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클로저스-257화 (257/517)

00257  영국으로.  =========================================================================

객실로 돌아와서 소파에 앉으니 프랑도 눈이 즐거운 외출복에서 눈이 즐거운 평상복으로 바꾸고 내 허벅지 위에 올라타서 뺨을 어루만져준다.

“정말 미행이 있었던 거에요?”

“미행이라기보단 그냥 내가 하는 행동을 낱낱이 살펴본다는 느낌이었어.”

프랑은 미행의 미도 눈치 못 챘는지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전 미행은 눈치도 못 챘는데…. 서하는 어떻게 그 많은 사람 사이에서 미행이라는걸 아신 거에요?”

“개미들이 일렬로 이동 중일 때 그중에 한 두 녀석이 대열에서 이탈하면 눈에 확 들어오잖아? 공간 지각으로 볼 때 미행하는 인간들한테서 그런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계속 주시하고 있었더니 우릴 따라 조심조심 쫓아오더라고. 중년 부부처럼 위장한 두 연놈. 젊은 현지인 커플로 위장한 놈들이랑 친구끼리 여행 중인 거처럼 꾸민 세 놈.”

“…제 능력은 공간 지각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아까운 거 같아요.”

내 허벅지 위에 올라탄 상태로 풀이 죽은 얼굴의 프랑을 올려다보다가 손을 뻗어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움켜쥐며 말했다.

“우쭈쭈쭈. 그래쪄? 우리 프랑은 프랑만의 개성과 매력으로 나한테 넘치도록 도움이 되고있다고? 그러니까 자학하기 있기 없기?”

“푸훗. 없기!”

까르르 웃는 프랑을 끌어안고 커다란 가슴에 얼굴을 묻으면서 생각했다.

호텔 로비에 있던 인간들이 전부 G.S의 서브 매니저와 부차관보처럼 내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자국으로 데려올 생각으로 모인 거라면 집에 돌아갈 때까지 진짜 귀찮아질 거 같다.

새삼 한국에 있을 때 영은이가 얼마나 신경 써서 저런 자들을 차단해줬는지 이제야 알게 됐다.

약간 붉어진 얼굴로 내 얼굴에 연신 키스를 해오는 프랑을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려서 침실로 향했다. 돌아가면 날 위해 고생하는 영은이도 잔뜩 사랑해줘야지. 물론 화연이도.

날 독차지해서 행복하다는 프랑과 밤늦게까지 사랑을 나누니 내 아래 깔린 채 짧게 흐느껴 울면서 연신 버둥거리던 프랑은 뇌의 허용량을 초과하는 쾌락에 결국 기절해버렸다.

땀에 촉촉이 젖은 프랑을 끌어안고 그녀의 진한 살 냄새를 맡으며 가슴골에 얼굴을 묻고 있으려니 온갖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다음 날 아침, 화요일에는 프랑과 손을 잡고 스톤헨지 구경을 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런던 대학교로 가려는 아빠한테 프랑이랑 둘이서 스톤헨지에 놀러 갔다 오겠다고 말했더니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빠도 엄마랑 같이 놀고 싶었어?”

“…그래.”

프랑은 새벽같이 일어나 싸둔 도시락과 차게 해둔 보온병을 들고나와 아빠한테 건네줬다.

“아버님, 도시락이랑 차게 식힌 보리차에요. 점심때 드세요.”

“고맙구나. 가서 재밌게 놀다 오너라.”

“네!”

프랑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준 아빠는 자그만 백에 담긴 도시락과 보온병을 받아들더니 경호 팀원들과 함께 호텔을 나가셨다.

“그럼 우리도 갈까?”

눈처럼 새하얀 순백의 프릴 원피스와 작은 챙모자를 쓴 프랑이 가서 먹을 도시락을 챙겨 드는 모습에 손을 잡고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이번엔 하늘을 달려서 이동하기보단 교통수단을 하나 구해 천천히 가보기로 하고 호텔 로비에 있는 컨시어지 센터에 다가가니 치프 컨시어지가 후다닥 뛰쳐나와 맞이 준다.

“저희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단정한 단발에 호텔 제복을 입은 치프 컨시어지는(명함에서 치프라고 적혀있어서 알았다.) 숙련된 미소를 보여주며 물어왔다.

그녀에게 스톤헨지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편하냐고 물었더니 호텔 운전기사와 차량을 내어준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택시라도 구해서 가야 하나 했는데 차를 내어주면 우리야 편하지.

the savoy 로고가 박힌 1950년대에 유행했을 법한 옛날 스타일의 자동차에 올라타 스톤헨지로 향하고 있으니 이렇게 차로 이동하는 게 오랜만인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하에게는 공간의 벽이 있으시니까요. 어지간한 경주용 자동차보다 빠르시니 그렇게 느끼실 법도 하죠.”

“오, 기차도 운행하나 보다. 돌아갈 땐 기차 타고 돌아갈까?”

“좋아요!”

도로 옆에서 경적을 울리며 빠르게 지나가는 기차를 보며 중얼거리니 프랑은 어떤 탑승물이든 나랑 둘이서 놀러 다닌다는 게 기쁜지 연신 미소를 지으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기차역은 런던에서부터 스톤헨지 바로 옆까지 연결되어있습니다. 스톤헨지 옆의 역에 있는 지하철을 타신 후 셀리스버리 역에서 내리신 다음 사우스 웨스트 트레인을 이용하셔서 런던으로 돌아오실 수 있습니다.”

스톤헨지에 도착해서 운전하느라 고생했다고 100달러 지폐를 꺼내줬는데 운전을 해준 아가씨는 알고 봤더니 사보이 호텔에 고용된 운전사가 아니라 사보이 호텔의 컨시어지 중 한 명이라고 했다.

컨시어지 아가씨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허리를 숙이고 되돌아갔다.

“우와. 사방이 탁 트였는걸.”

약간 구름이 끼어있지만 덥지도 않고 포근한 날씨라 무척이나 상쾌하다. 맑은 공기에 구름 사이사이 파란 하늘도 보이고 땅도 푸르른게 풍경이 무척이나 좋았다.

스톤헨지를 돌아보니 많은 관광객이 다들 출입금지선을 따라 빙 둘러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난 멀찍이서 공간 지각으로 스톤헨지의 모습을 한번 훑어보는 걸로 관광을 끝냈는데 프랑은 내 손을 잡고 들어가지 말라고 로프 선을 쳐놓은 곳까지 다가가 가로로 세워진 높이 8m가량의 돌무더기들을 보며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와아. 스톤헨지는 정말 어떤 용도로 만들어진 걸까요?”

눈앞에 쓰러진 바윗덩어리를 보면서 신기해하는 프랑에게 설명해줬다.

“예전에 스톤헨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어. 그 프로그램은 스톤헨지가 해시계용도냐 제물을 바치기 위한 제단이냐 갑론을박을 펼치더라구. 그 프로그램에선 해시계라는 것보다 셰일 서클 주변에 파여진 구덩이에서 동물 뼈 같은 게 발견돼서 제물을 바치기 위한 용도였다는 쪽에 손을 들어주더라.”

“그런가요? 저는 제단보다는 해시계였으면 좋겠어요.”

“어째서?”

“제물 공양을 위한 제단은 어쩐지 음침한 느낌이 들잖아요.”

“음. 그건 그래.”

배시시 웃은 프랑은 내게 바짝 붙어서 휴대폰으로 나와 함께 셀카를 찍으려고 했다.

그 모습에 장난기가 들어서 그녀를 뒤에서 껴안으며 두 손으로 프랑의 큰 가슴을 받치고 음흉하게 웃으니 눈을 동그랗게 뜬 프랑은 볼에 바람을 넣으며 내 허리를 찔러댔다.

프랑은 모르는 거 같으니 블루서클 안쪽에 도살 석이라 불리는 돌이 있다는 건 알려주지 말아야지.

“아, 저기 보세요. 저 돌의 겉은 꼭 사람 얼굴 같지 않나요?”

“오, 진짠데? 프랑 얼굴을 닮은 거 같기도 하고….”

“뭐에요?”

짐짓 화난 표정을 짓다가 까르르 웃으면서 내 팔을 안고 즐거워하는 프랑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스톤헨지보다 프랑의 즐거워하는 얼굴을 구경하면서 팔짱을 끼고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가족 단위로 모인 사람들은 주차장 쪽으로 우르르 몰려가길래 뭔가 있는 건가 해서 공간 지각으로 살펴보니 벤치와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있는 게 보인다.

하지만 저기도 빈자리가 없어 바로 옆에 있는 스톤헨지가 보이는 작은 벤치에 앉아 프랑이 준비해온 도시락을 꺼냈다.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프랑과 한가로이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으니 복잡하고 신경 쓰이는 위상 세계의 일은 어찌 되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화연이와 영은이가 있었으면 더는 바랄게 없을텐데.

“화연과 영은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어? 나도 방금 그 생각했는데.”

벤치에 앉아 프랑의 손을 잡은 채 아무 생각 없이 지평선까지 펼쳐진 초지를 바라보고 있으니 저 하늘 멀리서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조금 아쉬운데.

먹구름은 생각보다 빨리 밀려와서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더니 푸른 하늘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회색 먹구름만 머리 위에 가득 차게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프랑과 함께 천천히 걸음을 옮기니 이제는 차마 좋다고 할만한 날씨가 아니게 되었다. 거기다 한여름이 맞는지 바람이 불 때마다 조금 쌀쌀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느새 백수십 명의 관광객 중에서도 절반 이상이 긴 소매 옷을 입고 있었다.

“비 올 거 같지 않아?”

“바람에 습기가 느껴지네요. 확실히 비가 올지도 모르겠어요.”

휘이이잉….

회색빛 융단이 깔린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뭔가 축축하고 습기가 가득 찬 바람이 몸을 감싸고 지나간다. 풀잎이 휘날리며 회오리처럼 말려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진짜 아쉽다.

프랑이랑 푸른 하늘 아래 지평선까지 펼쳐진 초원 위를 걸어가는 것도 해보고 싶었는데.

습기가 낀 바람이라 조금 음습한 기분이 드는 거 같아 눈이 찌푸려지는데 주변 관광객도 오한이 드는지 몸을 떠는 게 보였다.

근처에 있던 10살이 안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부르르 떨더니 옆에 서 있던 남자의 바지춤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아빠. 추워.”

“우리 제시가 추운가 보다. 차에 돌아가서 따뜻하게 하고 올까?”

“응!”

"영차" 하고 아빠의 두 손에 들어 올려진 딸은 아빠의 목을 끌어안으며 방글방글 웃는다. 부녀는 주차장으로 되돌아가고 다른 쪽에서 걸어오던 관광객으로 보이는 서양인 남자 두 명이 대화를 나누면서 지나간다.

“무슨 이런 기분 나쁜 바람이 다 있는지 모르겠군.”

“하하하. 산제물로 바쳐진 사람들의 원한이 모이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

“자네도 비 켈트계의 유언비어에 휘말리는 건가? 스톤헨지는 해시계라는 가설이 유력하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주변의 구덩이에서 발견된 뼈들은 어째서 그곳에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하지.”

그 옆으로 가족끼리 관광을 온 것인지 두 남녀가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저쪽 주차장에 비지터 센터 휴게실이 있던데 거기로 가요. 이러다 아이들 감기 걸리겠어요.”

“그럴까.”

비지터 센터라.

“우리도 비지터 센터로 가볼까?”

“네!”

나도 프랑과 함께 두 부부의 뒤를 따라 비지터 센터로 이동해서 안으로 들어가니 스톤헨지와 관련된 물건을 팔거나 자료를 전시하는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비지터 센터의 내외부에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있어서 축축하고 서늘한 바람을 피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거 같다.

내부를 대충 둘러보고 비어있는 테이블에 앉아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을 구경하고 있다 보니 먹구름이 끼다 못해 회색 안개가 주변에 생기기 시작한다.

안개가 자욱이 끼기 시작해 주변 풍경이 잘 보이지 않게 되자 주변에 관광객들이 안개를 보며 조금씩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웬 안개니?”

“조금 늦었으면 스톤헨지는 제대로 구경하지도 못했겠네.”

“스톤헨지는 몇 번 와봤는데 이렇게 심한 안개는 처음 봐….”

“하필 날 잡아도 이런 날을 잡니.”

“시윤이 니가 일정 짰잖아!”

한국 관광객인가? 옆 테이블에 앉은 여대생으로 보이는 여자 넷이 앉아있었는데 짧은 보브컷의 여자를 생머리 여자 셋이 갈구기 시작한다.

“누,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아무튼, 이런 날씨는 얼른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이동하라는 하느님의 계시야!”

“아우. 또 이러네. 누가 이 가톨릭 처녀 좀 어떻게 해봐!”

꺅꺅거리는 여대생 누나들을 보다가 안개가 껴서 안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대로 마포를 쏘아내서 먹구름을 치워버리면 저 보브컷 여대생 누나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테이블에 턱을 괴고 앉아 바깥 풍경을 구경하고 있으니 프랑이 날 돌아보며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을 연다.

“안개가 심해지네요. 우리도 이만 런던으로 돌아갈까요?”

“조금 더 안 기다려보고? 이대로 돌아가는 건 좀 아쉬운….”

어? 뭐지. 갑자기 스톤헨지 중심에서….

고개를 홱 돌리고 스톤헨지 방향을 뚫어지라 바라보니 프랑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내가 시선을 주는 곳으로 따라 머리를 돌린다.

“프랑. 느껴져?”

“네?”

스톤헨지 방향을 보면서 프랑에게 말하니 나랑 스톤헨지 방향을 번갈아 보다 이윽고 움찔하고 놀란다. 프랑도 발견했군.

프랑은 황급히 내 옆으로 다가와서 귀에 대고 속삭인다.

“저, 저건 귀환 포인트잖아요?! 서하도 저걸 보신 거에요?!”

“어. 확실히 귀환 포인트지?”

어떻게 갑자기 현실에 귀환 포인트가 생겨난 거지? 저길 통해서 들어가면 뭐가 있는 거야? 만약 저길 들어갔다가 되돌아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예감이 저길 들어가야 한다고 강하게 말하고 있다.

“프랑. 가보자.”

“서하?!”

자리에서 일어나는 날 보고 화들짝 놀란 프랑은 황급히 손을 뻗어 날 잡는데 프랑이 놀라면서 외친 내 이름에 여대생 누나들이 나와 프랑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속삭인다.

“서하? 설마 그랑 블루 마스터 정서하?”

“에이, 그 사람이 왜 여기 있겠어.”

“야야야. 옆에 저 미친 외모 여자 좀 봐. 그랑 블루 마스터가 데리고 다닌다던 정령이 맞는 거 같은데?”

여대생 누나들의 중얼거림을 무시하고 프랑의 허리를 잡아당겨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 예감이 들어가 보라고 하고 있어. 그러니 확인해보고 싶어.”

“아, 으으으. 하지만 어떤 곳인지도 모르잖아요…! 들어갔다가 되돌아오지 못하려면 어쩌시려구요오!”

“아냐. 지금 내 예상대로라면 되돌아올 수 있어. 들어가기 전에 화연이와 영은이한테 이야기하고 가자.”

우리 등을 쫓는 시선들을 무시하고 프랑의 허리를 끌어안고 비지터 센터를 나왔다. 바로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자욱한 안갯속으로 뛰어들며 인증기를 켜서 화연이와 영은이를 연결한다.

[헬로~? 울 쟈기가 무슨 일로 전화를 했을까~?]

“지금 스톤헨지에 귀환 포인트가 나타났어.”

[어?!] [뭐?]

경악하고 놀란 표정의 화연이와 영은이를 보며 빠르게 입을 열었다.

“길게 말 못해. 내 예감이 지금 귀환 포인트에 들어가라고 하고 있어. 예상대로라면 돌아 나올 방법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뒤를 부탁할게.”

[아앗! 몸조심해! 우리 과부로 만들면 안 돼!!]

[프랑! 서하가 위험한 행동 하지 못하게 부탁합니다!]

빠르게 말하는 내 모습에 화연이와 영은이도 놀라고 당황한 감정은 뒤로한 채 다급히 내 옆에 서 있는 프랑에게 고함 지르듯이 외친다.

“서하는 제게 맡겨주세요! 뒤를 부탁할게요!”

당황하고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둘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여주고 인증기를 종료한 다음 이 시간이면 연합 오피스텔에서 하철수의 방 앞을 지키고 있을 히아리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اسمان داسمان د]

“지금 위상 세계로 들어갈 거야. 공간의 벽이 사라질 테니 언제나처럼 감시를 부탁해.”

[네.]

“미호도 보내줄테니 미호와 함께 감시하도록 해.”

[네.]

그리고 전화를 끊은 다음 미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안개지만 공간 지각으로는 바로 앞에 스톤헨지가 있다고 알려준다. 프랑의 가는 허리를 두른 팔에 조금 힘을 주면서 미호가 전화를 받길 기다렸다.

…이 여우 꼬맹이는 뭐하길래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살짝 화가 나려고 할 무렵 연결음이 들리며 가늘고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미호. 지금 당장 히아리드가 지키고 있는 오피스텔로 가서 내가 전화할 때까지 히아리드와 함께 오피스텔을 지켜.”

[으웅? 우웅. 알았어. 주인님이 전화할 때까지 오피스텔을 지킨다!]

“그래.”

인증기를 종료해 전화를 끊고 주변을 살펴보니 안개가 진하게 낀 스톤헨지 주변에서 가만히 서 있는 관광객들이 느껴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가 낀 상황에 당황해서 가만히 서 있는 거 같다.

출입 금지 로프 선을 뛰어넘어 성큼성큼 스톤헨지의 블루 서클 안으로 들어가니 눈앞에 회색 안개 사이로 둥둥 떠 있는 빛무리가 보였다.

…깜빡할뻔했네. 걱정 가득한 눈으로 날 껴안고 있는 프랑을 한번 바라보고 인증기를 켜서 아빠한테 프랑이랑 둘이서 영국 주변 좀 둘러보고 오겠다고 문자를 날렸다.

이제 됐나? 누나한테 전화했다간 위에 구멍 날 만큼 걱정하다 쓰러질 거 같으니 알려주지 말자. 내 연인들에게도 알렸으니 화연이를 통해 엄마한테도 알려질 테고 아빠한테도 문자로 알렸고, 더 할 건 없지?

허리띠도 짧지만, 농축 비상식용 벨트니까 아껴먹으면 최소 3달은 버틸 수 있다. 식수도 위기 상황이라면 소변을 받아 마시면 5일은 버틸 수 있다.

체크 완료. 좋아.

“가자.”

“으으으. 네에!”

위험해 보이는데, 말려야 하는데 말려야 할 타당한 이유를 찾지 못한 거 같은 프랑은 울상을 지은 채 내 허리를 껴안아온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빛무리에 손을 뻗어 TP를 흘려 넣기 시작하니 미약하던 빛이 점점 강해지며 빛무리도 커진다.

역시, 틀림없어.

점점 강해지는 빛과 함께 주변 풍경이 하얗게 물들기 시작하고 내 허리를 껴안은 프랑의 손에 힘이 더욱 강하게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제랄 패커드, 현실의 유일한 S 클래스 능력자도.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해진 빛에 눈썹을 찌푸렸다. 이윽고 강한 빛이 터져 나오며 주변을 순백으로 덧칠하기 시작했다.

현실에서 귀환 포인트를 발견해 넘어간 거야.

그나저나 진짜 이 망할 눈 뽕은 막을 방법이 없는 건가…?

============================ 작품 후기 ============================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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