가는 손가락으로 내 옷자락을 움켜쥔 것도 모르는지 내 옷자락을 힘껏 움켜쥔 프랑은 투석기에서 날아온 돌덩어리가 성벽을 맞출 때마다 옷을 잡아당기며 안타까워한다.
거대한 돌이 성벽을 맞출 때마다 파편과 흙먼지와 함께 성벽이 부서지고 있었고 재수 없는 몇몇 병사는 성벽이 흔들릴 때 성벽 아래로 추락해서 피떡이 되어버렸다.
저거 몇 대만 더 맞으면 저 부분이 무너질 거 같다.
그걸 성벽을 공격하는 자들도 눈치챘는지 그 부분을 향해 투석기가 연신 돌덩이를 날린다.
저대로면…. 어어?
“아앗!”
런던을 공격해온 바이킹들의 왼쪽으로 수백 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는 울창한 숲이 있었는데 그때 그곳에서 어림잡아 300기 이상의 기병이 일제히 투석기를 향해 돌격하기 시작한다.
오오. 옆구리를 치는 건가. 서쪽 성벽을 통해 빠져나와서 북쪽으로 돌아간 거 같다. 지휘관이 누군지 몰라도 과감한걸.
사슬 갑옷 위에 장미 문양이 새겨진 하얀 코트를 입은 기병들이 일제히 기마 돌진하는 모습은 팔뚝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한 모습이다.
성벽이 무너지길 기다리던 바이킹 전사들은 300기의 기병 돌진에 말 탄 놈 안 탄 놈 구분할 거 없이 일제히 돌진해오는 기병들을 향해 달려가는데 그것과 동시에 런던의 북쪽 성문이 열리며 그곳에서도 200기가량의 기병이 돌진해간다!
멋진데.
북쪽 성문에서 튀어나간 기병의 돌진에 바이킹들은 제멋대로 두 패로 나누어 각각의 기병들에게 달려가는데 내가 봐도 대응이 엉망진창이다.
기병 돌진에는 거리가 중요하다잖아. 그 거리가 충분히 만족된 상황인데 저렇게 무모하게 맨몸으로 달려들면…. 어이구.
“…!!”
내 품에 안겨서 흥분해서 손을 붕붕 휘두르는 프랑을 한층 더 꼬옥 껴안아주면서 기병의 기마 돌진에 갈려 나가는 바이킹 군대를 유심히 바라봤다.
사지가 토막 나고 랜스에 몸뚱이가 꿰뚤려 절명하는 바이킹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서쪽 숲에서 뛰쳐나온 기병대의 일부가 투석기를 향해 돌진한다.
그러더니 투석기 근처에 있던 바이킹들을 몰아치며 투석기에 탄성과 장력을 이어주는 끈을 모조리 끊어버린다.
그렇게 바이킹이 끌고 온 일곱 대의 투석기는 기병의 활약에 죄다 무용지물이 되었고 십자 형태로 기병 돌진을 허용한 바이킹 군대는 사분오열하기 시작한다.
바이킹도 그냥 당하지는 않았는지 말 탄 수백 기의 바이킹이 마주 돌진해가며 몇몇 기병을 쓰러트리는 데 성공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일부다. 전문적인 기병의 돌진을 일반 기마 병사와 보병이 쓰러트린다는 거 자체가 무리지.
전투의 여신은 수비 측에 손을 들어 올려주는지 그 뒤에 성벽에서 나온 보병 1,000명이 바이킹들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함성과 함께 가죽 갑옷과 검과 방패, 창을 들고 아무 장식도 없는 새하얀 천 옷을 그 위에 걸친 보병들의 전군 돌진은 정말 박력이 넘친다.
“…! …!!”
긴 백금 발을 찰랑거리면서 꼭 쥔 주먹을 붕붕 휘두르며 무척이나 흥분한 프랑의 머리를 살살 쓸어넘겨 줬다.
한번 기병 돌진을 허용한 바이킹의 대열은 엉망진창이었는 데다 그 숫자도 많이 줄어있는 상황에 1천의 보병과 충돌한 바이킹 집단은 점점 뒤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전세가 기울었다는 걸 느꼈는지 대열의 뒤쪽에 있는 바이킹들은 일제히 북쪽의 숲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하니 군대가 무너지는 건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패주하는 바이킹 집단의 뒤를 기병과 보병이 쫓기 시작했다. 이제 추격 섬멸로 이어질 테니 북쪽 성벽은 수비 측의 승리가 결정됐군.
그리고 살아남은 기병 중 1/3가량은 도망가는 바이킹의 추격에 가담하고 남은 2/3의 기병은 한데 뭉쳐 당연하다는 듯이 동쪽 성문을 공격 중인 바이킹 군대를 측면에서 다시 한 번 덮쳤다.
속도를 확보한 기병의 돌격은 날카로운 창이 되어 군대라기보단 약탈자 같은 동쪽의 바이킹 집단을 양분해버린다.
동쪽 성문을 공략하던 바이킹들은 지휘 체계가 엉성했는지 진형 같은 것도 없이 난잡한 상태였는데 수백 기의 기병이 측면에서 돌파하기 시작하니 삽시간에 혼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동쪽 성벽 위에서는 기병이 등장한 직후부터 화살 공격을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자들에게 방향을 돌리는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성벽 아래의 바이킹들에게는 기병을 상대할 창병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한다.
단 한 번의 기병 돌진에 기세가 팍 수그러진 바이킹들은 바로 옆의 템스 강에 세워진 자신들의 배를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런던을 공격한 바이킹은 북쪽과 동쪽을 다 합치면 3,500 정도, 수비 측은 1,500명을 조금 못 넘기는 거 같은데 크게 손상된 북쪽 성벽과 조금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동쪽 성벽의 피해를 제외하면 잘 막아낸 듯하다.
“다행히 런던이 방어에 성공했네. 아까 프랑이 저들을 바이킹이라고 했는데 그럼 지금 영국은 브리튼이라고 불리는 거야?”
“바이킹과 싸울 때라면 브리튼에서 잉글랜드 왕국으로 넘어가는 시기에요. 이때의 런던은 론디니움이라 불리는 요새라고 배웠어요.”
“단순 요새라고 보기에는 론디니움도 꽤 큰데? 대충 봐도 십수만 명이 살고 있는 거 같아. 그럼 여기가 수도가 아니야?”
“아마도 수도는 북쪽의 윈체스터에 있을 거 같은데…. 확신은 못 하겠어요.”
우물쭈물하면서 입을 여는 모습을 보니 프랑도 역사를 잘 모르나 보다. 뭐, 나도 우리나라 역사 시간에 능력자 영웅기같은것만 봐서 잘 모르니까.
중세 시대의 인구수를 생각해보면 요새 한 곳에 십수만 명이 살고 있다는 건 절대 작은 수는 아니다. 거기다 왕이 있는 수도도 아닌데 저만한 도시와 요새가 형성되어있는 걸 보면 지리상으로 꽤 중요한 곳이라는 말인데.
“그러고 보면 절반쯤 내려왔을 때 무지 큰 성벽이랑 성하고 도시가 형성되어있었던 곳이 있었는데 거기가 수도였겠구나.”
다시 올라가야 하나? 론디니움의 병사들이 바이킹 시체에서 전리품을 회수하는 모습을 하늘 위에서 바라보다 보니 신체 강화 능력자로 보인다는 기병…. 기사를 데려다가 몇 가지 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 신체 강화로 보였다는 기사 한 명 데려다가 정보를 얻어보자.”
“으음. 기사라면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하고 거만할 텐데 순순히 대답해줄까요?”
“마나 비전에 마나 보이스를 쓰면 호감도에 위압감을 줄 테니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려나?”
잠시 프릴 원피스를 입고 내 옆에 둥둥 떠 있는 공주님처럼 예쁜 프랑을 살펴봤다.
“…프랑. 이렇게 해보자.”
프랑의 귀에 대고 속닥속닥하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 그게 통할까요?”
“내 마나 비전에 걸리면 호감도가 올라가. 거기에 마나 보이스는 위압감도 주잖아? 거기에 그런 식으로 분위기를 잡고 물어보면 될 거 같아. 아니, 기사가 남자인 이상 틀림없이 통한다!”
확신에 찬 내 모습에 프랑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내 뒤를 따랐다.
북쪽에 펼쳐진 수림 근처로 달려가서 바이킹들을 쫓는 기병을 공간 지각으로 훑어봤다. 숲에서 말을 타고 추격하다니, 어지간히 멍청하지 않고서야….
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나무와 나무의 간격이 넓어 충분히 추격할 수 있었다. 이래서 기병들이 뒤쫓은 거군.
백여 기 정도 되는 기병을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그중 10명가량이 신체 강화 I 클래스고 1명은 H 클래스, 1명은 G클래스다.
일반 보병 중에서는 신체 강화 능력자는 거의 안 보였는데 기병에만 이렇게 많이 몰려있다니. 몸이 건강하고 힘이 센 사람들만 뽑아 기병으로 만든 건가.
목표는 도주하는 바이킹을 쫓다가 말이 지쳤는지 한곳에 멈춰 선 기병이다.
I 클래스, 위상력 12의 신체 강화 능력자인 기사는 철판을 동그랗게 두드려 만든듯한 플레이트 헬름을 벗어 옆구리에 끼더니 땀에 젖은 금발을 쓸어넘기며 한숨을 쉰다.
…잘생긴 놈들은 다 죽어야 해. 무슨 전장에서 화보 찍냐?!
“준비됐어?”
“네에…. 정말 이렇게 해야 해요?”
부끄럽다는 듯이 울상을 지으면서 몸을 달싹거리는 프랑은 붉어진 얼굴로 연신 부채를 부쳐 얼굴로 바람을 보낸다.
한숨을 폭 쉬고 손을 모은 채 얌전히 서 있는 프랑은 흰색의 풍성한 프릴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가슴 부분과 양팔에 푸른색 리본이 강조된 모습이다.
가늘고 긴 팔에는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실크 장갑을 끼고 목에는 내가 선물해준 알이 굵은 토파즈의 탄생석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거기에 뭔가 조금 모자란 느낌이 들어서 리본과 같은 색의 망토를 둘러보라고 했더니.
“좋아! 무진장 예쁘고 잘 어울려. 부끄러워하지 말고 입 다물고 조신하게 서 있으면 프랑이 마실 나온 공주님이라고 해도 아무도 의심 못할 거야.”
육체의 절반은 영체라서 저렇게 마음대로 옷 모양을 바꿀 수 있는 게 이렇게 도움이 될줄은 몰랐네.
“…….”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는 프랑을 보고 살짝 웃어준 다음 나무그늘 아래 앉아 쉬는 기사를 확인했다.
내 등 뒤에 떠 있는 프랑에게 말없이 손짓해서 수 미터 떨어진 커다란 나무 뒤에 가 있으라고 한 다음, 기사의 앞에 뛰어내렸더니 기사는 흠칫 놀라며 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구냐!”
억양이 조금 세긴 한데 알아듣는데 그다지 무리가 없는 영어다.
갑자기 나무 위에서 뛰어내린 날 발견한 기사는 흰색 코트를 펄럭이며 벌떡 일어나 허리춤에서 롱 소드를 뽑아 내 쪽을 향한다.
“[고귀한 분께서 널 만나고자 하신다. 얌전히 따라와라.]”
내 눈을 본 금발의 기사는 흠칫하더니 한 발짝 물러섰다.
내 키는 지금 177cm. 근육도 잘 잡혀있어서 저 기사보다 덩치가 1.3배는 더 크다. 거기다 마나 보이스가 깃든 내 목소리에 기사는 눈에 띄게 위축된 모습으로 입을 연다.
“누구…말이신가. 이곳은 전장이다! 고귀한 신분께서 오실만한 장소가 아니야! 그보다 그대는 무얼하는 자이기에 이리도 무례하고 광대같은 차림인가!”
광대라니!! 그냥 평범한 셔츠에 면바지구만!
기사는 내 옷차림에 트집을 잡더니 다시 한 번 경계심이 가득 섞인 표정을 짓길래 나도 목소리에 더욱 마나 보이스를 실어 소리쳤다.
“[너 같은 자가 알 도리가 없는 고귀한 분이시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얌전히 따라와라!]”
말과 함께 살기를 살짝 내뿜었더니 기사의 손에 들린 검극이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까불기만 해봐라. 마나 모드 - 가속을 켜서 잽싸게 무장 해제시켜버릴테다.
돌아서서 등을 보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니 저 앞에 나무 뒤에 숨어있던 프랑이 살짝 움직여서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뭐라 말하려던 기사는 저 앞에 나타난 프랑을 보더니 눈이 살짝 풀리면서 말을 잇지 못한다. 쯔쯔, 이런놈이 기사라고.
“[건방지군. 네놈이 검을 겨누는 분이 누구신지 알고 있느냐!]”
“?!”
하지만 여전히 검을 겨눈 자세라 버럭 하고 호통을 쳤더니 기사는 화들짝 놀라면서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니 황급히 프랑에게서 스무걸음 정도 떨어진 곳까지 달려가 한쪽 무릎을 꿇는다.
“존귀한 분께 검을 겨눈 결례를 용서하시길!”
…이 죽일 놈의 외모 만능 주의 같으니. 프랑의 외모가 좀 사기긴 하지만 이렇게 의심도 없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일줄은 몰랐는데.
검을 안 집어넣었으면 잡아다 패대기치려고 했는데 좀 아쉽군.
“[경의 이름을 전하께 고하라.]”
어느새 깃털 장식 부채를 펴서 붉어진 얼굴을 살짝 가린 프랑 대신 내가 한발 나서며 무릎을 꿇은 기사에게 다소 고압적으로 말했다.
“존 휠레, 화이트 로즈 기사단의 휠레입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크…. 의심할 줄 모르는 순진한 기사구만. 아니, 공주라는 말에 의심을 하지 못할 만큼 예쁘고 우아한 프랑 때문인가?
“[에반스 전하께서는 지금 이 소란이 어찌 된 이유인지 궁금해하신다. 알고 있는 바를 상세히 아뢰도록 하라.]”
“예! 이 자들은….”
이어진 존 휠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역시나 바이킹 족이 론디니움의 북쪽 지방을 점령해서 침공해왔다고 했다.
현실의 노퍽과 케임브리지 지방의 절반을 바이킹들에게 뺏겼다고 하면서 그 이후에 1년에 서너 차례 간접 충돌이 벌어졌지만, 이번처럼 대규모로 침공해온 적은 근래에 들어 처음이라고 했다.
존 휠레의 이야기를 다 듣고 프랑을 돌아보니 프랑도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현실의 과거와 묘하게 다른 점이 있다.
그리고 십수만에 달하는 인구수에 비해 1500이라는 적은 수의 군대에 의구심이 생겨서 물어봤다.
“[고작 1500에 달하는 군대라니, 에반스 전하께서는 왕궁에 계신 폐하께 어떠한 원군도 받지 못했느냐 여쭈어보신다.]”
“론디니움의 본대는 남쪽에 상륙 중이라는 바이킹의 대군을 토벌하기 위해 출진한 상태이옵니다. 현재 론디니움의 상주 병력은 예비대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군. 론디니움이 이렇게 공격을 받는데 병력을 비운다고?]”
“저는 예비대에 속한 일개 기사일 뿐이라 잘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남쪽 윈체스터의 해안에 야만스러운 바이킹의 본대가 상륙하기 시작하였으며 영광스러운 아서 팬드래건 대왕께서 직접 원탁의 기사들을 이끌고 출정하셨기에 론디니움에서도 병력을 파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뭐? 아서 팬드래건? 아서왕이라고? 원탁의 기사?
놀래서 프랑을 돌아보니 프랑은 나보다 더 놀랐는지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분께서 계신 왕궁은 어디에 있지?]”
“…? 전하께서 어찌 그것을 여쭈어보시는…?”
아차. 놀래서 나도 모르게 그냥 물었네....
어떻게 그걸 모르냐는 표정을 지은 존 휠레를 마나 모드 - 가속을 켜서 뒤로 돌아가 목을 내려쳐 기절시켰다. 한번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 더는 솔직한 대답을 얻기 힘들 테니까 그냥 기절시켜버려야지.
얼굴을 땅에 처박고 꼬꾸라진 존 휠레를 잠시 보다가 아직도 놀라서 굳어있는 프랑을 돌아보며 물었다.
“음. 아서왕이랑 원탁의 기사래. 그거, 그냥 이야기 아니었어?”
“아? 아, 아아….”
퓨즈가 나간 거 같은 전등처럼 얼굴이 깜빡거리는 프랑은 아무래도 정신줄을 못 잡고 있는 거 같다.
일단 기절한 존 휠레를 잡아서 나무 둥치에 기대어놨다. 그러길래 왜 의심을 보이고 그래.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이야기를 했으면 기절도 안 했을 텐데.
아직 정신을 못 차리는 프랑에게 다가가 프랑의 허리를 껴안고 공간의 벽을 치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나풀거리는 드레스 자락을 보다가 아래를 보니 기절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존 휠레는 아주 낮지만, 신체 강화 능력자답게 금방 "헉."하고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휙휙 둘러본다.
고통이 올라오는지 끙하고 뒷목을 잡았다가 얼굴에 묻은 흙을 털어낸 존 휠레는 좌우를 살펴보는데 안색이 점점 창백해져 간다.
그러더니 유령이라도 본 사람처럼 말에 올라타고 론디니움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현실의 과거 영국치고는 뭔가 이상하지?”
존 휠레가 꽁지 빠져라 도망가는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보다가 풍성한 드레스 차림의 프랑을 돌아보며 물었다. 근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거 같다.
프랑도 기사인데다 기사도를 배워서 그런가? 아서 왕에 원탁의 기사라는 이야기를 듣더니 정신 놓은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나 말고 다른 놈을 생각하면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다니, 살짝 부아가 치밀어서 혀끝에 TP를 잔뜩 응축해서 프랑의 입술을 덮쳐버렸다.
“흐븟?! 흐…우웅!”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TP에 내 팔을 톡톡 치던 프랑은 서서히 움직임이 멈춰간다.
눈을 감고 발개진 얼굴로 색색 숨을 쉬면서 혀끝을 통해 넘겨주는 TP를 꼴깍꼴깍 받아 마신 프랑은 조금씩 흥분이 올라오는지 다리 사이의 꽃잎에서 애액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반쯤 녹아내린 표정을 확인하고 그제야 입술을 뗐더니 프랑이 잔뜩 젖은 눈동자로 입을 살짝 벌린 채 멍하니 날 올려다본다.
“이제 정신이 들어?”
“아, 아우….”
귀까지 붉어진 프랑은 실크 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내게서 살짝 떨어졌다.
“그러길래 남편을 옆에 두고 딴 남자 생각으로 정신 놓는 거 아냐.”
“넷?! 아, 그런 거 아녜요!”
“진짜?”
아서 왕이랑 원탁의 기사를 생각하는 거 아니냐는 듯이 삐딱하게 째려보니 프랑은 절대 아니라는 거처럼 고개를 붕붕 젓고서는 내 품에 답삭 안겨오면서 코맹맹이 소리로 애교를 부린다.
“아이. 전설 속의 아서 왕이라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을 뿐인걸요? 저한테는 서하 뿐이에요오!”
한동안 프랑의 애교를 일부러 삐진 모습을 보여주면서 즐기는데 슬슬 프랑이 울상을 짓기 시작하니 그만해야겠다.
“알았어 믿어줄게. 그나저나 아서 왕이랑 원탁의 기사가 있다면 카멜롯도 있다는 말일 텐데 존 휠레가 의심을 하는 바람에 위치를 못 알아냈네.”
“음. 그럼 하늘로 좀 더 높이 올라가서 커다란 도시가 형성되어있는 곳을 하나하나 찾아보면 카멜롯이 나오지 않을까요?”
“카멜롯을 찾아갈 이유가 있을까?”
딱히 카멜롯을 찾아가야 할 이유가 없는 거 같은데.
게다가 목표가 있어야 그 목표에 따라서 움직일 텐데 목표가 없으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존 휠레한테서 이야기를 들었고 조금 신기하지만…. 그 이야기에서 딱히 정할 목표도 없는데.
그때 프랑이 눈을 반짝이면서 내게 의견 하나를 건넸는데, 그 이야기에 귀가 번쩍하고 뜨인다!
“저기, 서하? 카멜롯이라면 현자라고 불린 멀린이 있을 테니 그를 찾아서 이 세계에 관해서 물어보면 어떨까요?”
“어?”
그러고 보면 멀린이 현자이자 대마법사라고 했지? 프랑 말대로 한번 찾아가서 위상 세계에 관해 물어볼까?
이 세계에도 능력자가 있으니 이야기 속에 현자라고 불리던 멀린이라면 알지도 몰라.
“그거 좋은 생각인데? 좋아. 그럼 카멜롯을 한번 찾아가 보자!”
“네!”
프랑은 내가 카멜롯을 찾자고 하니까 되게 좋아한다. 그냥 순수하게 영국의 전설이라는 아서 왕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걸 기뻐하는 거겠지?
============================ 작품 후기 ============================
언제나 제 이야기를 보러 와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